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윌슨: 개미찬양의 허구

파레시아 2024. 6. 29. 11:18

 

윌슨: <창조> 또는 <생명편지>

 

윌슨은 신학이 다루는 영역과 주제 그리고 삶의 형식을 유전자의 산물과 자연선택으로 보고 생물학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디. 그는 기독교의 창조론에 대한 건전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윌슨은 50년대 인종차별의 본산지 알라배마의 남 침례교의 배경에서 자랐다. 윌슨의 <창조>는 <생명편지>로 번역되었고 이전과는 사뭇 다른 종교와 진화의 관계를 생태학적 차원에서 파악한다. 내용은 챕터마다 목회자를 언급하면서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가르친다. <생명편지>는 과학적 휴머니즘을 표방하며 남침례교회의 목사들을 위한 생물학 수업이다.

 

윌슨에게 자연이나 열대우림에서 발견되는 생의 새로움과 다양이 존중된다. 살아있는 곤충들과 짐승들을 기술할 때 감정 유발적인 메타포를 사용하고 신화론과 종교안에 설정하기도 한다. 그는 이것을 생명애에 입각한 문화적 진화의 기본과정으로 이해한다 (Creation, ch.7).

 

인간본성: 본능적 측면

 

윌슨은 (창조> 7장 동물적 본성과 인간본성의 공유점을 유전자 규칙을 통해 설명한다. 인간의 인지발달에서 살아있는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지각은 하나로 연합이 된다. 이것은 과학과 종교적 경험의 일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윌슨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본능적 측면을 인간본성으로 정의한다.

 

인간 본성을 명령하고 주도하는 것은 유전자나또는 문화적 보편성 (근친 상간 금기, 창조신화 등)이 아니다. 후자는 인간본성의 산물이며, 인간본성은 인지발달에 대한 유전적 규칙들에 기초한다.

 

유전적 규칙들은 분자들의 경로들에서 표현되며 세포와 조직을 만들어낸다. 특별히 규칙들은 감각과 신경 시스템의 경로들을 생성한다. 유전규칙들은 세포와 조직들 안에서 명령하며, 세포와 조직들은 마음과 행동을 창발시킨다.

 

이러한 마음과 행동은 우리의 감각들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에서 편견들로 나타난다. 이러한 편견들은 언어와 상징적 기입에서 현상하며, 이것을 통해 우리는 세계를 대변한다. 유기체의 발전 규칙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 대한 개방성을 선택하고 만들어낸다.

 

다시 말하면 윌슨의 유전자 규칙이론은 인간본성의 토대가 되며, 유전자 규칙들은 세포들의 다양한 경로들에서 만들어진다. 세포의 네트워크와 오토포이에시스에서 명령을 하는 것은 유전자 규칙들이다. 이러한 규칙들이 인간의 지각에서 편견으로 등장하며 세계를 그렇게 재현하게 한다. 여기서 유기체의 발전은 고작해야 자신에 대한 개방성에 제한된다.

 

인지과학과 인식론

 

뇌 신경세포에서 과연 유전자 규칙이란 무엇인가? 세포체에서 RNA전사는 프로틴으로 합성되면서 히스톤 변형과 크로마틴 리모델링을 거처 오히려 유전자 규칙은 규제되고 변형된다.

 

심지어 수정과 배아에서 뉴런의 유전자 규칙이 기입되는 것이 아니라, 신경판이 튜브를 거처 신경 능선 세포로 발전한다. 이것은 척수와 뇌형태로 통합되며 특히 시냅스의 기억과 학습에 기여한다. 뇌신경 세포 시스템에서 뉴런의 유전자가 아니라 유기체의 구제활동과 표현형이 결정적으로 나타난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가정과 교육환경 그리고 삶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인지능력을 증대한다. 세계를 지각하는 것은 몸을 통해 인간의 의식으로 들어온다.

 

이런 점에서 지각된 대상의 인식지평은 윌슨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히 편견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인간의 지각과 인식은 타자와 생활세계와의 부단한 상호작용을 통해 지향성과 지평의 스택트럼으로 열린다. 의미와 진리가 스스로 드러난다.

