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신학과 사회철학

하버마스와 발터 벤야민

파레시아 2023. 2. 4. 09:32

 

하버마스와 벤야민의 계보학

 

하버마스에 의하면, 벤야민은 역사철학에서 메시야 이념안에서 과거가 구원을 필요한다고 본다. 벤야민은 낭만주의나 역사주의에서 모든 과거가 통합되지만 인류의 해방과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그는 역사를 영향사의 지속성에서 파악하는 해석학에 긍정하지 않으며, 또한 역사의 진보를 인간의 교양과 문명의 과정으로 구성하지 않는다. 벤야민의 역사철학은 진보신념에 저항하는 반-진화론적인 입장에 서 있다 (“Walter Benjamin,” Habermas, Philosophische-politische Profile, 347).

 

진보사상은 벤야민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이며, 묵시적인 재난과 파국에 직면하며, 구원을 필요로한다. 벤야민은 동질적이며 공허한 시간의 흐름을 멈춰 세우고, 메시야가 개입하는 지금 시간(Jetztzeit)에 의해 역사를 충만하게 한다. 이것은 영원성과 시간 또는 역사와 지금시간을 교차 배열(constellation)을 하며, 근원을 통해 시간에대한 메시야적 정치를 드러낸다. 모든 세대마다 희미한 메시야적 능력이 더불어 존재한다 (ibid., 348).

 

벤야민의 입장은 괴테의 소설 <선택적 친화력>에 대한 그의 비평에서 내재적 비판에서 파악될 수가 있다. 예술작품의 진리내용은 문학작품의 근저에 놓여있고, 문학의 외적인 주제와 스토리에 엮어 있다. 작품의 내적 근원인 진리내용을 파악하기위해 외부의 자료층들은 파괴되어야한다.

 

내재적 비판은 비평가의 주관에 기초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안에 내재하지만 저자조차도 파악 하지 못하는 의미와 진리의 내용을 새롭게 각성시키는 변증법적 비판을 말한다. 문학 작품의 주제와 내용 (괴테의 소설 <선택적 친화력>의 결혼 스토리)의 숨겨진 근원 즉 진리내용을 테제-반테제-종합적 구성을 통해 배열하면서, 벤야민은 작품의 총체적 이념에 다가간다.

 

막스 베버가 <개신교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이념과 물질의 이해관계 사이에 드러나는 선택적 친화력을 역사의 과정에서 사회학적인 방법으로 검토한다면, 벤야민은 역사의 진보를 멈춰 세우고 작품의 진리내용을 통해 내재적 비판을 가동시킨다. 진보란 벤야민에 의하면 시간의 흐름의 연속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 시간에 대한 간섭과 비판적 개입에서 진정한 새로움의 출현이다.

 

이것은 진보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배열시키는 벤야민의 비판적 계보학에 속하며, 현재를 문제틀 하고 근대의 원역사에 주목한다. 벤야민에 의하면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서 항상 동일한 것에 새로 움이 나타나고, 또한 새로움에 대한 동일한 것이 드러난다.

 

벤야민은 보들레르의 근대성 이론이 <1845년 살롱>에서 처음으로 제기된 것으로 본다. 보들레르는 근대성을 현상적인 것, 도피하는 것, 우연한 것으로 정의하는 데, 이것은 파리에서 일시적이며, 이행의 상태를 반영한다. 보들레르가 근대의 새로움를 과거에 대립시킨 것과는 달리, 벤야민은 유행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것들의 일상화 내지 진부함에 주목한다. 동일한 것의 형식적 구조가 반복으로 나타난다.

 

대도시의 군중안에서 떠돌아다니는 사람(Flaneur)은 보들레르의 시의 중심에 속한다. 이러한 인물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도시민과는 달리, 벤야민에게 움직임의 정적인 순간을 은유적으로 포착한다 (Benjamin, Illuminations, 13). 벤야민의 내재적 비판은 보들레르의 작품 안에 담겨져있는 진리내용과 19세기 파리의 자본주의 사회의 관계에 주목한다. 작품 자체가 진리내용을 드러내는 그의 내재적 비판은 주객도식에 기초한 인식을 거절한다. 시는 시 자체를 통해서 내재적으로 시의 총체적 이념의 빛에서 반성 되며, 오늘의 삶을 위해 시의 새로운 진리의 내용과 의미가 재구성된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에서 근대성을 긴장과 충격경험으로 설정하고, 이것을 통해 인간주체의 상실을 말한다. 이것은 <악의 꽃>에서 보헤미안, 도시의 떠돌아 다니는 사람, 창녀, 도박꾼, 소매치기 등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충격적인 인물들과 대도시의 지나가는 군중과의 접촉이 보들레르에게 중요하다. 벤야민에게 이것은 충격의 경험이며 기계 앞에서 소외된 노동자의 경험에 상응한다 (“On Some Motifs in Baudelaire,” Illuminations, 165, 176).

 

예술작품과 독자사이에는 거리감이 존재하지만 작품은 초자연적인 힘인 아우라를 갖는다. 그러 나 보드레르의 시의 저변에는 아우라가 산업사회의 충격경험으로 인해 붕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진정성과 아우라를 검토하고, 기술 합리성의 부정적 차원과 긍정성을 파악한다.

 

벤야민의 언어철학에서 보들레르의 상응이 수용되는 데, 상응은 제의적인 차원을 갖는다. 보들레르의 시에서 상응은 상징을 의미하는 데, 아름다움은 유사성으로 표현된다. 예를들어 <상응> 이란 시에서 보들레르는 다음처럼 말한다: “자연은 신전이며, 살아있는 기둥들로부터 이따금 혼란스런 말들이 새어나온다.” 자연의 신전에서 살아있는 기둥들로부터 혼란스러운 말들이 이따금 나오는 것은 숲속의 나무들이 하늘과 땅을 잇는 상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벤야민의 언어의 미메시스적 능력은 보들레르의 상응이론을 수용하고, 유사한 것을 지각하고 재생산한다. 베야민은 표현과 미메시스의 융합을 말라르메의 문장에서 본다: “춤을 추는 사람은 여성이 아니라 은유이다. 이것은 현 존재의 기본적인 형식들에서 부터 나오는 측면을 표현한다: 칼, 컵, 꽃 또는 다른 것” (“Walter Benjamin,” 361).

 

벤야민에게 은유는 알레고리와는 달리 본래적인 내용을 언어적으로 전달한다. 칸트의 물자체와 현상계의 이분법은 벤야민의 언어를 통해 모든 정치적, 역사적, 종교적, 사회문화적, 심리적, 예술적 경험등이 인식론에 상응되고 매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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