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과 푸틴의 신동맹: 우크라이나 평화협정
전쟁 사회학: 민족 위신과 문화적 경험
역사 사회학자는 국제정치 문제를 다룰 때 전쟁의 역사적 배경이나 국가의 문제를 정치학자와는 다르게 본다. 전쟁 사회학에서 베버가 분석한 연방-국가내지 민족주의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 문화적 공동체와 정치적 연합으로서의 국가가 융합될 때, 영토 방어를 위한 군사제도와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관료제의 지배방식 그리고 국가권력이 강화된다. 정치 엘리트들이 민족이념을 확립하고 확장시켜 나간다. 국가는 영토적으로 확정되는 신분 그룹에 의해 정치 문화적으로 형성된다. 여기서 민족개념은 근대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근대 정치사에서 개혁이나 혁명을 통해 군주제나 귀족제로부터 권력을 획득은 시민을 이제 정치주체로 등장시킨다. 이들이 바로 근대국가의 담지자가 되며 동시에 제국주의 확장에서 민족의 위신과 국가 권력의 위신 그리고 식민지배를 위해 국가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학적 분석은 1848년 유럽전역에 불어닥친 민주주의 혁명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와 연방국가 독립에 역사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
국가와 민족위신의 확장이 식민지배나 제국주의로 나타날 때 자본주의는 해외 식민지와 시장을 약탈하는 자본주의적 성격을 ‘정치적’으로 갖는다. 이것은 베버에게서 자본주의 정치유형에 속하고, 약탈 자본주의로 드러난다. 이것은 베버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합리적으로 파악한 자본주의 유형과는 전혀 다르다. 에밀 뒤르캠 역시 민족주의를 애국주의로 파악하고, 식민지배나 전쟁으로 발전되는 타입을 공격적이고 집단 이기주의에 근거된 아노미적인 병리 현상으로 말한다. 그러나 시민사회에서 합리적인 노동분업을 통해 유기적 도덕과 공공선으로 나타나는 유형은 바람직하다.
민족이나 민족주의를 규정하는 것은 역사 문화적인 경험과 더불어 전쟁이나 박해와 같이 정치적으로 함께 나누었던 공동운명이다. 이것이 민족적인 연대감정의 바탕이 되며, 대중의 문화가치를 세워나간다. 그런가하면 종교적인 차원이 중요해진다. 유고슬라비아의 구성원이었던 ‘정교회’ 세르비아족과 ‘카톨릭’ 크로아티아족이 인종과 언어가 유사해도 서로 다른 민족국가로 갈라서는 이유이기도하다.
역사가 야로슬라브 히리차크에 의하면, 우크라이나는 18세기 중엽부터 민족감정의 열망이 시작되었다. 우크라이나가 소비에트연방의 부속되었다고 해도 이미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자 자체 독립을 선언한 적도 있었다. 1932-33년 사이에 일어난 대기근에서 4-5백만명이 죽은 걸로 추정되는데,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었다. 스탈린의 집단 대농장 정책에서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최대의 희생자였다. 십만명 이상의 가족들이 시베리아나 카자스탄으르 강제이주를 당했다. 스탈린의 러시아 인종 우대정책은 우크라이나 문화적 가치와 열망에 사망선고나 다름 없었다.
1941년 나치 독일이 소비에트를 침략했을 때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독일을 해방군으로 간주하기도 했고, 소비에트로부터 독립하려고 비밀결사를 만들기도 했다. 1991년 소련 연방이 해체 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독립이 되지만, 유럽연합과 러시아 연방의 영향권 사이에 끼어있어 정치적 분쟁을 자체안에 배태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민족의 유대와 연대감정은 중요한 요인이 되며, 이것은 역사적인 경험과 공동의 정치운명에 묶여있다. 전적으로 혈통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미국의 독일계 이민자들은 기꺼이 미국을 위해 2차 세계 대전에서 군대에 복무하고 히틀러 파시즘에 대항하여 총을 들었다. 근대에서 민족 개념은 문화적 가치의 영역에 속하고 위신과 연대감정에 근거된다. 이것이 공동의 국가를 설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혁명의 이념에서 시민사회가 전통적인 인종 공동체를 대체했다.
