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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해석과 초대 기독교의 할라카

by 파레시아 2025. 2. 9.

공공신학과 성서해석 

공공신학과 성서해석 시리즈를 몇 차례에 걸처 시작한다. 공공신학의 정당성은 성서해석에 달려있다. 바르트는 그의 대작 <교회 교의학>에서 깊은 성서주석을 통해 새로운 교의학과 교회신학 그리고 사회적 소명을 해방으로 재해석했다. 공공신학은 바르트의 위대한 신학적 유산을 한국사회의 공론장에서 인문사회과학과의 대화를 통해 열어간다.

그리고 나는 최근 성서비평학에서 나타는 풍부한 연구성과와 방법론을 역사 사회적 문헌비평학적인 틀을 통해 화해의 복음을 두텁게 기술하고 공론장에 소통시킨다. 공공신학의 특징은 두 가지로 특징된다. 첫째는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하고, 시민사회의 공론장에서 다 학제간 연구에 관심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종교가 다원화되는 시민사회에서 비판적 민주주의는 생활세계 안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공공선의 거버넌스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둘째, 공공신학은 해방신학이나 정치신학과 다르다. 왜냐하면 공공신학의 비판적 인식론은 상황과 상호 맥락 그리고 보편적 구체성 간의 사회학적인 교차와 스펙트럼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이 미국의 공론장으로 수입될 때 인종문제 앞에서 타당성을 갖지 못한다.

 

유럽의 정치신학이 토마스 홉즈의 <리바이어던>과 이에대한 칼 슈미트의 파시즘적 해석에 비판으로 시작 하지만, 공공신학은 시민사회와 근대성의 문제를 후기 자본주의와 포스트콜로니얼 문제틀에서 전개한다. 해방이나 정치비판이나 연대성의 추구는  개별적인 상황이 다른 상황과 여과를 거쳐야한다. 남아공의 해방이 남미의 해방과 다르다. 상호 맥란간의 비판적 검증을 통해 공동선을 위해 가능한 '구체적인 보편성'을 빈성한다.   

 

공공신학은 역사 사회학적 방법을 통해 성서의 세계에 접근하며, 문헌비평을 통해 토라의 의미와 화해의 복음을 정치주체인 시민과 하위계층과 연대하면서 복음의 사회 비판적 차원을 동시대화한다. 이것은 서구의 성서비평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유럽중심적인 한계와 이데올로기적 외삽법을 고고학적으로 해명한다. 이를 통해 ‘말해지지 않은 것들’의 유효한 역사를 복권시킨다.
 
마틴 디벨리우스와 기독교적 할라카 

복음서의 양식비평을 열어놓은 마틴 디벨리우스는 복음서의 전승사를 다루면서 40년대 기록된 Q 어록 자료나 또는 현재의 복음서의 장르를 갖추는 데 기여한 목격자들과 말씀의 사역 자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전달된 자료들은 기독교적 할라카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한다. 

랍비 유대교에서 할라카란 탈무드의 미슈나에서 논의되는 법적인 규정에 속하는 해석방식(페샤트)이다. 기독교적 할라카는 복음서의 편집과정에서 구전의 중요성과 기록된 자료의 상관관계를 지적한다. 그리고 담론화된 자료는 초대 공동체가 실천하는 규범 즉 할라카적인 성격을 갖는다.

증언(음성 언어)과 기록문서 그리고 편집과정은 복음서가 텍스트에서 어떻게 언어사용과 네러티브가 삶의 문법과 사회적 자리에 관련되는 지를 보여준다. 음성언어와 기록문자(글쓰기)의 이항대립이나 또는 문자가 음성언어를 보충대리 (데리다)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목격자들의 증언과 전승실천이 복음서의 편집자들을 통해 텍스트화되면서 기독교적 할라카의 실천과 증언적인 성격을 특징 짖는다.

