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신학과 시민사회: 사회과학의 문제틀
정승훈 교수
시작하면서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울리히 두크로 (Ulrich Dchrow) 교수가 최근 자신이 쓴 논평을 내게 보내왔다. 하나는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사회 철학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방 신학자 프란츠 힌켈라메르트(Franz Hinkelammert)에 관한 것이다. 힌켈라마르트가 마르크스 이론에 보다 큰 관심을 갖는다면, 하버마스는 후설(Edmund Husserl)의 생활 세계이론을 기초로 시민사회와 공론장 그리고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를 다룬다. 그렇다고 해서 하버마스가 마르크스의 통찰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그 한계를 지적하고 베버의 사회학을 접맥시킨다. 더 나아가 하버마스는 소통 합리성이 베버의 합리성 연구 (목적, 가치, 감정, 전통)에서 약화된 것을 보고, 그의 저명한 소통 이론을 시민사회와 생활세계와의 연관성에서 공론장과 신중한 민주주의를 발전 시킨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하버마스와 힌켈라메르트에게서 나타나는 공동관심이 종교와 사회에 관한 반성에 있다. 차축 시대(axial age)의 종교에 대한 연구는 버클리 주립 대학의 사회학 교수 로버트 벨라(Rober Bellah), 독일의 사회학자 한스 요아스(Hans Joas), 그리고 이스라엘의 사회학자인 슈무엘 아이젠 슈타트(Shumuel Eisenstadt)를 통해 전개된다.
여기서 핵심은 종교의 이념이 윤리적 태도와 기존사회 비판 더 나아가 대안 근대성에 어떤 기여를 하는 가에 있다. 베버는 종교 이념과 물질적 이해관계 사이에 드러나는 선택적 친화력(elective affinity)에 주목했다. 종교이념을 담지하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이나 믿음의 공동체들은 자신의 종교이념을 전반적인 물질적 삶의 상황에 적합하게 ‘선택’하고, 특히 경제적인 영역에서 친화력을 발전 시켜 나간다.
여기서 신분계층이 형성되고 사회의 합리적 조직과 성격이 구성된다. 종교적 이념과 경제적 태도 사이에서 나타나는 상관성은 관념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해서 경제적으로 환원되지도 않는다. 베버는 종교적 이념의 사회적 기능과 추동력을 이념형을 통해 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버는 차축 종교를 통해 다차적 근대성의 경로를 고려하지 못했다. 그의 주요관심은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사이에 나타나는 선택적 친화력에 대한 분석에주어지며 칼빈주의 예정론을 통해 세계종교를 비교 연구한다.
마르크스 역시 그의 본원전 축적론(<자본 1>)에서 ‘자본 축적의 기독교적 성격’을 파악하고 네덜란드 칼뱅주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절제이론에 주목했다. 기독교의 원죄론을 마르크스는 정치 경제학 비판의 측면에서 발전시켰다.
두 사상가의 차이가 있다면 베버가 청교도의 세계내적 금욕주의와 노동윤리를 유럽과 미국의 사회 안에서 자본주의 이념형으로 파악했다면, 마르크스는 자본축적을 기독교의 식민주의 시스템에서 보았고 세계시장과의 관계에서 비합리성과 착취현실을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베버가 식민주의나 제국주의에서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비합리성을 간과한 적도 없다.
베버와 마르크스는 기독교에 중대한 도전과 책임을 제기한다.
공공신학은 서구의 근대에서 드러나는 식민주의를 비켜갈 수가 없으며, 포스트콜로니얼 문제를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고려해야한다. 시민시회와 민주주의 그리고 합리적인 소통이론은 종교적인 담론을 피해갈 수 없다. 다시 말해 공공신학은 종교가 어떻게 사회를 구성하며, 다양한 공론장에서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의 영역에서 사화가 어떻게 계층화가 되는 지에 주목한다. 종교적인 이념은 단지 경제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막스 베버. 칼 마르크스)) 폭 넓은 물질적인 스펙트럼 안에서 정치적인 지배방식이나 관료제 그리고 문화적 침전도 더 나아가 섹슈알리티와 젠더 그리고 자연과학을 기초로한 기술 합리성에 연관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는 공공신학을 시민사회와 근대성의 문제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 시대 안에서 기술 합리성과 포스트콜로니얼 문제틀에 주목하며, 사회과학과 종교사회학을 기본적인 대화의 파트너로 삼고 전개한다.
