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혁명과 개인주의
알렉시스 토크빌에 의하면 귀족제도의 잔해 위에 민주 사회의 건설이 막 완료된 시기는 사람들 간의 분리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기주의가 가장 강하게 관찰되는 시기이다. 민주주의 공동체는 단지 많은 수의 독립 시민들로 구성될 뿐만 아니라, 이들의 새로운 권력에 취해있다. 그들은 자신의 힘에 대해 거만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동료들의 도움을 청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들 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주저 없이 드러낸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사회의 초기에 시민들은 가장 분리되어 살게 되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동료들과 가까워지지 않도록 만든다. 민주주의 혁명은 그들이 서로를 피하게 하고 평등 상태를 지속하게 만든다. 이것은 민주주의 혁명의 초기에 개인의 평등과 관련하여 드러나는 개인주의 현상학이다.
미국인들의 큰 장점은 민주주의 혁명을 겪지 않고도 민주주의 상태에 도달했다는 점에 있다. 평등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점이다 (Democracy in America, 576).
토크빌에 의하면 개인주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시킨 표현이다. 자기애는 자기 자신에 대한 열정적이고 과장된 사랑이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것을 자신의 인격과 연결짓고 세상의 모든 것보다 자신을 더 선호하게 만든다. 개인주의는 성숙하고 차분한 감정으로서, 공동체의 구성원이 동료들과의 집단에서 자신을 분리하고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떨어져 있도록 한다.
자기애는 맹목적인 본능에서 비롯된다: 개인주의는 타락한 감정보다 잘못된 판단에서 더 많이 비롯된다; 그것은 마음의 결함만큼이나 마음의 왜곡에서 비롯된다. 자아도취는 모든 미덕의 싹을 시들게 한다. 개인주의는 민주주의 기원에서 비롯되며, 조건의 평등과 같은 비율로 확산될 위협이 있다.
사회적 조건이 더 평등해짐에 따라, 비록 그들이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만큼 부유하거나 권력이 있지는 않지만,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만큼의 교육과 재산을 얻거나 유지한 사람들의 수가 증가한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빚을 지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는다. 이들은 항상 자신을 혼자 서 있는 존재로 여기는 습관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모든 운명이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들을 동시대 사람들과 분리시킨다; 그것은 개인을 영원히 자기 자신에게만 던져 넣고, 결국 그의 마음의 고독 속에 완전히 갇히게 할 위협을 가한다 (Democracy in America, 574-5).
이해 (interest) 원리
토크빌의 사회철학에서 주목할 점은 이해의 원리에 있다. 자기이해가 계몽이 될 경우 그것은 공동체를 위해 해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리하게 작동한다. 그것은 약간의 희생을 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한 지배를 방어한다. 이해의 원리는 모든 철학에서 요구에 가장 잘 적합하며, 모든 사람들에 대한 안전이 된다. 계몽된 이기주의는 다른 사람들을 보존하고 공동체를 위해 사적 이익의 부분을 포기한다. 그러나 비계몽된 이기주의는 기꺼이 전체를 보존하려고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상실한다.
"지구 상의 어떤 힘도 점점 더해가는 조건의 평등으로 인해 인류의 마음이 유용한 것을 찾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이 유용한 것을 찾도록 이끌거나,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에게 몰두함으로써 개인의 이해관계는유일한 인간 행동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각자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어떻게 이해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Democracy in America, 596).
철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사회를 욕망과 충족의 체계변화에서 파악할 때 개인의 이해는 계몽이 될때 민주주의를 위해 유용하게 작동될 수 있다. 그러나 이해의 시스템이 교육이 되고 계몽이 되지 않을 경우 조야한 이기주의로 변질되며 공동체에 해로움을 가져온다. 계몽된 이해관계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에밀 뒤르켐에 의하면 그것은 합리적인 사회조직과 노동의 분업에서 사회 구성원들간의 유기적 연대감을 형성하며, 공동체를 위해 개인은 사적인 이해부문을 희생한다. 이것은 시민사회의 독특한 특징에 속한다.
이런 점에서 토크빌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근대의 사회는 암묵적인 자기 희생과 본능적인 미덕의 시대는 이미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자발적인 미덕은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지만, 근대의 시민사회에서 자유, 공공의 평화, 그리고 사회 질서는 교육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ibid., 597).
