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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종교비판과 부정의 변증법

파레시아 2023. 6. 18. 00:48

헤겔의 종교비판과 파시즘 원리

 

헤겔의 종합적 총체성 또는 개념원리는 모든 것을 동일화해버리는 파시즘적 원리와는 상관없다. 1795년 베른시절 헤겔은 기독교의 실증성을 비판하면서 실증종교는 인간의 이해와 이성을 초월하는 개념들과 지식정보를 통해 복종을 강요하는 초자연적 종교로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의 소명은 교리주의화가 되고, 풍부한 인간의 창조성이나 다양한  민족의 발전 이나 문화적 관습은 편견이나 오류처럼 취급된다. 이러한 실증종교는 로마의 멸망이후 야만인들을 교화하는 역할을 했다. 중세기의 교권지배와 근대초기 유럽의 군주제에서 농노와 농민 들은 착취를 당했다. 심지어 십자가문장을 앞세워 카톨릭 스페인은 신대륙의 인구전체를 살육 했다. 인도를 정복하면서 영국인들은 추수 감사절 노래를 불렀다. 종교의 본질은 실종된다. 인간은 알려지지 않은 지고의 존재앞에 복종을 강요 당하고, 교회에 의해 주어진 규칙과 전제 지배앞에서 인간의 행동은 기계처럼 작동되고, 개인의 자유와 지성은 희생 당한다. 교회는 사이비 종교제도로 전락했다.  

 

기독교의 실증성 비판을 통해 헤겔은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인간의 이해와 이성 그라고 자유로운 성찰을 회복하려고 한다. 이러한 헤겔의 계몽철학은 종교의 실증성에 결부된 미신, 사기협잡 그리고 양심의 억압에 저항한다. 헤겔은카톨릭이든지 루터란 정통주의든지당대 교리주의 신학이 어둠의 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며 계몽의 시대에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헤겔의 실증성 비판은 진리에 대한 순수한 사랑에 기초되며, 마르크스 나 또는 니체의 종교 비판에 비견된다. 그러나 헤겔은 인간의 종교적 감정과 믿음의 체계를 도매금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교리는 인간의 이성과 비판에서 재구성 되어야한다. 예수의 종교는 실증적인 교리 주의로 가두어 놓을 수가 없다.

 

헤겔의 예수이해는 유대인들의 미래의 하나님 나라와 신정지배를 그의 활동에서 현재 화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한다. 믿음이 하나님 나라를 현재화 한다. 당대 민중들에게 주체성 을 부여하고 이들을 부패한 율법의 메카니즘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게한다. 미신과 억압적 권위는 예수의 종교에 속하지 않는다 (Hegel, The Positivity of the Christian Religion, Part III. §1. Preface).     

 

헤겔의 계몽철학과 예수의 종교에 대한 이해는 <정신 현상학>에서 화해와 인정원리로 고양된다. 헤겔은 억압받는 예속된 자들에게서 노동, 비판적 담론, 그리고 해방이 출현하는 것에 기대한다. 그리고 개념원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자유, 타자에 대한 무해의 원리, 창조성, 사랑으로 논리화된다. 이것이 헤겔 철학의 시스템에서 내재적 비판의 원류로 작용한다. 이러한 내재적 비판은 프랑스 혁명에서 드러난 공포정치에 저항하고 여기서 사라져간 자들의 유효한 역사를 아남네스시적으로 반성하고 인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헤겔에게서 유효안 역사에 대한 아남네시스적인 인정은 절대지의 시스템에서 희미하게 반성되지 벤야민처럼 생생한 현재화되 지 않는다.

 

헤겔은 파시즘적 요소와는 상관이 없다. 파시즘 원리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칼 슈미트의 정치이론인데 이것은 친구와 적을 존재론적으로 구분하고 진영논리를 구축한다. 생존투쟁과 적자생존이 파시즘의 정치 이론에 기초가 되며 다름에 대한 인정이나 창조성 그리고 타자에 대한 무해의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파시즘적 정치는 스탈린의 계급투쟁 에서도 여과없이 드러난다. 인종차별과 살해의 정치가 파시즘의 두 가지 형태반유대주의와 러시아 인종주의에서 극명해진다.

