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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관용과 종교법

by 파레시아 2026. 1. 11.

비교 사회학: 관용과 정체성

624모하메드는 메카의 부대를 바드르 (Badr)에서 패배시키고, 이것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에 비견된다. 이후 이슬람 공동체에서 메디나의 권력과 지배모델은 두번째 칼리프 우마르 (Umar) (634-644) 지도력으로 전쟁을 통한 정복과 모슬렘인들을 예속시키면서 확장된다.

 

모슬렘이 638 비잔틴 제국로부터루살렘을 정복했을 우마르 칼리프는 그곳의 기독교인들의 안전과 재산 그리고 교회들을 보장했다. 사실, 예언자 모하메드의 종교는 경전의 백성들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대한 존경을 담고있다.

 

사회적 삶은 이슬람의 정체성과 문화의 진정정에 관련되며 이것이 종교의 사회 문화적 구성에 깊은 뿌리가 된다. 반면, 기독교의 종교전쟁은 어거스틴의 교리 불신자나 이단자들에 대한 처벌에 기초되고 (coge intrare), 개종과 파괴사이를 선택한다. 이것은 교황 우르반 2세의 선동에서 드러난다. 모슬렘은 저주받은 인종으로 악마화가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자들이다.

 

첫번째 십자군 전쟁 (1096-1099)에서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1099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부인과 아이들을 포함해서 거의 모든 그곳의 모슬렘과 유대인 거주자들을 살해했다.

 

이러한 비교 사회학의 접근에서 드뤼캠의신과 사회의 동일성테제는 이슬람의 정체성과 문화적 진정성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움마 공동체에 임재하며, 이러한 신정정치와 윤리의 결합은 한분 하나님의 일치성 (Tawhid) 의지에 대한 고백에 스며있다.

 

이것은 특별한 세계관이며 보편적 일치성은 하나님, 자연 그리고 인간존재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입장은, 비록 인식론적으로 구분되지만, 존재론적으로 서로 조화롭게 연결되며 살아있는 유기체로 드러난다. 이러한 입장이 객관적인 실재로서 사회를 인간의 책임성과 벡성의 의지와 결합한다.

 

종교학자들: 법학과 정치적 발전

 

이슬람의 역사적 발전에서 , 모하베드 사후 승계를 둘러싼 정치갈등은 심각했다. 우마이야드 칼리프 (661 -750) 알리와 그의 추종자들을 패배시키고, 시리아에 중심지를 설립하고 비잔틴 전통과 교류했다.

 

우마이아드의 붕괴후 아바시드 (750-1258) 칼리프가 지배하고 부아이드 왕가(945-1055) 제후국으로 종속시키고 바그다드에 수도를 세웠다. 이후 1055년부터 1258년까지 셀쥬크가몽고에 의해 바그다드가 몰락할 때까지지배했다.

 

아바시드 칼리프는 아랍 인종중심에서 벗어나서 바그다드를 코스모폴리탄 정신으로 수도를 정하고 다원적인 틀에서 모슬렘 지배를 이어갔다. 그것은 이웃국가인 크테시폰과 교류하면서 페르샤 스타일 문화융합 도시였다.

 

크테시폰은 4세기 이상 지속한 사산조 시대 (224-651) 마지막 이란 왕조의 수도였다. 페르시아의 교육과 삶의 방식의 영향을 받으면서 초기 아바시드는 코스모폴리탄 문화를 갖춘 세계종교로서 이슬람의 고전적인 모습에

도달했다. 바그다드는 이슬람의 황금시기로 불린다.

 

우마이댜드 지배시절 종교학자들은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제 이들은 바그다드에서 전문적인 신분으로 인정되고,새로운 이슬람 국가와 사회에서 철학을 발전시켰다. 전통적인 법적 프레임은 코란과 수나 (예언자 모하메드의 특별한 어록과 관례적인 실행들의 모음집) 기초해 발전되었다. 코란 (알라로부터 직접계시) 수나는 이슬람 신학과 법의 가지 근거가 되었다.

 

9세기 하디쓰 편집이 -부카리 (870 사망) 의해 완성되고, 이슬람 법의 두번째 근거가 되었다. 샤리아 (이슬람 ) 코란과 하디쓰에 나오는 종교계명들로부터 구성된다. 종교학자들은 샤리아를 종교 법체제로 만들고 일상의 삶의 모든 측면을 규정하고 지배했다.

