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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 비판과 해방의 담론

by 파레시아 2023. 6. 18.

식민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해방의 담론
 
<법철학> (§ 247)에서 헤겔은 자본주의 사회와 식민주의 관계에 주목했다. 기술의 발전과 소통수단을 통해 해양으로 연결되면서 시민사회는 식민주의와 연결된다. 자본주의 팽창은 영국과는 달리 독일에선 간헐적인 식민지화로 나타났다. 이것은 당대 영국이나 스페인 식민지들에서도 볼 수 있다(§ 248).
 
헤겔은 정착 식민지 타입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의 <역사철학>에서 나타나듯이 콜럼부스 식민지 발견의 시대에 주목한다. 식민지 발견의 시대는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에서 처럼 기사도의 모험정신으로 충만한 해양의 영웅들로부터 기인한다. 이들은 동인도를 향한 새로운 길을 열었고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이러한 헤겔의 견해에서 콜럼부스는 단순히 세속적 목적이 아니라 특별한 종교적 측면을 드러내며, 풍부한 아메리카의 보물들은 그의 새로운 십자군 기획에서 사용되었다. 
헤겔은 근대의 시기에 식민지 발견이 새로운 유럽의 십자군 전쟁으로 파악하고 그의 주인과 노예의 인정투쟁을 여기에 적용한다.

헤겔은 시민사회 (부르즈와지에 의한 경제사회)를 도덕을 증진하는 (비 부르즈와지 영역의 사회제도들에 기초된) 시민사회와 구분지었다. 후자는 보호와 도덕적 진보를 보장하는 보편적 이성국가에 속한다. 국가자체는 윤리적 전체성을 말하고 인륜의 이념의 현실성이며 자유의 실현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성의 절대적 목적이며 여기서 자유가 현실화된다 (§ 258).
 
시민사회의 식민주의적 타입에 대해 헤겔은 그의 <정신 현상학>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사회적 모델에서 언어와 문화구성에 주목하고, 이것을 정치지배와 재산권과 경제적 부와 관련지었다.

이것은 헤겔의 외화의 사회학으로 부를 수가 있는데, 이전 주인과 노예의 인정 투쟁이 노동과 노동자의 위신을 기초로 한다면, 외화의 사회학에서 인정투쟁은 객관적인 사회 질서에서 나타나는 문화, 문명 (종교개혁과 프랑스 혁명), 계몽주의, 국가권력과 경제적인 부 그리고 언어의 비판적 기능을 다루면서 확대된다 (The Phenomenology of Mind, VI, B자기 외화의 정신: 문화와 문명의 규율).       
 
헤겔과 보헤미안 이성
 
디드로의 풍자극 <라모의 조카>를 1805년 괴테가 번역해서 출간했다. 헤겔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당대 프랑스의 유명한 음악가 장 필리프 라모의 조카인  장 프랑수아 라모의 성격에 주목하였다.

디드로는 러시아의 군주 예카테리나 2세의 제안으로 그의 책과 원고를  성 페테르부르크로 넘겼다. 러시아에 체류하던 독일 극작가 프리드리히 클링어가 <라모의 조카> 수고를 손에 넣어 필사를 하고, 쉴러에게 넘겨지고 괴테가 이 원고를 직접번역해서 출간했다. 괴테의 번역이 다시 프랑스어로 중역되어 18 21년에 재 출간되었다 ( 디드로, 라모의 조카, 고려대학교 출판부, 2015).
 
헤겔은 <라모의 조카>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정신 현상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라모의 조카는 헤겔이 말하는 자기외화의 정신의 상징인물인데 그의 <역사철학>과 <철학사>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라모는 숭고하지만 도발적이며 때로는 도적질과 범죄행위를 옹호하는 비합리적인 복합적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는 매우 냉소적이며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이며, 부도덕한 삶의 현실을 드러낸다. 예술과 오페라를 사랑하지만 돈에 대한 집착은 종교와 같다. 이러한 타입은 무가치한 사람을 말하는데 비열한 술책을 사용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나를 적대하시도록 공모자로 삼는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 마지막 3부 초반에 <라모의 조카>를 중요하게 수용하고, 라모와 같은 비상식적인 존재에서 18세기가 이해하지 못한 결정적인 변화 혹은 파열을 감지했다.

