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공공신학의 시선: 막스 베버와 비판이론

by 파레시아 2026. 1. 12.

공공신학은

 

1) 해석학적 측면에서 성서를 사실주의적으로 독해하면서 성서의 생활 세계와 화해 복음을 동시대적인 콘-텍스트와 매개한다. 히브리 성서와 그리스 성서의 지평들의 만남, 긴장, 그리고 논쟁을 시스템 구조 이론을 통해 두텁게 기술한다. 이러한 사실주의적 성서해석에서 반구약주의나 반유대주의는 거절된다.

 

2) 사회학적 측면에서 공공신학은 시민사회와 공론장에서 드러나는 복합적인 시스템과 민주주의 문제를 검토한다. 국가이론과 시민사회 그리고 지배방식에 대한 분석은 막스 베버의 사회 계층론과 관료제 그리고 그의 정치와 학문의 소명을 중요하게 수용한다.

 

3) 공공신학은 시민사회를 배경으로 하며 다차적인 공론장에서 드러나는 정치, 사회. 종교 문화적 이슈들을 민주주의와 공공선의 거버넌스의 측면에서 파악하는 새로운 신학의 모델이다. 이런 점에서 공공신학은 사회과학을 대화의 파트너로 삼고, 후기자본주의와 세계체제에서 드러나는 포스트콜로니얼 조건을 국가의 권력관계와 생활세계 그리고 비판적 민주주의 방향에 주목한다. 그리고 정치주체로서 시민과 하위계급의 연대를 부각시킨다. 이런 접근은 바르트와 베버 그리고 비판이론의 통찰을 수용한다.

 

4) 공론장에서 만나는 비교 종교연구를 통해서 공공신학은 종교가 갖는 사회적 역할과 문화적 구성을 검토한다. 종교의 예언자적 윤리를 통해 공공선과 도덕 그리고 사회 안전망에서 밀려나간 자들과의 연대를 발전시킨다. 이 지점에서 베버의 종교 사회학은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공신학이 비켜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또한 공공신학은 종교간의 대화보다는 비교신학(프란스 클루니)을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는 방향을 취한다.

 

5) 공공신학은 종교와 과학의 틀에서 태크놀로지 문제에 주목하며,  공론장에서 논의되는 환경이나 기후 변화나 유전공학, 그리고 진화론 등이 제기하는 도전을 보면서 자연과학과의 대화를 통해 구성적인 신학의 모델로 발전시킨다. 이런 점에서 미디어 공론장은 공공신학에 매우 중요한 실천의 장으로 등장한다.

 

베버: 비인격적 세력과 심정윤리

 

베버는 그의 "과학으로서의 소명"에서 기술화와 합리화 그리고 세속화를 통해 나타나는 귀결은 단지 세상을 주술로 부터의 해방이 아니라고 말한다. 역설적으로 합리화와 세속화의 과정은 무덤에서 다시 출현하는 가치 다원성들, 다시말해 여전히 신들의 출현과 투쟁에 직면한다.

 

사실 베버는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쇠창살의 우리에 갇혀버린 서구 근대성과 목적 합리성 (또는 도구적 이성)을 역설적으로 대변했다. 그리고 "소명으로서의 과학"에서 베버는 세계의 비주술화 과정에서 여전히 출현하는 신들의 지배와 투쟁에 주목한다. 인류를 지배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운명이며, 이런 점에서 베버는 니체의 허무주의 테제를 수용한다.

 

베버의 관료제 비판은 여기에 연결되며, 그는 소명으로서의 책임윤리를 통해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에서 헤방의 출구를 찾으려고 했다. 물론 이러한 책임정치는 심정윤리와 분열되지 않는다. 세계종교에서 나타나는 가난한 자들과 연대하는 예언자적인 심정 윤리는 스피노자적인 의미에서 무우주적 사랑으로 수용한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당대 독일 정치에 대한 그의 풍부한 경험을 담고있다. 1918년 11월 뮌헨 혁명은 독립사회민주당 쿠르트 아이젠너에 의해 시도되었다. 베버는 비판적 자유주의 입장에 서 있고 사민당과 연대했지만, 아이젠너를 카리스마가 넘치는 정치 지도자로 평가했다.

