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나 아렌트
2014년 한나 아렌트 영화가 개봉되었다. 독일계 유대인 정치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1906-1975)가 1960-1964년 사이에 겪은 실화를 다루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나치 전범자인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에 대한 그녀의 보고인데, 이스라엘 첩보기관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아이히만을 체포해 예루살렘으로 송환했다. 그녀는 <뉴옥커> 잡지의 특파원 기자로 재판취재를 했지만, 아렌트 역시 과거 아픈 경험으로 인해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아이히만에 대한 기소항목은 15가지나 되었고 매우 무거운 사안이었다. 단 한가지 유죄판결이 나올 경우 사형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악의 화신으로 여겨진 아이히만이 법정에 출두했을 때, 그는 50대 중반의 작은 키와 숱이 적은 머리카락에 너무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중년 아저씨의 모습이였다.
<더 뉴옥커>에 실린 그녀의 기사는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전 세계에서 일파만파의 파장과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보고>로 인해 그녀는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심지어 유대사회로부터 질타와 생명의 위협 조차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신념과 정치 사회학적 판단을 수정하지 않았다.
마르틴 하이데거에 대한 그녀의 관계에서도 이런 면모를 보게된다. 1924년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그녀는 18살의 학생으로 하이데거 교수를 만났고 철학공부를 했지만, 기혼자였던 그와 연인 관계이기도했다. 이후 나치에 협력한 하이데거에게 깊은 환멸을 느껴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칼 야스퍼스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마쳤다. 그녀의 학위논문은 1929년 출간 되었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1933년 교수 자격취득논문이 거절되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아렌트는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독일 비나치스화 청문회에서그를 위해 증언했다.
야스퍼스는 하이데거를 항상 남을 이용해먹는 사람으로 평가하고 그의 인격을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인격이 부족한 사람으로 인정했지만 그의 철학을 존중했다. 하이데거는 으시대면서 사람들이 자기를 여우로 부른다고 말했다. 아렌트는 이런 하이데거를 여우, 그것도 영리하지 못하고 함정에 빠진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여우로 본다. (“Heidegger the Fox,” The Portable Hannah Arendt)
공공선 거버넌스와 전체주의
미국의 시민사회와 정치교양교육에서 한나 아렌트의 영향은 상당하다. 인간의 삶의 조건에 기초한 그녀의 정치이론은 노동(개인)-일(사회문화)-행위(정치)에 따라 분류되며, 이런 인식론적인 틀에서 전체주의나 파시즘 또는 인종문제가 다루어진다. 그녀의 정치이론은 경험적 사건에 대한 분석에 기초되며, 보수적이든지 진보적이든지 피해가기가 어렵다. 뉴옥에 소재한 바드대학과 사회 리서치 뉴 스쿨은 한나 아렌트 센터와 컨프런스를 통해 그녀의 정치적 통찰과 시민 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 독일의 드레스덴 대학은 한나 아렌트 연구소를 통해 그녀의 전체주의 비판연구를 글로벌 차원에서 발전시킨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독일의 시민사회와 정치교양교육에서 한나 아렌트의 정치이론과 공공선 거버넌스 그리고 파시즘 비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렌트는 20세기 가장 유명한 정치철학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독일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시온주의 활동으로 인해 나치에 의해 체포되지만 곧 풀려나왔다.
그녀는 1933년 파시즘의 발흥으로 인해 독일을 떠나 파리에서 6년간 유대인 피난민 기구에서 일을했다. 이 시기에 그녀는 시몬느 드 보브와르의 저술을 알고 있었지만 탐탁치 않게여겼다. 1941년 그녀는 미국으로 이민이 허락되었고 뉴욕에 소재한 사회 리처치 뉴스쿨에서 정치철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5년에 사망했다.
그녀의 저명한 저서는 <전체주의의 기원,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1951>과 <인간의 조건, The Human Condition, 1958>으로 꼽힌다. 전자가 나치와 스탈린 체제와 인종주의 그리고 제국주의에 대한 연구서라면, 후자의 저술은 노동, 사회 문화적인 일 그리고 정치 적 행위를 기초로 활동적인 삶(vita activa)을 연구한 철학저술이다. 프랑스의 <르 몽드>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20세기에 100권의 베스트 명단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았지만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칼 야스퍼스의 지도로 1929년 <성 어거스틴에게서 사랑의 개념>으로 학위를 마쳤다. 이것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실종된 삶과 인격의 고결함과 사랑을 비판적으로 전개한다.