<광기와 문명>에서 푸코는 라모의 조카를 광기 또는 비이성의 출현으로 보고, 17세기에 광인들이 구금된 것과는 달리 18세기에 대화의 대상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이것은 사회적 효과를 갖는다. 계몽의 합리성은 여기서 어둠의 거울, 즉 비이성을 발견한다 (Madness and Civilization, 199-201).
 
그러나 헤겔은 라모의 조카안에서 당대 프랑스 사회의 모든 도착적인 상태와 변태를 보는데, 자기와 타자를 기만하는 의식이다. 사기협잡에 능한 철면피같은 정신은 가장 위대한 정신인 혁명과 해방을 위하여 행해진다. 그의 언어의 스타일은 음악가의 광기를 드러내며, 더러운 분위기와 이탈리아와 프랑스적인 비극을 표현하며, 지옥의 심연에 내려가있다. 라모는 정상적인 목소리보다 높은 경교음의 테너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그의 인격은 지혜와 어리석음의 판타스틱한 혼합이며, 그의 저급한 속임수는 옳은 것을 그릇되게 하고 감정의 완벽한 변태스러움을 드러낸다 (Phenomenology, 307).   
 
푸코와 달리 헤겔은 이성의 규준과 통제를 벗어나는 라모와 같은 천재와 광기와 근대성의 출발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본다. 라모와 대화를 하는 계몽 철학자 (디드로)는 무능함을 나타나며 오히려 그에게 진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라모의 조카>에 대한 평가에서 헤겔의 현상학의 변증법은—구체(예속된 자)에서 보편(해방과 인정)으로 나가는—이성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나간 하위계급의 관점을 담고있다. 이제 노예의 불행의식은 라모의 조카에서 구체화되고 문화의 부패와 붕괴의 시기에 진리는 라모의 조카에게 주어진다.
 
외재화 (또는 객관화)에 기초된 헤겔의 사회구성이론에서 사회계층은 권력과 경제적인 부에 따라 재편되며 다양한 계급들과 신분들이 출현한다. 디드로의 풍자극은 헤겔에게 있어서 계몽주의를 해명하는 중심 텍스트로 등장한다.

<라모의 조카>는 사회와 도덕의 변화에서 드러나는 이중의식을 보여주며, 헤겔의 사회학에 결정적이다. 여기서 헤겔은 인정과 화해를 말하지 않고 두 극에 걸쳐 자본주의 문화의 영향아래 있는 소외와 변태의 인간상을 본다.

선함과 숭고한 것은 전도가 되고 악하고 저급한 것이 탁월한 것으로 드러난다. 라모의 조카라는 상징적인 인물을 통해 헤겔은 프랑스 사회의 파국을 예견한다. 그것은 “전체 현실 세계의 변태적인 행동의 보편적인 실재”를 본다. 디오게네스조차도 이러한 변태적인 문화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ibid., 308).
 
헤겔에게서 자본주의 사회는 국가권력과 경제적인 부가 지고의 목적으로 고양된 사회로 특징되며, 이것은 승인된 권력의 형식이지만 헛되고 공허하다. 헤겔이 프랑스에서 보는 것은 조국이 아니라 독재자들과 노예들 밖에 없다.

모든 본질적인 내용들은 이러한 공허한 의식 안에서 오직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ibid., 310). 라모의 위트와 음악적 언어가 권력과 부의 탐닉으로 인해 덧없이 사라져 가고 붕괴되는 세계의 현실을 비판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공허한 욕망이 지배하는 모든 가치가 전도된 사회이다. 
 
이 지점에서 <라모의 조카>는 혁명이전의 상태의 의식, 다시말해서 상처를 입은 의식으로 나타난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로 인해 통렬히 찟겨진 삶을 사는 사람이며 그런 절규의 언어를 말한다.

음악가 라모의 조카와 디드로의 대화에서 조카는 방랑자이자 기생충같은 타입이지만 여전히 그는 세상을 비판하고 풍자할 수 있는 영웅이기도 하다. 헤겔은 라모의 조카안에서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찢겨진 절규의 언어를 발견하며 프랑스 사회의 극단적인 문화의 위기를 본다 (Hypolite, Genesis and Structure of Hegel's Phenomenology of Spirit, 412).
 
라모의 조카는 완전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이상한 특성을 가지며, 당대 ‘인민’ (프로렐 타이아트)이나 대중으로 파악할 수 없는—그러나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서 나타나는 것 처럼— 민중의 상징성이 된다.