 

만일 윌슨의 유전자 기계론적 규칙에서 지각과 인식이 편견 이라면, 윌슨 자신은 자신의 곤충과 개미연구나 사회 생물학을 편견으로 여기는가? 그렇다면 그는 편견으로 가득찬 사회생물학을 통해 사회학과 인문학 그리고 종교의 창조의 의미를 얼치기식으로 통섭 하는가?

 

윌슨과는 달리 오늘날 세포 생물학에서 유기체의 발현과정에 오히려 유전자가 포섭되며, 유전이 되는 것은 유기체의 발현형질이다. 심지어 체세포에서 분열기를 거치는 DNA복제에서 에피제니틱 유전이 전달된다.

 

과연 종교가 인간본성 다시말해 본능을 콘트롤하는 유전자 규칙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윌슨이 말하는 유전자 규칙의 정체는 무엇인가?

 

생물학적 현상학에서 종교의 이념과 제의가 인간의 지각과 세계에 대한 인식론적 태도를 구성한다. 그리고 인지능력은 인간의 삶의 경험에서 구현된다. 인간 본능적 측면은 타자와의 상호접촉과 합리성 그리고 이해지평의 확대를 통해 지속적으로 갱신되고 변형된다.

 

만일 윌슨이 인간의 동물적 본능이 유전자 규칙을 통해 종교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면, 남침례교 목사들이 여기에 동의할까?

 

경이로운 개미찬양

 

윌슨은 <창조> 6장의 결론에서 "경이로운 개미"로 이름붙인 Thaumatomyrmex를 찬미하기 바쁘다. 이 개미의 식민지들은 10-20 개미를 포함하는 소그룹이며, 열대 우림의 썩은 나무안에 서식한다.

 

그러나 윌슨의 생물종의 다양성 보존은 거의 에덴동산의 수준으로 돌려 놓자는 것처럼 보인다. 윌슨에 의하면 인간이 다양한 생물종들을 자연의 질서에 대립해서 만들어 놓기 전까지는 세계는 완벽한 에던 동산과 같다. 태고적 자연 노스텔지어와 유전자 규칙성에 윌슨은 서 있지만, 윌슨은 에피/에코 거버넌스와 오이코스 구성에

관심이 없다.

 

그윌슨이 <Anthill>에서 묘사하는 여왕 개미의 영웅주의나 군림은 최근 드보라 고르동의 개미연구에 의해 밀려난다. 드보라는 스탠포드 대학의 생물학 교수이며 새로운 개미 연구로 각광을 받는다. 그녀의 팀은 1996년 아르헨티나 개미연구를 통해 윌슨의 개미 찬양과는 다른 챕터를 놓았다.

 

그녀가 발표한 "침입자 아르헨티나 개미와 원주민 개미군집 간의 착취와 간섭과 경쟁"에 관한 논문은 윌슨과는 전혀 다른 개미의 탈중심적인 네트워크를 보여준다.

 

침입자 아르헨티나 개미의 식민주의 해악을 분석하면서 그녀에겐 개미찬양에 대한 낭만주의가 없다. 그녀는 개미의 삶에서 자기 조직화, 복잡 시스템 그리고 탈중심적 결정을 부각시킨다. 개미의 집단적 행동은 유전자가 아니라 네트워크에서 결정된다.

 

심지어 여왕 개미도 명령하지 않는다. 개미집단에는 메니저도 없으며 관료 지배도 없다. 환경에 대한 반응은 개미 집단의 로컬 네트워크의 소통과 시냅스 그리고 세포들간의 화학적 상호작용에 근거한다.

 

개미의 삶을 규제하고 주도하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세포 시스템의 자기 조직화이며, 개미 유기체의 환경에 대한 자기 식민지 구성에 있다. 드브라의 개미연구는 시스템적이며, 윌슨의 개미찬양과 과장적인 표현이 없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