에른스트 트뢸치와 북미신학
베버의 사회학적인 방법은 신학의 영역에서 에른스트 트뢸취에 의해 역사 비판적인 방법으로 정교하게 다루어졌다. 트뢸취는 『기독교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Die Soziallehren der christlichen Kirchen und Gruppen (1912)에서 베버의 이념형 즉 교회-분파-신비주의 유형을 적용하고, 역사 사회학적인 분석을 했다. 이러한 종교적 이념과 사회적 가르침 사이에 나타나는 선택적 친화력이 역사발전의 과정에서 각각의 다른 교파들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제시한다.
트뢸취는 개성이 풍부한 신학자였고, 그가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시절 같은 집에 살았던 베버와 함께 한 공동 작업은 유명하다. 애석하게도 베를린 대학의 철학과로 교수직을 옮기면서 그의 신학 분야에 대한 기여는 유럽 신학계에선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에 대한 핵 폭탄급 공격인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뢸취가 되살아난 것은 미국에서 니부어 형제(Reinhold and Richard Niebuhr) 그리고 특히 폴 틸리히를 통해서이다. 틸리히는 트뢸취의 종교사 비판방법을 그의 거룩의 현상학에 접목시켰고, 신학의 공공성을 특히 문화신학과 종교간의 대화에서 기념비적인 기여를 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틸리히는 비판이론과의 매개가 된다. 그의 초기저작인 “사회 주의 결단”은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담고 있으며, 그는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오랜 친분관계에 있었다.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틸리히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과 트뢸취의 역사비평을 융합하고 새로운 공공신학의 통찰을 제공해줄 수가 있었다. 그러나 틸리히의 신학방법은 지나치게 실존적이다. 역사 사회적 스텍트럼과 생활세계의 지평은 큰 역할을하지 못한다.
반면 리차드 니버는 트뢸취의 신 중심 신학과 역사주의를 에밀 뒤르캠의 사회학의 영향을 통해 수용하면서 발전시켰다. 그런가하면 라인홀드 니버는 트뢸취에게서 서구 근대성의 한계와 윤리신학, 민주주의의 중요성, 인격주의에 주목했다.
트뢸취에게서 공공신학은 역사와 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리고 상호 연관성에서 파악 하려고 한다. 그에게 사회윤리는 정점에 속한다. 시민사회는 다양한 공론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계층화되고 전문화되어 있다. 공공신학의 과제는 신학의 주제와 성서의 가치 그리고 윤리적 태도를 시민들의 공적인 삶 안에서 소통하고 새롭게 해석해 나가는데 있다.
따라서 공공 신학은 해석적이며, 구성적이며, 자기 비판적이다. 특히 트뢸취는 사회가 국가와 경제의 영역으로 통합되지 않는데 착안을 했고 사회 문화적 영역에서 기능하는 종교의 역할을 중요하게 검토했다. 그에게서 사회윤리가 신학의 정점에 속하지만, 트뢸취의 한계는 교회와 가난한 자들의 유형론을 파악하지 못한데 있다. 그리고 그의 역사 상대주의는 개별 종교의 독특한 윤리적 기여와 보편적 지평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
세속적 이성의 시민들은 더 이상 종교를 과거의 유물이나 사적인 일로 폄하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종교의 전통에는 계몽주의와 근대성이 놓쳐버린 풍부한 도덕적 생활세계가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유대 기독교적 전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필자는 트뢸취의 역사비평적 태도를 공공신학의 인식론으로 수용한다. 트뢸취는 역사를 이해하는데 사회학적 태도를 비판적으로 발전시켰는데, 역사나 전통은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삶의 자리 즉 시회적 조건들과 상호연관성을 비판적으로 파악한다. 유비론적 방법은 역사란 인간의 삶과 전통의 축적으로 파악되며, 보편 인간성이란 측면에서 역사를 이해하는 사람의 인식론과 상상력에 공명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종교는 아프리오리하며 이것은 종교적 합리성을 지적한다. 종교는 하나님의 신비 또는 전적타자를 향한 영적 갈망이며 이것은 심리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인간의 보편사에서 종교는 정치나 경제로 환원되지 않고 선험적인 차원을 유지하며 하나님의 신비를 향해 나간다.
