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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신학의 지평

빌리 막센: 갈릴리 예수 복음(21)

by 파레시아 2023. 2. 6.

물살을 거슬러가는 방법


Willi Marxsen

나는 성서를 해석할 때 역사적인 물살을 거슬로 올라가는 고고학적 방법을 취한다. 예수의 언어는 갈릴리 아람어였다. 갈릴리는 다 인종 문화 지역이었고, 종교적으로 예루살렘의 성전과 율법을 준수했지만 그리스 문화의 영향권에 있었다.

나사렛 예수의 정체성에 접근하는 방식은 일차적으로 그의 비유에 주목한다. 복음서의 비유는 나사렛 예수의 본래적 자리를 해명해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고고학적 접근은 비유와 더불어 복음서의 구약 인용안에 담겨져있는 아람어 성서의 차원을 부각시킨다.

구약적 인용방식은 성서 텍스트틀 초대교회의 문학적 작품으로 보는 환원주의적 역사비평이나 또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마가 오클로스 실존주의 심리학이나 반유대주의에 저항한다. 구악의 인용의 프레임에서 메시야의 시간의 빛에서 진리내용이 새롭게 구성된다. 나사렛 예수와 민중의 연관성을 복원하기위해 복음서에서 구약 텍스트 인용은 비판적으로 검토되고 구약의 본래적 내용이 공관복음에서 어떻게 의미지평이 확대되는 지에 주목한다.

이 지점에서 공공신학은 역사적 예수를 다루는 논쟁에서 말해지지 않는 것 (un-said)을 비유에서 찾고, Q자료와 함께 4복음서의 비유에 대한 비교 연구를 시도한다. 비유와 묵시문학적 차원이 나사렛 예수의 정체성을 여는 열쇠가 된다.

빌리 막센의 마가복음

빌리 막센은 마가복음에 대한 편집사적 연구를 통해 60년대 기념비적 연구를 남겼다. 그의 핵심주장은 마가복음은 역사적 예수에 대해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이며 갈릴리 예수의 본래적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다는 데 있다. 마가복음은 이전의 수난전승과 십자가에 대한 자료를 기초로 제자직을 강조한다. 브레데에 의하면, 마가의 "메시야 비밀"은 예수의 부활 이전까지는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빌리 막센은 마가복음은 처음부터 예수를 매시아로 이해하고 케리그마적 성격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케리그마의 빛에서 부활 이후의 삶의 자리에서 십자가 신학과 메시야 비밀은 수용될 수 있다  (Marxen,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137).  

 

막센은 마틴 디벨리우스와 루돌프 불트만이 시작한 양식사비판을 수용하고 편집사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 놓았다. 디밸리우스가 마가 기자를 케리그마 역사에 대한 전승사 자료들에 대한 역사적 차원을 강조한 보수적인 편집인으로 간주했다면 불트만은 마가를 캐리그마 복음을 강조한 신학자로 보았다. 막센은 불트만을 추종하면서 마가복음에 대한 편집사 비평연구를 전개했다. 마가복음이 편집되고 기록된 삶의 자리가 사회학적으로 고려된다 (Marxen, Mark the Evangelist, 24-29).   

 

복음의 장르와 성격은 마가의 독특한 신학의 산물로 볼 수가 있다. 예수는 복음의 내용이며 복음안에 임재하며, 복음은 예수를 재현한다. 케리그마는 예수를 재현하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해석을 빌리 막센의 공헌으로 본다. 복음 선포를 통해 예수는 현존한다. 마지막 장 (16:1-8)에서 부활의 예수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여전히 빈무덤이 보도 된다.  마가는 그의 내러티브에서 역사적 예수의 삶의 관점에서 부활을 접근한다. 부활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복음이 부활을 증거한다. 이것은 마가의 내러티브의 독특성에 속한다. 그의 캐리그마 신학은 부활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를 기초로 한 복음/케리리마 즉 밑으로부터의 캐리그마의 성격을 갖는다.

