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소스와 예수
니체의 디오니소스는 예수의 십자가와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반 그리스도>에서 니체는 예수를 영웅이 아니라 특별한 상징주의자로 본다. 예수 자신만이 진정한 기독교인이며, 교회는 그의 복음에 반립하여 세워졌다. 예수의 복음은 교회에서 오해되고 변질되었다. 예수의 언어는 비유이며 싸인이지 도그마가 아니다.
니체의 판단기준에 의하면 선은 힘의 느낌과 의지 즉 인간안에 있는 힘을 고양하는데 있다. 행복은 힘이 증대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니체가 보기에 기독교는 고결한 인간의 유형에 전쟁을 선포하고 모든 연약하고 저급한 것들을 강한 삶의 보존본능에 대립시킨다 (The Anti-Christ, 5).
니체의 공격은 교회로 하여금 예수의 본래적 매세지로 되돌아가게 한다. 복된 음성은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러나 역사에서 기독교는 삶에 대한 저주와 단죄를 하는 나쁜 소식이 되었다. 니체의 계보학적 비판은 나사렛 예수로 되돌어가는 내재적 비판을 담고있다 (Kung, Does God Exist?, 408).
칼 바르트: 니체와 오버백
니체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무엇보다 더 칼 바르트로부터 온다. 데이비드 슈트라우스에 의해 대변되는 19세기 역사적 예수 연구의 전통에 니체의 기독교 이해가 서 있다. 그리고 바젤대학의 신학부 교수 프란츠 오버벡은 니체의 기독교의 비판에 공유했다.
바르트는 오버벡의 기독교 신학 비판, 특히 슈트라우스와 아돌프 폰 하르낙에 대한 거절에 공감하고, 1918년 <로마서 주석> 1판과 1919년 수정판을 쓰던 당시 오버벡의 반-근대적 사유에 영향을 받았다. 오버벡은 니체와 같은 집에서 살았고 슈투라우스를 비판하는 책을 같이 출간하기도 했다. 니체의 < 반-그리스도>는 오버벡의 반-신학에 공명한다.
바르트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니체의 서두의 표현에 주목한다. "나를 들으시오 왜냐하면 나는 그이기 때문이오. 나를 오해하지 마시오." 그리고 바르트는 마지막 문장을 본다. "나의 말을 이해했는가?--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못박힌 자...."
바르트에 의하면 니체는 디오니소스의 제자이며, 디오니소스를 모든 그리스 예술의 뿌리로 파악했다. 이런 발견을 통해 니체는 그리스 고전 문헌학을 완성했다. 디오니소스는 니체 자신이 되었다. 니체는 새로운 인간성을 위한 예언자이며, 그러나 동료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고독한 자였다.
니체는 괴테와 견주줄 수 있지만 한 걸음 더 나간다. 유럽문화의 데카당스의 희생자로서 니체는 망치를 들고 서 있고 당대 자연과학의 정점이었던 진화론의 한계를 넘어서 힘에의 의지를 발견했다. 이러한 힘에의 의지는 인간존재의 최상이자 적절한 형식이었다. 다윈의 생존(삶)투쟁은 삶을 긍정하는 힘에의 의지로 바뀐다.
무엇보다 더 니체는1887년 도스토엡스키가 사망한지 6년 후 프랑스의 니스 여행 중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했다. 2월 23년 오버백에게 보낸 편지에서 니체는 다음처럼 썼다. "책방에서 나는 우연히 도스토엡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보았네...바로 즉시 나는 피의 소리를 들었고 (이와 달리 어떻게 내가 표현할 수가 있을까?) 나의 마음은 기쁨으르 뛰었네." (De Lubac, The Drama of Atheist Humanism, 167)
생의 영원회귀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자신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진 빚을 말한다. 그는 괴테를 고결한 인간으로 존중했지만, 괴테가 그리스인들의 영혼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본다. 니체에 의하면, 디오니소스적 신비와 상태에 대한 심리학에서만 헬라적인 본능에 대한 기본사실이 표현 될 수 있다. 그것은 삶에의 의지이며, 그 신비는 삶의 영원한 회귀이다.
