사회 생태학과 에피게놈: 환경 프로젝트 윤리
통합학문과 사회 생태학
생태학은 주로 생물학적 과학에 뿌리를 두고있으며, 물리학, 화학, 수학에 대한 이해를 동반한다. 지난 20년 동안, 새로운 학문 분야의 급증했다. 이러한 학문적 분화의 증가는 전문화이 필요성을 언급하지만, 동시에 다 학제간의 소통과 상호 배움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의학과 생태 과학의 발전, 자원 관리에 중점을 둔 정책을 시행할 필요성의 증가, 환경 문해력에 관한 도전에 관련된다. 그리고 이러한 전문성과 통합적 시도는 지역 및 글로벌 계획에 대한 혁신적인 접근 방식의 지속적인 개발에 기인할 수 있다.
21세기 동안, 주로 학문적 교육에 기반한 인프라를 가진 고등 교육 기관들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점점 더 통합적이고 초학문적 프로그램, 즉 '통합 과학'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통합학문의 틀에서 사회 생태학은 사회와 자연의 포개짐에 주목하고, 환경에 자연의 생에 미치는 에피게놈의 차원을 분석한다. 이러한 접근은 히스톤의 변형이 어떤 매카니즘을 통해 유전자의 변형과 더불어 환경사회와 오이코스 구성에 연관되는 지를 분석한다. 이러한 접근은 생태계의 사회적 구성을 인접 가능성의 토대로 파악하며, 세포의 코어 보존과 과정과 촉진된 변이를 중요하게 고려한다. 자연의 생은 역사적으로 되어가는 존재이며, 기후변화와 수질의 온도 등을 통해 생의 권리를 위해 돌봄과 치유를 요구한다.
에코 거버넌스를 사회적 에피개놈의 연구는 결정적이며, 이것은 가이아 같은 지구의 여신이나 심층 생태주의가 주장하는 브라만과 아트만의 합일이라는 '에코 자아'나 해방신학에서 말하는 창조 신비주의나 우주적 영성과는 거리가 있다. 과학 집단에는 많은경쟁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며 파라다임의 변화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정상과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비정상성이 나타난다고 해도, 이것의 해결은 결정론적으로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새로운 사실에 열려있다. 이러한 열려있음을 가이아 여신이나 창조 신비주의나, 심지어 여성의 억압을 자연의 억압에 등치시키ㅡㄴ 자연 낭만주의나 아니미즘으로 보충하는 것은 과학의 담론에서 받아들여지기가 어렵다.
물론 과학의 담론이나 새로움은 종교적 가치나 열망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종교나 영성이 과학을 말하지는 않는다. 과학은 과학의 담론안에서 경쟁하는 리서치 프로그램과 더불어 진행 되어야하며. 자연의 생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여기서 논의되어야 햔다. 특히 생태학을 다루는 문제에서 생물학적 접근과 진화 또는 새로운 생의 출현이론 등은 매우 중요하게 고려 되어야한다. 이후 종교의 전통은 창조든지 자연의 샹에 대해 윤리적 가치나 우주적 형이상학을 피력할 수가 있고 합력할 수가 있다. 종교가 과학을 대신하지 않는다. 특히 에피게놈의 문제와 치유 네크놀로지는 종교의 영성을 넘어선다.
히스톤 변형 메카나즘: 아셀티화, 메텔화, 인산화
유전자는 히스톤 변형과 크로마틴 리모델링에 기초한 에피제네틱 환경에 서 있다. 히스톤 옥타머는 H3/H4 (뉴클레오솜의 코어)와 H2A/H2B (뉴클레오솜의 느슨한 연결)에 의해 조립된다. 히스톤 꼬리를 통해 외부의 효소들에 의해 일어나는 화학반응은 인산화와 아셀티화 그리고 메텔화이다.
아셀티화는 일반적으로 유전자 표현을 변경하고 증가시킨다. 이것은 히스톤의 양전하를 제거함으로써 DNA의 음전하 인산기 (phosphate group)에 대해 강한 상호작용을 금지한다. 히스톤은 DNA와 효율적으로 작용하도록 콘트롤 된다.
메텔화는 히스톤 꼬리와 외부의 다른 단백질들(음식물 섭취나 흡연 또는 약물 등)이 접촉하는 도킹 사이트를 만든다. 세포 분열에서 새로 합성된 DNA에서 메텔화 패턴이 에피게놈의 유전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히스톤 메텔화와 DNA 메텔화는 밀접하게 연결되지만 구분될 필요가 있다. DNA 메텔화는 아데닌과 키토신에서 일어나며 유전자들을 꺼진 상태에 가두어 버리며 RNA 전사를 규제한다. 그러나 히스톤 메텔화는 단백질 번역이후 히스톤에서 일어나며 유전정보의 "침묵자"로 간주된다. 이것은 DNA 복구와 세포 사이클 규제, 스트래스 반응, 발전과 분화에 관여한다.
인산화는 히스톤의 양전하를 아셀티화처럼 바꾸지만, 주로 세포의 다른 단백질들을 콘트롤 한다. 인산화는 DNA 복구와 세포분열 그리고 DNA 포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촉매효소 (kinase)는 인산기를 효소가 활동하는 분자 기질의 자리에 운반하고, 효소/기질이 형성된다. 인산화에서 많은 효소들과 리셉터 (수용체 단백질)들이 활성이 되거나 아니면 비활성화 된다. 단백질 촉매효소는 신호 시그널 (transduction)을 책임진다.
