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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신학의 지평

새로운 패러다임: 역사사회학-문헌비평(27)

by 파레시아 2023. 3. 1.

데이비드 플루서와 나사렛 예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의 저명한 성서학자인 데이비드 플루서는 <예수, 1998>연구에서 역사적 예수는 2차 예루살렘 유대교의 신앙의 세계 안에서 살았음을 말한다. 그리고 공관복음은 역사적으로 신뢰할 만한 증거임을 확인한다. 에른스트 케제만의 묵시문학적 예수연구와 더불어 플루서의 유대인 예수에 대한 연구는 불트만의 공관복음의 케리그마 신학이나 편집사 비평의 한계를 넘어선다. 흥미로운 것은 플루서는 누가의 특수자료에서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오리지널 전승을 보기도 한다. 이것은 슈테게만과 쇼트로프의 <나사렛 예수>에 대한 사회사적 접근과 비슷하다.
 
누가는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에 대해 백부장과 주변의 무리들의 안타까움, 그리고 예수를 아는 사람들과 갈릴리에서 예수의 여성제자들 (누 23: 47-49)을 보도한다. 이것은 마가복음 (15: 39-41)보다 앞선 초기전승으로 확인된다.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의 눈물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누가복음(19:41)은 담고있다 (Flusser, ibid., 221-236).
 
그러나 플루서는 마태복음의 계보와는 달리 예수가 나사렛에서 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나사렛 예수가 사도바울보다 월등한 토라교육을 받았다고 말한다. 예수의 토라와 실천은 당대 바리새파 유대교에 서 있었지만, 그의 원수사랑의 복음은 힐렐이나 에세네파를 넘어 선다. 초대 공동체에서 바리새파들은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사두개파에 항의했다 (ibid., 81- 92). 
 
예수는 초기에 에세네파 요한에 의해 세례를 받았지만, 요한의 메시아적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의 추종자들은 대부분 배우지 못하고 착취 당했던 농민 계층들에 속하거나 어부 또는 세리출신들이었고, 예수가 바리새파와 충돌한 것은 불가피했다. 비록 예수가 바리새파의 교육훈련을 통해 토라의 서클에 속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다니엘의 묵시적인 지평에 서 있았고,  모세오경과 예언서들에 대한 그의 새로운 해석은 여전히 주변부에 속한 랍비 유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종말론적이며, 이제 실현되었지만 여전히 묵시적인 미래로 열려져있다 (ibid., 104-112). 
 
예수는 토라의 진정한 의미를 회복하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날을 보고 기뻐했다고 말한다. 예수는 다윗의 후손으로 왔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보는 야훼이스트의 신학의 중심에 속하며, 누가는 예수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회복하고 이방인들에게 계시하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으로 말한다 (누 2:32). 모세와 예언자는 메시아 예수를 증거한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아브라함은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상징한다. 예수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비난하는 것을 반유대주의로 볼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구원은 유대인들로부터 나기 때문이다 (요 4:22).
 
다니엘의 묵시에서 안티오쿠스 4세의 성전훼파 사건과 멸망 그리고 인자 같은 이의 출현은 공관복음서에 묵시록의 내용으로 등장하고 예수는 묵시적 메시야로 소개된다. 하나님이 인자 같은 이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영원한 나라가 될 것이다 (단 7:14). 이러한 인자 메시야상과 영원한 나라는 다니엘 7장 27절에 가장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돌아간다. 이들은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며  메시야는 이들과 영원히 살아간다. 플루서는 예수의 인자칭호가 묵시적 메시야임을 유대교 안에서도 인정된다고 말한다 (Flusser, ibid., 132).
 
플루서의 <예수>는 1947년 사해 사본이 발견된 이래로  역사적 예수 연구에 새로운 파라다임을 제공했다.  십자가 처형에서 누가복음 23: 46절에서 예수의 위탁의 기도는 시편 31장 5절의 인용이며, 마가와 마태복음에 비해 가장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자료로 말한다 (ibid., 173).
 
톤 페어캄프는 그의 책 <다른 세계>에서 성서에 대한 정치사회학적 접근을 발전시켰다. 나사렛 예수의 본래적인 삶을 이해할 때 다니엘의 묵시적 인자 메시야와 그의 고난받는 백성은 공관복음서의 묵시록에 핵심원리로 통섭된다. 알렉산드리아 공동체에서 다니엘은 토라와 고전적인 예언자들의 전통에 서 있는 묵시가로 파악되며, 하나님의 세계지배의 목적에 관심한다. 여전히 다니엘은 마카베오 혁명을 비판적인 입장으로 수용한다. 하스모니아 왕가의 정치는 헬레니즘을 통해 헬레니즘을 극복하려고 했지만 실패할 것이다. 메시아 정치는 하늘에 속하며 갑작스런 통찰, 즉 카이로스를 통해 땅을 위한 야훼의 정치로 파악될 것이다. 다니엘의 환상과 정치에 대한 예언자적 해명은 공관복음서의 묵시의 내용과 구조를 결정 짓는다  (Veerkamp, Die Welt Anders, 238).
 
