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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라 고르돈: 윌슨 개미연구 비판

by 파레시아 2024. 10. 17.

 

https://profiles.stanford.edu/deborah-gordon

 

스탠포드 대학의 생물학 교수이며 개미 연구가로 저명한 드보라 고르돈 교수는 <Ant Encounters: Interaction Networks and Colony Behavior, 2010>에서 곤충학에 대한 시스템 생물학적 접근방법을 열어 놓았다.

 

그녀의 연구에 의하면 개미집단은 중심적인 위계질서나 컨트롤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도 주도권을 쥐는 책임적인 존재가 없다. 오히려 개미의 생은 개미 개인들 간의 만남과 리듬과 패턴에 기초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역동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개미군집의 기능과 행동을 통전한다.

 

개미집 안에서 개미의 과제는 식량 담당 개미, 순찰 담당 개미, 청소 담당 개미, 개미집을 유지하는 담당으로 분류된다. 외부의 소동이 있을 경우 담당 개미는 순찰 개미로 역할이 바뀐다. 모든 개미들은 서로 소통하면서 주로 식량개미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과제설정에서 드보라는 개미 네트워크의 활동과 규제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춘다. 흥미롭게도 드보라는 드보잔스키의 유명한 표현을 상기한다. "생물학에서 진화의 빛 이외에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드보라는 이렇게 말한다. "진화에서 생태학의 빛 이외에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리차드 르온틴이 그의 선생 드보잔스키를 유기체와 환경의 공동구성으로 발전시켰다면, 드보라의 개미연구는 이제 시스템의 관점에서 진화와 생태학의 공동구성으로 전개한다.

 

이러한 네트워크의 접근은 복잡성의 관점에서 개미의 집단행동을 분석한다. 드보라는 개미의 유전자를 부각시키는 윌슨의 <개미언덕>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지적한다. 윌슨은 이미 1975년 <사회 생물학>에서 드보잔스키-르온틴의 입장을 전도시켰다.

 

드보라에게서 로컬 개미들의 네트워크와 상호작용 그리고 환경과의 역동적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집단적 행동을 통해 개미들은 생존하며 재생산한다. 이것은 곤충의 사회성과 더불어 에코 시스템의 구조와 패턴 그리고 생존방식을 잘 보여준다.

 

경이로운 개미찬양

 

윌슨은 <창조> 6장의 결론에서 "경이로운 개미"로 이름붙인 Thaumatomyrmex를 찬미하기 바쁘다. 이 개미의 식민지들은 10-20 개미를 포함하는 소 그룹이며, 열대 우림의 썩은 나무에 서식한다.

 

경이로운 개미의 예외적인 특성을 설명 하면서 윌슨은 자연을 땅의 하늘로 말한다. 그리고 침례교 목회자도 동의할 거로 본다. 창조가 하나님의 유일한 행동이든지 아니면, 수백년 동안에 걸친 진화에 기초한 과학적 증거든지 간에 가장 위대한 유산임에 틀림이 없다. 창조는 인간의 이성적 마음과는 다르다.

 

이러한 측면에서 윌슨은 과학자들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친교의 손을 내밀고 이들과 동맹할 것을 말한다. 그러나 윌슨의 생물종의 다양성 보존은 거의 에덴 동산의 수준으로 돌려 놓자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모든 종들을 자연적인 질서 안에서 변하지 않는 자리를 가지고 이상적으로 상호기능을 할 수 있는가? 기후변화와 환경 스트레스가 이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오히려 성서는 오하려 하나님의 지속적 창조를 통해 생태학적인 삶의 환경이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종말론적인 지평으로 펼쳐진다.

 

스테판 굴드가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태고의 어느 한 지점에 공동조상을 찾아서 이상적인 생의 자리로 되 돌아갈 수 없다. 생의 현상학에서 중요한 구조와 패턴은 중단-평형-갑작스런 유기체의 출현으로 나터나지, 공동조상이나 점진적 진화는 허구다. 본래적인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과학적아라기 보다는 사이비 종교의 신념에 가깝다.

 

그러나 윌슨에 의하면, 인간이 다양한 생물종들을 자연의 질서에 대립하여 변형시키기 전까지는 세계는 완벽한 에덴의 동산이었다 ("E. Wilson, Counter-evolutionary "evolutionary" biologist does at 92." by M. Clifton, 2021 Dec. 29).

 

<개미언덕>의 픽션

 

에드워드 윌슨은 <개미언덕, Anthill, 2010>에서 세 가지 개미 식민지들 간의 전쟁을 소설화했다. 윌슨은 이솝의 우화에서 나오는 개미묘사를 비판하고 오히려 개미의 도덕성을 배우라고 말한다. 개미들은 욕심이 많으며,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부재하며, 무절제한 소비는 이들의 자원을 고갈 시키고 사라지게 한다.

 

그런데 윌슨의 기묘한 논리는 한편에서 개미를 수동적이며 여왕 개미를 위한 장기 판의 졸과 같은 충성스런 존재로 본다. 다른 한편 개미는 인간의 지성에 맞먹는 결단을 내린다. 개미의 지성은 심지어 인간의 뇌에 비교 될 정도이다.

 

개미는 자신들의 개미언덕의 일대기를 명료하게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개미들은 많은 경우에 본능적 기계에 의해 움직이도록 프로그램화가 되어있다. 더구나 식민지의 수장인 여왕 개미를 위해 개미들은 기꺼이 죽으면서 희생한다.