 

여기서 초기 바르트와 공명을 갖는다. 바르트는 <로마서 주석 1판>과 <탐바하 강연>에서 라가츠의 종교사회주의와 날카로운 대결을 벌이면서, 그는 독립 사회민주당의 아이젠너를 지지했다. 물론 바르트는 프리드리 나우만과 결별하고 블름하르트와 쿠터의 노선을 추종했다. 이후 파시즘 투쟁에서 루소의 국가이론을 수용하면서 공공선 거버넌스와 의회 민주주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베버의 정치로서의 소명은 이러한 독일혁명의 배경에서 독해될 필요가 있다.여기서 베버는 카이사르 주의에 기초된 대중 선동주의 정치를 ㅡ하틀러의 법학자 칼 슈미트가 주장한 것처럼ㅡ 인종/민족의 동질성을 부각시키는 진정한 민주주의 형태로 말하지 않았다.

 

베버에 의하면, 국민전체를 동원하는 정치기구--또는 기계로도 부르는 데--는 지배계급이 결국 보통선거를 장악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콘트롤 한다. 이러한 선거 정치기구의 지도자가 정당 지도자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 이런 정치기계를 창출하는 것은 바로 민중 선동 민주주의의 도래를 알린다 ("Politics as a Vocation," From Max Weber, 103).

 

반 파시즘 이론과 역사의 아이로니

 

이러한 베버의 예견은 나치즘의 법학자 칼 슈미트의 입장과는 다르다. 이런 정치기계를 베버가 선호했다는 주장은 난센스에 불과하다 . 오히려 베버는 의회 민주주의의 위험성이 이러한 파시즘적 경향에 노출될 수가 있고, 당대 사민당 내부에서 출현하는 관료제와 민중선동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있었다.

 

평민투표에 기초된 입법제도 (plebiscite)는 로마 공화제에서 로마의 평민들에게 허락된 찬반 투표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평민대표인 호밀관에 의해 승인되었다. 이것은 이후 평민의 이름으로 종종 포퓰리즘으로 남용되기도 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포퓰리즘 정책과 중앙 관료제를 통해 독재자의 길을 구축했다.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시저에게 신적 군주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했다. 이러한 선동주의는 포퓰리즘 정치의에 기초가 되며, 민주적인 정당성이나 의회제도나 참여 민주주의 자리를 박탈했다.

 

프랑스의 역사에서 케사르주의를 자신의 구테타 통치와 동일시한 사람은 카이사르의 숭배자였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그리고 그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도 제 2공화국에서 대통령 직에 있다가 (1848-1852), 1851년 쿠테타에 성공해 1870년 까지 황제의 자리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통치를 사회적 카이사르주의로 불렀다.

 

민중선동주의나 카이사르주의는 베버와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가 추구한 것은 영국의 의회주의와 시민사회 그리고 정치가의 도덕/심정의 윤리를 바탕으로 하는 사법적 민주주의였다. 1912년 배버는 사회 민주당원과 자유주의자들을 결합한 좌파 민주주의 정당을 창설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 그는 애국주의적 태도를 견지했지만, 전쟁으로 인해 독일제국의 힘이 팽창해질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그의 애국주의에도불구하고 베버는 카이저 2세의 전쟁정책과 독일의 팽창주의에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그는 벨기에 병합과 무제한적인 잠수함 전쟁을 비판하고, 사법개혁과 민주화 그리고 보통선거를 요구했다. 그리고 바이마르 헌법기초에 조언자로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관료제를 제한하기위해 보통선거제도를 도입하고, 48조항에 의회의 허락없이 대통령의 비상상태 권한을 명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1차세계대전에서 명성을 날린 장군 출신 힌덴베르크가 1925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사민당을 혐오한 힌덴베르크는 1933년 아돌프 히틀러를 수상으로 임명하고, 전제정치와 나치당의 권력부상을 위해 일조했다. 그의 사후 히틀러는 대통령의 권한을 승계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그토록 전제주의와 비밀 관료제를 봉쇄하려고 했던 베버에게는 아이로니이다. 사실, 베버는 "정치로서의 소명"에서 트로츠키의 국가개념--모든 국가는 강제력에 기초된다--을 수용하고, 국가를 국민의 신체를 지배하는 권력를 합리적으로 독점하는 방식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미셀 푸코가 국가를 신체정치학으로 파악하는 것의 원조격이 된다. 그리고 국가가 폭력기구이며 지배계급의 도구라는 마르크스의 입장에 접근하기도 한다. 그러나 베버는 마르크스와는 달리 생산력에서 나타나는 노동자의 착취가 아니라 기술 합리성과 인프라구조에서 전문화와 계층화에 주목했다.

