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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신학의 지평

막스 베버의 유대교: 폰 라트와 칼 바르트(26)

by 파레시아 2023. 2. 22.

베버의 유대교 연구
 

성서적 유대교에 대한 베버의 사회학적 연구는 구약성서에 대한 전승사와 편집비평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베버는 당대 팽배했던 반유대주의자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종교 다원주의자도 아니었다. 그의 사회학적 연구는 성서적 유대교의 문화 정치적 배경을 검토하고, 성서해석의 새로운 모델을 열어주었다.
 
베버는 유대인을 고대 팔레스티나 를 둘러싼 문명에서 주변부 백성으로 파악했다. 베버는 벨하우젠의 오경연구를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벨하우젠은 헤겔의 역사 진화론적인 모델을 기초로 사제문서 (P)를 성서적 유대교의 역사적 발전의 최종 단계로 보았다. 이어서 그는 랍비 유대교를 사제문서에 근거한 유대교의 화석화된 변질형태로 비판했다. 이것은 벨하우젠의 전형적인 반유대적 입장을 보여준다.
 
그러나 베버의 사회학적 연구는 해겔주의적 편견이나 반유대주의적 입장과는 달리,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사회계층 분석을 통해 히브리 성서의 전승과 편집을 추적했다. 그는 사제문서가 바벨론 유배 중에 기록되면서 이전의 JED 문서를 야훼이스트 관점에서 편집 했다고 보았다.

이것은 베버의 종교와 합리화 과정에 대한 분석에 맞물리고, 성서적 유대교에서 그는 세계의 주술화 과정과 합리적 태도 그리고 경제윤리를 분석했다. 특히 베버의  <고대 유대교>는 알브레히트 알트와 마틴 노트의 오경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미국학계에서는 윌리암 올브라이트와 죠지 멘덴홀에게  방법론적인 통찰을 주기도 했다.

 
베버의 방법론

베버의 방법론은 종교적 이념 내지 담론이 사회 안에서 어떤 신분의 물질적인 이해관계에서 선택적 친화력을 가지며, 경제적 윤리와 사회 경제제도를 구성하는 가에 있다.  마르크스와는 달리 (때론 긍정하면서) 베버는 경제적 활동과 시장을 독점하는 신분계층의 역할에 주목했다. 이것은 생산력보다는 생산관계나 사회적 관계의 총체에 주목한다. 
 
그런가하면 미셀 푸코에 앞서, 베버는 종교적 이념 내지 담론이 사회적 관계에서 합리화, 전문화 그리고 분화를 거치면서 어떻게 사회를 지배하는 가하는 권력의 문제에 주목했다. 그는 가부장제, 카리스마적 지배 그리고 법적 관료지배를 유형화 하면서 정치이론을 전개했다. 인간의 생명과 신체는 정치 권력화가 되며, 이런 점에서 베버의 지배 사회학은 그의 세계종교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방법론을 제공한다. 

베버의 유형론은 관념형이 아니라 경험적인 연구를 통해 사회학적으로 분류하는 적합형 즉 모델을 구축하는 데 있다. 이것을 통해 그는  종교와 사회,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 등에 걸쳐 나타나는 다차적인 영역들을 종교적 이념과 물질적인 이해관계의 틀을 통해 사회계층과 구조 그리고 신분/계급의 역할을 분석한다.

  
베버와 성서의 계약
 
베버는 구약성서의 계약개념에 주목하고 사회학적으로 이스라엘의 기원은 계약에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야훼 앞에서 지파동맹을 통해 수행되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내적 역사를 거치면서 반복되는 제의적 결의를 통해 이어졌다. 유다지파는 이러한 동맹에서 결성되었다. 신명기는 계약을 통해 야훼이스트의 율법으로 수용되며, 이러한 계약의 절차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에스라- 느헤미아 공동체에서 확립된다. 이스라엘의 기원과 정체성의 토대는 야훼의 계약에 근거한다.  
 
모세는 그의 장인 이드로로부터 야훼신앙을 배웠고 애굽에서 하비루를 구출해내면서 야훼의 구원의 활동으로 고백했다. 야훼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이 되었고, 이들은 전쟁하는 야훼의 백성으로 계약을 맺는다. 야훼의 주권은 인간이 조작할 수 있는 그런 신이 아니라 초월적이며 먼곳 세일에서부터 오는 신이다 (사 5:4).

이러한 베버의 입장은 벨하우젠이 모세의 역사성을 의심하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사사정도의 역할을 했다는 견해와는 전혀 다르다. 시내산의 계약과 예언자들의 체험을 통해  야훼의 주권성과 초월은 개념화되고 윤리적인 차원에서 발전된다. 이것은 유대인 철학자 레오 벡이 정의한 윤리적 유일신론에 가깝다.

 
베버가 이스라엘을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지파동맹으로 파악한다면, 여기에는 도시의 전쟁영주(기보림), 자유농민, 레위족속, 대장장이, 장인, 소규모의 가축 사육자  그리고 이방인 출신 게르가 포함된다. 이러한 다양한 계층과 계급들은 각각 다른 지역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추구하고, 이해관계를 보장하기위해  협상하면서 지파로 성립되는 데, 단지파의 경우가 그렇다 (사 18:1). 이들은 실로의 성소가 있었지만 우상을 섬겼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지파동맹은 고대 그리스 국가들의 동맹에서도 나타나며 중앙성소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다. 신전들의 연합에서 델피의 아폴로 신전은 매우 중요했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실로의 성소에서도 볼 수 있다. 주기적인 암피티오닉 제의들은 세겜의 갱신제와 기도 그리고 실로의 야훼의 명절에서도 나타난다 (삿 21: 19; 삼상 1:3) (Weber, Ancient Judaism, 90).

