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신학, 시민 사회, 그리고 교육: 사회 과학적 접근
정승훈 교수
초록
이 에세이는 사회와 문화에서 종교의 공적 역할을 탐구한다. 사회과학에서 나타나는 종교를 향한 전환에서 (하버마스), 나는 공공 신학과 시민 사회를 해석하고, 신학교육의 환경에서 공공 신학을 전개한다. 공공 신학의 다양한 종류를 소개하면서, 나는 교육학적 요소와 사회 윤리적 차원을 통합한다. 자연 신학 (테드 피터스)은 공공 신학과 신학 교육에 기여한 바가 크다. 시민 사회와 민주주의에 관해, 공공 신학은 담론과 권력의 계보학에 주목하며(미셀 푸코) 현상학적 전략을 통해 상관 관계의 방법, 종교의 선험성, 유비론적 탐구(에른스트 트뢸취)에 대한 이론을 비판적으로 수정하고 사회 문화 현실에 대한 종교적 구성을 전개한다. 칸트와 롤즈의 전통에서 나는 다름과 인정의 정의와 순진한 희생자들의 유효한 역사개념(발터 벤야민)을 명료화하고, 공공 교육을 위한 환대의 개념을 구체화한다. 이러한 사회 과학적 탐구를 통해, 필자는 후기 자본주의에서 하위 계급과 포스트콜로니얼 이론을 검토한다. 내재적 비판, 신체 정치학, 대안적 현대성, 그리고 포스트콜로니얼 지향성을 뒷받침하는 해방의 프로젝트의 측면에서 이 글은 민중 신학의 유산과 <피억업자들의 교육학> (프레이리)을 비판적으로 갱신한다.
시작하는 글
하버마스의 종교적 전환은 공공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해방 신학에서도 종교적 전환이 일어나며, 특히 프란츠 힌켈라메르트와 울리히 두크로가 축의 시대 종교 (이슬람 포함)의 사회경제적 연구를 발전시킨다 (Duchrow and Hinkelammert, Transcending Greedy Money: Interreligious Solidarity for Just Relations, 2012).
하버마스는 베버의 합리성 연구(목적, 가치, 감정, 전통)에서 간과된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소통합리성과 행동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켜 시민사회, 생활세계, 그리고 숙의 민주주의를 진전시켰다. 그런가하면 미국의 로버트 벨라, 독일의 한스 요아스, 이스라엘의 슈무엘 아이젠 슈타트와 같은 저명한 사회학자들은 축의 시대애 대한 비교 연구에 착수한다. 이들의 목표는 종교가 윤리적 행동과 기존 사회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 어떻게 기여하는 지를 검토하며, 유럽 중심의 근대성 개념을 넘어서 다차적 현대성 또는 대안적 현대성을 기획한다.
근대성은 역사적으로 피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더 이상 서구에 중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늘날의 현대성은 세계적이고 다면적이며, 초국가적이고 초문화적인 특성으로 얽혀 있다. 이것은 특정 문화나 문명 안에서 전개되면서 다양한 결과를 낳고 있다. 대안적 근대성에 대한 사고 방식은 근대성의 종말에 대한 극단적인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사회경제적 근대화와 문화적 근대성 사이의 구별과 경계를 부각 시킨다 (Alternative Modernities, ed. Gaonkar, 1).
에세이에서 필자는 먼저 막스 베버와 칼 마르크스에서 드러나는 종교, 사회, 그리고 경제의 관계를 검토할 것이다. 이들의 현대성과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는 기독교와 공공 신학에 중요한 도전과 책임을 말한다. 그리고 에른스트 트롤취의 유산을 고전적인 공공 신학자로 살펴보겠다. 나는 그의 역사 비판적 방법을 현상학의 관점에서 수정하고 역사적 상대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사회 문화 현실에 대한 사회 구성 이론을 통해 상관 관계이론과 종교적 선험성을 강화한다.
둘째, 독일과 미국의 다양한 공공 신학 유형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신학은 정치신학이나 해방신학처럼 개념화기에 다영한 스팩트럼을 가지며,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 신학과 남아공의 해방의 공공신학이나 북미의 흑인 공공신학 또는 민중신은 서로 다르다. 콘텍스트와 상호 콘텍스트간의 상관관계 방법을 통해 공공신학은 연대 민주주의, 대안 근대성과 포스트콜로니얼 문제틀을 다룬다. 해방은 한 지역에 독점이 되어 다른 나라로 수출되거나 수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일에서 정치 신학과 공공 신학의 관계를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에서 맥스 스택하우스는 신 정통주의 틀에서 공공 신학을 대표하며, 데이비드 트레이시는 해석학적 구성과 비판 이론을 통해 교회, 학계, 그리고 더 넓은 사회 (문화)를 토대로 공공을 정의한다. 트레이시의 접근 방식을 공유하면서 테드 피터스는 자연 신학과 연결하여 공공 신학을 재정의하고 폭 넓은 문화로 확장하며, 신학교육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셋째, 공공 신학에서 필자의 관심은 어떻게 담론 패러다임이 권력 메커니즘, 비대칭성, 물질적 이익,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 단계에서 사회문화의 계층화에서 정보 기술의 양식과 얽혀 있는 지를 설명한다. 이 점에서 필자는 칸트와 존 롤스의 전통에서 공공 신학과 교육학을 위한 코스모폴리탄 원리와 유효한 역사의 의미를 부각 시킨다. 칸트의 환대 개념은 그의 코스모폴리턴 시민사회와 포스 트콜로니얼 연관성을 통해 비판적 민주주의 교육학과 식민지 근대성을 넘어 서는 공공 교육론으로 개념화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공신학과 사회과학적 문제틀을 근거로 민중 신학과 <피 억압자들의 들의 교육학> 을 검토하고, 포스트콜로니얼 환경에서 대안적 근대성의 패러다임 전환을 언급할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목회자들이 교회와 시민 사회에서 공공 지식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공공 교육론을 창출한다.
