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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변증법과 모택동

파레시아 2023. 6. 16. 13:26

바디우와 모택동의 모순론

 
바디우는 알뛰세와 사르트르의 제자로 자처하면서 반-헤겔철학에 자리하고, 모택동의 도교주의를 추겨세운다. 바디우에겐 사건과 인민 혁명주체만 존재하지, 혁명의 구조와 이데올로기적 범죄 그리고 무수한 희생자들에 대해 관심이 없다. 바디우는 모택동의 모순과 실천의 변증법과 마르크스나 레닌의 변증법을 구분짖지 않는다. 

모택동에게 실천은 진리의 기준이며 계급투쟁에 참여하는 자만이 사회를 이해한다. 모든 진정한 인식은 직접적 경험에서만 나오고, 실천의 결과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경험주의 실천론은 공리주의며,  바디우의 사건 존재론에 공명한다. 혁명의 의미와 구조를 사회 변증법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뒷전으로 밀린다. 

그러나 알뛰세는 사회구성에 대한 과학이론 (변증법적 유물론)을 실천철학(사적 유물론)이나 계급투쟁으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사실, 마르크스 자신은 사적유물론을 해명할 때 생산력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연과학의 발전 즉 기술합리성을 강조했고, 생산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알뛰세처럼 사적 유물론을 실천철학으로 간주해야할 이유는 없다. 마르크스에게 실천이란 사회구성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기초해 그 변혁적 성격과 전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택동의 경험주의 실천론은 끊임없는 자기실현의 과정안에 있으며 계급투쟁이 우선권을 가지며, 모택동의 모순론의 저변에 깔려있다. 

마르크스와 모택동

“헤겔 법철학 비판서설”에서 마르크스의 입장은 모택동과 전혀 다르다: 이론은 대중을 사로잡을 때 물질적인 힘으로 전환된다. 철학이 무산자 계급안에서 물질적 무기를 발견하듯이 무산자 계급은 철학 안에서 정신적 무기를 발견한다. 해방의 머리는 철학이며 그 심장은 무산자 계급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입장에서 혁명의 결과로 이론을 파악하는 인과율적인 계급투쟁은 없다. 마르크스는 승자의 지배와 야만의 역사에 동감한 적이 없다.
 
그러나 모택동은 그의 모순론의 첫머리에서 레닌의 변증법 이론에서 모순이 본질이며, 이것을 계급투쟁으로 주장한다 (Mao, On Contradiction, 1937). 

모택동은 모순의 통일을 변증법보다는 인관율적으로 파악한다. 예를들면 전쟁에서 한쪽의 군사력이나 리더십이 강하면 이기고, 약한 쪽은 패배하는 것 또한 내적원인에 달려있다. 그의 인관율에 기초한 모순론은 보편모순에서 특수모순으로 진행 되는 데, 혁명투쟁의 과정에서 모택동은 보편모순 (자본주의 또는 제국주의)이 바로 개별적인 특수모순 안에 거한다고 강조한다.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 투쟁인데, 이러한 도식에는 타자와의 매개나 다름에 대한 인정 또는 과정을 통한 높은 단계로의 이행을 하는 총제성의 변증법과는 다르다.
 
모택동은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상품분석을 상품교환에서 파악하지만, 더 이상 보편 모순 즉 사물화로 상품을 분석하는 과학적 방법은 도외시한다. 

모택동에 의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모순의 법칙을 사회역사적 과정에 도입하고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발견했다. 이들은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의 모순을 발견했고, 경제기반과 상부구조의 모순을 발견했다. 마르크스는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사적 소유의 모순을 발견했고, 이러한 모순이 자본주의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생산의 무질서한 성격과 계급관계에서 드러난다고 보았다.
 
모택동은 자신의 모순론을 기초로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을 인과율로 대처하고, 스탈린의 <레닌주의 기초>에서 자본주의 대립을 제국주의의 정점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스탈린은 이러한 모순이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시급한 과제로 만들며, 자본주의를 공격하기위한 유리한 조건을 창출 한다고 주장한다.
            
스탈린은 이제 모택동에게 보편적 모순(제국주의 모순)을 탁월하게 분석한 지도자이며, 러시아의 구체적인 모순상황에서 혁명분석을 한 모범적인 실례로 등장한다. 이러한 모택동의 입장은 바디우가 스탈린이 비변증법적이고, 모택동을 무한한 변증법적인 사상가로 평가하는 것을 무색하게한다.  
 