마가복음에서 황폐하게하는 가증스런 물건 (단 9:27; 11:31; 12:11)은 파루시아의 인자 메시야의 관점에서 해석된다 (마가 13: 14; 24- 27). 인자 나사렛 예수는 토라의 세계 속에서 살았으며, 다니엘의 황폐하게하는 가증스런 물건의 사건을 알고있다 (마태 24:15). 예수는 어느 겨울 성전 봉헌절 (하누카; 마카베오 상 4:59)에 성전 경내에 있는 솔로몬의 주랑을 거닐고 있었다 (요 10: 22).  예수는 팔레스티나에서 멸망하도록 밀려나간 자들(massa perditionis)의 권리를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과 토라의 정의에 기초해 회복시켜 놓았다. 이들을 다니엘의 묵시에 나오는 거룩한 백성들로 초대하고, 그의 하나님 나라의 운동의 주역으로 삼았다.

암 하 아레츠가 예수의 운동에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반영되며 차별없는 복음을 통해 팔레스티나 이스라엘의 삶을 회복 하려고 했다. 이것은 젤롯의 정치운동이나 반로마적인 급진적인 바리새파들과는 결이 다르지만, 여전히 예수가 보여주는 메시아의 인정정치를 말한다. 이것을 매개하는 자들은 그에게 속한 남은 자들이며 이러한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은 바울에게 이어진다.
 
나사렛 예수는 십자가의 실패로 끝났지만 하나님은 부활로 응답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 바리새파 출신 바울에게서 아브라함이 믿음과 은혜의 신학의 중심으로 서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바울은 예수 안에서 영적인 죽음을 경험하고 새로운 존재로서의 부활의 삶을 살았다. 토라가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성령 안에서 거룩한 삶으로  즉 복음의 필수적인 형식으로 이해된다. 바울의 메시아의 시간구조는 여전히 다니엘의 묵시적 구조를 갖는다. 그것은 지금 여기서 카이로스로 나타나며, 남은 자들의 공동체에서 차별없는 화해의 복음으로 구체화된다 (갈 3:28). 이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상속하는 자들이며,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신실한 태도의 모범이다 (롬 4. 20). 이런 점에서 바울은 히브리서 성서의 야훼이스트의 신앙고백에 서 있다. 
 
공공신학과 사회학적 성서해석
 
공공신학은 성서해석에서 새로운 파라다임을 전개한다. 그것은 역사 사회학적 문헌 비평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성서의 담론과 정치적 권력관계와 경제적인 계층, 그리고 신분/계급의 갈등과 투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문제 삼는다. 성서주석이 살아계신 야훼 하나님의 구원과 정의 그리고 토라와 그리스도의 화해의 복음에 대한 증언에 있다면, 이것은 내재적 비판의 원류가 된다. 이것은 성서의 세계에서 문헌비평을 통해 밀려나간 자들의 유효한 역사를 사회과학적으로 재구성한다. 토라의 계약은 화해의 복음안에서 실현되며, 화해는 메시아의 인정 정치를 추구하는 교회의 실천으로 나타난다.
 
성서의 의미는 말씀을 통해 독자의 삶의 자리에서 동시대화가 되고, 독자의 입장과 삶 또한 말씀의 의미에 의해 변혁된다.  이러한 성서해석은 텍스트와 독자의 생활세계에서 만남을 사실적인 삶의 자리에 주목하고,  의미의 실천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지나친 독자중심에서 나타나는 현재주의나 실존주의적 외삽법과는 거리를 둔다. 외삽법은 텍스트의 이해와 주석 보다는 종종 텍스트에 폭력을 가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가 있다. 성서의 의미는 닫혀지고 종결된 것이 아니라 관계론적인 총체안에 있으며, 독자의 삶을 위해 의미론적 순환은 동시대화가 되며 지속적으로 열려진 채로 진행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역사와 사회를 통해 말씀 하신다. 성서의 의미는 다의적이며, 여기에는 메타포와 번역과 표현의 애매함 그리고 침묵과 갭 (출 4: 24-26)이 존재한다. 여기에 독자는 의미 창출을 위해 참여한다  (Aichele et al.,  
Postmodern Bible, 20-69). 그러나 독자의 의미창출 행위에서 본문에 대한 주석이 실종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역사 사회학적 문헌비평은 명료하지 못한 영역을 해명하고 텍스트의 시스템 구조와 관련지어 의미를 결정한다. 또한 고대 근동 문헌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검토하기도 한다.

