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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amining Mutual Recognition

by 파레시아 2025. 6. 29.

Citation Policy:

논문에서 인용할 경우:

Bryan K.M. Mok, "Examining Mutual Recognition through Hong Kong’s Lens,"

Comparative Religion & Multicultural Literature, vol. 1, No.1, Fall (2025) at  https://youngsung.org/wp-admin/post.php?post=1873&action=edit

 

홍콩의 시각으로 본 상호 인정의 재조명

 

카르카이넨의 패러다임에 대한 실천적 비판

 

나는 대학교에서 신학자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2021년에 설립된 홍콩의 신생 에큐메니컬 국제 교회인 허브 처치(Hub Church)에서 평신도 설교자로 섬기고 있다. 이런 이중적인 역할에서 '상호 인식(mutual recognition)'의 문제는 단순한 추상 개념이 아니라, 매우 실제적이고 시급한 과제가 된다. 허브 처치는 인종, 종교, 성 정체성, 성적 지향, 사회 경제적 배경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환영한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향한 에큐메니컬한 계획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비전 아래, 허브 처치는 영적 추구자들이 예배, 공동체 형성, 신앙 성장, 봉사를 통해 치유 받고, 질문하며, 성숙하고, 신앙을 실천할 수 있는 포용적인 신앙 공동체를 세우고자 노력한다.

 

홍콩은 그 독특한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위치로 인해 문화적 변종성(cultural hybridity)을 지닌 도시로 자주 묘사된다. 그러나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은 점점 정치적 획일성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홍콩의 사회·문화적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더불어, 복음주의는 홍콩의 개신교 교회들에 깊은 영향을 미쳤고, 홍콩 기독교 안에 배타성과 편협함의 문화를 깊이 뿌리내리게 했다. 그 결과, 종교 전통뿐 아니라 기독교 내의 교파, 신학적 관점, 정치적 입장, 성적 정체성 등 다양한 차이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포용성과 다양성을 지향하는 에큐메니컬 공동체는 종교 및 사회정치적 영역에서 심화되는 양극화와 교조주의 사이를 헤쳐 나가야 하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카르카이넨의 ‘인정’ 패러다임

 

벨리-마티 카르카이넨(Veli-Matti Kärkkäinen) 교수의 글은 ‘인정(recognition)’에 대한 다학제적 연구가 어떻게 종교 간 교류와 대화를 밝히는 데 기여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카르카이넨에 따르면 ‘인정’은 본질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타자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은 인정을 근본적으로 상호적인 과정으로 이해하며, 인간은 타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 인식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현대 사상가들은 이 개념을 발전시켜, 인정의 감정적·심리적·사회정치적 차원을 탐구하면서 존중, 존경, 사랑을 핵심 요소로 제시한다.

 

카르카이넨은 에큐메니즘의 주요 장애물 중 하나가, 서로 다른 교회들을 기독교 신앙의 정당한 표현으로 상호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정신과 상충된다. 따라서 에큐메니즘은 타자가 우리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를 묻기보다, 우리가 그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신학적 사고를 넘어, 사회 범주화, 사회 비교, 사회 동일시, 공유된 사회적 인식, 집단 순응 등 심리학적·사회학적 요인들과의 연계된 접근을 요구한다.

 

종교 간 교류의 맥락에서 카르카이넨은 ‘인정’을 종교적 타자를 평가하고 성찰함으로써 자기 이해를 새롭게 하는 과정으로 본다. 이 과정은 상호주관적 (intersubjective) 대화를 촉발시키며, 우리가 가진 타자에 대한 인식을 출발점으로 하되, 그 인식이 만남을 통해 도전받고 재구성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양측 모두 이 대화를 통해 변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열린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는 다양한 전통의 경전을 비교하며 읽는 것을 상호 인정을 촉진하는 중요한 실천으로 제안하는데, 이는 타자의 경전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르카이넨은 글의 마지막에서 종교 간 관계에서의 상호 인정을 위한 열 가지 명제를 제시한다. 이 명제들은 상호적인 배움의 자세, 인정에서 비종교적 요인의 역할, 특히 인정 결여의 위험에 처한 주변화된 집단의 시각을 이해하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이 원칙들이 다소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다양한 전통의 학자들과 실천가들이 함께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평자의 글은 홍콩에서 에큐메니컬 학자-목회자로서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논의를 확장하고 심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인정 결여와 권력 불균형의 도전 과제에 직면하여

 