마르크스는 모택동과 같이 가는 가?
 
그러나 모택동과는 달리, 엥겔스는 생산양식의 대립에 영향을 미치는 상부구조를 언급했다. 이러한 상부구조로부터 오는 영향은 경제적인 삶에서 계급의 대립을 해소하기도 하고, 또는 약화 시키기도 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마르크스에게서 사회혁명을 가져오는 것은 생산력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변화인데 그것은 대립이나 모순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자연과학의 발전과 기술진보에 기초한다.
 
자연과학의 발전을 통한 기술합리성과 기술진보가 생산력을 확대시키고 과잉생산하게 하면서 해외 시장으로 나타나고, 결국 이것이 식민지와 제국주의로 이행한다. 기술합리성은 상부구조에 속하며 이것은 모순이나 대립이 아니라 학문의 발전과 합리화, 기술화, 전문화, 그리고 기능적인 분화로 인해 가능해진다. 이미 중심부의 노동자들은 해외시장을 통해 유입되는 잉여수익으로 인해 중산층으로 포섭된다.  
 
모택동과는 달리, 마르크스는 구체적인 상품(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추상으로 즉 인간의 노동 (본질)으로 되돌아가고, 이후 소외된 노동분석에서부터 다시 구체적인 상품으로 돌아오는 두터운 인식론적 과정을 취했다. 여기서 상품물신숭배가 자본주의 특징인 보편적인 사물화로 드러난다. 

마르크스의 구체성의 변증법은 추상에서 구체로 진행하면서 자본운동의 일반법칙을 해명한다. 구체안에 있는 다양한 요소들과 계기들의 일치를 재생산하기위해 추상적 방법이 과학적으로 요구된다.
 
총제성의 진리는 추상과 구체의 일치, 다시말해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은 매개와 접합을 통해 파악한다. 마르크스의 구체성의 변증법은 과학적인 방법이며, 그것은 부분에서 전체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현상에서 본질로, 본질에서 현상으로, 총체성에서 대립으로, 대립에서 총체성으로라는 순환적인 시스템적인 방식을 거친다.
(Mandel, Late Capitalism, 16).
 
이것은 보편모순과 개별모순을 음양이론처럼 인과율이나 계급투쟁으로 협소화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모택동에게 특수모순은 노동소외나 잉여가치가 아니라 “물질의 운동”에 기초되며, 이러한 물질운동이 내적원인이 된다. 모든 사회나 이데올로기 형식은 이러한 특수모순과 내적원인에 기초한다. 

보편모순과 특수모순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진리이며, 마르크스의 인식론은 여기서 실종된다. 모든 대립을 해소하는 것은 전쟁, 혁명, 그리고 사회주의 당내에서는 자아비판이며 사회에서는 농업의 집단화내지 기계화로 나타난다. 결과론에 기초한 승리주의가 이전의 역사의 전체과정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공포정치를 정당화한다. 목적과 결과가 여타의 수단을 정당화한다ㅡ승자자는 희생자들에게 도덕적으로 책임질 이유가 없다.

모택동은 바디우가 예견한 것과는 달리 스탈린의 충실한 추종자로 남아있다. 혁명의 목적과 승리의 결과가 여타의 수단을 정당화한다. 
모택동에게서 주요모순은 두 계급의 대립과 모순이며, 다른 이차적인 모순들을 결정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주요모순은 피억압 인민대중의 연대전선에 있고, 과도한 민중투쟁의 강조가 변증법적 사회이론의 총체성을 탈각시킨다.  
 
물론 모택동은 생산력과 실천 그리고 경제 하부구조를 주요원리로 고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역사 사회적 조건들에서 생산관계와 상부구조가 주요역할을 하는 것을 부정 하지 않는다. 레닌의 슬로건—“혁명이론이 없이는 혁명적 실천이 없다”—는 것도 알고있다. 역사 일반 발전에서 물질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을 결정하고,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결정 하는 것도알고 있다. 또한 모택동은 물질적인 것에 대한 정신적인 것의 작용과 사회적 의식이 사회적 존재에 그리고 상부구조가 하부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한다.
           