가축 사육자들과 농민들은 종종 목초지와 농작지로 인해 갈등하기도 했지만, 베두인의 급습에  공동의 대처를 했다. 
계약과 다양한 계층을 기초로 한 베버의  사회학적 이해는 고대 이스라엘의 사회 경제적 구조를 파악하고, 종교적인 이념인 야훼신앙은 여기서 선택적 친화력(전쟁과 정복)을 가지고 자리 잡는다. 야훼신앙은 이스라엘의 지파동맹의 결속을 강화해주고 와해를 막아주었다. 베버에게서 뒤르캠의 통찰, 즉 종교가 그룹의 연대감을  강화하는 도덕적 차원이 나타난다.  
 
이러한 베버의 입장은  베두인이나 반유목민들의 경제적 조건이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지파동맹을 결성하고 강화했다는 유뮬론적 접근을 거절한다 (ibid., 80). 오히려 지파동맹이 야훼신앙을 기초로 정치 사회 경제구조를 형성할 때, 하위계층은 자신들의 생존투쟁을 통해 보다 큰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직접적으로 정치적 조직이나 제도를  형성하지 못한다.

프로렐타리아트의 경제적 조건이 아니라, 종교적 이념과 신분계층의 이해관계가 엮어지면서 권력관계가 확립되며, 프로렐타이아트는 이러한 정치적 구성에서 생존투쟁을 위해 보다 큰 기회를 얻는다. 종교적 이념과 정치 경제의 조직은 전체 사회관계의 영역들에서 합리화되고 분화된다.  이러한 사회관계의 총체성은 경제주의로 환원될 수가 없다.   

 
게르하르트 폰 라트와 야훼 계약
 
베버와는 달리 폰 라트는 바르트의 말씀의 신학으로 부터 영향을 받고 계약의 문제를 신앙고백의 측면에서 발전시켰다. 정치 사회적 지파동맹에 앞서 고대 이스라엘의 신앙의 전승사를 검토해볼 때 살아계신 야훼의 구원활동과 토라가 우선권을 갖는다.  폰 라트의 육경연구에서 구원사가 중심으로 설정되며, 이러한 틀에서 모든 사건들과 정치적인 지파동맹은  단순한 역사적 보도가 아니라 야훼의 구원의 활동에 대한 공동의 고백으로 엮어진다. 
 
육경의 신학적 프레임 (족장시대 --애굽의 노예생활--출애굽--시내산 계시--광야여정--약속의 땅)에서  폰 라트는 역사적 의미를 하락 시킬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스라엘 지파들과 그룹들은 베두인과는 달리 팔레스티나의 문화적 환경에서 소규모의 가축을 치는 일과 농업에 종사했다 (창 26:12). 족장들의 삶에서 엘로힘이 나타나고, 야훼의 자기계시가 모세에게 드러난다(출 3: 6).  이스라엘의 삶에서 시내 산의 야훼계시는 항상 이들의 기억과 신앙고백에 살아있는 근원에 속한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의 시내산을 장인 이드로를 방문했을 떼 발견했다 (출 31). 이드로는 모세에게 야훼제의를 권했다 (출 18:12).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라는 고백은 세겜에서 기인하고 지파동맹에서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다 (Von Rad,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32-33).
그러나 야훼제의의 기원과 종교제도를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사시대에서 야훼제의가 수행되지만, 이후 마틴 노트가 이러한 사회학적 개념을 확대시켰다 (Noth, The History of Israel, 85-109). 야훼는 모세이전 족장사에서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이스라엘)에서 나타나며 (창 31: 53;  33: 20) 이미 아브람의 부르심과 계약에서 그리고 이삭의 번제사건에서 야훼로 언급된다 (창 12; 15; 22). 야훼의 인격성은 이스라엘 백성(하피루)과의 시내산 토라 계약에서 그리고 이후 세겜의 언약갱신제에서 거룩한 지파동맹(수 24)으로 확인된다. 

폰라드의 육경신학이 고대신조(신 26)와 세겜 언약갱신제(수24)에 기초되지만,  야훼의 시내산 계약은 이보다 더 이른 자료 층에 속하며 모세와 하피루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결속시켰다. 왕조이전 기본자료(G)는 J 와 E 의 배경이 되며, 신명기는 이후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그리고 열왕기를 포함하는 신명기학파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야훼신앙이 일차적으로 시내산 토라계약에서 시작되는 것은 중요하며, 이후 고대신조와 계약갱신 그리고 거룩한 지파동맹의 저변에 깔려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일치된다. 그러나 세겜의 언약갱신은 가난안 제의화된 실로의 야훼의 명절과는 좀 다르지만  (삿 21 :19), 여전히 엘리 제사장에 의해 관리되는 실로성소에서 기도가 드려진다 (삼상 1:3). 사무엘 전통에서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언약의 궤를 메고 야훼의 관여를 원했다 (삼상 14 :3; 23: 6).

