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플루서 (David Flusser)는 정통파 유대인으로서 히브리 대학에서 초대 기독교와 2차 예루살렘 성전시기를 가르친 권위있는 성서학자이다. 그는 2차 예루살렘 성전시기에 초대 기독교의 문헌에서 유대인의 신뢰할 수 있는 전승 자료들을 찿을 수 있다고 본다. 예를들면, 할례 시에 아이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탈무드 문헌에 알려져있지 않지만, 누가복음 1장 59-64에서 나타난다. "팔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그런가하면 안식일에 즈음하여 키두쉬 (kiddush)기간동안 와인 위에 축복의 기도를 하는 것은 탈무드 문헌에 없지만 신약성서의 주의 만찬에서 드러난다. 키두쉬는 안식일과 거룩한 휴일을 거룩하게 하기위해 와인이나 포도주스에 축복를 하는 예전을 말한다. 미드라쉬 성서해석이나 탈무드 문헌은 예수의 시대에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2차 예루살렘 성전시기에 믿을만 한 유대교의 오랜 전통은 플루서에 의하면 오히려 신약성서에서 찾을 수 있다 (Flusser, Jewish Sources in Early Christianity, 10).
팔레스티나 유대교의 성서해석
팔레스티나 2차 예루살렘 성전 시기, 유대교 해석 전통에는 페샤트(peshat; 할라카를 위한 간결한 문자적 해석), 페쉐르 (pesher; 상황적 해석), 미드라쉬, 알레고리는 성서와 구전 토라를 읽어내는 해석의 기술이다. 랍비 바리새파 전통에서 페샤트는 엄격한 샤마이 학파에서 볼 수 있다. 저녁에 모든 사람은 쉐마 이스라엘을 누워서 암송해야한다. 아침에는 선 채로 해야한다 (Berakhot, 1.3).
불트만은 공관복음의 논쟁 담화에서 랍비적 가르침에 주목하고 정결 법전을 지키는 문제로 힐렐과 학생들의 대화에 주목했다. 가말리엘은 신혼 첫날 밤에 쉐마 이스라엘을 어떻게 암송 해야 하는지 묻는 학생들에게 대답을 한다 (Berach 2. 5).
가말리엘은 이방의 철학자의 질문—왜 하나님은 우상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게 진노하는 가—에 비유로 답변을 한다. 왕에게 아들이 있는 데 아들이 개를 “아바”라는 이름로 부르고 “아바” 개의 이름으로 맹세 한다면, 왕은 누구에게 진노 하겠는가? (ibid., 43).
모세는 기록된 토라 이외에도 구전 토라를 가르쳤고, 탈무드는 구전 토라의 가르침을 법전화하고 새롭게 해석한다. 히브리 성경은 거룩 하지만, 인간의 조건과 새로운 역사적 환경에서 삶의 지침을 위해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교리나 토라에서 미리 주어진 최종진리는 없다. 진리는 모든 세대에 걸쳐 권위있는 해석가들의 다수의 판단에 기초된다 (Yerushalmi Sanhedrin, 4:2).
하나님은 613개의 계명을 모세에게 주셨고 365계명은 금지에 관한 것이며, 248개는 긍정적인 명령을 포함한다. 다윗은 이것을 11개의 원리로 요약했다 (시편 15). 이사야는 6가지로 줄이고 (33:15), 미가는 3가지로 줄이지만 (6:8), 최종적으로 이사야는 2개로 압축한다 (56:1): 정의를 지키고 의롭게 행동하라 (Makkot 24a).
페쉐르는 하나님이 하바국에게 마지막 세대에 일어날 일들을 말했을 때, 이러한 신비가 해석자의 시대에 성취된 것을 말한다. 이것은 쿰란 공동체에서 행해진 해석방식인데 공동체의 창시자인 “의로움의 선생”에게서 하박국의 예언의 신비가 시작되고 성취 되었다 (예레미아의 새 언약은 “의로움의 선생”의 가르침과 삶에서 성취 되었다.)