그러나 모택동의 문제는 이런 사회구성의 복합성과 매개과정을 “물질의 운동”을 기초로 모순과 투쟁으로 환원 시켜 버린다. 생산과정에서 나타나는 기술 합리성의 발전과 관료지배가 계급의 주요모순을 변화 시킨다는 것을 전혀 보지 못한다. 모택동은 시진평의 중국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레닌은 <철학노트>에서 헤겔의 논리학에서 언어와 담론의 중요성을 파악 하지만, 모택동에게는 이러한 차원을 찾아보기 어렵다.
 
레닌은 모택동을 교정한다
 
사유의 역사는 언어의 역사이지 계급투쟁의 역사가 아니다. 계급투쟁은 역사적인 상황에서 각각 다르게 발생하며 비판적 담론에서 표현된다. 로고스 즉 의미있는 언어는 존재의 이성이며, 논리는 언어로 표현된다. 

레닌에게 헤겔이 미친 중요한 변증법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계기들의 다양함을 포함하는 시스템적인 보편성인데,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를 분석하는 중요한 과학적이며 논리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물질의 운동”을 내적원인으로 갖는 모택동의 도교적 음양의 성격을 갖는 모순론과 주관주의적 계급투쟁과는 거리가 멀다 
(“Philosophical Notes,” Lenin CW 38: 89, 94, 99).
 
모택동에게는 음양의 대립과 하나가 되는 상호보충적인 도교적 세계관이 그의 모순론과 계급투쟁에 깔려있다. 어려움이 없다면 쉬운 것도 없다. 부르즈와지가 없다면 프로렐타리아트도 없다. 자본주의가 없으면 사회주의도 없다. 이런 인과율적인 모순론이 대립과 모순의 동일성을 계급투쟁에서 찾고, 지배자는 예속된 자로, 예속된 자는 지배자로 자리바꿈한다.
 
모택동이 부각시키는 레닌의 변증법적 표현 즉 “상대적인 것안에 있는 절대적인 것”은 헤겔로부터 오는 것인데, 이것은 보편성이 구체적인 것과의 관련성에서 운동하는 것을 말한다. 모택동처럼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논리가 아니라, 헤겔 -마르크스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안에 모순과 대립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부정과 매개를 통해 지양한다.

보다 고양된 단계는 인정을 기초로한 시스템으로 전개된다. 보편성은 대립하지만 매개를 통해 최종적으로 높은 단계의 종합으로 지양된다. 레닌에게서 모순은 모든 존재들의 자기운동의 원리이지, 다름을 모순으로 말하지 않는다. 모순을 해소하는 것은 투쟁이 전에, 다양한 다름에 대한 이해와 지적인 반성이며 이것을 통해 개념적인 성찰로 간다.
 
모순은 되어가는 과정에 있으며, 이것을 매개하는 것은 다양한 다름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개념적 성찰에서 파악된다. 매개는 모든 관계들이 되어가는 과정과 모순에 관여한다. 모택동처럼 외부의 투쟁이나 폭력은 매개의 배제로 드러나며, 
이것은 해결이 아니라 죽음과 무로 끝난다. 
 
레닌에 의하면, 인과율은 주관주의에 불과하며 다양한 계기들과 요소들의 상호연관성과 영향 그리고 총체성을 파악하지 못한다. 헤겔에게서 보편적인 것은 모든 다른 개별적인 계기들과의 교호적인 관계에 있으며, 대립안에 연합되어있다. 여기에 마르크스의 <자본>이 유물론적으로 괸련 되어있다  
(“Philosophical Notes,” 144-5).
 
그러나 모택동은 이러한 보편-구체 변증법을 인과율로 파악하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유무상생의 도교적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음양이론에서 매개는 계급투쟁이 하며, 강자가 승리한다. 이것은 보편-구체적인 시스템에서 전개되는 변증법과는 거리가 멀다.
 
모택동은 모순을 투쟁으로 해결하고, 모순과 투쟁을 보편적이고 절대적으로 주장한다. 이것은 다름에 대한 인정과 매개가 아니라 공산당안에서도 적대감정과 폭력과 독재로 드러난다. 매개가 사라지는 곳에서 역사 발전과정의 단계론과 권력투쟁 그리고 숙청과 폭력정치가부각된다.
 