1961년 한나 아렌트는 잡지 <뉴옥커>의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에 참가했고, 2년 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를 출간한 후 유대사회에서 상당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게하르트 숄렘은 아렌트의 입장을 날카롭게 비판했지만, <전체주의의 기원>은 극찬을 했다. 아렌트의 악의 개념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칸트의 급진적인 악의 차원으로 나타나지만,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죄는 진부하고 평범하며 오히려 어거스틴의 선의 부재개념에 가깝다.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드러나는 악의 진부함 내지 평범성은 타자에 대한 공감능력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사유할줄 모르는 어리석은 자에게 치료제는 없다 (칸트).
아렌트는 악의 문제를 보편적인 차원에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사례들에서 경험적으로 분석하며 현상학적으로 평가한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자신을 정치이론가로 이해했지, 정치철학자로 불리길 원하지 않았다. 같은 해 그녀는 <혁명론, On Revolution)에서 미국과 프랑스 혁명을 비교연구했다. 사후 그녀의 철학 유고는 <정신의 삶, The Life of the Mind>으로 발간되기도 했다. 1982년 그녀의 강의노트가 <칸트의 정치 철학에 관한 강연, LKPT>으로 출간 되었고, 이외에도 많은 정치철학에 관한 논문들이 있다.
그녀의 정치이론은 시민들의 활동과 참여에 기초하며 정치에 미치는 공동체의 역할에 주목한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아리스토텔레스, 몽테스퀴외, 칸트 그리고 토크빌의 시민사회의 정치 전통에 서 있다. 정치현안들은 단순히 정치 엘리트들이나 정당기구에만 위임되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결정되어야한다. 이것은 시민을 정치주체로 파악하고 개인의 판단과 소통능력을 부각시키며, 정치적 효율성을 창출한다. 이런 점에서 아렌트는 하버마스에 앞서 소통이론과 정치적 활동의 중요성에 주목했고, 공론장과 시민사회 정치를 개념화했다.
근대성과 대중사회
아렌트는 전통과 종교의 상실을 야기한 근대성에 대해 적잖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물론 근대성이 제공하는 의미와 정체성 그리고 가치를 하찮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근대성 비판에서 중요한 점은 공론장에서 개인의 행위와 언어의 상실에 있으며, 대중사회로 진입 때문이다. 대중사회에서—이전 개인이나 가사의 영역에 속했던 “노동하는 동물”이 우위를 차지하며, 고전적인 의미에서 정치주체로서 인간의 규정 즉 “정치적 동물”은 거의 실종된다.
더욱이 근대성은 익명의 노동과 관료행정의 시대이며 지배 엘리트와 여론조작으로 특징된다. 이것은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에서처럼 전제정부의 형태가 공포와 폭력으로 발흥하는 시대 이기도하다.
아렌트의 근대성비판은 그가 경험한 나치즘의 전체주의와 더불어 스탈린 체제비판에 기초되며, 독일의 아우슈비츠와 구소련의 굴락 (강제노동수용소)은 더 이상 전통적인 개념이나 삶의 가치로 되돌아갈 수가 없게 만든다. 우리시대의 문제는 근대의 정치사건들의 영향으로 인해 과거의 도움없이 현실의 문제에 직면해야한다. 여기에는 버팀목이 더 이상없다. (Hannah Arendt: The Recovery of the Pubic World, 336)
아렌트에 의하면 근대성의 출현에서 두 가지 시기적 단계가 존재하는 데, 첫 번째 단계는 16세기에서 19세기이며, 이 시기에 콜룸부스의 신 대륙발견, 종교개혁, 망원경의 발명, 근대의 자연과학과 철학의 출현, 인간을 자연과 역사의 일부로 파악하는 입장, 그리고 경제영역의 팽창, 생산과 사회적 부의 축적 등이 식민주의와 더불어 나타난다. 여기에 세계소외와 사회적인 것의 출현이 조응한다.
두번째 시기는 20세기 초에서 시작하는 데, 지구소외와 더불어 자연과학과 기술발전이 지배하고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 규정된다. 근대의 첫 시기에 나타나는 경제영역의 확대와 제국주의는 공론장을 물질적 욕구의 충족을 위한 장으로 변형시킨다. 이러한 독점적인 변형으로 인해 노동과 사회 문화적인 일과 정치활동의 구별은 사라진다.
