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라이에르마허와 스피노자
젊은 시절 쉴라이에르마허는 스피노자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야코비가 세계의 지성적, 인격적 원인으로서 신개념을 통해 스피노자를 무신론적 범신론자로 비난했을때
오해라고 해명했다. 쉴라이에르마허는 칸트의 이성종교의 한계와 계몽주의 종교비판을 스피노자를 통해 극복하려고 했다.
쉴라이에르마허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시도한 본체계와 현상계의 이분화를 스피노자의 실체(신)와 자연의 틀에서 넘어서고, 감정과 이성의 연관성을 자신의 종교론에 통섭했다. 쉴라이에르마허의 절대의존감정 또는 경건은 스피노자의 영향으로부터 오지만 스피노자의 합리주의는 거절했다.
독일에서 스피노자의 영향이 레싱울 통해 퍼져있었고 이른바 범신론/무신론 논쟁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쉴라에르마허는 스피노자가 이성을 강조할 때 라이프니츠(16 46-1716)의 단자론과 다르며 오히려 칸트의 이성철학에 가깝다고 보았다. 스피노자의 신(능산적 자연)은 인격적인 개념은 아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이다. 자연의 세계에 속한 양태나 존재자들은 무한한 신이 없이는 생각할 수가 없다.
비록 신은 수 많은 속성들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에게는 마음(사유)과 연장된 사물로만 알려진다. 인간의 자연의 일부라면, 읻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특권화된 인간의 지위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자연안에서 자연법칙을 통해 항상 활동한다(지속적 창조).
스피노자의 자연체계에서 전체와 부분(상호관계)의 유기적 관련성은 생명의 지속적 창조를 담고있고, 복잡성과 다원성에 대한 인식론적 통찰이있다. 코나투스이론은 생명과 힘을 향한 의지 또는 욕망이며 이것은 니체적인 영원반복이 아니라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통해 상호간의 영향을 통해 생명의 새로운 창조와 차이, 그리고 다원성을 보여준다.이것은 오늘날 종교적 자연주의 (창발성) 또는 현대의 복잡계의 과학에 근접한다.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는 무신론이나 범신론과는 다르며 오히려 하나님의 활동과 능력에 대한 유기체적 -생태학적 견해를 보인다. 인간은 자연의 무한한 창조적 힘에 의해 이끌린다. 자연의 체계에서 삶에의 의지와 힘은 더불어 확장이 되며 인간은 이성과 도덕에 의해 안내되며 정치적 윤리의 중요성(시민국가와 민주주의 그리고 종교관용)을 드러낸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인식론은 사회와 정치를 코나투스와 힘의 증강을 기초로 재자연화하려고 하며, 이러한 틀에서 인간존재는 사유와 몸의 상호관계에서 생태학적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여전히 관계적 존재로서 인간을 역사적 존재로 파악하며 자연과 역사를 대립시키지 않는다 (Sharp, Spinoza and the Politics of Re-
naturalization, 3, 8).
칸트의 본체계가 현상계의 원인이라면, 이것은 스피노자의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의 개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칸트의 이분화를 코나투스(삶에의 의지와 욕망)를 통해 넘어선다. 모든 존재자들은 관계안에 즉 부분은 전체안에 있는 유기적 존재를 의미한다. 자유는 욕망이나 감정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관계론적 유기체는 쉴라에르마허에게 중요하다. 의존감정은 관계안에 존재한다. 이러한 부분과 전체의 관계는 쉴라이에르마허의 해석학에서도 중요하다. 텍스트 이해는 해석학적 순환으로부터 온다. 스피노자는 성서해석에서 히브리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문헌학자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 <히브리 문법>). 히브리언어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는 유대인 성서해석의 전통에서 비평학의 길을 열었다. 마찬가지로 쉴라이에르마허의 해석학과 언어이해는 성서비평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스피노자가 본 유대인 예수
스피노자의 성서해석에서 자연의 왕국은 하나님의 역사적 활동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에서 스피노자는 사랑과 평화 온유를 강조하면서 왜 카톨릭과 개신교간의 전쟁이나 유대인이나 이슬람에대해 박해를 폭로한다. 기독교는 편견과 무지 그리고 비관용의 늪에 빠졌다.
스피노자의 자연의 빛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이성을 말하며, 성서에 대한 역사 비평적 차원을 열어준다. 그러나 이성은 인간으로 부터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온다. 이성과 신앙은 대립될 필요가없다. 이성은 하나님에대한 직관적 지식을 통해 히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인도한다.
