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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신학의 지평

마가: 최초의 사회학적 신학자(20)

by 파레시아 2023. 2. 6.

역사적 예수와 초기 자료들

1946년 부터 1956년 사이에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사본 이후 역사적 예수연구는 2차 예루살렘 성전시기에 다양한 유대교적인 분파와 묵시문학적인 메시야 기대와 관련하여 새롭게 보게한다.

신앙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사이에 엄청난 갭이나 넘어설 수 없는 도랑이 있다는 건 18세기 고트홀드 레싱 (1729ㅡ1781)에 의해 제기되었고, 1906년 알버트 슈바이처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논의가 유대적 삶의 자리와 동 떨어진 채 탁상공론식으로 이루어 졌다고 비판했다. 이후 역사적 예수 연구에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1953년에 루돌프 불트만 (1884- 1976)은 문제를 재개하고 레싱의 넘어설 수 없는 간격을 재확인 해주었다. 그러나 그의 제자인 에른스트 케제만에 의해 불트만은 뒤집어졌다. 케제만의 방법은 후대 공동체에 속하는 그리스 자료층을 히브리/아람어 전승과 분리시켜 문학 양식들을 분석하면서 역사적 자료의 진정성을 찾아냈다.

30-40년대 초기 기적과 치유 그리고 수난의 자료층은 마가복음에, 그리고 예수 어록은 Q자료(마태와 누가)에 들어있다. 그리고 마태나 누가의 특수자료나 요한복음에서도 오랜 전승자료가 담겨져 있다. 유대인 문화나 그리스 문화와 다른 자료층은 역사적 예수로 소급된다.

예수와 유대적 삶의 배경

1947ㅡ1956년 사이에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사본이 출간되면서 예수와 세례요한이 활동하던 당시 유대교에 대한 이해를 증폭시켜 주었다. 사본들에서 종래 주장되던 그리스적 이념과 유대적 문화의 분리가 그렇게 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

예수 당시 유대교의 분파는 매우 복잡하며, 사본들은 히브리 성서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고, 역사적 예수를 히브리 성서적 지평과 더불어 당대 예루살렘 성전의 유대교와의 관계에서 파악하게 도움을 준다. 예수는 이러한 성전 유대교의 배경에서 성장했다.

1945년 이집트의 나그 하마디에서 발견된 사본들은 예수에 대한 후대 자료의 이해를 담는다. 여기에 50년대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마복음이 포함된다. 이제 역사적 예수연구는 이전의 양식사 비평보다는 예수의 역사 사회적 콘텍스트에서 특히 유대교와 묵시적 메시아 사상과 관련하여 보게한다. 이것은 초기 알버트 슈바이처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준다.

계보학적 태도

마틴 디벨리우스는 초기 자료의 전승 층들이 복음서의 장르에 편집해 들어오는 경로를 추적하면서 양식사 비평을 분석과 재구성 그리고 초기 자료들의 의도성을 분석했다.
이러한 자료의 전승사에 대한 고고학적 해명은 예수전통에 대한 구전자료와 파피루스를 역사 사회학적인 삶의 자리에서 검토하고 초대공동체의 산물인 복음서의 신학을 해명한다.

디벨리우스는 불트만이 1921년
<공관복음 전승사>에서 시도한 협소한 아포테그마타 분석을 넘어서서 역사적 자료와 의미지평을 매개했다. 역사적 예수의 본래적 모습이 복음서에서 찾을 수 있다. 나사렛 예수의 본래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예를들어 마가의 파라다임 네러티브에 속하며 (마가 2: 1ff, 2: 18, 23, 3:1, 20, 30, 10: 13, 12:13, 14 :3 ) 누가와 마태에 원자료를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복음서 기자의 개인적 신학보다는 전승사의 과정에서 관여한 수 많은 증언자들의 노력과 사실주의적으로 전해준 자료의 신빙성에 있다 (Dibelius, From Tradition to Gospel, 1-2, 7, 43).

디벨리우스는 그리스어로 씌여진 복음서 기자들의 신학적 외삽법이 아니라, 초기 자료층들의 사회학적 중요성과 편집의 사실성에 착안한다. 예를들어 예수와 그의 백성과의 관계를 검토할 때, 텍스트로부터 시작되는 내재적 비판이 중요하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과 활동에서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담겨져있다. 이것은 공적 죄인들에 대한 용서, 메타노이아, 그리고 새로운 존재로의 삶에 초첨을 맞춘다. 파라다임 전승 자료
들은 마가복음에서 간결한 문체와 상황에서 다른 네러티브와 더불어 치유와 용서 기적과 마귀축출 등에서 종교적으로 그리고 사실주의적으로 의미를 구성한다. 예수가 내리는 결론이나 현장에 있는 자들의 놀라운 반응이나 거절로 나타나며 설교를 위해 편집된다 (ibid., 56).