 

갈릴리는 지리적이거나 역사적인 성격보다는 부활의 그리스도의 임박한 파루시아의 장소로서 신학적 중요성을 갖는다 (ibid., 92). 그러나 막센은 예수의 활동지로서 갈릴리를 지나치게 강조한다. 마가는 편집사적으로 즉 신학적 의도를 가지고 모든 지명을 갈릴리로 초점을 맞춘다. 이른바 갈릴리 예수 테제가 등장한다. 심지어 부활의 예수는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간다. 이것은 한국의 민중신학에 그대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모든 교회들은 갈릴리로 모여야한다!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139). 

 

갈릴리를 예수의 삶의 자리로 또한 그의 부활의 비전과 명령으로 파악하는 것은 바울처럼 부활의 그리스도의 현현가는 다르다.  오히려 마가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주님의 약속은 미래의 사건 즉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의 장소를 지적한다. 마가복음은 부활과 파루시아의 사이에 서 있다 (ibid., 142)..

 

그러나 마가가 유재전쟁 기간중 (64-70) 갈릴리나 그 근처에서 갈릴리 예수 복음을 기록했다는 막센의 주장은 지지받기가 어렵다. 마가복음에서 오클로스는 항상 예수와 함께 있으며 오클로스 예수가 중심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오늘날 성서학계에서 빌리 막센의 편집사 신학은 마가 자신보다는 빌리 막센의 상상력이 더 크다고 비판된다.

나사렛 예수, 비유의 언어와 하나님의 나라와 토라 그리고 민중은 서로 엮어진다. 그러나 예수는 오클로스에게 토라를 배우라고 했지만 (마태 23: 1-3), 동시에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선동한 무리들로 나타난다 (마가 15:1; 마태 27:15). 빌리 막센이 주장하는 것처럼 오클로스는 마가복음의 전용이 아니라, 사복음서에 걸쳐 나타나며, 오히려 마태복음은 랍비 예수와 오클로스의 관련성을 부각한다.

 

오클로스는 문헌학적으로 볼 때 고대 아테네 도시국가를 타락시키고 소크라테스를 선동재판으로 처형하고, 결국 패망으로 가게한 민중 선동 집단 정치 (ocholcracy)로 비판된다 (역사학자 폴리비우스는 기원전 2세기에 그의 <역사들, 6.4.6>에서 오클로 크리시란 말을 사용했다.) 고대 그리스 정치사상가들은 오클로스 지배를 독재정부로 비판했다. 아리스트톨레스에게서 오클로스 지배는 법의 지배를 무시하는데서 시작한다. 탈무드에서도 오클로스가 사용되지만 난동을 부리는 폭력적 군중에서부터 나온다.

 

마가가 예수를 갈릴리 민중 오클로스 지배와 연결시켰다는 상상력은 근거가 없다. 오히려 마가 복음의 초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삶에 대한 사회 전기 즉 예수의 삶의 조건과 흐름을 표현한다.  고대의 그리스 문화의 영향권에서 개인에 대한 전기는 유동적인 장르이며, 삶의 역사와 가르침 그리고 수사적 표현에  깊은 관계를 갖는다 (Ben Witherington III, The Gospel of Mark: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막센의 한계는 마가복음에서 언급되는 비유의 배후에 아람어를 사용한 나사렛 예수가 서 있음을 전혀 보지 못했다. 마가복음은 수난전승에 충분한 소개를 담고 있는 문학적 장르에 속하며, 부활의 메시야를 경험한 적이 없다 (Marxen,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136 -7). 그러나 막센이 마가를 로마의 베드로나 바울과 상관없이 갈릴리 근처에서 복음서를 썼고, 갈릴리 지역에 익숙 했다고 하는 것은 난센스에 속한다.