출애굽과 신명기에서 신명기는 다르게 기록된다. 토라에는 차이와 다름 또는 불알치가 나타난다. 이미 토라는 인간의 이성을 통해 매개되었다. 스피노자는 성서의 권위를 해체하기보다는 토라의 의미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려고한다. 더우기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계시한 것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이 사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를 통해 구원의 길을 위해 계시하듯이, 또한 하나님은 하늘의 음성을 통해 모세에게도 계시하신다.
하나님의 영은 예언자들에게 임했고 하나님은 그분의 영을 인간에게 채워주시며,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언어와 이미지를 통해 이해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만들어졌고 자연의 힘은 하나님의 권능이다. 인간의 이성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데 사용된다. 스피노자가 저항하는 것은 참된 지식과 삶을 결단버리는 미신과 종교적 맹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대한 증오감에 있다.
스피노자는 올덴버그와의 서신교환에서 하나님과 자연에 대한 혼동스러움을 해명한다. 하나님은 내재적이지만 모든 것들의 원인에 대한 책임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아레오바고 법정에서 행한 바울에게 동의한다.
스피노자는 예수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과 매장을 역사적으로 이해하고 부활은 은유적으로(유대적인 의미에서 알레고리칼하게) 수용했다 (A Spinoza Reader, 15).
스피노자가 예수를 유대적인 삶의 자리에서 본 것은 정당하다. 스피노자와 더불어 나는 복음서의 역사적 예수를 다룰 때, 개별 복음서의 기자의 삶의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유대인이었던 나사렛 예수의 역사 사회적 삶의 자리에 주목한다. 스피노자의 해석원리ㅡ성서는 성서로부터 해석한다ㅡ는 이성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은유적으로 이해한다.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의 성서해석은 편집비평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 그의 한계는 편집사 비평에서 말해지지 않는 것을 고고학적으로 해명하면서 보충될 수가 있다. 이것은 공공신학이 취하는 사실주의 성서해석을 말한다. 성서의 기본주제를 통해 내재적 비판을 해석의 원리로 설정하고, 이러한 접근은 외부로부터 성서를 비판하거나 왜곡시키는 외삽법을 거절한다.
예수운동의 상황
예수 당시 로마에 저항하는 분위기는 혁명적인 성격을 띠지는 않았다. 물론 주후 6세기 로마가 유대지역을 지배하고 세금을 걷기 위해 인구조사를 실시했을 때, 갈릴리 출신 유다와 바리새파 사독은 세금 저항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젤롯당으로 불려지기도 하는 데, 요셉푸스에 의하면, 이 운동은 사두개파, 바리새파 그리고 에세네파와 더불어 제4의 철학에 속한다.
나사렛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는 젤롯당 출신 시몬이 있었다(눅 6:15). 젤롯당을 단순 무식한 폭력주의자로 보기는 어렵다. 이들은 당시 바리새파 강경파들--힐렐보다 샤먀이의 가르침을 추종하는--과 연대하고 로마를 향해 전면적인 저항 운동을 했다.
바울 역시 자신이 바리새파에서 특심했던 자 (젤롯)로 소개한 것을 보면 의미심장하다. 바울은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태어났지만 예루살렘에서 자랐다.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조상의 율법의 엄격한 방식에 따라 교육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께 열성적인 (젤롯) 사람이었다 (행 22:3).
그러나 바울은 갈릴리 출신 유다와 바리새파 사독에 의해 시도된 젤롯당과는 상관이 없다. 회심 후 바울의 율법이해는 거의 힐렐 전통에 서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 산헤드린 회원인 가말리엘은 예수운동에 관대할 것을 요청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가말리엘은 바울의 선생이지만 예수운동에 신중했고 바울과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가말리엘은 힐렐의 증손자이며 율법에 대해 관대한 해석을 하는 전통에 서 있었다.
마태복음의 랍비 예수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의 메시지가 세례요한과 다른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고 말한다. 불트만의 양식사 비평은 나사렛 예수가 서 있던 역사 사회적 자리와 당대 다양한 유대교 분파운동을 분석하지 못한다.
베드로와 바울의 영향권에 있던 마가복음과는 달리, 마태복음은 하나님의 긍휼을 강조한다. 예수는 갈릴리 활동에서 세례요한처럼 낙타털 옷을 입거나 허리에 가죽 띠를 매지도 않았다.
오히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거나 혈루증 환자를 치유할 때 예수는 탈릿 (기도 숄, 마태 9: 20)을 걸치고 있었다. 여기에 옷술 (타셀-치치트, 민 15: 38, 신 22:12)이 달려 있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입은 겉옷 자락 네 귀퉁이에 술을 달아야 합니다." (신 22: 12)
베드로는 예수의 용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마태 18: 21-35). 마태에게서 예수의 민중은 인격적으로 회심한 자들이었지, 집단 선동의 무리인 오클로스와 동일시 하지 않는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마태 25: 45)은 엘라키스톤인데 개별적인 인격이나 하찮은 것 (마태 5:19, 누가 12: 26, 16:10) 을 의미하지 집단/무리/민중 (오클로스)과는 다르다.
