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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대화: 가이아 이론의 이중성

by 파레시아 2024. 11. 30.

 

다윈과 신 다윈주의 한계

 

가이아 이론은 다윈의 진화론의 불충분성에 대한 비판에서 제기되었다. 더우기 신-다윈주의 유전자 결정론의 입장은 분자 생물학에서 탐구되는 생에 대한 이해와 다르다. 세포의 생에서 나타나는 복잡성은 신-다윈주의의 유전자 결정론을 반박한다. 유기체의 게놈 (유전체)은 상당한 정도로 엮어진 네트워크와 같다. 이러한 활동은 시스템 사고를 요구하며 신-다윈주의 기계론적 환원주의로는 파악할 수 없다.

 

더 이상 진화는 지속의 시간성에 따라 점진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진보가 아니라 유기체에서 다양성의 분화가 일어난다. 그런가하면 화석의 기록들은 백만년동안 중지상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중지된 평형상태, 다시말해 굴드와 엘드레즈의 단속 평형이론 (punctuated equilibrium)은 급작스런 변이가 메카니즘에 의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변이들은 환경을 향한 수동적인 적응으로 볼 수 있지만 환경과의 역동적 관계를 통해 오이코스를 구성하기도 한다.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이 점진적 진화를 통해 최상의 선에 도달할 거라는 진보의 환상에 찬물이 부어진다. 미세한 변화들의 점진적 누적을 통해 새로운 종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엘랑 비탈이 형이상학적으로 끼어들지 않는다. 유기체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종의 변이를 가능하게 한다.

 

가이아 이론과 자기 생산성

 

가이아 이론은 1970년대 영국의 환경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미국의 미생물학자인 린 마굴리스와 함께 내놓은 원리이다. 이것은 지구를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로 서 스스로 변화하고 진화해 나가는 실재로 파악한다. 가이아란 고대 그리스인들이 대지의 여신을 부른 이름인데, 지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와 지구에 살고있는 생물, 대기권, 대양, 토양 등을 포함해서 신성한 지적인 존재를 칭한다.

 

생태계를 총괄하는 생물권은 지구상의 생명체 영역으로서 대양의 5-6마일 정도 하부에서부터 대기권의 10 km 까지 뻗쳐있다. 지구의 생은 대기권의 보호층으로 둘러싸여있다. 이러한 보호층이 지구를 자외선과 다른 해로운 영향으로부터 보호한다. 지구의 온도를 조절해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이아는 지구의 생을 최적한 조건으로 인도한다.

 

대기권과 암석들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에 의해 형성되고 변형된다. 대기권은 생물권의 대사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변형되고 유지된다. 박테리아가 대사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며 화학반응에 영향을 미치며, 마치 세포에서 효소처럼 촉매역할을 한다. 대기권은 세포막에 비유할 수있고, 지구적인 네트워크을 통합하는 기능을 한다. 생물권은 지구의 생을 평형상태로 유지해줄 수 있는 역동적인 순응조절 시스템이다.

 

이러한 가이아 시스템은 자기 생산적(오토포이에시스)이며, 무생물은 유기적인 생물로 더 나아가 토양과 대양 그리고 대기로 연결된다. 지구는 생물과 무생물의 복합체로 구성된 거대한 유기체가 된다. 생물권과 대기권, 대양과 토양은 일치의 복잡성을 이루며, 이러한 총체성은 피드백과 사이버네틱스 시스템을 통해 생명에 적합한 물리적, 화학적 환경을 형성한다. 물론 가이아 가설에서 세포의 오토포이에시스와 시스템적 사고는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

 

가이아의 네트워크의 모든 구성분들은 대기권의 환경을 포함하여 이러한 대사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변형되고 스스로 산출된다. 지구의 생명 사슬 안에서 무기물과 유기물의 복잡한 상호작용은 지구의 균형을 유지한다.  이것은 자기조절 적용을 통해서 해양 염분의 유지, 대기중 산소와 탄소농도 유지, 또는 지구 표면 온도조절을 한다. 이것은 지구 전반의 피드백 루프와 자기조절가정에 기초한 가이아 가설의 특징에 속한다.

 

살아있는 것들은 암석에서 나오고 암석으로 돌아간다! 대양과 토양 그리고 공기의 구성분들과 생물권의 모든 유기물은 지구의 생산과 변형과정에 의해 끊임없이 관련되며 영속화가 된다. 지구의 푸른 녹은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자기생산적이다. 가이아 사이클에서 식물과 동물과 인간은 지구상에 뒤늦게 출현한 존재들이다.