영원한 삶에서 미래가 과거 안에서 예고되며 거룩해진다. 이것은 삶에 대한 긍정이며 죽음과 변화에 대한 승리를 말한다. 진정한 삶의 총체성은 출산에 의존하며, 섹슈알리티의 신비를 통해 나타난다. 그리스인들에게 성적 상징은 존경의 상징이며 이러한 고대의 경건 안에는 삶의 심오함이 내재해있다.
출산과 임신과 탄생의 모든 특별한 행동에서 가장 고귀하고 엄숙한 느낌이 일어난다. 여인의 출산의 고통은 거룩해진다. 창조의 영원한 기쁨이 존재하며, 삶에의 의지는 영원히 학인되며, 여인의 출산의 고통 또한 영원히 존재한다. 니체에게 디오니소스는 이 모든 생의 과정과 출산의 고통을 의미한다.
이 지점에서 니체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영원회귀는 형이상학적 원리보다는 존재가 출산의 과정을 통해 영원히 이어지는 생의 욕구와 창조성를 말한다. 니체는 <그리스 비극 시대의 철학>에서 헤라클레이토스의 흐름과 변화의 변증법에서 생성의 차원을 주목했다. 이미 쇼펜하우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성의 변증법을 그의 의지의 현상학에서 수용했고, 의지는 물자체로서 현상계와 더불어 존재한다.
쇼펜하우어는 삶의 의지에서 드러나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목격하면서 절제와 금욕의 절제로 즉 몸의 욕구와 본능에 대한 페시미즘으로 이행했다. 그러나 니체는 삶의 의지의 금욕과 무화가 아니라, 삶을 긍정하고 창조적인 본능과 느낌을 힘에의 의지를 통해 표현했다. 니체는 모든 것이 대립을 가지며 생성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변증법을 헤겔적인 지양과 종합이 아니라, 영원한 정의가 고통에서 계시되는 측면에서 이해했다.
헬무트 골비처와 니체
헬무트 골비처는 자신의 대작 <구부러진 존재에서 올바른 진행의 삶으로, Krummes Holz - Afrechter Gang>에서 니체의 허무주의를 신학과 사회과학적 영역에서 매우 진지하게 다루었다. 그는 니체의 허무주의를 하이데거와는 다르게 판단한다. 하이데거의 현존재가 죽음을 향한 존재라면 니채의 현존재는 원초적 생을 향한 긍정이며, 이것은 우주를 덮는 운명애로 나타난다.
골비처에 의하면 니체는 역설적으로 성서적 허무주의 --해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를 간파한다. 니체는 헤라클리테스의 생성과 변화의 변증법 (헤겔)을 파라미데스의 존재 형이상학 (하이데거)으로 흡수하지만, 동시에 니체는 파라미데스의 무의 영원한 쉼에 머물지 않는다 (Krummes Holz-Aufrechter Gang. 120).
골비처는 베를린 대학의 철학과 동료 교수인 빌헬름 바이쉐델과 논쟁에 관여했고, <사고와 신앙>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바이쉐델은 하이데거-니체 전문가였지만, 하이데거의 파시즘 존재론에 실망을 하고 니체를 통해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극복하려고 했다. 골비처의 생의 의미신학은 이러한 철학과의 토론에서 니체의 허무주의를 칼 바르트와 더불어 새로운 차원에서 수용한다.
골비처의 평가는 니체에게 적합한다. 니체에게서 영원한 정의와 고통은 서로 매개가 되기 보다는 각각의 승화의 계기를 가진다. "하나가 만유"라는 의미를 니체는 제우스의 우주적 게임으로 파악했다. 하나가 만유가 되는 생의 과정에서 욕구와 결핍이 연합이 되면서 충족이 된다. 출생과 죽음의 우주적 게임에서 끊임없는 자기갱신과 자극이 나타나며 인간은 이성적이라기 보다는 비합리적인 존재다.
