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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빌: 미국의 유효한 역사

by 파레시아 2025. 4. 2.

트럼프 2기에 들어 오면서 미국은 토크빌의 유산에 고별을 했다고 말한다. 토크빌의 대작 <미국에서의 민주주의>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호평하기 위해 씌여지기 보다는, 오히려 프랑스 혁명의 복잡한 전개를 거쳐가는 자신의 고국 프랑스의 민주주의를 위해 기술한 것이다. 

 

<미국에서의 민주주의>에서 토크빌은 다음처럼 쓴다. 1831년 12월 나는 미시시피 좌측 제방에 있었다.유럽 이주인들이 미시시피란 이름으로 불렀는데, 수많은 원주민 촉타우스 ( Choctaws ) 그룹이 이곳에 도착했다. 이들은 미 정부가 약속한 난민자격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미시시피 강 우측 제방을 얻으려고  애를 썼다. 때는 겨울 중순이었고 맹 추위가 몰아쳤고 눈은 얼어서 지면은 빙판과 같았다. 미시시피강은 거대한 얼음으로 흘러다니고 있었다. 인디언들은 가족들과 함께 이주 중이었고 부상입은 자들과 병든 자들이 이들의 행렬에 같이했다. 갖 태어난 아이들과 노인들은 죽음의 직전에 서 있었다. 이들은 텐트나 수레도 없었고 가지고 있는 거라곤 자신들의 빈약한 무기와 일부 식량 정도였다 (Democracy in America, 372).

 

토크빌의 생생한 증언은 1831년 대통령 앤드류 잭슨에 의해 자행된 인디언들의 강제이주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뺘아픈 유효한 역사에 속한다. 

 

민주주의 영혼

 

민주주의와 종교의 정신은 유럽과는 달리 미국의 문화적 조건에서 두드러진다. 물론 이것은 ‘청교도적’ 민주주의가 계몽 이념에 기묘하게 접합된 것을 의미한다. 종교는 근대성과 세속화와 더불어 사라지지 않는다. 루소의 시민종교와 공공도덕의 연합은 토크빌에게서 종교와 공화정부안에 자리를 잡는다. 종교가 파괴될 때 사회에는 개인의 존엄성이 사라지고 절름발이 현상, 심하면 허무주의가 나타난다. 그러나 청교도의 역기능은 노예제도와 마녀재판 그리고 인종 차별과 더불어 나타난다. 이것은 수치의 효과를 산출하는 병리현상이다.

 

토크빌은 민주주의적인 삶의 도덕적 요소를 강조한다. 고통스러워하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은 자연적 선함에서 오기 보다는 (루소), 귀족주의 사회에서 평등한 사회로 이행하는 데서 온다. 여기서 타인에 대한 도덕적인 연민과 연대가 두드러진다. 평등한 사회적 삶은 도덕적 동정으로 특징된다. 사회 이행 과정에서 사회적 영역에서 분업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고 전문화가 될 때 소외 (마르크스)가 아니라 유기적 연대와 법의 개선과 발전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유는 토크빌의 후예인 에밀 뒤르캠의 사회학에서 경험적으로 검토된다. 물론 평등한 사회적 삶의 여정에서 억압적인 분업이나 노동조직을 통해 병리현상은 항상 도사려있고 위험요소로 터져 나온다    

 

자기이익은 상업과 경쟁을 통해 좋은 삶을 향한 증진으로 나타나지만, 단순히 이기심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기이익과 더불어 물질적 행복추구로 중산층들의 쉼없는 불안과 좌절 그리고 열망으로 채워진다. 연민, 쉼이없음 그리고 자기이익이 도덕적 사회의 개인의 삶을 특징 짖는다. 이것은 미국의 시민사회의 도덕적 현상학일 수가 있다.

 

유효한 역사: 눈물의 길 그리고 명백한 운명

 

토크빌의 정치이론은 20세기 사회학자들에게 혁명과 독재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영감을 주는 고전이된다. 물론 토크빌이 당대 미 도시에서의 경제적 빈곤이나 노예들과 원주민들의 비인간적인 처지를 제대로 분석 하지 못한 약점은 있다. 그러나 토크빌이 예견한 것처럼 아메리카 원주민과 노예제는 미국의 역사에서 시민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토크빌은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깊은 동정을 가지고 언급했다. 

 

미국 여행당시 그가 백악관에서 만난 대통령은 앤드류 잭슨 (1829-1837)이었는데 원주민 탄압으로 악명놓은 사람이었다. 그는 스페인령인 플로리다와 캐나다 그리고 인디언 영토로 미합중국을 확장시킨 1812년 전쟁의 영웅이었다.

1829년 앤드류 잭슨이 대통령이 되면서 남부의 인디언 제거법안(1830, 5월 28일)이 서명되었다.