 

코란과 하디쓰의 종교학자들은 학교를 만들고 국가 보다는 후원자들이나 일반 지지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모슬렘 문명은 샤리아를 이해하고 샤리아의 지도를 받는 법의 문명 (fiqh)으로 일컬어진다.

 

울라마(ulama) 불리는 종교 학자들은 모슬렘의 일상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지도자들의 역할을 고려할 이슬람은 힘의 종교로 나타나지, 폭력과 약탈로 물들어있는 전사들의 종교로 보기가 어렵다.

 

이슬람의 법과 도덕의 전통에서 다섯가지 카테고리가 중요하다: 의무행위(wajib), 권장행위 (mandub), 허용 되거나 시바가 문책되지 않는 행위(mubah), 비판되는 행위(makruh) 그리고 금지행위(haram)이다. 이러한 법적체계는 정교하며 모슬렘들에게 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며, 허락되는 범위안에서 창조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법적 체계와 합리적 해석

 

이슬람의 법적 발전에서 로마 법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로마 법이 시민법전을 기초로 공화제의 정치체제를 통해 제국으로 이어졌다면, 이슬람의 법적 전통은 종교학자인 울라마 그룹에 의해 코스모폴리탄 바그다드의 다문화 콘텍스트에서 수립되었다. 그러나 로마의 법전체계는 특정 종교의 영향에서 제정된 것은 아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기초해 합리적 논증롸 법학을 발전시켰다.

 

이슬람의 종교학자들에 의해 지도되는 율법 공동체는 전제적인 지배에 저항하도록 되어있다. 아부 하니파 학파 (699-767)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합리적이며 민주적이며, 코란과 수나를 다룰 , 토론과 지적인 합의에 근거한 적절한 실천과 독립적인 의견(ijtihad) 존중했.

 

이러한 법학파는 오트만 제국에서 선호되었다. 그러나 오트만 지배에서 종교 법학자들은 완전히 오트만의 국법 (Kanun) 의존되었다. 이슬람은 국가종교라는 의미에서 공식화되고 종교학자들은 정부의 기능인에 불과해졌

. 이러한 예속상태에서 이들은 법집행을 절대적 군주제와 행정 관료제를 만족 시키기위해행했다.

 

말리키트나 하바리트처럼 보수적인 학파들이 존재하며, 문자적인 엄격함과 수나의 준수로 인해 독립적인 판단이나 견해가 허용되지 않았다. -쌰피(767-820) 의해 창립된 아슈-쌰피 학파에서 수나는 신적권위로 고양되고, 심지어란과 동일시 여겨진다.

 

독립적인 판단이나 견해와 지적인 합의에 제한을 가하고, 수나에 예속시킨다. 이러한 학파가 중세기에 결국 하니파 학파를 대신해버렸다. 결국, 독립적인 견해와 창조적인 적용 그리고 민주적 합의 과정이 닫혀지면서 이슬람 발전에 엄청난 해악을 가져왔다.

 

로마법이 <유스티티나 시민법전>에서 정의를 기초로 법학을 발전시켰다면, 이슬람에서 독립적인 견해 창조적인 적용 그리고 민주적 합의는 결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창조적 민주적 법해석은 보수파들에 의해 봉쇄되버렸다.

 

게다가 전통적인 보수학파는 유럽의 근대성과 식민지배로부터 도전과 변화에 직면하고 오트만제국 말기에 이슬람 사고는 개방보다는 코란과 수나와 전통을 문자적으로 답습해 나갔다. 이들은 이슬람 근본주의 (살라피즘) 호소했지만, 합리적으로 파악하려는 근대주의 시도도 있었다.