마가는 로마군의 방식을 사용하고 (5:9, 15), 시간을 로마 식으로 표현했다 (6: 48; 13: 35). 게다가 유대인의 관습은 설명을 하고 (7:3 -4; 10:12), 아람어의 표현은 설명을 해놓았다 (5: 41; 7:34; 14: 36; 15:34).
 심지어 마가는 갈릴리 예수가 마태복음과는 달리 이방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7:24 -30).

 

게다가 마가가 말하는 팔레스티나 지명이 정확하지가 않다 (5:1; 6:45, 53; 7:31). "예수께서 다시 두로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서. 데가볼리 지역 한 가운데를 지나, 갈릴리 바다에 오셨다." (마가 7:31) 갈릴리 지명을 아는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두로에서 위 지역인 시돈을 거쳐 바로 갈릴리로 오면 될 것을 지역적으로 상관도 없는 데가볼리로 올 이유가 없다. 마가는 갈릴리 지명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막센의 기본 테제-"부활의 메시아는 갈릴리로 갔다"-는 모든 교회가 갈릴리로 모이라는 선포로 파악하지만, 갈릴리에서 무엇을 했는 지는 마태복음에서 주어진다. 막센은 나사렛 예수의 역사 사회학적 자리를 전혀 검토하지 못했고, 갈릴리-예루살렘이라는 지리적인 이항의 대립에 과몰입을 했다.

 

마가기자는 70인역을 잘 알고 있고 이것을 인용하며, 특히 유대적인 종말론과 묵시문학을 알고있다. 그는 그리스어로 복음서를 기록할 정도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마가의 아람어 지식은 마틴 행겔이 언급한 것처럼 매우 정확하다. 그가 아람어 표현을 번역한 것을 보면 독자는 아람어를 모르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임을 추측할 수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마가기자는 당대 로마 제국의 전역에 걸처 군사적이며 경재적인 또는 법적 용어인 라틴어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고 라틴어에 의한 그리스적 표현을 설명한다 (12:42, 15:46). 마가는 갈릴리가 아니라 로마나 아니면 로마 식민지역의 믿음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기록했다.

 

이런 점에서 이래니우스는 베드로와 바울이 헤어진 후,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관 역할을 했고, 베드로 순교 후 이탈리아의 한 지역에서 마가복음을 기록했다고 말한다. 얼랙산드리아의 클레멘트에 의하면, 마가는 배드로 생전에 로마에 있었고 그곳에서 마가복음을 기록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 Eusebius, Hist. eccl. 6.14; cf. 2.15).

 

마가복음과 세리 레위

나는 왜 예수가 그토록 바리새파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바리새파들이 그런 예수에게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접근했는 지를 본다. 예수는 경건한 랍비 메시야였다.마 가복음에서 예수와 공개적인 죄인과 세리들과의 식탁 공동체는 바리새파의 코셔규정에서 금한다. 갈릴리 어부들이 세리와 음식을 나눈다고 해서 바리새파가 관심할 바가 아니다. 미슈나에서 바리새파들이 세리와 음식을 나누는 것은 금기에 속한다 (m. Toharot, 7:6).

통행 세관원 레위는 알패오의 아들이며 마가복음 (2:14)에만 언급되며, 열두제자 명단에 들어가지 않는다 (3:16-19)--물론 이 명단에 마태는 포함된다. 마태 역시 통행 세관원이었다 (마태 9:9). 통행 세관원들은 누가복음의 세리장 삭개 (19:2)와 같은 사람에 의해 고용된 사람들이었다.가버나움은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였고, 헤롯 안티파스와 헤롯 필립의 통치지역의 경계에 있었다. 상인들로 붐볐고 통행세로 인한 수익이 컸다. 레위는 가버나움의 상업적 성격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부유했을 것이다. 바리새파들은 세리들을 병자들처럼 정결예전을 어기고 하나님으로 부터 용서를 받을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랍비 예수는 세리 레위를 부르고, 많은 세리들이 예수를 따르고 이들과 음식을 나누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는 그의 집에서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을 초대하고 한 자리에 있었다 (마가 2:15; 미태 9: 10). 예수는 가버나움에 집이 있었다. 예수는 세리와 죄인들을 자신의 집에서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나누었다. 그러나 마태기자는 Q 자료 인용에서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한다 (8: 20).  마태기자는 Q자료를 인용하고 동시에 마가의 자료를 추종한다. 마태가 예수의 제자 였다면, 마가의 자료를 추종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세리가 자기 집에서 예수를 위해 큰 잔치를 베풀 었다고 말한다 (5: 29). 그는 예수 운동에 재정적 후원을 하는 여성들을 언급한다. 예수의 복음에서 하나님의 용서는 싸구려가 아니라 사회의 주변부 인생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되 찾아주는 것이다. 코셔규정을 둘러싼 가장 첨예한 논쟁은 안디옥 공동체에서 베드로와 바울의 격돌로 이어진다. 