베버와는 달리 폰 라트는 이러한 종교 정치적 지파동맹과 제도적인 제의에서 일차적으로 야훼의 인격성과 이스라엘의 사회질서에 주목한다. 야훼자체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나 제의적인 제도에 의해 객관화될 수 없으며, 고착되지도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드보라의 예언자적인 권리가 카리스마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사 4: 4).

 
신명기에서 야훼의 뜻은 설교의 대상이 되며 이스라엘 개인의 양심을 향한 야훼의 인격적인 부름으로 나타난다. 여러 민족들이 이스라엘의 삶에서 야훼에 대한 친근함과 직접적인 관계를 보게 될 것이다 (신 4:6 -8).

이스라엘을 향한 야훼의 직접적이며 인격적인 뜻과 친밀함은 예언자들의 선포에서 가장 급진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야훼의 율법의 뜻을 전달하는데서 예언자의 진정한 카리스마가 타락한 지도자들과 거짓 예언자들을 향한 회개의 촉구로 드러난다 (미가 3:9).

이러한 야훼의 인격성은 베버와 노트의 사회학적 접근을 보충해줄 수 있다. 
전승사적인 측면에서 폰 라트는 야훼이름의 계시가 모세에게 일어났고, 초기 전승자료에서 가장 강력하게 이전의 역사와의 단절을 본다 (출 6:2-3):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한 하나님 [엘 샤다이]으로 나타났으나, 그들에게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알리지 않았다."
 
이러한 야훼계시의 새로움은 족장의 역사와 관련되며, 야훼는 조상의 하나님과 동일시된다 (출 3:6). 이스라엘의 삶에서 야훼이름은 구원의 계시의 총괄이며, 이러한 신명을 호칭하거나 신학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이러한 신명은 엘로히스트 시편 (42-83)에서도 사용되지 않았으며, 특별한 경우에만 언급되었다.

폰 라트의 J 에 기초한 구원사의 신학은 신명기학파 신학(노트)과 함께 구약신학의 중심을 형성한다. 히브리서 성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활동과 토라를 네레티브(스토리)로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말을 한다. 그것은 신학적 개념이 아니라 사건의 구조안에서 (토라, 예언, 시편과 역사서) 에서 끊임없이 말을 하신다 (Westermann,  What does the Old Testament Say about God, 12). 구원과 용서의 은혜 안에서 믿음의 사람은 시편의 기도와 탄식 그리고 예언자적인 투쟁에서 보다 깊게 살아계신 야훼를 체험한다. 이것은 나사렛 예수의 복음에서 이어진다.

70인역에서 야훼의 이름은 주님 (퀴리오스)으로 번역되었고, 초대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에 관련지었다  예수 시대에서 야훼의 이름은 특별한 경우 성전제의에서 불려졌지만 회당의 예배에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Von Rad, ibid., 200). 

이러한 야웨의 계시의 빛에서 계약은 단순히 정치 사회적 지파동맹이전에, 아브라함의 계약과  모세의 시내산 계약에서 나타난다. 오직 야훼만이 활동적이며 인간은 수동적으로 머문다. 아브라함은  완전히 무의식 상태에 있었고 (창 15:12), 야훼가 주도권을 가졌다.  그리고 시내산의 야훼계약에서 (출 24: 9 -11) 야훼의 일방적인 보호가 나타나며, 이러한 계약을  완결 짓는 J 문서 (24: 3-8)는 이스라엘에게 토라를 지키는 책임감을 부여한다 (ibid., 145). 야훼는 단순히 전쟁신으로 볼 수 없고 이스라엘의 포괄적인 삶의 자리에서 사랑과 인격적 관계, 그리고 구원과 은혜로 나타난다.  

그러나 폰 라트와는 달리 시내산의 토라계약이 역사적으로 신명기의 고대신조에 앞선다.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신 26:5)은 야곱/이스라엘을 암시하지만 폰 라트처럼 이러한 고대 역사신조가 구원사의 토대를 이루기 보다는 계약사상 자체가  초기 이스라엘 역사전승의 핵심을 구성했다. 계약안에 기초된 야훼에 대한 경험이 이후 이스라엘의 토라준수와 역사의 의미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초월성(삶의 세계)는 토라와 더불어 역사안에서 이해되고 성취된다. (레벤슨, <시내산과 시온>, 59-60)



바르트: 계약과 화해

하버드 대학의 저명한 존 레벤슨 교수는 <시내산과 시온>에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창조기사가 아니라 역사적임을 강조한다 (ibid., 59).
이것은 시내산 전승이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근거가 되며 (출 19:3b-8), 계약의 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중요하게 표현된다.

이러한 접근은 바르트의 신학에서 결정적이다. 바르트에게서 계약은 창조의 내적 근거이며, 창조는 계약의 외적 근거가 된다. 하나님의 영원성은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일치 시키며 시간의 근원이 된다. 인간의 창조에서  은총의 계약은 사랑과 긍휼로 나타난다. 은총의 계약은 아브라함에게서 열방의 복으로 나타난다. 이스라엘과의 계약에서 하나님은 신랑으로 이스라엘은 신부 (아가서)로 그런가하면, 계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을 향한 영원한 계약을 약속하며 은혜와 사랑을 베푼다 (에스겔 16: 59) (Barth CD III/1: 317). 이런 점에서 폰 라트가 야훼의 계약이 일방적이라는 해석은 옳다.
 
