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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신학과 과학의 소명ㅡ 생태계 교란과 기후변화 세계가 직면한 문제틀기후변화는 세계가 직면한 매우 시급하고 위험한 문제에 속한다. 로마 클럽은 생태학과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세계의 문제틀 (world problematique)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지구를 뒤덮고 있는 파괴적인 세력의 심각한 현실을 지적한다. 지구의 온난화현상은 엄청난 에너지 양을 사용한 뒤에는 엔트로피(무질서)가 자연환경에 끊임없이 방출되는 데서 기인한다. 온난화 현상이 가져올 위기와 재앙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이제 신중하게 정책을 내놓고 단호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인류는 재앙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지미 카터 행정부시절 (1976-1980)에는 범 지구적 생명을 살리고 지속가능한 삶을 모색하는 에너지 정책이 도입되었다. 전 부통령 앨 고어는 오랜 시간 기후변화와 생태학적 위.. 2026. 1. 13.
파라다임 변화: 광전효과와 중력파 맥스웰의 한계 장은 입자가 자기 주변에 만든 특수한 성질을 가진 공간이다. 맥스웰의 이론은 화이트헤드가 근대과학의 환원주의와 기계론적인 세계관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맥스웰의 전자기파의 장은 자연의 현상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 맥스웰은 국소성의 원리에서 힘에 따라 사고하며, 빛의 입자 에너지를 고려하지 못했다. 맥스웰은 전자기파의 에너지는 진폭에 의존하지 파장(진동수)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았다. 한 물체가 띄거워지면서 열을 내는 것을 복사라고 부른다. 예를들어 흑체는 태양처럼 모든 진동수의 빛을 반사없이 100% 흡수하고 또한 빛을 방출하는 이상적인 물체로 볼 수 있다. 흑체복사의 원인은 흑체안의 전자들의 진동에 의한 것이지만, 당대 이러한 에너지를 연속적으로 생각했다. 에너지의 연속성.. 2026. 1. 13.
양자모델과 비 국소성 보어의 원자모델과 미세구조 닐스 보어의 수소 원자모델 (1913)은 하나의 전자로 부터 나오는 스펙트럼 라인을 예측한다. 만일 빛의 광자가 흡수되면 그 에너지는 전자로 이행되며 낮은 에너지 궤도에서 높은 에너지 궤도로 점프한다. 자주 빛은 가장 높은 에너지에서, 빨간색은 가장 낮은 에너지에서 나타난다. 예를들어 네온사인은 수소가스로 채워져있다. 수소는 가장 단순한 원자이며, 중심에 +양성자 (프로톤)와 주변의 궤도를 도는 음전자로 구성된다. 그러나 보어 모델은 양자도약에 기초하며 입장의 파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전자는 양성자의 주변 궤도 (오비탈)에 관련되지 않는다. 보어의 원자모델에서 전자와 양성자 사이에 장의 네트워크는 실종된다. 그러나 높은 수소가스를 프리즘을 통과시키는 실험에서 수소의 스펙트럼.. 2026. 1. 13.
바울: 묵시적 사유와 메시야 정치 바울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 지어지는 삼차 예루살렘 성전을 거절한다. 그것은 메시야의 마지막 재림에서 이스라엘의 회개와 영적 각성을 위해 주어지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영원한 왕이 될 것이다" (에스겔 37:24). 하나님은 이들과 평화의 언약을 세우고 성소 (예루살렘 성전)를 이들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임재할 것이다 (37: 26).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우주적인 재림에서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을 폐할 때까지 다스린다. 맨 마지막에 멸망당할 원수는 사망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순종한다 (고전 15: 24-27).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만국을 치고 철장으로 다스린다 (계 19: 15). 이러한 다스림은 재림 후 심판과 평화의 다스림일 수 있고 예루살렘에서 곡과 마곡과의.. 2026. 1. 13.
공공신학: 종교와 프로이드 비판 종교와 제의 성서의 유대교를 다룰 때 종교와 제의는 분리되지 않으며, 토라의 제의는 진화론적 발전을 통해 (벨하우젠) 후대의 성립으로 볼 필요가 없다. 토라의 윤리와 제의법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성격을 처음부터 사회학적으로 규정했다 (뒤르캠). 종교는 사회의 모든 본질적인 것들을 창출하며, 사회의 이념은 종교의 영혼이 된다. 사회의 분업과 합리화 과정과 윤리의 토대는 종교로부터 온다. 종교는 사회적 현상이며 기능적인 체계를 갖는다. 종교는 믿음과 실천의 통합적인 시스템이며, 거룩한 것들과 관련된다. 이러한 거룩한 것들은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구분되어 금지된 것으로 설정되며, 믿음 공동체 안에서 제의와 도덕적 실천이 구체화되며 사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거룩한 것 (토라와 언약궤), 신앙고백, 제의 수행.. 2026. 1. 12.
