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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공공신학과 성서해석

공공신학과 성서해석 (2)

by 파레시아 2023. 3. 9.

 
전승사와 신앙고백
 

Gerhard von Rad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적 개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자료와 양식비평은 자료 전승의 역사를 추적하는 도구가 되는데, 여기서 게르하르트 폰 라트의 연구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구원사는 단순한 역사적 보도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에 대한 신앙고백이며 신학적인 반성을 담고있다. 

복음서가 예수의 역사적 삶을 등한시하지 않지만 신학적인 편집을 담고 있듯이, 가장 오래된 시내산 전승의 ‘삶의 자리’도 야훼의 계시에 대한 반복되는 제의적인 수행에서 드러난다. 

 

폰 라트는 역사 비평이 이스라엘 역사에 접근하는 유일무이한 학문적 방법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이것은 근시안적인 견해다. 전승자료들에서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것은 정신적인 의미와 분리될 수 없다. 살아계신 야훼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이 역사적인 것을 기술한다. 역사의 증언에서 이스라엘은 자신의 신앙이 아니라 살아계신 야훼에 의존했다. 이러한 신앙의 증언이 구약신학의 대상이 된다. 그것이 살아계신 야훼의 말씀이다     (Von Rad,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121, 124, 125).  

 

폰 라트는 자신의 구원사 신학을 위해 칼 바르트의 말씀의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바르트는 창조와 계약을 다룰 때 창조의 네러티브를 순수한 사가(saga)로 표현된다고 본다. 창조의 목적과 의미는 하나님의 은총의 계약의 역사 안에서 가능해진다. 계약의 역사는 창조의 목적이다. 

은총의 계약은 구원사의 주제이며, 계약의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와 다스림으로 이어질 때 창조는 지속적인 창조의 의미를 갖는다(CD 3/1: 60). 세계가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로 인해 존재로 불려진다면, 세계는 하나님의 소유에 속하며, 야훼는 주님이 되신다. 하나님과 세계의 연속성은 살아계신 말씀에 있다. 

Karl Barth

폰 라트는 자신의 구약의 말씀 신학과 역사적 계약을 위해 바르트가 말하는 피조물과 거룩한 하나님의 인격성의 관계에 주목한다. 인간 존재는 하나님의 말씀에 상응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계약 안에서 은총의 말씀 즉 지혜와 선물과 권능으로 인간을 만나신다(Barth, KD III/1: 122, Von Rad, 156).

 

폰 라트의 신학 원리는 역사 안에서 말씀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야훼의 계시에 있고 이에 대한 신앙고백의 형식을 검토하는 것이다. 히브리적 사고는 역사적 전승에 대한 사고이며, 하나님의 계시와 사건에 대해 역사에 속하는 성격을 갖는다. 

이것은 사유적이고 신학적인 반성에 앞서 위치한다 (ibid., 12 9). 이러한 구원사적적인 틀 (야훼의 계시의 행동)을 기초로 폰 라트는 육경을 하나의 장르로 이해하고, 복잡한 전승과 전달과정에 주목하면서 전승사적인 방법을 발전시켰다. 

가장 오래된 고백 전승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야훼에 있다. 이러한 고백전승 곁에 신명기의 고대신조가 있다 (26:5-9)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이었으며, 애굽에서 번성했지만 학대를 당하고 중노동에 시달렸다. 야훼께서 부르짖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집트에서 인도해내서 약속의 땅으로 오게 하셨다. 이것은 기도가 아니라 야훼 앞에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밝히는 철저한 신앙고백에 속한다.  

 

이러한 고대 신조는 현재  육경의 기본 구조를 이룬다. 그러나 시내산의 계약 전승 (출 19, 민 10장)에는 이러한 고대 신조가 빠져 있지만, 세겜의 계약 갱신제 (수 24:2절 이하)에서 이러한 고대 신조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아훼이스트에 의해 편집 되고, 창세기의 원역사(1- 11)와 함께 육경의 문학적 장르를 형성한다. 

이러한 토라 계약과 고대 신조는 이후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설교자들과 토라의 선생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삶과 예배에서 반복되면서 이어진다. 폰 라트는 전승사 비평의 입각해 오경 형성에 대한 설명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서 자료에 담고 있는 신학적 성격(JEDP)을 제거하지 않는다.  