니체는 우주적 생의 게임과 예술적인 지각을 디오니소스적인 신화로 연결지었다. 영원회귀는 우주적 생에 대한 긍정과 존중의 사상이며, 인간의 성적 본능과 욕구는 기독교적 도덕으로 축소되기 보다는 생의 충만함에 참여한다. 이러한 니체의 입장은 기독교의 원죄와 타락에 정면으로 부딪치며 기독교는 삶을 거절하는 데카당스이며 실천적 허무주의다. 유대-기독교의 하나님은 생명에 적대적이며, 원한의 도덕을 민중들에게 심어놓고 삶의 긍정을 악으로 간주하는 다른 형이상학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예수와 자유정신
니체는 예수를 자유정신으로 존중하고, 그의 삶의 경험은 율법과 도그마나 교회주의적 믿음과는 다르다고 본다. 예수의 삶과 빛 또는 진리는 기호와 메타포이며, 예수의 상징주의는 모든 종교나 역사나 자연과학, 정치 등의 외부에 놓여있다. 예수의 복음은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의 기쁜소식은 기독교인들에게 나쁜 소식이 되었다. 예수의 실천적 삶은 심리주의적 믿음으로 바뀌고, 이 배후에서 본능이 게임을 한다. 그것은 삶에 대한 적대적 본능이다.
그러나 예수는 문화나 세계를 거절하거나 이에 대항하여 투쟁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예수에게 교회주의적 개념이 만들어낸 세계는 없다.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에 있으며 이미 현재화가 된 것이다.
니체가 예수를 자유정신(사자의 자유투쟁)에 비교하고 천년왕국을 예수의 복음안에서 내면화한다면, 이슬람은 힘과 감각의 종교이다. 니체는 스페인 이슬람의 문화와 예술을 높게 평가하고, 그것은 그리스와 로마보다 더 직접적으로 인간의 감각과 미각에 말을 한다. 니체는 이슬람과 우호관계를 유지한 프리드리히 대왕을 자유의 정신으로 평가한다.
종교를 넘어서서 니체는 디오니소스 도시 축제에서 영원한 삶의 고귀한 상징을 본다. 짐승의 희생과 새 포도주의 시음 그리고 조각된 성기를 들고 사람들은 행진을 하며 비극 드라마가 공연된다. 이것은 결혼의 의미와 집단성교를 상징한다. 이러한 디오니소스적 삶의 태도는 <짜라투스트라>에서 정신의 변형과 승화를 거치면서 (낙타, 사자, 용) 예술정신을 상징하는 어린아이에게서 나타난다.
용은 기독교의 도덕세계를 의미한다. 사자는 여기에 저항하는 자유의지와 정신을 말한다. 자유를 창조하는 것은 사자의 정신에 있으며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가치들을 창조하고 새로운 시작은 어린아이의 정신에 있다. 그것은 생에대한 신성한 긍정을 말한다.
바르트의 질문
바르트에 의하면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를 통해 인간성에 보다 큰 선물을 주었다. 괴테나 섹스피어는 이러한 니체에 미치지 못한다. 동료인간이 없는 인간성에서 니체는 고독했지만 형언할 수 없는 풍부함 가운데 살았다. 그의 인간성은 끊임없는 자기극복이며, 그는 인간이 아니라 다이나마이트였다 (Barth, Church Dogmatics III/2: 231--33).
히틀러와 투쟁했던 바르트는 니체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킨다. 니체는 독일 파시즘과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니체는 당대 독일 민족주의를 대변한 비스마르크에 대한 강력한 비판가였다. 니체는 프랑스 문학을 높게 평가했고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찬양했다.
디오니소스와 예수에서 니체가 비판한 것은 예수가 아니라 기독교의 도덕세계였다. 기독교의 도덕세계의 문제점을 발견한 니체는 기독교 신학에 유례없는 사건이며 진정한 파국을 의미한다. 프란츠 오베벡의 절친이였던 니체에게 교리화가 되고 도덕주의화가 된 기독교가 아니라 본래적 복음의 기원이 더 중요했다.