 

가이아 이론을 지지하는 환경론자들은 지속가능한 발전보다는 후퇴가 더 낳은 대책일 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에도 취약점은 있다. 살아있는 유기체들의 자기 생산성, 복잡성의 과학, 그리고 소산구조(dissipative structures)를 통한 새로운 생과 질서의 출현에 별다른 주목을 하지 못한다.

 

인격적이고 질투심이 많은 고대 그리스의 여신의 이름을 빌려와 우주적 생의 자기조절과 사이버네틱스 평형상태에 지나치게 주목한다. 여기에는 자연의 생 자체에 담겨져있는 선함과 윤리적 가치가 고려되지 않는다. 자연과 윤리는 구분될 필요가 없다. 창조의 선함은 생명계에서 죽음과 파괴를 피하고 생을 추구하는 가치 지향성에서 나타난다.  인간의 도덕적 책임성은 자연의 생에 대한 방어와 오이코스 구성에서 나타난다. 인류세에서 기후변화와 기술과학의 파라다임의 문제는 가이아의 가설의 자기조절능력과 생의 평형 상태에 의해 간괴되고 만다. 

 

지구의 네트워크

 

복잡성의 과학에서 볼 때 세포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가이아와 같은 인격적인 신성의 역할은 없다. DNA-RNA-단백질의 협성과정에서 나타나는 단백질 효소의 촉매과정이 중요하며, 이러한 피드백 회로가 자기를 복제하고 재생산하며 새로운 질서로 발전한다. 가이아의 자기 조절이 아니라, 유기체의 생은 네트워크 안에서 상호연관되고, 복잡성으로 인해 미래를 예견할 수 없을 정도로 기능적으로 분화된다. 이런 복잡성의 시스템에서 볼 때 가이아는 거대한 사이버네틱스 순환으로 파악될 수 있고, 지구의 생물체 전체가 자신의 생존에 맞게 환경을 변화시키고 기후를 조절한다. 그러나 에코 시스템을 규정하는 것은 가이아의 평형상태가 아니라 비결정성이며 비예측성이다.  

 

생물권은 자기생산적 시스템이며 스스로 생을 유지하며 심비오시스적인 리듬을 통해 이웃해있는 유기체들에게 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인접 가능성). 범지구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생물종들의 협력과 공생은 유기체의 네트워크와 환경구성을 통해 에코 포이에시스로 나타난다. 여기서 에코 인간성은 책임적인 존재로 사회와 문화를 지구의 삶과 조화로운 삶을 이어간다. 이것은 인류세의 위기로 나타나는 환경파괴와 생물종의 멸절에 대해 애코 인간성의 책임성을 강하게 부각 시키지 모든 생의 사이클을 가이아 여신에게 돌리지 않는다. 

 

세포의 오토포이에시스에 가이아 여신의 이름으로 파악한다면 지구의 샹에서 나타나는 죽음을 회피하고 생의 선한 지향성을 갖는 모든 유기체적인 삶에 고대 그리스 신들의 이름을 끌어다가 부쳐야한다. 그러나 과학은 계몽과 이성을 기초로 하지 신화에 근거하지 않는다.

 

부르노 라투르 해석: 가이아 가설의 이중성

 

물론 부르노 라투르(Bruno Latour)는 가이이 가설을 유기cp의 행동이론으로 재해석한다, 라투르에 의하면, 가이아 이론은 홀리즘의 과학이며, 살아있는 것들은 환경안에 있지 않고 환경을 만든다. 환경이란 살아있는 것들의 연장의 결과이다. 지구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살아있는 유기체들의 보이지 않는 행동의 효과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형성한다. (Brunno Latour Tracks Doqn Gaia, July 3, 2018).

 

가이아 이론이 지구를 사이버네틱 시스템으로 (러브락), 그런가하면 지구를 가장 오래된 살아있는 소 유기체과 더불어 시작된 것이라면 (린 마귀귈리스) 거절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유기체와 환경의 네트워크와 상호작용을 말하기 때문이다. 세포와 박테리아와 인간은 서로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되고 중첩되어있다.  

 

그러나 라투에 의하면 러브락은 말했다. "만일 인간들이 짧은 시간동안 이들의 환경을 급진적으로 변형시켰다면, 다른 생울들도 수백만년 동안 그렇게 할 수가 있다." "지구의 안전상태는 인간을 그안에서 매우 민주적인 실재에서 파트너로 포함한다."

 

살아있는 유기체들은 이재 환경을 변형시키는 엔지니어로 등장하며, 가이아 가설의 사이클과 자기조절 능력과 파드백 루프는 유기체의 활동중심으로 이동한다. 이것이 생명권에서 인간의 자리를 민주적인 방식에서 에코 인간성으로 인정한다면 나는 굳이 가이아 이론을 초유기체적인 여신의 힘으로 오해해야할 이유는 없다. 

