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신학과 성서해석 (1)
공공신학과 성서해석 시리즈를 몇차례에 걸처 시작한다. 공공신학의 정당성은 성서해석에 달려있다. 바르트는 그의 대작 <교회 교의학>에서 깊은 성서주석을 통해 새로운 교의학과 교회신학 그리고 사회적 소명을 해방으로 재해석했다. 공공신학은 바르트의 위대한 신학적 유산을 한국사회의 공론장에서 인문사회과학과의 대화를 통해 열어간다.
그리고 나는 최근 성서비평학에서 나타는 풍부한 연구성과와 방법론을 역사 사회적 문헌비평학적인 틀을 통해 화해의 복음을 두텁게 기술하고 공론장에 소통시킨다. 공공신학의 특징은 두 가지로 특징된다. 첫째는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하고, 시민사회의 공론장에서 다 학제간 연구에 관심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종교가 다원화되는 시민사회에서 비판적 민주주의는 생활세계 안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공공선의 거버넌스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둘째, 공공신학은 해방신학이나 정치신학과 다르다. 왜냐하면 공공신학의 비판적 인식론은 상황과 상호 맥락 그리고 보편적 구체성 간의 사회학적인 교차와 스펙트럼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이 미국의 공론장으로 수입될 때 인종문제 앞에서 타당성을 갖지 못한다. 유럽의 정치신학이 토마스 홉즈의 <리바이어던>과 이에대한 칼 슈미트의 파시즘적 해석에 비판으로 시작 하지만, 공공신학은 시민사회와 근대성의 문제를 후기 자본주의와 포스트콜로니얼 문제틀에서 전개한다. 해방이나 정치비판이나 연대성의 추구는 개별적인 상황이 다른 상황과 여과를 거쳐야한다, 남아공의 해방이 남미의 해방과 다르다. 상호 맥란간의 비판적 검증을 통해 공동선을 위해 가능한 '구체적인 보편성'을 빈성한다.
공공신학은 역사 사회학적 방법을 통해 성서의 세계에 접근하며, 문헌비평을 통해 토라의 의미와 화해의 복음을 정치주체인 시민과 하위계층과 연대하면서 복음의 사회 비판적 차원을 동시대화한다. 이것은 서구의 성서비평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유럽중심적인 한계와 이데올로기적 외삽법을 고고학적으로 해명한다. 이를 통해 ‘말해지지 않은 것들’의 유효한 역사를 복권시킨다.
마틴 디벨리우스와 기독교적 할라카
복음서의 양식비평을 열어놓은 마틴 디벨리우스는 복음서의 전승사를 다루면서 40년대 기록된 Q 어록 자료나 또는 현재의 복음서의 장르를 갖추는 데 기여한 목격자들과 말씀의 사역 자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전달된 자료들은 기독교적 할라카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한다.
랍비 유대교에서 할라카란 탈무드의 미슈나에서 논의되는 법적인 규정에 속하는 해석방식(페샤트)이다. 기독교적 할라카는 복음서의 편집과정에서 구전의 중요성과 기록된 자료의 상관관계를 지적한다. 그리고 담론화된 자료는 초대 공동체가 실천하는 규범 즉 할라카적인 성격을 갖는다.
증언(음성 언어)과 기록문서 그리고 편집과정은 복음서가 텍스트에서 어떻게 언어사용과 네러티브가 삶의 문법과 사회적 자리에 관련되는 지를 보여준다. 음성언어와 기록문자(글쓰기)의 이항대립이나 또는 문자가 음성언어를 보충대리 (데리다)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목격자들의 증언과 전승실천이 복음서의 편집자들을 통해 텍스트화되면서 기독교적 할라카의 실천과 증언적인 성격을 특징 짖는다.
