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 유대교는 역사적으로 볼 때 로마 제국 시대에 이스라엘의 중부도시에 세워진 얌니아 또는 야브네에서 시작 되었다. 70년도 2차 예루살렘 멸망 이후 해안 지역에 위치한 야브네에서 랍비 벤 자카이와 가말리엘 2세의 지도력으로 에수와 바울 당시 바리새파의 가르침은 랍비 유대교로 발전 되었다. 초기 랍비 유대교의 가르침은 리버럴 힐렐과 강경파 샤먀이의 가르침의 종합하면서 특히 힐렐의 가르침으로 전개되었다.
예수와 랍비 유대교
예수와 랍비 유대교의 관계는 70년 이후 시작된 랍비 유대교의 시선을 통해 복음서를 고고학적으로 해명한다. 마태복음 23장 1절 이하에서 보도되는 모세의 자리는 회당에서 가르치는 자리이며, 미슈나에 포함된 <조상들의 어록>에서 확인된다. 토라의 전승의 연결은 모세의 자리를 통해 이어진다.
"모세는 토라를 시내산에서 받았고, 그것을 여호수아에게 전해 주었다. 여호수아는 그것을 장로들에게, 그리고 장로들은 예언자들에게, 그리고 예언자들은 위대한 유대인 회당의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다." (Avot 1:1)
누가복음 (4: 16)에서 예수는 자기 고향 나사렛에서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서 성서 낭독대에서 이사야서를 읽었다. 그리고 이사야의 예언과 율법을 성취했다 (마 5:17). 주석과 해석과 가르침은 모세의 가르침의 자리에 앉은 채로 행해졌다. 예수는 서기관과 바리새파의 가르침을 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정했다. 마태와 누가복음에서 증언되는 나사렛 예수와 회당과의 관계는 바울에게서 예수는 "여인에게 났으며 율법 아래 있었다"고 언급된다 (갈 4:4).
토라에 의하면 유대인 어머니를 가진 자들은 유대인이다. 예수의 유대인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어머니 마리아이다. 바울은 유대 기독교 공동체의 전승을 알고 있었다. 누가복음에서 12살의 예수는 바 미츠바 즉 계명의 아들이 되고 회당에서 율법을 읽도록 요청된다 (2:41-51).
더 놀라운 것은 예수는 유대인의 예배에서 기도를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기도 숄 (탈릿)을 두르고 있었다. 끝 부분에 술이 달려있다. 예수 당시 경견한 유대인들은 옷술 (치치트)이 달린 기도 숄이나 또는 옷술이 달린 겉옷(평상복)을 입었다. 이것은 남이 함부로 만질 수가 없다.
찌찌트는 613 개 미츠보를 상징한다. 하나님은 이것을 보면서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고 마음을 방종하게 가지지 말고 안목의 정욕을 추구하지 말라고 한다 (민 15: 37- 41). 오늘날 뉴옥이나 버클리 주변의 유대인들의 양복 하단에 찌찌트가 달린 것을 쉽게 본다.
누가복음 8장 43-44절에서 혈루증이 있는 여인이 예수의 옷가에 손을 대고 나았다. 이것은 옷술( 치치트)이며, 기도할 때 머리에서 어깨 까지 걸치는 탈릿의 끝 부분이다. 여기에 각 매듭에 푸른 색과 하얀색을 엮어 매듭진 술이 달려있다.
혈루증으로 고통받는 여인의 치유 기사는 마가복음에서 치치트에 대한 여인의 믿음을 말한다 (5: 21 -34). 예수가 입은 탈릿은 술 (치치트)을 달 수 있도록 만든 기도 숄이다. 기도할 때 술이 보여지는 것은 중요하다 (민 15:37-41). 술이 없는 탈릿은 보자기와 다를 바가 없다. 유대인들은 기도 하면서 치치트를 보면서 야훼 하나님과 쉐마 이스라엘을 기억했다.
바 미츠바가 끝난 소년들에게 처음으로 탈릿을 사용하여 기도하는 법을 가르첬다. 혈루증의 여인은 치치트를 만졌고, 토라의 정결예전을 어겼지만, 예수는 "딸아" 부르면서 치유를 선언했다. 이 여인의 믿음은 예수 안에서 정결예전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권능을 보고 있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서 치유의 하나님(출 15:26--야훼 라파)이 오셨다.
