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의 통찰
베버는 뒤르캠이나 프로이드처럼 토템에 관심이 없었다. 더우기 프로이드처럼 과학에 대한 절대적인 신봉을 갖지 않는다. 과학은 운명에의해 지배 당한다.
그러나 뒤르캠의 종교적 신념과 제의실천은 베버의 성서 유대교연구에서 정치 사회학적인 차원에서 발전된다. 베버에게서 세계의 마술적인 힘 다시말해 비주술화 과정에서 합리성은 종교로 부터오며, 인간의 사회구성과 윤리적 발전에 기여한다. 이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종교적인 기여로 볼 수가 있다.
베버에게서 문화는 가치이념에 속하며 역사적 과정에서 종교이념과 물질적인 이해관계와 더불어 이것을 수행해나간 담지자들의 의미있는 행동와 가치 지향성에 주목한다. 종교 안에 담겨져있는 문화적 가치와 믿음체계는 행위자들의 사회구조들 (경제와 정치지배)에 대한 역동적인 관계와 더불어 이들의 심리학적인 지향을 분석한다.
이러한 사회학의 발생론적인 측면을 통해 역사, 사회 문화적 과정과 전개에서 모든 가치들은 변화되고 새롭게 구성된다. 이것은 프로이드적인 결정론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지적한다. 베버의 이해 사회학은 발생론적인 차원을 가지며 의미는 시대마다 다른 합리적인 행위에서 규정되지만, 여기서 심리학적인 차원 (신정론의 문제)에서 드러나는 비합리성을 고려한다.
종교 이념 (또는) 합리성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물질적인 관계의 총체에서 즉 사회문화의 계층과 구조 안에서 인간의 행동을 이념형으로 분류하고 분석하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재구성한다. 문화적 동물로서 인간은 가치와 도덕 합리성을 가지며 세계와 관계하고 변화 시켜나간다. 이것은 자연과학의 실험실이나 또는 무의식의 원리를 통해 인간과 문화를 설명하거나 이해하는 객관주의나 심리주의와는 결을 달리한다. 문화의 객관적인 차원은 인간 행동의 합리적인 지향성을 분석함으로 써 가능해진다.
이러한 복합적인 사회현상을 베버는 차이와 유사성을 논리적으로 추론하면서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선택적 친화력을 본다. 이러한 역사적인 친화력을 베버는 이념형(또는 적합형)으로 추론하고 사회학의 방법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러한 이념형은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한 비교연구를 통해 발전시킨다. 행동을 주도하는 종교의 "윤리"가 자본주의 경제의 정신 내지 이념에 묶여지고, 가치 합리성에 근거된 윤리적 행동을 다른 종교들과 문화를 비교하면서 다양한 역사적 방식으로 연구된다.
종교나 인간의 행동은 심리주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합리성(목적, 가치, 감정, 전통)의 형식에 기초해서 나타난다. 그러나 종교를 기초로 나타나는 합리화과정은 우리시대에 과학기술의 발전과 지성의 전문화, 세속화 또는 관료지배로 인해 모든 삶의 가치와 의미들은 상실되고 결국 쇠우리 창살 우리에 갇히고 만다. 그러나 여전히 비주술화된 이전의 신들은 무덤에서 되살아나 우리 시대에 가치 다신주의로 회귀한다. 한편에서 합리화과정의 귀결인 쇠창살우리와, 다른 한편 가치다신주의 출현에서 베버는 니체처럼 예술의 길로 가지 않고 가치합리성에 기초한 심정윤리와 책임윤리 (특히 정치영역에서)의 길로 간다. 인간은 역사적 영향을 받는 문화적 콘텍스트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며 살아간다.
종교는 삶의 의미와 자유를 위해 가치와 도덕의 문화를 창출한다. 베버는 그의 <고대 유대교> 에서 야훼주의와 이스라엘의 사회적 집단성의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사회변화는 지리적인 조직과 도시화에서 검토하며, 솔로몬의 독재이후 북왕국과 남왕국의 분열에서 파악한다. "오리엔탈 전제주의"는 권력을 가진 왕에 의해 행해진 임의적인 현상이 아니라, 유프라테스나 티그리스 그리고 나일강으로 인해 홍수방지와 관개 시설에서 비롯된다 (Ancient Judaism, xix).
유대교가 갖는 세계사적인 중요성은 유일신론이 아니다. 그것은 이집트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집트나 바빌론에서 유일신론은 마술을 제거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언자 운동에서 매시아주의는 야훼주의에 의해 종말론적인 대망사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에 레위 제사장그룹들의 목회적 차원 즉 영혼의 돌봄이 존재한다. 예언자들은 제사장 그룹의 실천에 관련되며 마술을 제거하고 윤리적 숭고함을 강화한다 (ibid., xx-xxi),
이러한 윤리적 유일신론에서 베버는 프로이드가 모세를 토템연구로 연결한 시도를 거절한다. 토템미즘은 종교의 본래적 형식이 될 수가 없다 (Freud, Moses and Monotheism). 예언자들의 윤리적 유일신 운동과 팔레스티나 전제정치는 서로 대립되며, 가난한 농민들과 착취당하는 주변부들 그리고 가축을 치는 목자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런 점에서 베버의 유대교 유일신론 연구는 프로이드의 모세 해석과는 전혀 다르다.