증언 언어와 텍스트 편집 그리고 삶의 실천형식으로 공동체의 사회적 자리가 의미론적 순환과정안에 있다. 개별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와의 관계안에 존재하면서 복음의 주제에 대한 전거와 함께 복음의 사회적 콘텍스트를 지적한다. 텍스트는 관계와 교차 가운데서 연결되며, 여기에 관여하는 독자에게 영향을 미치며 해석과 비판적 탐구를 가능하게 한다. 성서해석은 삶의 실천을 위한 비평적 해명이며, 해석의 지평과 의미의 확대를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디벨리우스는 복음서의 케리그마에 주목하고 복음서에서 드러나는 예수의 행동에 대한 내러티브가 파라다임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네러티브/파라다임은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서신에서 증요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디벨리우스의 구성적 방법은 볼트만의 아포테크마타를 기초로 분석해 들어가는 방법과 다르다. 교회의 캐리그마는 역사적 예수의 삶과 행동에서 분리되지 않으며. 불트만처럼 초대 공동체의 산물로 환원되지 않는다 (Dibelius, From Tradition to Gospel, 27). 교회 공동체 앞서 신실한 증언자들의 기독교적 실천의 할라카가 먼저 있고, 시리아의 안디옥 공동체는 이것을 이중언어로 번역하면서 복음서는 이후 편집되고 완성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스타일로 표현하면, 복음의 언어게임은 복음을 지키고 실천하는 삶의 문법과 규칙에 관련되며, 이러한 게임 (메타포, 비유, 표현, 논쟁 담론)이 초대 공동체의 삶의 형식을 창출한다. 복음의 언어는 할라카적인 계명준수와 실천 그리고 사회적 콘텍스트에서 공적인 의미를 갖는다. 복음서는 각각의 언어게임과 삶의 실천형식을 드러내며 사회적 삶의 자리에서 그 의미의 구체성과 다양성을 갖는다. 개별 복음서는 서로 사회적 네트워크안에서 가족 유사성과 더불어 역사의 과정에서 의미 스펙트럼을 드러낸다.
할라카는 하나님의 성품, 역사적 활동, 그리고 메시아의 구원 등을 윤리적 삶이나 설교를 위해 해석하는 하가다의 네러티브와는 다르다. 그리고 히브리 성서 본문을 꼼꼼히 주석하고 평가하는 미드라쉬와도 다르다.
디벨리우스의 기독교적 할라카는 루돌프 불트만이 공관복음의 전승사를 다룰 때 양식 비평의 차원에서 비교 될 수 있다. 전승 자료와 복음서의 관계를 규명할 때, 불트만은 구전토라와 랍비 공동체의 미슈냐 해석 (할라카)의 유사점을 보았다.
만일 구전토라가 랍비 유대교의 미슈냐 해석으로 전개 된다면, 복음서 역시 그리스의 문학장르인 아포테그마타를 분석 할 때 초대 교회의 산물로 파악 되어야 한다.
주의 어록의 초기단계를 분석해보면 예수가 어떤 콘텍스트에서 말씀했는 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어록은 복음서 기자가 속한 공동체의 삶의 자리에서 그 의미와 문학적 장르가 결정되고 변형된다.

불트만은 헤르만 궁켈이 오경연구에서 사용한 양식비평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개별 전승 자료층의 오리지널을 찾기 위해 분석적 방법을 취했다. 그리고 초대 팔레스티나 공동체와 헬라 공동체를 구분했다.
불트만은 바리새파 랍비들의 가르침과 어록 그리고 헬라적 스토리들이나 철학적인 장르에서 복음서와 유비를 보았다. 불트만은 그리스의 문학 장르인 단화 (아포프테그마타)와 초대 공동체의 삶의 자리를 연결하는 분석적인 방식을 전개했다. 복음서의 논쟁 담화에서 초대교회는 랍비 유대교와 관련되며, 공관복음은 랍비적 전승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Bultmann, History of
the Synoptic Tradition, 41, 5-6, 11).
그러나 불트만의 문제는 구전 토라의 미슈냐 해석에서 편집자나 랍비들의 창조적 해석 논쟁을 여과없이 복음서의 전승사와 편집비평에 적용한 데 있다. 장구한 세월을 거쳐온 구전 토라와 할라카의 해석과는 달리, 초대 기독교에서 전승자료와 복음서의 관계는 30년에서 70년 사이에 있었고, 공동으로 자료를 전해준 목격자들이나 말씀의 사역자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배우지 못한 계층에 속했지만 나사렛 예수에 대한 신실한 태도와 믿음의 증언은 안디옥 교회에서 그리스어로 번역이 되고 지식인에 의해 복음서로 편집 되었다.
