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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신학의 지평

공공신학과 누가복음 (9)

by 파레시아 2023. 2. 9.

서구신학에서 오랜 세기를 거치면서 논쟁해 온 '역사적 예수 연구'는 나름의 학문적인 성과를 갖는다.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해 성서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방법론이 형성되었다. 무엇보다 더 하나님이 성서의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말씀하시고, 초대 교회 공동체는 어떤 신학적인 이해와 응답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발전시켰는 지를 보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적 방법은 역사적 예수를 이념형으로 파악하고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산물이나 케리그마화된 양식으로 보았다. 이것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갈릴리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민중들과 더불어 활동하고 투쟁하면서 가르쳤던 나사렛 예수의 인격과 가르침 그리고 실천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나는 역사적 예수의 논의들을 검토하면서, 나사렛 예수의 삶의 자리를 권력, 사회계층, 관료제를 통해 나사렛 예수에 대해 말해지지 않는 것들을 고고학적으로 해명하려 한다.

예수 시대의 사회구성

예수 시대의 사회구성을 다룰 때, 중요한 것은 종교적 이념이 물질적인 이익, 정치권력, 문화적 계층과 더불어 어떻게 선택적인 친화력(elective affinity)으로 드러나는 가를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회가 어떤 위계질서에 따라 계층화 되는 지를 봐야한다.

첫째, 지중해 문명과 사회들이 유대 팔레스티나의 외부적 환경이 된다. 유대사회의 내부적 갈등들이 일차적으로 예수의 활동과 서기관이나 바리새파 논쟁 그리고 성전체제와의 긴장을 통해 분석되어야 한다.

둘째, 빌라도의 통치 (26-34)에서 헬레니즘의 문화 및 언어의 영향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교류를 포함)에서 어떠한 정치적 지배 방식이 나타나는 지를 봐야 한다.

셋째, 경제적인 착취관계를 세금에 관련된 유대인 관료제(서기관과 성전세)와 계급/신분의 투쟁에 관련지어 분석 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계층화의 코드 안에서 문화와 인종적인 요인들, 즉 민족적인 명예와 위신, 사마리안에 대한 인종차별과 로마에 대한 폭력적 저항과 혁명그룹 그리고 정치적 메시아주의 (예수의 제자 시몬은 이전 젤롯당에 속해 있었다)등을 분석한다. 나사렛 예수와 예수운동의 관계는 이러한 사회구성과 문화적 계층의 틀에서 드러나는 복합적인 계기들로 쩌여져 있으며 순환적인 시스템으로 파악된다.

누가복음과 예수의 삶의 자리

예수 복음에서 민중은 정치적 메시야를 추구한 당대 엘리트들이나 혁명세력과는 결을 달리한다. 복음은 주변부로 밀려나간 자들, 순전한 희생자들의 삶, 그리고 잃어버린 자들과의 연대에서 진정한 의미가 밝혀진다. 예수는 이들을 공동체의 인격으로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용서와 은혜의 주체로 만든다.이런 점에서 예수의 복음의 중심에는 '메타노이아'(회개, 돌이킴)와 '죄 용서'가 중심으로 서 있다.

누가복음 서설에서 누가는 최초로 자신을 편집자 신학자로 소개한다. 이것은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와 전파자들이 전해준 것을 순서대로 엮었다(1:1-4). 이러한 편집과정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초기 전승들 (마가 1: 32; 누가의 특수 자료층; 누가 9: 51ff, 14: 1)은 케리그마를 위해 네러티브로 구성되는 데, 이것은 파라다임으로 부를 수 있다
(Dibellius, From Tradition to Gospel, 44).

