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적 금욕주의와 자본주의의 선택적 친화력
중세의 카톨릭은 물직적인 부를 축적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칼빈은 이러한 생각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칼빈에 따르면 외형적인 물질을 이용해서 무절제하게 방조한 삶을 사는 것은 분명히 죄이다. 그러나 반대로 물질에 대해서 지나치게 절제할 것을 강요하는 것도 바람직 하지않다. 이는 사람의 양심에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다.
베버에 따르면 이러한 칼빈의 생각은 청교들에게 반영되었다. 우선 청교도들은 물질적인 부가 그들의 세속적 금욕주의에 걸림돌이 되는 것에 대해서 철저하게 경계하였다. 벡스터를 비롯한 청교도들의 많은 설교집과 저작들을 보면, 물질적인 부에 안주하고 그 부를 누리면서 육체적인 욕망들을 채우는 것에 대해서 죄악으로 규정하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경계하였다.
그러나 정당한 노동과 직업활동을 통한 이윤축적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베버는 청교도들의 신앙적 직업윤리를 통한 이윤에 대한 태도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한다 : “첫 번째로는 도덕적인 관점에서 평가되었고, 두 번째로는 그 직업이 생산해 내는 재화가 사회 전체에서 지니는 중요성의 정도에 의거해서 그 직업이 생산해 내는 재화가 사회 전체에서 지니는 중요성의 정도에 의거해서 평가되었으며, 세 번째로는 개인경제적 이해관계와 관련해서 개인의 경제적인 ’이윤‘의 정도에 의해 평가되었는데, 이 중에서 실천적인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였다.” 즉, 청교도들은 하나님이 어느 신자에게 이윤을 획득할 기회를 주셨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고, 따라서 독실한 신자라면 당연히 그런 기회를 사용해서 이윤을 획득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직업윤리를 통한 이윤창출의 기회를 하나님의 섭리라는 관점에서 해석한 것은 기업가들이 윤리적으로 칭송을 받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한편, 청교도들은 유대교적인 투기적 부의 축적과는 분명히 구분하였다. 청교도들이 보기에 유대인들은 천박한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것이었고 이런 성향의 부축적은 혐오하였다.
베버는 금욕주의에서 출발한 정당한 이윤을 추구한 청교도의 태도는 근대적 자본주의 형성에 중요한 정신적 토대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청교도적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는 선택적인 친화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 청교도적인 세속적인 금욕주의가 선과 악을 동시에 낳는 힘이라는 이 명제가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두 가지 이유 중에서 우리의 논의에서 한층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후자이다. 왜냐하면 세속적 직업노동을 중심으로 한 금욕주의적인 삶에 대한 그러한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평가는 우리의 논의에서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부르는 생활양식이 발전하고 확장하는데 가장 강력한 지렛대로서의 역할을 했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모순 : 쇠창살과 마지막 인간
베버는 청교도적 금욕주의가 탈주술화를 거치면서 어떻게 자본주의와 선택적 친화력을 갖게 되었는 지에 대해서 해명하였다. 청교도적인 인생관이 영향을 미친 곳에서는 시민 계층의 합리적인 경제적 생활양식을 발전시키는데 촉진제의 역할을 했다.
이런 인생관은 근대적인 “경제적 인(Wirtschaftmenschen)”
의 요람이 되었다. 베버에게서 경제적 인간이란 경제활동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근대사회에서 경제활동이 삶의 중심이되는 사람들이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면서 등장한다. 이는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인생관의 변화는 조직적인 직업활동과 분업을 통해서 구원의 증거를 찾으려던 청교도적인 가치관에도 큰 위기를 초래하였다. 즉, 신앙적인 핵심적인 내용이 사라진 조직에서는 점점 행제애에 입각한 공동체 정신이나 분업관계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순수했던 종교적 열정이 정점에 도달한 후에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해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정적인 소망과 기대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합리적으로 조직된 직업 노동의 토대가 되었던 종교적 뿌리가 시들어 말라죽고, 그 자리에 철저하고 냉철한 공리주의가 굳건하게 자리 잡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무엇보다도 베버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글 속에서 신앙적 단어들과 내용이 사라진 것에 주목한다. 벤자민 플랭클린은 18세기 미국의 자본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글 속에서 청교도적인 용어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상인들 간의‘신용 혹은 정직이 최고의 정책’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렇게 청교도적인 정신과 소명이 사라지면서 물질과 부가 가치관에 더 큰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베버는 청교도의 지도자 백스터의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백스터는 성도들에게 재화에 대한 관심은 ‘언제라도 벗어 버릴 수 있게 가볍게 걸치고 있는 외투’
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역사적 운명은 재화에 대한 관심이 가벼운 외투가 아니라 강처로 만든 쇠창살(iron cage)이 되게 하였다. 금욕주의가 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면서, 재화는 점점 더 강력한 힘으로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고, 결국에 인간이 그 힘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는데, 이것은 이전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베버는 이런 물질의 쇠창살이 니체가 말하는 ‘마지막 인간(Letzter Mensch)’을 만들어 낼 것임을 예언한다. 존재의 자기변혁을 외치는 짜라투스트라를 향해서 야유와 비난을 보냈던 관중, 현실에 도전하고 변혁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인간이 아니라 물질을 향유하면서 심장이 없이 향략을 추구하는 자들이 바로 마지막 인간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무가치한 인간 군상들은 자신들이 인류가 지금까지 도달한 적이 없는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간다. 이렇게 베버는 기술문명으로 자만하고 물질의 풍요 속에서 심장없이 삶을 즐기려는 21세기의 인간의 모습을 정확하게 예측하였다.