복음서 기자들이 당대 공동체 안에 신학자들과 논의를 거치면서 미슈나처럼 복음서를 창작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목격자들에 의해 검증되고 북 시리아의 안디옥이나 다메섹 공동체 안에서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소아시아 이방인 선교를 위해 전승 자료를 기초로 사실적으로 편집했다 (누가복음 서설).

디벨리우스나 불트만의 할라카적 접근은 성서 비평학에서 거의 주목되지 못했다. 그러나 조직신학 영역에서 프리델 마르크바르트는 칼 바르트의 이스라엘 신학과 화란의 개혁 신학자 코넬리우스 미스코테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의 조직신학 1권에서 복음적 할라카를 개념화하고 폭넓은 스펙트럼에서 전개했다.
마르크바르트는 본 대학에서 헬무트 골비처의 지도로 칼 바르트와 이스라엘의 신학에 대해 박사학위 논문을 마치고, 60년대 기독교와 유대교의 물꼬를 튼 탁월한 기여로 당대 저명한 로젠츠바이크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르크바르트는 이후 베를린 대학에서 기독교-유대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30여년 동안 예루살렘 대학의 정통파 유대인 학자들과 탈무드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열면서, 그의 경이적인 7권의 교의학을 완성했다.
그는 베를린 대학의 은퇴 강연에서 자신의 여정을 히브리 성서와 유대교 전제 역사를 관통하면서 살았던 “아비렌”으로 표현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권능에 의해 방랑자로서 살았던 아브라함의 추방의 여정을 말한다.
사실 구약성서의 역사 비평적인 방법은 랍비 유대교의 해석 방식에 관련되기 어렵다, 유대교적 미드라쉬 해석과는 제대로 대화를 열지 못했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구약성서의 지평에 서 있고, 이러한 지평은 토라의 네러티브에서 언급되는 아브라함과 신앙 (바울), 모세의 가르침 (산상수훈), 수난전승, 광야의 이야기들 (마태 2:15; 4: 1- 11), 그리고 모세의 뱀을 든 사건과 예수의 치유 사건 (요한 3: 14) 등에서 볼 수 있다.
심지어 요한복음에서도 예수의 인격 안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장막이 거했다고 말한다 (요 1: 14). 더 나아가 예수의 유월절 음식과 성만찬 (마가 14: 12-25; 마태 26 : 2 8), 그리고 바울은 예수를 유월절의 양 (고전 5: 7; 11:25)이며, 그리스도는 광야 에서 이스라엘을 동행한 영적인 바위 (고전 10: 14)로 언급한다. 신약성서는 구약성서의 사유 방식과 언어 그리고 종말론적 지평에 서 있다.
팔레스티나 유대교의 성서해석

팔레스티나 2차 예루살렘 성전 시기, 유대교 해석 전통에는 페샤트(peshat; 할라카를 위한 간결한 문자적 해석), 페쉐르 (pesher; 상황적 해석), 미드라쉬, 알레고리는 성서와 구전 토라를 읽어내는 해석의 기술이다. 랍비 바리새파 전통에서 페샤트는 샤마이 학파에서 볼 수 있다. 저녁에 모든 사람은 쉐마 이스라엘을 누워서 암송해야한다. 아침에는 선 채로 해야한다 (Berakhot, 1.3).
불트만은 공관복음의 논쟁 담화에서 랍비적 가르침에 주목하고 정결 법전을 지키는 문제로 힐렐과 학생들의 대화에 주목했다. 가말리엘은 신혼 첫날 밤에 쉐마 이스라엘을 어떻게 암송 해야 하는지 묻는 학생들에게 대답을 한다 (Berach 2. 5).
가말리엘은 이방의 철학자의 질문—왜 하나님은 우상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게 진노하는 가—에 비유로 답변을 한다. 왕에게 아들이 있는 데 아들이 개를 “아바”라는 이름로 부르고 “아바” 개의 이름으로 맹세 한다면, 왕은 누구에게 진노 하겠는가? (ibid., 43).
모세는 기록된 토라 이외에도 구전 토라를 가르쳤고, 탈무드는 구전 토라의 가르침을 법전화 하고 새롭게 해석한다. 히브리 성경은 거룩 하지만, 인간의 조건과 새로운 역사적 환경에서 삶의 지침을 위해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교리나 토라에서 미리 주어진 최종적 진리는 없다. 진리는 모든 세대에 걸쳐 권위있는 해석가들의 다수의 판단에 기초된다 (Yerushalmi Sanhedrin, 4:2).
