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언어학적 접근 (cultural-linguistic)
나는 문화 언어학적 접근을 레비 스토로스의 구조인류학과 클리포드의 기어츠의 문화상징을 통합하면서 발전시킨다. 기어츠에게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닭싸움 놀이는 섹스피어의 고전만큼이나 원주민의 문화를 열어가는 싱징적인 택스트가 된다. 이것은 집단적으로 유지되는 상징구조이며 "중요한 것에 대해 중요한 것을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수단일 수 있다. 사회학적 원리는 문화 언어학적 접근에서 닭싸움 자체를 지지하기 보다는 이러한 문화 놀이에 담겨있는 사회 의미론으로 연결되며, 문화는 텍스트의 수집이나 조합 또는 앙상블로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기어츠는 스피노자의 자연 해석학을 수용하는데, 자연해석(interpretatio naturae)은 스피노자에게서 자연을 성서 텍스트로 독해하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신 또는 자연 (Deus sive Natura) 개념이 자연세계의 양태들을 동등하게 취급하듯이, 기어츠는 문화적인 형식들을 사회적인 자료에 기초한 텍스트 (사회 의례나 오락활동)로 취급하고 체계적으로 독해한다.
문화는 상징적인 시스템이 되는데 기어츠는 문화개념을 기호론적으로 파악하며, 막스 베버와 더불어 인간은 의미의 웹에 걸려있는 동물로 정의한다. 문화는 이러한 연결된 그물망이되며, 이것을 분석하는 것은 법칙을 쫒는 경험 과학이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해석적인 성격을 갖는다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 5).
여기서 문화 언어적 (cultural lingustic) 의미론은 문화내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점 (emic perspective)과 외부관찰자의 관점 (etic perspective)의 대립을 넘어서서 두터운 기술을 통해 문화의 다차적 실재들을 정치와 경제 그리고 종교와 연관하여 이해하려고 한다. 베버가 행위자의 합리성에 주목하여 자신의 이해 사회학을 발전 시킨다면, 기어츠는 문화적 형식과 실천들을 상징적인 의미을 담고있는 텍스트로 파악하면서 뒤르캠의 집합 사회학을 접합 시킨다.
무엇보다더 기어츠의 문화 해석이론의 기호론적 성격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와 선택적 친화력을 갖는다. 신화나 토템의례, 혼인규칙, 등은 개인의 삶의 양식에 의미와 영향을 미치는 텍스트로 해석될 수 있다. 인간은 해석하는 동물이며 해석을 언어행위와 소통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이러한 문화적 형식들을 풀어야할 암호나 기호로 취급했지만, 문화의 상징형식들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지각과 의미, 감정, 개념과 태도 등을 어떻게 조직하며 기능하는 지 고려하지 못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러한 것들을 기호학적으로 내적 논리와 구조에 따라 이해하려고 했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체성의 과학은 주체와 모든 대상 그리고 콘텍스트와 독립한 체로 진행된다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 449).
만일 레비-스토르스가 문화 시스템의 독해를 통해 <야생의 마음>의 마음을 이해 했다면, 이것은 그의 해석이론에 속한다. 인류학자는 그가 해독 하려는 문화 시스템과 분리될 필요가 없으며, 문화의 객관적 구조와 시스템이 개인의 주체에게 영향을 지대하게 미치지만 여기에 활동적으로 관여하며 변형시키는 주체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다.
기어츠에 의하면 인도네시아가 화란의 식민지배애 있을 때 발리 섬에서 닭싸움 놀이는 야만적이며, 낙후하고 반진보적이며,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발리의 닭싸움 놀이는 심층놀이에 속한다. 이것은 이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회학적으로 볼때, 이들의 생활 양식과 존재를 드러낸다. 닭싸움은 심층놀이로서 반복적으로 재현되면서 발리 섬의 주민들의 삶의 양식과 의미 그리고 이들의 존재 더나아가 화란의 식민지에 저항하는 의미의 정치를 보게한다.
이것은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읽으면서 이 작품이 우리의 존재와 주체성의 차원을 열어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의 문화는 텍스트의 앙상블이며, "무엇인가에 대해 무엇인 가를 말하는 것"은 누군 가에게 말하는 것이며, 해석가에게 분석과 설명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사회는 자체상 자기 해석을 포함한다 (ibid., 453).
<야생의 사고>와 상징구조
레비 스트로스의 인류학은 루소가 식민주의를 비판하면서 돌출한 야생적 문화에 지대한 영향울 받았다. 그리고 레비- 스트로스는 마르크스의 사회이론에서 경제적 토대를 심층구조로 수용했다. 기어츠의 분석에 의하면, 레비-스트로스는 심연에 추를 드리워 측량하기위해 해양으로 들어간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의 긍극적인 목적은 타자를 포함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주체성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부의 전거체계로 해소하는 데 있다. 문화 기술학에서 그의 분석원리는 문화를 자연으로 즉 야생의 사고로, 삶을 생리학적-화학적 전체성의 조건으로 재통합한다 (Geertz,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 346).