미드라쉬는 규칙 (예를 들면, 유비)에 기초한 구약성서에 적용하는 문자적 주석이다. 힐렐 학파는 7가지 규칙이 있었다. 하가다 네러티브에서 나타나는 설교나 윤리적 교훈은 미드라쉬 해석의 방법이나 주석에 수용되고, 이것은 일반적으로 에스라 시대 이전으로 시작 되었지만, 주후 3세기 초기 미드라쉬가 편집되었다.
이러한 미드라쉬 주석은 오늘날에도 히브리 성서 본문의 개별 귀절을 설명하고 다른 자료들 (전설, 비유, 현자에 관한 이야기들)과 참고하면서 행해진다 (The Classic Midrash, 17). 알레고리는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20 BCE-50 CE)가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에서 발전시켰다.
이외에도 기원전 2세기에 히브리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 성서가 있고, 또한 타굼이 있는데, 이것은 히브리 성서본문을 아람어로 번역하고 애매한 내용을 설명한다.
이러한 당대 유대적 성서해석의 기술은 복음서에서 그대로 적용된다. 할라카를 위한 페샤트는 마태복음에서 이혼문제를 둘러싼 예수의 해석에서 잘 나타난다 (창 1: 27; 마태 19:3-6). 예수의 가르침은 이혼 문제에 관대한 힐렐 학파보다는 엄격한 샤마이 학파에 접근한다.
페쉐르는 누가복음 4: 16-21절에서 안식일에 예수가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 (61:1-2)을 읽으면서 예수 안에서 성취된 것을 선언하는 대목에서 나타난다. 미드라쉬는 성서의 다른 본문들을 연관지어 해석하면서 논리적인 논쟁을 포함한다.
역사적 예수는 아람어와 히브리어를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히브리 벤 시락의 책 (Ecclesiasticus)과 사해사본 그리고 바코바 지도자들의 편지들이 발견되면서 당대 유대인들이 히브리어를 능숙하게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예수 당시 히브리어는 일상의 언어이며 동시에 학문의 언어였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히브리어와 아람어 전승을 번역한 것을 살펴보면 히브리적 전통과 사유과 더불어 있음을 발견한다.
마태 7: 7-11절에서 예수는 힐렐의 규칙을 사용한다. 악한 아비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는 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간구하는 자녀들에게 더 하지 않겠는가? 그런가 하면 마가복음에서 묵시록은 다니엘의 묵시와 연관된다. 구약의 예언과 관련되어 해석되는 나사렛 예수는 철저히 유대교적 생활세계에 속했다. 예수는 당대 유대적 성서해석에 익숙했고 토라에 신실한 유대인이었다 (마태 23:1-3).
마가복음 7장 1-3절에서 바리새파들은 예수의 제자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손을 씻는 습관은 오직 예수의 시대에서만 일반화된 것이다. 누가 6장 1-6절에서 제자들의 안식일 토라의 위반은 오히려 갈릴리의 랍비 유다 바 일라이 (Judah bar Ilai)의 가르침을 추종한다. 제자들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었다. 이것은 안식일에 허락된 것이다! (Flusser, Jewish Sources in Early Christianity, 22).
토라애 대한 예수의 접근은 힌편에서 준엄한 샤마이 학파에 접근하지만, 다른 한편 유연한 힐렐의 가르침--
네 이웃을 너의 몸처럼 사랑하라--에 서 있다. 이혼의 문제에 관한 한 샤마이 학파는 여성의 불이익을 고려했지만 (마태 5:32, 19:3-9), 힐렐은 남성을 위해 자유롭게 해석했다. 마태복음 23장 1-3절에서 예수는 제자들과 민중(오클로스)에게 모세의 자리에 앉은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의 가르침을 경청 하라고 말한다. 물론 이들의 위선적인 태도는 거부한다.