카르카이넨이 지적한 집단 역학의 특성들은 ‘인정’의 장애물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러나 홍콩의 현실에서 사람들은 보다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형태의 ‘비인정(non-recognition)’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에큐메니컬한 기독교인들은 상호 인정에 있어 세 가지 차원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기독교 내부에서 복음주의자들은—홍콩 개신교 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집단으로서—에큐메니컬 기독교를 신학적으로 자유주의적이거나 모호하다고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에큐메니컬 운동이 추구하는 기독교의 일치, 사회 정의, 종교 간 대화에 대한 헌신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종종 복음주의자들은 에큐메니즘의 핵심 관심을 오해하고, 그것이 성경의 진리를 희생시키며 진보적 의제를 추진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둘째, 에큐메니컬 기독교는 점점 더 미묘한 방식으로 정치적 압력을 받고 있으며, 이는 흔히 통일전선 전략과 맞물린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세계교회협의회(WCC) 회원인 홍콩기독교협의회(HKCC)는 최근 기독교의 중국화 압력과 서구 유산으로부터의 단절 요구를 받고 있다. 당국과의 협조적 태도는 에큐메니컬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가중시키며, 일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에게 친베이징 성향으로, 혹은 체제의 일환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러한 권력의 비대칭성은 서로를 동등하게 인정하는 가능성을 위협하며, 이러한 현실이 무시된다면 상호 인정에 대한 노력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시도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처럼 정치 권력과 종교적 오해에 뿌리를 둔 외적 도전은 상호 인정을 심각하게 저해하지만, 동시에 '자기 인정(self-recognition)'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확고한 정체성과 목적의식 없이, 허브 처치(Hub Church)와 같은 에큐메니컬 공동체는 외부의 압력이나 오해에 휘둘릴 위험이 있다. 따라서 ‘비인정’의 현실에 직면한 가운데, 자기 인식과 자기 수용은 상호 인정을 위한 필수적 토대가 된다.

 

상호 인정을 향한 경로로서의 자기 인정

 

에큐메니컬 전통에 속한 신생 교회로서 약 30명의 교인을 둔 허브 처치(Hub Church)는, 상호 인정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실천적인 자기 인정의 접근을 취해 왔다. 젊고 신학적으로 개방적인 공동체로서, 우리는 종종 분파적이거나 심지어 이단적인 집단으로 주변화될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인정과 오류인정(misrecognition)의 힘을 인식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오히려 동력 삼아 공동체의 비전과 사명에 집중함으로써 상호 인정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대화는 상호 인정을 위한 핵심 요소이지만, 진정한 대화는 자기 신념과 입장에 대한 확고한 헌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우리의 목표는 복음주의자들, 비신자들, 혹은 정치 권력자들을 설득하거나 우리를 수용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대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에큐메니컬한 계획에 참여하도록 양육된다는 비전을 실현하는 데 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예배, 공동체 형성, 신앙 성장, 봉사를 통해 질문하고, 성숙하며, 신앙을 살아내는 다양하고 포용적인 신앙 공동체를 스스로 창조하는 주체성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젠더와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복음주의자들과 비생산적인 논쟁을 벌이는 대신, 이 주제에 대한 공개 강좌와 영화 상영회를 조직함으로써 에큐메니컬한 관점을 사회와 나누어 왔다. 또한 방콕에 기반을 둔 포용적 기독교 공동체인 레인보우 스트림(Rainbow Stream)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그 리더들을 2024년 4월 홍콩으로 초청해 공개 강연과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교육적 노력은 허브 처치의 정체성을 다양성과 포용성을 지향하는 교회로 공고히 했을 뿐 아니라, 성소수자(LGBTQ+) 기독교인을 포함한 동지적 신앙인들에게 자신의 정체성과 권한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힘을 실어 주었다.

 

우리는 이러한 자기 인정의 과정이야말로 복잡한 권력 비대칭을 전복하고 자율성을 회복하는 데 핵심적인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이는 헤겔의 주인-노예 변증법이 보여주는 것처럼, 진정한 상호 인정을 위한 토대가 된다.

대화적 신앙을 향하여

 

허브 처치(Hub Church)는 성경과 신앙 고백의 전통에 확고히 뿌리내리고 있지만, 종교적 유동성과 뱐종성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있다. 이러한 혼종성은 서구와 동양의 종교 전통, 신앙과 세속주의, 전통성과 현대성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홍콩의 맥락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종교적 정체성의 내면적 복합성은 카르카이넨의 글에서는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 그의 글에서 종교 전통들은 주로 고정되고 단일한 실체로 간주되지만, 실제로 상호 인정은 전통 사이뿐만 아니라 하나의 전통 안에서도, 심지어 단일 공동체 내에서도 이루어진다.

 

허브 처치는 망명 신청자, ‘홍콩 드리프터’ (중국 본토를 떠나 홍콩에 정착한 고학력 중국어 사용자), 외국인 거주자, 지역 주민 등 다양한 민족·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단지 문화적·인종적 차원을 넘어, 성적 정체성과 종교적 표현의 스펙트럼까지 확장된다. 교인들 가운데는 LGBTQ+와 비성소수자 기독교인이 함께하며, 일부는 기독교적 무신론자(Christian atheist), 기독교 마녀(Christian witch), 혹은 불교와 기독교를 동시에 온전히 믿는 이들로 자신을 정의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성은 교회의 정체성과 구조 전반에도 반영되어 있다.

