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틀적인 태도는 사고훈련을 통해 사유를 다르게 전개하는 사회학적인 시도이다. 이것은 이미 주어진 기존의 질서와 에피스테메 또는 철학체계에서 태도변경의 공간을 열어간다. 이것은 새로운 삶의 방식이며 지식에 영성의 차원을 부여하고 사유하는 사람의 삶을 변혁한다. 지식의 추구는 정보지식의 취득에 골몰하고 지식자본을 축적하는 소피스트적인 부르주아 태도와는 다르다. 그것은 합리적 반성과 의미지평에 의해 이끌리며 삶을 변혁시키는 비판적 자유와 해방을 기획한다. 그렇게 나는 플라톤의 형이상학을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하고 신플라톤주의 일탈을 비판하면서 역사 사회학적인 틀에서 다르게 구성한다.
플라톤의 영혼신학
플라톤에게 신학은 신적인 것을 대변하는 관점들(tupoi peri theologias)이다. 신(이데아)에 대한 반성은 철학과 신학적 사고의 진정한 목적이다 (<국가> II. 379, a 5).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며, 하나님은 궁극적이며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실재이다. 플라톤의 데무르고스는 세계의 장인이며 제작자이지만 (<티마이오스> 28a),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세계의 창조자라기보다는 부동의 동자이다 (<형이상학>12권).
데무르고스는 이전의 카오스를 자신의 우주적 이성이나 마음(Nous)을 통해 무질서의 세계를 이데아에 따라 선함과 합리적 질서로 제작한다. 또한 시간을 창조하는 지성적인 설계자이다. 신은 선의 이데아에 따라 세계를 선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창조했다. 세계는 영원한 패턴에따라 이러한 이데아나 신적 형상의 복사이다. 인간의 이성은 모조와 복사된 것에 관련되지만 지상에서 형상의 세계에 완전하게 도달할 수가 없다 (<티마이오스> Section 1. 32.1.1).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부동의 일자는 모든 존재의 원인으로서 존재들의 운동과 생성을 시작하는 일차원인이다. 질료와 형상의 연관성에 기초한 목적론은 잠재테와 현실태의 과정에서 인간은 도덕적 함양을 통해 자기실현에 이른다. 플라톤과는 달리 형상 또는 이데아는 이미 질료 안에 내재하고 인간의 실천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윤리적 자기실현에서 인간은 살아있는 신에 대한 관조의 단계로 들어간다. 윤리에서 영적인 삶의 배려로 이동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다름에서 볼때, 데무르고스를 제 2의 신 즉 신적인 마음 (Nous)으로 파악하는 중기 플라톤주의나 알렉산드아 유대인 필로를 수용할 필요가 없다. 플라톤의 신의 세계는 영원히 불변하는 형상의 영역에 속하며, 신적지성으로서 영혼은 Nous처럼 제 2의 신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몸에 내재하고 생명원리로 작용한다.
그런가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에네르기아(목적에 이르는 실천의 활동성)를 데무르고스와 화해시키는 신플라톤주의 시도도 탐탁하지가 않다. 신플라톤주의에서 데무르고스와 신적 이성 또는 마음은 인간의 의식을 존재론적으로 구성한다. 영혼은 생의 원리가 아니라 지성에 관계하며, 그것은 지성이 일자와 관계하는 것과 같다. 영혼과 지성은 거의 일치된다. 모든 것은 일자에 대한 관조(테오리아)와 유출의 관계룰 통해 산출되며 영혼 (지성)은 일자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초월한다.
신플라톤주의 문제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영혼은 사멸하며 윤회는 가능하지 않다 (De Anima 1.3 407b) . 아르스토텔레스의 신적 지성은 신플라톤주의 일자에 대한 관조와 유출에서 영혼과 매개된다. 인간은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 여기서 플로티누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을 함양하는 몸의 절제와 중용을 파괴한다. 영혼의 초월적 선재성이 우주의 영혼과 나의 영혼에 들어오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와 현상의 변증법은 플로티누스에 의해 인간의 영혼은 타자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거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이원론의 비인간주의"로 변질된다 ("Plotinus: Body and Soul", The Cambridge Companion to Plotinus, 289).
플로티누스는 몸안에 거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고 몸을 식물의 썩은 부분이나 구더기 정도로 보았다. 그는 자신안에서 불멸의 신을 보려고 했고 자신의 신을 모든 것안에 있는 신에게 되돌려 주려고 했다. 이러한 범우주적 영혼/신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매개하기 보다는 습합시켜 이들 철학의 언어의 문법을 파괴한다.