이러한 보헤미안 민중의 상징성 안에서 헤겔은 자신의 변증법적인 성격을 객관적인 문화와 사회구성을 분석하고 새로운 혁명의 주체를 발견하고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그의 사회학을 전개한다. 헤겔의 인정투쟁은 단순히 노동을 넘어서서 이제 <라모의 조카>에서 국가권력과 경제적인 부 그리고 법적, 이데올로기 정당성에 기초된 탐욕의 지배와 부패의 문화를 비판적인 언어를 통해 총체적으로 비판한다.       
 
아첨과 해방의 언어
 
헤겔에게서 문화는 언어에 의해 형성되며 보편적 실체의 유일한 영혼인데, 본질적인 것이 이 안에서 숨쉬고 객관적인 의미를 갖는다. 개인은 이러한 보편적 문화와 더불어 함양되고 발전되며, 개인의 활동의 객관화과정을 통해 사회안에 다양한 문화적 계기와 내용과 구성이 드러난다. 헤겔은 도덕적 판단와 더불어 국가 권력과 경제적 부와 자원을 주요 계기들로 지적 한다. 개인은 국가안에서 자신의 영적인 본질과 보편성이 표현되는 것을 안다. 부와 자원은 끊임없는 노동과 행동의 결과로 창출된다. 부는 상호간의 보편적인 행동과 노동에서 오며, 모두를 위해 부의 향유를 생산한다 (Phenomenology, 291).   
 
문화적 영역과 구성에서 헤겔이 분석하는 귀족의식은 혁명정부와 상퀼로텐과 같은 민중운동의  대립를 지적할 수가 있다. 이것은 자코뱅 혁명정부를 지지하고 국민의회 (1792년 9월 20일-1795년 10월 26일)와 공안위원회 (1793)의 테러 정치 (1793-4)를 거쳐 테오도르 반동에 이르는 시기에 나타난다.

그런가하면 <라모의 조카>의 상징성에서 헤겔의 사회학은 디렉토리 정부에서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를 통해 (1799월 11월 9일) 나폴레옹을 황제 권력에서 부상한 군부나 새로운 권력계층에서 유형화 될 수도 있다. 이들은 이전 세습적인 귀족의 지반을 부수고 등장한 자기창조 내지 외재화의 의식 즉 자기 함양의 존재를 말한다.
 
마르크스도 이와 비슷하게 말한다. 나폴레옹은 혁명정부에 의해 설립된 시민사회에 대항하는 혁명적 테러의 마지막 단계를 대변한다. 나폴레옹은 근대국가의 성격을 이해했고, 이러한 국가가 시민사회의 자유로운 발전과 개인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것임을 인정했다. 그는 비전에 찬 혁명가가 아니라 여전히 국가를 목적자체로 그리고 시민사회를 국가에 재정적 도움을 주는 금융회계사 정도로 간주했다. 나폴레옹은 영구전쟁을 영구혁명으로 대신하고 프랑스의 민족이기주의를 최대한 충족시켰다. 그 대가로 그는 시민들의 삶과 즐거움과 부의 희생을 요구했다 (Lukacs, Young Hegel,
378).
             
헤겔은  베이콘의 경구—“지식은 힘”이다—를 상기시키면서, 개인은 문화에 의해 형성되며 구체적인 존재를 갖는다고 말한다. 문화의 정도에 따라 개인의 실재와 권력의 측정된다. 헤겔은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를 인용하면서 다음처럼 말한다. “모든 닉내임의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그것이 평범함을 의미하기 때문에—가장 높은 정도의 경멸을 말한다.” (Phenomenology, 288). 달리 표현하면, 일상의 평범함에서 오는 속물근성은 <라모의 조카>에서 가장 큰 경멸을 당한다
             
헤겔의 분석에 따르면 귀족의식의 성격은 국가권위와 일치하며, 귀족의식은 정치권력과 경제적인 부에 적합하다. 경제적 부는 귀족의식의 본질적인 측면을 실현한다. 이것은 혁명의 열망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귀족주의의 아첨의 마음을 지적한다.  
 
사회학적 콘텍스트에서 귀족의식은 낮은 계층의 의식과 충돌한다. 국가권력은 경제적인 부와 특권으로 인해 변질된다. 낮은 의식은 귀족의식이 향유하는 본질적인 국가권력과 경제적 부에 동의하지 않고 국가권위를 자신들의 삶을 묶는 쇠사슬처럼 본다. 이것은 결국 반란과 혁명으로 치닺는다 (ibid., 295).
 