 

법 해석과 판결에서 독립적인 자율성과 민주적 합의과정은 종교와 동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적인 수단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슬람의 원류는 제대로 역사의 과정에서 흘러가지 못했고 변화된 상황과 새로운 도전에 창조적으로 관여하지 못했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법과 경제적 발전 그리고 관료제는 서로 엮어진다. 로마의 몰락은 평화의 시기에 노예노동이 급격히 줄어들고, 지나친 중앙집권의 관료제로 인해 부역국가를 통해 직접적으로 국가예산을 충당한데서 시작되었다.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들이 농촌으로 거주하면서 자급자족 경제를 통해 기사와 군인들을 고용하면서 황제와는 독자세력으로 발전되었다. 도시에서 시장경제는 재대로 작동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슬람의 경우 코스모폴리탄 바그다드에서 법학자들은 초기에 황실의 정치와 행정 그리고 사법체계를 조언했지만, 후기체제에 들어오면서 법의 합리성과 민주적인 토론 그리고 합리적인 해석이 거의 봉쇄되면서 변화되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수가 없었다.

 

오트만 제국이 1453년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틴노플을 합락시켰지만, 희랍 고전의 전문가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로 피신하고, 특히 피렌체에서 문예부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오트만 제국에서 울라마의 종교법은 제국의 군주법에 예속되고 창조적인 발전을 하지 못했다.

 

비판적 반성

 

그레코-로만의 세계에서 문명의 발전과 정치체제에서 법전체계는 솔론의 절제정치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그리고 로마 공화제의 민주주의 틀에서 시작되었다. 법은 정의와 인권 그리고 재산보호로 특징되고 새로운 시대의 변화와 도전에 창조적 응답과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법의 합리적 전통은 중세기를 거치면 유 럽의 대학에서 법학으로 발전하고 초기 르네상스의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반면, 이슬람의 종교법은 합리적인 판단과 민주적 협의 그리고 유비론적인 추론을 통해 초기 바그다드의 코스모폴리턴 황금시기에 문화적 르네상스를 일으키지만 문자적인 근본주의 학파가 득세하면서 인간의 비판적 지성과 창조성은 법의 해석과 적용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트만 제국시대에 종교학자들은 군주법의 기능인으로 전락했다.

 

 

문제틀: 정치적 갈등과 이슬람 극단주의

 

이집트는 영국 식민지배 (수단을 포함한) 대한1919 혁명이후 내적인 갈등으로 치달았다. 아랍사회주의는 이집트에서 생겨나고 파로크 (Farouk)왕은 나기브(A. M. Nagib) 장군이 이끄는 혁명의회를 통해 전복되었다. 이후 나세르 (Gamal Abd el-Nasser, 1918-1970) 의해 승계된다.

 

그러나 혁명정부에 대한 저항은 1928 이집트의 하산 -반나(Hasan al-Banna, 1906-49) 의해 주도되고, 중동에서 영향력을 갖는 모슬렘 형제단 (Muslim Brotherhood)이 설립되었. -반나는 젊은 교사출신이고 저명한 이슬람 개혁가 라쉬드 리타 (1865-1935) 제자였다.

 

사이드 쿠트브(Sayyid Qutb, 1906-1966) 살라피 지하드주의(Salafi jihadism) 아버지로 불리는데, 그는 이집트 모슬렘 형제단의 지도급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 암살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반나에게서 모슬렘은 정치와 사회제도들을 개혁하기위해 서구의 과학과 기술을 필요로 하지만, 이러한 근대화는 영적인 개혁과 더불어 행해져야한다. 서구의 심각한 문제는 세속적인 물질주의에 있고, 서구의 자본주의는 항상 부자들을 만족시키위해 가난한 자들을 억압한다.

 

이와는 달리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정의와 연대를 부르짖고 유럽의 자본주의와 개인주와는 현격하게 다르다. 그러나 이들의 무신이나 붉은 야만주의와 독재지배는 이전 부패한 러시아의 짜르와 다를 것이 없다.

 

반나의 대안은 이슬람의 가르침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이생의 모든 삶과 영원한 삶을 위해 백성들의 문제를 전적으로 포괄하려고 했다. 이슬람은 신앙이며, 예배이며, 국가이며 동시에 민족주의이다. 이것은 종교와 국가이며 영과 행동이며 거룩한 경전이며 칼이다.

 

반나의 정치적 이슬람 또는 이슬람주의는 이집트를 사회주의 정책에 반하여 이슬람화하고, 대중교육 프로그램과 사회경제적 개혁을 시도했다. 초기 개혁의 단계에서 모슬렘 형제단의 원리는 비폭력적이며 국가 법의 프레임안에서 작동되었다.