프로이드의 모세 이미지
프로이드에 의하면, 모세는 파라오 아케나톤(1364-1347)의 유일신 종교를 받아들인 이집트인ㅡ모세라는 이름은 이집트어로 "아들"이란 의미이다ㅡ이며, 유대인들을 이러한 종교로 개종시켰다. 그러나 모세는 유대인들의 반란에서 살해당했고, 이러한 살해행위는 반란자들의 무의식에 죄책감을 심어놓았다. 모세의 살해는 토테미즘의 원초적 아버지 살해와 일치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에서도 나타난다ㅡ이 모든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기초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에서 프로이드는 모세 (원초적인 아버지) 살해이론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지파동맹도 부친살해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왜곡된다. 그리고 모든 문화에 걸쳐 나타나는 유아시절은 원시사회를 향해 심리학적으로 투사되어야한다. 원시문화에서 모신과 모권제는 프로이드의 가부장적인 이론에 의해 밀려나간다.
토테미즘과 유일신론적인 남신은 프로이드의 <모세와 유일신교>에 여과없이 수용된다. 하니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의 집단폭력과 살인행위에서 기초되는 가? 이것은 희생양 메카니즘 (르네 지라드)에 기초된 포로이드의 비약적 공상은 아닌가? (르네 지라드 <폭력과 성스러움>, 295).
비평적 담론 해명
프로이드와는 달리 모세는 애굽이 아니라 셈족에 속하며 야훼의 메신저(J), 카리스마적 지도자 (E), 기적을 행한 자(JE), 하나님의 영광을 대변한 자(P)로 볼 수 있다. 다양한 모세전승에서 역사적 모세를 이해하는 것이 성서 비평적으로 의미가 있다.
모세에게 외삽법적으로 오이디푸스 신화를 갖다 부칠 이유가 없다. 더우기 이집트의 문서에서 모세가 태양을 유일신으로 섬긴 파라오 아케나톤의 영향을 받았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이것은 모세의 야훼 중심주의와는 다르다.
모세전승에서 성서는 시내산 경험을 오늘날 현대인이 생각하는 객관적 역사서술이나 실증주의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역사자체를 초월하며, 이들의 삶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증거한다. 심지어 출애굽애는 이집트의 왕이 이름이 언급되는 것이 아니라 공식호칭인 파라오가 사용된다.
출애굽기 3장 1-6절에서 모세가 호렙에서 목격한 불타는 떨기나무 ('세네')는 시내산을 지칭하며, 야훼는 가시 떨기 나무(세네) 가운데 계시던 분 (신 33:16)으로 고백된다. 이 하나님은 정체불명의 하나님이며 얘측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나는 내가 있을 곳에 있을 것이다." (출 3:14)
시내산에서 야훼경험은 루돌프 오토가 표현한 '두렵고 떨리는 신비로움' (mysterium tremendum et fascinans)으로 나타나며 (출 19: 16-22), 모세의 삶은 야훼체험의 삶의 자리에 설정된다 (존 레벤슨, <시내산과 시온>, 39-40).
민수기 16장은 고라의 대반란을 상세하게 보도한다. 그러나 역사적 모세가 반역으로 인해 살해당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보도는 없다. 오히려 그의 카리스마적 예언자의 권위와 고난 (민 11: 11-17: 이 자료는 가장 초기전승인 JE에 속한다) 이 오히려 신명기 사가에 의해 존중되었다. 후대의 역사에서 그의 예언자의 모범 (신 18:18)은 그의 죽음을 이스라엘을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신:18:18). 이러한 입장이 성서 비평적으로 더 큰 의미가 있다(Gottwald, The Hebrew Bible, 197)
물론 희생양을 향한 만장일치적인 집단 폭력은 히브리 성서에서 희생양의 제의로 나타나지만 야훼의 살해나 부친의 살해를 언급하지 않는다. 성서에서 원죄개념은 부친살해의 심리학에 기초하는 가? 바울에게서 원죄가 생물학적으로 유전 되는가? 오히려 가인과 아벨에게서 나타나는 형제 살해가 역사의 과정에서 보다 더 중요한 사회학적인 의미를 갖는다.
스가랴의 예언에서 야훼와 같은 인물에 대한 집단살해는 영적 대각성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메시야에 대한 이스라엘의 거절로 볼 수 도 있지만, 남성뿐만 아니라 유다 지파의 모든 사람들에게 회심과 대각성이 나타난다. 오히려 야훼의 이미지는 프로이드는 달리 단순히 가부장적이 아니라 이사야서에서 자궁과 관련된 긍휼의 메타포로 나타나기도한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인격성 (마틴 부버)은 환상과 소원성취에 연결된 가부장적 투사에 불과한가? 오히려 전적타자에 대한 영적갈망(호르크하이머)은 사회의 불의와 억압을 변혁하려는 예언자적인 파토스와 더불어 고통스런 하나님의 모습 (아브라함 헤셀)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이 지점에서 배버의 예언자 이해는 정당성을 갖는다. 예언자들은 정치적인 비판과 중요성을 갖지만, 결코 정치적인 분파에 속하지 않았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처럼 어떻게 하면 좋은 시민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예언자들의 관심은 종교적이며 야훼의 계명을 준수하는 윤리적인 데 있었다 (ibid., 275).
흥미로운 것은 프로이드는 말년에 찾았던 성적관계를 넘어선 사랑의 차원을 아인슈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타난다. 히틀러의 파시즘에 직면하여 그는 성적인 목적이 없는 사랑이 간접적으로 전쟁에 저항하는 길로 말한다 (Kung, Does God Exist? 323). 이것은 기독교의 이웃사랑을 긍정 하는가? 적어도 프로이드는 이웃사랑에 헌신한 삶을 보여준다.
베버는 여기에 공감할 수 있다. 스피노자의 아코스미즘 즉 무우주적 사랑이 베버의 사회학에서 결정적이다. 이러한 사랑은 고대 유대교와 심지어 바리새파들에게서도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