배버의 전쟁이론과 폭넓은 영향
막스 베버가 1905년 러시아 혁명을 연구했을 때, 우크라이나 연방주의자인 드라고마노프의 영향을 받았다. 후자에 의하면 러시아 제국은 자신의 지배 블록 안에서 폴란드나 리투아니아와 같은 개별국가들에게 상당한 정도로 문화적 자율성을 허락해야한다. 동시에 국제정치의 힘의 질서로 인해 소수의 연방국가들은 러시아 제국의 보호 아래서 생존할 수가 있다.
이런 점에서 극단적인 민족 분리주의자들의 입장은 거부된다. 열강들 간의 힘의 균형 만이 소수의 연약한 국가들의 자유와 주권을 보장해줄 수가 있다. 이런 국제 정치관점에서 베버는 1917년 독일의 군사적 보호아래 폴란드의 민족국가의 설립을 지지했다. 이런 입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세계와 공산주의로 갈리는 진영 이데올로기 즉 냉전시대의 논리에 적합했다.
베버의 영향의 스텍트럼은 매우 넓다. 흔히 좌파이론가들이 베버를 애써 폄하하고 그를 하찮은 부르주와 정치가나 아니면 히틀러에게 복무했던 법학자 칼 슈미트의 스승 격으로 비난한다. 왜냐하면 베버의 러시아 혁명비판이 이들에겐 응어리로 남아 있어서 그럴 것이다. “프로 렐타리아트 독재?—천만에, 공산당을 통한 관료제의 독재가 러시아를 결단 내버릴 것이다.” 베버의 러시아 사회주의 비판의 골자이다. 그리고 적중했다.
필자가 보기에 베버의 법 사회학을 살펴보면 그는 사회계약론과 공화제 민주주의 전통에 서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족주의와 근대국가의 문제를 다룰 때 관료제 분석은 탁견에 속한다. 이런 점에서 베버는 비판적 민주주의자로 자리매김된다. 사실, 베버는 진보 좌파에게나 자유 민주주의자에게나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시험대에 속한다.
우쿠라니아 전쟁의 계보학
미국의 정치학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2014년 오바마 정부의 국제정치의 부산물로 본다. 완충국가를 세워서 나토의 확장과 더불어 자유주의 주도의 세계질서를 확립하면서 러시아를 둘러싸는 봉쇄전략이다. 러시아의 푸틴으로서도 존립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2004년 오렌지 혁명에서 선거부정으로 인해 친-러시아 정치가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인 친-유럽 성향의 빅토르 유센코에게 밀려났다.
그러나 이후 재기에 성공한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2013년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의 협정서를 거절하고 친러시아 정책으로 돌아섰다. 2013년도와 2014년 사이에 일어난 시민저항 운동에서 급기야 정부건물이 시위대에 점령당해 경찰과 대치 과정에서 80여명이 사망 하자 결국 의회는 야누코비치를 대통령직에서 탄핵하고 해임시켰다. 러시아로 도피한 야누코비치를 보호하면서 푸틴은 시민저항을 쿠데타로 규정하고 20 14년 3월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합병시켰다.
2019년 4월 젤렌스키가 대통령 선거를 통해 70% 이상의 지지율을 얻으면서 정계에 등장했다. 그러나 2020년 테헤란에서 키이우를 운항하는 우크라이나 비행기가 이란 혁명 수비대에 의해 격추당해 176명의 승객전원이 사망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 되었다.
2021년 대통령 명으로 친러시아 방송 프로그램이 중지되고 푸틴의 지지자들과 특히 푸틴의 대부인 빅토르 메드베츄크와 그의 아내에게 제재가 가해졌다. 2021년 브뤼셀 정상 회의에서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허락했고, 2020년 우크라이나는 회원가입 신청서를 냈다. 그러나 2022년 2월 21일 러시아의 푸틴은 전면전을 개시했다.
대략 이 정도가 전쟁의 역사적 배경이 된다. 시카코 대학의 저명한 국제 정치학자인 존 미어샤이머는 푸틴의 무모한 전면전을 비판한다. 동시에 오바마 정부시절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완충국으로 만들어 러시아의 힘을 소규모의 영토에 국한시켜려 했던 전략에 날카로운 각을 세운다.
이 일로 전쟁이 일어날 경우 국제법 차원에서 더 이상 전쟁을 해결한 중앙 집권적인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UN이나 유럽연합 역시 무력할 수 밖에 없다. 모두 다 개별 연방국가들의 전략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여기에 군산 복합체와 의약품과 식량을 공급하는 다국적 기업의 비즈니스가 호황을 누린다. 약육강식의 세계가 국제 정치 관계에서 가장 리얼하게 드러나는 현장이 범죄로 얼룩진 전쟁이다.
