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은 <도원기서>에 언급되는 을묘천서를 <천주실의>로 말한다. <을묘천서>는 수운이 32세가 되던 1855년 을묘년에 하늘로부터 받은 책이다. <도원기서>는 1880년 집필 시기로 알려져있고, 1978년 처음 알려졌다. 을묘년 3월 봄날의 잠을 즐기던 수운에게 금강산의 유점사의 승려가 찾아와 세상에 보기드믄 책을 알려 달라고 가져왔다. 수은은 책을 받고 사흘 뒤에 책의 뜻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사흘 뒤에 찾아온 승려에게 책의 뜻을 설명하자 승려는 이 책을 수운에게 주고 사라졌다.
을묘년 (1855)부터 5년 후인 경신년(1860)에 있었던 수운의 종교체험에는 <을묘천서>의 중요성이 있다. <을묘천서>를 근거로 수은은 한울님을 섬김과 모심의 대상으로 삼았고, 기도의 가르침을 수행법으로 삼았다. 이런 점에서 <동경대전> 에서 상제와 수운의 대화는 <도원기서>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인격적인 관계로 나타난다. 수운의 시천주 사상과 종교체험은 신유교와 도교의 틀에서 유신론적인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천주실의>의 마테오리치 (1552-1610)는 이탈리아 출신의 제수이트 선교사로서 1583년 중국에 도착했다. 그는 귀신에 연관된 조상제의를 효의 실천과 도덕적으로 이해하고 존중했다. 카톨릭의 하나님과 유교의 상제는 동일하다. 심지어 청나라 제 4대 황제 강희제 (1662-1723)는 리치의 저술을 공부하고 1692년 3월 종교관용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교황 베네딕트 14세는 1742년 제수이트의 문화적응 (accomodation)선교와 조상제의를 금지했다. 100년간의 의례논쟁을 종결지었다. 1939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해제된다.
1790년 북경의 구베아 (Gouvea) 주교는 유교의 제사전통을 금지시켰다. 주문모 신부는 1794년 12월 조선에 잡입하고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했다. 다산 정약용 (1762-1836)은 1784년 <천주실의>에 심취하고 초기 천주교 신앙 집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다산은 신해년 (1791)에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운 사건으로 인해 천주교를 떠났다고 말했다 (금장태, <다산 정약용> 62).
1854년 수운이 승려로부터 받은 <을묘천서>가 당대 조상제의를 거절하고 박해를 받던 서학과 어떤 연관이 있는 지 알 수 없다. 오히려 당대 서학은 <천주실의>의 입장을 추종했다고 볼 수 없다. 만일 수운이 <천주실의>를 읽었다면 맹가에 대한 리치의 존중과 조상제의 인정으로 인해 거칠게 서학을 비난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서학으로부터 받은 수운의 영향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 히브리서 성서의 야훼 체험에서 나타나는 거룩의 이념과 함께 경건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수운이 사용하는 상제나 천주라는 표현에서 그가 이미 당대 서학의 교리를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운의 종교철학은 유불선이나 서학의 세계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수운은 시천주를 통해 다시 개벽의 틀에서 이러한 사상의 지평을 변형한다. 그는 신분을 타파하는 평등과 내재적 존재론, 자연에 대한 존중에 기초한 인식론적 파열을 드러낸다. 수운은 조선의 근대성의 새로운 개벽의 세계를 <정감록>의 도피주의 보다는, 지금 여기서 존재의 변화와 개벽을 우주적 생의 차원에서 부각시켰다.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긍정된다. 이런 점에서 그는 마테오 리치보다는 스피노자에게 열려있다.
수운과 <천주실의>
스피노자적으로 표현하면, 수운의 시천주 종교체험에서 우주적 생에 대한 지성적 사랑과 체험을 통해 전체의 삶 안에 나는 융해된다. 그러나 나의 인격성은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고결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이런 점에서 수운은 요한복음의 현재화된 종말론 (현재의 영원화)에 근접하지,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의 내용과는 거리가 있다. <천주실의>는 단순히 기도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니다.
1784년 1월 이승훈은 베이징의 한 성당에서 프랑스 출신 예수회 신부 그라몽 (1736-1812)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승훈은 2월 조선으로 귀국하면서 <천주실의>와 다른 천주교 서적과 성물들을 들여왔다. <천주실의>에서 마테오 리치는 신유교의 태극도설을 비판했지만, 공맹을 존중하고 보유론적 입장에서 천주교를 해석했다. 리치는 조상제의를 효의 차원에서 수용했다. 리치의 저술은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되었고 천주교로 회심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수운에게 핵심적인 것은 그의 종교 신비체험에 있으며, 조선의 종교사의 전통에서 상제의 인격성을 드러내는 그의 신관에 있다. 상제의 마음은 나의 마음과 같으며, 상제는 귀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제 귀신론은 <천주실의>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더우기 성리학에서 상제는 인격성을 포함하지만 귀신과 등치되지 않는다.