누가 역시 마태와 마찬가지로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의 옷술을 만졌다고 보도한다 (8: 44). 그러나 마가는 이것을 옷술로 구체화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5: 27). 예수 당시 바리새파들은 옷술을 크게 늘어뜨렸다 (마태 23:5). 그러나 마가는 예봇으로 표현하지 옷술의 중요성을 모른다 (마가 12: 38). 누가는 마가복음을 쫒아간다 (누가 20: 46).
그러나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바리사파와 논쟁하지만 여전히 쉐마 이스라엘을 준수하고 율법의 전통에 서 있는 랍비예수를 부각 시킨다. 예수는 유대교 전통 안에서 에세네파와 바리새파와 경쟁 하면서 갱신운동을 주도했고, 하나님 나라의 용서의 복음을 가르쳤다. 예수는 몸의 부활을 믿지 않은 에세네파와는 전혀 다르며, 오클로스는 옷술을 단 옷을 입지 않았다. 그것은 바리새파의 전유물이었다.
예수는 그의 겉옷에 술을 달았고 게네사레 병자들은 예수의 옷술에 손을 대개 해달라고 간청했다 (마태 14: 36).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든 이스라엘에게 옷술을 만들고 (히브리어: 치치트) 하나님이 주신 계명 (613 미츠보)을 기억하라고 명령했다 (민 15: 37-40).
요한복음의 예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요 1:46)-- "갈릴리에서 그리스도가 날 수 있을 까?" (7: 41). 나사렛은 구약성서나 탈무드 또는 미드라쉬에서 언급되지 않는 지역이다. 세례요한의 예수에 대한 증언--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요 1:29)--은 나사렛 예수와 관계된다. 아론 지파에서 나오는 양은 유다 지파에서 나오는 사자와 같다.
이것은 초대 교회 공동체 이전 문서에 속한다 (<열두 족장들의 유훈>에 나오는 하나님의 어린 양). 에세네파는 구약의 제사문서에 관련되어있다. "구원은 유대 사람들에게서 난다. " (4:22) 요한복음은 여전히 유대적인 틀에서 움직인다. 예수는 나다나엘을 참 이스라엘로 불렀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는 랍비로 오신다.
그는 아브라함 이전에 있었고 모세와 예언자들이 그를 증언한다. 랍비 예수는 종말론적 메시야이며, 그의 옷의 치치트는 그의 거룩함의 징표이며 동시에 차별을 넘어서서 민중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의 표시이다.
스피노자의 예수
이런 점에서 <신학정치론>에서 스피노자가 성서전체가 히브리적인 표현 방식으로 씌여졌다는 말은 옳다. 스피노자는 산상수훈을 해석할 때, 예수는 모세와는 달리 하나님의 영원하신 진리를 율법화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를 최고의 선으로 해석하고 명령했다 (마태 6:33).
예수는 정의가 실종 되버린 당대 사회의 위기를 직면하고 억압받던 민중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것이다. 예수는 이미 다가 올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고 있었다. 이 점에서 스피노자는 예수를 예레미아의 애가(3:25 -30)에 견주기도 한다 (A Spinoza Reader, 46).
마태복음(5:4)에서 예수가 애통하는 자가 복이있고 위로를 받을거라는 표현에서 스피노자는 묻는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애통해야하는 지 모른다. 그러나 이어지는 문장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표현(6:33)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애통임을 알게된다. 예수의 산상수훈은 모세의 토라를 해체하지 않는다. 히브리성서와 신약성서를 순환적으로 읽는 스피노자의 해석방법은 오늘날 기독교와 유대교의 대화에서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갖을 수 있다.
예수는 묵시적 메시아
예수의 묵시적 종말론은 복음서에서 여전히 랍비 유대교적이다. 예수는 바리새파나 에세네파와는 달리 이스라엘 사회에서 밀려나간 땅의 사람들 (암 하 아레츠), 다시 말해 미츠보로 부터 단죄된 사람들(Massa perditionis)을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껴 않는다.
메시야 예수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계시하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 (누가 2:32)으로 오신다. 예수는 토라의 진정한 의미와 하나님의 인격성 (아바 아버지) 그리고 용서와 회개의 중요성을 구체화 시킨 종말론적 랍비 메시야였다. 이 메시야 예수가 다메섹에서 바울에게 왔고, 16세기 파문당한 유대인 스피노자에게 왔고, 여전히 오늘 교회 공동체와 유대교 안에서 살아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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