 

그러나 이집트의 사회주의 정부와 마찰로 인해 이들은 샤리아의 법을 적용할 것을 요구했는데, 그러나 샤리아는 정부조직이나 근대세계의 요구를 해결할 있는 공적인 행정에 대한 방법이나 지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샤리아는 근대의 민주주의 체제와 상관이 없고, 전제적인 권력체제에 문제를 제기한 적이없다.

 

파트와: 정치적 위험성

 

정부와 이슬람주의는 세대를 거치면서 샤다트 대통령과 호스니 무바락 체제에서 나타났다. 2013 이집트를 전복한 시시 (Abdel Fattah el-Sisi)장군이 모슬렘 형제단을 종교적 극단주의로 억압하는데서도 잘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 모하메드 모르시 (2012-13) 모슬렘 형제단에 속한 인물이었고 2021 이집트 혁명이후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다.

 

유럽의 저명한 이슬람 정치철학자인 타릭 라마단에 의하면, 샤리아는 폭넓은 콘텍스트에서 있으며, 인류의 고귀한 목적에 부응한다. 그것은 무시간적인 법적 코드도 아니며 오히려 사회정의와 더불어 교육의 권리를 존중하며, 주택, 고용 그리고 사회복지를 강조한다. 모슬렘 형제단은 반 식민지 저항운동과 남부 이집트의 농업개혁 그리고 자본주의 비판과 비폭력 지침으로 인해 새로운 평가를 받을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이드 큐트브의 폭력적 지하드와 혁명은 정치적 이슬람주의와 정부간의 투쟁으로 이어졌고, 훗날 그의 정치적 입장과 반미입장은 2001 9 11 오사마 라덴의 테러 공격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라덴은 1998 2 23 세계 이슬람 전선의 이름으로 지하드를 위해 파트와(fatwa) 선언했다. 파트와는 모든 개별적인 모슬렘은 미국인들과 투쟁하고 죽여야하는 의무를 갖는 것을 말한다. 이것으로 인해 라덴의 처형이후 미국은 이슬람공포와 모슬렘에 대한 증오범죄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코란과 자비로운 하나님

 

이러한 정치적 극단주의는 모슬렘들이 즐겨 부르는 코란의 자비로우신 하나님 (-라만)에게 폭력적으로 손상을 입힌다. 코란의 장은 하나님믜 이름을 자비로우시며 동정심이 많으신 분으로 부르면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자비는 용서와 짝을 이루며, 이러한 결합은 공공선과의 가치와 사회정의를 추구한다.

 

코란에는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연민 (70:20–2; 89:16–21) 담고있고 이러한 빛에서 샤리아는 자비와 용서 그리고 악한 행동을 고치는 차원으로 발전되어야한다. 코란의 하나님은 샤리아의 율법주의와 보복 그리고 잔인한 처벌에 기초한 신체 정치적 규율과 지배를 거절한다.

 

메디나에서 매카로

 

메디나에서 메카로 전환은 매우 중요하다. 이슬람이 정치적 극단주의와 샤리아 율법주의로 미래는 없어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전통에 담겨져있는 풍부한 지적전통과 계몽철학, 기독교와 유대교와의 공존, 그리고 문화적 르네상스는 사회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리스 고전의 번역과 유럽 초기 르네상스에 대한 철학적 기여는 새롭게 오늘날 이슬람의 문명에서 창조적으로 그리고 민주적으로 발전 될 필요가 있다.

 

아르만도 살바토레 (Armando Salvatore) 이슬람의 사회학에서 영향력있는 학자이며, 그는 이슬람과 근대성의 문제를 다룰 막스 베버의 이론적인 틀과 개념을 활용한다.

 

그러나 베버의 자본주의 근대성 1 과는 달리, 그것은 칼빈주의 세계제적 금욕주의에서가 아니라 계몽주의에서 발견되어야한다. 계몽주의는 17세기와 19세기에 전개된 유럽의 근대성의 근원이며, 계몽의 변증법은 노예제도, 인종학살 그리고 자본주의 재국주의를 통해 식민지배를 받던 민중의 억압과 착위위에 근거되어있다. 여기에 콜롬부스 발견이후 카톨릭의 스페인의 남미정복, 개신교 화란과 영국 그리고 청교도미국에서 이어지면서 자본축적의 기독교적 성격의 비밀이 있다.