종교와 사회: 베버와 마르크스
베버는 종교적 이념과 물질적 이익 사이에 발생하는 선택적 친화력에 주목했다. 종교적 이념을 구현하는 카리스마적 인물들이나 신앙 공동체는 경제 윤리를 강조하며, 전반적인 물질적 삶의 상황에 맞게 종교적 신념을 선택한다. 여기서 사회적 지위와 신분이 형성되며, 합리적인 조직과 사회의 본질도 형성된다. 종교 담론과 경제적 태도 사이의 관계는 순수히 관념주의적이지도 않고 유물론적으로 환원 되지도 않는다. 베버의 잘 알려진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이념형의 관점에서 종교적 개념과 물질적 관심의 사회적 기능과 추동력을 검토한다.
그러나 베버는 폭 넓은 범위에서 사회문화적 현실에 대한 종교적 구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다. 비서구 사회에서 현대성과 자본주의 발전의 여러 형태에 대한 종교적 기여도 무시했다. 물론 베버는 세계 종교연구를 통해 심정윤리를 강화하고 서구 근대성의 한계를 너머서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반면에 마르크스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론에서 기독교적 성격을 간파하고 화란의 칼빈주의자의 금욕에 주목했다. 화란 칼빈주의 사이에서 드러나는. 근대의 자본주의자는 축적을 쾌락의 포기로 본다 (Capital 1: 740-1).
두 위대한 사상가들 사이에 종교와 사회의 연관성에 대한 공통분모가 드러나지만 차이가 있다면, 베버는 청교도의 세계내적 금욕주의의 노동 윤리를 유럽과 미국에서 자본 주의의 이념형으로 보았다. 그러나 서구 근대성의 결과는 쇠우리 철장 안에 갇혀 있다. 그런가 하면 마르크스는 자본 축적을 기독교 식민지 시스템에서, 그리고 세계 시장에서의 비합리성과 착취에서 보았다. 마르크스의 종교비판 –종교는 민중의 아편—는 단순한 무신론을 위한 종교 비판이 아니라 식민주의와 유럽의 자본 축적론에 맞물려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종교가 사회에 대한 비판과 예언자적 기능을 레닌의 후예들과는 달리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에 주목하면서, 필자는 사회 과학적 문제틀 안에서 공공 신학을 사회 문화 계층론과 후기 자본주의 측면에서 전개할 것이다. 공공 신학은 식민지 이후 현대성, 시민 사회, 민주주의의 양면적인 현실 (형식적 자유와 연대감)을 고려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종교가 사회를 어떻게 형성하고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다양한 공공 영역에서 사회적 계층화가 어떻게 위계 질서적으로 발생하는 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종교 담론은 마르크스나 베버와는 달리 경제적 차원을 넘어선다.
나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기술 합리성, 대안 근대성, 그리고 포스트콜로니얼 문제를 다룰 때 공공 신학을 다양한 사회 문화의 현실 속에 위치시킨다. 이러한 복잡성을 검토 하면서, 사회과학과 종교사회학은 공공신학과 교육학을 위한 필수적인 대화의 동반자로 간주된다.
에른스트 트뢸취의 유산과 비판적 공공 신학
공공 신학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공공 신학, 사회 윤리학, 그리고 비교 종교의 고전적인 실례로 에른스트 트뢰취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베버의 사회학적 방법을 신학에 통합하여 역사비평적 접근 방식을 정교화하게 했다. 트퇼취는 그의 두 권으로 된 저서 <기독교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1912)에서 베버의 이념형, 특히 교회-종파-신비주의 유형을 유용화하고, 종교이념, 사회적 세력, 그리고 사회 제도들 간의 상호 영향을 검토하면서 역사-사회학적 분석을 수행했다.
트뢸취는 북미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 니부어 형제들(라인홀드와 리처드 니부어)과 폴 틸리히를 통해 그의 지적 유산을 남겼다. 틸리히는 트뢸취의 종교의 보편사에 대한 비판적 방법을 그의 거룩의 현상학에 통합하고, 문화 신학과 종교 간 대화에 공공신학의 차원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틸리히의 신학적 방법은 지나치게 실존론적이며, 그의 상관 방법은 트뢸취의 역사 사회학와 종교의 보편적 역사에 대한 연구를 지나치게 복음의 대답과 질문하는 인간의 실존영역로 좁혀 버린다 (Tillich, Systematic Theology I: 8).
리차드 니부어는 트뢸취의 신 중심 신학과 역사주의, 그리고 에밀 뒤르켐의 사회학을 수용하고 자신의 철학적 신학을 형성했다. 그의 관점은 여전히 급진적 유일신론과 기독교 도덕 철학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하다. 니부어는 사회학적 방법을 자신의 기독교 도덕 철학에 담고 있으며 그의 제자들은 공공신학에 대한 새로운 사회 윤리적 지평을 발전 시킨다 (Niebuhr, The Responsible Self).
어째튼 트뢸치는 공공 신학을 역사와 사회, 그리고 상관관계를 통해 비판적으로 겸토한다. 그는 사회학적-현실적-윤리적 관점에서 현대 세계와 열린 소통을 하려고 하며, 기독교 사상과 삶의 세계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정립한다. (The Social Teaching I: 1).