 
전승사 비평과 의미론
 

Marc Chagall, La lutte du Jacob et du l'Ange

전승사 비평에서 볼 때 창세기  32: 22-32(얍복 나루터에서 씨름하는 야곱)는 호세아의 전승 자료(12: 3 -5)와 비교 검토된다. 

창세기 32장 25 절 후반부에서 32절까지는 후대의 미드라쉬 첨부로 볼 수 있다. 아브라함과 영원한 계약의 약속(17장)이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면서 재확인된다 (헤이네스/매켄지, <성서비평방법론과 그 적용>, 10 1- 10 6). 

 

그러나 창세기 전승 자료에서 중요한 것은 에서와의 화해의 용서가 신학의 중심으로 들어온다는 점이다. 그러나 호세아에서 야곱/이스라엘 전승은 창세기와는 다른 전승층을 보여준다. 야곱은 어떤 신(엘로힘)과 씨름을 했다. 그리고 울면서 은총을 간구했다. 

그러나 전승사 비평은 상이한 두 자료를 확인 하지만, 호세아 시대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며, 창세기의 원자료의 빛에서 화해, 용서 그리고 은총의 차원으로 의미 지평을 확대 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신명기 연구는 주전 7세기 후반에 있었던 요시아 왕의 개혁운동 (열하 22-23)에 주목하고, 신명기가 이후 문서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그리고 열왕기상/하)에 신학적인 유사점이 있음을 검토한다. 신명기 (1:1-4:40)는 이러한 후대문서들의 입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출-바벨론 시기에 신명기는 창세기에서부터 민수기에 관련되어 편집되었다(Noth, A History of Pentateuchal Traditions). 

 

오경의 다섯 가지 주요 주제 (출애굽, 약속한 땅으로 인도, 족장들에게 준 약속, 광야, 시내산 계시)에서 시내산의 계시는 가장 중요하다.

 

오경은 근대적인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성하기 위해 실증적인 역사 편찬방법을 통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편집자들은 고대 전승자료를 존중했고, 이러한 자료들의 역사적 실증성 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의 삶과 기원의 역사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앙고백적으로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랍비 유대교의 전승사와 신앙고백
 

랍비 유대교적 관점에서 볼 때, 586년 이전에 역사를 담고있는 오경이나 이후 문서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1이사야[사 1-39], 예례미아, 에스겔 등)은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회상하고 설명한다. 오경은 시내산 토라계약에 서 있으며, 이스라엘이 토라를 위반할 경우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한다 (레 26, 신 28). 토라를 중심으로 예언서들은 오경의 기본 메시지에 일치하며, 오경의 현재 형태는 에스라 시대에 제사장 그룹에 의해 편집 되었다 (주전 450년 경). 

이것은 수문의 광장 집회에서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공개적으로 수용되었다 (느혜미아 8-10). 첫 번째 유대교의 경전은 오경이었고, 이것의 사회적인 자리는 바빌론 유폐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이라는 정치적 배경을 갖는다(Neusner, An Introduction to
Judaism, 
137). 

 

이런 랍비 유대교적 접근은 고트발트의 사회적 문헌 비평에서도 나타난다. 바벨론 유배 기간에 유대백성들은 히브리어가 아니라, 바빌론에서 사용된 아람어를 썼다. 

토라의 편집은 이들에게 이전 야훼이스트의 신앙고백과 믿음의 조상들과 모세의 계약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해주었다. 

창세기에서 민수기와 신명기를 거쳐 열왕기로 이어지는 내용은 민족 서사시에 비견될 수 있다. 여기서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경험을 반성할 수가 있었다(Gottwald, The
Hebrew Bible
, 106).

 

신명기가 요시아 왕의 개혁 당시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서 (왕하 22-23장)라면, 신명기 법전은 이것을 발견한 기원전 612년 직전으로 볼 수 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에 나오는 제사 문서들은 신명기-열왕기하에서 나타나지 않으며, 제사 문서는 포로기 이후 성서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다듬어 진 것으로 보게 한다.