<야생의 사고>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야생적인 멘탈리티가 문명화된 마음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다. 사회적인 무의식의 질서가 관계와 차이 그리고 판별을 기초로 사회적 실재 (부족조직, 동식물의 분류, 개별 대상에 대한 이름 부치기, 신화와 예술 등)를 형성하며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언어문법과 구조에 기초한 문장론과 비슷하다.
레비 스트로스의 연구는 사회학의 영역에서 뒤르캠과 더불어 고전의 자리를 차지하며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이론을 문화 인류학의 차원에서 허구로 폭로한다. 물론 토템적 사유는 고대 그리스적 사유나 헤브라이즘 또는 인도 유럽의 문화와는 다르다. 야생의 문화에서 브리콜라주 (손재주)는 많은 수단들을 가지고 손으로 작업하는 장인에 비교 되는데, 여전히 말하는 주체의 의미가 있다.
토템의 세계에서 자연과 문화는 겹친다. 곰과 독수리 거북이 등은 사회그룹들 (씨족 A, 씨족 B, 씨족 C 등) 간의 사회학적 차이들에 상응한다. 원시인이 자신의 씨족이 곰에게서, 그리고 이웃씨족이 독수리에게서 왔다면, 이것은 무지한 생물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식에서 메타포리칼 방식에서 자신과 이웃 씨족의 관계를 분류하는 것이다 (Geertz,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 353).
이러한 관점에서 리쾨르가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이 "말하는 주체"를 실종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문제의 여지가 있다. 물론 히브리적 토라를 토템적 브리콜라주 (손재주)에 적용할 수 없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신화적 사고의 특성은 주어진 한정된 자료를 가지고 구성하기 때문에 잡다하고 광범위하게 자기를 표현한다. 달리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신화적 사고는 지적인 손재주 (브리콜라주)일 수 있다.
그러나 리쾨르가 레비-스트로스에게서 간과한 것은 야생의 문화에서 구체적인-메타포리칼 방식에서 행해지는 소통 행위의 중요성에 있다. 신화적 사고는 야생인의 소통활동이나 상징구조나 의례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엮여져 있다. 물론 리쾨르의 해석학은 거절될 필요가 없다. 기어츠에 의하면 인류학자는 사회적 담론을 기입하고 받아적는 사람들이다. 행위의 기입에서 리쾨르는 무엇이 기록되는 가에 주목했다. 말함의 사건이 아니라 말해진 것을 우리는 이해한다. 말해진 것은 의도성의 외면화이며 담론의 목표를 구성한다. 말한 것은 진술된다. 우리가 기록하는 것은 말함의 노에마 (의미, 사유, 내용, 요점)이며, 다시말해 이것은 언어사건 자체가 아니라 언어사건의 의미를 지적한다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 19).
레비-스트로스의 '구체성의 과학'에서 야생인들은 자연과 사회와 자신들에 대한 노에마 즉 생활세계를 만들어간다. 이들은 지각된 대상들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환원시키지 않고 자연과 동식물들과의 생생한 경험을 이해될 수 있는 전체로 분류한다. 이러한 구체성의 과학은 캥거루와 타조 그리고 태양과 달의 변화나 주기적인 계절의 차이를 정확히 구분하고 안다.
문화 언어학적 모델 (cultural-linguistic model)은 해석학의 역사적 차원과 존재론에 앞서 문화를 이해할 때 공시적인 차원 즉 문화적 실천과 시스템이 어떻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에 주목한다. 문화의 상징구조와 실천형식에 대한 공시적인 접근은 문화를 의미론적 텍스트로 이해한다. 야생의 사고에서 우리는 자신의 문화를 상징적인 구조와 시스템을 통해 세계와 사회를 해석하고 소통해나가는 방식을 추적할 수 있다.
문화 의미론은 문화의 전통에 다가갈 때 통사론적인 차원 즉 역사적인 이해와 존재론의 측면을 고려한다. 다시말해 문화 언어학적 모델은 사회 시스템이나 집합 무의식을 문제틀 하는 사회학적인 성격을 가지며, 그것을 사회 의미론을 통해 독해하며, 또한 역사와 전통을 통해 타고 들어오는 문화의 침전도를 사회학적으로 해석한다.
이 지점에서 레비 스트르스의 <야생의 사고>는 사회학적인 차원에서 특히 알랙시스 토크빌이 미 원주민에 대한 문화분석을 통해 보충될 수 있다. <미국에서의 민주주의>에서 토크빌은 미 원주민의 문화적 삶을 기술했다. 원주민은 문명에 필수적인 전제 조건 즉 농업이 결여되어 있었다. 사냥의 불안정하고 모험적인 삶에 한 번 빠져든 원주민의 수렵 문화는 농업이 요구하는 지속적이고 규칙적인 노동에 대해 혐오감을 가져온다. 인디언들은 노동을 단순한 악이 아니라 수치로 간주했다.