 

세계 재편구조

 

1 2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지중해는 대서양 중심의 세계체제는 태평양체제로 바뀐다. 전후 일본의 세계중심부로 진입은 삼극위원회 (Trilateral Commission)으로 통합되면서 일본은 미국과 서유럽의 파트너로 등장하고, 유럽연합은 세계체제 사이클의 변화 특히 재편구조를 보여준다.

 

중국이 세계체제로 편입이되고 경제적 부상은 신자유주의 질서로부터 얻어낸 교환과 유통과정 그리고 공장노동자들의 값싼 노동력과 재조업 분야에 기초한다. 그리고 신흥 아시아 경제국가들(한국, 대만, 싱가포르) 부상하고 주변부들과의 관계에서 생산과 수출에서 앞서간다. 미국의 패권전략은 자본의 세계화와 동맹을 통한 군사력 지배인데, 군산 복합체가 중요하다. 지역분쟁과 전쟁은 끊임없이 나타난다.

 

세계체제의 사이클과 자본축적의 변화 그리고 정치적 지배력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재편되고 냉전 시대를 거치지만 소련연방의 멸망 리버럴 세계질서는 미국중심으로 재편된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과 세미 중심부의 러시아의 경제와 군사력은 이전 냉전체제를 새로운 세계 체제로 통합시키지만, 여전히 미국과 나토동맹과의 경쟁과 갈등과 전쟁의 씨앗을 가질 밖에 없다.

 

주변부의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나토의 지원을 받으면서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면서 이후 세계질서의 윤곽이 보다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미중과의 무역전쟁이나 대만을 둘러싼 군사적인 대결에서 중국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중국의 경제쳄제와 실업율의 폭증이 여러가지 원인들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에선 세계질서의 패권을 다투는 무리한 미국과의 경쟁에서 다른 한편 국가 독점자본주의 걔획과 통제로 인해 시민사회의 영역을 봉쇄해버린데서 볼 수가 있다.

 

역사적으로 한 문명의 몰락은 국가가 리바이어던처럼 중앙권력과 관료제가 출현할 때 시민사회와 도시의 시장경제는 정상적인 작동을 할 수가 없다. 공장국가로 수출을 하면서 먹고사는 경제는 금융자본과 세계경제 시스템에서 생존하기가 어렵다.

쿼드동맹은 동아시아에서 군사력과 경제를 묶는 세계체제 변화이론을 보여준다. 오히려 미국이 반도체산업에서 대만이나 한국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일본은 전쟁을 있는 나라로 헌법을 개정하고 메이지 유신의 영광을 복원하려고 한다.

 

국가가 경제영역과 독점무역에 관여하는 후기자본주의에서 이러한 세계체제 사이클과 변화모델은

세계체제를 단순히 종속구조로 보기에 복합적인 신식민주의 조건에 각인되어있다. 1세계안에 2, 3세계가 존재하며 3세계안에 1, 2세계가 공존하며 열도처럼 존재한다. 중심부세미중심부/ 주변부주변부는 어디에도 존재하며 국내 생산관계와 해외무역는 세계체제 사이클안에 통합되고 확장되거나 (판데믹과 전쟁으로 인해) 퇴보하기도 한다.

 

이상 중심부 패권국이나 동맹이 후기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지배하지 못한다. 시스템 변화이론은 모든 국가들이 상호관계와 경쟁 그리고 갈등구조로 진입되고 세미 중심부의 퇴보는 중심부의 헤게몬에 심한 타격을 주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중국의 일대일로에서 나타나는 세미 주변부국가들과의 갈등이나 타협 심지어 대만과의 군사적 긴장에서 절대적 지배자나 승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을 향한 기대

 

이슬람과 근대성을 사회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문화적 르네상스와 인정의 정치와 계몽철학의 전통을 회복하고 유럽의 계몽의 변증법과 자본주의 그리고 식민지배와는 다른 길로 나가는 데있다.

 

이슬람은 이전의 생활세계를 살려내면서 문명과의 대화와 기여로 나갈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극단주의에 사로잡혀 세계 칼리프제도를 확립하는 환상으로 것인지 기로에 있다. 이전의 아름다운 인정정치와 관용 그리고 문화적 르네상스를 우리시대에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21세기 글로벌 위기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그런 이슬람의 미래를 희망해본다. 이러한 기대가 환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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