모택동에게 자유경쟁의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이행할 때 대립의 계급, 즉 부르주와지와 프로렐타이트의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두 계급의 대립은 격화되고 독점과 비독점 자본간의 대립이 출현한다. 자본주의 특수단계는 제국주의를 말하는데, 레닌주의는 제국주의 시기의 마르크스주의이며 프로렐타이아트 혁명의 교리를 말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모택동은 레닌의 금융자본에 대한 이해와 다르다.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시기에도 경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계급 또한 분화되며 다양하게 계층화된다. 산업 자본주의에서 기초된 프로렐라티아트의 궁핍화는 중심부에서 사라지기 시작하고 중산층으로 편입되기 시작한다. 더욱이 해외시장에서부터 오는 잉여와 부의 축적으로 인해 마르크스의 이윤율 하락 법칙은 상쇄가 되고, 사회의 대립이 아니라 경제의 위기와 발전의 사이클로 진입 된다.
 
그러나 모택동에게 종합이란 결과론적으로 큰 물고기가 적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파시즘정치를 말한다. 사건의 연쇄과정에서 모든 적대계급의 과정과 대립을 통일시키는 것은 오로지 계급투쟁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그룹이다. 계급투쟁에 의한 대립의 통일은 자연과 사회의 근본법칙이되며, 도교적 세계관과 사회 진화론의 기묘한 융합을 드러낸다. 모순과 대립은 영원하며, 사회의 안정은 불가피하게 특권층과 새로운 계급을 창출한다. 

영구혁명은 사회의 관료제를 철폐하며,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로, 공산주의 사회는 또 다른 사회로 변형된다. 모택동의 주관주의적 능동성, 반지성주의, 모순의 보편성, 모순과 대립에 기초된 영구혁명과 권력 우위성은 마르크스와 레닌과는 전혀 다르다 (송영배, 중국사회사상사, 471).     
 
모순론과 문화혁명
 
모택동의 산업화는 인민공사와 대약진 운동 (1958)이 참담한 실패로 끝나면서, 주석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모택동은 유소기와 등소평의 경제개발의 자본주의 요소에 불만를 품고 있었다. 모택동의 신사회이론에서 인간과 사상개조는 정치와 이데올로기 상부구조에서부터 계급투쟁으로 시작한다.

1965년 모택동은 경국 ‘해서 파관’—해서가 관직에서 물러나다—에서 팽덕회가 해서를 자처하고 대약진 운동을 비판했다고 생각했다. 해서파관과 유소기의 수정주의를 비판하는 베이징 대학의 대자보를 사주하면서, 모택동은 1966년 홍위병들을 선동하고 문화혁명의 광기를 시작했다. 이것은 모택동의 이전 동료들에대한 적대감정과 권력투쟁의 실례를 잘 보여준다. 큰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이 진리다. 문화혁명의 사상적 배경은 그의 모순론에 기초한 권력투쟁과 승자독식주의를 말한다.  
 
에드거 스노는 서구에서 모택동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인정된다. 1970년 중국을 방문한 후 그는 중국의 사회에서 모든 인민의 행동지침은 모택동의 <붉은어록> 뿐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인민은 세계역사를 창조하는 동력이고 역사의 주체가 된다.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은 부모를 고발하고 생각이 다른 동료들을 죽이는 백치의 파시즘 정치로 선동된다 (한나 아렌트).

모택동은 인민독재가 당관료지배와 수정주의로 변질된 것을 직시하고, 문화혁명에서 인민의 계급투쟁과 조반유리(상부의 지시에 대해 대중이익에 부합되는 타당성과 창의성에 기초해 비판하는 것)를 통해 해결 하려고 했다. 그에게 인민이 역사의 주체란 말은 인민독재에 기초해 대립과 모순을 폭력적으로 해결하는 지배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조반유리는 당 관료제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홍위병의 광적인 폭력을 동반하고, 유소기는 비참하게 이들의 손에 희생당했다. 등소평은 실각했고 300만명의 당원이 숙청당했다. 1970년 에드거 스노가 국경일에 인민이 모택동 주의에 환호했을 때 어떻게 생각 하느냐고 묻자, 모택동은 번거럽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보편적 모순관계와 계급투쟁 지상주의는 기묘한 겸손과 불확실성에 엮어져있다. 문화혁명과 같은 비상상태를 위해 위대한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품성이 고결하며 인민의 존경을 받는 종교적으로 숭배되는 인물로 현상한다.       
 