이러한 과제는 성서적이며 신학적인 개념을 시민사회로 전달하고 재해석하며 개신교와 사회 문제의 관계를 설명한다. 사회 윤리는 신학의 정점이므로, 트뢸취는 공공 신학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어려움과 끊임없이 씨름하고 재구성해나가는 것으로 정의한다. 트뢸취는 종교적 사상과 실천적 행동을 공론장에 대한 참여를 통해 재해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뢸취는 교회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역사 사회학적인 이해를 유형론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의 역사 상대주의는 종종 종교의 일반 적인 구조와 사회적 현실 구성을 무시한다. 종교의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기능들, 예를들어 식민주의와 인종차별 그리고 지배권력과의 유착을 복음의 빛에서 내재적으로 비판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비판적 관점을 고려하면서, 나는 다양한 역사적 사회 세계와 상관관계 방법을 수용하고 종교적 현실 구성이론을 통해 역사-비판적 접근 방식을 발전시킨다. 상관 관계는 모든 역사적 과정의 상호 의존성을 의미하며, 사회적 상호 관계와 다양한 공적 현실을 설명하는 데 적용될 수 있다.
선택적 친화력은 역사적 사회 구성을 고려하고 재단과 왕관의 결탁이라는 종교 이념적으로 오염된 불명예스런 영향을 내재적으로 분석하지 않 는 한, 베버와 트뢸취의 이념형은 한계로 남을 수 밖에 없다. 나는 선택적 친화력과 이념형을 역사사회적 콘택스트에서 상관관계를 통해 보다 더 심층적으로 물질적 이해관게와 권력관계 그리고 정치 지배방식이 사회의 계층에서 피라미드처럼 현상하는 것을 검토한다.
역사를 유사점과 차이점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역사비평은 중요하다. 이것은 유비 론적 상상력을 의미한다. 유비적 상상력은 이미 칼 바르트에게서도 변증법적 방법과 더불어 신학의 인식론으로 드러나며, 데이비드 트레이시에게서 그것은 해석학적으로 매개되고 비판 이론적으로재구성되기도 한다
또한 트뢸치에게서 종교의 선험성은 매우 중요하며 , 이는 종교적 합리성을 수반한다. 종교는 심리적이거나 감정적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문화적 영적 갈망을 표현한다. 종교는 고유한 내러티브 합리성이나 예언적 합리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신비로 이끄는 초월적 차원을 가지고 있다 (“On the Question of the Religious A Priori,” 1909).
이런 점에서 비교종교 연구는 다원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공 신학을 다른 종교들과 대화 하면서 새로운 대안적 근대성을 돌출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생활세계의 의미에서 종교의 전통은 현대성을 지속적으로 다양한 형태와 목소리로 뒷받침하는 자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것은 이념형 또는 선택적인 모델로서 현대성을 탈 서구화하려는 시도를 담는다.
따라서 나는 이념형에 대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상관 관계 접근에 기초한 선택적 모델로 파악한다. 사회문화 현실에 대한 종교적 구성은 후설의 생활세계론과 교차되며, 다양한 세력들 간의 상호작용과 창의적인 수용과 적응을 통해 문화적 근대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여기서 생활세계는 공론장의 다양한 현실들 포괄하는 일반 구조를 의미하면 더 나아가 자연의 생의 시스템, 즉 에코 시스템을 포함한다. 사회 과학적 접근은 이미 자연과학적 사유에 열려 있으며, 기술 합리성과 환경문제는 공공신학의 주요 어젠다로 들어온다.
공공 신학: 생활세계와 권력
공공 신학은 비교 종교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사회 윤리적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특정 종교가 자신의 고유한 콘텍스트에서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연구하고, 이를 다른 종교들과의 상호 맥락적 관계에서 비교한다. 콘텍스와과 상호콘텍스 간의 비교 변증법은 공생, 평화, 상호 인정을 향한 협력의 공동 목표를 강화한다. 비교 연구는 다원적 민주 사회에서 공공 교회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교육적 의미가 있다.
더우기 비판 이론의 접근이나 현상학적 접근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공공 신학은 종교적 신념 체계에 대한 교조적 반성이 아니라 삶의 주어짐에 대한 해석학적이며 윤리적인 반성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삶의 주어짐에서 시작하는 공공신학은 철학, 사회 과학 또는 자연 과학이나 타종교와의 대화에서 열린 태도를 가지고 관여한다.
삶의 주어짐은 그것이 발생하는 생활 세계(문화, 종교, 언어, 자연적 생의 환경 등)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입장은 기존의 것을 무조건적으로 당연시하고 받아들이는 순응적인 태도에서 물러난다. 기존 질서에 대한 비판적 태도는 판단이나 심문 또는 문제틀을 통해 의미의 영역에 들어가며, 의미세계의 의도성과 지평을 상호 주관적이거나 또는 사회적으로 관련된 방식에서 드러낸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는 전통과 문화 그리고 종교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뿌리 깊은 불명확성과 편견에 대한 내재적 비판을 포함하며, 억압적인 권위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연대 민주주의, 인정정치, 그리고 공동선의 거버넌스를 향한 프로젝트를 발전시킨다.
현상학적 전략을 기초로 필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성찰과 성서의 사회학적 주석을 발전시키고 종교이념과 사회적 조건과 권력 불균형을 검토한다. 성서의 사회학적 연구는 맥락적, 상호맥락적, 전체를 고려한 복잡한 절차를 통해 의도적인 아치 즉 사회학적 해석학에 의해 명료화된다.
성서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의미나 진리는 권력 메커니즘이나 계급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오히려 물화와 뿌리 깊은 억압적 권위에 대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미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을 문제틀로 전환시키면서시작된다. 책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내재적 비판은 출애굽기, 토라의 정의, 예언자의 비판 (종교적 합리성), 그리고 예수의 복음에 기초하여, 전통, 문화, 그리고 사회로 침전된 지배 담론의 불명확성, 모호성, 그리고 계층적 억압을 뚫고 나간다.