사회학적 문제틀의 사고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플로티누스의 언어놀이를 서로 다른 삶의 형식에서 파악하고 다름과 변형에 주목한다. 사실, 플라톤은 신플라톤주의 관조나 유출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영혼을 인간의 몸에 생명을 부여하는 스스로 움직이는 자 (self- mover)로 파악한다. 영혼의 삼중적인 질서를 통해 이성(이데아의 집)과 정신(감정의 집) 그리고 몸의 욕망 (물질적 욕구와 갈망의 집)을 배열한다. 지성은 영혼의 최고의 기능이며 참된 지식에 의해 양육되며, 이것은 신적이며 몸 이전에 선재했으며 불멸한다. 플라톤은 몸을 짐승이나 기생충처럼 취급하거나, 비도덕적 이원론을 기초로 정치와 사회의 공적인 일에 무심한 사상가가 아니다.
데무르고스와 로고스
기원 2-3세기 영지주의자들은 플라톤주의에서 영지란 말과 데무르고스를 차용했다. 그러나 심하게 변형시켰다. 플라톤에게서 데무르고스는 선한 존재이며 가능한 이데아의 원형에 상응하는 최고의 세계를 창조했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데무르고스를 결함이 많은 물질세계를 창조한 2 등급의 신으로 간주하고 이것을 로고스와 동일시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최고의 신을 세계혼 즉 데무르고스와 구분했다. 이들은 신플라톤주의 유출설과 공유했고, 세계혼은 로고스(데무르고스)이며 최고의 신으로부터 유출했다. 그리고 지속적인 유출과정에서 존재들은 점차적으로 신성을 상실했다. 이 두 가지 사상들은 플라톤의 <국가>의 동굴의 우화에 주목하고, 인간의 영혼은 관조를 통해 신의 이데아 세계를 향해 상승한다고 보았다.
히포스타시스와 로고스
큰스탄티노플 출신 프로클루스 (412-485)에게서 플로티누스적인 몸의 경시와 영지주의의 연결점은 거절된다. 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신중하게 검토했고, 그의 <신학의 요소들>은 심지어 플로티누스와도 다르다. 그의 신학은 고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잔환점이며, 비잔틴 기독교와 초기 이슬람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신 플라톤주의 세 가지 hypostasis 이론 즉 일자, 지성(Nous),그리고 영혼을 수용했다. 그리고 플로티누스의 <Enneads>에 대한 주해를 썼다. 그러나 플로티누스와 달리 그는 물질의 세계를 악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개인적인 일자들 (henads)을 개념화하고 헬라의 신들과 동일시하고 아네테의 종교를 숭상했다. 올림푸스 신들의 힘이 이러한 종교에 임재한다고 믿었다. 플라톤주의에서 지성(Nous)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동일시되며, 이것은 우주적 지성이다. 영혼은 감각의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성적인 실체(hypostasis)이다.
그러나 이미 기원전 3세기 70인역의 그리스 번역에서 유대인 학자들은 hypostasis개념을 20여 차례 하나님의 빛이나 진리 또는 지혜를 의인화할 때 사용했다. 이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10가지 범주론에서 본질(우시아)과 거의 동일하다. 필로의 동시대인였던 스토아 철학자 포시도니우스가 히포스타시스 개념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매개하면서 사용했다. 이후 이것은 플라톤주의에서 중요개념으로 등장했다. 신플라톤주의나 영지주의 개념적 혼란을 정화하고 새롭게 접합한 것은 스토아 철학이었다. 비트겐슈타인 이전 서구철학의 모든 각주는 풀라톤, 아리스텔레스 그리고 스토아철학이었다.
유대인 필로에 의하면,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했다는 표현은 플라톤적인 재구성으로 정당화된다. 이것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기초한다. 필로는 하나님의 절대권능의 일치에서 다양한 능력들을 히포스타시스로 의인화하고, 로고스개념을 돌출했다. 로고스는 창조의 대행인이며 하니님의 세계경륜의 매개인이다. 로고스는 세계를 창조하고 이끌어가는 하나님의 두가지 권능이며, 인간은 로고스안에서 그리고 그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된다. 로고스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는 변호인(파라클레토스)이다. 필로의 로고스 이론은 영지주의적 방식 즉 플라톤의 데무르고스를 저급한 2 등급의 신으로 결함이 많은 물질의 세계의 창조자와는 다르다.