그러나 사회적인 것의 출현에서 아렌트가 경제영역과 동일시하고 가족이나 학교, 노조, 공공 지식인들의 역할 그리고 사회 제도등에서 나타나는 시민사회의 영역을 흡수시키는 것은 지나친 감이있다. 오늘날 사적영역은 공적영역과 분리되기 보다는 서로 연관되어있다. 정의와 동등한 권리를 위한 투쟁은 개인의 삶과 유리되지 않고 다양한 공론장의 영역과 계층에서 나타난다.
아렌트: 행위언어이론과 내러티브
아렌트에게서 활동개념은 그리스 철학의 실천(praxis)으로부터 온다. 실천행위는 만듬이나 생산 (poiesis)과 구분되고, 이것은 자유와 시민의 다원성에 연결되며 언어와 네러티브와 기억에 의해 설정한다. 실천안에서 상호주관성이 문화를 재생산하는 기본특질로 드러 난다. 소통행위 안에서 상호주관적인 생활세계가 형성된다. 이것은 생활세계의 출현형식을 말하며 공간적인 영역은 인간의 다수성을 통해 결정된다. 시간적인 의미는 인간의 출생성을 통해 표현된다. 모든 개인의 출생은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의미한다.아러한 출생성은 어거스틴의 자유개념에서 온다.
아렌트에게서 정치개념은 의미와 정체성에 결부되며 독창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정치행위는 더불어있는 인간의 삶의 방식이며, 여기서 소통과 토론 그리고 합의에 기초한 참여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근대의 시기에 출현하는 관료제나 정치 엘리트의 지배 방식과는 다르다. 그녀의 행위이론은 자유와 다수성 그리고 언어활동을 통한 정체성의 드러냄으로 특징되는데, 언어행위 내지 정치활동은 내러티브와 기억의 공동체와 관련된다. 인간의 행위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며 인간의 다수성을 전제로 한다. 이것은 모든 정치적 삶을 위한 인간의 조건을 지적한다. (The Human Condition, 7)
활동적인 삶에는 세 가지 카테고리가 있는데, 노동(생물학적 조건), 일 (문화와 세계성의 조건)과 행위(정치적 실천과 인간의 다수성의 조건) 이다. 각각의 계기는 자율적이며 독립적인 기준을 갖는다. 노동은 인간의 생물학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기준을 가지며(노동하는 동물), 일은 인간의 유용함을 위해 세계를 적합하게 형성하는 사회문화적인 능력에 기초되며 (공작인, homo faber), 행위는 행위자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자유의 능력을 현실화하는 정치적 능력에 결부된다(실천인). 정치실천은 인간을 활동적인 삶에 설정하며 자유의 중요성을 부각 시킨다.
아렌트에게 자유란 예견하지 못한 것을 새롭게 산출하는 능력이며, 활동은 자유의 실현을 말한다. 이것은 새로운 시작을 말하며 세계안에 진기함을 가져온다. 노동과 일과 행위는 출생성(natality)에 따라 판단되지만, 이중에서도 정치적 활동은 새로움을 창출해내는 가장 중요한 특징에 속한다. 인간이 태어났다는 것은 인간의 새로운 시작이며 창조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매 순간마다 우리는 활동을 통해 항상 예기치않는 새로운 것과 더불어 시작한다. (ibid., 9, 177-8)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렌트의 생활세계론에서 공간적인 의미는 시민들의 다수성과 상호작용 그리고 소통행위를 통해 공론장에서 현상형식으로 파악되며, 이러한 실천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보다는 마르크스의 비판적-혁명적인 활동에 가깝다. 다른 한편 생활세계의 시간적인 의미는 인간의 출생성에 기초하며 이것은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의미하고, 예기치 않은 것들의 산출될 수가 있다. 개인과 그룹간의 상호작용 안에서 생활세계는 공간적인 영역 (공론장)과 역사적 시간(출생성) 안에 설정되고 사회화가된다.