올바르게 이해된 이해의 원칙은 도덕이나 종교적 신념과 함께 쉽게 호환된다. 도덕 체계는 사람들에게 이 삶에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열정을 꾸준히 조절하게 한다. 지속적인 행복은 일시적인 만족을 포기해야만 확보될 수 있다. 거의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했다. 모든 사람들은 종교적 동기로 인해 동료와 이웃들의 삶을 위해 미덕을 실천한다.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
토크빌에 의하면 평등은 사람들을 나란히 배치하지만, 어떤 공통의 유대감도 없이 배치한다. 전제정치는 그들을 떼어놓기 위해 장벽을 세운다. 전자는 그들이 동료 인간을 고려하지 않도록 만들고, 후자는 일반적인 무관심을 일종의 공공 미덕으로 만든다. 언제나 위험한 전제정치는 민주주의 시대에 특히 두려워해야 한다. 민주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자유를 가장 필요로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평등이 공동의 유대감을 하락시킨다면, "자유는 개인적인 적대감을 낳으며, 전제정치는 일반적인 무관심을 낳는다" (ibid, 578). 조건의 평등과 인간의 시민적 예의가 자라나는 것은 동시대의 현상일 뿐만 아니라 상관 관계에 있는 사실이다 (ibid., 630).
조건들의 평등에서 노동은 존중받는 원리로 등장하며, 이것은 부를 유산으로 이어받는 귀족 사회와는 다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산업은 선호가 되며, 증대된다. 그러나 산업의 무한한 증대와 부의 축적을 통해 귀족지배의 사회가 등장하기도 한다 (ibid., 626).
노동 분업의 원리가 적용됨에 따라 더 광범위하게 적용될수록, 노동자는 더 약해지고, 더 편협해지고, 더 의존하게 된다. 주인과 노동자는 아무런 유사점이 없으여 이들의 차이는 매일 커져간다. 이들은 단지 긴 사슬의 양 끝에 있는 두 개의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다. 더 많은 부유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이 재산과 지식을 제조업에 헌신한다.
엄격한 분업은 새로운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모든 측면에서 요구된다. 대중이 민주주의로 향하는 정도에 따라 그리고 국가가 민주주의로 전환함에 따라, 제조업에 종사하는 특정 계층은 더 귀족화가 된다. 결국 소수 계급에서 평등이 증가하는 비율은 공동체의 감소 비율과 동일하다.
공동체의 감소비율에 따라 밑바닥까지 파고 들어가 보면, 귀족제는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의 품에서 솟아난다. 민주주의의 품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이러한 귀족주의는 결코 이전의 귀족주의 사회와는 다르다 (ibid., 628). 이것은 형식적 민주주의 안에서 출현하는 사회계층과 불평등의 조건 다시말해 귀족주의화된 민주주의 성격을 지적한다.
그런가 하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공 업무에 참석하도록 강요받을 때, 그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관심 영역에서 벗어나고 때로는 자기 관찰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 사람이 공공의 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 그는 처음 상상했던 것처럼 동료들로부터 그렇게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종종 그들에게 협력해야 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애정을 얻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도 없다.
미국에 존재하는 정치적 협회들은 그 나라의 방대한 협회 집합 속에서 단지 하나의 특징일 뿐이다. 모든 연령대, 모든 조건, 그리고 모든 성향의 미국인들은 끊임없이 협회나 결사를 형성한다. 그들은 상업 및 제조 회사뿐만 아니라, 천 가지 다른 종류의 연합과 협회들 --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또는 광범위하거나 제한적인--을 형성한다.
이들은 오락을 제공하고, 교육 기관을 설립하고, 여관을 짓고, 교회를 건축하고, 책을 보급하고, 다른 나라들에 선교사를 보내기 위해 협회를 만든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병원, 감옥, 학교를 설립한다. 어떤 진리를 증진시키거나 위대한 모범을 통해 감정을 고양시키려는 제안이 있을 때, 이들은 사회를 형성한다 (Democracy in America, 581). 그리고 신문과 언론이 협회의 발전과 더불어 증대된다.