하나님의 계약은 화해의 전제가 된다. 그리스도의 화해는 하나님의 계약을 성취한다. 히브리 용어 '베리트'는 상호의무를 갖는 법적제의적 요소를 담고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나의 백성으로 부를 때 이들를 거룩한 지파들의 동맹으로 보신다. 이것이 이스라엘 국가의 기초가된다. 이러한 거룩한 지파동맹은 세겜과 베델과 실로에서 보존된다. 그리고 다윗시대에 예루살렘으로 통합된다. 여기서 바르트는 마틴 노트의 지파동맹이론을 수용한다 (CD IV.1:22).

구약에서 계약은 은총의 계약이며 하나님의 주권과 결의에 의해 세워진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의 책임과 자유를 허락하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스스로 선택하신 주도권에 있다 (Ibid., 23). 구약에서 계약은 이미 창조와 화해에 걸쳐 포괄적인 스펙트럼을 갖는다.

베버의 한계는 이스라엘의 사회에 각인된 권력관계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며, 이러한 지배시스템을 어떻게 종교의 원류를 통해 내재적으로 비판할 것 인지 충분한 고려가 없다. 이미 시내산의 계약이나 토라에서 엄청난 야훼의 은혜와 사회정의 그리고 주변부들과 게르에 대한 관심, 전쟁금지 등은 이후 정치 사회적 차원의 지파동맹에서 나타나는 오류와 타락을 비판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비판적 반성: 폰 라트와 바르트
 
베버의 구약성서의 유대교를 둘러싼 해석과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육경신학을 기초로 한 야훼이스트 신학과 마틴 노트의 신명기 학파의 신학을 통전하는 것이다. 여기서 폰 라드와는 달리 시내산 계약이 신명기의 고대신조와 여호수아의 세겜의 계약 갱신제의에 앞선다.

시내산 계약은 내재적 비판의 원류이며 이스라엘의 역사의 과정에서 예례미아의 새언약으로 나타나지만 구약의 편집과정의 마지막에 여전히 서 있다. 신명기의 법전코드와 계약형식(12-26장)은 예례미아(7장과 11장)와 스가랴 (8:8)에서 볼 수있다. 시내산 계약은 각각의 다른 삶의 자리에서 수용되고 의미의 지평이 확대된다 (Rendtorff,
The Covenant Formula).

사실, 시내산 계약의 빛에서 베버가 강조하는 암피티오닉 지파 동맹을 무시할 필요는 없다. 비교 사회학적으로 볼 때 델피의 아폴로 신전과 정치동맹은 고대 근동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동맹계약에서 혜택과 처벌과 저주를 담고있다. 이것은 그림심 산과 에발산에서 복과 저주에 대한 선언과 비슷하다 (신 27- 28) . 이러한 동맹제의는 미스바 모임에서도 볼 수있다 (삿 20-21).

고대 헬라의 동맹이나 이스라엘에서 거룩한 성전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은 진멸의 저주를 당한다 (수 22: 19-20; 삿 21:5-12). 이러한 문화비교 사회학은 이스라엘 지파동맹 (마틴 노트)을 에게해 문화와 관련지어 보게하고, 델피의 동맹이 고대근동의 문화적 교류와 영향에서 오는 것임을 밝혀준다 (Weinfeld, The Promise of the Land, 1993). 

보론: 종교 보편사와 문화상징체계

나는
종교의 보편사의 틀 (트뢸취)에서 이스라엘이 야훼신앙을 역사의 과정에서 토라와 네러티브 그리고 제의 수행을 통해 어떻게 매개하고 변형했는 지에 주목한다 (인식론적 실천).

이러한 보편과 구체성의 관계가 탈락될 때  지나친 야훼신앙의 특수주의는 배타주의와 식민주의로 가며, 야훼신앙이 없는 보편사 연구는 종교와 문화의 일반화나 상대주의로 갈 수가 있다. 
종교와 문화적 제의는 단순히 신앙고백이나 교리화를 넘어서서 하나님과 만나는 체험적, 상징적, 미학적 경험을 담는다.

드뤼캠의 종교사회학은 베버의 제의동맹에 보다 큰 스펙트럼을 제공한다. 종교적 상징은 사회를 도덕적 유대감과 일치로 묶어준다. 이것은 초월적 존재와의 소통과 영적관계에 관련되며, 개인의 의식에 미치는 종교적 제의의 사회적 기능을 포함한다.

종교이념과 신앙고백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사회안에서 현상하는 종교의 집단적 표출의식이며, 제의는 참가자에게 소속감과 안전, 힘과 행복을 제공한다. 제의적인 행동에서 성과 속은 구분되며, 사회는 신과 동일시 되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다양한 영역들에서 초월적인 태도와 가치를 제공한다. 이것은 인간존재의 일반구조를 지적하며 후설적인 의미에서 생활세계에 가깝다한다.

이러한 종교적 제의는 유대교의 삶에서 결정적이다. 사회는 종교의 집단적 표상을 통해 개인의 이성과 삶에 영향을 미치며, 이것은 신화론적 사고에 관련된 마술과는 다르다. 마술은 거룩한 것을 세속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며 자체상 믿음의 공동체를 갖지 않는다 (Durkheim, The Elementary Forms of Religious Life, 42).

드뤼캠이 말하는 종교와 사회의 동일화 테제는 조야한 인식론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나 예언자들을 통해 역사안에서 행하는 구원의 활동을 지적한다. 이것은 제의와 상징(언약궤)으로 표현된다.