저항의 담론에 대해 귀족의식은 아첨의 언어를 생산해내고, 무제한 권력의 군주에게 봉사 하면서, 자신의 특권과 명예를 방어하기에 급급해진다. 민중의 봉기의 자리를 대신해 국가는 보편성으로 고양된다. 그러나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사회적 자아가 해체되고 군주제에서 절대 권력이 파괴된다. 이것은 심연을 마주하고 있는 혁명이며, 모든 견고한 기반들이 사라져버리는 끊임없는 구덩이와 같다.
 
국가를 다룰 때, 헤겔은 여전히 귀족의 아첨의 언어에 저항하는 시민과 하위계급들의 저항의 중요성을 확인한다. 아첨의 담론은 권력의 메커니즘과 경제적 부와 문화적 불평등을 대변하는 사회의 논리이며, 합리화, 물질적 이익 그리고 사회적 위신을 옹호한다. 그것은 추상적인 보편성에서 표현되는 언어이며, 군주의 무제한적 권력 아래서 ‘최상의 보편성’으로 불린다 (ibid., 300, 304).
 
헤겔은 아첨의 언어와 통렬한 아픔의 언어를 분석하면서 부유한 자들의 오만과 가난한 사람들의 절규를 반성하는데, 이것은 디드로의 풍자극 <라모의 조카>에 관련되어있다. 헤겔은 디드로의 텍스트를 극단으로 치닷는 프랑스 문화의 자기의식으로, 즉 타락한 사회의 표현으로 해석한다. 주인과 노예의 인정투쟁처럼 헤겔은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해방과 사회 구성원들간의 평등함을 그린다 (Hypollite, Genesis and Structure,  411).
 
헤겔의 공포정치 비판
 
헤겔의 사회학에서 드러나는 분석은 정치적 지배방식, 경제정의 그리고 언어의 해방적 차원을 부각시킨다. 이것은 헤겔의 비판적 민주주의를 지적하며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를 비판하지만, 여전히 헤겔은 인정투쟁의 틀에서 밀려나간 자들의 관점에서 혁명의 문제를 검토한다.

헤겔은 프랑스 혁명의 전개과정을 분석하면서 공포정치와 나폴레옹의 황제취임 (1804)에 관심을 갖는다. 공포정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헤겔은 여전히 혁명의 이념과 정치 혁명이 세계정신의 매개를 통해 다른 사회와 문화에 유포되며 합리적으로 실현될 것을 인식했다.
 
헤겔에 따르면 혁명적인 시민들을 통해 하늘의 도시는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독일에서 문화혁명이 종교개혁을 통해 칸트와 피히테에게서 도덕절학으로 발전했다면, 종교개혁은 근대성을 열어준 세계해방의 첫 번째 단계이며, 개인의 양심과 신과의 내적인 화해를 통해 부분적으로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러한 정신적 유산은 이제 절대자유와 공포정치와 마주하게 된다. 이성은 여기서 공리주의화, 즉 도구화가 되고 매개와 인정의 차원을 상실하면서 도덕적 세계관과 인륜을 파괴한다. 
 
공포정치의 문제는 절대적 자유를 다양한 사회조직과 시민들과의 매개와 승인없이 순수개인의 의지와 절대 확실성으로 환원시키는데서 시작된다. 모든 개인들의 의지를 한 개인의 보편의지로 구현하고 세계의 권좌에 앉힌다.

한 개인의 절대자유 안에서 모든 사회적 계급과 지위들과 더불어 개인의식은 지워지고 삭제된다. 공허한 지고의 존재가 보편 의식으로 출현 하고 국가의 법과 기능을 통제하고 수행한다. 이것은 결국 부정적인 행동, 즉 분노와 파괴의 폭력을 산출한다 (Phenomenology, 346).
 
그러나 헤겔에게서 국가지배는 입법과 행정과 사법으로 분화되고, 시민대중은 과제와 능력에 따라 신분으로 조직된다. 개인성은 전체의 부분에 제한되며 법적추체로서 인격의 중요성을 부여받는다. 이는 보편적인 자의식으로 고양되지 않으며 정부의 전제지배 안에서 살아가지 않는다. 이러한 문화 사회적 분화에서 절대자유에 기초한 공포정치는 죽음과 파괴 이외에 아무런 긍정적인 내용과 효과를 산출하지 못한다 (Hyppolite, 459).