 
나는 마가의 레위 이야기에서 마가가 예루살렘 공동체와 바울의 이방인 기독교 공동체의 갈등을 알고 있었다고 본다. 베드로는 안디옥 공동체에서 우위권을 가지고 있었다. 안디옥은 로마문화의 중심지였고, 구레네 시몬의 언급 (마가 15:21)은 마가가 안디옥 교회와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설령 마가가 로마의 베드로의 영향권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입장은 오히려 베드로의 권위에 불리하다부활의 예수는 베드로에게 현현하지 않았고 마가는 부활의 예수의 목격자도 아니다. 그의 묵시적 보도는 마태나 다다케가 담고있는 가장 오랜 묵시전승이 없다 (마태 24: 10-12).

마가의 삶의 자리는 예수의 수난전승에 의해 움직이며, 박해상황을 반영하고, 성전파괴 직전 로마의 박해와 재난들을 담고있다. 크로싼의 주장이 맞다면, 마가복음은 50년데 십가가 복음 (배드로 복음)을 기초로 하고, 수난전승에 초점을 맞추고 예수의 수난과 처형에 오콜로스도 같이 가담했음을 말한다. 로마나 아니면 로마 식민지 지역의 사람들에게 오클로스/에수의 조합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오히려 예수의 신분은 당대 랍비들이 입는 기도 숄인 츠츠를 입고 있었다. 에수는 바리새파로 부터 밀려난 주변부 인물이지만 토라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마가는 순교한 베드로와 바울의 뒤를 이어가는 지도자였고, 전승에는 애굽의 알렉산드리아 공동체에 관련된다. 사도행전을 근거로 우리는 마가는 바울과 한 동안 동역의 관계에 있었지만 (Acts 12:12, 25; 13:5, 13; 15:36-41), 이후 소원해졌다. 그러나 빌레몬 1장 24절과 골로세서 4장 10절에서 바울과 마가의 화해가 암시된다. 마가에 대한 바울의 신학적 영향을 무시할 이유가 없다. 율법에 대한 비판에서 마가는 배드로보다 바울에 더 가깝다. 복음언어와 더불어 예수설교를 복음을 일치시는 것은 (1.14-15) 바울에게서도 마찬가지다 (1 Corinthians 1.18). 마가복음의 에수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고 모든 음식들이 깨끗하다고 선언했다 (7.19). 움식과 정결법은 유대인의 삶의 방식에서 본질적인 것이다. 갈릴리 예수와 오클로스의 과몰입으로 인해 바울이 안디옥 교회를 통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지식을 제거하는 것은 전형적인 독자의 투사론적인 외사법에 불과하다. 

 

묵시적 상황에서 이방인 구원은 코셔규정으로 인해 봉쇄가 되어서는 안된다. 마가가 통과세금 징수원 레위에 대한 보도는 그가 베드로 보다는 오히려 바울에게 가까이 서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마가가 베드로에게 현현한 부활의 예수ㅡ가장 오래된 예루살렘 전승 ㅡ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마가의 독특한 신학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용서는 차별을 넘어 메시야 예수안에서 인정과 포용으로 간다. 구원받은 강도는 누가의 특수자료에 속한다. 하물며 이방인들이야!ㅡ누가의 탁월한 신학적 의도성이 마가의 레위 이야기에 담겨져있다.이러한 입장은 막센의 주장ㅡ 예수 파루시아가 갈릴로 오고 유대 기독교 공동체를 갈릴리로 피난 시키기 위해 마가가 갈릴리 복음을 편집했다ㅡ은 수용되기 어렵다(Marxen, Mark the Evangelist).

