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사 비평과 의미론
전승사 비평에서 볼 때 창세기 32: 22-32 (얍복 나루터에서 씨름하는 야곱)은 호세아의 전승 자료(12: 3 -5)와 비교 검토된다.
창세기 32장 25 절 후반부에서 32절 까지는 후대의 미드라쉬 첨부로 볼 수 있다. 아브라함과 영원한 계약의 약속 (17장)이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면서 재확인된다 (헤이네스/매켄지, <성서비평방법론과 그 적용>, 101- 106).
그러나 창세기 전승 자료에서 중요한 것은 에서와의 화해의 용서가 신학의 중심으로 들어온다는 점이다. 그러나 호세아에서 야곱/이스라엘 전승은 창세기와는 다른 전승층을 보여준다. 야곱은 어떤 신(엘로힘)과 씨름을 했다. 그리고 울면서 은총을 간구했다.
그러나 전승사 비평은 상이한 두 자료를 확인 하지만, 호세아 시대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며, 창세기의 원자료의 빛에서 화해, 용서 그리고 은총의 차원으로 의미 지평을 확대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신명기 연구는 주전 7세기 후반에 있었던 요시아 왕의 개혁운동 (열하 22-23)에 주목하고, 신명기가 이후 문서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그리고 열왕기상/하)에 신학적인 유사점이 있음을 검토한다. 신명기 (1:1-4:40)는 이러한 후대 문서들의 입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출-바벨론 시기에 신명기는 창세기에서부터 민수기에 관련되어 편집되 제국 (었다 (Noth, A History of Pentateuchal Traditions).
오경의 다섯 가지 주요 주제 (출애굽, 약속한 땅으로 인도, 족장들에게 준 약속, 광야, 시내산 계시)에서 시내산의 계시는 가장 중요하다. 출애굽기 19장 3-8절에서 우리는 시내산 계시 전체의 도입부를 본다. 이것은 신명기 이전에 존재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을 언급하는데, 이것은 고대 히타이트 제국 (1500-1200)의 종주권 조약에서 비롯된다 (조지 멘덴홀). 물론 이타이트 조약에는 모세와 같은 중재자는 없다.
성서 의미론: 언약과 신앙고백
출애굽기 19장 3-8절은 이스라엘이 오래 전 부터 시내산 경험을 야훼의 계약으로 증거한다. 시내산 계약은 여호수아 24장 세겜에서 계약갱신으로 이어진다. 고대 근동의 계약과 시내산 전승의 결합은 대부분 오경의 자료에 비해 앞서 있다. 세겜의 계약갱신은 신명기 전승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신명기에서 세곔의 계약갱신과는 달리, 동등한 신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이스라엘의 유일신론은 형이상학적이거나 철학적인 측면에서 만유재신론이나 철학적 유신론으로 이해되기 어렵다. 이스라엘에게 유일신론은 정의의 문제와 신정론(욥)에 연관되어있다. 우리의 경험에서 때론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선하심에 의심을 갖을 수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살아간다.
물론 이스라엘의 유일신론은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열왕기상 22장에 보면 야훼는 하늘의 만군을 불러모으고 그 중 한영을 보내는데,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거짓 메시지로 아합 왕을 죽음으로 몰아 놓는다. 또 또 다른 예언자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는 야훼의 말씀을 전하면서 하늘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 지를 보여준다. 야훼는 두개의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한다. 한 분 하나님안에 은혜와 심판(공의로움)이 공존한다. 그러나 성서는 다른 신들을 언급한다 (출 15: 11; 20:3).
이러한 표현은 시내산의 종주권의 계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고대근동은 다신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다신론의 세계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으며 오로지 한 분 하나님을 고백한다. 모든 다른 신들은 상대화되고 우상으로 폄하된다. 더 나아가 여훼 하나님이 고대 근동의 왕들이나 선지자들을 지배한다 (느부가네살, 고레스, 발람). 이것은 히브리 성서의 비정규적 사유에 속한다. 하나님은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도우신다. 하나님은 고레스에게 기름을 부어 바빌론 유폐의 이스라엘을 해방 시킨다. 하나님은 느부가넷살에게 꿈을 통해 그의 지배를 허락하지만 느부가넷살은 그의 교만으로 인해 심판당한다.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다 (시 95:3). 엘로힘 (하나님)은 엘 (신들)의 모임 가운데 서 계신다 (시 82:1).