쇠창살과 가치다원론에 대한 베버의 처방 : 소명의 인간(심정윤리와 책임윤리)
베버가 주장하는 선택적 친화력은 칼빈윤리와 자본주의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영역과 사회 모든 영역에서 선택적 친화력은 존재한다. 아니 존재해야만 한다. 베버는 두 전문가들을 위한 지침서를 저술한다:<소명의로서의 정치>와 <소명으로서의 학문>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베버는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두 가지 윤리적 의식에 대해서 말한다. 이상적 정치인, 즉 카리스마적 정치인은 프로테스탄트적 윤리에 상응하는 정치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는 내면적 신념 혹은 내면적 심정윤리의 원천로서의 소명의식이다. 다른 하나는 그의 신념을 현실 속에서 이행해야할 책무, 즉 책임윤리의 도덕적 원천으로서 소명의식이다.
베버에 따르면 이 두 가지 윤리를 겸비한 정치인이 카리스마적 정치인이다, 이런 카리스마적 정치인이 대중을 설득하여 정치적 지도자가 될 때에 도덕성을 갖춘 사회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학문>에서 처음부터 이 두 가지를 강조한다. 베버는 여기서 학문을 단순히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천직으로 수행하고자 하는 자가 갖추어야 할 내적인 심정윤리와 학문을 수행하는 외적인 조건과 능력 그리고 책임성, 즉 책임윤리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베버 당시 학문을 수행하는자의 경제적, 사회적 여건은 열악했다. 베버는 당시 독일대학의 교수제도의 열악함에 대해서 개탄한다. 독일대학은 미국대학처럼 기업적 경영능력도 결여되어 있고 프랑스의 학술원 제도처럼 국가적 지원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학자들에게 더욱 소명의식과 책임윤리가 필요하다. 베버는 이렇게 말한다. “학문에 문외한인 모든 사람들로부터는 조롱을 당하는 저 기이한 도취, 저 열정, ‘ 네가 태어나기까지는 수천 년이 경과할 수 밖에 없으며’, 네가 그 판독을 성공할지를 ‘또 다른 수천 년이 침묵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학문에 대한 소명이 없는 것이니 다른 어떤 일을 하시오, 왜냐하면 열정으로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진정으로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베버에 따르면 이러한 소명을 가진 학자들이 학문의 세계 뿐만아니라 사회전체의 탈주술화를 이루는 과학(Wissenschaft)를 발전시킬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합리성이 사회에 관철되는데 기여할 수 있다. 학자들은 심정윤리와 책임윤리를 바탕으로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정승훈에 따르면 베버는 청교도에서 출발한 자본주의와 근대성의 문제점인 쇠우리 창살의 문제를 윤리적 정치와 학문으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한다. 즉 심정윤리와 책임윤리를 가진 정치인들과 학자들에 의해서 자본의 폭력을 방지하고 윤리적 도덕적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베버는 비교종교학을 통해서 다양한 사회를 분석하고 연구한다. 정승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 근대성의 착상은 이미 세계종교윤리연구에서 암담한 쇠우리 창살에 갇혀 버린 청교도의 귀족주의적 윤리를 극복하는데서 나타난다. 여기서 그의 심정윤리는 카리스마적- 예언자적 윤곽을 띤다.”
베버에게 있어서 쇠창살은 단지 물질의 정신지배라는 문제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가치다원론을 통한 재주술화의 문제도 심각하게 부각된다. 탈주술화로 인해서 신앙적 합리성이 자리하게 되었지만,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 발전함에 따라서 신앙적 합리성은 점점 힘을 잃고 이성적 혹은 과학적 합리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양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발전은 통일된 윤리적 가치관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각자의 다양한 세계관이 진리임을 주장하는 가치다원주의가 자리하게 된 것이다.
과학마저도 그 정당성을 잃어감에 따라, 각각 독립적인 의미와 가치체계를 갖춘 다양한 가치영역들이 등장한다. 즉 가치다원론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 가치다원론의 시대에는 서로의 가치관을 차지하게 위해서 투장하게 된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다. 결과적으로는 통합된 세계관을 제시할 수 있는 어떤 목적론적 정당화도 인식론적으로 불가능해지고, 이에 따라 공존이 불가능한 가치영역으로의 파편화는 멈출 수 없이 계속된다. 인간의 판단과 행동은 통합되지 않고 허무주의가 지배한다.
근대는 마치 헬레니즘의 다신론과 같은 시대로 되돌아가는 꼴이 되었다. 이러한 가치다신론은 도덕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기반을 철저히 무너뜨리고, 그 결과 자아안에 깊숙히 자리한 죄의식을 해결하지 못하고 정신적 무력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현실에 안주하고 물질적인 쾌락을 이상가치로 삼는 마지막 인간을 출현을 재촉하게 된다.
베버는 이 근대적 인간이 마주친 두가지 딜레마, 즉 쇠우리와 가치다신론으로 인한 재주술화의 문제 역시 심정윤리와 책임윤리의 정립을 통해서 해결책을 찾는다.
김성호는 이러한 막스베버의 노력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신헬레니즘적 다신주의(polytheism)와 출구없는 쇠우리(iron cage)의 대안만을 강요하는 근대의 조건들 하에서 인간의 자기소외, 허위의식, 그리고 무력감은 깊어만 갈 뿐이다. (막스 베버의)후기 저작에 와서 비로소 정점을 이루는 이러한 문제의식은 베버의 종교사회학, 방법론, 그리고 각종 정치적 저작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축을 제공한다. 또한 이에 대한 그의 처방 역시 일관성 있게 견지되는데, 그것은 주관적 가치와 객관적 합리성의 초월에 기반한 ‘소명의 인간’의 복귀라는 처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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