이러한 이항의 대립과 진영논리는 일상의 삶에도 깊숙히 들어와 있는 데, 헤겔의 사회학 은 일상의 파시즘화에 대해 결연한 저항을 의미한다. 헤겔의 사회학이 시민사회에 줄 수 있는 통찰은 일상의 파시즘화에 대한 비판이다. 이것은 칼 슈미트의 악의 형이상학을 승인하는 메타 정치에 반기를 든다. <정치적인 개념>(1932)에서 슈미트는 파시즘의 메타정치를 비상사태에서 언제든지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제권력에 기초한다.

 

여기서 속죄양이론(르네 지라드)은 반유대주의와 집시처형로 출몰한다. 파시즘의 진영 논리는 집단폭력과 희생자 문화로 전개되고 결국 속죄양에 기초한 인종살해정치로 막을 내린다. 히틀러를 지지한 독일 크리스천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메틱 욕망에서 새 이스라엘이 되길 원했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자리를 폭력적으로 제거하면서, 파시즘 정치에 가담했다. 다름에 대한 매개와 인정이 사라지는 곳에서 종교는 이스라엘에 대한 라이벌 욕망을 충족시키기위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합법화하고, 속죄양이론을 통해 국가폭력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속죄양은 독일사회의 인종과 평화를 위해 제거되어야할 저주로 간주 되었다 (Girard. The Scapegoat). 

 

정치 지도자는 규범적으로 타당한 법적 시스템 외부에 존재하며, 전제권력은 개인적인 특권에 속한다. 슈미트의 정치신학에서 인간은 본성상 원죄로 인해 악하다. 그러므로 국가 리비 아단과 지도자의 전제지배를 요구한다. 파시즘 정치는 매개와 인정을 배제하고, 집단 폭력을 위해 속죄양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며, 인종차별주의로 진행된다.

 

부정의 변증법과 독재

 

레닌은 헤겔의 변증법에 주목을 했고, 그의 남긴 철학 노트들” (1914-15)에서 유명한 경구를 남기기도했다. “헤겔의 대논리학의 전체를 철저히 연구하고 이해하지 않고서는 특히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첫 장을 완전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레닌이 헤겔의 논리학 전체를 철저히 연구하지 않을 경우 마르크스의 자본의 첫 번째 장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마르크스 사후 반세기 동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Philosophical Notes, 180).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방법을 구체적인 상품의 현실을 분석하면서 추상으로 천착해서 소외된 노동와 잉여착취를 본다. 그리고 노동의 본질과 소외를 기초로 다시 상품이 지배하는 물신 숭배사회로 되돌아온다. 이러한 구체-추상의 순환 변증법은 헤겔이 구체와 보편의 변증법 과 별반 다르지가 않다.

 

마르크스의 자본의 논리가 헤겔의 <대논리학>에 의존하고 있음을 말하지만, 헤겔의 <대 논리학>에서는 역사적 경험분석이 <정신현상학>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르크스 의 자본분석이나 상품분석에는 풍부한 역사적 자료들이 분석되고 과학적 변증법 안으로 통합 된다. 

 

레닌에 의하면, <대 논리학>에서 노동과 자연의 매개수단으로서 도구의 문제가 나타 나는데 이것은 기술 합리성의 차원을 지적한다. 여기서 레닌은 사회구성에 대한 자연과학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생산력의 증대를 의미한다. 실천은 개념적 파악에서 이념의 진리안에 담겨 져있는 모든 계기들에 대한 인정과 공공선을 위해 세계안에서 실현하기 위해 나온다. 인간 의 이해를 기초로 변증법이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이념자체가 변증법적인 과정과 운동에 있으며, 영원한 창조와 활력이며 정신이다. 이념은 삶과 지식의 과정 (실천과 기술) 그리고 절대이념 (온전한 진리)의 단계로 구분된다.