이러한 접근은 타종교를 비교 검토할 때 타종교의 비판의 원류와 해방의 기획에 주목한다. 예를들어 일제가 난징 대학살을 일으켰을 때 군인들이 사무라이와 선불교로 무장 되어있으며 불교의 종교이념을 제국주의적 폭력과 살해의 정치로 나가게 한 카르마와 공 사상을 부처 자신의 가르침에서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이것은 공공신학에서 종교 경전과 역사적으로 전개되어온 수치러운 효과를 검토하는 고고학적 헤명에 속한다.
신학적 화해의 의미나 생활세계의 비판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모든 사회, 역사, 전통, 문화는 역사적 또는 도덕적 상대주의를 피하는 일반구조를 가지고 있다. 생활 세계와 사회화된 인식체계(지식 체계)는 지속적인 상호작용 가운데 있고, 역사 사회학적 방법—즉 비판, 상관관계, 유비적 이해, 그리고 종교적 선험성—은 의미, 내재적 비판, 그리고 보편적인 공동 목표를 향해 생생한 현재를 열어 나간다.
현재의 역사를 다시 쓰는 방법은 담론-권력 상호작용 측면에서 고전 시대와 현대 시대를 비교 한 푸코의 지식체계 연구에 공명할 수 있다. 상관 방법은 물질적 이해관계와 권력 메카니즘을 접합 함으로써 강화될 수 있으며, 종교 이념이 권력 네트워크와 정치적 지배 방식에 어떤 선택적 친화력과 이념적인 공명에서 사회 담론을 재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푸코와는 달리 의미체계는 권력으로 환원되지 않고 인간의 폭넓은 삶의 스펙트럼에서 종교적 내러티브에 근거한다. 물론 말년에 <주체의 해석학>에서 푸코가 종교와 문화 그리고 의미와 진리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고고학과 계보학을 통해 충분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적어도 푸코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니체에게서 의미문제는 힘에의 의지와 더불어 매우 창조적으로 드러난다. 계보학은 의미담론과 역사에 대한 비판적 이해 더 나아가 역사의 통찰을 현재사를 위해, 특히 순전한 희생자들의 삶을 회복시키는 유효한 역사의 방식으로 (발터 벤야민) 개념화될 수 있다.
공공 신학의 다양한 유형 그리고 자연과학
몰트만의 후속 작업은 근대성의 프로젝트, 식민지 역사, 그리고 지구의 권리를 고려하며 공공 신학의 틀 안에서 정치 신학과 희망의 신학을 조명한다 (Moltmann, God for a Secular Society).
몰트만과 J. B. 메츠는 독일 파시즘의 전체주의 체제를 넘어, 칼 슈미트의 정치 신학을 비판한다. 슈미트는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히틀러의 전체주의 체제에 맞추어 리바이어던을 이교주의화하고 반유대주의를 옹호한 법학자였다 (ibid., 24-42).
그러나 오늘날 독일에서 공공 신학은 정치 신학의 연장선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디트리히 본회퍼와 칼 바르트가 선두에 서 있다. 볼프강 후버는 에큐메니컬 공공 지식인 으로서 루터의 두 왕국 교리를 바르트의 그리스도 중심 주권론과 연결하여 공공 신학의 기초를 다진다.
바르트의 <기독교 공동체와 시민 공동체> (1946)는 공공 신학의 이중 언어의 특징 에 관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여겨지며, 이는 교회의 언어를 시민 사회의 담론을 위해 중재하고 번역한다 (Bedford-Strohm, Liberation Theology: Collected Essays).
본회퍼의 윤리학에서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공공 신학의 기초가 될 수 있다. 근대성에 대한 그의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이해에서 본회퍼는 가난한 자, 이스라엘, 그리고 세속화된 성숙한 세계에 대해 놀라운 관심을 보인다. 그는 해방 신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서구 근대성을 하위 근대성의 주범으로 도매금 처리 하지 않았다. 본회퍼의 화해와 윤리에 관한 복음은 교회가 타인을 인정하고 사회의 최하층과 연대하는 민주주의를 창출하는 역할을 강조한다.
독일과는 달리, 미국의 공공 신학은 정치, 윤리, 철학, 자연 과학과의 학제 간 소통을 중요시한다. 맥스 스택하우스의 작업은 이러한 인식론적이고 실천적인 입장을 반영한다. 그의 초기 작업인 <공공 신학과 정치 경제학>은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적 청지기 정신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후속 저작인 세권으로 된 <하나님과 세계화>에서 그는 신자유주의 이념과 경제 세계화를 옹호한다.
그러나 데이비드 트레이시는 유비론적 공공 신학을 발전시키고, 유비론적 상상력과 부정의 변증법을 사용하여 틸리히의 상관 방법을 재구성한다. 그의 상관 관계 신학은 기독교적 상징, 공적 담론, 그리고 다른 종교적 상징에 대해 하나님의 급진 적인 신비의 빛에서 상호 비판적이며 수정된다. 트레이시는 세 가지 공공영역에 집중 한다: 교회, 학계, 그리고 더 넓은 사회(문화).
문화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트레이시에게 중요하며 기어츠는 사회의 삶의 에토스와 그에 상응하는 세계관을 결합하여 문화를 다음처럼 정의했다. “ [문화는] 상징에 구현된 역사적으로 전해진 의미의 패턴, 사람들이 의사 소통하고, 지식을 지속시키고 발전시키며 삶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 상징적 형태로 표현된 유산된 개념의 시스템”이다 (Tracy, The Analogical Imagination, 7).
트레이시는 기어츠의 문화이해를 공공성의 영역에서 사회와 더불에 중요하게 고려한다. 문화이론과 종교는 공공신학에서 비교연구를 위해 중요한 자리를 갖는다. 공공 신학은 사회와 문화를 이해할 때 외부에서가 아니라 특정 사회와 문화로부터, 다시말해 두터운 기술을 내부적으로 시도한다. 이러한 접근은 종교간의 대화를 시도할 때 두터운 기술과 종교의 사회 문화적 구성에 주목간다.