 

배버는 이미 소비에트의 발전에서 미국의 테일러 시스템이 도입이 되고, 작업장에서 노동자 신체규율, 고액의 급료를 받는 관리들, 차르의 비밀경찰들의 재고용, 그리고 해외 자본을 추구하는 팽창을 알고 있었다. "소비에트는 볼세비즘이 부르즈와 계급제도로 투쟁했던 모든 것들을 절대적으로 다시 수용해야만 했다" (ibid., 100). 이러한 베버의 비판은 1921년 레닌의 신경제 정책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사법적 합리성과 사회 계층론

 

베버의 탁월한 분석은 프랑스 혁명을 가능하게 한 서구 전통의 사법적 합리성을 검토한다. 이것은 힌두교의 미만사 학파나 아슬람의 종교법학자들 (울레마) 보다는 고대 로마의 공화제와 사법체계가 중세기에서 기독교적인 법적사유와 접합된다고 본다. 이러한 사법적 합리성은 기독교적 자연법과 함께 화란에서, 특히 칼빈주의 저항권자들에게서 드러나며, 프랑스 혁명에서 변호사 출신들이 주도한 것에 주목한다. 이러한 법사회학적 접근에서 베버는 서구 민주주의와 혁명이 사법적 합리성에 기초되며 프랑스 혁명의 정신임을 말한다. "프랑스 혁명이래 근대의 변호사와 민주주의는 절대적으로 같이 속한다." ("Politics as a Vocation," From Max Weber, 94)

 

이러한 사법적인 합리성은 민중선동과는 상관이 없으며, 공정한 행정과 도덕 그리고 책임에 기초한다. 베버가 말하는 책임윤리는 도덕적 훈련과 자기부정, 그리고 공정한 행정에 근거한다. 물론 베버는 민중선동정치가 민주주의 형식으로 나타난 고대 그리스 정부 형태를 알고있었고 특히, 페리클레시스를 민중선동정치가로 불렀다. 그러나 개혁 운동가인 솔론에게 이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ibid, 96).

 

이 지점에서 나는 카리스마-예언자적 심정윤리와 민중선동의 카이사르주의를 구분한다. 법적 합리성애 대한 접근은 칼빈주의 저항권자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담고있고, 이것은 루소의 사회 계약론으로 이어진다. 루소는 고대 그리스의 선동 민중주의에서 타락을 보았고, 오히려 로마 공화제의 민주주의를 사법적 기초한 시민국가론으로 발전시켰다. 이런 측면에서 루소가 제네바의 칼빈을 단순한 신학자가 아니라 입법의 천재로 평가하는 것은 칼빈주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아쉽게도 베버는 칼빈의 원류애서 흐르는 사법적 민주주의와 이후 저항권주의와의 선택적 친화력을 통해 사회학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베버의 사회계층이론은 공론장의 다차적인 영역에서 계급과 신분의 투쟁이 어우러지는데 주목한다. 민족의 위신과 정치적 자본주의는 해외 식민지를 통해 제국주의로 귀결된다. 이런 점에서 베버는 자본주의를 합리적인 태도로 찬양한 것이 아니다. 그의 유형론에서 정치적 제국주의 자본주의와 문화적이며 사법적인 합리적 자본주의가 구분된다. 베버의 분석에 의하면 칼빈주의 예정의 이념이 청교도들에게 어떤 선택적 친화력을 갖는지, 더 나아가 역사의 과정에서 물질의 이해과정과 권력관계를 통해 이러한 이념이 자본주의 정신으로 기능하는 지가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베버의 유형론적 사회학은 사회계층론에 대한 분석과 시스템적 사고를 담고 있다. 게급/신분투쟁이 다차적인 사회계층에서 이루어지고, 세계종교로부터 예언자적인 심정윤리가 돌출된다.

 

비판이론과 해방철학

 

공공신학은 비판이론의 전통에 주목한다. 사회 철학의 영역에서 후기자본주의 논쟁은 하버마스의 동료인 칼 오토 아펠과 아르헨티나 출신 해방 철학자 앙리크 두셀에 의해 토론되기도 했다. 아펠에게서 종속이론은 신자유 경제 글로벌 상황에서 더 이상 타당성을 갖지 못한다. 글로벌 경제는 세계체제로 엮어지고 중심부-세미 중심부- 세미 주변부-주변 부 등으로 복잡하게 기능이 분화된다.