그러나 미국의 시민사회의 특징인 협회와 연합을 보면서 토크빌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민주주의가 봉건제와 군주제를 파괴하고 왕이 사라진 자리에 시민과 자본가들을 존경해야 하는가? (ibid., 16). 자본주의 경제에서 평등은 어떻게 추구 되어야 하는가? 토크빌에 의하면 시민들 대다수가 번영의 삶을 살려면, 개인적 이해관계는 공동체의 이익에 일치해야한다 (ibid., 19).
루소의 국민주권이 유럽에서 유토피아적으로 여겨지던 것과는 달리, 토크빌은 미국의 정치 제도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그러나 토크빌에게 국민주권은 민주주의 시대에 자유와 평등을 보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루소가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에서 시도한 경제적 분배정의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자기이익에서 간과된다
루소에게 일반의지가 민주주의를 다스리는 이념형으로 드러나지만, 토크빌의 정치학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누가 그리고 무엇이 중산층을 기초로하는 민주주의 정부와 권력을 콘트롤 할 것인가? 미래의 민주주의를 평등한 사회 조건에서 자유를 보증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사회적 조건들이 중앙 집권화된 정부 형태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해 자유와 평등은 로크나 루소처럼 자연의 상태에서 찾아질 수 없다! 오히려 개인의 의사에 반하여, 평등은 역사의 과정에서 발생론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조건들에서 찾아져야한다. 이것은 미국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역사적 과정으로 파악하는 토크빌의 견해를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미국에서 발전하게 될 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전망한다. 유럽의 민주주의 역시 앞으로 평등한 사회적 조건들을 기초로 발전되어야한다.
시민사회와 종교의 역활
토크빌에게서 인간의 사회화된 마음이 민주주의 사회애서 지성적이며 도덕적인 협회와 결사를 통해 상호 주관적인 영향을 통해 함양된다면 종교는 중요한 자리를 갖는다. 이것은 정치와 산업의 협회가 강제적인 것과는 전혀 다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결사나 협회에 대한 과학이 모든 학문의 모체이다. 나머지 모든 학문의 발전은 그것이 이룬 발전에 달려 있다.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법들 중에는 다른 모든 법들보다 더 정확하고 명확해 보이는 하나가 있다. 만약 사람들이 문명화된 상태를 유지하거나 문명화 되기를 원한다면, 함께 어울리는 협회와 결사의 기술은 조건의 평등이 증가하는 비율에 맞춰 성장하고 개선되어한다 (Democracy in America, 585).
이런 측면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토크빌이 미국의 종교에 대한 관심이다. 미국의 타운십에서 기독교는 지식과 공공교육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성경의 율법준수 (특히 십계명과 출애굽)는 사람들을 시민의 자유로 나가게 했다. 17세기 유럽 대륙에서 절대 군주제는 모든 곳에서 과두제와 봉건제를 지배했고, 시민들간의 정치적 활동과 진정한 자유의 원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Democracy in America, 60).
종교는 시민사회 안에서 연합과 결사를 이루어가는 핵심에 속한다. 물론 이것은 기독교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토크빌의 종교이해는 사회학적인 기능과 효과에 있다.종교는 인간의 자유를 연합의 정신을 통해 묶어준다.
토크빌은 자유의 개념을 분석하는데 부패한 본성의 자유가 있다. 이러한 자유는 사회적 권위와 양립하지 않는다. 이러한 부패한 자유에서는 우리 모두는 퇴락한다 (sumus omnes deteriores). 이것은 진리와 평화의 가장 큰 원수이다. 그러나 연합의 자유가 있는데, 이것은 사회적 권위의 적합한 목적이 된다. 이것은 정의로우며 선하다 (Democracy in America, 61).
토크빌은 미국의 문화에서 작동되는 물질주의를 매우 비판적으로 다룬다. 그는 물질주의자들을 여러 면에서 매우 불쾌하게 여긴다. 이러한 물질주의는 매우 해로우며 오만하며 혐오감을 준다. 물질주의 시스템이 인간에게 어떤 유용성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겸손한 자아상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야만적이며 마치 자신들이 신인 것처럼,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이 자랑스럽게 행동한다. 미국에서의 물질주의는 인간 정신의 기장 위험한 질병이다. 민주주의 사회 안에서 물질주의는 마음에 가장 익숙한 악과 쉽게 결합된다. 물질주의 시스템에서 민주주의는 육체적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을 조장한다 (Democracy in America, 613).