 
보론: 종교에 대한 사회학적 반성

 
성서의 유대교를 다룰 때 종교와 제의는 분리되지 않으며, 토라의 제의는 진화론적 발전을 통해 (벨하우젠) 후대의 성립으로 볼 필요가 없다. 토라의 윤리와 제의법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성격을 처음부터 사회학적으로 규정한다 (뒤르캠).

종교는 사회의 모든 본질적인 것들을 창출하며 사회의 이념은 종교의 영혼이 된다. 사회의 분업과 합리화 과정과 윤리의 토대는 종교로부터 온다. 종교는 사회적 현상이며 기능적인 체계를 갖는다. 종교는 믿음과 실천의 통합적인 시스템이며, 거룩한 것들과 관련된다. 이러한 거룩한 것들은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구분되어 금지된 것으로 설정되며, 믿음 공동체 안에서 제의와 도덕적 실천이 구체화되며 사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거룩한 것 (토라와 언약궤), 신앙고백, 제의 수행, 그리고 믿음 공동체는 성서의 유대교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회학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성의 이념과 제의수행에서 참가자들 사이에서 집단적인 종교 체험의 순간이 나타난다. 이러한 탁월한 아우라는 참가자들에게 감정적인 전율과 카리스마적인 권위를 느끼게하며, 이들을 다른 세계의 실제와 접촉하게 한다.

이러한 거룩한 제의의 아우라의 체험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종교이념과 상징은 이들의 삶에서 권위와 힘을 행사하면서 사회화가 된다. 사회적 제도와 관계 그리고 세력들은 종교적인 집단이념으로부터 의미와 정당성을 갖는다. 이러한 사회학적 입장은 프로이드의 종교이해와는 정 반대에 서 있다.

프로이드와의 비판적 대화

프로이드에게 종교는 방어기재이며, 종교에서 죄책감은 강박과 병리현상과 다른 것이 아니다. 죄책이나 정결예전의 수행은 노이로제 현상에서도 볼 수 있다.  인간은 종교의 일상성에 사로 잡히고 노이로제와 같은 죄책으로 구속된다. "강박 노이로제는 종교의 커리커쳐이며, 파라노이적 망상은 철학적 체계의 커리커쳐이다." (Kung, Does God Exist?, 279).  
 
보다 심층적으로 볼 때, 종교의 방어기재와 죄책감은 그리스 신화에서 근친상간을 범한 외디푸스의 콤플렉스에서 기인한다. 유대-기독교 종교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외디프스 신화를 통해 해석된다. 결국 종교는 인간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제의를 수행하며 거룩한 대상에 투사를 하는 자기 방어기제이며, 환상에 불과하다.

과연 프로이드가 말하는 것처럼, 바울은 기독교가 아버지 하나님을 살해하고 아들의 종교로 변형 시켰나? 예수와 바울에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인격적인 아바 아버지로 고백되지 않는 가?
 
<토템과 타부>에서 프로이드의 접근은 오이디푸스 신화와 근친상간의 금지로 특징된다. 이것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의 고고학이며, 그리스의 신화는 일체의 다른 문화의 신화론적 세계관들을 범성욕의 기제로 환원시킨다. 토템이 발견되는 곳에서 같은 토템에 속하는 사람들끼리는 결혼하지않는 족외혼 제도가 문화의 문법과 규칙으로 나타난다. 근친상간은 타부가 되며. 이에 대한 처벌은 교수형이다. 프로이드는 리비도 안에 고착된  근친상간적인 욕망이 무의식안에서 영원히 반복하고 회귀한다고 본다.
 
Robertson Smith의  <셈족의 종교>에서 나타나는 토템 향연에서 남성 씨족인들은 한해에 한번씩 성스럽게 여겨지는 토템동물을 죽이고 이를먹고 난 후 애도하고 축제를벌인다. 토템 향연은 토템(원초적 아버지)를 살해한 범죄행위를 기념하는 축제이며, 사회조직, 도덕적 제약, 사회계약, 심지어 종교의 출발이 된다.