제의적 수행과 거룩한 상징은 실재에 참가한다. 문화적 시스템으로서 종교의 상징물은 사람들의 삶의 에토스를 통합하며, 역사적으로 전승된 의미패턴을 상징형식 안에서 개념화한다. 이것을 통해 사람들은 소통하며 삶에대한 지식과 태도를 발전시킨다. 이것은 존재의 일반구조를 구성하며 인간의 감정이나 기분 또는 동기들에 사실적인 아우라를 입힌다 (Geertz,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 89-90).

종교적 이념과 제의적 수행에 대한 비교 사회학적 접근은 야생의 문화에서 드러나는 "구체성의 과학"(레비 스트로스)과 미학적 중요성 (시, 노래, 축제 등)을 제의의 차원에서 두텁게 기술한다.

브리콜라즈 사고와 활동은 단순히 신화론적 영역에 머물지 않고 삶의 에토스를 통합하는 종교적 상징과 제의적 수행에서 구체화된다. 그것은 근대의 자연과학의 분석적 이성과는 달리, 집단적 표상, 다사말해 생활세계 안에서 움직이며, 다양한 개별적인 것들의 관계를 통합하면서 삶의 시인처럼 기능한다. 브리콜라즈 사고는 지각과 개념 사이에서 상상력과 이미지 그리고 상징체계와 은유의 충만한 언어를 통해  성스러운 존재와의 관계를 표현한다 (Levi Strauss, The Savage Mind, 17-18).

구조분석과 변증법적 이성

야생의 문화에 대한 분석적 사고를 위해 레비 스토로스는 사르트르의 <변증법적 이성 비판>을 문제틀한다. 물론 사르트르는 <변증법적 이성비판>에서 레비 스트로스의 인류학에서 구조와 기능과 체계에서 드러나는 주체의 실천의  제한성을 비판했다 (Sartre, Critique of Dialectical Reason I: 479ㅡ99).

레비 스트로스에 의하면 야생의 구체성의 과학 내지 브리콜라즈의 시스템적 사고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자유철학과 함께 마르크스의 유산 (사회구성이론과 실천철학)을 공유한다.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을 선험적 유물론자로 자리매김하고 변증법적 이성 (매개와 구성)과 과학적 분석 이성을 서로 분리하기보다는 변증법 이성을 구조 분석 이성에 보충한다.

장기지속의 관점에서 볼 때 구조와 역사적 사건은 대립으로 갈 필요가 없다. 역사는 이성의 삶의 스토리 또는 구조로 이애될 수 가 있다. 이것은 생활세계의 지평과 구조를 지적한다. "역사가 없는" 야생의 문화와 사람들을 어떻게 사르트르처럼 변증법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가?

사르트르에게서 타자나 야생의 문화는 지옥에 불과하며 타자의 시선은 두려움 또는 구토의 대상에 불과하다. 그의 초월적 자유는 의식의 지향성 안에서만 자리 잡는다. 그것은 타자를 이해할 수 없는 개인주의 실존 또는 사회 심리학에 불과하다.

레비 스트로스는 유럽중심주의와 식민지 문화에 저항하여 루소적인 의미에서 브리콜라즈 문화를 만회한다. 그는 삶의 충만함에 관련되는 시와 노래와 제스쳐 등의 축제적 성격을 끄집어낸다. 그러나 구조주의적 실천은 무엇일까? 그가 스스로를 초월적 유물론자로 부를 때, 언어놀이와 실천 그리고 상징체계를 통해 문화적 삶의 형식 또는 존재의 일반구조를  창조하는 차원은 굳이 소쉬르의 기호학으로 환원 되어야 하는가?

헤겔의 변증법적 이성은 자유의 진보를 통해 타자를 인정하고 공공선을 지향한다. 그 개념원리는 타자의 무해와 창조성을 담고있다.  이런 차원을 간과할 때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프로렐타리아트 독재라는 쇠창살 우리에 갇히고, 프로쿠르테스 침대처럼 다름을 절단하고 살해하는 폭력의 괴물로 나타난다 . 이것은 스탈린주의에서 나타나는 변증법적 이성의 독재이다. 사르트르는 이런 위험성을 잘 알고있다. 그는 구조의 장기지속을 알고있고 역사적 사건과 그룹의 실천을 통해 쉽게 해결되지 않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회구조의 총체성안에서 기표와 기의의 공동성을 산출하고 언어실천을 통해 구조 변화를 모색한다 (Sartre, 497).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는 언어학에서 변증법적 이성과 총체적 기능을 추구하며, 언어체계는 인간의 의식과 의지의 외부에서 무의식적인 구조처럼 작용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이러한 이성을 모른다.

구조적 환원은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려 의미의 총체성을 파악하는 고고학적 방식을 취한다. 그리고 얻어진 결과를 변증법적 이성으로 변형시켜 다른 문화들과 사회들에 적용한다. 변증법적 이성은 더 이상 야생의 문화와 문명상태를 분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자연의 상태에서 인간이 문화를 만드는 것은 공시적이지만, 여전히 역사적이다 (ibid., 260).

야생의 사고에서 세계의 이미지들은 중요하며 이러한 이미지들을 통해 야생의 사람들은 세계와 사회 그리고 인간에 대한 관계에서 차이를 줄여가는 유비적 즉 분석적 사고를 한다. 이것은 이미지들에서 구체화된 개념들의 시스템이며 변증법적 사고와는 다르다. 레비 스트로스는 통과제의에서 모든 야생의 문화에서 부모를 상징적으로 살해하고 다시 가정으로 되돌아가는 공동실천양식 내지 놀이와 규칙을 발견한다 (ibid., 264).