베버와 미국 헌법의 문제
베버는 근대 국가의 지배에 대한 사법적 정당성을 고려할 때, 이전 종교적인 계시나 권위에 기초된 자연법이 해체되고, 이 자리에 대신하여 인간의 이성과 실정법 안으로 들어온다고 본다. 베버의 미국헌법에 대한 논의에서 사회계약론과 자유방임주의라는 두 가지 다른 전통이 이해 충돌로 나타나는 것이 간파된다. 시민은 더 이상 신하가 아니라 일반의지로 구현되는 국가의 헌법에 복종하는 정치주체가 된다. 왜냐하면 국가의 행정부는 국민적인 승인과 이들을 대변하는 의회의 동의없이 삶, 자유, 사유재산 등에 함부로 개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진단은 이미 전 세대인 프랑스 정치 철학자 알렉시스 토크빌 (1805-1859)이 미국을 방문하고 출간한 “미국의 민주주의” (Democracy in America)에서 잘 읽을 수 있다. 미국 민주주의 특징은 루소의 일반의지와 지역정부의 자율성 그리고 사법적 평등함에 있다. 삼권 분리의 원칙이 제왕적 대통령이나 독재정부에 쐐기를 박는다.
그러나 미국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 방임주의와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 진화론으로 나갔고 세계 제국주의와 경찰국가로 등극했다. 미국정치의 비극은 여기서 배태되고 수많은 전쟁을 역사적으로 치르면서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민낯을 드러낸다.
공공 지성인의 역할—파레시아
입법의 기능은 행정부로부터 독립적이며,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곳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표현은 오히려 낯설다. 행정부가 국민적 승인과 의회를 통해 지배되는 방식이 민주주의이며,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나 수상이 지나친 관료체제로 치달을 때 파국은 이미 예견된다. 그것은 파시즘으로 가든지 아니면 국민투표에 의한 권력 물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사법적 정당성이 국가기제를 통한 관료지배와 연관되어 있고, 전문가를 키워내는 교육이 중심 자리로 들어온다. 효율적인 행정을 위해 전문적인 훈련 이나 전문 학위증서가 없는 아마추어에게 관료의 역할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결국 아리스토 텔레스가 생각한 도덕적으로 함양된 인간이 아니라, 전문교육을 받은 신분 그룹이 민주주의와 더불어 시민사회의 성격을 규정한다. 즉 시민사회는 합리화되고 기능적으로 전문화되며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되면서 전문적인 사회로 진입된다. 여기에 발맞추어 도덕의 진보가 공론장의 문법이 된다. 책임, 신뢰, 신중한 판단과 같은 윤리적 가치가 없는 정치는 시민들부터 외면 당한다.
독재와 관료제의 집중
베버는 프로렐타이트 독재개념의 허구와 더불어 비스마르크의 관료정치에 적대자였다. 근대의 조건에서 국가권력이란 베버에 의하면 서로 공유되는 문화가치와 민족유대에 기초된다.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전문가들이 양산되고, 민족주의적-문화적인 토대와 사법적 지배는 근대의 연방국가를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 사법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적인 가치와 전문교육, 더 나아가 정치주체로서 시민권리가 결합되면서 이전의 제국이나 인종 군주제로부터 벗어난다.
선동담론은 이러한 시민사회안에서 발을 붙이기 어려워진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제국으로 일탈하고 고립을 추구하는 것을 단지 미국과 유럽 연합이 주도하는 리버럴 세계질서의 국제정치의 일부로 파악하기가 어려워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미어샤이머와같이 국제정치 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엄정한 힘의 논리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정치경험과 운명을 재단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사회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에서 근대국가와 민족이념 그리고 여기에 상응하는 문화적 가치(생활세계)와 도덕적 연대감이 어떻게 시민사회의 (교육을 통한) 문화적 기여와 더불어, 균형있는 민주주의 (국민적 승인, 공공선, 사회복지를 향한 경제의 분배적 정의)가 작동되는 가에 있다. 더 나아가 갑질의 특권이나 정치 독점 카르텔을 철폐해 나가는 공공교육과 개혁운동 그리고 전문가의 효율적인 국가봉사를 증진하는데서 찾아진다.
더 이상 국가는 일부 엘리트 그룹이 리스트를 작성해서 만들 수 있는 장난감 같은 것이 아니다. 특정계급의 도구나 권력 나눠먹기 식의 관료제로 전락할 수도 없는 매우 복합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국가 기제들의 기능이 있다. 또한 국가는 시민 종교적 차원인 애국주의를 가지고있다.