예를들면, 이사야서 61: 2절에서 야훼의 은혜의 날은 채무로 인해 노예가 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면을 의미한다. 희년 (레 25: 8)은 포로기에서 완성된 사제신학인데, 이것은 역사적으로 시드기야 왕 때  빚으로 인해 노예가 된 사람들에 대한 사면과 관련된다 (예례 34:8). 예수는 회당에서 이사야서 본문을 읽고 주님의 은혜의 해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누가 4:19). 이것은 주기도문에서  죄사함이 빚으로부터의 면제를 의미하며, 만달라트 탕감받은 자의 비유에서도 나타난다 (마태 18: 24 - 35). 복음서에서 이사야의 주님의 은혜의 해는 죄의 용서와 부채 탕감 이라는 차원에서 해석된다. 용서는 사회 경제적 차원을 담고있다.
 
고트발트는 사회적 문헌비평을 통해 히브리 성서에 대한 대작을 남겼다. 그의 사회과학적 방법론은 넒은 스펙트럼을 가지며 이전의 양식비평이나 전승비평 또는 편집비평의 한계를 넘어선다. 그러나 상호학문적 연구방법을 기초로 한 그의 사회적 문헌비평에서, 필자는 성서의 담론이 갖는 선택적 친화력, 즉 물질적 이해관계와  권력구조에 대한 검토가 사회계층론을 통해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는 것을 본다.
 
성서적 이념 내지 담론의 사회화는 야훼이스트와 사제문서에서 확립되는데, 이스라엘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야훼이스트의 신앙고백 (아브라함-다윗)과  모세의 토라계약은 에스라-느헤미아 개혁의 한계와 하스모니아 왕가의 헬라주의를 비판하는 내재적 근거가 된다. 종교와 권력 그리고 특권의 사회학(게하르트 렌스키)에서 볼 때 예루살렘에 남겨진 암 하 아레츠와 사마리안의 삶은 토라에서 권리를 보장 받는 게르에 속한다. 이러한 게르의 권리회복은 누가의 특수 자료에서 사실주의적으로 나타난다(10: 25-37).

이 지점에서 공공신학은 마가의 오클로스 민중에서 실종된 '게르'에 주목하고 시민사회의 하위계층과 이민자들의 삶의 권리를 위한 인정정치에 관여한다. 더 나아가 필자는 다니엘의 묵시문학에서 인자 메시아는 야훼이스트와 접합되면서 예수운동과 바울의 남은 자의 차별없는 공동체로 이어지는 것을 중요하게 파악한다.  이것은 공공신학에 새로운 종말론 즉 현재화된 아포칼립시스의 차원을 부여한다.
 
막스 베버: 게르 신학과 지파동맹
 

베버는 고대 팔레스티나의 사회구성을 1) 유목생활을 하는 베두인, 2) 반유목적 목자들, 3) 소작농민, 4) 도시 거주자들로 분류했다. 그리고 지배체제를 전통적 유형, 카리스마적 지배, 그리고 법에 의해 지배로 개념화했다. 예언의 사회적 성격은 카리스마적 지배유형으로 전개할 수도 있다.  왜나하면 예언자들은 사회적 계급을 대변하는 조직이나 정치투쟁으로 나타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는 인격적 차원과 소명로 인해 고난받는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베버는 언약의 책 (출 21:1-22; 19)이 신명기 (12-26장)의 법전에 수정되어 편집 되었다고 본다. 신명기 (15장)는 언약의 책에서 알려지지않는 부채 면제에 관한 급진적인 법 (칠년마다 빚의 면제)을 알고있다. 레위기 25:1-7은 빚의 면제는 언급되지 않고 안식년을 말한다. 이것은 느혜미아의 언약서명에서 십계명 준수와 함께 6년이 지난 빚에 대한 면제를 통합한다 (10:31).
 
사제문서 (레 25:39, 46)에서 동족이 빈곤으로 인해 종으로 팔려와도 종 부리듯이 해서는 안 된다. 희년이 될때까지만 일을 시켜야한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이끌어낸 하나님의 품꾼이기 때문이다 (레 25: 40-42). 가난한 사람들은 돌보아 주어야하고, 나그네나 임시거주자 (게르) 처럼 살게 해야한다 (레25: 35).
 