 

인식은 실천적 이념 (도덕)과 연합되고 절대이념은 이론적 이성과 실천적 이성의 일치로 나타난다. 부정(모순)의 부정은 자기 매개적이며 개념적 파악을 통해 나타나며, 변증법적인 방법은 분석과 종합을 통해 시스템으로 확대된다 (ibid., 230), 이것은 매개에 의한 순환적인 시스템적인 구조이론를 말하는 데 여기서 타자는 실종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창조성과 비폭 력 안에 설정된다.

 

내가 보기에 헤겔의 순환론적인 시스템적 구조이론은 그의 외재화의 사회학 (객관정신 과 의식구성)에 기초가되며, 인정과 개념원리로 특징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이러한 시스템구조 이론을 선택적 친화력과 내재적 비판을 통해 의미와 담론 그리고 인정투쟁을 사회학적으로 접합시킨다. 이념과 물질적 이해 그리고 권력관계 그리고 문화적 구성과 종교등은 시스템 구조 안에서 사회계층과 지배 메카니즘을 분석 하면서 개념적 성찰과 더불어 변혁적 실천이 드러난다.  앎의 의지는 세계를 변혁하는 실천 의지를 말한다.    

 

그러나 레닌은 헤겔의 <대논리학>에서 무신론을 감지하지만, 헤겔의 논리학이 그리 스도의 화해와 인정(정신 현상학의 절대지)을 기초로 <대논리학>에서 하나님의 내적인 삶을 반성하는 차원을 간과한다. 더우기 진리안에 담겨져있는 다름에 대한 인정과 공공선 그리고 자유와 창조성과 무해의 원리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Philosophical Notes, 199, 233).

 

레닌은 총체성의 변증법을 유물론적으로 파악하는 데, 여기에 헤겔의 시스템적인 사고의 중요성이 함축된다. 매개의 중요성은 목적을 성취하는 도구와 관련되는 데, 쟁기는 노동에 중요한 수단이며 인간은 도구를 통해 자연과 매개가 되고 힘을 행사하며 자연을 예속 시킨다. 레닌은 헤겔의 철학안에 사적 유물론의  맹아가 들어있으며 그를 선구자로 본다 (ibid., 189).

헤겔에게서 실천의 문제 (도덕적 선함의 실현)는 비판적 담론과 더불어 <정신 현상학> 에서 역사 사회학적인 차원를 통햐 주인과 노예의 인정투쟁(노동)에서 그리고 귀족의식과 낮은 계층의 의식의 대립 (정치권력, 경제적 부, 문화적 비판—<라모의 조카>)에서 잘 해명되었다. 마르크스에게 자유의 왕국으로서 공산주의는 고도로 발전된 기술과 생산력에 기초한 산업사회 이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자본 3>에서 그는 심지어 지상에서 설립되기가 어렵다고 실토하기도한다. 마르크스는 의회 민주주의와 선거의 문제를 중요하게 고려 했다.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는 레닌의 당독재와는 달리한다.   

 

레닌의 사회주의에 대한 정의는  그의 유명한 슬로건, 소비에트 권력 플러스 전력화로 표현된다. 이것은 1921-1929년 사이에 행해진 신경제정책에서 자본주의의 길로 역행한다. 그리고 이어 집단화정책 (1929-1933) 되돌아간다. 여기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헤게모니 타입 은 스탈린의 신체정치와 독재에서 정점에 달한다. 강제이주, 노예화, 집단 수용소에서 공포와 죽음의 정치가 나타난다. 일당독재는 중앙윈원회 특권지배로 변질되고, 막강한 테러와 숙청을 손에 쥔 독재자에 대한 숭배로 막을 내린다.

 

헤겔은 이미 프랑스 혁명의 절대자유와 공포정치에서 이러한 인민독재가 무와 죽음으로 끝난다고 해명했다. 헤겔의 순환적인 시스템 구조이론은 역사에서 반복되며, 각각의 다른 단계 의 역사와 사회구성에 따라 분화, 대립, 불행의식, 매개, 인정투쟁등과 같은 계기들로 복합적 으로 전개된다. 