종교의 수치와 트럼프의 2기
푸틴의 치명적 오류는 러시아 제국 또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우쿠라니아 인종이 경험했던 역사적 차별과 민족적인 연대감정 그리고 이들의 문화적 가치 합리성을 하찮게 취급한데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는 러시아 정교회 수장 키릴이 한몫을 단단히 했다.
키릴은 우쿠라이나 국민을 악으로 저주한다. 이유는 간단 명료하다. 러시아의 전통적 가치를 추종하지 않고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추종했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에 속하는 우쿠라이나를 러시아로 되돌리기위해 러시아 병사들은 전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영웅적인 희생을 하고있다.
‘속죄양 이론’은 스탠포드 대학의 문화 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의 주장인데, 오늘날 전쟁에서 드러나는 종교의 수치스러운 효과에서 그 민낯을 본다. 종교적 아첨행위에 푸틴은 흐믓하다. 국가주의적 제국을 상징하는 그로서는 우크라이나의 문화적 가치와 시민사회가 서구와는 다른 대안적 근대성(찰스 테일러)의 길로 들어서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한낱 서방세계가 세워놓은 신-나치국가로 규정한데서부터 그의 이데올로기적인 판단 오류가있다. 재단과 왕관의 기묘한 결합은 여전히 러시아 정치에서 나타난다. 종교는 아편이라는 수치효과를 말한다.
트럼프의 제 2기 정부의 등장으로 젤렌스키는 위기를 맞이했다. 아니, 버려졌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트럼프는 푸틴과 신동맹을 구축하고 나토나 심지어 유엔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는 제스처를 쓴다. 오백만 달러 골드카드를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들에게 판매하면서 시민권 장사를 한다. 이제 트럼프의 거짓말과 권위주의는 미국의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전통과 전쟁을 벌어야한다. 중국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과물입으로 인해 이제 전선은 우쿠라이나에서 대만과 대한민국으로 확장될 조짐을 보인다.
국제정치는 개별 국가의 물질족 이익과 권력관계 그리고 관료지배가 가장 극렬하게 드러나는 생태학의 먹이사슬에 비교될 수 있다. 다양한 피드백 루프들이 작동되고, 욕망과 충족의 체계변화는 마치 에콜로지에서 맥동과 평형 (호모스타시스)을 유지하는 복잡성의 시스템으로 드러난다.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언제든지 위험요소들에 노출된다. 열린 소통과 피드백 루프들을 통한 에너지유입과 합리적인 태도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유럽연합이 우쿠라이나를 지지하고 미국과 굳이 같이 할 필요가 없다는 의사를 밝힌다. 일론 머스크 선동과 선거 개입을 통해 독일 선거에서 파시즘 정당인 AFD가 SPD를 제치고 제 2당의 자리로 의석수를 차지한 것을 트럼프는 환호한다. 입으로는 자유 민주주의를 옹호하지만, 정책 내용으론 파시즘을 옹호한다. 젤렌스키는 우쿠라니아가 나토에 가입할 수 있다면 기꺼이 대통령직에서 사임의사를 발표했다.
트럼프-푸틴의 신동맹은 세계 사회의 인식체계의 파열과 단절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형에서 드러나는 부정의와 폭력, 심지어 전쟁의 위기는 전혀 다른 지역에서 출현 튈 수 있다. 대한민국의 탄핵정국에 CPAC의 트럼프 추종자들이 개입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설령 되돌아온다고 해도, 그의 미래는 트럼프 2기를 위한 돼지 저금 통장이나 중국 견제용으로 사용될 수 밖에 없다. 그가 파면당하고 이재명 대표가 권력을 잡는 다고 해도 그가 보여준 기동전의 스타일은 러시아와 북한의 그물망에 걸려 친중국의 행보로 나가기 어렵다. 이재명이 표방한 보수정당 슬로건은 오히려 그에게 부메랑으로 작용될 수 밖에 없다. 세계 사회의 분화과정에서 다극화되는 동맹체제는 종래의 인식론적인 문화를 파열시킨다.