바디우와 의회 민주주의
 
마오주의를 추종하는 바디우는 의회 민주주의를 부르즈와적인 것으로 단죄해버린다. 이러한 비난은 국가와 시민사회에 대한 고고학적 해명과 내재적 비판을 요구한다. 

마르크스는 1848년 혁명에 참가하면서 의회 민주주의를 부르즈와적으로 경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영국에서 차티스트 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혁명의 테러정치를 자코뱅 정치의 실패로 보았지만, 레닌은 로베스피에르를 바디우처럼 부르주아적으로 단죄한 것이 아니라 존경했다. 
 
의회 민주주의가 사라질 때 나타나는 것은 칼 슈미트가 <정치신학>에서 주장하는 것 처럼, 근대성의 가치가 자본주의로 등치되고, 전제지배와 지도자의 카리스마를 기초로 한 군주제의 출현이다. 이것이 위대한 지도자 히틀러의 정치적 결단을 부각시키고 시민사회의 독립성을 통제하고, 인종 공동체를 위한 사회주의 지배로 조직된다. 동지와 적으로 이분화되는 진영논리가 전체사회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지배하고 전쟁을 준비한다. 낯설은 인종들은 수용소로 보내는 살해정치가 출현한다.

물론 모택동은 부르즈와지 파시즘에서 출현하지 않고, 반제투쟁과 스탈린주의 그리고 자신의 중국전통의 지배체제에서 출현했다. 일당독재로 구축되는 개인숭배는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부르즈와적 생활방식이나 자본주의로 단죄하는 문화혁명으로 나타난다. 생사를 건 권력투쟁은 모택동의 관료제의 부패와 살해정치로 막을 내렸다.
 
구소련 연방에서 세계 진영논리를 근거로 자본주의 서방세계를 금융자본가가 국가를 통제 한다는 독점 자본주의로 규정한 것은 오류였다. 서방의 후기 자본주의는 독점자본과 국가가 융합되는 지배와 착취체제로 보기가 어렵다. 해외시장과 자본투자를 위해 국가가 공공선과 사회복지를 위해 경제영역에 관여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의 정당성을 유지해준다. 독점 자본가가 국가정책을 주도하고 민중의 계급투쟁을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한다는 생각은 순진하기 짝이 없다.
 
세계 체제는 금융자본을 기초로 한 국가지배와 해외 식민지에서 자유무역과 착취와 잉여 수익을 통해 장기 지속되었다. 이러한 장기지속에서 노동자 계급의 조건은 개선되고 중산층으로 편입되었다. 오히려 노조의 생디칼리즘을 통해 너동자 엘리트들은 신분상승을 얻게되고 의회 민주주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자본 축적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은 식민지배에서 잉여수익을 통해 금융자본을 강화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후기 자본주의 체제와의 경쟁에서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론은 통제 국가이론으로 드러나고 개인숭배와 당 관료제로 인해 막을 내렸다.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권력관계와 세계 체제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러시아 차르 지배의 회복을 꿈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스탈린 당시 참혹한 인종차별로 기아로 떼 죽음을 당한 우쿠라이나 시민들과 전쟁 하다가 지금 정글에 갇혀있다.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을 바디우는 푸틴을 지지하기 위해 부르즈와의 아바타로 말할 수가 있을 까?
   
그토록 자본주의와 부르즈와를 증오했던 모택동이 지금 중국의 붉은 자본주의를 보면 뭐라고 할까? 제
2의 문화혁명을 해야 한다고 할 까? 그의 전제권력을 이어가고 싶은 시진평에게 바디우는 찬사를 보내는 가? 그럴 용기도 없어 보인다. 

바디우는 변증법적 사회이론의 전통에 서 있지 않다. 집단주의와 사건주체를 부각 시키고 국가이론을 국가권력과 위대한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정치적 결정에서 그는 칼 슈미트의 파시즘 정치의 후예가 된다.   

사실, 군주지배와 관료주의가 인종차별과 살해정치로 현상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 (자유 방임주의와 사회진화론) 든지 공산주의 국가든지 공유한다. 역사는 성공한 혁명이 지배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한 혁명이나 희생자로 사라져버린 유효한 역사가 반복하면서 새로운 의미지평을 가지고 나타난다.   
 
