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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신학과 사회철학

슈미트의 파시즘 정치와 그의 후예들

by 파레시아 2023. 2. 4.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

 

슈미트에게 국가는 사법제도와 삼권분립 그리고 의회 민주주의에 의해 작동되는 정치적인 장소가 아니라, 비상상태를 정상화시키는 개인 주권자의 정치적 결단이 정치의 본질을 이룬다. 이를 통해 국가의 주권이 정의된다. 정치는 지도자의 인격적인 카리스마적 결단에 존재한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슈미트는 정치를 동지와 적의 개념으로 진영 논리화하고, 이후 <정치 신학>에서 강화해 나간다.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는 이분법이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전제조건이 된다. 국가는 "거대한 산업공장"처럼 돌아가는 자동적인 장소가 아니다. 이러한 리버럴 국가이론에서는 개인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주권이 실종된다 (Political Theology, 48).

 

20세기의 기술지배는 "중립화와 비정치화"의 현상으로 나타나며, 기술지배의 시대에서 모든 인격적인 차원은 사라지고, 이전 정치가들이 구가했던 지도력과 결단도 같이 사라진다. 신앙이나 신학적인 이슈는 개인의 영역에 머문다. 세계의 비주술화 과정을 거쳐 쇠창살 우리에 갇히는 베버의 페시미즘에 대항하여 슈미트는 절대권력의 정치를 시도한다 (The Concept of the Political, xxx),

 

슈미트는 정치 지도자 개인의 결단을 주권자의 자리로 등극 시키면서, 삼권분립, 의회 민주주의 정당성, 시민적 승인과 참여를 비판한다. 국가 비상상태의 위기를 막을 수 있는 독재자의 주권지배가 정치개념의 중심이 된다. 국가의 비상사태에서 누가 어떤 권위를 가지고 주권을 행사하는 가? 여기서 그는 국가를 입법질서로 파악하는 사법적 민주주의를 거절한다. 이것은 국가의 비상 상태나 위기를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슈미트와 그의 후예들

 

슈미트의 예견과는 달리, 미국의 정치에서 트럼프의 유사 파시즘 지배방식은 실패로 끝났다. 여전히 국민주권과 투표제도 그리고 시민 저항권은 대통령의 비상권한을 제한한다. 슈미트의 후예인 블라디미르 푸틴은 지나치게 사회학적으로 영토와 주권을 강조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 했지만, 그는 지금 정글에서 헤매고 있다. 실각 정도가 아니라 내전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히틀러처럼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다고 전해진다. 한 개인에게 절대권력을 부여하고, 일당이 지배하는 국가 시스템은 역사의 과정에서 당 관료제로 인한 자기 붕괴나, 아니면 시민저항, 또는 전쟁으로 막을 내린다.

 

이러한 경험적 현실은 슈미트의 유명한 정의를 무색하게한다: 주권자란 비상상태에서 예외상태를 결정한다. 국가의 정상적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카리스마적 독재자의 결정권한이지 입법의 질서나 의회 민주주의 소통 또는 국민적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치적 결단주의와 독재권력에서 누구는 살리고 죽일 것인지 하는 선택과 비오 폴리틱스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이 식민지나 전쟁에서 살해정치 (네크로 폴리틱)로 등장한다. 이러한 역사적 범죄를 누가 책임지는 가?

 

독재자는 성역으로 몸을 숨기지만, 억울한 희생자는 역사에서 두 번 죽는다. 첫 번 째는 억울한 희생으로 역사에 묻혀버리고, 두 번 째는 독재자의 승리가 예외상태로 인정되면서 이들의 폭력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되면서 죽는다. 슈미트의 주권이론에는 희생자로 묻힌 유효한 역사에 대한 일말의 가책이 없다. 이미 무제한 권력의 군주는 모든 정치적 책임에서 예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자가 산 자를 잡는 것이 역사의 이치다. 오히려 진영논리가 파시즘의 야만의 술책으로 폭로된다.

 

바이마르 헌법 48조항

 

슈미트는 근대의 사법체계 안에서 비상상태에 대한 무제한적 권력을 주권으로 규정하고, 전제주의 지배정치를 설정했다. 그는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 48조 항을 검토하고, 예외의 경우가 대통령의 권한에 있지만 여전히 의회의 컨트롤에 있음을 본다. 그는 힌덴베르크 대통령에게 극우파와 극좌파에 대항하여 임시 독재권을 발동하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정치는 법과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슈미트는 이러한 리버럴 사법 민주주의가 비상상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무제한적 주권행사를 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국가의 존재는 입법체계나 정당성의 우위에 있어야 한다. 사회적 재난이나 전쟁은 사회학적인 것이며, 입법과정에서 해결되기가 어렵다. 모든 법은 무시간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적이다 (Political Theology,13).

 

슈미트는 자신의 무제한 주권이론을 위해 주권독재와 위임독재를 구분했다. 전자는 위기를 악용하고 기존의 사법제도를 철폐하고 권력을 강화하지만, 후자는 기존의 사법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행사된다.

 

슈미트는 바이마르 헌법 48조 항을 위임독재로 파악하고, 비상상태에서 대통령의 권한에 부여된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중단하고 병력 사용을 통해 예외상태의 정상화를 위해 개입할 수 있게 한다.

 

전제적 주권주의 vs 사법적 민주주의

 

그러나 슈미트는 국민 기본권의 침해가 몇 가지 열거된 조항을 넘어서서, 동료와 적의 이분법의 틀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확대시켰다. 의회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는 영국에서나 가능하지, 독일에서는 타당하지 않다.

 

사실 로크나 루소 또는 칸트의 전통에서 국가주권의 핵심에 속하는 비상상태는 고려되지 않는다. 국민적 승인이 없는 무제한의 권력은 문제시되며, 개인의 권리와 사적 소유를 침해할 때 그것은 저항과 심지어 혁명으로 진행된다.

 

슈미트에게 적수들은 루소의 일반의지에 기초한 입법제도와 국민주권이며, 신 칸트주의자인 한스 켈젠의 사법적 민주주의다. 법은 보편적으로 정당성을 가져야 하며, 이것을 기초로 국가의 주권이 행사되어야지 슈미트처럼 법이 개인 지도자에 의해 비상상태를 위해 남용되서는 안된다. 전제지배나 치외 법권적인 독재자는 사법적 민주주의에서 자리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같은 정치사에서 이승만을 통한 사법적 민주주의가 정착되지만 슈미트의 독재행사는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박정희 같은 경우 군사독재가 사법적 민주주의 틀 안에서 행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신헌법에서 독재자의 종말이 시작되었다. 유신헌법의 파시즘 국가는 일본 메이지 파시즘 신정정치와 비스마르크 헌법 그리고 조국의 근대화로 짜인 이데올로기였다.

 

이 지점에서 슈미트의 정치이론은 서구 의회 민주주의 전통과는 달리 후기 식민지 상황에서 남미나 아프리카나 그리고 아시아 등지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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