종교가 물질주의에 저항하여 공공선을 위한 마음의 습관을 햠양해주는 것은 시민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시민들에게 사소한 업무의 관리를 맡기는 것은 중요한 업무의 통제를 그들에게 넘기는 것보다 공공 복지에 관심을 갖게 한다.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공동체적 유대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확신을 심어주고 인간의 삶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가 있다. 이러한 사회화된 마음의 습관은 눈부신 업적으로 한번에 사람들의 호의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얻으려면, 작은 봉사와 미미한 선행의 긴 연속, 다시말해 끊임없는 친절의 습관과 이타심으로 쌓은 명성이 필요하다. 로컬 공동체의 자유는 많은 시민들이 이웃의 애정을 소중히 여기게 만든다.
주민들이 가진 자유로운 제도와 그들이 많이 활용하는 정치적 권리는 모든 시민에게, 그리고 수천 가지 방법으로, 그가 사회에 살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들은 매 순간 그의 마음에 인간이 동료들에게 유용하게 되는 것이 의무이자 이익이라는 개념을 각인시킨다.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특별한 적대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쉽게 친절의 편에 기울어진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필요에 의해, 후에는 선택에 의해 공공의 이익을 돌본다: 의도했던 것이 본능이 된다. 그리고 동료 시민들의 복지를 위해 일함으로써, 결국 그들을 섬기는 습관과 취향이 형성된다 (Democracy in America, 580).
개신교는 초기 미국의 삶에서 공동체의 도덕성과 자유를 함양해주고 민주주의에 유리한 ‘마음의 습관’을 만들어 주었다. 토크빌에 의하면 이해의 원리는 종교적 신념과 연결이되며 사회화된 마음을 함양시킨다. 예를들어 기독교는 이웃을 자신보다 더 사랑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지만, 또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유익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돕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숭고한 표현이다.
기독교인은 모든 창조된 것들의 완전한 질서를 위해 개인적 이익을 희생하면서, 다른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오직 그것을 관조하는 즐거움만을 기대한다. 그러나 토크빌에 의하면 이익이 종교인들의 유일한 동기라고 믿지 않지만, 여전히 이해관계가 주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Democracy in America, 598).
이미 토크빌은 1856년 구체제와 프랑스 혁명을 분석하는 그의 책에서 종교문제를 매우 정확하게 보았다. 프팡스 대혁명 당시 카톨릭에 대한 공격은 외부의 관찰자가 보는 것 처럼 혁명세력이 무신론적이서가 아니다. 교회가 봉건적 사회조직에서 부와 특권을 누리는 신분 때문이었다. 오히려 민중들은 종교적이었다. 계몽주의 철학가들에 이해 기독교가 공격을 당한 이유는 종교의 교리가 아니라 교회가 점유한 특권과 정치제도 때문이었다. 이들은 토지 소유자였으며 장원의 영주였으며 십일조를 받는 계급이었다 (The Old Regime and the Revolution, 19).
프랑스 대혁명은 반종교적이 아니라, 종교의 특권과 부패에 대한 공격이었다. 토크빌의 분석에 의하면 프랑스 혁명은 흔히 언급되는 것처럼 종교에 대한 증오심과 군주 정치제도와 권위에 대한 파괴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이 혁명의 주요 원인이었지만, 이러한 철학이 반종교적인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자연적 평등, 모든 카스트 제도의 제거, 국민주권 그리고 사회기구의 권위 등은 프랑스 혁명의 본질이지만, 이러한 사상은 종교로부터 나온 것이다.
만일 미국의 개신교가 사회의 평등과 자유를 위해 유리한 조건을 창출 한다면 바람직하지만, 인종차별과 파시즘적 형태를 취한다면 프랑스 혁명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가 있다. 개신교를 극우 민족주의나 물질주의와 또는 파시즘화하는 트럼프주의자들이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다. 미국의 종교재벌이나 귀족주의에서 부자들에 대한 감세정책은 트럼프 관세 전쟁에서 결정적이다. 중국과의 디커플링에서 종교가 올르가르히 지지 세력으로 등장할 때 종교는 반사회적 세력으로 부패하고 공격을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