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슈미트와 조르지아 아감벤
사도 바울의 카테콘(katechon)과 정치신학은 독일의 법학자인 칼 슈미트에 의해 발전되었다. 카테콘은 억제하는 자란 뜻이며 데살로니가전서 2장 6-7절에서 나타난다. 정치철학에서 홉즈의 국가이론(리바이어던)은 슈미트에게 묵시적 차원에서 무질서를 억제하는 카테콘 정치로 출현한다.
칼 슈미트는 <정치신학>에서 국가주권을 사법적인 틀을 넘어서서 지도자의 카리스마적 지배와 정치적 결단주의를 강조했다. 그리고 <지상의 법>에서 사탄의 세력을 억제하는 카테콘을 로마제국과 이에 결부된 카톨릭으로 보았다.
슈미트는 1933년 나치정당에 가입했고, 1945년까지 베를린 대학의 법학 교수로 재직했다. 전 후 아우슈비츠 문제와 교회와 국가의 문제를 다루는 새로운 정치신학의 모델이 독일에서 위르겐 몰트만과 요한 뱁티스트 메츠에 의해 시도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슈미트의 국가 이론에 대한 본격적인 대결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슈미트의 정치철학을 비판적으로 전개하는 조르지아 아감벤은 바울신학과 정치철학을 그의 호모 사케르와 슈미트의 비상상태 개념 그리고 신체 정치학을 통해 발전시킨다. 그가 미국의 저명한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일하기 위해 연구 프로젝트를 준비하다가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를 비판하고 미국대학의 초청을 거절한 것은 유명한 사건에 속한다.
성서적으로 볼때 바울시대에 로마의 노예들은 호모 사케르에 속했고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경우는 아주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갈라디아서에서 차별 없는 공동체는 역사적인 실례에 속하며 바울의 정치적 급진주의를 보여준다. 유니온 신학교의 저명한 바울 연구가인 브리기테 카는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의 투쟁이 단순히 복음과 유대적 율법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신학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 미셀 푸코는 <성의 역사 1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정치적 동물"에서 인간의 신체가 정치화되는 데 착안을 했다. 푸코는 생명제어 기술개념을 발전시키고, 그의 biopolitics는 북미의 사회학계에선 섹슈알리트, 젠더, 생의학품, 판데믹에서 나타나는 생명제어 기술 등을 논의하는 데 고전의 자리를 차지한다. 전쟁에서 단순한 군사 복합체가 아니라 의료제품을 만드는 대기업들이 군수물자와 관련하여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인다. 무기와 의료물자는 이제 물신숭배의 자리를 차지한다. 판데믹과 우쿠라이나 전쟁에서 번지는 글로벌 시민전쟁의 양상에서 사회과학자둘은 카테콘정치에 주목한다. 자본주의 종언이 아니라 세계의 종말이라는 묵시적 전환이 나타난다.
왜 신체 정치학이 중요한가?
한나 아렌트의 고전<전제주의 기원>이 출간된 이후 정치 권력의 지배방식은 인종차별과 열등하고 낯설은 신체감금 수용소 그리고 독재와 제국주의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없이는 불가능해진다. 이것은 신체정치학과 전제적 지배방식의 연계를 지적한다.
신체 정치학이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의 영역에서 들어올 때 더 이상 과거의 유물인 진영논리나 우파 좌파의 이분법은 설득력을 상실한다. "누가" 그리고 "누구의" 좌파 인가가 토론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양 진영에서 행해진 독재와 생명제어기술과 살해정치 그리고 인종차별이 계급투쟁에 앞서 논의된다.
신체 정치학의 저변에 허버트 스펜서의 인종 차별주의와 자유방임 자본주의가 깔려있다. 영국은 이런 제국이론을 통해 인도지배를 정당화했다. 일본은 이것을 직 수입하고 사무라이 정신에 덧칠했다. 오늘날 양복입은 사무라이들은 식민지 근대성 개념을 통해 일제의 침략 정당성을 시도한다.