<야생의 사고>와 문명의 마음
토크빌의 분석에 의하면, 인디언은 껍질로 지은 오두막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산업과 노동의 걱정을 비천한 직업으로 여긴다. 농부를 고랑을 파는 소에 비유하며; 심지어 가장 정교한 수공예품에서도 노예의 노동 외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원주민은 백인의 힘과 지적 위대함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백인의 노력의 결과에 놀라기는 하지만, 백인이 이것을 얻는 방법을 경멸한다. 백인의 우위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우월성을 믿는다. 전쟁과 사냥만이 원주민에게 남자의 직업으로서 가치 있는 활동으로 여긴다.
북미 원주민들의 악습과 편견은 이들이 농업화되고 문명화에 방해가 되었다. 남부 여러 부족들, 그 중에서도 체로키와 크릭 부족들은 대서양 연안에 정착한 유럽인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 이 부족들은 북부의 부족들처럼 이곳저곳으로 쫓겨나지 않았지만, 사냥꾼들이 깊이 들어가기 전에 덤불 속의 사냥감처럼 점차 좁은 한계 안에 갇히게 되었다. 문명과 죽음 사이에 놓인 인디언들은 백인들처럼 치욕적인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들은 농업에 종사하게 되었고, 옛 습관이나 방식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도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희생했다.
체로키족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들은 문자 언어를 만들었고, 영구적인 정부 형태를 세웠으며, 신세계에서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그들은 모든 옷을 갖추기 전에 신문을 창간했다. 유럽식 습관의 성장은 이들 인디언들 사이에서 생겨난 혼혈로 인해 놀라울 정도로 가속화되었다. 체로키족의 성공은 인디언들이 문명화될 수 있음을 증명하지만, 그들이 문명화에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
역사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야만적인 인종들은 점진적으로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문명화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들이 외부 인종으로부터 지식을 얻을 때마다, 그들은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에 있지 않고, 정복자와의 관계에 있었다. 정복된 인종이 계몽되고 정복자가 반 야만인일 때, 예를 들어 게르만 민족의 로마 침공이나 몽골의 중국 침공과 같은 경우, 정복자는 피지배 문화에 동화되고 만다.
그러나 물리적 힘이 있는 쪽이 지적 우위를 가지고 있을 때, 정복당한 쪽은 거의 문명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후퇴하거나 파괴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야만인들은 무장을 하고 지식을 찾으러 나가지만, 지식이 외부로부터 이들에게 올 때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륙의 중심부에 거주하는 인디언 부족들이 자신들을 문명화하려는 충분한 에너지를 모을 수 있다면, 아마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인들이 그들의 국경에 나타날 때, 그들은 적어도 이들의 토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정복자들과 통합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인디언들의 불행은 문명화된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는 것이며, 문명화된 사람들은 다름아닌 지구상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민족이라는 점에 있었다.
숲의 자유 속에서 살던 북미 인디언은 가난했지만, 누구에게도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백인의 사회적 계층에 들어가고자 할 때, 그는 가장 낮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무지하고 가난한 상태로 과학과 부의 영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동요와 악과 위험에 시달리며, 동시에 자랑스러운 감정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온 후, 그는 지치고 불명예스럽고 비참한 상태에 굴복해야 하며, 힘들고 비열한 노동으로 자신을 부양해야 한다.
두터운 기술과 다차적 실제들 (multiple realities)
두터운 기술은 문화를 이해하는 방식이며 복잡한 개념적 구조들과 자료의 중복성을 추구한다. 자료층들은 서로 중복되며 상하관계로 엮어져있다. 처음에 자료수집에서 이상하고 이질적이며 비정규적인 것은 두터운 기술을 통해 문화의 상징과 공공성으로 드러난다. 문화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문화는 사회적으로 설정된 의미구조로 형성되며, 이것은 개인이 다른 문화와 전통의 세계로 들어갈 때 분명해진다. 문화적으로 낯설은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에게 수수께기에 속한다. 설령 언어를 안다고 해도 낯설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비트겐슈타인)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 13).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인간의 삶과 문화는 사용되는 공적인 언어게임을 통해 그리고 규칙과 관습을 추종하면서 삶의 형식을 만들어낸다. 문화의 다름과 독특성은 이러한 언어와 삶의 형식에 기초한다. 현상학적으로 표현하면 문화와 언어는 생활세계로 포섭되며, 유럽의 생활세계와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생활세계는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생활세계의 구조 안에서 역사적 사건들, 정치, 경제, 종교와 문화의 영역 등에서 다차적 실재들과 이들의 발전과정이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기어츠의 두터운 기술은 일체의 환원주의적 설명방식을 거절한다. 왜냐하면 문화는 힘이나 권력관계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 사회적 사건들과 행동들, 제도들 또는 과정들이 인과적으로 연결되며 의미를 산출한다. 다시 말해 문화는 콘텍스트이며, 지성적으로 이해하기위해서 두텁게 기술 되어야한다 (ibid., 14).