 

시스템이란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가이아는 모든 것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이들이 복종해야하는 시스템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 지구는 유기체가 아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과는 달리 지구는 지속적인 사이클안에 움직이지만 외부의 환경과 자원 또는 태양 에너지으부터 별다른 도움을 받지 않는다. 가이아는 글로브나 자연세계와 동일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지구의 엷은 피부에민 책임을 진다.

 

더우기 가이아 가설은 산업화와 폭력적인 기술의 파열 그리고 핵과 냉전으로 인해 출현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인류세의 도전에 대한 이론일 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중심의 해석은 유기체 자체의 네트워크와 사이클에서 나타나는 오토포이애시스와 촉매와 공생 더 나아가 환경이 유기체에 미치는 영향과 소산구조에서 생의 출현과 구조의 복잡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오이코스 공동구성

 

부르노 라투르는 가이아거 모든 것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이들이 복종해야하는 시스템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구는 지속적인 사이클안에 움직이지만 외부의 환경과 자원 또는 태양 에너지으부터 별다른 도움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라투르의 입장은 지구 생태계가 열린환경이며, 에너지와 물질의 유입과 상호적용하며, 살아있는 모든 유기체들의 신진대사가 있음을 간과한다. 

 

가이아 이론의 말하는 요지는 지구의 대기가 단순히 물리적 힘의 우연한 상호작용에 의해 생명 유지와 자가 조절이 가능한 상태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또한 그 후 생명이 이 상태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유기체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구화학적 환경의 개발과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러브록과 마굴리스는 미생물의 생명망이 복잡한 제어 시스템으로서, 맥동하는 항상성 균형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고 가설을 세웠다.  이러한 제어 시스템(가이아)은 지구를 복잡하지만 통합된 사이버네틱 시스템으로 만든다. 이러한 가설은 단순한 은유에 불과할 수 있지만, 대기에 강한 생물학적 영향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이유는 없다  러블록은 "가이아를 찾는 것"이 길고 힘든 과정이었다고 인정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규모의 통합 제어 메커니즘에는 수백 가지의 과정이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The Fundamentals of Ecology, 45).

 

자연의 생은 선한 것이며 죽음을 피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가 담겨져있다. 이것은 자연의 세계에 내재한 생을 향한 가치 지향성을 의미한다. 모든 유기체적인 기본적인 수준에는 자율성과 창조성의 원초적 형식이 담겨져있다. 생의 현상학에서 오토포이에시스는 잠재테에서 현실태로 나가는데 자유의 원초적 형식을 지적한다. 그리고 지구의 생은 에코 포이에시스로서 복잡성과 네트워크, 생의 혁신적 출현구조로 특징된다.

 

이것은 중지-평형-혁신이라는 심층 구조와 지질학적 전개과정을 보여주며, 가이아 이론은 이러한 생의 혁신적 출현을 지속적 창조의 가치에서 보지 못한다. 지구의 삶은 단순히 자기조절을 통해 평형을 유지하는 가이아 형이상학을 넘어서, 살아있는 자기생산적 유기체의 역동성으로 드러난다. 

 

나는 이것을 유기체의 환경의 시냅스로 파악하며 피드백 루프와 생의 심비오시스로 파악한다. 인간은 에코 인간성으로 그리고 사회자연성으로 여전히 중요하다. 이것은 지구의 여신 가이아가 피드백 루프를 통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자기 규제활동을 지배하고 복수하는 거대담론의 신화와는 다르다.       

 

세포의 자기생산성과 효소와 촉매와 매개과정에서 공생의 삶을 나는 자연의 삶에서 본다. 이러한 세포내의 삶에서 나타나는 자기생산성은 인간의 의식이나 사회 시스템 전반에 걸쳐 작동되기도 한다. 오토포이에시스는 에코 포이에시스로, 더 나아가 사회와 문화의 새로운 구성을 위한 통찰을 제공한다. 

 

 사자가 양과 함께 눕는 세상 (이사야 11장)은 단순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사자와 양들이 공생하는 새로운 자연질서를 그린다. 자연은 더 이상 지배와 정복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처럼 외부의 세계에 예민하며 조그만 변동에도 영향을 쉽게 받는다. 자연의 삶은 인간에게 대화와 존중과 협력을 요구한다. 세계는 더 이상 데카르트나 뉴톤이 꿈꾸던 기계와 같은 것이 아니라 자기생산성과 소산구조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자연과 사회에서 새로운 오이코스 구성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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