이런 문화현상을 기초로 프로이드는 토템을 죽이지 말고, 같은 토템 족의 여성과 성관계를 금기시하는 타부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일치시킨다. 토테미즘은 유아기로 귀환하며 토템동물은 아버지와 동일시된다. 원초적 부친살해가 토테미즘의 핵심이며, 종교 형성의 출발점이 된다. 문화적 유산의 기원은 인간의 모든 감정에 거슬리는 끔직한 폭력과 부친살해 행위에서 도출된다 ( <토템과 타부>, 228)

그러나 프로이드의 입장 ㅡ족외혼 규칙과 토템동물에 대한 살해 금지 그리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ㅡ이토테미즘의 토대라는 것은 드뤼캠의 토템연구에서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프로이드의 고고학은 기원의 억측으로서 모든 문화와 종교와 예술의 기원을 교조주의적으로  왜곡 할 수 있다. 그러나 신화연구는 다른 신화와의 비교와 관계 속에서 독해되어야 하지 않나? 오이디푸스는 디오니소스와 관련하여 차이와 유사점에서 연구될 수는 없는 가? 기원전 429년경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상연되었다. 역병의 원인으로 자기고발을 한 오이디푸스 왕은  당대 역병으로 죽어간 아테네 영웅 페리클레스와 수 많은 군인들과 시민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애통과 각성의 시간으로 인도하지 않았나?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수문광장에서 토라를 듣고 각성의 시간과 영적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오이디푸스의 비극에서 자책과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어째튼, 드뤼캠의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성의 이념과 이에 대한 제의적인 체험이며, 종교적 상징은 사회의 이념과 구조 그리고 문화적 실천의 토대가 된다. 거룩한 상징은 제의에 참가한 자들에게 전율적인 체험을 일으키며 이들에게 유기적인 도덕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이것은  토템의 사람을 치유경험과 보다 높은 새로운 존재로 고양시키며, 토템의 사회를 오히려 도덕적인 삶으로 특징 짖는다.
 
토템동물은 오이디푸스 신화가 아니라 제의에서 드러나는 실재의 힘 (마나)의 상징적인 표상이며, 이러한 상징체계가 사회의 이념과 문화적인 삶의 형식에서 드러난다. 성의 이념과 제의적 체험이 종교의 출발점이며 상징체계는 삶을 충만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회학적 전망은 인간의 심리 또한 사회적으로 형성되며, 종교적인 집단표상의 영향권 안에 있음을 말한다. 신화연구에 대한 인류학과 정신 분석학의 차원은 오히려 사회학적인 종교해석에서 비판적으로 갱신될 필요가 있다.

프로이드는 종교를 인간의 환상과 유아기적 보호본능을 위한 투사로 비판하지만, 여전히 그는 도덕과 사랑을 통해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 그의 정신분석학은 과학적 세계관을 제공하며 종교의 원수로남는다. 그의 정신분석학은 과학이며 환상이 아니다. 정신분석학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외부에 존재하는 과학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가? 심리학적 교조주의는 과학의 비판적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베버의 통찰

베버는 뒤르캠이나 프로이드처럼 토템에 관심이 없었다. 더우기 프로이드처럼 과학에 대한 절대적인 신봉을 갖지 않는다. 과학은 운명에의해 지배 당한다.

그러나 뒤르캠의 종교적 신념과 제의실천은 베버의 성서 유대교연구에서 정치 사회학적인 차원에서 발전된다. 베버에게서 세계의 마술적인 힘 다시말해 비주술화 과정에서 합리성은 종교로 부터오며, 인간의 사회구성과 윤리적 발전에 기여한다. 이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종교적인 기여로 볼 수가 있다.
 
베버에게서 문화는 가치이념에 속하며 역사적 과정에서 종교이념과 물질적인 이해관계와 더불어 이것을 수행해나간 담지자들의 의미있는 행동와 가치 지향성에 주목한다. 종교 안에 담겨져있는 문화적 가치와 믿음체계는 행위자들의 사회구조들 (경제와 정치지배)에 대한 역동적인 관계와 더불어 이들의 심리학적인 지향을 분석한다.

이러한 사회학의 발생론적인 측면을 통해 역사, 사회 문화적 과정과 전개에서 모든 가치들은 변화되고 새롭게 구성된다. 이것은 프로이드적인 결정론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지적한다. 베버의 이해 사회학은 발생론적인 차원을 가지며 의미는 시대마다 다른 합리적인 행위에서 규정되지만, 여기서 심리학적인 차원 (신정론의 문제)에서 드러나는 비합리성을 고려한다.
 