테드 피터스는 종교와 과학 간의 대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으며, 그의 프로렙시스 종말론은 공공 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그는 기독교 신학이 이미 하나님, 인류, 세계, 그리고 창조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에 공적 담론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구성적인 공공 신학의 기초를 마련한다.
그는 트레이시의 세 가지 공공에 대한 설명인 교회, 학계, 문화를 수용하며, 교회에서 표현되고 학계에서 비판적으로 반영되며 더 넓은 문화에 통합되는 공공 신학의 구성적인 프로필을 발전시킨다. 피터스의 인식론적 입장은 고전적인 기독교 교리를 탈세속적 다원주의 맥락에서 목회적 조명(공적 사역과 선교)의 형태로, 그리고 변증적 이성 (더 정확히 말하면, 복음의 의미를 증언하는 데 있어 소통의 자유와 합리성)으로 반성한다. 이것은 자신의 입장만을 주장하는 변증 신학과는 다르다. 피터스는 또한 자연 신학, 정치 신학, 그리고 공공선 거버넌스를 위한 예언적 비판에 대해 논의한다(Ted Peters, “Public Theology: Its Pastoral, Apologetic, Scientific, Political, and Prophetic Tasks”, International Journal of Public Theology 12 (2018) 153-177).
피터스는 신학교 수준에서 폭 넓은 범위의 교육학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공공 신학의 교육학이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언하는 데 있어 목회적 관심을 강조하며, 소통 능력을 옹호하고, 예언적 합리성과 정치 신학과 함께 자연 신학과 생명 과학을 신학교육에 통합하기 때문이다. 과학 연구는 의료 혜택의 틀 안에서 인간의 건강, 복지, 그리고 번영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
전통적인 자연 신학과 달리, 피터스는 과학적 진보를 기술적 합리성과 그 성취에 의해 알려진 것으로 평가하며, 새로운 자연 신학을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하나님의 화해의 약속과 은혜, 그리고 현재 현실에 미래적 영향을 미치는 종말론에 의존한다. 나는 오해를 피하기위해 자연 신학보다는 과학신학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사회학적 관심을 토대로 통해 과학적 공공신학을 생명과학 특히 시스템 생물학과 더불어 발전시킨다.
피터스에 따르면, 공공 신학은 환경 위기, 기후 변화, 생명 윤리 및 공공 정책에 대한 글로벌 공공 토론에 관심을 가지며, 경험적 연구와 과학적 데이터를 활용한다 (Peters, Science, Technology, and Ethics, 167).
담론 해명과 공론장의 다양성
트레이시와 피터스를 고려할 때, 필자는 사회문화적 현실에 대한 종교적 구성을 다루기 위해 사회과학의 문제틀에서 공공신학을 발전시킨다. 이것은 트레이시가 간과 해버렸다. 나는 기어츠의 문화 언어이론에서 나타나는 종교에 대한 정의에 주목한다. 종교는 문화적 시스템이며, 종교분석에서 문화적 차원을 검토하며, 종교가 사회와 개인의 삶에 부여하는 의미를 고려한다. 이것은 의미 파라다임이며 거룩한 종교적 상징들이 사회 구성원들의 에토스 (도덕, 미학적 스타일, 삶의 특징, 세계관)를 종합한다.
종교적 이념과 실천에서 사회 구성원의 에토스는 삶의 형식을 드러내며, 한 사회의 세계관이 이해될 수 있다. 종교란 상징체계이며 인간의 삶에서 강력하고 지속적인 감정적 무드와 동기들을 설정한다. 그것은 존재의 일반 질서 개념을 형성하며, 존재의 일반질서를 사실성의 아우라로 치장하면서 감정적 무드와 동기들을 유니크하게 사실주의적으로 보이게 한다 (Geertz,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 90).
기어츠의 종교에 대한 정의는 사회 문화적 현실을 구성하는 종교의 역할과 의미 파라디임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종교는 존재의 일반질서의 개념의 토대가 되며 생활세계로 작용한다. 의미와 생활세계를 기초로 공공 신학은 특정 계층/계급이 종교적 이념과 윤리적 실천을 어떻게 이끌어가는 지를 분석한다. 사회적 삶의 에토스는 광범위한 물질적 이해관계, 권력 메커니즘, 관료 지배방식으로 특징된다. 그리고 기술 합리성을 통해 공공 영역은 분화되고 전문화되며 사회 문화적 구성과 존재의 일반질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회과학적 설명은 문화 인류학의 두터운 기술방식을 푸코의 담론 고고학과 권력 관계의 계보학 이론에 비판적으로 접합시킨다. 공공신학의 사회과학적 문제틀은 담론, 의미, 지식체계, 물질적 이해관계, 권력에서 드러나는 선택적 친화력을 상관 관계를 통해 발전시킨다.
훔볼트 대학의 토르스텐 마이레이스 교수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은 세 가지 기본적인 장애물에 직면해 있다. 우선, 기독교인들은 보편적 접근과 참여를 중시하는 공공에 기여해야 한다. 이것은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며 참여적이고 지구적인 시민 사회를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둘째, 기독교인들은 식민지주의, 성차별, 인종차별의 범죄에서 알 수 있듯이, 세속 권력에 대한 자신의 권력 야망이나 종교적 탐욕을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셋째, 교회는 주님의 자리를 빼앗거나 공공에서 복음의 증언을 억압함으로써 과도한 교회가 되거나 결함의 교회가 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론적 접근은 마이레이스의 다양한 공공에 대한 설명을 조명해주며, <공공 신학에서의 공공>이라는 논문에서 확인된다. 소셜 미디어와 기술 패러다임이 전 세계의 공공 집합체를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온 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대화함으로써 여론을 형성하면서 사람들의 의식과 의지에 영향을 미친다.