하나님은 613개의 계명을 모세에게 주셨고 365계명은 금지에 관한 것이며, 248개는 긍정적인 명령을 포함한다. 다윗은 이것을 11개의 원리로 요약했다 (시편 15). 이사야는 6가지로 줄이고 (33:15), 미가는 3가지로 줄이지만 (6:8), 최종적으로 이사야는 2개로 압축한다 (56:1): 정의를 지키고 의롭게 행동하라 (Makkot 24a).
페쉐르는 하나님이 하바국에게 마지막 세대에 일어날 일들을 말했을 때, 이러한 신비가 해석자의 시대에 성취된 것을 말한다. 이것은 쿰란 공동체에서 행해진 해석 방식인데 공동체의 창시자인 “의로움의 선생”에게서 하바국의 예언의 신비가 시작되고 성취 되었다 (예레미아의 새 언약은 “의로움의 선생”의 가르침과 삶에서 성취 되었다).
미드라쉬는 규칙 (예를 들면, 유비)에 기초한 구약성서에 적용하는 문자적 주석이다. 힐렐 학파는 7가지 규칙이 있었다. 하가다적 네러티브에서 나타나는 설교나 윤리적 교훈은 미드라쉬 해석의 방법이나 주석에 수용되고, 이것은 일반적으로 에스라 시대 이전으로 시작 되었지만, 주후 3세기 초기 미드라쉬가 편집되었다.
이러한 미드라쉬 주석은 오늘날에도 히브리 성서 본문의 개별 귀절을 설명하고 다른 자료들 (전설, 비유, 현자에 관한 이야기들)과 참고 하면서 행해진다 (The Classic Midrash, 17). 알레고리는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20 BCE-50 CE)가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에서 발전 시켰다.
이외에도 기원전 2세기에 히브리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 성서가 있고, 또한 타굼이 있는데, 이것은 히브리 성서 본문을 아람어로 번역하고 애매한 내용을 설명한다.
이러한 당대 유대적 성서해석의 기술은 복음서에서 그대로 적용된다. 할라카를 위한 페샤트는 마태복음에서 이혼 문제를 둘러싼 예수의 해석에서 잘 나타난다 (창 1: 27; 마태 19:3-6). 예수의 가르침은 이혼 문제에 관대한 힐렐 학파보다는 엄격한 샤마이 학파에 접근한다.
페쉐르는 누가복음 4: 16-21절에서 안식일에 예수가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 (61:1-2)을 읽으면서 예수 안에서 성취된 것을 선언하는 대목에서 나타난다. 미드라쉬는 성서의 다른 본문들을 연관지어 해석하면서 논리적인 논쟁을 포함한다.
마태 7: 7-11절에서 예수는 힐렐의 규칙을 사용한다. 악한 아비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는 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간구하는 자녀들에게 더 하지 않겠는가? 그런가 하면 마가복음에서 묵시록은 다니엘의 묵시와 연관된다. 구약의 예언과 관련되어 해석되는 나사렛 예수는 철저히 유대교적 생활세계에 속했다. 예수는 당대 유대적 성서해석에 익숙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초대 공동체안에서 예수의 어록은 기독교적 할라카의 틀로 전승된다. 이것은 공동에 의해 순종되며, 설교로 이어진다. 증언자나 목력자들의 초기 파라다임의 전승은 설교의 형태로 드러나며 예수의 가르침과 행동이 중심에 서 있다. 이것을 공동체는 준수한다. 이런 측면에서 복음서의 구성적 성격은 일방적으로 공동체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예수의 삶에서 드러나는 공적인 활동과 가르침 그리고 기적과 치유 등이 공동체의 성격을 결정한다. 그리고 공동체의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말씀과 행동은 해석되고 이어진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힐렐의 미드라쉬 (롬4:3 -8. 창 15:6, 시편 32: 1 -2)를, 그리고 사라/하갈 그리고 이삭/이스마엘의 알레고리를 갈라디아서 (4: 21)에서 사용한다. 그리고 복음서의 묵시적 메시아나 요한 계시록은 구약의 묵시적 지평과 이스라엘적인 이디엄을 이해하지 못하면 완전히 시한부 종말론으로 변질된다.