증언 언어와 텍스트 편집 그리고 삶의 실천형식으로 공동체의 사회적 자리가 의미론적 순환과정안에 있다. 개별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와의 관계안에 존재하면서 복음의 주제에 대한 전거와 함께 복음의 사회적 콘텍스트를 지적한다. 텍스트는 관계와 교차 가운데서 연결되며, 여기에 관여하는 독자에게 영향을 미치며 해석과 비판적 탐구를 가능하게 한다. 성서해석은 삶의 실천을 위한 비평적 해명이며, 해석의 지평과 의미의 확대를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디벨리우스는 복음서의 케리그마에 주목하고 복음서에서 드러나는 예수의 행동에 대한 내러티브가 파라다임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네러티브/파라다임은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서신에서 증요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디벨리우스의 구성적 방법은 볼트만의 아포테크마타를 기초로 분석해 들어가는 방법과 다르다.  교회의 캐리그마는 역사적 예수의 삶과 행동에서 분리되지 않으며. 불트만처럼 초대 공동체의 산물로 환원되지 않는다 (Dibelius, From Tradition to Gospel, 27).

 

교회 공동체 앞서 신실한 증언자들의 기독교적 실천의 할라카가 먼저 있고, 시리아의 안디옥 공동체는 이것을 이중언어로 번역하면서 복음서는 이후 편집되고 완성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스타일로 표현하면, 복음의 언어게임은 복음을 지키고 실천하는 삶의 문법과 규칙에 관련되며, 이러한 게임 (메타포, 비유, 표현, 논쟁 담론)이 초대 공동체의 삶의 형식을 창출한다.

 

복음의 언어는 할라카적인 계명준수와 실천 그리고 사회적 콘텍스트에서 공적인 의미를 갖는다. 복음서는 각각의 언어게임과 삶의 실천형식을 드러내며 사회적 삶의 자리에서 그 의미의 구체성과 다양성을 갖는다. 개별 복음서는 서로 사회적 네트워크안에서 가족 유사성과 더불어 역사의 과정에서 의미 스펙트럼을 드러낸다.

할라카는 하나님의 성품, 역사적 활동, 그리고 메시아의 구원 등을 윤리적 삶이나 설교를 위해 해석하는 하가다의 네러티브와는 다르다. 그리고 히브리 성서 본문을 꼼꼼히 주석하고 평가하는 미드라쉬와도 다르다.  
 
디벨리우스의 기독교적 할라카는 루돌프 불트만이 공관복음의 전승사를 다룰 때 양식 비평의 차원에서 비교 될 수 있다. 전승 자료와 복음서의 관계를 규명할 때, 불트만은 구전토라와 랍비 공동체의 미슈냐 해석 (할라카)의 유사점을 보았다. 만일 구전토라가 랍비 유대교의 미슈냐 해석으로 전개 된다면, 복음서 역시 그리스의 문학장르인 아포테그마타를 분석 할 때 초대 교회의 산물로 파악 되어야 한다. 

주의 어록의 초기단계를 분석해보면  예수가 어떤 콘텍스트에서 말씀했는 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어록은 복음서 기자가 속한 공동체의 삶의 자리에서 그 의미와 문학적 장르가 결정되고 변형된다. 
 

R. Bultmann

불트만은 헤르만 궁켈이 오경연구에서 사용한 양식비평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개별 전승 자료층의 오리지널을 찾기 위해 분석적 방법을 취했다. 그리고 초대 팔레스티나 공동체와 헬라 공동체를 구분했다. 

불트만은 바리새파 랍비들의 가르침과 어록 그리고 헬라적 스토리들이나 철학적인 장르에서 복음서와 유비를 보았다. 불트만은 그리스의 문학 장르인 단화 (아포프테그마타)와 초대 공동체의 삶의 자리를 연결하는 분석적인 방식을 전개했다. 복음서의 논쟁 담화에서 초대교회는 랍비 유대교와 관련되며, 공관복음은 랍비적 전승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Bultmann, History of
the Synoptic Tradition
, 41,  5-6, 11).    
 