종교 이념 (또는) 합리성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물질적인 관계의 총체에서 즉 사회문화의 계층과 구조 안에서 인간의 행동을 이념형으로  분류하고 분석하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재구성한다. 문화적 동물로서 인간은 가치와 도덕 합리성을 가지며 세계와 관계하고 변화 시켜나간다. 이것은 자연과학의 실험실이나 또는 무의식의 원리를 통해 인간과 문화를 설명하거나 이해하는 객관주의나 심리주의와는 결을 달리한다. 문화의 객관적인 차원은 인간 행동의 합리적인 지향성을 분석함으로 써 가능해진다. 
 
이러한 복합적인 사회현상을 베버는 차이와 유사성을 논리적으로 추론하면서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선택적 친화력을 본다. 이러한 역사적인 친화력을 베버는 이념형(또는 적합형)으로 추론하고 사회학의 방법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러한 이념형은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한 비교연구를 통해 발전시킨다. 행동을 주도하는 종교의 "윤리"가 자본주의 경제의 정신 내지 이념에 묶여지고, 가치 합리성에 근거된 윤리적 행동을 다른 종교들과 문화를 비교하면서 다양한 역사적 방식으로 연구된다.
 
종교나 인간의 행동은 심리주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합리성(목적, 가치, 감정, 전통)의 형식에 기초해서 나타난다. 그러나 종교를 기초로 나타나는 합리화과정은 우리시대에 과학기술의 발전과 지성의 전문화, 세속화 또는 관료지배로 인해 모든 삶의 가치와 의미들은 상실되고 결국 쇠우리 창살 우리에 갇히고 만다. 그러나 여전히 비주술화된 이전의 신들은 무덤에서 되살아나 우리 시대에 가치 다신주의로 회귀한다. 한편에서 합리화과정의 귀결인 쇠창살우리와, 다른 한편 가치다신주의 출현에서 베버는 니체처럼 예술의 길로 가지 않고 가치합리성에 기초한 심정윤리와 책임윤리 (특히 정치영역에서)의 길로 간다. 인간은 역사적 영향을 받는 문화적 콘텍스트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며 살아간다.
 
종교는 삶의 의미와 자유를 위해 가치와 도덕의 문화를 창출한다. 베버는 그의 <고대 유대교> 연구에서 이러한 윤리적 기여를 긍정적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베버의 유대교 유일신론 연구는 프로이드의 모세 해석과는 전혀 다르다.

프로이드의 모세 이미지

프로이드에 의하면, 모세는 파라오 아케나톤(1364-1347)의 유일신 종교를 받아들인 이집트인ㅡ모세라는 이름은 이집트어로 "아들"이란 의미이다ㅡ이며, 유대인들을 이러한 종교로 개종시켰다. 그러나 모세는 유대인들의 반란에서 살해당했고, 이러한 살해행위는 반란자들의 무의식에 죄책감을 심어놓았다. 모세의 살해는 토테미즘의 원초적 아버지 살해와 일치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에서도 나타난다ㅡ이 모든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기초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에서 프로이드는 모세 (원초적인 아버지) 살해이론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지파동맹도 부친살해와 오이디푸스 콤픔렉스로 왜곡되어야한다. 그리고 모든 문화에 걸쳐 나타나는 유아시절은 원시사회를 향해 심리학적으로 투사되어야한다. 원시문화에서 모신과 모권제는 프로이드의 가부장적인 이론에 의해 밀려나간다.

토테미즘과 유일신론적인 남신은 프로이드의 <모세와 유일신교>에 여과없이 수용된다. 하니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의 집단폭력과 살인행위에서 기초되는 가? 이것은 희생양 메카니즘 (르네 지라드)에 기초된 포로이드의 비약적 공상은 아닌가? (르네 지라드 <폭력과 성스러움>, 295).
 
프로이드와는 달리 모세는 애굽이 아니라 셈족에 속하며 야훼의 메신저(J), 카리스마적 지도자 (E), 기적을 행한 자(JE), 하나님의 영광을 대변한 자(P)로 볼 수 있다. 다양한 모세전승들에서 역사적 모세를 이해하는 것이 성서비평적으로 의미가 있다.