 

허브 처치는 어느 특정 교단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 교회이지만, 스스로를 에큐메니컬한 교회로 명시하며 다양한 기독교 전통을 신학적으로 포용하고 인정한다. 복음주의의 행동력과 성령의 가시적 능력을 추구하는 카리스마적 신앙의 특징을 함께 수용하고 있으며, 사도신경이나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고백하는 모든 기독교 공동체를 진정한 교회로 인정한다. 이러한 신학적·영적 포용성은 자연스럽게 대화가 살아 숨 쉬는 공동체 환경을 형성한다. 공동체 전체와 구성원 개개인이 유동적이고 혼종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있기에, 허브 처치에서는 종교 간 대화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대화가 일상적 실천으로 자리 잡고 있다.

 

카르카이넨은 종교 간 경전 비교와 연구를 통해 타자 안에서 자신을 보고, 기억하고, 재발견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는 전통 간의 차이를 인식하고, 편견을 극복하는 데 유용한 방식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상호 인정의 더 넓은 과정에서 보면, 이는 구체적인 만남과 공동 실천, 살아 있는 경험을 통한 대화라는 더 넓은 틀의 일부일 뿐이다.

 

현재까지 허브 처치는 불교와 뉴에이지 영성을 주요 대화 상대로 삼아 왔는데, 이는 이론적 성찰보다는 공동체의 실제 요구에서 비롯된 즉흥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점차 무신론, 세속주의, 중국 민간 신앙과의 대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2024년 초, 우리는 불교의 사성계(Four Noble Truths)를 통해 기독교의 구원론을 재해석하는 공개 강좌를 개설하였다. 이 강좌는 불교 사상에 공감하는 이들과 뉴에이지 실천자들을 끌어들였고, 그들의 영적 실천과 기독교 신앙 간의 상호 작용에 대한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또한, 조만간 교회에서 평생 기독교인으로 살아오다가 점점 무신론적 세계관으로 기울고 있는 한 교인이 자신의 영적 여정을 공동체 앞에서 나누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우리는 이러한 종교적·영적 실천과 세계관을 비교하고 나누는 과정이 경전 연구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며, 자기 인식과 상호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만남은 몸으로 살아낸 삶과 개인적 체험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인격적인 방식으로 타자 안에서 자신을 보는 길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본 ‘인정’에 대한 비판적 성찰

 

마지막으로, 동아시아의 시각에서 볼 때 상호 인정(mutual recognition)은 반드시 해방적(emancipatory)이라고 전제하는 것은 문제적이다. 때로는 상호 인정조차도 기존의 권력 불균형을 해체하기보다 오히려 강화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홍콩의 맥락에서 권력의 불균형은 노골적인 정치적 통제를 통해, 그리고 보다 은밀한 형태의 포스트식민적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를 통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권력 역학을 의식적으로 성찰하고 해체하지 않는 한, 상호 인정은 홍콩이라는 맥락에서 순진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구호에 그칠 위험이 있다.

 

인정은 단순한 상호 승인이나 존중의 행위가 아니라, 타자가 나를 규정할 권한을 거부하는 변증법적 과정이다. 이는 특히 주변화되거나 대표되지 못한 개인과 집단에게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인정과 거부(repudiation)는 자기 인식과 자유를 향한 변증법적 과정에서 서로를 보완하는 두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허브 처치에게 이 말은, 지역 정치의 이분법적 구도를—즉 친정부냐, 혹은 이른바 ‘민주 진영’이냐는 프레임—그 자체를 비판적으로 거부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이러한 자율성은 교회가 사회 정의 이슈에 참여할 수 있는 핵심 전제이며, 같은 맥락에서 세속주의, 유럽중심주의, 타 교단들에 대해서도 선별적 거부와 거리 두기의 전략이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비판적 거리두기와 거부의 태도 속에서만, 허브 처치는 홍콩이라는 복합적 종교·사회 지형 안에서 자신만의 독자적 역할을 재정의하고, 상호 인정을 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다.

 

허브 처치와 홍콩의 신학자들은 이러한 변증법을 탐구하기 위해 동아시아적 관계론적 존재론(relational ontology)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유교의 인(仁, ren) 개념이나 불교의 사무량심(四無量心: 자비희사) 등이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서구적 개념을 동아시아 개념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맥락 속에서 깊이 성찰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적 의식(critical consciousness)을 바탕으로 할 때에만, 지역 기독교 공동체는 ‘인정’이라는 패러다임을 실질적으로 재구성하고, 실천적 상호 인정을 위한 진정한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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