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과 귀신
역은 하늘과 땅과 더불어 수준을 같이하고 천지의 도를 망라하기 때문에,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다. "정밀한 기운은 엉기어 물체가 되고 떠도는 혼은 변하여 흩어진다. 이런 까닭에 귀신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계사전 4장, 이기동, <주역>, 851).
여기서 귀신은 만물을 유지하고 존재하며 모든 존재를 주관하는 기의 작용을 말한다. 만물은 양기의 확산작용과 음기의 수축작용을 통해 존재하고 보존된다. 양기의 확산작용을 신으로 부르며, 음기의 수축작용을 귀라고 한다.
주자 역시 주역의 입장에 근접한다. 신은 확산하는 것이며 귀는 수축하는 것이다. 바람과 비와 천둥 번개가 칠 때 우리는 신을 갖는다. 이것이 그칠 때 귀를 본다. 귀신은 음양의 확산과 수축에 불과하다. 귀신은 음양에 안에 내재하는 신령한 기운이며 자연적인 현상이다 (Ching, 64-5).
쥴리아 칭의 해석에 의하면, 주자는 귀신의 존재를 의심했고, 조상제의에서도 믿음이 없다면 진정성이 없다고 인정했다. 정명도와 정이천 또한 귀신이나 유령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주자는 사람이 죽은 후, 혼은 뜨거워지고 하늘로 흩어지고, 백은 차가워져 땅으로 내려간다. 이러한 혼백은 인간의 기의 두 가지 기능의 측면이며, 음양과 귀신은 서로 연관된다. 기가 흩어질 때 혼백은 사라진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마음안에 있는 기로 인해 제사에서 성인들의 마음과 귀신들의 기와 소통할 수 있다. 자손들은 조상의 기를 이어 받는다 (Ching, ibid., 64. 67).
물론 주자의 입장은 조상제의에서 조상의 기가 자손들과 소통 된다고 하지만, 사람이 죽고 나면 사람의 귀신은 천지의 기능으로 환원되고 흩어진다. 사람은 귀와 신, 혼과 백이 합쳐져 있을 때 사람으로 살아간다. 죽으면 혼은 펼쳐져서 날라가서 신이 되고, 백은 땅으로 돌아가서 귀가 된다. 결국 천지의 기능으로 환원되고 흩어진다.
<중용> 16장에서 공자는 귀신의 덕 됨이 성하다고 말한다.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만물의 주체가 되어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공경스럽게 제사를 받들여야 한다.
주자학적으로 표현해보면, 기는 기본적으로 수축하는 작용과 신장하는 작용하는 두 측면이 있다. 주자는 귀를 수축하는 작용으로 파악하고, 신을 신장하는 작용으로 파악했다. 귀신은 기의 굴신 즉 수축하는 작용으로 보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천지우주의 모든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 귀신이다. 귀신이 작용하는 능력은 성대하다. 그것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지만 천지만물의 모든 존재자의 움직임의 주체가 된다.
그것은 가득하여 위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좌우에 있는 것 같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천지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야한다. 사람이 죽으면 기 즉 귀신이 흩어지며 집념이나 원한이 많을 수록 그 기는 상당한 기간동안 영켜있게 된다 (이기동, <대학중용강설>, 166-7).
그러나 <도덕경> 60장에서 노자는 도로써 천하를 다스리면 귀신도 어떻게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귀는 신이 아니다. 여기서 귀는 당시 세상에서 미신화된 잡귀신을 의미한다. 귀신은 무위자연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해칠 수 없다. 도의 경지에서 살아가는 성인 또한 무위로 다스리기 때문애 사람을 해치거나 처벌할 수 없다. 귀신과 성인은 모두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무위이치의 덕이 어우려져 사람에게 돌아가 베풀어진다.
<주역>과 <중용>에서 공유되는 귀신은 천지우주의 변화를 주도하는 기의 성대한 작용으로 파악되며, 제사와 공경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노자에게서 귀신은 도법자연과 무위이화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해로움을 줄 수가 없다.
