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다윈 생물학의 역사적 배경
다윈의 진화론에서 자연선택은 생존투쟁과 경쟁 그리고 적자의 생존을 부각시키지만, 1953년 프란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의 DNA 이중구조 나선과 역할의 발견은 분자 생물학에서 혁명을 의미했다. 그러나 크릭과 왓슨의 중심 도그마 즉 DNA- RNA-프로틴의 일직선 방향은 유기체 발전 생물학으로 부터 맹공을 당했다.
시스템 생물학에 의하면 유전자의 시스템에서 나타나는 복잡성은 게놈ㅡ생명체의 유전자 전체ㅡ에서 수 많은 질서가 발생하며, 이것은 유전자 배열의 자기조직의 특질과 결과로 나타난다. 수많은 질서와 자기조직의 특질은 자연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유롭게 활동한다.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복잡계 이론은 포스트 다윈의 방향성을 가리킨다. 카우프만은 일리야 프리고진의 확산구조와 비평형 열역학법칙을 수용하면서 혼돈의 가장자리에 일어나는 생명의 출현을 부각시켰다. 이것은 유기체적 창발성 이론을 말한다.
확산구조와 자기 조직성 내지 창발성은 살아있는 유기체의 집단 촉매과정에서 창조성을 드러낸다. 카우프만의 종교적 자연주의는 지속적 창조성을 하나님으로 부르기도 한다. 공동 창조나 또는 진화에서 창발적인 접근은 생명 내재적 경향에 기초한다. 이런 점에서 카우프만은 칸트의 제자이다.
시스템 생물학의 발전의 시기에 1980년대 부터 하버드 대학에서 전쟁처럼 나타난 사회생물학 논쟁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논쟁은 에드워드 일슨이 1975년 <사회생물학>을 출간하면서 그의 하버드 대학 동료 교수 리차드 르온틴과 더 나아가 드보잔스키의 입장을 뒤집으면서 시작 되었다.
르온틴은 드보잔스키의 제자이여 영국의 생물학자 스티븐 로즈와 더불어 유전공학과 유기체 중심의 생물학의 수장으로 정평이 나있다. 사회생물학과의 논쟁에서 리차드 르온틴이나 스티븐 로즈와 같은 유기체 발전의 생물학자들은 유전자와 유기체의 상관성에 주목하고, 유기체의 표현형이 유전자 형질을 주도하는 것을 설득력있게 입증했다 (Not in Our Genes).
<통섭>을 표방하면서 윌슨은 유전자의 결정론을 유전자-문화 공진화란 수식어를 개념화면서 뉴런의 에피제네틱 규칙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뇌과학에서 에피제틱 규칙성은 비결정성이며 유전자처럼 규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한편 윌슨의 사회생물학에 맹공을 가한 고생물학자 스테판 굴드는 이미 1970년대 닐스 엘드레지와 함께 단속 평형이론 (punctuated equilibrium)을 발표했다. 이들이 분석한 화석기록에서 하나의 종은 심지어 1억 8000년 동안 진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정체상태(stasis)를 입증했다.
굴드가 <경이로운 생>에서 캄브리아기의 버제스 셰일의 화석연구는 다윈 이후 새로운 생명이론을 열어놓은 파라다임의 혁명이었다. 생의 출현은 대규모로 급작스럽게 일어나며 역사적 과정에서 다각화로 진행된다. 이것은 화석화된 핵과 염색체 수준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다윈주의자들이 옹호하는 계통 발생적 점진적 진화와 대립한다. 더 이상 진화는 점진적으로 계통 전체의 변형을 통해 꾸준히 일어나지 않는다. 정체상태의 증거는 종의 유전에서도 수 백만년 동안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여준다. 유기체의 표현형이 유전형질을 주도한다.
뉴런 현상학: 산티아고 학파
굴드를 위시로 포스트 다윈의 생명이론이 시스템 생물학과 카우프만의 복잡계 이론이 발전했지만, 1960년대 부터 신경세포 시스템에 중요한 기여를 한 칠레의 산티아고 학파를 간과 할 수 없다.
움베르트 마르투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는 뉴런 현상학을 개념화하고 후설과 메릴로 퐁티의 지각과 신체의 현상학을 이들의 오토포이에시스 (자기 생산성 내지 창조성)로 개념화했다. 이것은 최초로 생물학적 현상학을 뉴런 시스템에서 개념화하고 인지과학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오토포이에시스 이론은 세포의 네트워크에서 창조성과 복잡성 그리고 매개에 주목한다.
세포의 삶에서 나타나는 자율성과 생산성은 새로운 질서와 세계를 출현시키는데, 이것은 자기 생산적 원리와 동시에 집단적인 자동 촉매 시스템을 포괄한다. 오토포이에시스와 매개 시스템에서 살아있는 유기체의 복합성과 다양성은 분자들의 복잡한 작용을 통해 출현한다.
생물학적 현상학의 근본개념인 오토포이에시스는 독일의 사회학자 나클라스 루만의 시스템 사회학으로 수용되고, 하버마스와 논쟁을 거치면서 사회학의 새로운 장르를 열어놓았다. 사회학의 영역에서 후설의 현상학은 사이버네틱스와 연결되면서, 그의 생활세계 이론은 분화와 전문화 그리고 시스템의 자율성에서 개념화 되었다.
세포의 오토포이에시스가 자기 생산의 과정에서 촉매와 작용의 삶의 패턴으로 나타난다면, 확산구조는 외부로 유입되는 영양분을 통해 세포의 신진대사와 발전적인 과정에서 비평형상태의 갈라지는 분기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비안정성의 상태에서 새로운 질서의 형식은 세포의 집단 촉매과정에서 출현한다.
현상학적 생명선 이론
굴드가 다윈 근본주의로부터 해방시켰다면, 르온틴은 유전자 형질을 주도하는 유기체의 표현형의 중요성을 통해 사회 생물학으로 부터 해방시켰다. 산티아고 학파는 뉴런 현상학을 통해 유기체가 어떻게 세포의 네트워크에서 자율성과 창조성으로 출현하는 지를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카우프만의 창발성 이론은 종교적 자연주의로 선회한다.
이러한 포스트 다윈의 지향성은 오늘날 스티븐 로즈의 생명선들의 이론에서 에피제티틱스와 더불어 사회 비판이론적으로 전개된다. 이것을 나는 현상학적 생명선 이론으로 자리매김한다. 특히 하버드 대학 메디컬 스쿨의 막 커슈너에 의하면 다윈 진화론의 딜레마는 유기체의 표현형이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어떻게 다양한 변이로 나타나는 지를 해결하지 못한데서 보았다. 유전자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환경과 더불어 발전하는 유기체의 표현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