이러한 마가의 파라다임 네러티브는 묵시적이며 메시아 비밀이 악한 영들에 의해 대답된다. 이것은 현재주의에 입각한 민중개념을 텍스트에 첨부하는 일종의 외삽법과는 다르다. 현재주의적 외삽법에서 구약적 지평은 실종되고 텍스트에 대한 반유대주의적 폭력과 파시즘의 왜곡이 발생한다.
물론 하나님은 성서 뿐만 아니라 동시대적인 콘-텍스트를 향해 말씀 하신다. 예를들면 구약의 암 하 아레츠 (땅의 백성)는 복음서의 오클로스와 의미론적인 상응을 갖는다. 그리고 성서의 민중개념은 구약안에 담겨져있는 이방인들을 향한 구원 (요나의 분노와 니느웨)과 유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는 마가복음의 역사적 예수와 갈릴리 오클로스를 전승사적으로 그리고 사회학적인 삶의 배경에서 정치경제적 중요성을 검토한다.

마가의 사회담론과 안식일 해석

예수가 안식일 규정을 어기는 것은 새술은 새부대에 담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면서 밀이삭을 자르기 시작했다 (마가 2: 23-28)이것은 바리새파들에게 미츠보와 장로의 유전을 어기는 중대한 범죄에 속한다. 예수는 다윗의 경우를 인용한다(삼상 21: 1-6). 아비아달 제사장 때 다윗은 제사장들에게만 허락된 제단 빵을 일행에게 주었다. 이제 예수의 제자들도 인자의 사역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허락 된다고 말한다.

마태와는 달리 (12:1-8), 마가는 빵의 중요성(2:26)을 강조하고, 광야에서 굶주린 무리들을 먹이신 예수와 연관 짓는다 (6:33-44; 8:1-9; 8:14). 안식에 음식규정을 어기는 것은 단순히 미츠보를 넘어서서 바리새파들의 곡식에 대한 십일조 규정과 경제적 이득에 관련된다. 갈릴리 농부들은 이러한 경제적 수익을 취하는 바리새파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소위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파들이다.

마가의 안식일 담론은 바리새파의 종교 착취제도에 관련되고 여기서 마가는 가난한 자들의 권리를 회복하려고 한다. 마가는 당대 유대전통 보다는 이방인 기독교 전통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다윗에 대한 해석은 인자 예수가 안식일에 주인 임을 선포한다 (2: 28)

안디옥에서 바울과 베드로의 사건은 이미 당대 잘 알려진 스캔달에 속한다. 로마 (또는 시리아 ) 공동체에서 마가는 이러한 격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가는 다윗에 대한 계보학적 접근에서 예수는 안식일의 주인이고, 다니엘서의 인자 메시아이다. 예수는 멸망할 죄인 (massa perditionis)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영접하고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언했다. 암 하레츠와 이방인 그리고 오클로스는 마가의 사회적 삶의 자리에서 수용되고, 로마제국에 저항하는 마가의 정치신학에서 의미론적인 원류로 적용한다. 여기서 마가는 베드로보다는 바울의 토라비판에 가깝다.

담론해명과 유효한 역사

인간의 사고나 이론은 단순히 역사적 영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몸을 담고 살아가는 사회적인 여건과 물질적 이해관계 그리고 권력의 네트워크에 의해 규정된다. 이러한 사회학적 입장은 가다머가 역사의 영향의 차원(영향사)을 언급할 때, 이러한 영향사는 구체적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보편화된 것으로 간주한다. 가다머의 한계는 별자리와 같은 다양한 역사적 계기들과 사회적 담론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누가복음의 서설에서 누가는 편집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전승자료들을 역사적으로 배열하고 선교의 목적을 분명히 한다. 마가의 안식일에 대한 자료를 편집하면서 누가는 안식일에 행한 예수의 치유사건으로 확대한다. 안식일은 생명을 건지고 치유하는 것이 본래적 의미이다 (누가 6: 9). 이것은 불트만이 억측하는 것 처럼 누가 공동체의 산물이 아니다. 누가는 안식일과 치유의 초기 전승자료를 편집하고 마가에 관련지어 의미지평을 확대했다. 이것이 누가의 편집사 신학이다.

그러나 마가에게서 안식일의 문제는 예수운동의 경제적 빈곤을 드러내고 인자의 관점에서 안식일에 밀이삭을 잘라먹는 것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한다. 역사에는 지배의 역사가 있는 가 하면, 예속된 자의 역사가 있으며, 서로 다른 다양한 담론의 체계들이 녹아있다. 마가는 밀려나간 자들의 예속과 희생의 역사를 끄집어내고 토라를 재해석 하면서 유효한 역사를 회복한다.