예수와 바리새파 비판
예수가 입었던 기도의 숄은 예수 당시 바리새파의 일상복이었다. "그들은 ...말씀 상자를 크게 만들고 옷술을 길게 늘어 뜨린다" (마 23:5). 예수는 바리새파들이 하나님앞에 집중하고 정직하기 위한 치치트의 의미를 상실했고, 위선적으로 만들어버린 것을 비판했다.
율법학자나 바리새파에 대한 예수의 비판은 신랄했지만 (마태 23: 27-28, 누가 11: 37-54), 당대 7가지 유형의 바리새파 가운데 자신의 선행을 어깨애 힘을 주고 과시하는 바라새파가 있었다. 그런가하면 남에게 선행을 강조하지만 자기는 여러모로 핑계를 대면서 하지 않는 바리새파도 있었다(마태 23: 4).
그런가하면 선행과 악행을 구분하지 않고 자기 이익에 따라 계산하는 바리새파가 있었다. 돈을 사랑하고 수전노 같은 바리새파도 있었다 (23:16). 또는 악행을 하고는 자신의 잘못을 밝히라는 큰소리치는 위선적인 바리새파도 있었다 (Yerushalmi 9: 5 (14b).
예수의 바리새파의 위선에 대한 고발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련되고 예언자들과 의로운 자들의 박해와 죽음에 관련되어있다. 이것은 억울한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을 선언하는 예수의 종말론적인 예언자의 모습을 드러낸다. "땅에 죄없이 흘린 모든 피가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23: 35).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장차 황폐하게 될 예루살렘 멸망을 보면서 한탄하는 것은 마태와 누가가 공유하는 Q자료에 속한다. 모세는 아스라엘 백성 앞에서 삶과 죽음을 위해 토라를 세웠다 (신 30:15). 모세는 백성들이 죽음이 아니라 삶을 위해 사용할 것을 원했다. 생명이 위협될 때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허락이 된다. 랍비적인 가르침에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지 그 반대가 아니다 (마가 2: 27; 미슈나 8:6).
예수는 토라를 생명을 위해 해석하고 가르쳤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마태 12:8). 예수와 바리새파의 대결은 이스라엘 역사의 반복되어 온 억울한 희생자들과 예언자들의 삶에에 연관되고, 토라의 생명을 추구하는 예수의 확고한 태도를 보여준다. 토라를 정의와 생명으로 해석하라 ! 이러한 접근은 역사적 예수가 실종된 불트만의 케리그마 신학에 제동을 건다.
역사적 예수 연구는 불트만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봉쇄가 되고, 역사적 예수를 추구 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정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신앙은 역사적 사실에서 확실성을 찾는 것이 아니다. 신앙이 역사적 예수와 상관이 없는가? 신앙의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는 서로 다른 것인가? 이런 불트만적인 가현론은 나사렛 예수와 당대 유대교와의 비교연구에서 허구로 드러난다. 나사렛 예수의 진정한 모습은 아포테그마타(단순한 예수어록)를 기초로 한 불트만의 양식비평으론 알 수가 없다.
오히려 나사렛 예수에 대한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요한에 의한 세례, 12 제자들의 임명, 성전을 둘러싼 논쟁과 정화, 십자가 처형, 이후 지속적인 예수운동 등). 성전정화를 기초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사실주의적 구성은 불트만의 아포테그마타 안에 박제된 역사적 예수가 허구임을 밝힌다(Sanders, Jesus and Judaism, 11).
성전정화는 리버럴 성전학자들처럼 상징적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체제에 대단히 위험한 것이었다. 로마제국에 기생해 부와 권력을 누린 제사장들이 이 사건을 훨씬 더 심각하게 보았다. 나사렛 예수는 당대 유대교와 메시아 운동들과의 연관에서 실제적인 삶의 자리를 갖는다. 복음서는 이러한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과 활동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고 서로 다른 공공체의 상황에서 해석한다.