마르크스와 사회 민주주의

마르크스는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기능을 자본의 도구적인 성격으로 파악 했지만, 여전히 자본지배에 영향을 미치는 상부구조의 역할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국가와 자본의 접합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을 분석하면서 일당독재를 말하지 않았다. 인민독재개념은 이행기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비상상태의 지배를 말하는 데, 여전히 민주주의적인 권리 (표현, 결사, 보편선거, 소환제도, 탈중심적 정치 시스템, 등)를 포함하지, 근대의 전제주의적 지배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이 단순하게 국가기구들을 장악할 수가 없었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도 없었다고 말한다. 탈중심화된 민주적인 지배 시스템인 파리 코뮌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노동자 계급은 다수의 지배권을 획득하지 못했다. 민주적 사회 공화제는 계급동맹이 지배했고, 사회제도나 정당은 노동자 계급을 통해 파괴할 수 있는 그런 금고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바디우와는 달리 마르크스는 여전히 민주적 사회주의 전통에 서 있다. 영국에서 마르크스가 의회 민주주와 보통선거를 위한 차티스트운동에 가담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헤겔의 법철학 비판, 1843>에서 마르크스는 프로이센 국가가 융커계급의 관료지배에 구속되고 시민사회 안에서 나타나는 만인대 만인의 투쟁을 재생산하는 것을 비판했다. 보편 이익과 공공선은 사익에 의해 사라진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오히려 마키아벨리와 몽테스퀴외 또는 루소의 영향권에 서 있다(Colletti, ‘Introduction', in
Karl Marx Early Writings, 45 -48).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에서 마르크스는 국가이론을 보편(공공선)과 구체성(개인의 권리)의 변증법의 틀에서 검토했다. 그는 헤겔과 사회계약론 그리고 근대의 정치이론의 전통에 서 있었지, 칼 슈미트적인 파시즘적인 전제지배나 일당독재로 기초로 한 군주제와는 거리가 멀다.
 
마르크스에게서 사회구성이론(알뛰세)과 더불어 시민사회와 계급동맹 (그람시/폴란 차스)은 프랑스의 계급투쟁과 국가권력의 복합성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면서 개혁과 혁명의 변증법으로 접합된다.

<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이르 18일, 1852> 에서 마르크스는 1851년 일어난 정치 쿠데타가 경제나 계급투쟁이 아니라, 오히려 의회 민주주의 안에서 파시즘으로 진행된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으로 분석했다. 이것은 시민사회를 주도하는 국가의 헤게모니론의 기초가 되는 데,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을 지지한 그룹은 부르즈와지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 안에서 광범위한 하위계층에 속한 소농민들이었다. 

이들은 의회정치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 해주는 정치세력이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관심을 대변해줄 권위를 무제한적인 정부권력에서 찾았고, 보나파르트의 쿠데타를 지지했다. 마르크스는 칼 슈미트의 비상상태를 위한 전제지배 정치나 바디우의 혁명을 위한 집단 사건 주체화를 오히려 위로부터의 헤게모니로 볼 것이다.
 
마르크스에게서 계급투쟁의 계보학은 인정투쟁에 있다. 의회정치에서 인정되지 않는 민중세력은 군주제를 지지하는 반동세력으로 나타난다. 마르크스는 막스 베버나 칼 슈미트에 앞서 파시즘 전제국가를 분석했다. 사실 국가와 의회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을 부르즈와의 도구적 기제로 보는 것은 스탈린주의에서 규정한 국가 독점자본의 이론과 크게 다르지가 않다. 국가는 부르즈와 계급의 심부름 하기에 바쁘다. 과연 그런가? 국가권력이 마음에 안드는 기업 하나 망그러뜨리는 것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반사가 아닌가? 
 
자연과학이 발전하고 기술진보가 나타나면서 역사적인 단계에서 경제발전이 나타나며 이것을 기초로 사회제도와 국가의 지배 시스템이 조응되면서 현상한다. 산업혁명은 기술진보가 없이는 불가능하며 여기에 조응하여 정치적 지배 시스템이나 민주주의가 발생한다. 

사적 유물론은 자연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상호 연관성을 말하지 속류적인 경제주의와는 상관이 없다. 이런 역사적인 관점에서 국가의 지배 형식은 다르게 나타나며, 마르크스나 엥겔스는 18 75년에 시도된 <고타강령에 대한 비판>에서 라쌀르의 “현재국가”가 경찰과 군사의 전제 지배와 봉건제의 혼합이며, 의회제도로 채색된 형식으로 비판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립브크네히트와 아우구스트 베벨에 의해 창립한 독일 사회 민주당 (1869)에 같이했다. 