인간은 음양의 2기와 화기로 살아가며, 도는 자연에 앞서있고 따르지만,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이다. 인간은 스스로 그러함에 맞추어 살아가는 화기의 존재이다. 이것이 노자가 말하는 도로부터 받은 '본성'일 수 있고 귀신의 학 유교의 한계를 넘어선다. 그러나 <도덕경>에서 '성'이란 글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수운이 말한 시천주 종교적 체험에서 아버지로 불려지는 인격적 상제는 나의 마음에 소통이 되고 귀신이기도 하다. 이러한 귀신론은 서양철학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서 그리스 종교 신화론과 플라톤의 신들의 이해에 비신화론이 일어난다. 우주의 제일 원인으로서 신은 부동의 동자이지만 영원하고 살아있는 존재이다. 이것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기독교 신론으로 수용된다.
그런가하면 성서는 고대근동의 종교문화와 상호 영향 가운데 있었고 신화론과 귀신 그리고 우상 등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히브리 성서의 토라에는 고대 근동의 신화론과 윤리에 대립해 있었지만 보편 종교사적인 측면에서 상관관계에 서 있었다 (에른스트 트뢸취).
해월과 장횡거: 인식론적 파열
햬월은 마음도 기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마음이 기운을 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수운에서 해월에게 인식론적 단절이 일어난다. 해월이 오히려 노자나 역에 가깝다. 귀신이란 것은 천지의 음과 양이요 이치와 기운의 변동이다. 그 근본을 연구하면 귀신, 성심, 조화가 도무지 한 기운이다. 이런 점에서 사람이 한울이고 한울이 바로 사람이다. 그러나 귀신으로 등치시키지 않는다. 마음이 한울이고 한울이 마음이다. 여기서 수운의 시천주는 인시천 (사람은 하늘이다) 천시신인으로 파열되어 나타난다 (<해원심사 법설> 천지인 귀신 음양, 7.>.
귀신은 한울과 일치하지 않는다. 해월의 향아설위에서 청수 한 그릇이리도 지극한 정성을 다하면 제사가 된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향아설위 11절에서 둥글고 밝은 달은 능히 천강의 물을 비춘다. 한 봄의 화한 기운은 능히 만물의 정기를 낳는다. 해월은 화전민으로 일자 무식꾼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대 언제 <중용>과 주자의 핵심 사상을 꿰뚫고 그 너머에 존재하나?
주자에게 태극은 천지만물의 리의 총화이며, 태극안에 음양오행의 리가 다 구비되어있다. "이는 마치 달은 하늘에 오직 하나 있으나 강호에 흩어지면 가는 곳마다 보이지만 달이 분열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경우와 같다." 태극이 마치 모든 사물안에 존재하더라도, 이것은 "조각 조각 분할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달빛이 모든 강에 드리워지는 경우와 비슷하다" (풍우란, <중국 철학사> 2, 540).
주자가 달빛이 모든 강에 드리운다 (월인만천)는 말은 하나의 천리가 세상으로 드러난다는 유비론적인 표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여의 유비). 이것은 명대 고승 감산덕청 선사의 서법 <증도가>에서 나온다. "달 하나 온 세상의 물에 두루 나타나니 온 세상 물속을 한 달이 거느렸도다." (일월보현일체수 일체수월일월섭). 하늘에는 하나의 달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천강만수에 비쳐 달은 천개가되고 만개가 된다. 화엄의 이사무애 가깝다.
그러나 주자는 리기이원론으로 사사무애와 갈라선다. 이것은 "기의 밖에 리가 없으며 리는 기를 다스리는 것"으로 본 주기론의 이기일원론과도 다르다. 그러나 해월은 기가 마음에 앞선다고 보는 성리학의 기 철학의 리기일원론의 입장을 보인다. 그는 천어를 들었고--"찬물에 급히 들어가면 몸에 해롭다" (수운의 소리가 하늘의 소리다)--해월이 손병희 (서택순) 집 앞을 지나가다가 해월은 베틀소리가 들려서, 며느리가 짜는 소리를 한울님이 짜는 소리를 들었다."달이 천 강에 비친다" (월인천강).