이런 측면에서 공공신학은 종교의 사회적 구성에 주목하며 불교의 팔정도, 힌두교의 아힘사, 유교의 정명사상, 이슬람의 민주적인 합의체계와 사회 경제적 기여 등에 관심한다. 이러한 종교적 이념과 윤리적 실천이 어떻게 저 마다의 종교의 영향아래 있는 사회와 문화 그리고 정치 등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검토하는 것은 공공신학의 중요한 연구에 속한다. 따라서 공공신학은 종교간의 대화 이전에 비교종교 연구를 통해 사회학적인 검토를 하며, 엘리트 전유물인 종교간의 대화보다는 시민사회 안에서 공공선과 인정정치 그리고 생태학적인 지속 가능성을 위한 종교간의 합력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측면에서 종교간의 대화는 교리적인 대화나 형이상학적 물음을 벗어나 종교의 사회적 구성의 차원에서 구체화된다.
공공신학과 학제적 소통
공공신학이 다른 신학의 분과들과 극명하게 갈라지는 지점은 공론장에서 세속적 이성의 사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관여 한다는 점이다. 공공신학은 신학의 입장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교리주의적 태도와는 입장을 달리 한다. 오히려 비판이론적 태도나 현상학적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공공신학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반성보다는 삶의 주어짐에 대한 해석 학적 반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주어진 삶은 그 원류인 생활세계와 끊임없이 연관이 되어있다. 따라서 주어진 삶에 대한 자연적 태도, 즉 기존의 것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태도로부터 물러선다. 기존질서에 대한 자연적인 태도에 판단중지 (에포케)는 생활세계로 펼쳐지는 의미의 세계로 진입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성은 여기서부터 중요해진다. 성서주석은 이런 점에서 삶의 자리와 분리되지 않으며 사회학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인식론의 측면은 존재론보다는 사회학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고, 추상과 구체의 해석의 서클 (“구체에서 추상으로” 그리고 “추상에서 구체”로 라는 발생론적인 방법)을 포함할 수 있다. 현상학의 문제틀적 사고(후설)는 역사 변증법의 과학적 사고(헤겔-마르크스)와 유리될 필요가 없다.
하이데거가 세계-내-존재(being-in-the-world)라고 했나? 그는 인간을 사회에 던져진 현존재(Dasein)로 불렀지만, 후설의 현상학은 현존재에 대해 판단중지를 내린다. 의미세계를 통해 현존의 자연적인 태도에 날카로운 비판이 행해진다. 적어도 후설에게 인간의 의식이란 세계와 사회에 대해 자기반성을 시도하면서 책임적인 비판과 해방을 통해 생생한 현재로 들어온다.
기존의 것을 문제틀화 하는 후설의 철학적 방식에 비해 하이데거의 방식은 격이 다르다. 큰 존재인 민족 사회주의의 부름에 순응하는 것이 하이데거의 현존재가 아니었던가. 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나치즘에서 떼어내려 했고 하이데거를 여우의 철학으로 불렀다.