 

그러나 스탠포드 대학의 생물학자 드보라 고르동의 저술 <Ant Encounters>에 의하면, 실제로 개미 군집은 자기희생의 도덕성을 발휘하는 고결한 집단이 아니다. 개미 집단은 의미없는 메세지를 소통하는 시스템과 같으며, 얼마나 많은 메세지를 받느냐에 따라 일 개미의 과제가 결정된다.

 

개미집단은 중심 콘트롤도 없으며, 전체의 생을 위한 목적도 없다. 소통의 네트워크에서 작동할 뿐이다. 윌슨의 묘사와는 달리, 개미는 여왕 개미의 죽음에 관심이 없고, 인간을 빰치는 도덕성이나 지성도 없다. 개미의 생에서 중요한 것은 메시지의 내용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구조밖에 없다. 개미로부터 배울 도덕성이 어디에 있나?

 

드보라 고르돈의 개미연구

 

드보라 고르돈은 그녀의 팀과 더불어 1996년 아르헨티나 개미연구를 통해 시스템 생물학과 곤충학의 연결 토대를 놓았다. 드보라에게 생태학은 오이코스(oikos)에서 유래하며, 이것은 개인이나 공동체 그리고 인구집단에서 네트워크의 생을 의미한다.

 

정치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오이코스 경제학을 부각시키고 시민사회 안에서 공공선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개념화했다. 이제 드보라는 오이코스 생태학을 통해 에코 거버넌스를 개미의 삶에서 발전시킨다.

 

그녀가 발표한 "침입자 아르헨티나 개미와 원주민 개미군집 간의 착취와 간섭과 경쟁"에 관한 논문은 윌슨과는 전혀 다른 개미의 탈중심적인 네트워크를 보여준다. 그녀는 침입자 아르헨티나 개미의 식민주의 해악을 분석하면서, 개미찬양에 대한 윌슨의 낭만주의를 위험한 상상력으로 비판한다.

 

그녀는 개미의 삶에서 자기 조직화, 복잡 시스템 그리고 탈중심적 행동결정을 부각 시킨다. 개미의 집단적 행동은 유전자가 아니라 네트워크에서 결정된다. 심지어 여왕 개미도 명령하지 않는다. 개미집단에는 메니저도 없으며 관료지배도 없다. 환경에 대한 반응은 개미집단의 로컬 네트워크의 소통과 시냅스 그리고 세포들간의 화학적 상호작용에 근거한다. 드보라의 연구는 복합적인 생물학적 시스템에 관한 것이며, 개미 군집들의 행동은  역동적인 상호작용의 네트워크에서부터 나타난다.  

 

드보라의 말을 들어보자; " 개미들의 상호작용의 방식은.....개미들이 하는 일을 결정한다. 개미들의 활동은 상호작용을 포함하여 그 환경을 변형시킨다. 이러한 전체과정이 스스로 전개된다. 이것은 모든 살아있는 시스템들에게 적용된다. 태아의 세포발전에서, 각각의 세포의 운명은 서로에게 미치는 상호작용에 근거한다. 세포의 내부에서 유전자가 특정한 시간에 켜지며, 새포 안에서 변화하는 화학적인 성분에 대한 반응이 있으며, 다른 세포들과의 접촉이 있다.  유전자를 켜게하는 것이 세포가 생산하는 것을 결정한다. 이것은 또한 세포가 국소적인 화학적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결정한다. 이러한 환경은 유전자를 켜거나 꺼버리는 피드백을 한다." (Gordon, Ant Encountrs, 11). 

 

개미의 삶을 규제하고 주도하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세포 시스템의 자기 조직화이며, 개미 유기체의 환경에 대한 식민지 구성에 있다. 드보라의 개미연구는 윌슨의 개미찬양에서 나타나는 과장법을 거절한다.

 

드보라 고르돈: 에드워드 윌슨 회상

 

2019년 <뉴욕 타임즈> 인터뷰에서, 드보라는 윌슨이 개미군집에서 개별 개미들이 유전자로 프로그램화되어 있어 집단적으로 유익한 일을 한다는 주장이 근거 없다고 말했다. 물론 개미는 자기 업무를 바꾸기도 하며, 식민지의 필요한 조건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지성적이라기 보다는 임의적이고 혼란스러운 것이다.

 

드보라는 80년대 하버드 대학의 연구원으로 일을 했다. 그녀는 토론과정 중 윌슨이 일어서서 소리치면서 그녀의 입장을 반대 했다고 말했다. 윌슨은 드보라가 교수직을 얻지 못하도록 엄청난 방해를 했다.

 

윌슨은 1997년부터 지구는 여섯번째 대멸절기에 접근하고 있다고 마치 남 침례교적 시한부 종말론과 같은 묵시적 담론을 퍼트려왔다. 이것을 윌슨은 페르미안 대멸절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윌슨의 종교적 편향이며 공포조성의 과장법적 표현이다.

 

미국에서 윌슨의 <사회생물학>과 <통섭>은 유전자 게놈 지도의 형편없는 성적표로 인해 학계에서 밀려 나간다. 그런데 이런 위험하기 짝이 없는 파시즘 생물학이 한국에선 판을 친다. 나의 조국은 참 이상한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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