 

미시시피 서쪽 땅은 미국의 소유로, 동쪽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할당 되었다. 인디언 이주법으로 인해 원주민들은 강제 이주를 당하고, 미시시피 강 서부지역으로 옮겨 갔는 데 눈물의 길( the Trail of Tears)로 부른다. 이주과정에서 6천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는 데 사실 이것은 조지아주 덜라너에서 발견된 금맥을 독차지하려는 탐심 때문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토크빌은 1831년 12월 추운 겨울날 인디언들이 군데 군데 얼음으로 덮혀있는 미시시피 강을 태못을 타고 건너는 것을 목격했다. 이러한 겨울 강의 행렬은 그 어떤 광경보다 장엄한 것이며 자신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디언들의 도강 행렬에는 어떤 울믐소리도, 코를 훌적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모두가 말이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에 닥쳐온 재난을 고칠 수 없는 것임을 나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아들의 개들은 재방에 머물렀지만, 마침내 주인들이 강을 넘은 것을 보고 모두가 다 미시시피 추운 강물로 뛰어들어 보트를 향해 해엄을 치기 시작했다 (Democracy in Amerca, 373). 

 

청교도의 추수 감사절이나 포카혼타스처럼 그런가하면 원주민에 대한 펜실베니아의 퀘이커 교도들의 우호적인 좋은 전통이 있었지만, 사실 원주민의 삶은 미국의 유효한 역사에 속한다. 오늘날 이민자들애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탄압을 1831년 겨울의 도강 행렬에 비교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인디언들을 마지막까지 추운 미시시피 강을 헤엄쳐 쫒아오다 죽은 개들과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은 미국의 역사에 살해정치로 남아있다.    

 

포스트 콜로니얼 이론에서 원주민의 삶을 고고학적으로 파헤치고 유럽 근대의 문명의 범죄를 원주민의 유효한 역사에서 새롭게 쓰려고 하는 것은 오늘날 지성의 역사와 실천에서 중요하다. 진보란 거대담론의 배후에는 밀려나가고 순진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절규가 하늘을 향해 찌른다. 사회 진화론을 신봉하는 파시스트들이 인종의 우월감을 내세우고 과거 왜곡하면서 현재사를 진보와 계몽의 역사로 날조 한다면, 계보학자들은 과거의 역사에서 파묻혀저버린 자들의 삶을 기억하고, 이들의 권리를 회복 하기 위해 현재사를 새로 쓴다. 계보학의 실천은 오늘날 인정 정치의 역사적 배경이 된다.       

 

최근 호주에서 원주민들에 대한 과거 역사에 대한 공식사죄는 바람직하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 사과가 있었지만 원주민들에 대한 배상과 이들로부터의 용서를 얻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토크빌이 미국의 삶에서 도덕적으로 이해한 ‘자기이익’은 항상 우선적으로 국익을 추구하는 미국의 정책으로 나타났지만 그것은 매우 부정적인 귀결을 가졌다. 미정부가 국익을 위해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에나를 구입(1803)하면서 부터, 정착민 팽창과 서부개척은 예견된 것이었다. 토마스 제퍼슨의 특별대사로 제임스 몬로가 협상을 주도했고, 몬로는 스페인에 대한 남미의 혁명운동에 대단히 동정적이있다.

 

제임스 몬로의 대통령 재임기간 (1817-1825)은 원주민들에 대한 문명선교를 시도하지만, 말기에 이들을 미시시피강 서부 지역으로 내몰았다. 원주민은 미국사회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이들은 동부지역에서 제거되어야할 야만종으로 취급되었다. 이러한 제거전략과 땅을 탈취하는 시도는 오히려 인디언의 이익을 최대한 증진하는 것으로 선전하기도 했다.

 

몬로 독트린은 유럽의 식민주의에 저항하고, 남미에 대한 유럽 열강들의 정치적 개입은 미국에 잠재적인 위협으로 간주했다. 이것은 19세기와 20세기에 걸처 나타나는 미국의 해외정책에 결정적인 것이다. 심지어 바이든의 우크라이나 전쟁개입은 미국이나 나토에 대한 러시아의 잠재적인 위협에 대한 신-몬로 독트린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1848년이 유럽의 혁명의 해였다면, 미국에서는 그해 2월 2일 멕시코와 전쟁을 마치면서 골드러시 (1848-55)로 서부개척이 이루어진 시대였다. 덕분에 별 볼일없던 샌프란시스코가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치안의 부재와 폭력으로 난무하던 시대애 “거치른 개인주의” (rugged individualism)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으로 미국인들의 ‘마음의 습관’은 탐욕으로 넘쳐났다. 금 채집을 위해 인디언들을 몰아내면서 생긴 충돌로 인해 총을 갖지 않는 많은 인디언들이 학살 당했다.