그러나 후설은 사자의 철학이며 의심의 태도와 의미지평을 향해 내재적 비판과 해방을 향해 나간다. 존재와 비판적 인식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진리는 미지의 여신인 알레테이아로부터 스스로 영지처럼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삶의 자리에서 비판적인 태도와 분석 그리고 종합적 태도를 거치면서 드러나는 이해 지평과 생활세계에 근거한다. 진리는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조건과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후설은 전통과 문화로부터 침전된 편견과 불명료함 그리고 위계질서적인 억압에 대한 책임적인 태도를 취한다. 생활세계를 통해 후설은 모든 사회와 역사 그리고 전통과 문화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이 지점에서 후설은 트뢸취와 만날 수 있고 역사 비판방법을 인식론적으로 심화시킬 수 있다. 생활세계와의 부단한 만남을 통해 트뢸취의 역사 사회학적 방법 즉 비판, 상관 관계, 유비론적 이해, 그리고 종교적 아프리오리(a priori)는 역사연구를 통해 생생한 현재의 지평과 의미로 열려진다.
이런 점에서 보면 현재사를 새로 쓰기위해 고전시대와 근대시대를 연구하는 푸코의 에피스테메 연구와 일맥 상통 하기도 한다. 그러나 담론과 권력관계의 그물망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은 푸코 의 공헌에 속한다. 후설은 트뢸취의 역사 상대주의의 한계를 생활세계의 이론의 틀에서 교정해줄 수가 있다. 그러나 푸코의 계보학과 담론분석은 권력관계와 물질적 스펙트럼에 주목함으로써 역사비평과 생활세계론과 대립되기보다는 접합될 수 있다.
기독교 종말론의 프로렙시스(prolepsis)는 트뢸취의 유명한 글귀에서 시작한다. “피안의 능력은 바로 차안의 능력이다.” 초월적 종말은 이미 현재 안에 들어와 있다. 물론 하나님의 미래는 신비로 남아 있지만, 새하늘과 새땅은 이미 현재의 역사 안으로 들어와 있다. 이러한 트뢸취의 프로렙시스는 바르트의 종말론에서 지대한 반향을 갖기도 한다. 바르트 역시 트뢸취 의 경구를 즐겨 인용하기도 했다.
왜 공공신학이 미국 뿐만이 아니라 독일에서나 심지어 브라질에서까지 논의가 되기 시작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인식론적 전환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공공신학의 주자는 단연 라인홀드 니부어를 선두로 꼽는다. 그의 주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한 사회』는 해방 신학자인 루벤 알베스가 극찬을 했고, 이것은 흑인 신학자 제임즈 콘도 마찬 가지다.
필자 역시 니부어의 저서를 읽으면서 민주주의와 근대적 정치 사상과 더불어 마르크스와 레닌주의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도덕적 평가에 감명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한계를 <공공신학과 시민사회>에서 비판적으로 교정하기도 했다.
니부어는 한때 사회복음에 몰두했지만 종교 사회주의의 한계를 파악했고, 이 경험이 그의 공공신학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어거스틴의 현실주의에서 새로운 공공신학과 윤리를 발견했고, 세상에서 누룩처럼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변증법적 이해를 찾았다. 이것은 존 밀뱅크의 공동체주의적 급진적 정통주의 즉 어거스틴 해석과 사회과학의 연관성에서 반향을 가질 수 있다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이런 점에서 미국에서 공공신학은 정치, 도덕, 철학과의 학제적 소통을 중요시 여긴다. 이런 입장을 발전시키는 사람은 맥스 스텍하우스(Max Stackhouse)이다. 그의 초기저작인 공공 신학은 경제정의를 지향하며, 공공신학을 정치 경제학에 연관시키는 방법적인 통찰을 담아 낸다.
그러나 니부어에게서 인종문제나 이데올로기적 한계는 여전히 남겨져있으며, 스택하우스의 후기 저작에서 그의 공공신학은 미국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이론을 정당화하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첨병 역할로 나타난다.
이외에도, 하버마스의 시민사회, 공론장의 구조적 변동 그리고 소통이론을 근거로 한 담론 이론은 데이비드 트레이시(David Tracy)에게서 해석학적으로 발전된다. 트레이시는 교회와 사회 그리고 대학사회에서 공론장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종교적 상징과 공론의 담론을 해석학적으로 매개하면서 하머바스의 비판이론을 그의 공공신학에서 중요하게 취급한다. 트레이시의 비판이론과 해석학의 잡목은 폴 리쾨르의 영향으로 부터 온다.