마르크스를 집으로 돌려 보내기
우리는 전망이 불투명한 시대에 서 있다. 최근 마르크스를 둘러싼 논쟁에서 마르크스는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려보낸다. 마르크스는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에 나타난 사회경제 문제를 부르주와지와 프로렐타리아트로 이분화하고 혁명을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영국의 의회민주주의를 위해 차티스트 운동에 가담했다. 마르크스 이론은 영국의 산업혁명과 영국 식민지배 분석, 더 나아가 프랑스 대혁명이후 전개된 복잡한 상황에 관련되어있다. 특히 1848 전 유럽에서 발생한 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의 입장을 사회학적으로 해명하지 않을 경우, 마르크스 이론은 실천적 상황과 유리된 채 박제되거나 이데올로기 상품처럼 남용된다.
그러나 오늘날 서구의 학계에서 더 이상 마르크스는 일반화되지 않고 자기고향으로 되돌려 보낸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새로운 연구와 영국의 산업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의 평가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비판적으로 논의된다. 더 이상 마르크스의 유령은 러시아나 중국에서 찾지 못한다.
정치적 결단주의와 전제권력
슈미트는 <정치신학, 1922>에서 주권 문제에 몰두하고, <정치신학>의 첫머리에 주권을 정의하면서 다음처럼 쓴다: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 이것은 슈미트에게서 단순한 예외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상상태를 의미한다. 예외 상태는 입법적인 조치나 가이드라인을 통해 경제적인 위기나 자연재해 등을 극복 하지만, 비상상태는 입법의 체계 밖에서 행사되는 지도자 개인의 절대권력을 통해 작동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슈미트의 정치신학의 명제는 다음과 같다. "근대 국가이론의 중심 개념은 세속화된 모든 신학적 개념이다."(Schmitt, 36)
파시즘의 현상학
슈미트의 파시즘적 사고는 근대성을 비판하기 위해 시대착오적인 낭만적인 이념이나 전근대적인 지배방식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호출한다. 여기에 맞추어 사회를 재단한다. 이것은 일본의 메이지 개혁이나 박정희 유신정치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 나기도 했다. 개인과 인격의 가치나 시민사회의 영역은 통제국가에 의해 흡수되고, 집단주의 문화는 친구와 적으로 나누는 진영 논리화 된다.
이러한 파시즘의 현상학은 내재적 비판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지적한다. 내재적 비판은 변증법적이며 전통의 한계를 동시대의 문제와 더불어 검토한다. 내재적 비판은 문예비평을 다루는데서 특히 발터 벤야민에 의해 발전되었고, 비판이론의 거두인 막스 호르크하이머에의해 정치, 사회 그리고 문화적 영역에서 전개되었다.
아감벤은 비판이론에 속하는 발터 벤야민과 미셀 푸코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고, 이제 슈미트의 비상상태를 내재적으로 비판하려고 한다. 그리고 아감벤은 신학의 주제, 특히 삼위일체론이나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아 그리고 삼위일체와 관련된 예전논쟁을 검토한다. 그가 쓴 <왕국과 영광>은 미국 신학대학원의 조직신학시간에 텍스트로 다루어지고, 그의 바울 해석은 성서비평학에서 논의된다. 그런 면에서 공공신학이 아감벤에 주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감벤: 비상상태 정치
아감벤의 분석에 의하면,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했을 때 그는 국가와 독일 국민보호라는 구실로 개인의 자유에 대한 바이마르 헌법의 조항을 정지 시켰다 (2월 28일). 사법적 측면에서 제 3제국은 비상사태 국가로 이후 12년간 지속되었다. 근대적 의미에서 통제국가는 사법적으로 지지되고 권력자의 정치적 결단인 비상상태와 더불어 시작된다. 반대파들에 대한 시민전쟁이 법적으로 선언되고, 반대파들 뿐만 아니라 전제정치에 통합될 수 없는 시민들의 신체가 구금된다. 인종차별정책을 근거로 수용소가 세워지고 살해의 정치가 시도된다.