모세에게 외삽법적으로 오이디푸스 신화를 갖다 부칠 이유가 없다. 더우기 이집트의 문서에서 모세가 태양을 유일신으로 섬긴 파라오 아케나톤의 영향을 받았다는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이것은 모세의 야훼중심주의와는 다르다.

민수기 16장은 고라의 대반란을 상세하게 보도한다. 그러나 역사적 모세가 반역으로 인해 살해당해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보도는 없다. 오히려 그의 카리스마적 예언자의 권위와 고난 (민 11: 11-17: 이 자료는 가장 초기전승인 JE에 속한다)이 오히려 신명기 사가에 의해 존즁되었다. 후대의 역사에서 그의 예언자의 모범(신 18:18)은 그의 죽임을 이스라엘을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신:18:18). 이러한 입장이 성서비평적으로 더 큰 의미가 있다(Gottwald, The Hebrew Bible, 197)

물론 희생양을 향한 만장일치적인 집단 폭력은 히브리 성서에서 희생양의 제의로 나타나지만 야훼의 살해나 부친의 살해를 언급하지 않는다. 성서에서 원죄개념은 부친살해의 심리학에 기초하는 가? 바울에게서 원죄가 생물학적으로 유전되는 가? 오히려 가인과 아벨에게서 나타나는 형제 살해가 역사의 과정에서 보다 더 중요한 사회학적인  의미를 갖는다.

스가랴의 예언에서  야훼와 같은 인물에 대한 집단살해는 영적 대각성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메시야에 대한 이스라엘의 거절로 볼 수 도 있지만, 남성뿐만 아니라 유다 지파의 모든 사람들에게 회심과 대각성이 나타난다. 오히려 야훼의 이미지는 프로이드는 달리 단순히 가부장적이 아니라 이사야서에서 자궁과 관련된 긍휼의 메타포로 나타나기도한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인격성 (마틴 부버)은 환상과 소원성취에 연결된 가부장적 투사에 불과한가?오히려 전적타자에 대한 영적갈망(호르크하이머)은 사회의 불의와 억압을 변혁하려는 예언자적인 파토스와 더불어 고통스런 하나님의 모습 (아브라함 헤셀)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프로이드가 말년에 찾았던 성적관계를 넘어선 사랑은 아인슈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잘 나타난다. 히틀러의 파시즘에 직면하여 그는 성적인 목적이 없는 사랑이 간접적으로 전쟁에 저항하는 길로 말한다 (Kung, 323). 이것은 기독교의 이웃사랑을 긍정 하는가? 적어도 프로이드는 이웃사랑에 헌신한 삶을 보여준다.

베버는 여기에 공감할 수 있다. 스피노자의 아코스미즘 즉 무우주적 사랑이 베버의 사회학에서 결정적이다. 이러한 사랑은 고대 유대교와 심지어 바리새파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전승사, 갈등의 문화 그리고 담론의 사회화  
 
뒤르캠이 종교의 잡단적 표상과 제의적 수행을 통해 종교의 영혼을 사회의 이념으로 말한다. 신앙공동체는 사회안에서 거룩의 이념을 문화 가치화면서 유기적 도덕감을 형성한다. 그런가하면 베버는 종교를 다룰 때 문화외 도덕적 가치를 사회계층이나 구조 안에서 폭넓은 물질적 이해관계에서 분석하고 그러한 선택적 친화력을 이념형적으로 검토한다.

이후 사회학적 연구는 사회계층 안에서 드러나는 권력과 특권 (렌스키) 또는 지식과 권력관계 안애서 드러나는 담론에 대한 계보학적 연구(푸코) 등으로 발전된다. 인식론적인 방향과 목적에서 차이가 나타나지만, 하나의 공감대는 종교를 더 이상 심리학적으로 환원시키지 않는데 있다.     
 
종교적 이념을 통해 공공신학이 물질적 이해와 권력관계 담론의 정당성 관료지배 등을 분석할 때, 베버는 이러한 사회적인 영역들에서 어떤 선택적인 친화력이 존재하는 지를 보게한다. 그리고 종교와 물질의 관게는 어떤 신분그룹에 의해 수행되는고 사회와 문화가 계층화되는 지를 보게한다.