성서의 생활세계는 마치 하늘의 별자리처럼 다양한 계기들을 포함한다. 초기 예수의 전승자료들에는 다양한 계기들이 녹아있고 복음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새로운 전승자료들을 수집해서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묵시적 재림의 틀에서 공동체의 신학을 확립한다.

그런가하면 마태복음에서 안식일 규정은 토라에 규정되어있다. 마태는 토라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며 예수는 성전보다 더 큰 이로 소개된다 (12:6). 그리고 호세아 6장 6절이 인용된다. 호세아 본문은 2차 예루살렘 성전 파괴 후 바리새파들의 전통을 이어간 얍브네 랍비 유대교에 목숨처럼 중요한 말씀이었다.

마가의 안식일 논쟁을 수용하면서 마태와 누가는 각각 다른 자신의 공동체의 상황에서 의미를 확대시킨다. 그러나 마가의 본래적 사유는 침해 되는 것이 아니라 두텁게 기술된다. 텍스트와 콘텍스트는 이미 성서의 생활 세계 안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자신들의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마가는 내재적 비판의 원류로 등장한다. 이러한 해석이 오늘 메시아 공동체의 삶에 이어진다. 안식일 논쟁과 해석에서 공관복음은 하위계층으로 밀려나간 자들의 유효한 역사를 토라에 대한 생명의 해석을 통해 재해석한다. 유효한 역사에 대한 사회학적 사유는 고고학적 해명을 요구한다.

마가는 예수의 담론을 갈릴리의 사회경제적 현실에 구체화하고 복음과 예수의 삶의 자리에서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통찰을 제시한다. 이러한 사회학적 접근은 예수의 담론을 구약성서의 인용을 통해 히브리적 사유를 예수의 삶에서 계보학적으로 파악하면서 동시대화한다. 그리고 자신이 처해있는 현장에서 예수 담론의 의미를 로마제국의 권력관계와 이데올로기 정당성을 문제틀한다. 마가는 사회학적 소통이 탁월한 신학자였다.

마가로 부터 배우기

마가복음은 성서와 유효한 역사를 담론비판을 통해 드러내는 실례를 보여준다. 그는 불의한 소작인 비유(12:1)에서 이사야 5:1-7가 배경을 가지고 있다. 마가는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외국인 지주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하위계층의 사람들을 고려한다. 주님은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신다(이사야 5:7). 희년의 정의가 실현되는 것은 땅의 권리를 빼앗긴 농부들의 삶을 회복시키는게서 시작된다.

이런 점에서 마가복음을 권력과 특권에 대한 사회경제적 비판으로 발전시킨 헤르만 웨이첸은 마가를 최초로 사회학적으로 사유한 신학자로 자리매김한다 (Waetjen, The Reodering of Power).

마가복음의 사회 정치적 접근에서 시대적으로 다른 에피스테메와 예수와 그의 고난받는 백성이 접합되고, 진리내용이 된다. 이러한 내용은 각 시대의 에피스테메에서 물질적 이해와 지배방식을 통해 신분과 계급에서 어떤 선택적 친화력으로 나타는 지를 사회학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가에게서 역사는 주변부로 밀려난 자들의 사회적인 삶과 유리되지 않으며, 예수의 담론과 논쟁의 대화는 갈릴리 상황에서 밀려나간 암 하 아레츠의 권리를 옹호하면서 (12: 38) 해석된다. 이것을 마가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1세기 지중해의 사회적 담론과 예수의 실천에서 부각시킨다. 하나님 나라는 로마의 군사지배와 관료행정 그리고 여기에 부역하는 유대인 귀족들과 성전체제에 대립하며, 예수의 치유기사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나타난다.

이러한 사회학적 문제틀을 통해 마가는 갈릴리 예수를 신학화하고, 이 빛에서 본래적인 진리내용과 이후의 역사과정에서 왜곡되고 변질된 것들을 내재적으로 비판한다.
마가의 담론해석에서 예수는 사회에서 밀려나간 상실된 사람들인 공적 죄인과 세리들의 삶에서 세속적인 비유와 네러티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가르쳤다. 그리고 이것은 크로스 문화의 성격을 가지며 마가복음을 사회 문학적으로 즉 사실주의적으로 해석하게 한다.

마가의 의미론적 통찰은 역사의 과정에서 물질적인 이익과 권력관계, 지배방식 그리고 담론적인 정당성에서 "누구에 의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예수와 그의 백성의 관계가 굴절되고 탈구 되었는 지를 검토한다.
성서 텍스트로부터 내재적 비판은 진리의 이념에 초점을 맞춘다.
마가가 세리에 대한 관심은 마태와 누가와는 결이 다르다. 팔레스티나 문화계층에서 하위 세리그룹은 세리장 삭개오 같은 자들에게 고용된 가난한 자들이었고 갈릴리 농부들로부터 경원시 되던 신분/계급이었다. 이들은 창기와 죄인들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은혜가 선포된 자들이다. 이것은 예수의 식탁 공동체의 실천을 말한다. 예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 (2:16-17). 여기서 예수는 메시아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토라의 코셔규정은 더 이상 멍에로 작용할 수가 없다. 인식일은 항상 생명과 치유를 위해 존재한다 (3:4).