마이레이스의 공공에 대한 정의는 사회 비판적 인식론을 제공하며, 의사소통의 자유와 하위계급의 공공성 및 사회 문화적 계층화에서 드러나는 권력 불균형에 도전한다. 사회 계층론에서 볼 때 공공과 하위계급의 저항 공공성의 다양한 현실은 중요하다.
여기에는 권력지배, 물질적 이익, 교육, 취업 기회, 특권과 같은 요소들이 포함된다. 공공영역의 스펙트럼은 권력관계와 물질적 이익이 비대칭적으로 할당되며, 이러한 위계 질서 에서 정의의 문제에 대한 논쟁, 갈등, 그리고 투쟁의 장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정치, 사회, 문화의 폭 넓은 스펙트럼에서 공동선을 위한 거버넌스를 주장하는 맥락에서 이루어질 수가 있다.
공공선을 위해 '공통'을 넣을 때, 우리는 다양한 대중의 복잡성과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의 사업가는 미국의 티베트 승려와 비교할 때 공통점이 거의 없다. 오히려 의미가 더 중요해진다. 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심화되는 담론의 패러다임을 다룰 때, 공공 신학은 특수한 삶의 형식과 의미를 중요하게 고려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소통의 자유와 미디어의 효율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상황들간의 상호 작용을 가지고 있다. 상황과 다른 상황간의 작용을 고려할 때, 공공 신학은 인권, 회복적 정의, 환경 권리와 같은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보편적 인정을 달성하려고 한다.
공공 신학은 물질적, 영적, 종교적 공공의 스펙트럼을 설명하려고 하며, 사회 과학적 탐구, 자연 신학, 또는 다차적인 틀을 결여한 전통적인 신학의 교육 스템을 너머선다. 지배의 공공영역과 중간층의 공공영역 그리고 저항의 공공 개념은 열도처럼 사회와 문화안에 펼쳐져 있다. (서울의 강남의 부유한 지역의 학교에서 영어교육은 중간층이나 하위층의 공공영역에서는 불가능하다. 중심부는 주변부안에 이미 들어와있고, 하위걔급은 중심부 안에서 총체적 측면에서 밀려나가고 약탈당한다. 사회와 문화는 중심부-세미 중심부-세미 주변부- 주변부-하위 주변부로 피라미드처럼 구성된다.)
이러한 피라미드의 복합적인 현실은 공공신학의 주요한 어젠다에 속하며, 사회의 위계질서에 대한 권력관계와 담론의 명확화, 상관관계의 리서치, 그리고 새로운 세계구성 을 위해 다원적 민주 사회에서 새로운 교육론을 발전시켜 나간다.
‘공공’이라는 용어는 사회문화적인 계층화의 다양한 현실 속에서 민주적 담론, 인정정치, 그리고 다양한 공공영역들과 여러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는 소통의 자유, 논쟁, 갈등, 그리고 투쟁의 공간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류, 세계, 그리고 우주와의 화해라는 성서의 상징을 통해 유효한 역사와 시민과 하위계급의 연대 민주주의 그리고 생태학적 권리를 통해 전개될 수 있다.
공공 교육학: 인정과 환대의 정의
기원전 8세기 그리스 르네상스 이후, 민주주의는 시민 사회와 경제적 정의, 그리고 공정성과 인정과 연결되어 있다. 바빌론과 이집트와의 상업교루와 더불어, 폴리스 (도시 국가)는 본질적으로 농민들로 구성된 시민 사회였다. 폴리스 이념은 시민의 정치 공동체로서 시민의 정체성을 국가 자체와 불가분하게 연결된다. 모든 권위의 근원은 공동체에 있으며 자유로운 토론을 촉진하며, 이것은 노예, 이민자, 여성의 정치적 참여의 제한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정체성을 실현해나간다. 사실, 고대 그리스에서 중세 유럽에서 처럼 드러나는 도시와 시골의 현격한 차이는 없다. 왜냐하면 시민 공동체적인 삶이 국가였기 때문이다 (Moris, Burial and Ancient Society, 2-3).
이러한 고고학적 해명은 흔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처럼 시민 사회나 민주주의가 산업 혁명에 기반한 부르주아 사회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거절한다. 사회 정치 생활에서 지위/계급의 주체성을 고려할 때, 경제적 생산 양식은 문화, 철학, 종교와 교차하는 시민 사회의 정치 생활에 선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대 그리스의 노예제 생산양식의 기초 위에서 시민사회와 민주주의가 발생했다.
더우기 자본주의는 상업자본에서 시작하며 영국의 산업혁명이 아니라 13세기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확립되었다. 사실, 자연 과학과 기술 발전은 역사적 사회 구성에서 경제적 생산 양식을 완전히 변화시킨다. 지적 영역은 사상, 문화, 교육, 언어, 종교와 관련이 되며 자연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이미 경제적 영역을 너머서 선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공공신학은 권력 메커니즘의 유효한 역사와 계보학을 고려하며, 마르크스의 생산양식론을 넘어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전개되는 분화와 전문화 그리고 관료지배에 주목한다. 시민사회와 민주주의를 칸트의 코스모폴리턴 원리와 환대의 윤리를 통해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칸트의 보편역사 철학을 비판적 계몽과 탈식민지 전통을 통해 재해석하는 것이다. 칸트의 계몽철학은 루소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개념을 바탕으로 보편역사, 코스모폴리턴 시민사회, 환대의 윤리, 그리고 식민주의 비판으로 확장한다 (“To Eternal Peace,” Third article. Basic Writings of Kant, 448-50).