포스트 베버 사회학에서 렌스키는 종교 이념을 사회계층 안에서 권력과 특권을 통해 분석한다. 그런가하면 푸코는 지식과 권력관계를 담론에 기초해 계보학적으로 발전시키며. 종교의 이념 (섹슈알리티)이 고해성사라는 제의를 통해 어떻게 사회의 정상담론으로 자리잡는 지를  보여준다. 푸코는 니체의 제자이지만 심리학적이 아니라, 사회학적이며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간 자들에 대한 연대의 도덕과 정의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푸코는 베버의 심정윤리에 서 있고 니체의 귀족윤리와는 다르다. 니체는 그의 <도덕의 계보학>에서 유대 기독교 전통을 원한에 기초한 노예도덕으로 도매금 처리했고, 그의 힘에의 의지는 귀족윤리와 더불어 초인에게서 삶의 의미가 창출된다.  
 
비판 사회학적 입장에서 종교와 문화가치 그리고 윤리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은 종교가 사회 안에서 일으키는 수치의 효과 (권력과 특권에 옹호하는)를 비판하지만, 동시에 연대의 효과 (예속된 자들과 더불어 나타나는 유기적 도덕과 공공선을 지향하는)를 강화한다. 

이러한 접근은 야훼 신앙이 성서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어떤 연속과 파열, 단절 그리고 변형으로 나타나는 지를 폭넓은 물질적인 이해와 권력관계를 통해 사회적으로 담론화가 되는 지에 관심한다. 
 
이스라엘의 삶의 자리에서 야훼는 이스라엘 사회와 동일시되어 나타나며 윤리와 제의가 분리되지가 않는다. 그러나 토라 (삶의 지침과 내러티브)는 언어 전승 (구전과 기록)을 통해 격언 우화, 노래, 시, 서사시, 다양한 종류의 민담들과 더불어 신앙 고백적인 문학의 장르로 편집된다.  

전승 보존과 과정에서 이것을 전달한 그룹이나 공동체는 이미 이러한 전승자료들은 공동의 유산으로 가지고 있었다. 전승 전달자들(지방 성소나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그룹, 또는 예언자들과 그의 제자들 그리고 현자그룹)을 고려할 때, 이들의 신분과 그룹간의 긴장과 타협이 나타날 수가 있다. JEDP 는 서로 다른 삶의 자리에서 활동한 익명의 신학자들로 볼 수가 있다. 

 

야훼이스트의 유대교는 주전  950년 경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기록 되었으며 솔로몬 왕국은 절정에 있었다. 그러나 중요 인물은 모세가 아니라 아브라함이며 (출 34:10- 26), 하나님의 아브라함과의 약속은 후대 다윗에게서 성취된다. 모세의 리더십은 네러티브에서 기술된다 (출 2-24; 32; 34).

J의 신학은 하나님의 약속과 은총에 초점에 있고,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약속은  나단을 통해 예언자들에게 상기된다 (삼하 7:9). 하나님의 약속과 복은 다윗과 솔로몬에게서 성취된다.

이스라엘은 열방의 복으로 불러졌으며, 생명과 평화, 정직과 조화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살아야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의 약속(창 23:2)은 죄와 실수에도 불구하고 파기되지 않으며, 다윗과 솔로몬에게서(삼하 7: 9-16, 7: 8-1 3) 확인된다 (Neusner, ibid., 137-146).   
 
전승사에서 우리는 종교적 이념과 네러티브가 어떤 신분과 그룹에 의해 독점되고 공동체에서 실천되는지를 보게한다. 이것은 사회학적 연구를 통해 이러한 이념이 당대의 사회 문화적 삶의 자리에서 어떤 권력과 독점의 그물망에 엮어져있으며,  어떤 국제 정치와 고대 근동의 종교와 문화와 경제적 교류를 통해 사회적인 담론으로 정당화 되었는지를 보게한다. 여기서  야훼에 대한 신앙고백과 토라는 이후 이스라엘 역사의 발전에서 드러나는 수치의 효과에  대해 사회적으로 내재젹 비판의 원류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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