그런데 베틀짜는 며느리가 한울님이다. 해월은 귀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이행한다. 이것은 우주를 하나의 기운 덩어리로 파악한 범천론을 의미하나? 아니면 성리학의 기 철학을 의미하나? 아니면 인간 중심주의로 이행하나?
해월은 "천지이기"에서 한울과 땅이 시판되기 전 븍극 태음은 한 물 뿐이라고 말한다. 물이라는 것이 만물의 근원이다. 물에는 음수와 양수가 있다. 한울과 땅도 한 물이다. 이 점에서 해월은 주자가 아니라 경물의 도로 접근한다. 물이 한울을 낳고, 한울이 물을 또한 낳아서 서로 변하고 화하여 조화가 무궁하다.
그러나 <주역>의 "계사전"에서는 태극이 있고, 이것을 태음의 한 물로 말하지 않는다. 태극은 양의 (음양)을 낳고 양의가 4 상을 낳고 사상이 8 괘를 낳는다. 음양이 교대로 작용하는 것이 도이다. 끊임없이 낳는 것이 역이다. 역은 객관적인 도를 제시하며 선행을 신비롭개 해준다 (<주역> 계사전 9장).
이 지점에서 장횡거 (1020-77)는 태극을 태화로 부르기도 하는데, 기의 총체를 의미한다. 태허에서 기가 모이고 흩어진다. 태허가 기라면 무는 없다. 태허는 무형이며, 기의 본체이며 음양의 두 성이 있다. 하나의 사물이면서 서로 수축하고 작용하면서 우리가 보는 대상인 사물로 변하며 서로 다른 음양의 관계안에 거한다. 기가 모여 사물이 되지만 리의 법칙을 따르며 망령됨이 없다. 태허에서 천이라는 이름이 생기고, 기화에서 도라는 이름이 생겼다
해월에게서 도는 태음의 물이고 이것은 한울과 음양처럼 상호작용하며 조화가 무궁하다. 물은 태음이며, 기는 천지 귀신 조화 현모를 총칭한 이름이다. 근본을 상고하면 한 기운 밖에 없으며, 처음에 기운을 편 것은 이치다. 기운이 곧 이치다. 기란 것은 조화의 원체 근본이며, 이치란 것은 조화의 현묘이다. 기운이 이치를 낳고 이치가 기운을 낳아 천지의 수를 이루고 만물의 이치가 되어 천지 대정수를 이룬다. 이것은 해월의 하늘과 인간과 물건을 공경하는 사상으로 이어진다.
주역은 음양이 교대로 작용하는 것이 도이며, 물을 태음으로 말하거나. 물/태음을 공경하라고도 하지 않는다. 도를 이어받은 것이 선이고 도에 의해서 성취된 것이 본성이다. 그러나 장횡거는 태허가 기이며 물로 말하지만 여기서 천이라는 이름이 생기고 기화에서 도가 생겼다. 허와 기를 합하여 본래적인 성이라는 이름이 생기고, 성과 지각을 합하여 마음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기가모여 사람이 생긴다. 자기 마음을 확대하면 천하만물을 몸으로 여길 수 있으며 우주전체를 하나의 큰 나로 여기는 천인합일이 된다. 장횡거의 태허는 해월의 태음에 비교될 수 있다.
장횡거에게 귀신이란 이기 즉 음양의 양능이다 (이기지양능). 귀는 음에 속하고 신은 양에 속한다. 기신은 신비하거나 인격적인 존재가 될 수가 없다. 주자 역시 장횡거의 입장을 추종한다. 혼령과 귀신은 음양기의 자연스러운 드러남이다. 이것은 합리적인 유교의 해석일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유교를 전문으로 했다는 사람들이 귀신에 홀려 수운의 귀신체럼에 올인을 하는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