물론 시편 82편에서 히브리 야훼주의는 신들의 모임 가운데 서 있다. 야훼의 심판은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신다. 야훼는 배타적인 신이 아니라 윤리적 유일신으로 나타나며, 당대 고대 근동의 다신교와 병행되어있다 (monolatory). 야훼는 노아의 계약에서 모든 생물들과 생태학적인 영원한 계약을 맺는다 (창 9:15). 바울은 아테네의 아레오바고 설교에서 고대 그리스의 시를 인용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움직이며 존재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손이다 (행 17: 28).
리치가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공맹사상으로 돌아갈 것을 강조하고,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 예를들어 풍응경, 서광계, 이지조 등과 교유하면서 이들을 카톨릭으로 개종시킨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천주실의>와 <을묘천서>의 비교적 접근은 히브리 성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한다. 히브리적 사유는 서구의 지성사의 발전에서 그리스적 사유에 의해 심하게 오염되었다. 수운의 종교 특수성과 지구적 보편종교의 의미는 로마 카톨릭 신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해나갈 수 있다.
마테오 리치의 아리스토텔레스ㅡ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신학적 배경과 그의 맹자에 대한 존중 그리고 신유교에 대한 비판은 수운의 사상과 만나면서 우리 시대에 풍부한 비교 사상의 보편적 스펙트럼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마태오 리치와 유교
마태오 리치는 로마의 제수이트 학교에서 르네상스 휴머니즘과 제수이트 토미즘 그리고 자연 과학적 사유의 영향을 받았다. 토미즘을 로마에 소개한 제수이트들은 스페인의 살라만카 대학에서 공부한 학자들이었다. 남미에서 선교활동을 한 해방신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바르톨로메 드 라카스 (1484-1566) 역시 살라만카 대학 출신으로 여겨진다.
리치는 인도에서 4년간 선교사역을 한 후, 1583년에 중국에 들어온 후, 1591년부터 중국인 친구들의 도움으로 유교의 사서 번역에 착수했다. 리치가 활동한 명시대 (1368-1644)는 세 가지 종교 (유불선)가 융합되어 공존했다. 주자 (1130-1200)의 신유교의 가르침은 상당한 정도로 영향을 미쳤다. 리치는 중국의 효 사상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하늘과 자연을 공경하는 것은 도덕적이며 합리적으로 보았다.그는 카톨릭의 교리를 유교의 가르침에 적응시키고 조화와 상호존중 안에서 공존을 시도했다.
리치의 <천주실의>에서 상제와 천은 천주와 동일시되고, 그는 오륜과 삼강을 카톨릭의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안으로 통합시켰다. 리치의 해석학적 접근은 상제의 인격적 개념에 대한 고대 중국의 유신론을 만회하고,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신비와 더불어 초월적인 하나님을 아퀴나스의 부동의 동자로 연관짖는 것이다. 이러한 창조주 하나님은 중국의 고전에서 이미 계시되었다 (Ricci, True Meaning of the Lord of Heaven, 92-3).
리치는 신유교의 태극/무극의 가르침이 <주역>의 음양의 작용에 기초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태극/무극의 개념을 카톨릭의 창조주 하나님과 통합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리치는 신유교의 가르침이 불교나 도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라치는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에 친화력을 느끼고, 천명이나 하늘에 대한 인격적인 이해 그리고 도덕적 자기수양에서 카톨릭의 가르침과 공명하는 것을 보았다. 리치는 맹자의 가르침을 옹호하고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성은 신유교의 천리와 동일시되지 않는다 (ibid., 351). 리치에 의하면 천주는 인간에게 선한 본성을 부여했고, 선악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내재적 선함은 본래적인 인간본성의 선함이며, 취득된 선함은 자기수양을 통한 얻어진 덕의 선함을 말한다, 후자는 카톨릭의 공적 사상으로 연결된다 (ibid., 357).
리치에 의하면, 맹자의 4단의 가르침은 내재적 선함에 기초하며, 카톨릭의 공적을 얻는 덕행은 선행을 통해 덕을 취득한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맹자의 가르침을 통해 리치는 카톨릭의 성화와 완덕의 삶으로 연결하고 천주로 돌아가는 믿음의 길을 취했다.
