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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제와 경제적 정의

by 파레시아 2025. 2. 7.

유효한 역사: 봉건제와 경제적 평등

 

유교적인 의미에서 경제적 평등은 프랑스의 봉건제와는 다르다. 유럽에서 봉건제는 9세기에서부터 15세기 까지 지속된 법적,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 정치적 관습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 왕과 제후들의 관계를 기초로 왕은 땅과 권력을 귀족들에게 하사하고, 그 대신 귀족들은 왕에 대한 충성과 군사력과 세금을 받친다. 봉건사회는 영주와 농노로 이루어진 장원제를 기초로 한다. 각 장원의 통치자 영주 (가신)는 쌍무적 계약을 통해 상위 영주 (대영주)의 가신이 되고 대영주는 왕이나 황제와 쌍무계약을 맺는다.  

 

봉건영주인 제후는 국왕의 가신이지만 스스로 많은 가신을 두고 독립국가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봉건사회는 귀족과 사제, 그리고 농민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탈중심적인 정부 시스템이며 토지를 가진 귀족이나 제후가  농민을 지배했다. 프랑스는 1789년 제헌 의회에서 봉건제 철폐령을 내렸다.

 

조선은 봉건제라기 보다는 왕권 중심과 사대부와 관료제 그리고 가렴주구의 지배에 의해 농민이 수탈당하는 체제로 특징된다. 성리학은 네 가지 신분 즉 양반, 중인, 상민, 천민 계층을 합리화했다. 경제 구조의 변동으로 많은 농민들은 농토에서 밀려나 상공업자나 또는 임노동자가 되었다.사농공상의 신분이 위계질서적으로 확립 되었다  

 

동학은 시천주보다는 척왜양과 보국안민 그리고 농민들의 삶을 존중하는 정치혁명의 성격을 갖는다. 믈론 여기에는 당대 동학을 수용한 유교 지식인들의 지지를 무시할 수 없다. 동학은 반봉건보다는 조선 후기의 실천적 대안 근대성을 한편에서 인내천으로 다른 편에서 집강소의 지방 자치를 통해 정치혁명을 시도한다. 이것은 시민사회와 참여 민주주의의 원류로서 수운의 시천주에서 선택적 친화력을 발견한다. 수운의 인이시천 또는 인즉천은 의암 손병희의 인내천으로 급진화 되었다.

 

동학의 정치혁명의 중요성은 대한민국의 대안적 근대성의 시작으로서 삼일 만세운동과 더불어 임시정부의 헌법 제 1조 즉 민주 공화제로 확립된다. 3.1운동 이후 의암 손병희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구성에서 대통령으로 선임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민주 공화제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헌법 1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일제의 파시즘 헌법을 기초로한 식민지 근대성을 너머서는 대한민국의 대안적 근대성의 사법적 토대이다.  이것이 동학의 정치혁명의 유효한 역사에 속하며, 역사 사회학은 이것을 통해 현재의 역사를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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