초기 바르트는 프란츠 오버백(1837-1905)을 통해 근대의 자유주의 신학의 비종말성을 원역사의 의미를 통해 넘어서는 신학의 담대성을 배웠다, 오버벡의 반역사의 개념은 니체의 문화비판과 계보학에 연관되며, 바르트는 특히 오버벡의 신학적 통찰을 기초로 아돌프 폰 하르낙의 한계를 종말론 신학의 방향으로 극복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당대 역사화된 기독교와 국가 순응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는다.
니체에게 기독교는 도그마나 신앙이나 수치스런 금욕적인 삶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실천이며, 이것은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바르트는 니체를 윤리학자로 간주한다. 니체는 예수와 바울에게서 사회주의적 가르침을 보았지만, 니체는 동료인간이 없는 인간성을 추구했다.
니체는 당대 사회주의 운동에서 위험한 노예도덕을 보았고, 그는 선악을 넘어서 소멸하는 불처럼 존재했다. 디오니소스-짜라투스트라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디오니소스-짜라투스트라는 자신이 아니라 타자를 위해 살도록 불려지지만, 십자가의 예수처럼 구원자는 아니다. 디오니소스-짜라투스트라는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바르트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인간성의 위기에 처해있던 비스마르크 시대에 과연 고린도 전서 1장의 바울의 도덕은 위험한 것인가? (ibid., 241-2).
니체와 <숨어계신 하나님>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근대의 합리주의와 허무주의 비판에서 공유한다. 이러한 문화에서 성스럽고 창조적인 삶의 신성한 요소가 상실된다. 삶을 상실하면서 근대의 문화에 허무주의가 등장한다. 그러나 니체는 신의 죽음으로 가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하나님을 항해 근대의 문화를 돌려 놓는다.
앞서 언급한 오버벡의 편지에서 니체는 프랑스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흥분을 했다. 니체는 <바그너 케이스>와 <우상의 황혼> 그리고 <반 그리스도>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적극적으로 언급했다. 심지어 니체는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모욕과 부상>을 읽고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의 여정에서 이들은 종교와 사랑을 둘러싸고 다른 길을 갔다.
니체가 당대 비스마르크를 비판하고 고결한 자들의 윤리를 영적인 차원에서 파악 한다면, 창조적 힘을 통해 민중들의 삶을 각성시키는 것은 그에게 먼 거리에 있지 않다. 고결한 도덕을 니체는 많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에서 보았고 이들의 문명에 대한 기여를 존중했다.
하지만 니체의 관점주의는 유대-기독교의 토라와 복음의 관계를 일면적으로 파악하지 원근법적으로 두텁게 기술하지 못한다. 니체는 르네상스를 종교개혁에 대립시키고 고결한 가치를 보았다. 루터가 로마에서 카톨릭의 부패를 보았다면, 니체는 교황의 자리에 모든 고결하고 아름다운 르네상스에 대한 위대한 긍정을 보았다.
루터의 믿음주의에서 니체는 궁극적 부패의 의지를 보았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영혼의 평등은 근대성을 여는 혁명을 초래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선하고 정직한 본능에 대한 경멸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원죄와 타락에 기초한 저주이며, 삶에 대한 복수를 위한 본능이다.
그러나 니체가 르네상스와 인간주의 그리고 종교개혁과 근대성을 심리적으로 평가할 때, 오히려 근대의 문화는 르네상스와 인간주의에 보다 더 연결된다. 니체가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프로렐타리아트 원한운동의 출현을 보았지만, 루터는 재침례파의 사회주의 운동과 농민혁명에서 단죄를 당했다. 루터의 두 왕국론은 유대적 지상의 천년왕국과는 거리가 멀다. 이성은 루터에게 창녀에 비교된다.
골비처: 루터와 니체
골비처는 니체의 신죽음을 루터의 숨어계신 하나님과 게시된 하나님의 변증법에 연결 짖는다. 하나님의 은페와 탈은페는 루터에게서 <지옥으로부터 절망, resignatio ad infernum>에 기인한다. 니체의 신죽음은 중세시대의 지옥의 표상과 관련될 수 있다. 신죽음 이후에 인간에게 더 이상 위로와 희망은 없다. 이제 요구되는 것은 영원회귀의 운명을 사랑하는 초인적인 담대함이다.