맹자의 가르침에서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모질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우물에 빠지는 아이를 보면 누구라도 놀라는 측은지심이 생긴다. 자신의 불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시비를 분간할 줄 아는 시비지심이 없어도 사람이 아니다. 측은 지심은 인의 단서이며, 수오지심은 의의 단서이고, 사양지심은 예의 단서요, 시비지심은 지의 단서이다. 이것은 사람에게 있는 4단이다. 이러한 4 단서를 발전시키고 완성시키면 성인이 된다 (<맹자>, 3.6)
리치는 맹자의 4단서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내재적 선함과 공적을 통한 취득된 선함을 통해 카톨릭의 의화 (칭의와 성화)와 공적사상에 접합시켰다. 더 나아가 리치는 제수이트의 영성수련과 미덕과 선행이 유교의 자기 수양을 보충해주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길로 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영성의 길은 악한 생각에 대한 진정한 통회 (contrition)와 마음으로부터의 정결, 그리고 천주의 뜻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군자/믿음의 사람은 천주와 연합한다 (ibid., 375, 389).
여기서 리치는 카톨릭의 신비주의 특히 아퀴나스의 신비한 연합과 지복을 부각시킨다. 아퀴나스에게 부동의 동자인 하나님은 유출을 통해 창조를 하며, 인간은 도덕적 선행과 영신수련을 통해 천주와 조화를 이루며 연합한다. 이러한 연합은 하나님처럼 되는 영원성을 나눈다. 이런 점에서 리치는 아퀴나스와 맹자를 화해시키는 사상가로 남아있다.
만일 수운이 <천주실의>를 공부 했다면 그는 <동경대전>의 논학문 9절에서 하는 서학의 비판과는 맞지 않다: 서양 사람은 말에 차례가 없고, 글에 순서가 없다. 도무지 한울님을 위하는 단서가 없으며, 단지 자기 몸만을 위하여 빌 따름이다. 몸에는 기화지신이 없고 학에는 한울님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 형식은 없으나 자취가 없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주문이 없으며, 도는 허무에 가깝다. 학은 한울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동학과 다르다. 어쩌면 이런 천주교는 수운당시의 서학의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리치의 <천주실의>와는 젼혀 다르다.
수운이 <천주실의>를 알았다면 리치의 신유교에 대한 오해와 자신처럼 주문과 부적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비판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천주를 귀신으로 등치하지 않는 것이 비판 되어야한다. <중용> 16장에서 과연 귀신의 작용이 상제와 등치와 되는가?
다산은 <중용자잠>에서 상제를 인격신으로 보았다. 본성을 따르는 것(솔성)을 도라고 한다. "솔성지위도의"의본성을 따르는 것을 천명을 따르는 것이다. "천명지위성"의 천은 인격적 상제이다. 수운보다는 오히려 다산에게서 공맹의 경학과 성리학의 비판이 <천주실의>에 더 공명할 수 있다.
수심정기와 코나투스
나는 수운이 마테오 리치보다는 스피노자의 종교철학에 더 근접한다고 본다. 스피노자적인 의미에서 미덕이 인간의 코나투스에 기초하며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노력이라면, 이러한 선한 삶을 위한 도덕적 노력은 수운에게 천명과 관련된다. <동경대전> 논학문 2절에서 한울님은 오행의 벼리가 되며, 땅은 오행의 바탕이 되며, 사람은 오행의 기운이 되며, 음양의 관계에서 만물의 양태들이 산출되지만 사람은 가장 신령한 존재가 된다. 천, 지, 인의 삼재의 수를 여기서 본다.
이러한 음양오행론은 주렴계의 <태극도설>의 영향을 보인다. 음양은 태극이며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음양이 변하고 합하여 오행의 기를 산출하는데, 무극의 참됨과 음양오행의 정수가 교묘하게 응축되면 남성과 여성이 만들어진다. 이 두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만물을 낳고 변화가 무궁하다 (풍우란, <중국철학사> 하. 442).
이러한 발생론적 접근에서 에로스적 욕구와 삶의 보존과 증강의 코나투스가 함축되어있다. 수운은 인간을 만물의 척도가 아니라 자연 (음행)의 일부로서 신령한 존재로서 생의 기운(코나투스)으로 파악한다. 인간은 시천주의 종교체험을 하는 신령한 존재이며 한울님은 이러한 생의 벼리(원리)가 된다. 신유교의 태극무극의 우주론은 수운에 의해 우주적 생인 한울님을 체험하는 개벽과 인간의 선한 열망으로 변형된다. 원형이정의 천도는 한울님의 우주적 생에 참여하는 미덕과 삶의 조화로 이해된다.
수운은 <동경대전>의 수덕문에서 원형이정은 천도의 떳떳한 것으로 말한다. 그는 주역괘의 대정수를 살펴보고 운세의 흐름을 판단했다. 수운은 <주역>의 원형이정을 시천주 사상을 표현하는 스물한 자의 주문과 영부로 통합한다. 인의예지는 유교의 가르침이지만 수운의 가르침은 수심정기이다. 시천주와 수심정기는 주역을 넘어서는 차원을 갖는다.