역사비평과 사회학적 삶의 자리

히브리 성서는 기원 전 1200년부터 125년 사이에 히브리어와 일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이것은 구전 자료와 독립된 두루마리의 기록을 거쳐 문서화가 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고대 근동의 문헌과 폭 넓은 문화적 교류를 갖는다.
히브리 성서는 주전 400년경 토라와 예언서 그리고 다른 문서들로 분류되고, 오경은 핵심이 된다. 거의 모든 예언서들은 400년 경 문서화된 것으로 간주된다. 예언서들은 토라에 보충적인 역할을 한다. 히브리 성서의 최종 작업은 주전 400년부터 90년까지 진행되었다. 히브리 성서의 경전은 90년도에 팔레스티나 조그만 해안도시 얌니아에서 완성되었다 (Gottwald, The Hebrew Bible, 93).
개신교 전통에서 오경에 대한 역사비평은 저자와 텍스트의 의미를 주목하고 전승 자료와 현재의 본문 그리고 양식과 편집 과정에 대한 분석을 한다. 역사비평은 폭 넒은 스펙트럼에서 발전되며 18세기 후반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진행된다. 역사비평은 성서를 역사적 문서로 다룬다. 그리고 성서 언어, 이스라엘과 고대근동의 역사, 그리고 사회와 문화를 비롯한 종교 이념과 제도에 관심을 기울인다.
과거와 현재를 매개하는 것은 유비적인 상상력이며, 서로 다른 시대와 사회 그리고 인간의 삶에 유사한 것이 있음을 가정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종교는 당대 다른 종교와의 상관관계를 가지고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이러한 역사 비평은 종교사에 기반하며 원칙적으로 사회학적 유형론에 의해 추동된다 (트뢸취와 베버).
역사비평은 성서 문헌의 기원과 배경에 관심하고 전승사의 중요한 내용 (출애굽 해방 사건)과 성서 저자의 편집과정을 추적한다. 그러나 성서의 생활 세계는 독자의 세계와의 언어적인 갭과 문화적인 다름 그리고 사회계층의 차이로 인해 쉽게 매개되지 않는다. 해석자들이 자신이 처한 삶의 배경의 영향에서 움직인다고 해도, 성서의 세계에 대한 자료 비평이나 문서설(야훼이스트, 엘로히스트, 신명기 문서, 제사 문서) 또는 전승사와 편집과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성서의 역사적 배경을 이루는 고대근동의 세계에 대한 문화 인류학적이나 사회 과학적 분석을 무시할 수가 없다.
자료비평이 문서설에 기초하여 야훼이스트 (J)와 엘로히스트(E), 신명기 문서 (D) 그리고 제사 문서(P)로 분류하고 여기에 맞게 성서의 본문을 시도하는 것은 오늘 날 거의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전승사 측면에서 볼때 (자료의 내용과 편집과정) JEDP는 일차적으로 이전자료들의 편집자이며, 각자의 신학적 통찰을 담고있다. 원역사 (창1ㅡ11), 족장사 (창 12:50) 그리고 출애굽-민수기 전승은 독립적인 자료들이지만, 이후 J와 P에 의해 편집되고 오경의 구조를 이룬다 (클라우스 베스트만). J는 가장 오래된 자료 (기원전 950년)로 볼 수 있다. E자료는 창세기 15장의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시작되고 북왕국의 권력의 정점이었던 (기원전 850년)시기로 소급된다.
신명기 12-26장을 신명기 오리지널 자료(D)로 보고 요시야 왕의 개혁 이전 (기원전 621년)으로 간주하고 북 왕국이 멸망하자 (721), 피난민들이 남왕국으로 가져와 성전에 숨겨둔 것으로 추정한다. P 자료는 오경의 연대기적인 틀을 제공하며 포로기 시절 (기원전 550경) 제사장 그룹에서 나온 걸로 말한다.
그러나 이외에도 단편가설이나 또는 기본자료(G)를 주장하는 입장이있고 벨하우젠의 문서가설의 약점은 양식비평이나 전승사 연구에의해 비판된다. 양식비평은 오경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구약성서의 양식비평을 열어놓은 헤르만 궁켈은 고대의 사람들은 근대적인 의미에서 역사를 기록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이들의 경험은 구전으로 전해지며, 기억에서 사라질 때 시적인 표현이나 노래로 불려지거나 또는 사가(saga)로 기록된다.