이런 점에서 아렌트의 정치이론은 실천개념을 통해 생활세계의 사회학에 대한 통찰을 열어준다. 정치영역안에서 평등과 정당성이 기원을 갖는다. 그러나 사회적 영역에서 차별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차별은 공공교육에서 인종의 구분을 포함한다. 이러한 인종구분은 사회적 권리에 속하며, 이것은 결사의 자유에 기초하며, 평등은 오로지 정치적 권리에 속한다. (Arendt, “Reflections on Little Rock.” 50-51)
이러한 아렌트의 구분은 인종차별적 담론이라기보다는 사회문화적 관습에 기인하며, 그녀의 활동적인 삶의 카테고리에 기초된다. 이것은 당대 생물학적인 삶의 권리를 추구하는 블랙파워 운동과는 다른 방향을 지적한다. 물론 아렌트는 식민지화된 인종의 저항을 간과하지 않았지만 정치영역에서 힘과 폭력을 구분하고 비폭력의 차원을 지지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사회적인 것의 출현에서 자본주의 질서가 이러한 구분을 위협 한다면, 생활세계의 지평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획일화에 저항한다. 학교교육의 현장에서 소통과 배움은 새로운 문화와 정치실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역이 된다. 이런 점에서 아렌트의 인종구분을 사회적인 권리나 문화적인 관습이 아니라 생활세계의 차원에서 다원성과 다름에 대한 인정으로 파악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 소통과 토론을 기초로 민주주적인 정당성과 시민의 정치적인 힘을 추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자유에 속하며, 비강압적이며 폭력과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사회적 영역에서 지배질서나 억압에 대한 저항에서 폭력은 상황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나타나지만, 일반화될 수는 없다. 아렌트에게서 정부는 법과 질서는 시민의 힘에 근거한 정치적인 구현이며, 시민들이 이러한 정치적 제도나 질서를 지지하지 않을 때 경화되고 부식될 수 밖에 없다. (“On Violence,” 40-1)
아렌트의 그리스의 도시국가의 모델은 정치영역에서 국가의 강압적 힘을 입법의 질서나 군사적 폭력에서 배제한다. 정치영역에서 자유와 힘을 부각시키는 아렌트의 입장은 벤야민과는 다르다. 벤야민에게 정치적 제도나 법적 질서는 위로부터 오는 폭력의 영역에 속한다. 어째튼 아렌트의 활동개념은 언어를 포함하며, 상호주관적인 소통이론을 전제하며, 인간 관계는 언어활동 즉 소통의 상호작용에 의해 유지된다. (The Human Condition, 178-9, 184-6)
언어활동을 통해 행위자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그리고 네러티브의 중요성은 결정적이다. 예를들어,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면,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투기디세스와 같은 역사학자가 페리클레시스의 추모사를 기록하고 전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페리클레시스의 인격과 정치적 탁월함을 이해할 수가 없다.
역사적 영웅이나 사상가들의 활동은 네러티브의 형식으로 전해지며 정치적 의미를 구성한다. 청중은 정치 공동체를 위한 메타포이며, 그 특징은 기억의 공동체에 있다. 활동가의 배후에 스토리텔러가 있으며, 스토리텔러의 배후에 기억의 공동체가 존재한다. 정치공동체로서 도시국가는 시민들의 활동과 업적을 보존하고 망각으로부터 보호하며 미래의 세대에 전해준다. 활동과 언어는 기록되고 스토리로 변형되며, 도시국가는 기억의 공동체로 설립된다.
이러한 도시국가 개념은 단순히 고대 그리스 정치질서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세대에 걸쳐 활동의 공적영역과 언어활동을 통해 자유롭고 동등한 권리의 시민사회안에서 새롭게 설정될 수 있다. 시민들이 활동하고 소통을 하는 곳에서 공론장으로서 정치개념이 출현하며, 도시국가는 아렌트에게 정치조직을 의미한다.(ibid., 198- 9)
공론장 개념은 아렌트에게 시민들의 공적인 관심에 대한 토론과 활동에서 출현하고, 사안이 해결이 되면 사라지며 또 다시 새로운 공동의 현안과 더불어 현상한다. 이것은 잠재적인 영역이며 활동과 언어의 소통안에 근거된다. 이것은 타운 홀 미팅에서 정의나 동등한 권리를 위한 토론과정에서, 그런가하면 혁명의 과정에서 입법이나 정책결정에서도 나타난다. 아렌트의 정치철학에는공론장에 대한 현상학적인 차원과 더불어 정치활동과 민주적인 결정이라는 사회학적 반성이 담겨져있다.
공론장과 정치적인 힘
이러한 공적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의 능력을 아렌트는 힘으로 정의한다. 힘은 공공의 정치목적을 위해 행위자들이 결합과 다수성이라는 점에서 신체적인 강함이나 폭력 또는 권력과는 구분된다. (Arendt, Crises of Republic, 143-55)
탈콧 파슨스에게서 힘은 집단적인 목적을 성취하기위해 행해지는 사회시스템의 능력이다. 힘이 사회시스템의 가능성으로서 집단적인 목적을 성취하기위해 자원들을 동원하는 것이라면, 아렌트에게 힘은 공론장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사람들 간의 소통행위에 기초한다. (“Hannah Arendt,” Habermas, 230)
공공선을 위한 힘은 정치현상이며 활동과 민주적인 토론과 설득 즉 의사소통의 목적에 적합한 상호승인에 근거한다. 이러한 힘은 경제적인 힘이나 관료제와는 무관하게 자유롭고 왜곡되지 않은 소통의 합리성과 숙의에서 갖는다. (Arendt, Crises of the Republic, 151) 정치적 활동과 공공선을 향한 숙의가 아렌트의 정치이론에서 중요해진다. 정치제도의 정당성은 시민들의 힘에 의존되며, 이것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승인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아렌트는 도시 국가의 정부형태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에 기초한 귀족제보다는 칸트의 정치철학의 전통에 서 있고, 일체의 전체주의나 식민주의를 거절한다.