 

서구의 후기 자본주의에서 마르크스나 종속 이론가들의 주장은 빗나갔으며, 오히려 사회 민주의가 영향력을 발휘한다. 주변부에 속하던 나라들은 글로벌 경제시스템에 통합되면서 오히려 경쟁력을 과시하면서 나타난다 (중국과 일본, 대만, 싱가포로, 대한민국의 경우). 심지어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 민주주의에서 나타나는 독재와 부패는 심각하다. 그리고 브라질의 경제성장과 시민사회 문제를 검토할 때 계급 보다는 오히려 인종차별과 백인 특권층이 지배계급으로 등장한다.

 

두셀이 서구 근대성의 식민지 측면을 과도하게 비난하고 마르크스나 종속이론에 의존한다면, 아펠은 후기 자본주의 성격을 종속이론이나 희생된 타자의 과몰입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두셀이 강조하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이데올로기 호출은 좌파들의 거대담론과 선동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소통 합리성과 담론윤리에서 즉 사회 민주주의 틀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Barber, Ethical Hermeneutics, 134, 142-3).

 

후기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선동은 거대담론으로 급제동걸리고, 선동의 내용과 구호는 미시적으로 분석되고 비판되는 계보학과 문제틀적 사유가 둥장한다. 이러한 논쟁들은 공공신학과 해방신학의 논쟁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초기단계에 속하지, 본격적인 세계체제 시스템에 대한 연구나 중심부와 주변부의 복합적인 관계에 대한 사회 과학적 분석을 필요로 한다.

 

특히 주변부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지배형식과 특권, 더 나아가 사회계층의 위계질서와 관료주의 그리고 환경문제 등에대한 검토가 중요하다. 세계체제안에 포섭된 포스트콜로니얼 조건에대한 내재적 비판과 개혁은 공공신학에서 시민과 하위계급의 연대모색을 인정정치로 발전시킨다. 선동과 포퓰리즘은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욕과 이해관계의 그믈망에서 지배담론으로 폭로된다.

 

소통윤리인가 아니면 시스템 소통인가

 

하버마스는 그의 <소통이론1 권>에서 베버와의 폭넓은 논쟁을 통해 소통이론을 가치 합리성으로 회복하려고 한다. 후기 자본주의 안에서 권력체계로부터 시민사회와 생활세계를 방어하는 시도가 담론윤리로 전개된다. 국가권력, 자본가들의 지배, 메스 미디어가 생활세계를 침탈하는 체제로 드러나는데, 이러한 체제/생활세계의 사회 철학적 코드는 베버와 좀 더 심도있는 대화를 요구한다.

 

종교적 이념이 물질적인 이익과 신분집단에서 선택적 친화력 (그리고 발터 벤야민적인 의미에서 내재적 비판)에 접합된다면, 그것은 역사와 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인 정당성과 관료지배와 사법적 인준, 그리고 권력관계의 그물망에 엮이게 된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적 영역들에서 경제적인 부와 권력 그리고 교육과 문화적 특권에 접근 하는데서 신분과 계급은 서로 교차되며 시민사회 안에서 교육이 신분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게된다.

 

계보학적 차원에서 체제/생활계이론은 단순히 소통합리성에 기초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 비판, 관료제 비판, 불공정한 법에 대한 비판, 권력관계에 기초된 교육과 문화적 특권 더 나아가 젠더, 섹스알리티, 다문화와 인종에 대한 인정을 요구한다.

 

누구의 소통 합리성인가? 누구를 위한 소통인가? 누가 소통의 과정에서 주도역할을 하는 가? 유럽적인 논리와 합리성과는 전혀 다른 생활세계의 사람들의 권리는 어떻게 인정될 것인가? 생활세계가 내재적 비판의 원류로 등장한다면 비서구권의 문화적 다름과 가치합리성 그리고 도덕적 태도와 사회계층론은 유럽중심의 소통합리성에 충돌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하버마스와 니콜라스 루만의 논쟁에 주목한다. 루만은 분자 생물학에서 자기 조직성(auto- poiesis)개념을 칠레의 생물학자들 (훔베르토 마르투나와 프란시스 바레나)로부터 차용한다. 세포증식에서 드러나는 자기조직성은 인간의 마음과 인식에 관련되며 더 나아가 사회시스템에 적용된다. 하버마스처럼 상호 주관적인 소통 합리성이 아니라 다양한 기능으로 분화된 사회의 시스템과 하부 시스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종교, 의학, 의술 등)이 개인에게 소통을 한다.