이 점에서, 칸트의 전통에 서있는 존 롤스는 마이클 샌델의 목적론적 윤리학과 대조를 이룬다. 샌델이 플루트를 배분할 때 최고의 플루트 연주자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이유는 플루트가 좋은 음악을 생성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Sandel,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188).
센덜의 정의론은 사회계층론을 무시하며 지나치게 가볍다. 최고의 연주자들이 아니더라도 잠재력에 따르면 음악적 재능이 있을 수가 있다. 플루트를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한 것에 대한 인정으로 줄 수는 없는가? 이러한 가능성을 인식하는 입장은 존 롤스의 정의론에서 “무지의 베일” 에서 나타난다 (A Theory of Justice, 1971).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왜냐하면 사회 구성원들의 장점과 약점, 계급이나 성별, 인종이나 민족, 그리고 다른 요인들은 무지의 베일에 싸여있고 모른다. 롤스는 사회계약 개념을 평등한 본래적 위치에 연관짓고, 두 가지 정의의 원칙을 산출한다: 그것은 표현과 종교의 자유 그리고 사회 경제적 평등성이다. 이것은 다름의 원리로 이어 지며, 고유한 재능의 분배를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동자산으로 파악한다. 다름의 원리는 훈련과 교육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유익하다. 이러한 롤스의 정의론은 공공선 거번넌스의 진수를 표현한다 (Rawls, A Theory of Justice, sec. 17).
실제로 칸트는 권력에 대한 탐욕이 다른 사람을 약탈하거나 심지어 압도함으로써 정치 사회를 부패시킨다고 비난했다. 칸트가 제안한 정치적 또는 사법적 변화는 도덕, 실천적 지혜, 그리고 책임을 갖춘 도덕적인 정치인의 소명이다. 도덕적인 정치인 (정치적 도덕주의자나 도덕적 정치인과는 달리)은 개혁에 헌신하며, 개혁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정치가들은 비판적 통찰력과 판단력을 훈련해야 한다 (“To Eternal Peace,” Appendix I. Basic Wirings of Kant, 458-69).
칸트의 사법 개혁에 관한 정치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중한 지혜 (프로네시스)를 포함하며, 개혁, 공적 이익, 심지어 혁명에 대한 정언명법을 말한다. 칸트는 사도 바울의 후예로서 세속권력의 탐욕에 내재된 “급진적 악”을 간파하고, 정의와 공동선을 부각시키고 정치개혁을 통해 이를 실현하려고 한다.
칸트적 관점에서, 나는 교육의 장에서 민주적 토론과 공공 교육을 위한 환대 개념이 중요하다고 본다. 참가자들간의 우정과 친밀함을 기초로 이들은 교육에 초대 받았다고 느낄 수 있어야한다. 수업에서 환영의 분위기를 조성하며 학생들이 자서전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이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을 쓸 기회를 활용하도록 장려한다.
공공 교육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관점에 대한 상호 개방성과 수용성을 요구하며,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존가정들을 새로운 의미구성을 위해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러한 교육의 절차와 과정에서 무지함이 드러나고, 가설을 테스트하며, 상호 비판을 통해 오류나 부분적인 정보를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토론한다 (Palmer, To know as We Are Known, 74).
포스트 민중 시대의 공공 신학
이제 안병무 박사와 그의 동료들의 헌신으로 등장한 민중신학에 주목해보자. 안 박사는 갈릴리 예수와 오클로스와의 동일화를 편집비평적 해석을 통해 제시한다. 오클로스는 바리새인들에 의해 경멸받은 가난한 시골 사람들, 율법에서 배제된 잃어버린 무리들이다 (massa perditionis).
민중신학의 세례 요한에 대한 해석은 몰트만에게서 반향을 갖는다. 우리가 '세상의 죄를 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노래할 때, 우리는 현실적으로 민중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제3세계의 민중이 서구세계의 죄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몰트만의 날카로운 질문은 민중 신학을 향하고 있다: “민중이 하나님의 고난받는 종처럼 세상을 구원한다면, 그러면 민중은 누가 구원하는가?” (Moltmann, Experiences in Theology, 258).
필자의 반문은 다음과 같다: 민중이 역사와 사회에서 세상의 죄를 구속한 적이 있는가? 그들은 구원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와 역사를 통해 말씀하시는 순수한 희생자들이고 유효한 역사와 저항의 공공성을 구성한다.
마가는 민중예수의 집단적 동일성과는 다르다. 예수의 정체성은 그의 겉옷 끝자락 (지지트)을 만지는 여인의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막 5:27-28; 6:56). 이것은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의 일상 복의 일부였던 아르바 칸포트(작은 기도 의복)의 네 모서리에 달린 청백색 술을 말한다 (누 8:44).
예수는 유대인의 예배에 맞게 적절하게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백성과 함께 쉐마 이스라엘을 기도하며 (막 12:29), 가난한 사람들을 옹호하며, 심지어 빈곤한 제자들을 지극히 적은 소자들 (elachiston/mikron)과 동일시했다 (마 10:42; 25:45). 이들이 오클로스인가?
실제로, 마가복음에는 Q자료 (예수의 어록)가 없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상당한 정도로 포함 되어 있다. 초기 Q자료의 관점에서 마가복음의 내러티브가 검토되어야하며 (교차 텍스트 분석), 이것은 집단민중에 의해 부식되고 가려져버린 예수의 진정한 모습을 모색하는 고고학적 해명을 말한다.