야훼는 엘로힘으로 불리지만 엘로힘은 야훼와 등치되지 않는다. 야훼 YHWH (테트라그람마톤)는 발음할 수 없어 아도나이 혹은 하솀(그 이름)으로 불린다. 엘은 신에 대한 일반명사이며 가난한 만신전의 우두머리의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다른 신들의 신성과 불멸성을 빼앗고 죽은 것으로 선언한다 (시 82: 7).
성서의 비신화론과 바울
히브리 성서에서 유일신론은 비신화론적 성격을 가지며 은혜와 심판을 행사한다. 이것은 욥의 삶에서도 반영된다. 하나님이 욥을 의롭게 여기심으로 스스로 의로우신 분으로 계시하신다. 욥의 친구들은 거짓을 말한 자들로 심판을 당한다. 이스라엘의 유일신론은 계약에 근거하며 계명의 윤리적인 준수에 기초하며 다신주의적 영적 가치를 무효화한다.
이러한 유대적 사유는 바울에게 그대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계와 화해를 했다. 그러나 여전히 화해되지 않고 구원되지 않는 비인격적 실체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공중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한다 (엡 6: 12). 여전히 하나님에 대항하는 비인격적인 실체들에 믿음의 공동체는 말씀과 진리와 성령을 통해 저항을 해야한다. 어떤 세력이 거짓을 말하는가?
다른 한편, 악한 자의 나타남은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이들에게 보내고 거짓을 믿게한다 (덷전 2).
이러한 바울의 사고는 예례미아의 새언약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의 오심으로 통합하며, 그리스도의 화해의 사건은 여전히 장차 올 구원과 긴장 관계에 서 있다. 사악한 비인격적 실체들이 직동하며 하나님은 미혹의 힘을 멸망하는 자들에게 보내어 거짓을 믿게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정의로움의 심판을 증거한다 (열상 22).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을 예언하는 자여서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꺼렸다.
미가야의 예언은 누가 아합 왕을 꾀어 길르아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하는 것이다. 여호와가 보좌에 앉으시고 하늘의 만군이 하나님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다. 하늘의 회의에서 한 영이 하나님앞에 나와 자신이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다고 말한다. 미가야는 이러한 예언으로 인해 옥에 갇히고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게된다 (열상 22:21-23). 그러나 아합 왕은 가짓 예언자들의 말을 듣고 전쟁에 나가서 죽는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의 차원은 예례미아 23장에서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제사장과 선지자의 집에서 악을 발견하고 이들에게 재앙을 내린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쑥과 독한 물을 마시게 한다.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경고한다.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말을 알아 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말을 들었느냐" (예례 23:16). 이것은 유대전통에서 마카베라 신비주의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느냐? 이것은 바울의 삼층천 경험에 연결된다.
히브리 성서의 비정규적 사유는 바울에 의해 그리스도의 화해의 사건에 통합된다. 국제 정치적으로 복잡한 시대에 비정규적 사유와 미혹의 세력은 가짜 뉴스와 선동조작을 통해 드러난다. 이것을 지식과 지혜를 통해 분별하는 것이 영적전쟁이다. 정의란 이름으로 국가의 위기란 이름으로 항상 거짓으로 선동하고 하나님 말씀을 팔아먹는 자들이 출현한다.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한다. 거짓은 사탄으로부터 온다 (요한 8). 비정규적 사유는 진리에 기초하며 여타의 거짓과 선동조작 그리고 짝퉁 뉴스를 거부해야한다. 모세에게 좌파나 우파는 다 문제를 가지고 있다. 계약과 예배 그리고 토라의 준수가 중심으로 들어온다. 이것은 예수의 복음에서 좁은 길을 의미한다. 좁은 길에서 만나는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하나님은 역사에 개입하시는 분이며 거짓을 폭로하고 선동과 조작의 실체를 드러낸다. 믿음의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의 진리 경험을 언약과 신앙고백 그리고 계명준수에 기초해 이해한다. 성서적 신비주의는 인격적이며 윤리적인 성격을 가지며 하나님의 거룩함과 예배 그리고 진리의 자유에 관계된다. 이러한 신비주의는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고 영혼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신성을 추구하는 그리스적 영지주의와는 다르다.
