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베버는 칼빈의 구원론과 소명론이 칼빈의 후예인 청교들에게 이어져서 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한다. 칼빈신학에서 예정론이 차지하는 위치는 논란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칼빈의 저술에서 예정론은 각각 다르게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버는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칼빈 신학의 두드러진 특징을 예정론으로 보았다. 특히 도르트레히트 종교회의와 웨스터 민스터 종교회의에서는 당시에 거세게 불고 있던 문예부흥 혹은 문화투쟁을 분쇄하기 위해서 예정론이 더욱 강조되었다.
베버에 따르면 예정론은 하나님의 절대성과 초월성을 더욱 강조하는 결과를 낳았다.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청교도의 구원과 하나님 이해는 성경의 메시지와 거리가 있다.
베버에 따르면 청교도적 예정론을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은 인격적 하나님과 거리가 멀다. 청교도적 예정론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영원 전에 인간이 절대로 알 수 없는 어떤 작정을 통해서 모든 개개인의 운명을 이미 결정해 옿는다. 심지어 우주에서 일어나는 아주 미세한 일들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청교도적인 예정론에서는 한 개인의 구원을 위해서 옆에서 도워줄 방편이 아무 것도 없다. 성직자도 성도들을 도울 수 없고, 칼빈이 구원과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 강조한 성례전 조차도 그저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 위한 ‘외적인 보조수단(externa subsidia)’에 불과하다. 심지어 독실한 청교도들은 장례식조차도 그 어떤 애곡하는 노래나 예식도 없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매장해 버렸다.
이런 신앙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신앙의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한국에서도 대표적인 청교도 지도자로 알려진 리차드 백스터나 루이스 베일리의 저술에서도 이런 생각이 자주 발견된다.
칼뱅주의자들이 세계에서 행하는 사회적인 성격을 띄는 노동들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더 높이기 위한‘(in majorem gloriam Dei) 노동일 뿐이었다. 청교도에 의해서 재해석된 이웃사랑의 개념과 직업노동에 대한 가치관은 당시에 발전하기 시작한 무역과 상업 그리고 산업발전과 잘 조화를 이루었다. 즉 이웃에 대한 동정 대신에 비인격적인 직업노동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것은 영주와 농민의 봉건적 관계에서 자본과 임노동의 관계로 변화된 자본주의 맹아가 싺트기 시작한 사회 경제적 상황과 잘 어우러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를 통해 상업적 관계와 고용주와 임노동자의 관계가 더욱 확고하게 자리하는 데 기여하였고 자본주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세속적 금욕주의 그리고 탈주술화
청교도적 예정론의 확산은 노동과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구원에 대한 또 다른 물음과 해답을 찾는 결과로 이어졌다.
베버에 따르면 칼빈의 후계자인 베자(Beza, 1519~1605)에서부터 예정을 통해서 선택받은 자라는 증거와 징표에 대한 물음이 서서히 제기되었다. 그 이후 17세기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청교도 운동이 전개되면서 벡스터(Richard Baxter 1615~1691), 베일리(Lewis Bayly 1573~1631) 등과 같은 청교도 지도자들이 구원의 확신과 증거에 대해 목회적 차원에서 권면하였다.
그렇다면 자신이 하나님께서 택정하셔서 쓰임받는 도구가 되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청교도적 칼빈주의는 외적인 증거를 요구하였다. 청교도적인 칼빈주의는 감정이나 기분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구원의 확실성(certitudo salutis)을 보장해 주는 토대가 될 수 있는 참된 믿음이 되려면, 그 믿음이 만들어내는 행위들을 통해서 참된 믿음인지가 객관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베버에 따르면 청교도적 칼빈주의자들에게는 선행은 구원을 얻기 위한 보조수단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았음을 확인해 주고 구원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불안을 잠재우는 수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선행을 종종 공개적으로 구원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말하기도 하고 구원의 획득(possessio salutis)과 직접 결부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베버에 따르면 이런 청교도적 믿음은 세계내적 금욕주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청교도의 삶에서는 주술적인 요소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청교도적인 칼빈주의에 있어서 인간을 ‘자연상태(status naturae)에서 은혜상태(satatus gratiae)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이 어느 특정한 개인에게서 일어나고 있느냐를 증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그 개인의 사회적 삶의 모습, 특히 이웃들와 어떤 관계 속에서 조직적으로 일관되게 흘러나오는 행위들뿐이고, 그랬을 때에만 그 개인 자신도 구원의 확실성을 가질 수 있었다.
신앙과 노동의 합리성을 통해 유럽사회 전역에서 탈주술화가 이루어졌을 때, 그것은 결국 내적으로 세속적인 금욕주의 외에 다른 길로 발전할 수 없었다. 이러한 경제적 태도와 직업개념은 자본주의의 탄생에 중요한 기반인 합리적인 노동분업이 시작되는 사회 경제적 환경에 편승하게 되었다. 베버의 분석에 따르면 청교도의 대표적인 리더인 백스터 등이 노동의 전문성과 분업에 대해서 강조했는데, 이런 논점은 노동분업을 찬양한 아담 스미스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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