이후 역사적 발전 단계에서 문명이 정착될 때 조상들의 경험과 정체성을 후대에 전승하기위해 역사로 기록을 남긴다. 역사 기록 이전에 정치 지도자들의 카리스마적 능력이나 족장들의 전쟁사 또는 가문의 역사들은 사가(saga)의 단계로 남는다. 이러한 전통들에 대한 기억은 시적인 형식으로 보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창세기에서도 잘 나타난다. 전설이나 사가는 거짓말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 역사를 담고있는 언어적, 시적 양식에 속한다.
시적인 표현들은 이스라엘 이외에도 고대의 역사에서도 잘 나타나며, 시적인 내러티브는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 산문보다 더 중요하게 종교적 사유를 전달하는 내용을 담고있다(Gunkel, Legends of History, 2).
양식비평은 자료의 전승사에 주목하고 구전 전승의 조그만 단락을 문학적인 배경이나 문서 자료로부터 분리하고 검토한다. 더 작은 이야기 단위와 구전의 기원을 기초로 문학장르 (전설, 사가, 계보, 시적 표현 등)을 분류한다. 구전 형식은 암송이나 스토리로 전해지고 기록이 된다 (창 12-50, 삿 5장의 드보라 노래).
양식비평이나 문학비평에서 이러한 자료들이 산출된 삶의 자리를 추적하고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 되었는 지 (예배 또는 가정교육) 분석한다. J자료나 E자료는 구전의 전달자이기보다 이미 오랜 전승 자료들을 편집하고 종결시킨 신학을 담고 있다 (Von Rad,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18).
역사화된 신학(구원사)이 6경의 전체구조를 이룬다. J는 탁월하게 구원사의 신학을 대변한다. 그런가하면 J와 E 문서이전에 대부분 구전에 기초된 기본자료(G)가 있었고, 이후 JEP 편집자들에 의해 재작업 되면서 4경의 구조을 이루기도 한다. 신명기는 이후 여호수아ㅡ열왕기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마틴 노트).
궁켈은 JEDP는 오랜 세월을 거처 내려온 전승자료들을 큰 첨가와 수정이 없이 수집하고 짧은 민담(saga)이나 설화들을 여기에 편집한 익명의 신학자들로 본다. 고대의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종교적, 윤리적, 미학적 사고의 모든 것은 창세기에서 이끌어 낼 수가 있다 (Gunkel, ibid., 99). 양식비평은 전승 단위의 최초 양식과 삶의 자리 (전승의 내적 역사)를 발견해주고 벨하우젠 의 문서가설과 진화론에 기초한 연대기적 도식을 넘어선다.
양식비평은 전승의 내적 역사와 완결된 역사를 통해, 구약 전체를 이러한 전승사의 관점에서 보게 하고 보다 광범위한 이스라엘 종교의 윤곽과 발전을 제시한다. 창세기는 구전 자료를 기록하고 후대의 편집과 시대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표현들을 담고있다. “그가 바로 오늘날 암몬 사람의 조상이다 ” (창 19: 38). 그런가 하면 에돔의 왕들은 이스라엘이 아직 없었을 때에도 열거된다(36:31).
야살의 책은 구약성서에서 두개의 시로 인용 되며 (수 10: 12- 13. 삼하 1:19-27), 이러한 시들의 수집으로 볼 수 있다. 아샬의 책에 해가 중천에 머물러 종일토록 지지 않았다는 표현은 편집자의 자연과학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시적인 표현이며 살아계신 야훼가 여호수아의 전쟁에 관여하고 승리를 준 구원의 활동을 증거한다. 이러한 전승 자료를 유치하거나 비과학적으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과학적인 언어라고 해서 야훼의 구원의 활동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사용된 연대기들은 왕정 시대에 통치기록으로 볼 수 있다. 전승 자료들은 편집자의 손에 의해 재구성되고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해석을 부여한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의 전통은 이후 세대로 이어지며 의미의 지평이 확대되고 동시대화가 된다. 편집사 신학은 구약성서의 패턴—전승자료의 내적역사, 편집자의 재구성—후대로 의미지평의 확대—을 분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여기서 자료비평은 이런 전승과정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문체나 어휘, 모순과 불일치, 중복과 반복들을 검토라고 전승사 연구에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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