이러한 구조주의 관점은 언어게임과 문화적 실천양식을 연결하는 언어 계보학과 생활세계 구조론으로 보다 더 전개될 수 있다. 여기서 인간은 종교의 집단적 표출 세계안에서 언어놀이를 통해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은 신탁을 통해 새로운 삶의 형식들을 산출하며, 문화 예술적 놀이와 규칙이 인간의 이성을 개념과 상상력과 이미지 사이에 설정한다. 텍스트를 읽는 독자는 상상력과 메타포적 언어게임을  통해 자신의 삶의 콘텍스트를 충만한 의미로 채우는 실천으로 인도된다.

이러한 문화 텍스트 접근은 역사와 토라중심의 히브리적 사유를 야생의 사고와 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야생적 사고는 출애굽의 광야의 삶에서 살아있는 야훼와의 체험과 고대 근동의 계약의 형식구 에서 파악한다. 히브리적 생활세계는 광야의 경험과 고대근동의 문화교류에 엮여있다.

히브리 성서의 두터운 이해

문화 상징적 접근은 토라의 준수와 예언자의 신탁활동 그리고 제의적 기능을 통합하고 야훼와 이스라엘 백성의 계약을 폭넓은 문화교류와 스펙트럼에서 보게한다.

이것은 히브리 성서의 다양한 삶의 자리와 주제들을 순환적 관계와 이념의 보편구조 안에서 파악하게한다. 사실 야훼이스트를 개별 신학자처럼 파악하는 것은 문제의 여지가 있다. 벨하우젠의 문서설 (JE DP)은 낡은 것이지만 그러나 양식비평과 전승사의 관점에서 JEDP의 편집과 서로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데 새로운 비판적인 틀로 사용될 수 있다.

JEDP는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오랜 전승의 과정과 편집을 통해 독특한 종교적 사회적 삶의 형식과 제의적인 수행에서 구성된다. 설령 J의 신학적 입장이 포로기에서 사제의 관점에서 손질 되었다고 해도, E와 D 자료가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더우기 J자료의 연대측정은 950년대 보다는 포로기 시기로 볼 수도 있고 제 2 이사야와 밀접한 관계를 갖기도 한다. 오경은 신명기의 관점에서 편집이 되고, 이후 포로기 이전의 문서들의 신학적 배경을 이룬다.

 
야훼이스트를 개인적인 신학자나 역사가로 보든지, 아니며 이전의 기본자료들을 편집하고 해석한 그룹으로 보든 지 간에, 중요한 것은 성서는 한 개인의 신학으로 파악될 수가  없다. 오경의 비사제적인 다양한 자료들(예를들면 창 1-11)이 J에 의해 편집이 되고 보충이 된다. 그런가하면 J와 결합되지않는 P문서도 존재한다. 창 15:13-16절은 P에 의해 아브라함과 출애굽을 연결짖는 편집으로 볼 수 있지만, 이런 편집과정에서 J의 전승자료와 문서를 추종하는 그룹이 포로기에도 있을 수 있다. 전승자료와 편집자의 관계에서 개인 편집자의 입장을 과도하게 주장할 필요는 없다. 전승자료와 문서들에 대해 각각의 다른 사회적 삶의 형식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해석과 실천이 중요하다.
 
성서는 데카르트처럼 사고와 몸을 이분화 하지도 않으며 이론과 실천을 구분하지 않는다. 성서자체가 데카르트의 주객도식을 넘어서서, 사회적 삶의 한복판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과 계약의 의미를 인격적으로 기초 짖는다.

그리고 예수의 복음운동에서 오클로스는 구약의 암 하 아레츠를 대변하며 메시아의 죄사함의 시간과 축제를 경험한다. 메타노이아를 필요로 하지 않은 바리새파나 율법학자 그리고 사두개파들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에서 닫혀진다. 하나님은 여전히 멸망할자로 여겨진 자들의 유효한 역사에 관여하시고 폭력과 지배의 진보의 역사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아니오"를 말한다. Homo perditionis는 하나님의 환희이다.하나님의 정의는 그분의 긍휼에 담겨있다(누 15:1-31; Gollwitzer, Die Freude Gottes).

성서는 경전으로서 신학적 시스템과 문학적 구조를 담고있다. 이러한 겅전의 세계는 하늘의 별자리처럼 매우 다양한 목소들과 계기들 그리고 해석의 갈등을 담고있다. 여기에는 예속된 자들과 순진한 희생자들의 소리들이 묻혀있다. 이러한 유효한 역사는 독자에게 새로운 대화와 비판적 해석을 요구한다.
 
J의 신학적 입장은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이전 기본자료들에 대한 편집과 해석에서 나타나며, 다른 자료들과의 상관관계에 서 있다. J의 편집적 입장은 다른 문서들의 편집적 입장과 상충되는 부분과 다름에서도 볼 수 있고, 더 나아가 권력과 특권과 정당성을 둘러싼의 문제에서 내재적인 해명을 요구한다.