초대 공동체와 예수 어록
초대 공동체안에서 예수의 어록은 기독교적 할라카의 틀로 전승된다. 공동체는 이것을 준수하며, 설교로 이어진다. 증언자나 목격자들의 초기 파라다임의 전승은 설교의 형태로 드러나며 예수의 가르침과 행동이 중심에 서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복음서의 전승성격은 일방적으로 불트만이 주장하는 것처럼 공동체의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예수의 삶에서 드러나는 공적인 활동과 가르침 그리고 기적과 치유 등이 공동체의 성격을 결정했다. 예수의 어록이나 핼동을 증언한 전승자료들이 공동체의 삶의 자리에서 보존되고 설교를 위해 해석되고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초기 목격자들과 말씀의 사역자들과 성서의 편집자들 (마태, 마가, 누가) 사이에 사회학적 연결 즉 공동의 예수증언이 서 있다.
바울은 다매섹에서 회심 사건후 안디옥 교회에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증언과 문서를 배웠다. 이것은 주의 만찬과 부할의 공개 현현에 관련된다 (고전 15:1-15). 로마서에서 힐렐의 미드라쉬 (롬4:3 -8. 창 15:6, 시편 32: 1 -2)를, 그리고 사라/하갈 그리고 이삭/이스마엘의 알레고리를 갈라디아서 (4: 21)에서 사용한다. 그리고 복음서의 묵시적 메시아나 요한 계시록은 구약의 묵시적 지평과 이스라엘적인 이디엄을 이해하지 못하면 완전히 시한부 종말론으로 변질된다.
복음서는 문학이 아니라 전승!
복음서나 바울서신에서 중요한 것은 목격자와 말씀의 사역자들이 전해준 예수 전승자료에 있다. 이들은 당대 살아있는 공동체의 사람들이었다. 파피루스와 구전으로 전해준 이들의 신실한 증언활동이 안디옥 교회에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번역되기 시작했다. 파피루스와 구전 전승은 100년 까지 이어졌고,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이 포함하지 않는 역사적 예수의 초기 어록을 담고있다.
흔히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씌여진 복음서로서 역사적 예수의 민중적 모습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는 얼치기 논리가 있다. 그렇지 않다. 마가 복음에는 마태와 누가가 공유하는 Q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Q 자료는 마가기자가 밴치마킹한 50년대 <십자가 복음>보다 더 앞서거나 비슷할 수 있다. 심지어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이 담지 못하는 초기 예수 어록과 유대적 성격을 부각시킨다. 요한복음이 영지주의 영향을 받았다는 불트만의 억측이 설득력을 잃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지주의는 창조와 유대교를 거절하고 인간의 내면에 신성의 섬광이 담겨 있어서 칭의론을 반대한다. 영지주의자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은 의미가 없다. 영지주의 존재론은 하이데거 철학의 토대가 되며, 불트만의 요한복음 해석에 이어진다. 그러나 영지주의 존재론은 히틀러의 인종 파시즘과 유대인 살해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난다 (요 4: 22).
요한복음의 태초의 로고스는 필로의 로고스가 아니라 히브리 성서의 야훼주의 안에서 담겨져있는 지헤를 번역한 것이다. 요한 기자는 필로의 그리스화된 유대교 철학을 배운 적이 없고 오히려 히브리 성서 (70인역)에 충실하다. 완벽한 지혜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잠 3:19; 8:22-3). 예수 그리스도(메시야)는 유대인에게서 난다 (Von Rad, Old Testament Theology 1: 441-42).
복음서는 그리스적인 문학 작품이 아니라, 목격자들과 말씀의 사역자들이 역사적 예수의 어록과 하나님 나라의 사역과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의 오심을 신실하게 전해준 증언이며 전승이다 (누가 1). 이러한 전승자료들이 초대 공동체의 예배와 설교 그리고 선교에 중심으로 나타나고 오늘날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