마가의 사회적 담론ㅡ성서와 신문의 동시대화

Ched Myers

체드 마이어즈(Ched Myers)는 마가복음에 대한 영향력 있는 정치 사회적 해석에서, 전승 자료와 로마시대의 정치상황을 유기적으로 묶으면서 마가의 사회적 담론에 주목한다. 마이어즈는 칼 바르트가 로마서 주석 2판에서 성서와 신문과의 유기적 연관성을 마가의 네러티브 구조에서 본다.

편집사 연구의 한계는 마가 자신이 서 있던 역사 사회적 콘텍스트와 그가 이해한 나사렛 예수 그리고 그의 사회적 담론을 통해 극복된다. 마가를 통해 당대 로마제국의 사회 정치적 자리를 읽어내고, 그의 사회적 담론에 담긴 물질적 이해와 권력관계 그리고 군사 식민지 관료제의 그물망을 통해 마가는 우리에게 동시대인으로 나타난다.

마가의 기적보도(1:40)는 유대교의 정결법전과 무관하게 이해될 수 없다. 소작인과 출타 중인 주인에 대한 비유(12:1)는 당대 팔레스티나 농업경제를 모르고 진의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가난한 과부의 탄원에 대한 예수의 담론 (22:38)은 2차 예루살렘 성전의 정치 경제학을 도외시한채 랄 수가 없다 (Meyers, Binding the Strong Man, 4-6).

 

예수와 사탄과의 묵시적인 투쟁(3:23-27)은 당대 지배세력인 로마제국과 유대인들을 지향한다. 황제는 신이 아니다. 성전체제는 착취경제 시스템이며, 율법은 인간을 억압하기위해서가 아니라 인자 예수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예수의 이데올로로기 전쟁은 율법제도를 향해 선언되며 사탄(1:24)과 강한 자는 이러한 성전과 율법체제를 대변한다. (ibid., 166-67).  

 

마가에 대한 사회 정치적 독해는 단순히 오늘 우리의 자리가 아니라 마가 자신이 서 있던 사회사적인 상황에 초점에 미추어지고, 예수가 활동한 로마 지배의 팔레스티나와 마가복음의 자료의 근거가 되는 시리아가 비교된다. 시간과 장소가 다르지만 사회문화적 시스템안에서 파악될 될 수가 있다. 마가복음의 내러티브는 독자에게 의미론적 지평을 열어준다 (Waetjen, A Reordering of Power, 4-5).  

 

막센의 갈릴리 예수의 편집사 연구는 이제 마가의 삶의 자리에 대한 사회 정치적 해석을 통해 마가복음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깊어진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비유와 기적 그리고 사회적 담론을 해명하면서 새로운 지평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예수에 대한 묵시문학적 해석이며, 다양한 삶의 현실들에서 복음이 갖는 사회 비판적인 요소이다. 이것은 로마제국의 식민지를 비판하고 희생자 예수의 부활과 파루시아의 지평에서 메시아 정치를 전개하며 새로운 포스트콜로니얼 스펙트럼을 열어준다.

 

마가에게서 이항의 대립이나 인사이드/아웃사이드의 배제논리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 캐리그마와  부활 그리고 파루시아의 희망에서 새로운 시대의 변혁을 향한 갈망이 싹터 오른다. 이런 점에서 공공신학은 마가복음의 사회 담론적 해명을 통해 복음의 새로운 의미를 다양한 공론장에서 이중언어적으로 (bilingual) 재해석하고 여기에 상응하는 메시아 정치 실천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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