인산화는 신호전달을 통해 유전자의 전사와 번역의 전체과정을 콘트롤하며, 세포성장과 증식 그리고 물질대사등을 조절하는 기본 메카니즘이다. 인산화는 세포안의 고 에너지 운반분자(ATP)에 관여하며, ATP는 세포의 다양한 과정을 촉진하는 에너지를 제공한다. ATP는 효소/기질의 형성과 미토콘드리아에서 합성된다.
인간의 게놈은 23개 쌍의 염색체에 있지만, 유전자 코드를 담고 있는 21,000개의 단백질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인간 게놈의 1. 5%을 차지한다. 크로마틴 리모델링은 염색체를 규제하거나 DNA복제와 RNA 전사 그리고 DNA 손상 복구가 필요한 곳에서 히스톤 교환을 통해 영향을 미친다 (Fundamentals of Cell Biology, 73. 78).
히스톤 변형의 메텔화 반응은 세포분열에서 딸 세포에게 DNA에 없는 유전정보를 전달한다. 이것은 에피제네틱 유전의 근거가 된다. 더우기 다양한 세포체들도 리보솜 생산과 DNA 복제와 전사 그리고 스플라이싱(이어맞추기)과 복구 등에 관여한다.
시스템 생물학에서 볼 때 DNA의 유전형질을 발현시키는 곳은 세포 유기체의 활동이다. 유기체의 표현형이 DNA의 목줄을 쥐고있다. 세포 사이클(세포 분열)과 히스톤 변형 그리고 크로마틴 규제 메카니즘 (DNA 복제와 RNA전사 와 번역 등)에서 유전발현은 조직과 유기체에서 최초로 표현된다. 이것을 나는 생의 지향성또는 진화가능성(evoability; 마크 커슈너)으로 부르며, 세포의 디나미스와 유기체의 현실태과정에서 DNA 의미를 자리매김한다.
에피제네틱 유전성
아셀티화 (acetylation)는 유전자 활동을 유도분자를 통해 전사와 번역 그리고 이후의 세포조직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크로마틴 구조를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유전자 표현을 규제한다.
유전자 발현의 과정에서 히스톤이 주도권을 가지며, 에피제네틱 유전은 DNA가 아니라 아셀티화와 메틸화 그리고 인산화를 통해 주도된다 (Cell, 211, 30 4).
에피게놈은 불변하고 결정론적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며 변경된다. 데이비드 스웨트는 뇌과학에서 뉴런 에피제네틱의 영역의 전문가이며, 유전자와 인간의 삶의 경험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말한다.
2013년 그가 동료들과 편집한 <Epigenetic Regulation in the Nervous System: Basic Mechanisms and Clinical Impact>에서 그는 에피제네틱의 과정과 메카니즘이 어떻게 사회적 환경에 관련되는 지 분석한다. 이것은 인간의 인지활동과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사회학적으로 매개하는 것은 에피제네틱스의 접근방식에 속한다.
성인 뇌세포는 세포분열을 하지 않는다. 성인의 뉴런에서 에피제네틱 표식은 오래 지속적이며 자기 재생적이지만 그러나 유전되지 않는다. 뉴런 에피게놈은 신경중심 세포에서 일어나는 메카니즘에 주목한다. 이것은 뉴런 시스템의 유연성과 유기체의 경험의 중요성 그리고 사회적 요인을 새로운 연구영역으로 발전시킨다.
에피게놈:보편적 환경윤리
계보학적으로 볼 때 가계 경제의 연구(생태학)는 가정의 관리(경제학)와 통합된다, 생태적인 경제는 포개지며, 여기서 에피게놈의 문제가 설정된다. 인간의 사회 경제적 조건이 인간의 DNA 메텔화 과정에 핵심적인 요인이다. 자연환경의 공해와 수질의 온도, 탄소 배출량과 기후 온난화 등은 동식물의 삶에서 메텔화의 변화를 심각하게 가져온다.
윤리는 환경적 가치와 인간적 가치를 포함해야 한다. 생태학, 경제학, 윤리학의 세 가지는 결합이되며, 환경윤리의 보편성은 인류세와 기후 변화위기에서 미래의 샹생존을 위한 전략을 창출할 수 있다.
자본주의든지 사회주의 든지 경제학의 첫 번째 계명은 "성장하라"이다. 영원히 성장하라. 회사는 더 커져야 한다. 국가 경제는 매년 일정 비율만큼 성장해야 한다. 사람들은 더 많이 원하고,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써야 한다- 점점 더 많이는 탐욕 (큐피디타스)의 경제학을 말한다.
저명한 환경주의자 도넬라 메도우스의 경구 "Just so much and no more"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구의 첫 번째 계명은: 충분하다. 딱 그 정도, 더는 안 돼. 딱 그만큼의 흙. 그냥 너무 많은 물. 그냥 햇빛이 너무 많아요. 지구에서 태어난 모든 것은 적절한 크기로 자란 후 멈춘다. 지구는 더 커지지 않고, 더 나아진다. 그 생물들은 배우고, 성장하고, 다양화하고, 진화하고, 놀라운 아름다움과 새로움과 복잡함을 창조하지만, 절대적인 한계 내에서 살아간다 (Donella Meadows, The Acaemy for Systems Change).
자연과 사회가 포개지는 지점에서 공공선 거버넌스는 보편적인 환경윤리적 가치를 갖는다. 에코 인간성은 환경 프로젝트 윤리에 관여가 되며, 윤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 자연의 생과 더불어 새롭게 설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