루터의 <지옥으로부터의 절망>은 니체의 허무주의에 비견된다. 루터는 이러한 절망을 예수의 십자가의 절규에서 버림받은 자의 운명을 반성했다.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받음을 긍정했다. 그러나 예수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예수는 지옥을 경험하면서 그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지옥과 같은 삶에서 내가 운명의 저주를 긍정한다면, 나는 하나님의 정의에 긍정한다. 나는 저주와 파문을 당하면서 다시말해 지옥으로부터오는 절망을 경험하면서 비로소 신학자가 된다. 지옥에 대한 지옥의 의미를 하나님의 정의을 바라보면서 지옥은 변형된다. 운명애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변형된다 (Gollwitzer, 121).
하나님이 없는 운명에는 지옥의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가 없다. 니체는 신학의 전통에서 숨어계신 하나님과 예수의 절규를 감지할 수도 있다. 인간은 숨어계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 그것은 계시된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하다. 신의 무능함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비로소 삶의 의미를 문제틀하고 신학의 의미를 말할 수 있다. 니체는 루터의 영혼의 고투 (Anfechtung)과 같은 것을 신체적인 고통의 경험으로 가지고있다.
니체는 두통과 이명현상과 피의 복통 현상, 식욕부진등으로 며칠간 소피와 침대에서 기진맥진 하곤했다. 그러나 니체는 악마적인 고문에의해 저주받은 자신의 몸을 사랑했다 (Kaufman, The Portable Nietzsche, 116). 버림받음의 경험없이 니체의 삶의 철학은 이해하기 어렵다.
숨어계신 하나님과 니체의 신죽음의 안티노미에서 골비처는 운명애를 하나님의 사랑에 접합시킨다. 하니님은 계시를 통하지 않고서는 인간을 사랑할 수 없다. 그러나 숨어계신 하나님 또는 신죽음을 향한 절규는 초인으로 나간다. 그것은 우주적 생의 회귀에 대한 철학의 급진적 질문에 속하지만 또한 생에 대한 신뢰를 포함한다.
골비처와 오랜 토론에 관여한 철학자 빌헬름 바이쉐델은 니체-하이데거에게서 나타나는 의미질문은 모든 기독교적인 답변을 넘어선다. 그것은 니체처럼 어떤 지점에서 쉼을 갖지 못한다 (Gollwitzer, 177).
니 체: 신학적인 너무나 신학적인!
나는 니체가 루터의 사유에 근접하는 것을 본다. <시기에 맞지않는 성찰 >에 수록된 <<삶을 위한 역사의 효용성과 약점, 1874 >에서 니체는 루터의 아포리즘을 인용했다. "세상의 창조는 오로지 하나님의 망각행위 때문이다. 하나님이 무거운 대포를 생각했다면 결코 세상을 창조할수 없었을 것이다." (The Nietzsche Reader, 138).
니체는 루터의 견해를 역사에 대한 계보학적 비판을 위해 다음처럼 발전시켰다. 망각을 요구하는 삶은 이러한 망각을 잠정적으로 판단 중지해야한다. 이러한 중지와 문제틀은 불의한 현실 (특권, 카스트 제도, 왕조 등)에서 나타난 억압과 지배 그리고 폭력을 파괴할때 요구된다.
여기서 니체는 세상의 구원을 암시하며 <짜라투스트라> 의 "구원에 관하여"에서 말한다.
니체는 예수의 삶을 패러디한다. 불구자들이 짜라투스트라에게 말을 한다. 사람들이 당신을 완전히 믿세하려면 한 가지가 여전히 필요하다. 그것은 맹인을 보게하고 절름발이를 걷게하는 것이다. 짜라투스트라는 말한다: 만일 곱추에게서 곱사등을 제거하면 그의 정신을 뺏는 것이다. 맹인에게 시력을 주면 그는 너무나 많은 악을 볼 것이고 자기를 치유한 사람을 저주할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진 것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결핍된 자가 있다. 그는 거대한 눈이나 모든 것을 배 속에 삼키는 거대한 배를 가진 자인데 짜라투스트라는 이런 자를 전도된 불구자로 부른다. 모든 것을 너무 적게 기진 자ㅡ 그러나 한 가지를 너무 많이 가진 자.