 

다시말해 소통은 시스템이 한다. 여기서 시스템 소통이론은 단순한 인간을 중심으로한 소통이 아니다. 내가 책을 한권 산다면 경제적인 소통관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경제 시스템에 매여있는 개인이 된다. 하늘에서 떨어져 완벽한 합리성을 갖춘 그런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란 역사와 전통으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사회의 조건들안에 각인된다. 사회적 컨센시스를 거치는 절차와 과정에서 소통은 물질적 이해와 권력 관계, 그리고 이데올로기 호출기능에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러한 사회의 기능분화와 시스템은 유럽중심의 합리성 전통을 해체하고, 비유럽의 생활세계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루만은 사이버네틱과 최첨단 분자생물학이론을 후설의 현상학적으로 매개 하면서 자신의 시스템 소통이론으로 발전시킨다. 하버마스와 루만의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진화생물학인데, 필자가 보기에 하버마스는 루만을 비판하면서 자연과학에 대한 무지와 빈곤을 드러낸다.

 

그런가하면 루만의 한계는 자기조직성 개념이 일리아 프리곤니의 소산구조(dissipative structures)나 미 생물학계의 스타로 떠오르는 슈트어트 카우프만의 복합성이론을 간과해버린다. 더 이상 다윈처럼 점진적 진보나 자연 선택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전혀 새로운 생물들이나 유기체 그리고 구조들이 창조적으로 발생된다. 이 지점에서 하버마스의 루만비판에서 생물학적 인식론이 단순히 실증주의 잔재에 불과하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

 

창조/진화, 유전공학과 기후변화는 중요한 기술 합리성에 속하며, 사회개혁과 더불어 혁명을 수행한다. 이것은 헬무트 골비처가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처럼 자본주의가 일으키는 혁명이며, 기술진보의 혁명이다. 공공신학은 자연과학과 기술합리성괴 심도있는 대화를 피해갈 수가 없다. 자연과학적인 통찰이 공공 신학의 새로운 구성으로 파악된다.

 

공공신학은 헤겔의 인정투쟁에 관심한다

 

캐나다 맥길대학의 사회학자인 찰스 테일러는 인정정치를 헤겔과 푸코를 접합 시키면서 다문화 사회의 다름과 인정을 개념화했다. 이것은 개인의 정체성과 문화적 진정성으로 표현되며 각각의 생활세계는 존중되어야하며, 여기서 나와 우리가 하나로 되는 인정원리를 기초한다

 

헤겔의 인정의 변증법은 계몽의 변증법의 대안으로 떠오 른다. 물론 이전에 헤겔의 인정투쟁은 프란츠 파농에 의해 알제리 해방전쟁에서 백인과 흑인의 인종투쟁에서 개념화되고, 계급투쟁의 계보학이 인정투쟁에 있음을 확인 해주었다.

 

유럽의 계몽의 변증법안에 담겨져있는 식민주의, 노예제도, 인종차별—물론 이것은 시기적으로 포르투칼과 콜럼부스 항해 이후 스페인을 통한 식민지배에서 시작 되고 근대이전에 자리잡고 있었다—을 넘어서는 인정의 변증법은 여전히 칸트의 식민주의 비판, 프랑스 혁명에 대한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인정투쟁해석, 더 나아가 루소의 혹독한 식민주의와 노예제 비판 그리고 시민사회 국가론에서 강조된다.

 

계몽/인정의 변증법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은 후기 자본주의에서 중심부/세미-주변부-주변부를 구속하는 신제국주의 논리 즉 침투, 분활, 착취의 구조를 분석하고 비자본주의적 시민사회의 영역을 구축하고 예속된 신분과 하위계급의 연대정치를 지향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계몽의 비판적 근대성과 인정투쟁은 포스트콜로니얼 근대성 3을 열어 가는데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재구성된다. 공공신학과 생활세계 사회학은 이러한 스펙트럼에 자리한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