바울과 스토아철학 바울과 세네카의 위조 서신교한 사도행전 18장 12-18절에서 갈리오는 51-52년 아가야의 총독이었고, 당대 로마의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 2세의 형이었다 (4-65). 바울과 세네카 2세--흔히 세네카로 불린다--는 동시대인었고 서신교환이 있었다고 여겨져왔다 발립보서 4장 21-22절에서 바울은 가이사의 황실에 속하는 자들에게 인사를 전한다. 네로는 54-68년 로마의 황제였고, 세네카는 네로의 가정교사였고 이후 원로원 회원으로서 정치 조언자였다. 초대 교회 전통에서 가이사 네로의 황실에 속하는 사람은 기독교인 세네카로 여겨왔다. 그는 네로에 의해 독실혐의로 죽임을 당했다. 터툴리안과 제롬은 이러한 사실을 옹호했다. 어거스틴은 세네카를 기독교적인 전통에서 평가했다. 중세의 기독교 신학자들은 .. 2026. 1. 12.
역사 사회학과 전쟁분석 배버의 전쟁이론과 폭넓은 영향 막스 베버가 1905년 러시아 혁명을 연구했을 때, 우크라이나 연방주의자인 드라고마노프의 영향을 받았다. 후자에 의하면 러시아 제국은 자신의 지배 블록 안에서 폴란드나 리투아니아와 같은 개별국가들에게 상당한 정도로 문화적 자율성을 허락해야한다. 동시에 국제정치의 힘의 질서로 인해 소수의 연방국가들은 러시아 제국의 보호 아래서 생존할 수가 있다. 이런 점에서 극단적인 민족 분리주의자들의 입장은 거부된다. 열강들 간의 힘의 균형 만이 소수의 연약한 국가들의 자유와 주권을 보장해줄 수가 있다. 이런 국제 정치관점에서 베버는 1917년 독일의 군사적 보호아래 폴란드의 민족국가의 설립을 지지했다. 이런 입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세계와 공산주의로 갈리는 진영 이데올로기 즉 냉전.. 2026. 1. 12.
역사 사회학적 반성: 페리클레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동맹으로서 페르시아와 오랜 전쟁을 하고 승리했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아테네는 데미스토클레스의 탁월한 전략으로 페르시아를 패배시키면서 그리스의 강자로 부상했다. 페르시야의 재침을 방어하기위해 델로스 동맹(478)을 강화하고, 아테네는 점차 제국 팽창의 길로 들어섰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오랜세월에 걸친 페르시아와 그리스 전쟁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의 기술과정에서 때론 과장과 억측이 드러나기도 한다. 헤로도토스 이후 투기디데스는 아테나와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시스 전쟁사를 매우 사실에 기초해 기록했다. 그 역시 펠로폰네시스 전쟁에 지휘관으로 참여했다가 패배로 인해 추방당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경험과 객관적인 자료들을 기초로 전쟁사를 기록했다.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시스 지역의 동맹을 .. 2026. 1. 12.
아테네의 몰락: 음모정치와 이데올로기 폭력 406년 아르기누세스 전투에서 6명의 유능한 아테네 장군들이 승리에도 불구하고, 폭풍으로 인해 25척의 함선의 선원들의 생명을 구조하지 못한 죄목으로 사형에 처해졌다. 소크라테스는 민회에서 저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유능한 지휘관을 잃어버린 아테네는 결국 스파르타에게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제 2차 전쟁은 404년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것을 흔히 28년간 지속된 펠로폰네시스 전쟁으로 부르며 아테네의 공화정은 친 스파르타의 30인 참주지배의 독재가 시작되었다. 투키디데스는 알키비아데스를 부와 명예욕에 사로잡힌 야망의 인물로 비판했지만 그를 아테네의 파괴의 책임자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가이자 유명한 연설가인 데모스테네스 (384-322)는 알키비아데스의 공적을 치하했고 민주정과 애국주의를 가진 인물로.. 2026. 1. 12.
페르시아 전쟁과 민주정의 길 권력투쟁과 페르시아 전쟁델포이 신전은 6세기말엽 세워지고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종교적 동맹(암픽티오니)의 중심지였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의하면, 지진으로 인해 델포이의 신탁의 건물이 무너진 적이 있었다. 당시 추방당한 아테네의 정치귀족은 건물을 재건하는 계약을 맺고, 계약의 조건보다 더 아름답게 신탁의 건물을 세워주었다. 물론 신탁의 사제로부터 정치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것은 아테네의 참주 히피아스를 내쫒는 것이었다. 솔론이후 아테네는 페이시스트라토스에 의해 17년간 참주정치로 다스려지고 그의 아들들을 통해 18년간 독재가 지속되었다. 가족전체의 통치기관은 39년이 달한다. 아테네의 참주 히피아스는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아들이었다. 신탁의 사제는 스파르타의 왕 클레오메네스에게 히피아스.. 2026.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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