니체는 어거스틴의 큐피디타스를 알고 있고 여기서부터의 구원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니체는 "신학적인, 너무나 신학적인" 사상가이다!
니체의 근대성 비판과 한계
니체에 의하면, 프랑스 혁명에서 유대 기독교 정신은 폭도들의 원한운동에 불을 붙이고 고결한 귀족의 정치와 가치를 붕괴시켰다 (<도덕의 계보> 1. 16). 그러나 니체와는 달리 프랑스 혁명에 관여한 계몽주의자들은 대부분 무신론자들이었고 당대 유대인 은행업자들은 오히려 왕과 귀족들의 재정관리를 했던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귀족들은 계몽사상에 대해 관용했고, 변호사 출신들이 주도한 근대의 법적 태도가 프랑스 혁명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와 법앞에서 평등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혁명당시 부르주아지는 자본가가 아니라 법적 합리성으로 훈련된 전문 지식인들이었다. 물론 니체는 미라보를 귀족도덕의 전형으로 평가했다.
근대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데카르트의 아르키메데스 점은 생각하는 존재이지, 믿음과 어거스틴적인 원죄가 아니다. 물론 칸트는 바울의 급진적 악을 수용하고 도덕이성과 사회정의를 통해 식민지배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했다. 오히려 니체의 제자인 푸코는 칸트의 계몽의 유산을 높게 평가했다.
이 지점에서 니체의 신죽음 철학은 별 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왜나하면 니체는 인간의 죽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권력에의 의지. I.5>에서 코페르니쿠스 이래로 인간은 중심의 자리에서 변두리 X로 밀려나갔다. 이것은 근대의 자연과학의 무신론적 귀결이다.
골비처는 이 테제를 진지하게 고려한다. 니체는 지적인 성실감을 가지고 인간을 형이상학의 허상에서 끄집어 내 모든 위험으로 가져간다. 그러나 니체는 진리를 통해 이러한 시도를 하며, 인간을 심연으로 가게한다. 그러나 니체에게서 진리에의 의지는 은닉된 죽음을 향한 의지일 수가 있다 (Gollwitzer, 92).
이것은 니체 자신의 짜라투스라의 가르침에도 적용될 수있다. 포스트 니체의 시대에 인간과 자연의 삶을 위기로 가져온 것은 자본주의가 일으킨 허무주의 혁명이다. 이러한 허무주의는 자연과학과 기술진보에 깊숙히 연결된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자연과학에서 하나님은 자리가 없다. 니체의 신죽음 선언 이전에 신은 이미 추방되었다. 하나님의 자리에 물리학의 자연법칙이 등장하고, 다윈의 진화론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자연에 개입하지 않는다. 볼테르의 계몽철학에서 그리고 자유주의 역사적 예수연구에서 데이비드 슈트라스는 사랑의 하나님을 조롱하고 사망선고를 했다.
마르크스에게서 신은 생산관계에서 인간을 억압하는 지배자의 종교로 설정되고 종교는 민중의 아편으로 비판당했다. 니체의 종교비판은 청년헤겔학파에 관련되고 부르노 바우어에게 동감했다. 니체가 기독교적 형이상학의 허무주의를 극복하기위에 이것을 극단적인 허무주의 형식인 영원회귀에 대립시켰다. 그러나 운명애를 통해 인간의 삶에서 허무주의가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니체는 왜소해져버린 인간을 살리기위해서 신을 죽였다고 하지만, 이미 인간은 니체이전에 변두리의 존재로 전락했다. 더우기 니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권이나 사회주의 운동에서 인간의 평등에 등을 돌렸다. 니체가 평가한 인간은 자연과학의 무신론을 통해 중심의 자리에서 X로 전락했고, 인간은 무로 취급된다.
니체는 인간의 모습을 초인을 통해 다시 살려내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니체를 허무주의 심연으로 몰아가는 것은 자본주의가 일으킨 허무주의 혁명이고 자연과학의 진보에 있다.