 

'명백한 운명'은 1845년 텍사스가 미합중국에 병합되면서 만들어진 식민주의 담론인데, 신문의 편집장인 존 설리번

(John O’Sullivan)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1840년대 민주당에 의해 멕시코 전쟁을 정당화 하면서 쓰여졌다. 1845년 존 설리반은 “민주주의 리뷰”의 편집장이었고 다음처럼 쓴다. “우리의 명백한 운명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할당된 영토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해마다 증가되는 수백만명 인구들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서 그렇다.”

 

미국은 하나님에 의해 확장과 지배를 위해 운명적으로 선택되었다. 이러한 정치담론은 인디언 학살과 노예제도에 대한 종교 문화적인 옹호가 되기도 했다. 이것은 종교의 수치의 효과에 속하며  진보와 섭리란 이름으로 연약한 자들의 삶과 문명을 유효한 역사로 만들어버리는 이대올로기 호출방식을 의미한다.

 

미국은 청교도의 나라인가?

 

트럼프 2기에서 백인 우월주의를 기초로 하는 인종 파시즘이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여전히 근본주의 기독교 세력과 '이상한' 시온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극우파 백인 개신교 민족주의 세력은 트럼프를 고레스로 추겨 세우고, 우쿠라이나 전쟁을 단숨에 해결할거로 추겨 세었지만 역시 정치적 무능과 어리석음으로 평가된다. 네오콘의 이데올로그 존 볼톤이 주류 매체에 나와 트럼프를 바겐세일이나 할줄 아는 허풍쟁이지 국제정치에서 전략과 시스템을 모른다고 맹렬히 공격한다. 

 

대한민국에는 트럼프주의들이 많다. 심지어 청교도 혁명군이라는 옷을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광화문을 배회하는 사람들도 눈에 띤다. 역사로서의 청교도가 아니라 '신화'로서 청교도가 판을 치는 사회가 어쩌면 대한민국 개신교의 민낯인지도 모른다.

 

1620년도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온 사람들은 건국과는 낯설은 필그림 조상으로 불린다. 이들은 메사추세스의 플라이머스에 정착했고, 지역 인디언들 로부터 옥수수 농사도 배웠다. 종교의 박해를 피해 국교와는 완전히 단절한 분리주의자들이였고, 회중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이후 정착한 청교도들은 영국 국교와 단절하거나 완고한 분리주의자들이 아니었다.

 

청교도는 16-17세기 영국의 개신교인들이고, 로마 카톨릭 교회와 예배를 일소 하려고 한 사람들이 었다. 일반적으로 칼빈주의를 채택했지만, 1640년부터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에 실망한 사람들은 기존교회로부터 결별한 분리주의자들이었다. 칼빈과는 상관이 없고 오히려 메리 여왕 박해시절 쮜리히에 피난와서 배운 쯔빙글리 신학의 후예들이다. 오히려 칼빈의 성만찬 신학을 맹렬히 공격하기도 했다.

 

어째튼 막스 베버의 고전적인 저술—<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으로 인해 칼빈주의 또는 청교도주의가 세계내적인 금욕태도와 경제윤리로 인해 자본주의 이념형으로 주장되기도 했다. 배버는 사회학자로서 칼빈주의를 분석했지 전문적인 신학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절친 에른스트 트뢸취가 저명한 역사 신학자이며 역시 비판 방법 (유비론적 연관성, 비판, 상호관계, 종교적 아프로오리)을 통해 종교사학파를 발전시키고 배버의 사회학적 테제를 공공신학의 지평에서 열어준 준 사람이었다. 그의 저명한 <기독교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 1.II>을 통해 트뢸취의 칼빈주의 이해는 보다 더 신학적 논의에 의미가 있다. 

 

어째튼 배버에 의하면 자본주의 활동은 자본에 대한 욕심보다는 수익을 얻으려는 합리적인 조직과 교환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자유로운 노동에 기초한 합리적인 경영을 지적한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자본주의 경제는 존재했지만, 베버가 이념형으로 본 것은 청교도의 이중 예정론과 경제윤리에 있었다. 물론 베버는 이미 14세기 카톨릭 지역인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와 같은 도시국가에서도 산업자본이 발전했고, 노동관계의 합리적 조직이 있었음을 말한다. 자본주의는 14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나타나고, 심지어 마르크스도 수긍한다.

 

상업자본은 시기적으로 중세중엽 십자군 전쟁이 진행되면서 발전했고, 상업혁명이 일어났다. 이것이 자본주의 시작으로 주장하는 페르낭 브로델 같은 프랑스 역사 경제학자들의 입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이 시기에 중국 이나 이집트 그리고 이슬람의 근동 국가들의 상업발전은 오히려 유럽을 앞지르고 있었다.