 

스테판 코트킨은 프린스톤 대학의 저명한 소련역사 전문가인데 최근 3권으로 된 스탈 린에 대한 그의 자서전적 연구로 학계와 미디아에서 엄청난 논쟁을 불러 일으킨다. <스탈린: 권력의 역설, 1878-1928> (1, 2014)—이 저작은 풀리처상의 최종명단에 올라있다. 코트 킨은 종래의 스탈린 격화나 토로츠키의 입장을 넘어서서 스탈린은 레닌의 리더십의 진정한 제자이며, 비타협적인 계급의 전사이며, 단호한 이데올로기적 확신을 가진 자로 기술한다.

 

혁명의 이전시기에도 스탈린은 야망에 넘치는 조직가였으며 정치투쟁가였으며, 이러한 경험이 스탈린을 레닌 사후 볼세비키 권력투쟁에서 승리를 거둔 원인으로 분석한다. 트로츠키 의 평가 와는 달리 코트킨에 의하면, 스탈린이 국가권력의 메카니즘을 창출했고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스탈린은 전략적인 사고가였고 냉소적일 정도로 현실정치가였고, 오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우직하게 충실했다. 그는 볼세비키 혁명의 파라독스적인 구현이며, 레닌 의 선도투쟁과 현실정치 그리고 관료주의적 민첩함을 보여준다.

 

코트킨에 의하면, 스탈린은 농업의 집단화을 기초로 소비에트 산업은 2 5개년 계획 (1933-7)을 통해 히틀러와 전쟁에서 승리를 한 기반이었고, 공산주의자들은 여기에 역사적 정당 성을 주장한다. 일반 역사가들도 낙후한 러시아에 빠른 속도로 근대화와 산업화를 가져온 스탈 린의 기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산업화의 진보의 과정에서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정치적 대숙청 (1937-8) 그리고 우쿠라이나의 대규모 기아참사는 스탈린에 대한 평가를 어둡게한다. 변증법의 인간주의 전통은 무색해지고 스탈린은 러시아 제국의 차르로 나타난다. 소비에트 인간은 생산 력의 노예가된다. 어떤 노동력을 가지고 있는 가에 따라서 공리주의적 효율성 즉 자본주의적 효율성이 사회와 문화를 평가한다. 효율적 노동력은 가장 소중한 자본이 된다. 인간은 노동력을 가장 극대화 할 수 있는 스타카노비즘에서 그 의미가 파악되고, 이제 인간은 러시아 제국을 위해 노동력의 일부로 전락한다.

 

사실 스탈린의 정치적인 삶에는 많은 권력의 파라독스들이 있다. 코트킨의 스탈린에 대한 접근은 푸코의 지식과 권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방법론에 상당한 정도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스탈린을 레닌의 진정한 추종자로 파악하는 것은 많은 논쟁을 일으킨다. 스탈 린의 변증 법적 역사적 유물론에는 헤겔의 자리가 없지만, 레닌은 헤겔의 변증법을 중요 하게 여겼다. 스탈린에 의해 공식화된 <레닌주의 기초>에는 인민독재와 당국가가 부각되지만, 역사 와 사회에 대한 변증법적 이해나 시스템적 구조이론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심지어 레닌은 미국 자본주의적 삶의 효율성을 추종한 자로 묘사된다. 헤겔의 변증법이 아니라 미국 자본주의와 테일러주의와 같은 경제적 효율성이 기묘하게 스탈린의 레닌주의에 자리잡는다

 

민중 (인민대중)은 일당독재와 관료제 그리고 스탈린의 공포정치에서 집단희생자로 사라지고, 민중은 여기서 집단적인 에고와 이기주의로 채색된다. 민중의 새로운 인격성 즉 개인 의 자유로운 결사와 연대는 시민사회와 더불어 살아가지만, 스탈린의 개인숭배에서 자리를 갖지 못한다. 당독재에 기초한 스탈린의 집단 자본주의는 헤겔-마르크스의 비판적 민주주의와 휴머니즘과는 거리가 멀다. 루카치가 말한 것 처럼, 스탈린은 마르크스 이론을 변질시키고, 레닌 의 원리를 왜곡시킴으로써 문화정책에서 매개의 중요성과 문학에서 비판적 사실주의를 선동 정책에 예속시켰다. 그는 당내 민주주의를 청산하고 사회 파시즘을 구현하면서, 레닌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트로츠키 정책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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