그런가하면 누가는 삭개오의 네러티브(19 : 1-10)에서 파라다임과 케리그마적 성격을 유대적인 의미에서 회개와 배상의 의미로 말한다. 그리고 누가의 Q 어록 편집에서 복음은 죄사함으로 강조된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 (눅 15: 3-7)에서 하나님은 민중과 집단적으로 “동일화” 되지 않는다. 오히려 죄 사함의 은혜와 인정, 그리고 바리새파와는 다른 토라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새로운 메시아 운동의 성격을 드러낸다. 이러한 예수 운동에서, 죄 용서는 잃어버린 자들의 유효한 역사를 하나님 나라의 빛에서 회복하는 예수의 종말적인 예언자의 모습을 부각 시킨다. 당시 만해도 죄는 종교관료 체제를 통해 사회 계층화가 되어 있었고 '오클로스'(민중)는 권리가 박탈된 하위계층의 삶을 대변했다.

게르/암 하 아레츠 그리고 나사로

나는 케제만이 역사적 예수연구가 가능하고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수용한다. 쇼트로프와 슈테게만은 전승사비평을 통해 케제만의 입장을 사회사적인 삶의 자리에서 구체화했다.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역사적 단계에서 제자들의 다양한 경험들이 분석된다. 이런 사회사적 예수연구에서 요하킴 예례미아스의 비유 연구는 역사적 예수의 정치 사회 경제적 콘텍스트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다. 예수의 생활세계는 세리, 창녀, 죄인, 가난한 자, 거지, 장애인, 병자들에 의해 부각된다 (Schottroff und Stegemann, Jesus von Nazareth, 15).

이러한 사회사적 접근은 계층구성에서 누가복음의 세리장 삭개오를 고려한다. 그리고 통관 세관원들이 단순히 가난한 자들이 아니라, 로마지배와 예루살렘 식민정부 사이에서 수익을 취한 범죄자 임을 간과하지 않는다.  바리새파와 세리의 비유에서 (누18 :9-14) 바리새파는 세리를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 또는 간음한 자와 비교한다. 그러나 누가는 1세기 팔레스티나의 실제적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초대 공동체 안에서 드러나는 바리새파적 태도를 반영한다. 암 하 아레츠 개념은 단순한 죄인이나 오클로스가 아니라 예수 자신이 버라새파들에게 암 하 아레츠로 간주 되었다 (ibid., 24).

예수는 인자 메시야

사회사적 연구에서  프토코스 (하위계층의 빈곤한 자들)가 암 하 아레츠와 연결되고 거지 나사로의 사건에서 구체화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사회사적 연구에서 인자 메시아에 대한 히브리적 묵시 전통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에스라-느혜미아 개혁운동에서 암 하 아레츠는 게르와 사마리아와 관련되고 단순히 종교적 담론을 사회경제적 영역과 분리 시키기가 어렵다.

누가의 Q인용이나 초대전승의  특수자료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오클로스와 프토코스를 개념적으로 구분하고, 게르/사마리아가 인자개념으로 통전된다. 누가는 마가와 달리 오클로스를 이러한 측면에서 새롭게 보았다. 물론 마가나 마태 역시 십자가 처형을 부르짖는 선동당한 오클로스의 모습을 적 나라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누가는 집단적인 백성(라오스)의 소리(23: 23)를 혼동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파악한다.

인자 예수는 집단적 선동에 의해 변질 될 수 있는 메시야가 아니다. 프토코스/오클로스는 그런 짖을 위해 일반화 될 수 있는 무리가 아니다. 이들은 아브라함안에 있는 나사로 같은 순전한 희생자들이다.

누가는 예수를 다니엘의 묵시적 인자로 말한다(22: 69). 여기서 3인칭 어법이 아니라 1인칭으로 말해진다. "에고 에이미"ㅡ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내가 그리고 그들이 말하고 있다 (22: 70). 예수는 여기서 묵시적 인자와 세계의 심판주로 동일시한다. 인자 예수는 자신의 백성들과 같이 있고, 식탁 공동체의 친교를 수립한다. 그의 나라에서 이들은 옥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심판할 것이다(22:30).

누가는 "에고 에이미"와 인자의 관계를 미래를 향한 프로렙시로 파악한다. 더 이상 인자 예수는 집단적 선동에 의해 투사되는 분이 아니라 여전히 그의 백성들과 함께 있고 세상의 심판주로 오신다(Marquardt, Eine Eschatologie 3: 94-95).