민중 예수를 묘사하는 것 외에도, 파울로 프레이리의 <피억압자들의 교육학>》은 민중 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프레이리의 해방의 교육학은 토론, 소통, 참여 민주적 접근 방식을 통해 다학제적 소통과 현장 교육 간의 상호작용을 창출하는 고전적인 예에 속한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정치적 상황에서, 프레이리의 교육학은 후기 자본주의, 환경 위기, 그리고 프스트콜로니얼 상황을 다룰 때 수정될 필요가 있다. 후기 자본주의는 자본의 문명화와 영향력으로 드러나지만 동시에 자연환경의 착취로 정의된다. 정치 전략은 아래로부터의 계급 투쟁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계급 투쟁, 즉 국가의 지배 정치에 의해 공고화 된다 (Gollwitzer, Die Kapitalistische Revolution, 62-85).
자연 과학과 기술 발전은 후기 자본주의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영역으로 드러난다. 사회 문화적 계층화는 이민 문제로 인해 위계질서가 가속화되며, 사회 시스템은 디지털 미디어 공간, 인터넷, 인공지능을 통한 정보 생산 방식에 의존한다. 자본주의 사회 의 물신숭배적 구조가 노동자들의 의식에 스며든다. 이러한 물화 과정에서 사회 문화적 침전과 습속 (하비투스)은 인간의 몸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하비투스의 현상학으로 부르며, 외부 개입의 결과로서의 의식화 교육의 정당성을 문제 삼는다 (Bourdieu, Masculine Domination, 41).
포스트 콜로니얼의 조건은 경제착취, 문화침투, 신체와 공중 건강에 대한 신체 정치적 통제, 군사동맹, 그리고 교육, 고용기회, 엘리트 특권으로 각인되며 사회 문화적 계층을 이분법적인 대립의 항으로 나누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공공 교육학은 담론의 명료화와 환대의 윤리, 상호 인식, 공생, 친화성을 통해 효율적이고 인간적인 행동을 위한 다양한 언어, 문화, 철학, 그리고 에큐메니컬 전통을 초대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공공 신학은 대안적 근대성, 시민 사회를 기초로한 민족주의, 그리고 인정정치 추구를 가능하게 하는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한다. 이것은 일본 식민지 범죄를 식민지 근대성 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한국의 극우 지식인들과의 대결을 포함한다.
예를들어 공공신학은 종교간의 대화에서 유효한 역사에 주목하며 식민지 시대에 자행된 순전한 희생자들의 유효한 역사에 주목한다. 난징 대학살 (1937년, 12웡 13일부터 6주간 지속된 살해)은 대표적인 신체 정치학에 속하며, 제국주의와 불교의 선과 공이 어우러진 유효한 역사의 영역에 속한다. 식민지 근대성은 신체 정치학과 학살과 연계된다. 식민지 근대성의 옹호자들에게서 심각한 문제는 “피해자를 비난하는” 정치전략과 문화 제국주의에 있다.
이러한 위험한 현실은 탈식민지 교육학을 긴급한 문제로 만들며, 식민지 근대 성이란 히틀러 파시즘이 독일사회에 가져온 총체적 파괴와 연관된다. 근대성은 식민지 파시즘이 아니라 유효한 역사를 기초로 대안적 근대성으로 전개되어야한다. 역사의 무수한 희생자들이 발전과 진보의 단계로 가는 길에서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는 파시즘적 사고는 것은 탐욕에 빠져있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생각이다 (발터 벤야민).
공공 교육론의 비판적 논의는 내재적 비판의 인식론을 바탕으로 지배이익과 정치 이데올로기를 테스트하고, 식민주의 담론을 비판하고, 사회적 지배 담론을 문제틀한다 (Giroux, “Citizenship, Public Philosophy, and the Struggle for Democracy.” Educational Theory, 37. 1987. 103-120).
에필로그: 공적 지식인과 탈식민 비평가들
트럼프 시대의 무역 전쟁이 있기 전까지, 필자는 중국 항저우에 있는 절강 대학교의 기독교와 중국 문화 연구소와 10년 넘게 소통해왔다. 동양의 케임브리지로 알려진 명문 대학이기도 하다. 필자는 인문학, 사회, 종교 분야의 중국 전문가들과 만나 소통하고 학욍 참가하고 강의도 했다. 중국 동료 중 한 사람의 말이 마음에 남아있다. “마르크스 주의 이전의 중국 집단주의–이것이 관건이다. 우리는 중국의 집단주의 문화에서 자랐고, 그 환경 속에서 기독교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였으며, 공자와 마르크스를 구별하지 않는다. 시민 사회와 공적 담론은 지난한 사안이다.”
집단주의적 사고의 일반적인 경향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은 있지만, 국민에 의한 정치와 시민사회는 세워지기 어렵다. 집단주의적 사고방식과 문화는 무고한 희생자들의 유효한 역사를 이데올로기 호출(ideological interpellation)로 삼켜 버리며 아남네시스의 연대정치는 국가에 의해 상품화가 된다.
공공 신학은 본질적으로 탈식민적이며, 유효한 역사해석과 더불어 인간의 신체가 정치화가 되는데 주목한다. 인간의 신체는 정치적 통제와 개입에 의해 각인된 장소로 고려된다. 공공 지식인은 특히 대한민국에서 포스트콜로니얼 비평가로 등장하며, 대안적 현대성을 추구하고 신체정치학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정정치와 자연적 생의 권리를 옹호한다.
교회는 공공 영역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생명과 은혜와 정의의 원천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에 옮기는 전위역할을 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서 구현된 하나님의 지배 방식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아)을 증언하며, 여기에는 회복의 정의 순전한 의생자에 대한 연대, 그리고 경제의 분배정의가 포함된다. 교회 공동체 안에는 가해자를 메타노이아로 이끌어 용서의 은혜를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하는 성령의 역동성이 존재한다. 이것은 또한 화해와 공적 의무의 복음의 핵심이기도 하다. 은혜의 하나님은 폭넓은 물질적 이해관계와 권력의 메카니즘 그리고 자연의 생의 위기에서 생명과 정의를 사랑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