트레이시의 제자인 버클리 연합 신학대학원의 테드 피터즈 교수는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프로렙시스 종말론을 통해 공공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도 한다. 피터즈에게 보다 넒은 사회와 문화의 틀에서 담론형성은 민주주의 소통과 공공선 거버넌스를 위한 정의에 깊숙히 관련된다. 피터즈를 선두로 버클리에서 공공신학은 자연 과학과의 만남으로 발전된다. 피터즈의 공공신학은 특히 공공 목회적인 차원과 신학교육에서 자연과학과 기술 파라다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의미 문제와 공적인 삶
하버마스가 미국의 공공신학에서 갖는 위치는 실로 대단하다. 하버마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이 재평가되고 심지어 포스트콜로니얼(탈식민주의) 이론으로 경도된 학자들 역시 발터 벤야민과 아도르노를 푸코와 그람시와 연관지어 발전시키기도 한다.
하버마스는 미국의 신학자들이 자신의 소통이론과 공론장을 통해 공공신학을 발전시키는 작업을 했을 때, 서문에서 독일의 공공신학자는 단연 헬무트 골비처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공공신학은 헬무트 골비처의 저서 『구부러진 목재—올바른 진행』 (Krummes Holz-Aufrechter Gang)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려 13판이나 인쇄된 유명한 저술이기도 하다. 부제로는 ‘삶의 의미를 추구하면서’라고 붙여져 있다. 골비처는 바르트의 제자로 알려져 있지만 오히려 바르트와는 달리 철학과 사회이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지대하다.
폴 틸리히의 철학적 신학의 방법은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골비처의 신학에 매력이 있다. ‘구부러진 목재’는 칸트가 인간을 정의하면서 쓴 표현이며 ‘올바른 진행’이라는 표현은 에른스트 블로흐로 부터 오는데 소외와 불의를 벗어난 해방된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말한다.
골비처의 공공신학은 대단히 사회철학적 신학의 성격을 가지며, 바르트의 말씀의 신학과 틸리히의 상관방법을 매개하며, 이들을 넘어서서 비판이론과 마르크스 이론을 신학의 관점에서 매우 창조적으로 재해석한다. 골비처의 사회비판 신학은 독일 학생운동의 지도자였던 루디 두츠케에게 이어진다.
물론 『19세기 신학』에서 칸트, 루소, 헤겔, 포이엘바하 등의 일급 철학자들에 대한 바르트의 신학적 평가를 보면, 바르트 역시 인문학적 사유에 정통해 있음을 알게 한다. 그러나 골비처는 바르트 보다 더 사회학적이고, 비판이론적이며, 공론장의 이슈에 깊숙이 관련해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골비처는 말씀의 신학을 틀로 잡기보다는 사회과학적 방법을 기초로 성서주석과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의 현재성과 사회변혁을 강조한다.
정치신학과 공공신학
공공신학은 시민사회와 공론장에서 계층화된 삶의 현실, 그리고 숙의 민주주의와 하위계급과의 연대와 해방을 우선순위로 놓는다. 최근 몰트만이 정치신학에서 공공신학으로 전향하는 것도 그래서 의미가 있다. 몰트만과 메츠의 정치신학은 독일 파시즘의 전제국가에 대한 비판에서 이들의 비판은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에 주어진다.
슈미트는 토마스 홉즈의 <리바이어던>을 히틀러 전제주의 국가론으로 발전시킨 법학 자이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은 토마스 홉즈에 대한 슈미트의 해석에 지대한 문제가 있음을 본다. 또한 몰트만이나 메츠의 새로운 정치 신학 역시 근대의 정치이론과 역사에 대한 깊은 천착을 하지 못한다. 서구 근대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 식민주의 역사,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에 대한 종교적 접근은 정치신학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 남미의 해방신학과 유럽의 정치신학은 라이벌 관계에서 서 있고, 종속이론과 사회 민주주의 간의 비판적인 대결이 중심에 서 있다.