베버는 종교적 이념의 선택적 친화력에서 이념을 수행해가는 과정에서 신분과 지파동맹에 주목했지만 사회계층에서 나타나는 권력관계와 물질적 이해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에 대해 별 다른 주목을 하지 못했다. 그런가하면 폰 라트는 야훼이스트를 탁월한  개인 신학자로 과도하게 부각시켰다. 바르트는 폰 라트의 구원사와 노트의 이스라엘 역사를 결합하면서 성서를 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읽는다. 그것은 그의 독특한 네러티브 접근을 말한다.

계약사상에는 역사적 서언의 신학적 의미가 담겨있다. 여호수아 24장 6절에 나타나는 조상들의 출애굽 경험은 역사적 서언으로서 이스라엘의 세대격차를 아우르고 동시대화되며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에 화답하게 한다. 듣는 사람은 모두가 과거의 출애굽 사건에 참여자가 된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역사적 신앙경험으로 부터 주어지며 이들이 서 있는 다른 삶의 자리에서 재해석되고 의미가 확대된다. (레벤슨, <시내산과 시온>, 58)

베버:  암 하 아레츠와 바리새파
 
베버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서구의 역사에서 주변부로 밀려나간 백성이고, 반유대주의가 존재한다. 성서적 바리새파 정신과 2차 예루살렘 성전 멸망이후 전개된 랍비 유대교의 정신은 서구의 역사에서 주변부로 밀려나간 유대 백성의 삶에 이어지고, 이들의 삶을 특징 짓는다 (Weber,   Ancient Judaism, 424).
 

중세기의 반유대주의는 상업과 교역경쟁에서 나타나고, 십자군 전쟁에서 반유대주의 첫 번째 물결이 유럽에 넘쳐났다. 상업계급의 경쟁과 갈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ibid., xx vi).

베버에게서 유대인들은 세계사적 의미를 가지며, 당대 시온주의를 하나님의 약속의 빛에서 보았고, 시온주의 진정한 문제는 유대국가의 존엄성에 기초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인 팔레스티나 이주정책이기보다는 문화적이며 종교적인 성격을 갖는다. 베버는 유대인을 사회적으로 계층화된 농민들이며 가축을 치는 사람들로 파악한다. 토라에 기초한 삶에서 고대 바빌론의 하무라비 법전의 영향을 받은 문화적인 백성으로 본다.
 
베버의 관심은 야훼주의와 이스라엘과의 계약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사회변동을 팔레스티나 상황에서, 특히 제사문서인 레위기와 이후 예언자들의 메시야주의에 관련짓는다. 야훼주의 안에서 종말론적 차원을 검토한다. 여기서 마술이나 미신적인 것들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토라에 대한 윤리적 해석이 두드러진다.
 
예언자들은 왕권에 도전했고 경제적으로 착취받는 계층을 대변하면서 사회적으로 차별 받는 농민들을 보호했다. 예언자의 관심은 고대 그리스의 물음—어떻게 하면 인간은 좋은 시민 이 될 수 있는 가?—에 있지 않고, 오히려 토라에 기초된 종교적이며 야훼의 계명의 성취에 있었다 (ibid., 275).
 
베버의 연구에서 바리새파는 마카베오 시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헬레니즘 문화에 투쟁을 했던 경건한 자들이었다. 시편에서 하시딤으로 불리는 이들은 조상들의 가르침을 준수했고, 유대 마카베오의 추종자들이었다. 바리새파는 정결하지 못한 것으로부터 스스로 구별하고 레위기의 정결예전을 준수하면서 제사장의 권위에 도전했다. 예레미아의 기준 (예례 23:9 ;16)은 랍비적 토라해석에서 권위를 행사하며, 모든 예언은 영지주의적- 신비주의가 아니라 토라와 윤리적 계명에 기초된다. 여기서 빗나가는 해석은 거짓 예언자들로 폭로된다 (ibid., 395).
 
베버는 바리새파와 암 하 아레츠의 갈등을 검토하는 데, 후자는 율법을 모르거나 아니면 준수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바리새파는 암 하 아레츠나 이방인들과 교제를 하지 않았고, 예수와 바리새파의 논쟁은 이러한 사례를 보여준다. 바리새파의 형제애는 사랑의 음식에서 볼 수 있는 데 이후 기독교의 성만찬과 거의 흡사하다. 이들은 회당을 설립하고 후대 유대교의 디아스포라 들의 중심적인 종교기관이 되었다. 그러나 70년 예루살렘 멸망이전에도 바리새파는 심지어 희생제사나 제사장의 권위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베버에 따르면, 바리새파의 윤리적 합리성이 당대 민중계층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메시야적 희망과 죽은 자들의 부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멍에를 나누어지는 자들 즉 계명을 준수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고 보았다. 할례와 안식일 준수가 결정적이지만 베버는 613개 미츠보 (계명)을 지키는 삶은 농촌이 아니라 도시의 삶에서 특히 탈무드 교육을 통해 나타난다고 진단한다.
 
이런 점에서 예루살렘 멸망 후 랍비들은 토라교육을 통해 지배력을 가지게 되고, 시골 출신인 암 하 아레츠나 비-바리새파 유대인들과는 거리를 두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 가?라는 표현에는 이미 토라교육을 받지 못해 엄격한 준수를 하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경멸을 담고 있다. 베버는 예수가 바리새파와 충돌한 것을 암 하 아레츠적인 관점에서 파악한다.
 