콘텍스트에 기초한 두터운 기술방법은 토크빌의 미원주민에 대한 분석에 연결될 수 있다. 토크빌의 사회학적 문화기술은 문명의 과정에서 사회적 노동과 산업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그러나 원주민이 아생의 사고와 문화를 포기하고 백인들의 문명에 적응하는 것은 고통스러우며 자신들의 삶의 파괴를 의미했다.
이것은 루소에게서 반향을 갖는다. 자연의 상태에서 인간의 삶은 진보와 문명의 상태에서 보다 더 행복하다. 토크빌은 문화의 콘텍스트적 성격을 야생인과 문명인의 만남에서 기술한다. 루소에 의하면 언어는 자연의 상태에서 위험으로부터 도움을 구하는 외침의 소리에서 시작하며, 양심의 소리는 타인에 대한 생각과 연민을 음성과 제스처를 통해 표시된다. 보다 밀접한 소통을 위해 문자의 언어가 공동의 승인을 통해 담론의 논리로 만들어지며 음성을 문법적으로 변화시킨다 (“Second Discourse,” Rousseau, The First and Second Discourses, 122-3).
사회규범이 친족관계와 호칭에 관련된다고 해도, 이것이 소유와 권력관계로 분화될 때 사회 계층화가 되며 언제든지 카스트 지배제도가 나타난다. 여기서 부에 대한 경쟁과 라이벌 의식, 그리고 권력과 지배를 위한 경쟁과 투쟁이 출현한다. 더 나아가 집단 간의 이해 충돌과 더불어 타자를 희생시켜 수익을 얻으려는 욕망이 자연의 상태를 벗어난 원시사회를 지배한다.
이러한 루소의 불평등의 기원에 대한 계보학은 문화 연구에서 사회학적으로 중요하게 통합될 수 있고 토크빌의 원주민 분석에서 이어진다. 문명과 문화가 장기지속하는 구조의 역사를 말한다고 해도, 이것은 사건의 역사와 사회 구조의 변화와 파열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와 대립될 필요가 없다. 완벽한 신화의 네러티브에만 기초한 공시적 문명이나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신화나 사가 (saga)의 스토리는 역사를 해석하는 틀을 제공하며, 의미론적 텍스트가 될 수 있다. 모든 토템의 문화가 오이디푸스 신화로 일반화되지도 않는다.
레비-스토로스에게서 신화, 토템제의, 결혼규정 등은 의미론적 텍스트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상징적인 의미가 사회적 기능과 물질적 이해와 권력관계와 관련하여 형성되고 체계 변환될 때, 이것은 인간의 감정과 개념과 윤리적 태도, 더 나아가 사회구성을 다르게 조직한다. 진정한 의미담화가 사회의 심층구조와 더불어 문화 침전적으로 문화 사회의 상징계의 질서안에 들어와있다.
이러한 측면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과 문화적 삶의 형식 그리고 생활세계 이론 (의미구조)에 접합될 수 있다. 의미있는 상징 체계에 기초된 문화구조 (언어, 신화, 제의, 예술)는 소통/교환과 삶의 의미를 위해 역사적으로 진화하며,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삶에서 경험된다. 문법과 발화행위는 문화를 두텁게 기술하는 방식에서 같이 작용한다.
나는 문화 언어학적 모델을 공공신학을 위한 중요한 인식론으로 수용한다. 문화나 사회적 사건이나 제도들은 상징적인 시스템에서 그 자체적으로 파악되며, 이러한 통전성에서 개별적인 요소들은 조직되며 기능한다. 이러한 기능을 통해 토대로 깔려있는 심층구조는 드러나며 이데올로기 형식이 표현된다. 이러한 시스템 모델에서 해석의 차원 (리쾨르)과 기호학은 문화와 사회를 의미론적 텍스트로 해석하고 노에마를 추구하는 두터운 기술을 시도하는 데 수용될 수 있다.
공공신학의 사회 과학적 인식론: 야생인을 이해하기위해 야생인이 될 필요가 없다, 이들의 행동의 합리성을 파악하고 이것은 문화의 상징구조안에 텍스트처럼 담겨져있다. 내부의 문화 시스템으로부터 역사적 사건들과 사회제도들 그리고 행위자들의 역할을 네트워크를 통해 두터운 기술로 파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