이런 측면에서 골비처의 신학에서 무신론과 허무주의 문제는 새로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니체의 우주적인 생철학은 왜소해진 인간에게 창조력을 제공하며, 이제 인간은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젝트를 위해 니체는 절대자유를 인간에게 부여하는 휴머니스트로 등장하지만, 헤겔은 이러한 절대자유를 프랑스의 공포정치에서 보았다.
그러나 유럽의 최초의 완성된 허무주의자 니체는 정치변혁이 아니라 은자와 지혜의 초인의 길을 선택한다. 이것은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적인 삶의 의지를 거절하고 자신의 힘에의 의지를 긍정한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처럼 예술에서 희망을 보지만 또한 초인의 지혜에서 삶의 가치철학을 전개한다. 인간은 극복되어야할 존재이며 아직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목적이 된다.
니체의 역사적 감수성에서 고결한 삶의 형식과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그의 계보학의 즁심에 속한다. 그의 관점주의는 힘의 증강에 기초하며, 역사의 적절한 기능은 인류에게 도덕성과 이성의 지배를 넘어서서 새로운 고결한 삶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있다. 이것은 선악을 넘어서는 초인에게서 나타나며 니체의 위대한 정치에 속한다.
니체는 역사적 진리의 실용적이며 창조적인 성격을 메타포의 분석에서 확대한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미학적 비전에서 나타나며, 이것은 과거에대한 재작업으로서 모든 역사적 내러티브의 특별한 기원에 관계한다. 니체의 계보학은 상대주의가 아니라 삶에대한 경쟁적인 해석들 사이에서 긴장과 갈등과 투쟁을 본다.
니체는 유대-가독교의 도덕적 세계관을 넘어서서 미래를 위한 새로운 삶의 해석에 헌신한다. 니체의 삶을 향한 열망은 영원회귀에 근거하며, 운명애는 디오니소스적인 생에 대한 긍정으로 나타난다 (Gollwitzer, 119-20).
니체의 안티노미
니체는 자연과학의 허무주의 귀결을 코페르니쿠스 혁명에서 보았다. 인간은 중심으로부터 X 가운데로 위치전환하고 있다. X 인간은 <짜라투스트라 I. 5>에서 마지막 인간에 관련될 수있다. 마지막 인간은 자본주의 근대성이 만들어 놓은 일상인들이며 초인을 향한 열망의 화살을 더 이상 쏘지 못한다. 대지는 왜소해지며 마지막 인간은 모든 것을 왜소하게 하며 가장 오래산다. 니체는 신을 죽이고 칸트의 계몽의 인간을 죽였지만, 이제 왜소한 마지막 인간을 초인의 삶의영역으로 구원하려고 한다.
푸코는 <사물의 질서>에서 르네상스 휴머니즘과 고전적 합리론은 세계의 질서에서 인간에게 특권의 자리를 부여하고, 칸트의 인간이해에 주목했다. 인간은 경험적-초월적 이중결합으로 현상하며, 근대성의 시작을 특징짖는다.인간은 근대성의 제작이며 이제 마지막에 도달하고 있다.
푸코는 니체에게서 근대성의 인간학의 전도가 나타나며 인간과 신은 같이 존재한다. 신의 죽음은 인간의 사라짐과 동일시된다. 초인의 약속은 인간의 죽음을 지적하며 새로운 철학의 시작을 의미한다. 인간의 사라짐에 의해 남겨진 공백을 무시하고 우리시대에 사유를 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가 않다. 인간학적 잠에서 깨어나야한다 (The Order of Things, 340-2).
니체에게 마지막 인간에게는 목자는 없고 가축떼만 있다. 모두가 동일하고 평준화된 인간이다. 다르게 생각하는 모든 시람은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가야한다. 니체의 이성과 광기의 대립은 푸코에게 <광기의 역사>나 <처벌과 감시> 그리고 <사물의 질서>에서 관통하는 주요리듬에 속한다.
