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과 물질의 선택적 친화력
사적 유물론은 사회학적으로 볼 때 정치이념 또는 담론이 물질적인 이해의 스팩트럼과 권력의 지배방식에 엮어 있다. 이러한 사회학적 입장은 경제가 사회구성을 변혁이나 이행과정으로 이끄는 동력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상부구조의 에피스테와 법적 질서, 이데올로기 그리고 자연과학의 발전과 문화체계가 사회 계층화를 형성한다. 신분/계급은 자신의 권리와 물질적인 정의 더 나아가 권력에 대한 분배를 추구한다.
이런 점에서 역사는 단지 계급투쟁을 통해 인과율적이거나, 단선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층적인 시스템들이 상호 작용하면서 경제는 마지막 단계에서 밀려나간 자들의 투쟁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사실, 계급투쟁은 부르주와 사회학에 기초하며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 진화론과 생존투쟁에 속한다.
물론, 계급/신분 투쟁은 전쟁과 더불어 역사 도처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사적 유물론은 상부 구조와 물질적 하부 구조의 상호작용을, 특별히 자연과학과 기술발전에 주목하면서 사회구성을 관계의 총체로 파악한다.
예를들면 로마제국에서 중세로의 이행은 노예 계급투쟁의 환원론이 아니라 (스탈린), 노예들이 농노의 신분으로 상승하면서 대토지(빌라)를 장악한 귀족경제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가지게된다. 이러한 새로운 생산양식과 경제 시스템은 로마제국의 황제 중심의 관료제와 도시 경제의 몰락에 대신하여 사회 계층 관계론으로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사회 비판이론은 위로부터의 투쟁(상부구조) 또는 헤게모니가 어떻게 물질적인 삶의 계층화와 더불어 사회 이행 과정에 연관되는 지에 주목한다. 계급과 신분은 어우려져있고, 자연과학과 기술진보가 사회의 총체성에 미치는 역할이 중요하다.
이런 틀에서 볼 때 부르즈아 관념주의 역사는 인과율적이며, 사회구성의 복잡성을 도외시한 체 입버릇처럼 말한다: '동학에서 촛불혁명으로' - 마치 촛불혁명이 동학을 계승한 것처럼. 이러한 도식주의에 기초한 정치담론은 동학을 촛불혁명 의 원인으로 왜곡하고, 서로 다름과 복잡성을 폐기처분해버란다.
동학 정치혁명의 다층화
이념과 물질의 선택적 친화력에서 볼 때, 여러 층들이 동학혁명에 영향을 미쳤다. 생산 양식의 변화가 나타나지만, 동시에 상부구조에서 일어나는 정치 지배방식과 성리학의 이데올로기, 외세에 저항하는 보국안민이 관여된다.
이데올로기는 단지 허위위식이 아니라 주어진 사회구성의 전체 에피스테메를 의미한다. 이러한 에피스테메 안에서 지배이념은 민중의 마음을 휘어 잡으면서 때론 허위의식으로, 때론 도덕성과 승인을 기초로 헤게모니로 사회를 지배한다. 계급/신분 투쟁은 에피스테메 안에서 사회적 관계와 더불어 진행된다.
역사변화와 사회구성에 대한 사회학적, 경험적 연구는 사료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더불어 사료가 기록된 역사 사회적 조건과 지배 에피스테메의 연관성을 검토한다. 이런 점에서 수운과 동학 혁명 사이에는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
오히려 동학혁명은 다산 정약용에게 친화력을 발견한다. 1895년 관군은 동학혁명을 진압한 뒤 다산 유배지 부근의 민가와 사찰들을 수색했다. 다산 정약용의 비결이 녹두 전봉준 일파들을 선동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다산과 대안 근대성
다산은 유배지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자신이 쓴 <방례초본>을 문하생인 이청과 벗인 이순에게 주었다. 이 책은 전봉준과 김개남에게도 전해진 것으로 언급된다. 이것은 <강진읍지> '명승 초의전'에서 전해진다. <방례초본>은 <경세유포>를 말한다 (기세춘, <실학사상>)
다산에게 경학과 더불어 경세학은 정치구조와 행정체제, 형률제도, 경제제도를 비롯하여 생산기술과 군사제도 등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에서 국가와 관료제 그리고 사회문화 신분 구성을 담고있다. 도덕적 정당성과 과학 기술적 사유와 개방성은 사회개혁의 마스터플랜에 속하며, 맹자의 민본원리와 근대의 민권사상을 담고있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적인 가치와 공화제로서 국가 정체성에 소통이 된다.