바울의 메시야 종말운동
바리새파 출신 바울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라고 했을 때 그리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메시야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거듭난 사람은 그분의 거룩한 옷 (토라)을 입고 지키며 살아간다. 거듭난 사람은 토라의 옷을 입고 산다.
복음서의 묵시적 종말론은 에세네파와 랍비 유대교의 종말론에 겹쳐있다. 그러나 에세네파에서 몸의 부활에 대한 사상은 없다. 오히려 복음서의 종말론은 랍비 유대교의 종말론과 새로운 비교 연구로 드러날 수가 있다.
복음서에서 부각되는 예수와 암 하 아레츠와 오클로스 그리고 지극히 적은 소자의 일차적 의미는 예수의 갈릴리 유대교가 바리새파 유대교와 내적인 비판과 대화에 연결 되어있음을 보여준다. 아람어의 문화적 배경에 서 있는 예수운동은 귀족주의적인 필로와 같은 헬라적 유대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디아스포라 출신 바울에게서 예수의 갈릴리 유대교 보다는 가말리엘의 가르침과 필로의 헬라적 유대교가 그의 메시야 운동에 깔려있다. 할례와 코셔규정에 대한 거절은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에게는 예루살렘의 유대주의 기독교인들에 비해 선택적 친화력을 갖는다.
이것은 스데반과 디아스포라 유대 기독교인둘의 활동과 박해를 피해 이들이 다마스커스나 안디옥에 교회를 세운데 서 잘 볼 수있다. 바울은 이곳에서 초기 예수전승을 배울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바울이 안디옥 교회로 부터 받은 예수전통의 전승자료나 어록들은, 예루살렘 공동체와 달리, 초기 아람어 예수전통을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을 위해 그리스어로 이미 번역된 것이다.
예를들어 Q 어록 자료는 마가복음에서 볼 수 없지만, 일찌기 구전이나 파피루스를 통해 전해오던 것을 ㅡ마태가 히브리어로 ㅡ40년 도에서 50년도 사이에 편집 했다고 추정된다. 이것은 코라진과 베세다 또는 가버나움등의 지명을 통해 갈릴리 관점을 반영하고 시리아에서 기록되었다. 누가는 Q 어록의 순서를 마태복음보다 더 잘 보존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의 죽음 이후에도 순회하는 설교자들의 본래적인 예수어록에 속한다. 갈릴리가 아니라 예루살렘 공동체가 급진적인 순회 설교자들의 중심지로 파악된다 (타이니센). 묵시적 종말론은 Q 어록의 결론에 속한다 (누가 17: 22-37).
Q 어록은 마틴 디벨리우스에 의하면 당대 유대교의 할라카 장르에 비견될 수 있고,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를 목적으로 그리스어로 번역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학적 해석을 담는 하가다와는 달리 할라카는 제자의 삶과 지켜야 하는 규정과 계명을 담는다
(Dibelius, From Tradition to Gospel, 28).
Q자료 편집과 번역을 놓고 볼 때 바울이 안디옥 교회를 통해 나사렛 예수와 관련되어있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바울은 자신의 랍비 유대교와 안디옥 공동체를 기초로 부활하신 메시야 운동을 이방인 선교에서 펼쳐나갔다. 바울의 종말론은 여전히 묵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는 로마 제국의 지배 방식에서 노예와 주변부 인생과 더불어 중산층을 포함하면서 그의 남은 자 신학을 메시야 공동체에서 발전시켰다.
이것은 갈릴리 오클로스와는 전혀 다른 삶의 정황을 지적하며, 바울의 아게네스 (비천한 출신들, 고전 1: 28) 신학을 말한다. 그의 아게네스신학은 아무 것도 아닌 자들(메 온토)를 통해 로마의 기존질서를 전복시키는 하나님의 혁명을 지적한다. 호머 사케르와 같은 노예가 차별없는 화해의 복음에 들어온다. 이러한 급진적 해석은 로마의 페드라스트 성적착취 제도를 날카롭게 고백한다 (롬 1: 26 -27).