희년신학은 유토피아적인 성격을 갖지만 계약의 차원에서 포로기에서 구성되었다.  베버 에게서 희년신학은 노예해방과 빚을 면제하는 주님의 해로 발전되며 (사 61:2), 성결법전 (레 25:35) 에서 가난한 자들은 게르로 취급된다. 이스라엘의 사회제도는 자신의 동족인 게르가 땅을 소유 하지 못한 자(게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한다. 이러한 게림은 로마시대에 '프로렐타리'와 비교될 수가 있는데, 이들은 군 복무를 할 수 없고 군 장비를 낼수없는 경제적인 하위계층을 말한다 (Weber, ibid., 74). 고대 로마의 공화제에서 이 계급은 무산자에 속하며 군복무와 투표권을 갖지 못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분석에서 베버는 성서의 계약 (베리트)개념을 정치적으로 해석한다. 베버는 계약의 책(출 21: 1-22; 19)을 기초로 포로기이후 계약은 제의적으로 온전한 유대인을 지칭하며, 특히 동맹  (체베르)의 의미를 담는다고 본다. 신의 보호아래 서약에 근거된 동맹은 이스라엘 역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다윗은 계약을 통해 합법적인 왕이 되었다.  모든 게르들 또한 계약을 통해 법적 지위를 보장 받았다.
 
신명기 27장 14절이하에서 나타난 에발산의 저주는 이미 장엄한 예식을 말한다. 여호수아는 땅을 정복한 후 지파들과 계약을 맺고 야훼의 토라의 책을 기록했다. 세겜 (수 8장)에서 그림심산과 에발산을 등지고 서서 율법의 책에 기록된 축복과 저주의 말을 낭독했다. 에발산 위에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실로 (18장)에 중앙성소를 세웠다.
 
이것은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 시대에 세겜에 전승되었고 기드온은 여룹바알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바알계약의 가문에는 기드온의 70인 아들이 있었다 (사 9). 아비멜렉은 세겜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요담을 제외하고 형제들을 살해하고 최초의 왕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죽음은 하나님의 징계로 보도된다 (삿 9: 56-7). 베버에게서 여룹바알을 통한 동맹은 새롭게 구성되는 이스라엘의 동맹규정을 보여주는 실례에 속한다. 기드온의 새로운 이름인 여룹 바알에서 야훼는 전쟁 신으로 파악된다. 이후 신의 이미지는 자연과 하늘을 다스리고 은총을 베푸는 모습으로 발전된다. 야훼는 지파동맹의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의 사회조직의 신이된다 (Weber, ibid., 77, 128-9).
 
이후 이스라엘의 정치발전에서 요시아왕의 신명기 율법책의 수용과 시드기야의 율법 준수와 노예사면, 그리고 느헤미아의 계약 서명식에서 야훼이스트의 신학이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예언자 미가는 야훼가 조상들의 계약을 상기시키고,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고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여 주신다고 말한다 (미가 7:20). 예례미아에게 새언약(31장)은 율법을 이스라엘의 가슴 속에 넣어주며 마음판에 새겨 기록한다. 바벨론 포로기에서부터 해방과 죄사함을 담는다. 여전히 신명기 계약 (15)이 반복되면서 시드기야왕이 약속을 번복한 것에 대한 심판을 담고있다(34장) (Weber, ibid., 77).

계약에 대한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베버는 고대 이스라엘의 사회구조가 야훼 앞에서의 계약과 지파들의 동맹들에  근거되고, 게르에 대한 법적 보호를 담는다고 말한다. 종교적 제의와 조직이 정치 군사적 구조에 영구적인 기반을 제공한다. 이스라엘은 제의동맹이며 지파의 이름이 아니라 “전쟁하는 신의 백성”이 된다 (Weber, ibid., 79, 81).
 
드보라의 노래 (사 5) 에서 4만명의 군대가 추산되지만,  아직 지파동맹의 개념은 나타나지 않는다. 유다와 시므온과 레위지파가 언급되지 않는다. 지파동맹에서 베버는 야훼에 의해 승인된 전쟁영웅이나 예언자가 지파의 경계를 넘어서는 카리스마적인 권위를 행사한다고 본다. 정치 군사적 결정에서 드보라의 카리스마적 권위가 이 경우에 속하며, 베버는 이전의 모든 지파동맹의 전쟁 영웅들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변형되고 법적권위를 갖었다고 본다 (Weber, ibid., 84). 예언자의 드보라의 노래에서 이스라엘의 어머니의 권위는 흔히 페미니스트들이 고대 이스라엘 사회구조를 가부장적 지배로 일반화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상대적인 동등한 젠더의 구조가 나타난다.  
 
베버는 전쟁신 야훼 아래서 지파동맹을 정치적으로 부각시킨다. 실로에서 지파동맹의 전쟁 신 제단은 고대 그리스에서 도시국가 출현이전 이웃 종족들과의 동맹으로 파락된다 (amphictyony). 이런 동맹에 대한 주기적인 제의는 세겜의 기도나 저주제의 그리고 실로에서 해마다 열린 야훼축제나 성소제사에서 볼 수 있다 (삿 21:19. 삼상 1:3) (Weber, ibid., 90).
 