사회학적으로 볼때, 니체의 안티노미는 인식론적 파열을 통해 역사주의와 인간학과 결별하는ㅡ 인간주체가 없는ㅡ새로운 에피스테메로 가는 길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갈에서 니체의 초인의 삶의 방식과 운명애는 더 이상 휴머니즘적 지평을 갖지 못한다. 니체의 반인간주의는 자본주의 마지막 인간을 구원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초인은 인간의 자기극복을 지적하며 대지의 생에 충실하는 의미를 갖는다.
니체를 옹호하여
니체의 저작에는 다양한 니체의 면모가 나타나며 때론 자기모순적인 내용을 담는다. 나는 <삶을 위한 역사의 효용성과 약점>에서 니체를 희망의 철학자로 수용한다. 니체는 젊은 세대의 교양을 위해 초역사적인 태도를 예술과 종교에 적용한다. 과학기술의 치명성을 비판하면서, 니 체는 과학적 사유가 자연대상의 관찰을 기초로 사실과 정확성에 과몰입하고 존재와 영원한 것을 밀어낸다고 말한다. 과학은 종교와 예술의 힘과 영원한 투쟁에서 살아간다. 과학적 지식이 삶을 지배하는가 ? 아니면 삶이 과학을 지배해야 하는가?
니체는 삶을 높은 가치로 선택하고, 삶을 파괴하는 여타의 지식은 결국 스스로 파괴된다고 말한다. 과학은 보다 높은 힘에 의해 감독되고 감시될 필요가 있다. 니체의 역사에 대한 성찰은 근대의 질병에 걸린 인간의 삶을 치유하는 위생학에 있다.
그는 젊은 세대를 위해 근대 문명에 스며든 잘못된 건강과 교양과 같은 구호나 병리현상 다시말해 괴물적인 개념의 변종을 뒤흔들려고 한다. 기존의 교양과 교육에 저항하는 창조적인 힘의 투쟁에서 젊은 세대는 용기와 정직성과 영감에찬 희망의 위안을 가질수 있다. 희망에찬 개인들은 이들이 처한 세대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그리스 종교와 예술 특히 아폴론적인 신탁 ㅡ너 자신을 알라ㅡ에서
인격적으로 의미있는 가르침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ㅡ
여기서 니체는 단지 디오니소스적인 과몰입과는 달리, 델포이 신탁에 대한 헤라클레이토스의 해석을 통해 수용한다. 그리스인들은 다양한 문명들 (바벨론, 이집트, 유대적, 리디아)과의 교류를 통해 종교와 교양을 창출했다.
니체에 의하면, 이것은 아폴론적 정언명법 ㅡ너 자신을 알라ㅡ에 대한 실천적 해석이며 그리스인들은 코스모폴리탄 차원에서 자신들의 문화적 유산을 삶을 위해 풍부하게 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도덕적 고결함과 힘이 작동되고, 그리스 문명을 다른 문화를 압도해가는 요소로 력할을 한다.
이러한 니체의 입장에서 나는 근대성의 최후의 인간은 귀족이나 노예에 속하는 유형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본다. 중요한 것은 삶의 창조성을 배가하는 문명을 그리스의 예술과 종교 그리고 도덕에서 배우는 것이며, 당대 니체의 시대에서 젊은 세대를 위한 희망의 교육에서 아폴론적인 실천 이성을 코스모폴리탄 차원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니체의 통찰은 여전히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트렌스 모더나티를 추구하는 공공신에 여전히 중요하다. 오늘날 허무주의 증세는 자본주의 합리화 과정에서 관료지배를 통해 인간의 삶을 쇠창살에 갇두어버린데서 본다 ( 카프카의 <성>).
관료지배가 법의 합리성을 통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인간을 평준화의 존재로 즉 비인격적 세력안에 가두어버린다. <소명으로서 과학>에서 베버는 도구화된 이성의 세계에서 자연과학의 지배를 보지만 여전히 이전에 무덤으로 돌려보내진 신들이 다시 출현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신들의 회귀는 우리시대의 운명이며 마지막 인간의 시대에 종교는 재생한다. 종교적 가치들의 다신주의가 신들의 세계를 무덤으로 돌려보낸 니체의 초인에 맞서있다. 나체는 여전히 초인의 지혜를 통해 우리시대를 위해 말할 것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