그러나 필로의 헬라적 유대사상은 바울과 비교 검토될 수 있는 내용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출신 바울은 팔레스티나 유대교와 이후 랍비 유대교에 대해 공유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바울의 신학과 랍비신학에 대한 비교연구는 새로운 장르에 속한다.
바울: 아브라함-그리스도
바울의 갈라디아서에서 중심사상은 아브라함과 메시야 예수의 관계에 있다. 그리스도의 옷 (세례)을 입은 자들에게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차별이 없다 (갈 3: 27).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은 세례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주님으로 부터 명령을 받았고, 그는 이것을 십자가의 말씀으로 연결한다 (고전1: 17-18). 그러나 바울은 갈릴리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준 세례의 명령(마태 28: 19)을 중요하게 수용했다.
갈라디아의 차별없는 복음에서 유대인 기독교인과 이방인 기독교인의 인정과 화해는 이미 갈라디아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과 동일한 관계를 갖는다.
모세의 토라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복음의 약속으로 먼저 있었다.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믿음의 사람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이다 (갈 3:29).
이전의 이방인이였던 갈라디아 교인들은 아브라함의 약속과는 상관이 없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모세의 할례를 통해 아브라함을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메시야의 복음을 통해 아브라함의 약속에 접붙임을 당한다. 물론 아브라함은 할례받은 자들의 조상이지만, 그는 이미 할례 이전에 하나님께서 죄 없음을 인정 해주었고 모든 믿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다 (롬 4:11).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다" (롬 10:13). 아브라함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약속-순종-믿음"이 바울의 그리스도론에 기초가 된다. 그러나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롭고 선한 것이다(롬 7:12).
그리스도는 율법의 목적 즉 성취가 되지 "끝마침" (종언 내지 폐지)이 아니다 (롬 10: 4).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룬 것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13:10). 바울의 칭의론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새언약의 빛에서 새로운 창조이며, 이것은 그리스도의 토라를 성취한다 (갈 6:2).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레 19:18)는 말씀 속에 다 들어있다 (갈 5: 14).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통해 그의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화해의 복음을 자유의 선물로 주셨다 (Rohde, Der Brief
des Paulus an die Galater, 166).
바울의 아브라함/그리스도에 기초한 칭의론 즉 새로운 창조는 랍비 유대교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가 않다. 613 개의 미츠보는 에언자 하박국에게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2:4).이러한 믿음은 아므나(emunah)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신실함을 의미한다. 랍비들은 이러한 아므나의 믿음을 아브라함에게서 보았다 (창 15:6). 이것이 쉐마 이스라엘로 이어지며, 랍비 아키바에게 이웃사랑의 계명(레 19:18)으로 표현된다 (The Talmud, Selected Writings, 22, 28).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신의 칭의론을 시작할때 하박국 2:4을 기초로 하나님의 의로움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나타났다고 말한다 (롬1:17). 그리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랍비적 해석방식으로, 그러나 그리스도론적으로 해명한다. 토라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하고 순종하는 사람 (Do and be obidient)이 의로운 사람이 된다 (롬: 13; 출 24: 7).
종말론의 지평
랍비적 유대교에 의하면 메시야의 구원은 묵시적 대재난 이후 지상에서 이루어지며, 평화의 다스림이 시작된다.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고, 마지막에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최후의 심판이 온 인류에게 행해진다.
랍비 유대교의 종말론은 바울의 메시야 종말론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의 평화 시대로 파악되며,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재림의 그리스도는 왕 노릇 하면서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고 나라를 하나님께 바칠 것이다 (예루살렘의 회복). 나중에 멸망 받은 원수는 사망이다 (최후의 심판). 아들은 아버지에게 복종하고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안에 계시게 된다 (고전 15: 28).
이러한 바울의 종말론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이 포함되며 (롬 11), 랍비적 유대교의 종말론을 메시야 예수 중심으로 파악한다. 바울의 칭의론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그리스도의 화해의 복음 안에서 인정한다.
바울의 차별없는 복음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롬 10:13; 요엘 2: 32).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다 불의에서 떠난다 (딤후 2:19; 민 16:26).
우리가 흔히 입으로 시인하고 믿으면 구원에 이른다는 고백은 값비싼 것이다 (본회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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