비판적 반성

베버가 이스라엘을 고대 그리스적인 의미의 암픽티오니(델피 신전등에서 행해진 그리스의 국가제의)와 같은 종교 제의적 동맹으로 파악한다면, 마틴 노트는 이러한 비교관점을 수용하고 이스서 지파동맹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스라엘 열두지파들은 거룩한 지파동맹을 중앙성소에서 맺고 언약궤는 지파들의 중심적인 지성소이며, 이스라엘은 정치적 공동체였다 (Noth, The History of Israel , 85–109).


그러나 이스라엘 지파동맹은 순수하게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야훼신앙을 기초로 맺어진 계약의 공동체이며 정치 사회적 동맹이었다. 드보라 노래에서 지파동맹은 불충분하지만 여전히 나타나며, 야훼의 백성개념이 언급된다. 이스라엘의 암피티오닉 종교 정치동맹은 느슨 한 채로 시작되고, 정치적으로 통합된다 (벤야민, 므낫세, 에프라임). 
 
요시야가 주전 622년 발견한 율법서(언략의 책, 왕하 22-23)는 현재 신명기 12-26장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북왕국이 주전 722년 멸망후 남왕국의 그룹에 의해 보존되어 있었다. 이것은 요시야의 종교개혁에 영향을 미쳤다. 요시야왕의 개혁이 실패로 끝났을 때, 계약의 충실성과 불순종의 관점에서 이후 신명기 사가들은 이후의 왕들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고 주전 561년의 사건을 반영한다.

마틴 노트는 신명기 사가의 관점이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서 등 이스라엘 전체 역사에 반영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여호수아 24장이 신명기 학파의 작품이라면 이스라엘 역사에서 계약의 개념은 후대에 나타나지만, 신명기에서 우리는 중앙성소 외에서 드려지는 예배행위가 배격되고 (12:2), 성스러운 나무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 (수 24: 26) 임을 본다. 신명기 사가가 여호수아의 세겜의 계약갱신 의식을 지은 것이 아니라 전해진 기존의 전승자자료를 편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내산 경험과 전승이 계약의 틀에서 이해되었고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규정한다. 현상학적으로 볼 때 루돌프 오토의 두렵고 떨리는 신비로움이 시내산에서 일어난 계시 와 계약에 속한다 (출 19: 3b -8. 시편 68).

출 19장의 계약형식은 후기청동기시대 히타이트 종주권 계약에서 나타난다. 시내산 현현과 계약사상은 아주 이른 시기로 올라가며, 이것이 이스라엘의 삶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야훼의 지칠줄 모르는 사랑과 끊없는 은혜이며, 이후 역사에서 내재적 비판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레벤슨, <시내산과 시온>, 52).

그리고 포로기에서 신명기의 서론 (1:1-4: 43)과 결론(31-3장)이 후대첨가라면, 야훼이스트의 입장이 포로 귀환 공동체를 향한 중요한 메시지를 담는다.
 
베버는  신명기학파에서 윤리적 합리주의를 보았다 (신 4:2) (Weber, ibid.,  132). 육경에서 사용되는 야훼와 엘로힘에 주목하면서 베버는 엘로히스트 문서에서 땅이 없는 정착민들과 계약에 구속된 백성들의 삶을 보았다. 이것은 북왕국의 예언자 전통에 관여되어있다. 야훼이스트 문서에서 나단 예언자와 다윗의 관계처럼 엘로히스트 문서에서 엘리야와 아합왕이 병행을 이룬다 (ibid., 214).  
 
신명기는 폰 라트가 말한 계약갱신을 위한 제의를 반영하는 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히타이트 조약문서 처럼 (멘덴홀) 단순히 야훼의 계약을 정치적인 조약으로 보기도 어렵다. 신명기는 단일문서의 계약 문서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설교적인 의미를 가지며, 신명기 학파의 입장을 대변하며, 이후 역사서와 예언서의 성격을 규정하는 책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야훼이스트의 신학은 베버보다 훨씬 더 깊게 은혜와 사랑에 기초되어 있으며, 야훼는 남편으로 이스라엘은 신부로 표현되기도 한다. 야훼의 인격성은 특히 이사야에게서 옛적부터 우리의 속량자인 야훼의 이름이 아버지로 고백된다 (6 3:16). 이러한 아버지 칭호는 가부장적 표현이 아니라 바벨론 포로기에서 해방과 구원이 전적으로 야훼이름에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친히 고난받는 야훼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63: 9).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야훼는 절대로 잊지 않는다 (사 49:15).     
 
역사 사회학적 접근과 문헌비평
 
구약성서에 대한 베버의 접근에서 게르에 대한 법적보호와  계약이 갖는 정치 사회적 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중요하다. 이스라엘 사회의 게르와 고대로마의 '프로렐타리'의 사회학적 접합은 정치 사회구조 안에서 파악된다.