히브리서 1장 3절에서 히포시타시스는 하나님의 존재나 본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미 70인역 <집회서> (1:4)에서 하나님의 히포스타시스는 하나님의 지혜와 동일시된다. 히브리서 1장 3절은 <집회서>에 상응한다. 히포스타시스 개념은 기독교 삼위일체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시아(본질) 개념과 구분되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개별 위격으로 수용되었다. 한분 하나님의 우시아는 세분의 위격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기독교의 언어사용에서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다른 신학구성으로 나타난다. 삼위일체는 70인역과의 대화와 재해석에서 로고스개념은 하나님의 계시의 중심으로 나타난다.
어거스틴은 창조기사와 <티마이오스>를 중요하게 수용했다. 어거스틴은 플로티누스가 윤회를 신봉하는 것을 알고, 그의 제자 포르피리 (234-305)에게서 영혼의 윤회가 인간에서 다른 인간으로 이전하는 것을 확인했다.
포르피리는 263-269년 기간에 로마에서 플로티누스에게 배웠지만, 아리스토탤레스 철학에 호의적이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통해 플라톤 철학과 화해를 시도했고 플로티누스와는 많은 점에서 달랐다. 그는 독립적인 사상가였고 신플라톤주의자들의 헬라종교의 제의나 마술을 이데아의 세계와의 접촉이나 또는 영혼구원의 방식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영혼은 지속적인 윤회를 거치면서 감각의 세계로부터 영원한 자유를 얻는다.
어거스틴의 해석에 의하면, 포르피리는 인간의 영혼이 저급한 동물로 윤회하는 것을 거절했고 플라톤의 영혼의 주기론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았다. 영혼은 악에서 정화가되면 윤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지복에 영원한 기쁨을 누린다 (<신의 도성> x 30; xii. 21; xiii 13.19). 어거스틴에게서 영혼은 몸의 부활과 더불어 진정한 인격적인 불멸을 얻는다. 이것은 플라톹주의 영혼과 몸의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인 비판적인 언어이다.
자기지식과 영혼의 배려
미셀 푸코는1981ㅡ82년에 결처 콜레즈 드 프랑스의 대학강연 <주체의 해석학>에서 지식과 자기배려의 관계를 영성의 측면에서 발전시키고, 헬라철학에서 로마의 스토아주의 그리고 기독교의 금욕적 절제를 검토했다 (The Hermeneutics of the Subject, 1-29).
푸코는 자기배려에서 나타나는 삶의 변혁과 영성에 주목하고 서구 근대의 데카르트의 인식론의 빈곤함을 비판했다 . 푸코는 몸과 영혼을 이분화한 근대적 인식론을 데카르트적 계기로 표현한다. 여기서 인간주체인 "의심하는 나"가 진리를 발견하고 인식하지, 더 이상 진리자체가 주체를 조명하거나 삶을 구원할 수가 없다. 푸코의 인식론적 파열은 이전 권력과 담론의 관계에서 드라나는 니체 의존성에서 그레코-로만의 자기지식과 삶의 배려에 입각한 주체의 해석학으로 이행이다.
권력관계를 넘어서 인간주체를 조명하고 계몽하는 차원을 푸코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와 초기 기독교에서 찾는다. 푸코는 각각의 담론과 삶의 형식의 고유성에 주목함으로써 그레코-로만의 일반화와 거대담론의 지배를 벗겨낸다.
그러나 나는 푸코와는 달리 플라톤을 데가르트적 계기를 열어놓은 선구자로 보지 않는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을 영원한 것으로 보았고, 인간은 영혼으로 인해 윤회를 통해 주기적인 생을 이어간다. 플라톤의 데무르고스는 그의 철학적 신학의 중심에 있으며, 영혼의 사이클적인 삶은 소크라테스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5세기에 올페이우스 종교를 개혁한 피타고라스 철학에 가깝다. 플라톤은 이성과 정의의 문제를 이데아의 빛에서 그리고 자기배려의 삶을 열어놓은 탁월한 철학자였다.
이 지점에서 아폴론를 섬기는 델포이 신탁소의 돌에 새겨진 경구 "너 자신을 알라"는 "너를 배려하라"는 말과 연결된다. 너 자신을 배려하는 것은 델포이 신탁소의 계명 즉 지나치지 말라는 신중함에 대한 조언과 관련된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적 담론은 아테네 청년들에게 부나 명성이나 권력보다는 자신들을 들여다보고 배려하는 조언에 관련된다. 자신의 무지를 앎으로써 스코라테스는 소피스트적인 지식의 상대성을 넘어서 진정한 지식을 추구하고, 삶을 변혁하는 영성을 가르친다. 지식과 자기배려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피타고라스주의에서 자기배려는 영혼에 대한 명상과 제의적 자기정화 그리고 금욕적인 삶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종교적 합일을 통해 신으로부터 오는 꿈과 진리를 얻으려고 한다. 이런 틀에서 플라톤은 자신의 신학을 영혼의 불멸과 주기적인 윤회의 활동으로 체계화했다. <파이돈> 67c에서 인간은 몸으로부터 영혼을 모으고 거기에 집중하고 가능한 영혼안에 침잠해야 한다. 영혼은 불멸하며 다른 몸으로 주기적으로 순환한다.