혁명은 시작의 문제와 더불어 필연적으로 드러나는 정치적 사건일 수가 있으며 여기서 자유는 세계사적 실제로 현상할 수가 있다. (Arendt, On Revolution, 21) 혁명적 사건들과 활동들에 대한 기억은 미래를 위한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혁명은 사회변혁을 위해 아렌트에게 거절되지 않는다. 헤겔이 프랑스혁명을 자신의 철학에서 세계사의 열쇠로 다루고 미국혁명을 부차적으로 다루었다면, 아렌트는 오히려 미국혁명을 프랑스 혁명보다 더 비중있게 다룬다.
여기서 혁명은 사회적 억압이나 경제적 착취가 아니라 정치적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발생했고 프랑스 혁명 (테러정치와 반혁명)과는 달리 좋은 선례를 남긴 혁명의 타입으로 간주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근대국가의 가장 완전한 실례는 미국이며, 정치투쟁을 통해 사적소유를 공동소유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국가는 시민사회의 외부에서 특수한 존재가 된다.(“Hannah Arendt,” Habermas, 226)
아렌트의 한계와 새로운 전망
아렌트의 비폭력적인 소통의 영역은 개인이 타인과 동등한 자격으로 공적인 이슈에 관여하게 하고 정치적 덕목과 탁월함(aretē)을 발전시키게 한다. 그러나 불평등, 인종분리나 차별은 사회적 영역에서 정당화된다. 이러한 구별로 인해 아렌트의 민주주의는 정치적 억압이나 사회적 소외가 없는 곳에서 해방의 효력을 가질 수 있다고 비판된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정치 사회적 모델은 아리스토텔레스의와 칸트의 접합에 있으며, 정치적 신중함과 공론장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사회적 분리나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생활세계의 방어를 유지한다.
네러티브는 자유로운 츨생성과 삶의 전기에 기초하며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역사적,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생활세계는 이러한 네러티브와 삶의 전기에서 인간의 다수성과 상호작용을 기초로 직물처럼 짜여지고, 시민사회와 공공선 거버넌스를 위해 공론장으로 출현한다. 강압과 폭력 그리고 파시즘적 권위주의 지배는 자리를 갖지 못한다.
아렌트는 투키디데스를 인용하면서 정치적인 것은 비폭력적이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경계를 넘어설 때, 강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지만, 약자는 감내해야만하는 것으로 인해 고통당한다. (On Revolution, 12) 그녀의 시온주의 입장 역시 이스라엘 국가설립보다는 아랍과의 협력을 기초로 모든 테러리스트 그룹들의 제거를 요구한다. 로컬 자치정부와 유대인과 아랍의 공동 시의회와 지방 협의체들이 필요하다. (The Portable Hannah Arendt, xvi)
그러나 아렌트가 나치 친위대 중령 아이히만을 악의 진부함 내지 평범성으로 파악하고 전체주의에의해 길들여진 관료로 분석한 것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어거스틴에게서 악은 선의 부재로 나타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애와 탐심이다. 자기애와 집착은 칸트의 급진적인 악과 먼거리에 있지 않다. 아이히만의 범죄행위에는 사고능력의 상실이나 또는 국법과 명령체제에 따른 공무원이 아니라, 전체주의적 사고의 교만과 유대인 살해에 대한 정당성과 신념이 존재한다.
<악의 평범성>은 여전히 정치이념과 물질적인 이익 그리고 권력의 네트워크 그리고 이데올로기 정당성에 의해 개인의 삶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여진다. 그저 수동적으로 명령 집행자로 파악되기는 어렵다. 그것은 급진적인 악과의 연관에서 보다 사실주의적으로 파악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도 체제안에서 길들여지고 생각없이 살다가보면 아이히만처럼 될 수 있다는 사회 심리학적 분석은 여전히 중요한 통찰을 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