이런 점에서 사회 계층론과 지배모델에서 어떤 계급/ 신분에 의해 이해갈등과 정치적 투쟁이 벌어지며, 종교이념이 누구에 의해 사회적으로 담론화가 되며, 권력과 특권의 관계로 설정되는지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사회구성 안에서 그룹의 실천과 신분투쟁은 경제의 독점/분배, 정치적 자유/예속,  문화적 권리/의무 그리고 인종의 위신과 특권을 둘러싸고 일어난다.

지배구조는 권력을 취하지만 여전히 저항의 실천은 사회체제를 변화시키고 궁국적으로 사회구조는 다른 변화된 구조로 이행한다. 이러한 사회학적 입장은  초기 이스라엘 지파형성을 하피루의 가나안 이주에 주목하고, 권력관계와 인종위신을 둘러싼 인정투쟁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이것은 가나안 토착 주민들 안에서 경제적 갈둥으로 인해 반란이나 혁명이 일어나고, 초기 이스라엘 지파가 형성 되었다는 마르크스주의 가설을 충분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멘덴홀, 고트발트).
 
시내산 토라 계약 (출 19-34)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원류에 속한다. 멘덴홀에게서 시내산 계약은 다양산 지파들을 단일한 사회정치적 공동체로 묶어준 구심점 역할을 한다. 윤리적 십계명(본래적 십계명)은 시내산 계약의 기본적인 야훼의 정의에 속하며, 단순히 율법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이후의 토라에 대한 토대를 제공한다. 출21-23장에서 나타나는 계약전통은 히타이트 제후국 계약 (1400-1200 BCE)에서도 흡사한 구조로 나타난다.

이것은 단순히 히타이트 문화가 아니라 메소포마티아 문명에서 기인한다 (Mendenhall, Law and Covenant, 5-6, 32-38). 이것은 고대 시리아 지역에서 공동으로 사용된 국제적인 계약기준에 속했다. 여호수아 24장의 계약갱신제는 출애굽의 시내산 계약보다 더 히타이트 계약의 구조를 답습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시내산 계약은 후기 청동기 시대에 속하며, 8세기 예언자들은 시내산 계약과 윤리적 십계명을 추종했다.

폰 라트도 이러한 멘덴홀의 입장을 거절하지 않는다. 멘덴홀에 대한 찬반 양론들이 존재하지만, 사회학적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시내산 계약에서 드러나는 종교적 담론과 윤리적 태도가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어느 그룹에의해 선택적 친화력을 드러냈으며, 어떤 신분과 그룹이 시대의 물질적 이해와 권력의 관계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에서 내재적 비판을 행했는 가 하는 데 있다.  
 
이러한 입장은 시내산 계약과 암피티오닉 지파동맹의 관계를 종교이념과 제의 그리고 사회문화적 지향성을 통해 파악하며,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 로마 또는 이스라엘의 문화상호 교류에 주목하면서 각각의 독특한 정치적 정체성과 사회구성을 검토한다.

이러한 종교 정치구성 안에서 게르나 '프로렐타리'는 단순히 계급적이기 보다는 사회문화적 계층으로 위계질서화 된다. 애굽의 문서에서 하피루가 노예였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육십만명이나 되는 히브리 노예들이 집단탈출은 찾을 수 가 없다. 출애굽은 람세스 2세 (1290 -1224)기간 중에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출 1: 11).

하피루와 게르

바로 왕 메르네파트 (1224-1211)의 비문에는 가나안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패배시켰다는 기록이있다 (Seltzer, Jewish People, Jewish Thought, 18). 출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동행한 혼합 종족들이 있었다 (출 12:38).

처음부터 이스라엘은 게르(erev rav-민 11:4: 아사프습) 즉 지역 애굽인이나  통혼한  다른 이방인들을 포함한 야훼의 인정 공동체였다 (랍비 라쉬의 주석). 하피루는 인종적 정체성이 없는 이주자들이며 끊임없는 경제적 어려움과 전쟁에 시달렸다. 많은 이방인들은 이스라엘과 더불어 가나안 지역의 일부를 점령하고, 자신들의 유산으로 받은 땅을 차지하고 살았다 (삿1:6).

메르네파트(1212-1202) 승전 비문에서 발견되는 '이스라엘'은 야훼의 이름 아래 결성된 부족 군사조직을 지적한다. 점차적으로 이들은 주변의 땅들을 점령하면서 므낫세-
에프라임-벤야민을 통해 유다지역으로 확장되었다. 이스라엘은 정치권력의 공동체을 의미하며, 이와 함께 종교제의-정치적 동맹이 확립되었다(R. Coote/M. Coote, Power, Politics and the Making of the Bible, 23).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유다와 시므온 그리고 벤야민 지파 그리고 에프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점령 기사가 나온다 (삿 1). 가나안 주민들과 섞여 살면서도 야훼의 언약궤는 실로에 있었고, 1050년 경 실로의 산당은 파괴되고, 언약궤는 블레셋 주민들에게 빼앗겼다 (삼상 4).
 