절대자유는 공허한 지고의 존재와 모두가 직접적인 일치에서 드러나며 결국 아나키와 독재로 막을 내린다. 헤겔에게서 공포의 정치는 순수부정이며, 매개가 전적으로 부재하며, 보편성안에 존재하는 개인에 대한 부정, 즉 죽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죽음은 모두에게 냉혈적이고,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는 무의미한 죽음을 말한다. 죽음의 공포가 절대적 자유안에서 직접적으로 파악되며, 의식과 외부세계의 상호적인 연관은 실종된다. 문화는 재앙과 공허한 무로 전락한다. 혁명정부도 사라진다.   
  
헤겔에게 독재와 공포정치는 매개가 사라지는 자기파괴적인 정신을 말하며 인정투쟁이 실패로 끝나는 지점을 지적한다. 혁명은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노스텔지아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인륜성은 역사적 과정과 발전을 거쳐 사회화가 되고 합리화가 되면서 다양한 계급과 신분들로 계층화가 되었다.

이러한 장기지속을 통해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의 세계는 근대의 문화이다. 이러한 변화된 역사가 혁명가의 그리스 도시국가에 대한 낭만주의 이상형을 패퇴시킨다. 혁명은 역사 낭만주의나 이상형에서 파산 당한다. 오히려 <라모의 조카>로 상징되는 상퀼로텐에 대한 인정과 경제적 분배정의를 통해 혁명의 자유와 원리는 발전해야한다.
 
역사학자들이 공포정치를 내부의 반란자들이나 또는 인접국가로부터의 전쟁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에 반해, 헤겔은 사회 철학적으로 그리고 비판적 민주주의를 통해 파악한다. 반대파들에게 정당성을 허락하는 것은 의회 민주주의에서 가능하며, 매개와 인정이 없는 직접 민주주의이나 인민독재는 헤겔에게 무의미한 죽음의 공포와 자기파괴적 정신으로 막을 내린다.    
  
헤겔은 여전히 칼리반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헤겔의 변증법은 사회비판적이며, 그의 인정투쟁은 “나-우리”라는 보편적인 동등함을 구체적인 현실사회에서 지적한다. 변증법적인 드라마에서 헤겔은 인정과 다름의 정치를 기획하고, 욕망과 충족의 체계변화를 시스템적으로 사유한다. 주인과 노예의 동등한 인정을 향한 여정에서 비판적 민주주의와 공공선과 협업적인 사회 제도와 유기적 도덕에 기초된 시민국가를 향해 그는 우리에게 칼리반처럼 드러난다. 이러한 칼리반의 모습은 당대 영국의 정치 경제학과는 결이 다르다.  
 
헤겔의 인식론적 태도는 억압적인 사물의 질서에서 인정투쟁이 정치영역에서 자유와 독립를 위해, 그런가하면 경제영역에서 분배정의를 위해, 더 나아가 문화영역에서 다름에 대한 인정으로 명료화한다. 여기서 사회적 담론은 억압받는 다양한 계급들과 계층들에서 국가 권력과 경제적 착취 그리고 문화적 지배와 부정의에 대한 비판으로 나간다. 담론으로서 언어는 권력의 메카니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자아를 상호 주관적인 소통구조로 인도한다.
 
그러나 헤겔에 따르면 문화의 세계는 소외의 세계이며, 정치는 대립, 빈곤 그리고 사회적 불협화음을 드러내고 경제적인 부정의로 인해 부패했다. 이것은 피부를 찌르는 통렬한 아픔의 언어로 표현되고 절대적 해체와 더불어 혁명이전 단계의 불행의식을 의미한다.
 
문화적 소외는통렬한  언어, 즉 억압의 담론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회질서에서 언어는 법과 명령을 구현하며, 실제적인 삶에서 언어는 소통과 표현으로 나타난다. 대화과정에서 발화행위는 수행능력을 갖는다. 발화행위에서 개인은 타자를 위한 존재가 된다. 언어행위는 이러한 자아를 담고있고, “나”를 표현한다. 표현과 소통행위에서 자아는 타자와 보편적 의식으로 고양된다 (Phenomeology, 298).
 
국가권위에서 귀족의식은 존중과 명예를 추구하며 추상적이며 보편적인 언어에서 표현을 발견한다. 그러나 국가권위는 영예보다는 자기규제적이며 결정을 한다. 귀족의식은 국가의 언어를 재생산하고 이들의 벙어리 봉사는 아첨으로 진행된다. 국가권력은 무제한이 되며, 아첨의 언어는 이러한 권력을 보편화시키고 특혜를 얻는다.
 