아감벤은 <왕국과 영광>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 (오이코노미아)에 착안하고 이것이 민주주의와 승인개념의 토대로 본다. 이런 점에서 아감벤의 정치철학은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아를 사회계약론과 승인으로 스피노자 또는 루소에게 그리 먼 거리에 있지않다 (xii).
아감벤은 경륜적 삼위일체교리에 주목하고 스위스 바젤대학 교수였던 오스카 쿨만의 구원사에서 종말론의 차원이 실종되었다고 비판한다. 아감벤은 쿨만이 아니라 슈미트의 주장ㅡ근대의 국가이론은 세속화된 신학개념ㅡ 을 검토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경륜신학을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도시국가)가 아니라 타우베스의 생명신학에 접합시킨다.
하나님의 정치: 오이코노미아
아감벤은 바르트에게 영향을 받은 스위스 유대인 출신 야콥 타우베스에게 자신의 로마서 주석을 헌정하고, 자신의 연구가 타우베스에게 밪지고 있음을 말한다. 타우베스는 슈미트의 정치신학과 카테콘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감벤은 타우베스의 메시아의 시간을 수용하면서 로마서의 카이로스 개념에 접합시킨다 (롬 3: 26; 8:18; 11:5; 13:11).
이 지점에서 아감벤은 바디우의 바울해석과 보편주의 그리고 반유대주의를 거절한다. 아감벤은 바디우의 반-변증법적인 주체주의나 모택동주의에서 거리를 취한다. 아감벤에 의하면 바울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바울을 유대 메시아의 콘텍스트에 재설정한다. 아감벤의 독해 전략은 바울의 메시아 시간을 근본 원리로 설정하고, 바울의 시간 개념과 내적형식을 파악한다. 바울은 현재의 시간을 지금시간(ho nyn kairos)으로 정의했는데, 이것은 일상의 삶에 치고 들어오는 메시아적 파열을 의미한다 (ibid., 52).
아감벤은 메시아의 카이로스를 고전 7: 29절 (남겨진 시간—“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을 통해서 보는 데, 이 표현은 고전 (7:17–22, 29–32)에서도 나타난다. 이런 해석의 관심에서 아감벤은 고전 7장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처럼” (hõs mê, 7: 29 –31)을 분석한다. 메시아의 추종자들에게 바울은 로마의 법적인 관계가 권위를 갖지 않는 것처럼 살아 가라고 말한다. 메시아 공동체는 메시아적 소명에 의해 살아가며, 세속의 문화적 정체성과는 다르며 자유롭다 (할례/무할례, 자유인/노예, 남성/여성)(ibid., 22–23, 26).
바울에게서 남은 자 사상은 예언자 이사야와 엘리야와 관련된다(롬 9: 27, 11:4). 남은 자는 화해의 복음을 수용하고 믿음의 실천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소수의 백성들을 말한다. 특히 고전 1: 28절에서 바울은 그의 하위계층 신학을 전개하는데 이것은 그의 아게네스 신학을 말한다. 비천한 출신들인 아게네스는 구약적인 의미에서 게르, 누가복음의 사마리아인 그리고 로마의 멸망당할 존재(homo perditionis)을 포함한다.
이것은 예수에게서 나타나는 ‘암 하 아레츠’나 ‘오클로스’나 프토코스와 같은 나사로를 아게네스 차원에서 확대시킨다 (고전 1:28). 바울의 아게네스 신학은 아무 것도 아닌 자들 (메 온타)를 선택하고 세상의 기존질서를 전복시키는 (카타르게세이)하나님의 혁명을 담고있다.
그러나 아감벤은 자신의 호모 사케르가 성서적 스펙트럼에서 게르와 묵시문학과 화해의 복음안에 이미 아게네스의 삶에대한 헌신으로 각인 된 것을 충분히 보지 못한다.