 

베버의 사회학적 분석을 둘러싼 논쟁들이 만만치 않지만, 어째튼 1630년 경 청교도들은 의회 민주주의와 부르즈와 경제활동에 관심했고,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와 함께 1차 영국 시민 전쟁 (1642-1646)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찰스1세(1625-1649)의 박해로 인해 1629년 부터 1640년 동안 신대륙의 뉴 잉글랜드로 이주하고 메사추세스 베이 식민지를 설립했다.

 

제임스 2세가 1688년 화란의 오렌지 윌리암 공에 의해 전복되었을 때, 존 로크 (1632-1704)는 그의 “두 정부론” (1689)에서 영예혁명을 열렬히 옹호했고, 리버럴 민주주의를 삼권분립, 사법적 지배, 그리고 일반 투표권에 기초된 시민승인으로 확립했다. 개인의 사적 소유의 보호와 함께 시민승인은 이후 장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국민주권에서 수용되고, 일반의지로 정점에 달한다 로크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와 미국의 독립선언을 기안한 토마스 제퍼스과 같은 건국의 아버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로크는 청교도인이 아니라 이신론자이고 제퍼슨도 마찬가지였다.

 

어째튼 1660년 왕정복귀 이후 청교도들은 신대륙 미국으로 계속 이주해나갔다. 그러나 대부분 미국에서 발전한 이들의 신학은 칼빈과는 상관이 없고, 쯔빙글리의 영향 아래 있었고, 이들의 종말론은 7년 대환란과 지상의 천년왕국을 지향하는 침례파였다.

 

토크빌은 미국의 예언자

 

토크빌은 여전히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예언자로 서 있다. 민주주의 영혼의 특징은 도덕의 유기적인 성격과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다. 이것은 자기이익을 극대화하는 자유 방임적인 태도를 막아야한다. 식민주의를 부축기는 정책과 사회 진화론은 인종차별로 인해 1840년 대 이후 미국 사회와 정치를 물들여 놓았다.

 

토크빌의 책은 1835년도 발간 되었지만, 노예제도와 미국의 원주민의 삶의 문제를 의식하고 있었다. 이후 노예해방을 둘러싼 미국의 시민전쟁에서 미국은 또 다른 반동의 해를 경험한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자본주의의 경제논리와 인종주의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토크빌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은 민주주의 영혼을 회복하고, 경제 시스템을 공공선을 위해 합리화하지 못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과 연대는 어려웠다. 미국의 청교도는 민주주의의 영혼인 ‘마음의 습관’을 함양한 것이 아니라, 미국 넘버원 예외주의와 세계 경찰국가 또는 새로운 이스라엘처럼 선택을 근거로 백인 우월주의로 갔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애 근거한 '명백한 운명'으로 이데올로기 호출 부호가 되었다. 

 

버클리 대학의 저명한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는 루소와 토크빌의 비판적인 민주주의 전통에 주목했다. 그는 미국의 시민종교에 링컨과 마틴 루터 킹 같은 예언자의 측면을 접합시키려 했다. 시민사회나 민주주의는 자유 방임적 자기이익 추구나 자본주의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런 시민종교의 도덕성은 80년대 들어오면서 세계경찰국가와 전쟁을 통해 부셔져버린 계약이었다.

 

토크빌이 언급한 것 처럼, 경제 시스템을 합리적인 사회 분업과 문화적인 ‘마음의 습관’에 기초하여 발전 시킬 수는 없을까? 베버가 진단한 쇠 창살의 우리에 갇힌 근대성 1은 자유 방임적 시스템과 기술 합리성 그리고 경쟁과 수익을 극대화하는 세계내적 청교도 윤리로 인해 출구를 잃어버린지 오래다. 이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기독교 백인 민족주의라는 이상한 슬로건이 출현한다. 트럼프의 권위주의 정부와 정책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해주는 대형교회 묵사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근대성 1과 그 식민주의가 트럼프의 신 중상주의와 아메리키 넘버 원 슬로건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저자가 토크빌에게 배우는 것은 근대성 2의 차원이다. 그것은 루소의 민주 공화제와 경제정의 그리고 인정정치를 통해  시민사회와 공공선을 추구하는 마음의 습관과 정치 시스템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계 경찰국가가 새 이스라엘의 사명 이라는 망상은 이제 내려 놓아야한다. 유럽의 정치 사회학자인 요한 갈퉁은 말한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좋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악하다.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나는 여기에 토크빌과 더불어 덧붙인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판단하라. 당대 미 역사학자들의 일반적인 식민주의 견해이다. 그러나 계보학자는 과거의 묻혀진 자의 삶을 통해 현재사를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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