그러나 불트만의 문제는 구전 토라의 미슈냐 해석에서 편집자나 랍비들의 창조적 해석 논쟁을 여과없이 복음서의 전승사와 편집비평에 적용한 데 있다. 장구한 세월을 거쳐온 구전 토라와 할라카의 해석과는 달리, 초대 기독교에서 전승자료와 복음서의 관계는 30년에서 70년 사이에 있었고, 공동으로 자료를 전해준 목격자들이나 말씀의 사역자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배우지 못한 계층에 속했지만 나사렛 예수에 대한 신실한 태도와 믿음의 증언은 안디옥 교회에서 그리스어로 번역이 되고 지식인에 의해 복음서로 편집 되었다. 
 
복음서 기자들이 당대 공동체 안에 신학자들과 논의를 거치면서 미슈나처럼 복음서를 창작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목격자들에 의해 검증되고 북 시리아의 안디옥이나 다메섹 공동체 안에서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소아시아 이방인 선교를 위해 전승 자료를 기초로 사실적으로 편집했다 (누가복음 서설). 
 

복음적 할라카

 

디벨리우스나 불트만의 할라카적 접근은 성서 비평학에서 거의 주목되지 못했다. 그러나 조직신학 영역에서 프리델 마르크바르트는 칼 바르트의 이스라엘 신학과 화란의 개혁 신학자 코넬리우스 미스코테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의 조직신학 1권에서 복음적 할라카를 개념화하고 폭넓은 스펙트럼에서 전개했다. 

 

유대교 정통파 신학자 데이비드 플루서는 중요하다.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에서 플루서는 2차 예루살렘 성전시기와 초대 기독교에 권위적인 학자였다. 플루서에 의하면, 예수는 메시야이며, 로마가 아니라 성전을 장악한 사두개파들과 대립했다 (Flusser, Jewish Sources in Early Christianity, 18).

 

예수를 에센파와 갈라놓는 것은  묵시적 메시아가 성전을 장악하고 로마를 물리친후 이스라엘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서 실현된다.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에는 묵시적 미래와 동시에 현재화된 차원이 존재한다. 예수는 흔히 언급되는 것처럼 갈릴리 시골의 무식한 농부나 민중 출신이 아니다. 예수는 당대 유대교의 세계를 깊이 있게 알고 있었고, 구약의 토라와 구전토라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플루서의 예수 이해는 마르크바르트에게 매우 중요하다. 마르크바르트는 본 대학에서 헬무트 골비처의 지도로 칼 바르트와 이스라엘의 신학에 대해 박사학위 논문을 마치고, 60년대 기독교와 유대교의 물꼬를 튼 탁월한 기여로 당대 저명한 로젠츠바이크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르크바르트는 이후 베를린 대학에서 기독교-유대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30여년 동안 예루살렘 대학의 정통파 유대인 학자들과 탈무드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열면서, 그의 경이적인 7권의 교의학을 완성했다. 그는 베를린 대학의 은퇴 강연에서 자신의 여정을 히브리 성서와 유대교 전제 역사를 관통하면서 살았던  “아비렌”으로 표현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권능에 의해 방랑자로서 살았던 아브라함의 추방의 여정을 말한다.

사실 구약성서의 역사 비평적인 방법은 랍비 유대교의 해석 방식에 관련되기 어렵다, 유대교적 미드라쉬 해석과는 제대로 대화를 열지 못했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구약성서의 지평에 서 있고, 이러한 지평은 토라의 네러티브에서 언급되는 아브라함과 신앙 (바울), 모세의 가르침 (산상수훈), 수난전승,  광야의 이야기들 (마태 2:15; 4: 1- 11), 그리고 모세의 뱀을 든 사건과 예수의 치유 사건 (요한 3: 14) 등에서 볼 수 있다. 

심지어 요한복음에서도 예수의 인격 안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장막이 거했다고 말한다 (요 1: 14).  더 나아가 예수의 유월절 음식과 성만찬 (마가 14: 12-25; 마태 26 : 2 8), 그리고 바울은 예수를 유월절의 양 (고전 5: 7; 11:25)이며, 그리스도는 광야 에서 이스라엘을 동행한 영적인 바위 (고전 10: 14)로 언급한다. 신약성서는 구약성서의 사유 방식과 언어 그리고 종말론적 지평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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