공자의 정명사상은 맹자에게 무도한 왕의 무력 주벌 (정주사상)로 나가지만, 왕도정치를 포기하지 않는다. 맹자의 왕도정치에서 곤궁한 백성들에 대한 배려는 우선순위를 갖는다 (<맹자> 2.5). 인민이 가장 중요하며, 사직 (토지와 곡식의 신)은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 (<맹자> 14:14).
맹자의 정전제는 사방 1리의 토지를 우물 정자 모양으로 9등분 해 둘레의 8개 구역은 8가구에 사전으로 분배하고 여기서 나온 수확은 백성들이 소유하게 한다. 가운데 1개 구역은 공전으로 정해 공동경작하고 수확은 국가에 받치게 한다 (<맹자> 5.3). 맹자의 정전제는 조선을 연 정도전의 민본사상에 토대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은 다산에게서 급진적인 개혁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왕도정치른 넘어서 주권재민 사상은 대한민국의 대안 근대성의 원류로 작용한다.
천자라는 것은 대중이 추대해서 되는 것이다. 추대형식이 상고의 원형으로 확인되며, 이것은 아래로부터 위로의 민주주의 방식을 의미한다. 양반, 중인, 상민, 천인으로 나뉘어지는 신분차별과 지역차별을 거절하고, 온 나라를 양반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회적 평등론이 나타난다. 임금의 축출권과 더불어 국민이 정치주체로 등장하는 근대적 국민주권론은 여기서 나타난다 (금장태, <다산 정약용>,123-9).
다산은 근대의 공공성의 의미를 열어주는 철학자로 볼 수 있다. 그에게 인은 인인상여로서 상호주관적인 공감윤리를 보여준다. 그는 사회 공동체가 성립할 수 있는 근거를 타자를 향한 사랑에서 찾았고, 인도는 인간관계의 규범인 인륜으로 파악된다. 인을 실천하는 것은 자기 마음과 남의 마음을 일치시켜나가는 '서'로 제시된다. 다산에게서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인을 상호주관적인 관계에서 실천하는 규범으로 가지며, 이것은 공공윤리일 수 있다.
19세기까지 동아시아 문헌에서 '공공 개념'은 보편적 의미를 공유하는 것으로 말해진다. 서구의 경우 공공성을 둘러싼 시민사회와 연방국가에 대한 논의는 정치 철학자들에 의해 논의되었고 특히 로크와 스피노자 그리고 루소에서 절정에 달했다.
시기적으로 다산의 정치이론은 루소와 프랑스 혁명에 맞물려있다. 물론 루소의 자연철학과 교육론 그리고 <불평등 기원론> 그리고 <사회 계약론>은 고대 로마의 공화제를 기초로 하며, 시민국가의 틀에서 일반의지와 공정한 사법의 지배 그리고 국민주권을 표방한다. 이러한 민주적 공화제와 문명과 진보의 비판은 다산의 인격적 도덕성과는 다를 수 있지만, 조선의 대안 근대성을 연구할 때 중요한 비교 주제로 들어올 수 있다.
대한민국은 매우 독특한 근대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조선시대의 면을 연 정도전의 맹자의 민본에서 부터 세종임금을 통한 한글창제 그리고 정조시대 체제공을 통한 상업개혁으로 이어진다. 정치 이론적으로 볼 때, 근대성은 다산의 경세학에서 정점에 달하지만, 정치투쟁의 복잡성으로 인해 유배 당하고 꽃을 피우지 못했다.
다산의 근대적 정치이론은 동학혁명에서 이어진다. 그의 실학사상은 대한민국의 근대성을 일제에 의한 파시즘적 식민지 근대성이 아니라, 이와는 전혀 다른 대안 근대성의 길을 열어준 것으로 논의 되어야 한다. 근대성이란 수공업이나 산업으로 환원해서 자본주의적 맹아를 포착해서 가늠질 되는 그런 자본환원 방식을 말하지 않는다.
다산과 동학의 연관성을 파악하지 못할 때, 종교로서 동학사상과 정치적 항거로서 동학혁명 사이에 인식론적 단절을 간과할 때, 동학혁명은 대원군의 소중화 정책의 일부가 되고만다. 촛불혁명이 친중 사대주의를 표방하는 대원군의 후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