엥겔스는 1891년 그가 쓴 마르크스의 <프랑스의 계급투쟁>에 대한 서문에서 사회주의를 향한 평화로운 방식과 의회 민주주의를 사회혁명과 접합시켰다. 국가는 비억압적인 시민사회의 기제와 관련되고 통합적 기능을 갖는다. 국가와 시민 사회의 관계는 보편- 구체의 변증법에 의해서 의회 민주주의와 시민국가론이 공론장의 다차적 신분/계급을 기초로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개념화될 수가 있다. 시민사회와 관련되는 국가 기제는 사회 문화 제도와 교육, 대학, 종교, 의료시설, 
노조 등은 관계들의 총체이며, 법에 의해 보호되며, 의회나 경찰, 군대, 관료제도처럼 국가권력이 직접적으로 행사되는 곳이 다르다. 

정치의 헤게모니 (지적, 도덕적 지도력)와 국민주권에 기초한 시민사회의 승인은 긴장, 대립 그리고 매개를 통해 공공선과 하위계급의 안전망을 위해 인정정치로 발전될 수가 있다 (Jessop, The Capitalist State, 17). 이것은 슈미트의 비상사태를 기초로한 전제주의나 바이우가 찬양한 모택동 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헤겔의 변증법은 이제 시작한다
 
바디우의 모택동 찬양과 헤겔에 대한 혐오와는 달리, 마르크스와 레닌은 헤겔로부터 변증법의 통찰을 배웠다. 특히 레닌은 헤겔의 이념을 개념과 세계의 실재의 일치로 파악하고, 모순을 넘어서서 보편성은 구체적인 것들과의 매개를 통해 개인적인 것과 엮어지는 (보편성-구체성-개인성의 삼단논법)에서 인간의 실천의 중요성을 보았다. 

개념원리는 이미 주관과 객관성의 일치를 포함하며, 헤겔의 이념은 개념과 객관적 실재의 일치를 말하며, 이것은 인간의 실천적인 활동을 통해 진리로 입증된다. 이념의 객관적 진리를 입증하는 것은 인간의 실천 (도덕적 선함)에 있다 
(“Philosophical Notes,” 191).
 
혁명적 이론이 없이 혁명의 실천도 없다는 말은, 달리 표현하면, 이념에 기초한 객관적 진리를 총체적인 측면에서 즉 객관적 세계안에서 나타나는 관계와 이행과 모순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개념적 파악이 없이 혁명이념은 불가능하며 실천할 수도 없다. 

이것은 레닌적인 의미에서 이론적 실천이다. 인식과 실천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실천은 이론의 영역에 도입되며, 인간의 의식은 세계를 반성하며, 새롭게 창조하고 변혁한다 (ibid., 212).
 
그러나 바디우의 집단사건의 폭력에 가장 강력한 저항을 표시하는 사람은 아마 발터 벤야민의 반 진보철학일 것이다.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생활세계로서 역사는 담론에 대한 계보학적 분석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진보로서의 역사를 대변하고 무수한 희생자들 위에 세워진 지배와 권력의 담론을 해체한다. 

별자리로서 역사는 다양한 계기들과 전거들로 나타나는 데, 의미있는 영향사 (생활세계), 유효한 역사 (권력관계의 계보학), 고고학적 담론해명 (에피스테메), 예속된 지식들의 의미론적 회복, 그리고 아남네시스적 실천이다.
 
생생한 현재는 과거로부터 유출 되거나 단절이 없이 흐르는 동질적인 현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다양한 계기들과 영역들(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에서 나타나는 단절과 다름과 억압에 대한 개념적인 성찰과 문제틀을 말한다. 

이러한 문제틀적인 관점은 헤겔을 거절하기 보다는 지성적인 칼리반으로서 그의 유산을 메시야 정치적으로 재해석한다. 헤겔은 여전히 전제주의와 폭력의 정치에 저항하는 칼리반이다. 

진정한 혁명은 밑으로부터 즉 <라모의 조카>의 통렬한 언어와 실천에서부터 권력과 부를 거머쥔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유효한 역사로부터 오는 혁명이며 일체의 위로부터의 선동담론에 파레시아를 한다. 헤겔은 바디우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 포스트콜로니얼 사회에서 새롭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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