플라톤: 영혼의 배려와 존재 인식론
<국가> 2권에서 글라우콘은 정의의 문제를 제기한다. 선과 덕을 추구하는 의로운 사람은 악행과 고통으로 보상되고 오히려 악행을 일삼는 자들은 특권과 영광이 주어진다. 이에대한 질문에 플라톤은 그의 형상론으로 응답한다.
그의 형상론에서 개념(변증법적 지식)은 실제적인 사물의 세계를 인식하고 수학과 자연과학을 포함한다. 그리고 사물이나 경험의 대상들, 예를들면 집이나 강아지 또는 사과 등의 언어로 분류하고, 개념적 이해를 통해 개별 대상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 개념과는 달리 일반적인 견해나 억견으로는 진리나 정의의 영원한 본질을 파악할 수가 없다.
"여기에 사과가 있다." 객관적인 대상인 사과는 사과의 개념으로 파악되고 이해된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형상이 사과의 개념을 구성한다. 보편적 개념은 사과의 이데아에 조응한다. 사과에 대한 이해는 일상인과 식물학자와는 다르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정의의 본질이 무엇인가? 개념적인 이해(변증법적 이성)를 통해 정의에 대한 참된지식에 도달할 때, 의로운 자가 고통을 당하고 악한 자가 특권을 누리는 삶의 파라독스를 꿰뜷어볼 수가 있다. 더 나아가 플라톤의 영혼주기설은 부패한 영혼이 거주하는 곳은 사후 저급한 동물이나 곤충들이다. 이것은 현재적 보응이며 심판을 말한다. 이러한 보상과 처벌은 윤회의 과정에서 나타나지만 윤회는 심판이다. 정의로운 자의 영혼은 비록 경험의 세계에서 고통을 당했지만 형상의 세계에서 지복을 누린다.
플라톤의 미학적 경험
플라톤의 영혼의 배려는 조화로운 삶으로 나타나며, 진리와 선함과 아름다움은 서로 연관된다. 자연이나 예술품에서 나타나는 개별적인 미에 대한 경험은 선함과 관련되며 미학을 단지 지성적으로 파악하기 보다는 현상학적으로 접근한다.
후설에 의하면 개별적인 것은 플라톤 철학에서 형상의 세계에 다소간 관여 (methexis)한다. 이데아는 감각의 세계에 임재 (파루시아)로 드러나며 이 두 세계는 관계론적 친교 또는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후설,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94)
후설은 실증주의가 철학의 목을 배어버린 것으로 보고 비판했다. 그는 플라톤 철학의 새로운 갱신과 회복을 통해 인간의 삶을 윤리적으로 재정립했다. 인간의 환경세계의 전체 즉 생활세계의 차원에서 후설은 정치와 사회를 이성에 기초해 보편ㅡ개별의 현상학으로 시도했다. 생활세계는 후설의 코이노니아 (관계) 현상학이다.
나는 이러한 후설의 통찰을 플라톤의 미학에서 재구성한다. 아름다움은 선한 것을 추구하는데서 나타나며 미의 이데아가 임재한다 (파루시아). 소피스트들처럼 시나 예술을 세속적인 욕망이나 돈벌이를 위해서 행해진다면, 플라톤의 미학은 선함과 정의와 연관된다. 파루시아의 차원에서 그는 소피스트적인 예술을 공격한다. <국가> 10권에서 플라톤은 이러한 예술과 음악은 도시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항변했다.
플라톤과 음악: 어거스틴적 보충
니체는 <비극의 탄생> 16절에서 비극은 음악의 정신이 사라지면서 죽는다고 말한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유형에서 음악의 정신을 살려내기 위해 아폴론의 유형에 대립한다.니체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을 이론적, 변증론적 인간으로 파악하고 알렉산드리아 문화와 근대의 세계가 여기에 붙잡혀 있다고 맹렬한 비난을 했다.