더 나아가 경제적 부와 혜택에서 귀족의 언어는 거만으로 나타나며 저급한 의식의 비밀스런 반란을 묵살한다. 모든 합의와 계약 그리고 복종은 산산조각이 나고 귀족에 대한 존중은 부서진다.

모든 사회질서와 일치는 붕괴와 심연앞에 서 있고, 정치영역에서 아첨의 언어에 저항하듯이 경제영역에서 언어는 통합에 저항하는 분열의 조건을 표현한다. 반란과 절대적인 분열이 나타나며 귀족의식은 낮은 계층의 의식으로, 낮은 계층의 의식은 귀족 의식으로 변형되면서 보다 고차적인 의식으로 발전한다 (ibid., 306).          
 
헤겔의 변증법 드라마에서 계몽의 이성, 근대성 그리고 자본주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유포되는 것을 역사적으로 파악한다. 보들레르적인 보헤미안 이성은 여전히  근대성의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부패와 탐욕의 문화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민사회와 국가의 비전을 보여준다.
 
헤겔의 언어철학은 사회적 삶의 자리에서
 
찰스 테일러는 그의 헤겔해석에서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헤겔에게서 언어는 삶의 자리에 연관된다. 언어는 추상적이거나 보편적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활동과 실천에 즉 인간의 삶의 형식(비트겐슈타인)에 자리매김된다.

현대철학의 언어학적 전환에서 헤겔은 여전히 중요하며, 그는 예술과 종교 그리고 철학에서 언어와 상징을 다르게 보았다. 언어표현은 의식의 단계에 따라 나타나며 삶의 자리의 다름을 반영한다. 이론과 실천의 매개는 삶의 형식에서 비판적 담론으로 나타난다. 예술이 여전히 절대정신에 속하는 것은 보헤미안적인 이성을 제공하는 <라모의 조카>를 지적한다.
 
이런 점에서 테일러는 헤겔의 언어와 자유개념에서 여전히 동시대적인 연관성을 본다. 마르크스가 자유를 인간의 실천을 통한 자기창조로 파악하고 절대자유를 주장한다면, 헤겔은 이러한 위험을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에서 보았다. 자기창조에 기초한 급진적 자유는 모든 다른 가치들을 전도해 버리는 권력의지와 허무주의(니체)로 끝나고 만다.
 
급진적 자유개념과는 달리 헤겔에게서 자유의 진보는 역사와 사회에서 세계정신 (또는 생활세계)과의 매개를통해 인정과 창조성 그리고 무해의 원리를 통해 드러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찰스 테일러의 의미심장한 표현—“헤겔의 결론은 죽었지만 그의 철학적 반성의 과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Talyor, Hegel, 570) —을 다음처럼 이해한다. “헤겔의 결론(인정)은 오로지 그의 철학적 반성의 과정을 통해서만 알려진다.”
 
헤겔의 윤리적 국가개념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신과 사회의 동일화)에 대한 대안을 지적한다. 아테나 여신은 아테네 사회 자체와 동일시된다. 그리스의 역사적 몰락에서 인륜적 삶의 구현 혹은 자기 완성적 윤리적 질서는 사라졌지만 근대로 외재화되고 합리화된 시민사회를 위해 여지를 갖는다. 고대 그리스의 윤리적 삶은 실종되었지만 여전히 헤겔의 시민사회와 국가 이론에서 <라모의 조카>와 더불어 적합형으로 남는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는 자유시민에 기초한 직접 민주주의를 지적하며, 헤겔에게서 시민개념은 마르크스의 노동자 (인민) 이념형의 계보학이 된다. 시민대중은 혁명의 과정에서 역사를 변혁하는 주체로 등장하지만, 헤겔의 민중이념형은 마르크스처럼 인민독재가 아니라 <라모의 조카>에게서 형상화되는 집시적 이성에 속한다.

인민독재와 절대적 자유 그리고 공포의 정치에서 헤겔은 전혀 다른 시민사회와 국가론을 그린다. 시민과 하위계급은 이제 윤리적 실체인 국가개념과 연결된다. 합리적인 분업과 협업에 기초된 사회의 유기적 도덕과 비강제적인 사회제도들이 인륜적 국가와 매개되고 접합된다. 그의 인정투쟁에서 드러나는 비판적 민주주의와 자유의 진보와 국가비판 그리고 해방의 담론은 시민국가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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