원형이정은 하늘을 상징하는 <주역>의 중천건이다. 내괘와 외괘가 모두 하늘의 괘로 거듭되어있는 상이다. 건 (하늘)은 크고 형하고 이롭게하고 바로 잡는다. 음양기운의 역동성은 양의 기운의 작용으로 봄에 만물의 삶이 시작되듯이 일을 시작한다 (원). 여름이 되면 만물이 무성해지듯이 떨쳐 일어나 적극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확장시킨다 (형). 가을에 만물이 결실하듯 일을 마무리하고 정리하며 (이), 겨울에 만물이 정지하여 봄을 기다리듯 참고 견디면서 만물을 분별한다 (정) (이기동, <주역강설>, 68).
이러한 성정은 원형이정의 사덕이며, 인간은 봄의 원덕을 인으로 체득하여 사람을 기를 수 있고, 아름다움을 모으는 작용을 함으로써 여름의 형덕을 예로 실천하며, 남을 이롭게 함으로써 가을의 이덕을 의로움과 조화를 이룰 수가 있고, 끗끗히 참으로써 겨울의 정덕을 지혜와 일의 원동력으로 체화한다. 하늘의 사독은 원형이정이며, 인간의 사덕은 인의예지이다.
그러나 수운은 수심정기를 말한다. 참된 마음을 지켜 공경하고 믿는데서 그 기운을 바로한다. 해월은 수심정기가 아니면 인의예지의 도를 실천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수심정기는 가장 어려운 것이며, 자기 마음에 대하여 효 (효도), 제(형제간의 우애), 온 (따뜻하게 대하고), 공 (공손한 자세)이 수심정기하는 법이다. 욕념이 생기지 않으면 천지의 정신이 전부 한몸에 들어온다.
사람은 마음에 한울님의 가르침을 얻은 뒤라야 뜻과 생각이 신령해진다. 심령은 오직 한울이며, 오직 말이 없고 소리가 없는 한울이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사람의 성령은 한울의 일월과 같으며, 영기가 중심에 이르면 만사가 자연히 신통한 것으로 말한다. 마음이 기쁘고 즐겁지 않으면 한율이 감응하지 아니한다. 마음이 언제나 기쁘고 즐거워야 한울이 언제나 감응한다 (<해월 신사 법설> 수심정기).
혜월의 향아설위에서 제사는 지극한 정성을 통해 드려지며 예란 마음으로써 절하는 것이다. 다만 청수 한 그릇이라도 지극한 정성을 다 하는 것이 옳다. 이것은 <주역>의 계사전 8장에서도 볼 수 있다. 제사의 목적은 조상에 대한 공경을 다하는 것이며, 보잘것없는 하얀 띠를 깔고 그 위에 재물을 놓아도 정성이 있다면 허물이 없다.
혜월에게 수심정기가 되면 천지의 정신과 하나가 된다. 이것은 맹자의 호연지기를 연상한다. 맹자에 의하면 만물이 다 내게 구비되어있다. 천상과 지상을 관통하여 작용한다. 호연지기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세다. 아무런 방해가 없이 올바로 함양될 수 있다면 온 천지를 충만하게 한다. 맹자에 의하면 호연지기를 배양하려면 의와 도를 배합해야한다. 호연지기는 의를 축적하여 생기며, 의로운 일에 힘써야 한다. 이런 경지에서 사람은 천하의 인에 거하고 천하의 바른 입장 (예)에 서고, 천하의 대도 (의)를 가는 것이 된다 (<맹자> 3-2).
수심정기나 호연지기는 선한 삶을 향한 열망과 이성과 도덕에 의해 인도되는 코나투스에 가깝다. 코나투스와이성의 안내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을 향한 직관적 사랑으로 채워지고 영원성의 관점에 도달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의 부분이 되며, 영광의 빛에 참여하며 지복과 기쁨과 진정한 자유에 거한다.
동학과 <천주실의>의 만남
동학과 <천주실의>의 만남은 <을묘천서>와 상관없이 문화를 횡단하는 종교의 만남으로 발전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토미즘은 유교뿐만 아니라 동학과 만날 수 있는 넉넉한 자리가 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아퀴나스가 보지 못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진면목이 새롭게 드러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부동의 동자는 살아있고 영원한 하나님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질료와 형상과 4 원인을 거치지 않고도 인간의 지성에 스스로 드러 내신다. 4원인에서 자연의 삶은 진리를 스스로 드러내는 현상학으로 등장한다. 더 나아가 수운은 스피노자의 종교철학과의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배움과 존중으로 심화될 수 있다. 코나투스가 시천주와 만나면서 새로운 사회와 국가 그리고 후기 근대성을 새롭게 개벽해 나갈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영원성의 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스피노자) 사랑으로 우주를 덮고 살아가는 지상의 신선같은 존재가 되지 않겠는가? 이것은 단순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회에 실현할 수 있는 현실태이며, 동 아시아의 생활세계가 스스로 드러내는 진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