이스라엘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파악하는 계보학은 이스라엘 백성이 13세기 말 즉 후기 청동기 시대 (15 50-1200)와 초기 철기시대 (1200 -1332)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 있는 것으로 확인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과 역사적 발전에 관한 연구는 여전히 토론에 열려 있지만, 다양한 학제간의 접근을 통해 두텁게 기술될 필요가 있다.
 
종교이념과 사회계층

Emile Durkheim

뒤르캠의 종교 사회학에 의하면, 종교의 집단적 대변 (collective representations)은 이스라엘의 사회의 에피스테메처럼 기능한다. 이러한 지식체계의 구조는 사회의 전반적 영역을 지배하며, 특히 본래의 토라와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서 나타나는 편차와 병리현상 또는 개혁운동을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뒤르캠의 테제 “신과 사회의 동일성”은 이스라엘의 종교 사회학을 연구 하는데 여전히 중요하다. 종교현상은 신앙과 제의로 구성되며, 성속의 구별은 공동체와 분리되지 않고 묶여있다. 종교적 이념의 대변들은 공동체 안에서 제의에서 표현되며, 그것은 사회적인 것이며 집단적 사유의 산물이고 도덕적 영향력을 갖는다. 인간문명의 맹아가 발전하는 자궁은 종교이다.

모든 위대한 사회조직과 제도들은 종교에서 출생한다 (Durkheim, The Elementary Forms of Religious Life, 224-5, 421). 성속의 이분화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오르기 전 정결하게 하라는 야훼의 명령에서도 잘 볼 수있다 (출 19: 10, 12, 13). 

성별은 종교의 삶에서 필연적이다. 역사 사회학적인 틀에서, 필자는 “신과 사회의 동일성”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종교 담론을 집단적인 대변 (사회적 정당성)으로 나타나게하는 것이 무엇인 가에 주목한다.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 선택적 친화력을 계급/신분들 안에서 (권력, 특권 그리고 분배)드러내며, 이해의 갈등과 정치적 대립 그리고 종교적인 매개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 정착 되는가? 이러한 사회계층분석에서 신분과 계급의 투쟁은 변증법 사회이론을 통해 다차적인 방식에서 분석된다. 이것은 어떤 의심스러운 영역들을 문제틀하고 지배자와 예속된 자의 인정 투쟁을 검토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뒤르캠의 사회학은 구약의 양식비평이 보편 종교사(시그문드 모빙켈)의 틀에서 시편연구로 확대되는 데 주목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신화와 제의는 역사적인 삶의 자리에서 야훼신앙을 위해 신학화가 된다. 독자인 나는 시편의 축제에 직접적인 참가자가 아니지만 동시대인으로서 시편의 예배나 기도 그리고  탄원에 참여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해석학적 경험을 이어간다. 그러나 사회학적 접근은 시편의 축제와 탄원의 자리를 정치 사회적인 배경에서 검토한다.

이것은 신앙을 통해 야훼를 향한 탄원과 용서 그리고 은혜와 예배를  정치 사회적인 지평에서 파악하며, 종교 공동체의 인정투쟁이 계급투쟁에 앞서있는 것을 검토한다. 신과 사회의 동일성 테제는 신앙과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의미를 확대하면서 새로운 신학의 구성으로 나타난다.
 
계급투쟁의 계보학

역사적으로 볼 때 계급투쟁의 계보학은 계층에서 드러나는 인정투쟁이며, 이것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와 사회계층에서도 특히 솔론의 개혁운동을 통해서도 볼 수가 있다. 눌론 느혜미아의 사회 개혁에서도 나타난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시대의 관점에서 볼 때 제한적이지만 그 시대의 사회구성과 정치적 상황에서 중차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솔론과는 달리 느에스라- 느헤미야의 개혁에서 암 하아레츠는 밀려나가지만, 예수운동에서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향해 남은 자들로 초대되고 예수운동과 이후 바울의 화해의 복음의 운동의 주체로 불려진다.

계급투쟁은 마르크스가 산업 혁명에서 부르주아 계급과 프로렐타리아트의 이분화 모델을 통해 사회혁명으로 전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지금까지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이었다”는 말은  자본주의 이전 모든 역사의 계급투쟁은 위로부터의 지배와 투쟁 이었다는 것을 담고있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는 여전히 헤겔의 인정투쟁을 1844년 <정치 철학 수고>에서 노동자의 소외문제를 다룰 때나 또는 프랑스 혁명의 분석에서 사실주의적 관점을 포기하지 않았다.
 