베버는 그의 바리새파 이해에서 바울 역시 힐렐과 샤마이 학파의 영향에 서 있다고 본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말라"는 바울의 표현에서 바리새파의 가르침은 여전히 스며들어있고, 이것은 칼빈주의처럼 세계내적 금욕주의와 구분된다. 세계내적 금욕주의가 자본주의의 합리적 유형과 귀족주의 윤리로 나타난다면, 바리새파 유대교는 귀족주의가 아니라 형제애를 기초로 하며 이웃 형제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금한다.
 
이것은 윤리적 계명에 기초하며, 특히 구약의 희년법에서 고리대금업에 대한 금지, 안식일 준수, 노예해방, 빚의 사면 등은 바리새파의 소시민적인 삶에서 결정적이다. 이것은 절대 이중 예정을기초로 한 귀족주의 윤리나 천박한 자본주의와는 다르다. 베버가 바리새파 유대교에서 주목하는 것은 형제애로 가득찬 "무우주적 사랑", 즉 심정 윤리의 작동이다. 부유한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비밀리에 도와야하고, 이런 사회 기부금은 탈무드에 의하면 모든 유대인들의 도시에 모금되어야 한다. 이러한 탈무드의 카리타스는 빈곤으로 인해 아무도 수치스럽게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심지어 베버는 예수의 가르침—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에도 이러한 정신이 스며 있다고 말한다 (ibid., 40 9).

암 하 아레츠와 예수

베버는 랍비 예수의 가르침에서 바리새파적 연속성을 보는 데 인색하지 않다. 초대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준 에세네파의 종교적 실천(세례, 사랑의 만찬)과 무우주적 사랑의 공산주의와 같은 심정 윤리가 바리새파 유대교에 여전히 담겨있다 (ibid., 410).
 베버의 유대교적 접근과 해석에서 칼 바르트의 이스라엘론 사이에 공명이있다.

특히 열왕기하에서 나타나는 암 하 아레츠을 논의 할 때, 베버는 땅의 백성에 착안한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남겨져 포도원을 경작하는 비천한 농부들과는 다르다 (열하 25: 12).

농부들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왕과 정치 지도자들과 군인들과 백성들을 포로로 잡혀갈 때, 땅에 남은 비천한 자 즉 민중 암 하 아레츠를 의미한다 (열하 24:14). 이들은 이후 바벨론 포로기에서 돌아온 엄격한 토라준수의 야훼이스트 그룹에 저항한 자들이다 (ibid., 26).
 베버는 이런 분석에서 예수 시대에 바리새파와 암 하 아레츠의 갈등에 주목하고, 예수와 바리새파 논쟁을 사회학적 긴장에서 파악한다. 더 나아가 예수의 인자개념을 다니엘서와 함께 암 하 아레츠와의 연대에서 돌출한다 (ibid., 398).
 
여기서 베버의 해석은 바르트의 입장에 접근한다. 바르트는 예수와 암 하 아레츠의 관계를 오클로스(공적 죄인과 세리)와 연결지어 예수를 가난한 자들을 당파적으로 편드는 분으로 말한다. 바르트의 은총개념은 시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혁명적 성격을 담고있고, 공적 죄인과 세리들과 예수가 가진 식탁 공동체에서 잘 드러난다.

예수는 땅에서 저주받은 자들 (massa perditionis)을 바리새파의 공격으로 부터 방어했다. 하나님은 이들과 연대하며, 이것이 예수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쿠데타적인 성격을 특징 짓는다 (CD IV/3.2: 620).
 바리새파들은 이러한 암 하 아레츠의 행동과 도전을 책임적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고, 이들을 천박하고 저주받은 자로 경멸했다 (CD 4/ 3. 2: 274).

바르트에게서 중요한 것은 이들과 연대하여 파레시아를 말하는 것이다. 파레시아는 하나님의 진리에 참여하며 인간의 언어가 하나님 자신의 말씀으로 되는 계기를 포함한다. 파레시아의 태도에서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의 정의와 은혜를 사회 안에서 증거하며 살아간다. 파레시아는 이데올로기적인 왜곡과 착취에 저항한다 (CD 2/1: 231 -2).

 
바르트는 다음처럼 말한다: "수많은 어려움과 재난을 통해 기적적으로 보존된 유대인들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오늘날 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의 자연사적인 계기를 말한다. 이들은 구약성서의 살아있는 주석으로서 유일하고 확신에 찬 외적 증거다" (KD IV/3.2: 1005-6).
 
바르트는 쇼아에서 유대인들이 땅에서 저주받은 자가 되었지만,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수는 고난받는 유대인의 육체를 입고 세상으로 오셨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총체적으로 변화시키고 갱신한다. 예수는 그렇게 세상에서 비천 한 자들을 편드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서 있다 (CD 4/2:248-9).
 
바르트와 베버가 공명하는 것은 예수의 암 하 아레츠와의 연대가 단지 계급투쟁이 아니라 토라중심에 기초하며, 예수를 반유대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데 있다. 토라는 해방과 희망의 꽃봉오리이며, 은혜나 카리스마의 신학은 사회에서 밀려나간 하위계급과의 인정과 연대를 추구한다. 이것은 베버가 비교종교연구에서 추구하는 예언자적인 심정윤리이며, 바리새파에서도 작동되는 것을 본다. 이것은 동시에 오늘날 팔레스티나에서 빗어지는 국가 이스라엘의 폭력 정치에 강력한 비판을 담는다. 그것은 국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게르에 대한 토라의 관심에 책임적으로 서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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