구원사: 계약과 계명준수
종주권 조약 (시내산)과 세켐의 계약갱신 사이에서 역사적 서언(수 24)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사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며 세대간의 격차를 없앤다. 역사는 이스라앨 공동체의 전체과거로서 전 세대에 걸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의무를 지우면서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통합된다. 이것은 신명기 역사고백 (신 26:5)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게 하는 의미를 가지며 하나님의 구원사로 이어진다. 언약과 구원사의 틀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역사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존 레벤슨 <시내산과 시온>, 59).
계약사상 자체가 초기 이스라엘의 역사 전승의 핵심을 구성하며 계약은 역사의 의미를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역사안에서 하나님의 활동과 이에대한 이스라엘의 경험이 계약의 언어로 표현된다. 창조의 우주적 차원에 앞서 계약의 역사적 차원이 작동하며, 계약은 창조의 내적근거이며 창조는 계약의 외적근거라가 된다 (칼 바르트).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오직 역사적 사건을 통해 스스로를 계시 하시며, 이것이 예배안으로 통합되며 계명의 준수로 실천된다.
계명의 준수함을 통해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깊은 지식으로 안내된다. (바울은 롬 10:4절에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목적"으로 말한다.) 히브리 성서의 구원사는 하나님에 대한 역사적 경험, 언약사상, 그리고 계명준수로 기초되며, 계명준수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지식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현재적 활동에 대한 신뢰 그리고 미래의 지평을 얼어간다. 이런 점에서 토라의 윤리성은 복음의 필요한 형식이 된다 (바르트).
신앙고백의 역사적 서언을 통해 과거의 사건 (언약)은 생생한 현재를 위한 집단적인 전기로 변형된다. 기억과 신앙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은 생생한 현재로 들어오며, 각 사람은 마치 자신이 이러한 역사적 사건에 동시적으로 참여한 자들이 된다. (이것은 예수의 유월절 음식에서 아남네시스가 오늘날 성찬에서 현재화 되는 것에 공명한다.)
오경은 근대적인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성하기 위해 실증적인 역사 편찬방법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다. 편집자들은 고대 전승자료를 존중했고, 이러한 자료들의 역사적 실증성 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의 삶과 기원의 역사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앙고백적으로 그리고 토라의 준수로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다.
랍비 유대교: 전승사와 신앙고백
랍비 유대교적 관점에서 볼 때, 586년 이전에 역사를 담고있는 오경이나 이후 문서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1이사야[사 1-39], 예례미아, 에스겔 등)은 주전 586년 바빌론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회상하고 설명한다. 오경은 시내산 토라계약에 서 있으며, 이스라엘이 토라를 위반할 경우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한다 (레 26, 신 28). 토라를 중심으로 예언서들은 오경의 기본 메시지에 일치하며, 오경의 현재 형태는 에스라 시대에 제사장 그룹에 의해 편집 되었다 (주전 450년 경).
이것은 수문의 광장 집회에서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공개적으로 수용되었다 (느혜미아 8-10). 첫 번째 유대교의 경전은 오경이었고, 이것의 사회적인 자리는 바빌론 유폐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이라는 정치적 배경을 갖는다(Neusner, An Introduction to Judaism, 137).
이런 랍비 유대교적 접근은 고트발트의 사회적 문헌 비평에서도 나타난다. 바빌론 유배 기간에 유대백성들은 히브리어가 아니라, 바빌론에서 사용된 아람어를 썼다.
토라의 편집은 이들에게 이전 야훼이스트의 신앙고백과 믿음의 조상들과 모세의 계약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해주었다.
창세기에서 민수기와 신명기를 거쳐 열왕기로 이어지는 내용은 민족 서사시에 비견될 수 있다. 여기서 유대인들은 바빌론의 경험을 반성할 수가 있었다(Gottwald, The Hebrew Bible, 106).
신명기가 요시아 왕의 개혁 당시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서 (왕하 22-23장)라면, 신명기 법전은 이것을 발견한 기원전 612년 직전으로 볼 수 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에 나오는 제사 문서들은 신명기-열왕기하에서 나타나지 않으며, 제사 문서는 포로기 이후 성서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다듬어진 것으로 보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