두터운 기술과 유효한 역사

필자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사회문화계층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할 때 인정 투쟁을 통해 계급과 신분의 통합모델을 발전시킨다. 이러한 고대 이스라엘의 사회구성에서  종교적 담론은 권력의 네트워크에서 어떤 사회적 기능과 효과 (순기능과 역기능) 그리고 합리화와 관료제로 드러내는가? 여기서 억압된 자들의 유효한 역사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관료제와 유효한 역사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은 구약성서학계에서 지금까지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역사사회학적 문헌비평을 통해 성서에 대한 인식론적 태도는 두텁게 기술되며 (클리포드 거츠), 이해의 지평과 의미론적 순환에서 억압적으로 내려온 전통의 침전을 비판한다. 이러한 책임적인 비판을 통해 밀려나간 자들과의 연대와 특권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우리시대를 위해 기획한다.

이러한 인식론적인 절차에서 해석은 실천의 통전적인 부분, 즉 이론적 (담론)실천이 된다. 지배자로부터 오는 이데올로기 호출은 유효한 역사를 위해 내재적 비판을 통해 해체된다.

이러한 인식론적 문화는 히브리 성서의 구조와 이스라엘의 정치적 사회적 삶의 자리를 매개한다. 텍스트의 내적 세계는 사회적 삶의 경험과 지평에서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Gottwald, The Hebrew Bible, 30). 성서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성서의 역사와 삶의 배경에 녹아 있다.

출애굽 사건이나 토라 (십계명)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적인 삶에서 내재적 비판의 원류가 되며, 이데올로기적으로 억압되고 묻혀져 버린 목소리들의 역사가 존재한다.  희년의 정의는 지배의 역사에서 묻혀져 버리고, 말씀의 해석과 교리는 엘리트나 특권자들의 이해를 위해 왜곡 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말씀 하시며 약속과 계약과 예언의 주체가 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스스로를 은혜로우신 분이고 자비하신 분이며 거룩하신 분이고 정의로우신 분으로 계시 하신다 (신 10: 17-18).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과 성품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사회적 조건에서 정치적 헤게모니와 특권을 문제틀하고 사회제도를 토라의 원류로부터 해석하고 구성한다. 이러한 신학적인 이념과  성서의 메시지는 우리의 시대에 여전히 신약성서의 복음과 더불어 새롭게 구성될 필요가 있다 (Rendtorff, Canon and Theology, 40-41).
 
결론: 공공신학과 예수의 게르

나는 누가복음의 선한 사마리아 비유 (10:30-37)에서 나사렛 예수의 게르 신학을 본다. 이것은 누가의 특수자료이며, 아람어로 비유를 가르친 나사렛 예수의 역사적 정체성을 증거한다. 이것은 Q자료 만큼이나 초기자료에 속한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강도의 출현이 심한 27 킬로 정도가 되는 험한 곳이다.  

한 유대인이 이곳에서 만나 린치를 한 강도는 테러리스트 젤롯(레스타이)으로 표현된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빈사상태에 있는 동족을 피해갔다. 이들은 성전규정이나 율법의 정결법을 구실로 변명하거나, 또는 죄로인해 하나님의 심판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예수의 질문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누군인가?에 있다.

이것은 지극히 적은 소자를 말하지 않는다 (마태 25:40). 마태의 히브리적 표현방식은 다니엘의 묵시에서 영원한 나라를 이어받는 거룩한 백성과 메시야 예수의 지극히 작은 소자를 의미한다.  지금 사경을 헤매는 시간에 목숨을 살려주고 구원과 자비를 베푼 이웃은 누구인가? 예수는 게르의 상징인 사마리아인과 자신을 동일시 한다. 이것은 유대적 구원과 영적인 우월감을 한방에 부셔버린다.

너도 사마리안처럼 하라! 예수의 인정과 연대는 구약의 묵시적 배경을 가지며 오랜세월 유대인과 사마리안의 장벽을 허무는 정도가 아니라, 사마리안과 자기를 일치시킨다
(Gollwitzer, Die Freude  Gottes, 142-143).

공공신학은 역사 사회학적 문헌비평을 기초로 성서를 해석하고 시민사회와 다차적 공론장에서 화해의 복음과 메시아의 인정정치를 통해 밀려나간 순진한 희생자들의 유효한 역사를 복권시킨다. 공공신학은 정치주체로서 시민과 하위계층(게르)과 연대하며 새로운 사회구성과 공공선의 거버넌스를 위해 윤리적인 태도와 책임적 비판 그리고 해방을 기획한다. 누가와 바울의 메시아 공동체는 게르 또는 아게네스(고전 1: 28)의 공동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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