카테콘 논쟁
아감벤은 칼 슈미트와 에릭 페터슨의 카테콘 논쟁을 분석한다. 페터슨은 바르트가 괴팅겐 대학 교수 시절 <신학이란 무엇인가?>로 격돌한 적이있는 루터란 신학자였고 훗날 카톨릭으로 개종했다. 예수의 마지막 재림에서 적그리스도를 억제하는 카테콘은 슈미트에게 제국의 역할에 있지만, 페터슨은 유대인들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데서 본다. 슈미트는 신성로마제국에서 카테콘의 역할을 보지만 아감벤은 두 사람의 입장을 거절하고 바울의 입장을 옹호하고 (롬 11:26), 파시즘의 반유대주의를 비판한다.
아감벤에 의하면 로마서에서 나타나는 바울의 남은 자의 신학을 서구의 역사에서 중요한 정치적 유산을 담고 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와는 다르다. 메시아적 백성은 전체나 부분도 아니며, 또한 다수나 소수도 아니다 (Agamben, The Time, 57). 아감벤은 다니엘서의 인자와 같은 이가 복음서에서 어떻게 전개되는 지를 알고있다. 이런 점에서 아감벤의 남은 자의 정치적 함의는 메시아의 시간 구조에서 볼 때, 남은 자들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결정적인 순간에 민중으로 드러나기도하며, 이들은 시민들로서 실제적인 정치 주체로 등장하기도한다 (ibid., 57; 고전 1:28).
이것은 집단개념보다는 공동체안의 인격을 가르킨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히브리적 관계존재론을 말하는 데, 개별적인 인격이나 남은 자들은 전체를 위해 존재한다. 예수의 인격이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속죄론은 전형적으로 히브리적 관계 존재론을 표현한다. 다니엘 7장 13절에서 인자같은 이가 지극히 높으신 백성들과 같이 있다. 메시아 예수가 있는 곳에 그의 백성들이 같이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남은 자에 대한 바울의 사고에서 개별존재는 전체성을 대표하는데,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는 관계론적 존재론 (pars-pro- toto)으로 나타난다 (Marquardt,
Eine Christologie, I:188).
아감벤은 <왕국과 영광>에서 에른스트 트뢸취의 <교회들의 사회적 가르침>을 새롭게 수용한다. 트롤취는 매우 중요한 사회학적 신학자였지만, 그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베를린 대학의 종교철학 교수의 자리로 옮기면서 신학의 영역에서 그의 중요성이 사라지다 시피했다. 트뢸취는 그의 <교회들의 사회적 가르침>의 결론에서 "차안의 능력은 현재의 능력"이라는 유명한 종말론적 문구를 남겼다. 아감벤은 <왕국과 영광>에서 1925년 트뢸취의 언급을 인용한다ㅡ기독교의 종말론의 방은 이미 유대인들에게 닫혀졌다. 가독교는 자신을 지탱해주는 뿌리를 잃고 말았다 (8).
이러한 종말론의 차원에서 아감벤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말한 신비한 표현인 억제하는 자 (카테콘)에 주목한다. <악의 현실>에서 아감벤은 베네딕트 16세와 그의 주종자들로 연결짓기도 했다. 물론 신학의 영역에서 카테콘은 오랜 토론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비판적 반성
바울의 랍비 유대적 종말론과 메시아주의에서 세상의 지배와 폭력의 세계에 대한 영적 투쟁은 차별없는 복음과 메시아 인정정치 (빌레몬과 오네시모)에서 나타난다. 이들은 메시아 공동체의 삶에서 제국의 지배를 정지시킨다. 이러한 차원을 게하르트 숄렘은 바울의 “하나님 자녀의 자유”에서 보고, 랍비적 유대교와 묵시적 유토피아의 접합을 지적한다 (Scholem, The Messianic Idea in Judaism, 21).