독일에서 공공신학은 정치신학의 연장선에 놓여 있으며 디트리히 본회퍼와 칼 바르트가 중심 으로 들어온다. 볼프강 후버가 루터의 두 왕국론과 바르트의 그리스도 중심 지배론을 매개하면서 공공신학의 단초를 제공하고 바르트의 “시민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 (1946)는 교회의 언어와 시민사회의 담론을 매개하고 번역하는 공공신학의 이중 언어성을 위한 주요 텍스트로 수용된다.
본회퍼의 <윤리>에서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공공신학의 토대가 될 수 있다. 본회퍼는 구스타보 구티에레즈가 비판한 것처럼 근대성에 대한 이해에서 가난한 자들과 노동운동을 간과 하지 않았다. 본회퍼가 처한 상황은 독일의 파시즘이며, 파시즘과 근대성의 연계에 대한 비판이 그의 관심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본회퍼는 해방신학처럼 서구의 근대성을 하위 근대성의 주범 으로 도매금처리 하지 않는다.
세속화된 이성과 성인이 된 세계에서 기독교의 복음의 의미는 한층 더 신중하고 다양한 방식에서 (이스라엘, 가난한 자, 세속화된 시민사회) 고려된다. 본회퍼의 화해의 복음과 윤리는 타자에 대한 인정의 정치를 지향한다. 본회퍼는 공공신학의 플랫폼이 되며 서구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밀려나간 자들과 희생자들의 유효한 역사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종교적 사회구성과 유효한 역사
필자가 보기에 정치신학이나 해방신학과는 달리 오늘날 북미에서 전개되는 공공신학은 사회 문화적 실재에 대한 종교적 구성에 관심하며, 종교적 이념이 어떤 신분/계급에 의해 주도되며, 폭 넓은 물질적 이해관계와 권력관계, 관료지배와 기술 합리성 등이 공론장에서 어떻게 분화되고 전문 화되면서 계층화로 드러나는 지를 두텁게 기술하고 분석한다.
이러한 사회학적 해석학은 프린스턴 대학의 저명한 문화 인류학자 클리포드 거츠의 두꺼운 서술에 가깝고, 후설이 생활세계론과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와 삶의 형식 그리고 담론과 권력의 관계에 기초한 푸코의 고고학적 계보학을 수용한다.
그러나 푸코의 지나친 권력 환원주의는 대안적인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모색과 연대 민주주의 실천에서 의미 지평의 확대를 통해 교정이 되며 시민사회와 생활세계론은 내재적 비판의 근원 으로서 여전히 중요성을 갖는다.
시민사회나 민주주의는 헤겔-마르크스의 전통처럼 일방적으로 부르즈와 사회로 해석될 수 없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민주주의는 시민사회와 연관되어있고 이것은 고대 로마의 공화제 민주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에 앞서 정치 지배방식이 계보학적으로 우위를 가지며, 고대 그리스의 경우 솔론의 경제개혁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은 공공선을 위한 경제이론을 형성 하기도 했다. 시민사회와 공공선 민주주의가 부르주아지의 산물이며 자유방임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것으로 파악하는 시도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속한다.
공공신학은 유효한 역사 (effective history)와 계보학에 관심하며 역사와 사회에서 밀려나간 순전한 희생자의 삶에 주목한다. 공론장에는 다양한 사회들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하위계급의 저항담론과 공론장이 함께 있다. 서로 다른 공적의 영역들은 연관되고 상호 영향과 작용 안에서 움직이지만 국가나 경제가 중요하지만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국가정책이나 경제계획에서 전문가 집단들이 관여하며 담론을 형성하고, 담론구성이 국가 정책에 공명하고 사회제도의 목적에 친화력을 가질 때 권력을 획득하며 사회 문화를 지배 하는 담론으로 자리한다.