더우기 누가에게 예수는 암 하 아레츠가 아니라 랍비의 옷을 입은 주변부 유대인이었고, 그는 가르침의 카리스마와 치유의 능력이 있는 예언자로 존중되었다. 바리새파는 예수를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고(7:36), 예수운동을 도운 부유한 여성들이 언급된다 (8:3). 더우기 혈우병 여인이 치유를 입었을 때 예수는 옷술이 달린 랍비의 경건한 옷을 입고 있었다(8:44. 마 9:20).

예수는 성서를 다르게 가르친다

예수어록과 담화(아포테그마타) 그리고 파라다임 내러티브가 문학의 장르나 양식으로 분석될 때, 히브리적 지평과 이디엄(idiom)은 중요하다. 예수의 이미지는 예언자적인 메시야 시대의 빛에서 해석되며 (누가 7:22; 이사야 35:5-6), 가난한 자들에 대한 예수의 연대는 이사야의 예언 (61: 1-2)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것으로 증언된다.

프리델 마르크바르트에 의하면, 복음서 안에서 나사렛 예수를 증언하는 “예수문서들”은 그리스어로 환원하기 어려운 히브리적인 이디엄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 (Das christliche Bekenntnis zu Jesus, dem Juden, 1: 119, 140). 이러한 예수문서들에 관여되는 누가의 특수자료는 가장 오래된 예수 전통에 속하며, 가난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이후 발전된 기독론적인 인자 메시아 예수전통에 일치한다.

이스라엘의 이디엄, 패러다임 내러티브가 비유와 더불어 나사렛 예수의 생활세계와 사회적인 삶의 자리를 규정한다.
심지어 나사렛 예수는 70인역 성서를 자유롭게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보복의 해를 생략 한다 (사 61:2). 누가는 마가와는 달리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역의 시작에서부터 메시야의 성격을 강조하고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 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사 61:1 f) 대신 “압제당한 자를 자유케하며” (사 58:6)가 도입된다. 이사야의 58장 3-7절은 이사야 61장 1-4장 예언을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원을 구체화하며, 누가는 예수의 평지설교에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실제적 관심을 사실주의적으로 확인한다 (6:20).

바리새파 논쟁과 분파들

나사렛 예수를 증거하는 복음서의 문서들에서 볼 때, 바리새파와의 논쟁은 토라를 둘러 싼 유대-내적인 긴장과 갈등에 속한다. 에세네파 역시 바리새파에 대한 혹독한 비판과 가난에 대한 관심을 예수와 공유했다.

유대교 내부에서 율법해석을 둘러싼 리버럴한 힐렐학파와 엄격한 샤마이 학파의 대립이나 논쟁은 예수의 율법 해석에도 반영된다. 이들은 모세의 토라에 기록되지 않은 “장로들의 유전” (갈 1:14. 마태 23: 2 -4)의 권위를 준수했고, 이러한 구전토라를 인정하지 않는 사두개파와 대립을 했다. 그러나 사두개파는 친헬라주의와 로마와 협력한 사제 그룹이었다.

ROBERT M. SELTZER

요셉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헤롯의 지배시기에 6000명의 바리새파가 있었던 걸로 보도된다. 그러나 산헤드린을 장악한 그룹은 제사장들이고, 지역의 법원들은 비-바리새파 서기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바리새파들에게 예언은 끝났고, 이들은 헬레니즘 유대세계에서 토라의 가르침과 지혜를 가르치는 철학의 선생, 다시말해 스토아 철학자의 타입에 비교 되기도했다(Seltzer, Jewish People, Jewish Thought, 219).

주후 6세기 로마의 직접지배가 유대에서 시작 되었을 때, 갈릴리 출신 유다와 바리새파 사독이 주도한 혁명그룹이 있었고, 제국에 받치는 세금을 거절했다. 이들은 바리새파, 에센네파 그리고 사두개파와 더불어 네번째 철학 (젤롯)을 대변했다.