마가는 메시아 비밀에 대답한다

나사렛 예수는 고향 사람들에게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라는 당혹감으로 표현된다 (6:3). 이러한 당혹감은 존 마이어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역사의 진정성에 속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마이어가 말한 것처럼 그는 달갑지 않게 여겨졌던 주변부 유대인이었다. 이것은 메시아 비밀에 대한 마가의 대답이기도하다.

이 지점에서 마가는 주변부의 유대인 예수를 소개하며, 항상 성서의 생활세계와 사회적 삶의 자리와 문화적 에피스테메를 일차적으로 검토한다.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바리새파는 비판된다 (7:6). 이후 자신이 서 있는 콘-텍스트에서 로마제국에 대립하여 민중개념의 새로움과 지평 확대를 시도한다.

이것을 나는 마가의 계보학적 태도로 부르며, 그의 사회학적 편집사 신학으로 이해한다. 마가는 현재주의에 입각해 텍스트를 파괴하는 방법과는 거리가 멀다. 구약성서와 예수의 사회적 담론과의 만남을 통해
본문이 이해되고 의미가 구성된다 (이사야의 인용과 성전정화). 이러한 의미구성에서 팔레스티나 정치, 사회, 경제의 스펙트럼이 두텁게 기술된다. 심지어 마가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항의하는 베드로에게 너는 사탄이라는 파레시아를 담대하게 말한 최초의 신학자다 (8:33). 이것은 감히 누가도 하지 못한 (누가 9: 21) 급진적인 파레시아의 윤리를 말한다.

마가는 사회학적으로 사유한 급진적인 파레시아의 신학자였다. 마가는 예수와 그의 백성의 관계를 정치 사회적 관점에서 자신이 서 있는 로마제국의 지배에서 명료하게 부각 시켰다. "하나님 한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10:18) 토라의 계명을 넘어서서 부자청년은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때 그에게 하늘의 보화를 차지할 것이다 (10: 21).

마가는 묵시적 종말론과 부활을 접합한다

마가복음의 해석의 렌즈는 예수와 바알세불의 묵시적 투쟁에서 초기문학적 구성에서 설정된다 (3: 20- 30). 힘센 사람을 묶어놓는 것처럼, 사탄이 스스로에게 반란을 일으켜서 끝장이 난다. 이것은 성령의 권능안에 있는 메시아 예수의 우주적 투쟁이며, 성령을 모독한 자는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히 죄에 매인다 (3: 29) (Shively, Apocalyptic Imagination in the Gospel of Mark, 5). 예수의 비유는 묵시적 내용을 담고있고 삶의 전 영역에 연관된다.

마가는 지속적으로 급진적인 제자직의 윤리를 묵시적 종말의 빛에서 숙고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대재난이 있겠지만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13 : 10). 인자는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부활의 예수가 갈릴리로 오신 것처럼 그렇게 오실 것이다. 메시아의 물음에 대해 예수는 대제사장 앞에서 묵시적으로 대답했다 (14: 62).

마가의 신학적 틀에서 다니엘은 중요한 자리를 갖는다. 하나님의 나라(단 2:44; 7:14), 인자 (단 7:13), 우주적 재난 (단 10), 그리고 역사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경륜의 신비 (단 2:28)는 메시아 예수 안에서 시작 되었다 (마가 4: 11). 갈릴리 예수는 유대적 묵시문학의 지평에 서있다. 성전안의 가증한 것과 이스라엘의 마지막 구원(단 11: 21 -12 :13)은 마가의 소묵시록의 내용을 을 규정하고 부활은 이러한 세력에 대한 혁명으로 나타난다ㅡ부활은 마가에게 하나님의 세계혁명이다. 마가는 예수의 메시아를 묵시적으로 사고했다. 부활과 재림이 접합되며 재림은 지연이 아니라 부활의 예수안에서 동시대화가 된다.

체드 마이어즈가 말한 것 처럼 마가는 갈릴리 예수와 자신이 처한 공동체에서 로마제국의 식민지배를 향해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재림의 의미를 정치 사회적으로 동시대화한 신학자였다 (Meyers, Binding The Strong Man: A Political Reading of Mark's Story of Jesus).

마가는 예수 전통의 전승을 고고학적으로 분석하고 히브리 예언자적 적 지평에서 사유하면서 권력지배와 성전체제에 대항하여 내재적 비판을 최초로 묵시적으로 전개한 사회학적 신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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