국가이론을 다룰 때 근대정치론에 대한 당연시 여겨지는 것에 판단 중지가 내려지고, 홉즈, 로크, 그리고 루소로 이어지는 사회 계약론의 전통에서 증발되어버린 정치적 주체로서 시민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일반의지, 국민주권, 참여 민주주의 그리고 분배정의와 인정정치 그리고 가난한 자들과의 연대는 새롭게 독해된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적 담론이 칸트의 역사철학과 존 롤스의 정의론에서 어떻게 포스트콜로니얼적으로 수용되는 지를 검토한다. 나는 이러한 공공 신학적인 독해방식을 문제틀에 근거지우며 텍스트에 대한 고고학적 해명으로 부른다. 이것은 공공신학의 교육학적 측면을 강화시킨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공공신학?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공공신학의 대두는 해방신학과의 논쟁으로 일관되는 모습을 보인다. 해방신학은 안더 프랑크(Andre G. Frank)의 종속이론을 기초로 글로벌 자본주의의 불의에 초점을 맞춘다. 중심부와 주변부 간에 나타나는 구조적인 폭력 내지 제도화된 폭력으로 인해 해방신학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당파적 선택을 한다.
그러나 공공신학은 시민사회의 공론장에서 어떤 사회 경제적 불의와 인종적 차별 그리고 문화적인 불평등이 일어나는 지에 주목한다. 당파적 선택을 하기에 공론장에서 드러나는 정의와 배상 그리고 회복과 인정의 문제는 단순하지가 않다.
공공신학에서 정의는 경제적 분배정의, 희생자들을 위한 배상의 정의 그리고 가해자를 용서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회복하게 하는 정의로 분류한다. 정치주체로서의 시민과 하위계급의 연대는 공공신학의 정치담론에서 중요한 자리를 갖는다. 정치에서 경제로 이르는 지름길이 없다. 사회와 문화의 영역이 중간에 있으며, 상부구조에서 정치 지배방식과 교육, 자연 과학의 기술 파라다임 그리고 관료제에 대한 사회 과학적 분석은 필수적이다.
민중 투쟁이나 계급투쟁이 사회를 일직선의 방향으로 이끌어가지 않는다. 사회개혁과 혁명의 길에는 항상 이해집단과 주도세력의 갈등에서 역전과 예기치 않은 다른 방향, 그리고 파열과 변형이 일어난다. 그러나 사회구조는 여전히 지속된다. 과학 기술의 파라다임과 인공 지능의 상업화 그리고 인간의 신체에 대한 정치 (비오폴리틱). 그리고 관료지배가 공론장의 전체영역을 구속한다. 다른 사회로의 이행 다시말해 사회 혁명은 자연과학의 발전과 기술지배에 의해 촉발된다.
이런 점에서 공공신학은 사회 계층론에 주목하고 사회구성의 구조이론과 총제성의 관점 (마르크스-루카치-알뛰세)을 피에르 부르디외의 반성 사회학에 접맥 시킨다. 더 이상 자본의 보편성은 단순히 경제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 종교. 교육등의 영역에서 세분화되고 전문화된다. 계급과 신분은 이러한 계층화된 사회구성의 구조 안에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융합된다. 이런 점에서 시민사회의 계층구조는 물화의 현상과 더불어 국가권력에 의해 식민지화가 되고, 후기 자본주의 성격을 특징짖는다.
독일의 한 학회에서 만난 브라질 출신 해방 신학자와 점심을 같이 하면서 나눈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해방 신학자는 가난한 자를 위한 투쟁에 기여를 했지만 브라질 사회가 시민 사회로 진입하고 경제적인 부가 축적이 되면서, 사회계층의 영역에서 빚어지는 인종문제나 경제적 분배정의 그리고 가톨릭 및 타종교와 문화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속수무책이라고 한다. 지금 브라질의 사회문제는 중심부/주변부의 문제가 아니라, 브라질 백인(caucasian) 중심 체제에 있고, 백인 이외의 인종들에 대한 차별정책에 있다고 말한다. 남아공에서 처럼 브라질에서도 아파르타이트(Apartheid)가 터져 나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