이들은 대부분 바리새파의 가르침에 수긍했고 로마전쟁에서 마사다 항전까지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받쳤다. 예루살렘에서 젤롯들의 두드러진 활동은 67-68년 겨울로 추정되며, 하급 제사장들을 추종한 세력으로 보인다.
젤롯들은 특히 다니엘 7장 13-14절에 기초한 묵시적인 정치적 메시야 희망을 가졌다. 이들은 로마에 대한 거룩한 전쟁이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의 나라를 지상에 도래하게 한다고 믿었다 (ibid., 224). 젤롯당 시몬은 예수 제자에 속했고, 가나안 사람 시몬으로 불렸다 (마 10:4, 막 3:18).

그러나 예수운동과 당대의 다양한 분파들로 구분짓는 핵심은, '원수 사랑', 예수운동을 박해하는 자들에 대한 용서에 있다. 그리고 바리새파들에 의해 죄인들로 간주된 민중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에 있다. 에세네파의 창시자 “의로움의 선생” 이나 세례요한에게서 '안식일 비판'이나 '기적'과 '치유' 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에세네파의 금욕적 태도와 예수는 전혀 다르다. 

나사렛 예수의 죽음과 부활

예수 전승에서 나타나는 십자가와 죽음은 이후 교회의 케리그마 선포와 사회학적인 삶의 환경과 다르다. 그러나 여전히 내재적 근거로서 중심 역할을 한다. 바울에게서 예수 전통은 빌립보 찬가(빌2:6-11)에서 잘 나타난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전승에 속한다. 예수의 죽음을 통해 마지막 원수인 죽음의 권세가 꺽였다. "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6).

부활의 그리스도는 엠마오 도상에서 만난 두 제자에게 모세의 토라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성경에서 쓴 자기에 관한 것을 설명했다 (누가 24: 27). 구약의 세 가지 경전 (토라, 예언자, 시편)과 예수의 부활의 증거가 되며 교회 공동체는 구약을 예수의 부활의 빛에서 해석했다. 그리고 엠마오 도상의 이야기에서 여전히 예수는 예언자이며,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말씀과 행동에서 권위가 있었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으로 희망했다고 기록된다 (누가 24: 19). 이것은 부활의 은유적(metaphorical) 성격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사회적 구체성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파루시아(parousia)의 순환론적인 시스템에서 그 일치성과 연속성을 부각 시킨다.
부활한 예수는 그의 친척인 글로바 (요 19: 25)에게 나타났고, 글로바는 주의 형제 야고보의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베드로에게 나타났음을 말한다. 이것은 공관복음의 부활 보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전승에 속한다.

불트만이 순진하게 생각하듯이 누가가 속한 초대교회가 만들어낸 자작극이 아니다. 부활을 체험한 자들이 여전히 살아있었고 다양한 분파들로 인해 예루살렘과 바울이 속한 안디옥 공동체의 증언자료들을 누가가 제멋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에게 이스라엘의 나라를 회복할 때를 물었을 때, 예수는 여기서 이스라엘이 기대했던 정치적 메시아를 거절했다(행전1: 6).

마가에게서 예수를 유대의 정치적 메시아로 환원시키는 메시아 비밀 사상이, 누가에게서 이들의 천년왕국을 거절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스가랴의 예언적 지평에 서 있다. 누가가 복음서를 기록할 때,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 되었고, 갈릴리 중심이나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 기독교인 그룹들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누가는 새롭게 복음운동을 시작 하기위해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부활의 사건 안에서 오순절 성령이 임재하고 예루살렘의 친교 공동체주의에서 나타나는 물질의 나눔(코이노니아)과 섬김(디아코니아)의 삶을 메시아 공동체의 원형으로 파악했다. 시작과 더불어 시작한다!ㅡ누가의 신학적 인식론이다. 누가에게 나사렛 예수는 부활의 주님이며, 예루살렘에서 성령을 통해 그분의 사역을 새롭게 열어가신다. 그리고 유대적 천년왕국의 기대를 거절하면서 메시아적인 시간을 교회에 허락하며, 남은 자들의 교회로 하여금 화해의 복음을 실천 하면서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이것은 바울의 기독론적 실천을 말한다.

Emmaus Road by Mike Moy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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