우쿠라이나 평화협상
우쿠라니아의 평화협상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트럼프를 부추기는 좌파 정치이론가 시키코 대학의 미어샤이며나 제프리 삭스 같은 경제학자들이다. 이들에게 문제는 미국이 우쿠라이나 위성국가를 만들고 푸틴이 실존적인 위협을 느껴서 전쟁을 시작했으니 책임을 미국에 떠 넘기고 젤렌스키는 트럼프가 강요하는 평화협정을 무조건적으로 수락 하라는 것이다. 심지어 제프리 삭스는 트럼프는 민주당 정책과는 달리 전쟁광이 아니라고 추겨세운다. 아니 존 볼톤과 같은 네오콘이 언제 민주당 정책에 관여했나?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 무색해진다.
적어도 좌파 학자들이라면 평화협상에서 젤렌스키가 참여해야되고 희생자로서 우쿠라이나의 입장을 통해
공공선의 차원에서 협상을 진행하도록 해야하지 않나? 미국의 좌파학자들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트럼프의 희토르 몰수 제안도 이들의 리얼리즘에 속하는가? 리얼리즘과 파시즘이 기묘하게 걀합되는 국제정치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물론 젤렌스키와 트럼프의 광물협약에서 민주당과 공황당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시민사회에서 트럼프의 올리가르히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이 결집이 된다. 트럼프가 곤혹을 피해가기 위해 우쿠라이나와의 협정에서 안전을 보장하고 무기지원을 중단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24시간 이내 전쟁중단이 아니라 동맹국들에게 비난과 의심의 타킷이 되면서 전쟁은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은 푸틴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갈 것이다.
이것은 정치 에콜로지의 복잡성을 특징 짓는다. 그토록 좌파 이론가들이 정의를 부르짖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정의의 원류인 공공선이 없다. 욕망과 충족의 체계변화는 사회나 글로벌 이행관계애서 잘 드러난다. 평화 담론과 대행자들의 역할은 지배 시스템에 묶여 이들이 추구하는 이념은 심하게 이데올로기적으로 오영된다. 에피스테메와 이데올로기 호출이 권력관계에서 재구성된다.
지속적인 전쟁으로 무수한 우쿠라이나 시민들과 어린아이들이 죽어나간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곡창지역이고 식량문제로 가난한 나라들이 집단 기아로 내몰릴 수가 있다. 러시아가 점령한 돈바스 지역같은 곳에는 우쿠라이나 연방으로서 자율권을 허락해주어야한다.
트럼프의 속내는 핵전이 무서워 푸틴에게 굴복한다. 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트럼프는 젤렌스키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2016년 트럼프 선거캠프에서 일한 폴 매너포트는 이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야누코비츠에게 돈거래를 한 적이있다. 야누코비츠는 시민운동으로 쫒겨나 러시아로 도피했지만 이후 2016년 트럼프 선거에서 러시아 개입설이 나돌았다.
트럼프의 개인적 원한
2019년 7월 트럼프는 젤렌스키와 가진 전화 통화에서 우쿠라이니아가 선거에 마치 러시아의 이름을 도용하여 개입했다는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조 바이든과 그의 아들을 조사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이른바 바이든-우쿠라이나 음모설로 알려진 것인데, 다음과 같다: 바이든은 부통령 시절 우쿠라이나의 가스회사 버리스마 (Burisma) 이사회에 관여한 자신의 아들 헌터 바이든을 보호하기위해 연방검사 빅토 쇼킨 해임 압력을 행사했다. 그리고 한 정보원은 FBI에게 바이든이 뇌물을 받고 해임압력을 행한 것으로 제보했지만, 2024년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젤렌스키는 트럼프의 조작 요구를 거절했다. 국제 정치관계에서 트럼프처럼 기동전을 구사하면서 정치 생태계의 맥동과 평형을 끊어놓는 사람들은 예기치않은 포식자의 공격이나 배신에 의해 허를 찔리게 된다. 이러한 정글법이 작동하는 추악한 정치세계에서 힘 없는 국가들이 전쟁으로 몰리든지 없어지든지 관심이 없다. 사회 진화론의 재발이 파시즘의 얼굴에서 나타난다. 과연 트럼프와 푸틴의 신동맹이 글로벌 정치의 생태계에서 어떤 포식자에게 위험에 봉착할 지는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의 미친 실험은 이제 트럼프가 젤렌스키를 토사구팽 시키면서 세계 시민사회의 공분을 받고있다. 그러나 미국의 시민사회는우쿠라이나를 버리지 않는다. 공정성에 기초한 평화협상을 유럽연합이 시도할 것을 기대해본다. 오늘날 전쟁이 결단코 힘을 가진 자들이 제 입맛대로 요리해먹는 장사품목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