그러나 니체는 고대 그리스에서 음악이 시와 멜로디와 춤을 하나로 결합한 것에 대해 충분한 고려를 하지 않는다. 음악은 디오니소스가 아니라 예술과 문학의 신 무사이(Mousai)의 선물이며, 음악은 그리스인들의 삶에서 제의와 교육과 오락에 관련되고 사적이거나 공적인 삶의 모든 분야에 스며 있었다. 드라마에서 독창이나 합창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미리 연습된 방식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춤과 더불어 악기를 연주했다. 그리고 노래는 말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음악의 형식과 성격은 재구성되기가 어렵다 (Anderson, Ethos and Education in Greek Music, 1).
기원전 5ㅡ4세기 아테네는 정치와 예술과 학문 그리고 철학이 융성했고 이후 서구문명의 주춧돌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은 역사적 소크라테스를 그리고 후기 대화편은 플라톤의 입장을 보인다. < 국가>와 <법률>은 중기에 속한다. 이 두 작품에서 교육에서 음악의 역할과 사회적 삶에 대한 입장이 나타난다.
<법률> 2권에서 플라톤은 음악교육이 중요하며 이것은 멜로디와 시와 춤을 결합한 것을 의미한다. 시와 노래가 럾는 개별악기 연주는 추천되지 않는다. 리듬과 하모니는 영혼의 내면에 스며들고 사유와 도덕적 행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적절한 음악은 아이들의 영혼을 쾌락의 감정과 소통으로 부터 보호하며, 또한 성인과 같은 기쁨과 고통을 느끼게 한다 (659d6-10).
음악교육은 어린아이들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기쁨과 고통을 느끼게 한다. 플라톤은 음악의 여러유형과 악기의 다양성을 분류하고 남성과 여성 그리고 어린아이들에게 적합한 지를 고려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평가는 덕목과 교육에서 중요하며 듣는 사람의 쾌락에 따라 판단되어서는 안된다. 음악은 법률과 같은 것이며 공개적이며 제의적인 노래에 반해서는 안된다. 체육이 몸에 유익한 것 처럼 움악은 영혼을 함양하는데 유익하다 (ibid., 670a 2-3).
이 지점에서 나는 어거스틴의 음악적 존재론이 플라톤의 한계를 넘어가는 것을 본다. 어거스틴의 음악론에서 리듬의 원리는 손상되어서는 안되며, 운율과 강세와 쉼은 이러한 원리에따라 구성되어야한다. <고백록> 10과 11절에서 그의 탁월한 수사학은 음악적 존재론에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어거스틴에게서 청각의 소리를 분별하는 능력은 이성이 아니라 자연적 능력에 있으며 음악을 규정하는 문법은 리듬의 원리와 조화에 있다. 음악에서 우리는 쉼을 얻는다. 물론 감각과 기억은 영혼에 속하지만 이성의 역할은 리듬의 원리와 음의 높이와 낮음 그리고 장단을 조화롭게 맞추는 소리의 규칙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음악적 존재론은 플라톤의 이데아 미학을 비판적으로 보충한다 (On Music. Book VI. ch. 2).
플라톤에 의하면. 아름다움은 광채를 가지고 있으며, 미의 형상은 개별적인 예술품에서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임재하며, 미의 이데아에 대한 인간의 반성을 통해 경험된다. 미의 진리가 인간의 반성을 통해 경험될 때 이것은 완전한 소유가 아니라 유비론적인 참여를 말한다. 미의 광체는 실제적인 존재를 구성하며 인간의 삶을 변혁한다.
<필레부스, 51d>에서 플라톤의 언급하는 스스로 드러남 (알레테이아)은 두 가지 차원을 갖는다. 개별 예술품의 조화로움이 선함을 추구하면서 스스로 드러내지만, 다른한편 이러한 과정에서 미의 형상은 임재(파루시아)로 나타난다. 여전히 미의 이데아는 초월의 실제에 속한다. 언어가 하나님의 세계를 표현한다고 해도 그것은 유비론적으로 경험되며 하나님의 신비는 여전히 남는다. 아름다움의 유비론적인 기능을 통해 플라톤은 미의 존재자체의 구조를 특징 짖는다.
가다머에 의하면 미자체는 스스로 드러나며, 이러한 미의 파루시아는 존재론적인 기능을 갖는다. 형상의 세계와 감각의 세계를 매개하는 것은 미의 존재론적 차원에 속한다. 개별적인 아름다움의 실례들은 미의 이데아에 대한 참여(methexis)와 관심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며, 이것은 플라톤의 파루시아의 현상학의 중심에 속한다 (Gadamer, Truth and Method, 483).
이러한 이데아의 세계의 파루시아는 후설이 언급한 것처럼 다소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순간에 체험되고 사라진다. 이러한 영원성의 현재는 카이로스적인 의미를 담으며, 아름다움은 빛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가다머의 해석학은 플라톤에서 돌아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나 비극에 기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