바울에게서 민중은 하나님에 의해 남겨진 자들로서 존재의 혁명을 경험한 메시아의 나라의 주체들이며, 티쿤 올람(세계의 치유)을 위해 이들은 토라와 쉐키나에 의해 메시아의 인정투쟁으로 불려진다. 이것은 기독교 천년왕국주의자들이나 에른스트 블로호의 <유토피아 정신>과는 결이 다르다.
칼 바르트에 의하면, 바울의 묵시론적 전환은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주인없는 폭력의 실재 (Lordless powers; 국가 권력, 자본주의, 맘몬, 백인 인종주의, 이데올로기, 문화적 부정의 등)가 사회 구성체 안에서 어떻게 시민과 계급을 계층적으로 각인하는 지를 보게한다. 바울의 오이코노미아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과 정의로움을 지적하며 로마서 13:1절에서 드러나는 국가 인정은 맹목적 복종이 아니라, 로마의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들이 시민으로서 갖는 공동 책임성을 의미한다.
이미 어거스틴은 바울의 영향아래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그룹을 전쟁의 포로와 노예문제를 연관짓고 멸망할 수 밖 없는 존재(massa perditionis)로 규정했다. 이들은 사회안에서 벌거벗긴 삶을 사는 자들이다. 정치권력은 이들의 신체에 대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성은 카리타스와 섬김의 실천을 통해 제국의 도시의 폭력과 희생자 메카니즘에 저항해야한다.
<신의 도성> IV/4에서 알렉산더 대왕과 강도에 대한 어거스틴의 예는 정치지배와 전제권력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강도떼들이나 불의한 권력은 다를 바가 없다. 알렉산더 대왕은 포로로 잡힌 해적에게 배신하고 해적의 본거지를 밀고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때 해적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대왕은 함대를 가지고 세계를 전염 시키고 정복한다. 그러나 해적은 조그만 배를 가지고 그런 일을 하지만 차이가 없다 (148).
어거스틴의 사실주의 정치 관점에서 보면 로마황제의 살육이나 해적의 행위나 다를 바가 없다.
<Regular ad Servos Dei>에서 어거스틴은, 교회 공동체가 세상의 법을 지키는 것은 법의 지배아래 있는 노예의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해방된 존재로 지킨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주의 입장은 아감벤에게 우리시대에 벌거벗은 존재들의 권리를 방어하는 새로운 정치철학의 토대를 준다 (Agamben, The Highest Poverty, 29).
그러나 서구의 근대국가 이론에서 바울-어거스틴의 국가와 교회의 공동책임성은 루터의 두 왕국론으로 오해 되었고, 혁명적인 국가론은 토마스 뮌처의 묵시론적인 천년왕국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독일 농민전쟁에 대한 연구에서 루터는 반동적인 사상가로, 뮌처는 혁명적인 실천가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수용되었다. 루터의 두 왕국론은 훗날 히틀러 파시즘 정치에서 교회와 국가의 이분화로 왜곡되었다.
여기에 저항하여 칼 바르트는 <바르멘 신학 선언서>에서 고백교회를 대표하고 히틀러의 파시즘 정책과 아리안주의를 거절했다. 바울의 하나님의 주권신학 (오이코노미아)은 바르트에게 하나님의 혁명의 신학으로 개념화 되었다. 바르트는 <로마서 주석 1판> (1919)과 수정된 2판(1922)에서 당대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스위스의 대파업 그리고 당대 사회주의 운동의 복잡한 상황에서 바울을 동시대화했다.
아감벤: 바울의 동시대화
바울을 동시대인으로 파악하는 접근은 아감벤에게서도 잘 드러난다 (Agamben, What is the Contemporary?) 아감벤에게서 동시대인은 자신의 시대에서 어두움 또는 불명료함을 보는 자이다. 어둠은 단순히 빛의 부재가 아니라 진보의 역사에 동반한 빛에 대해 가치중립을 선언한다. 어둠은 빛과 같이 있다.
밤 하늘의 어둠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한 빛을 보는 것이다. 역사의 과정에서 근원은 원형처럼 작용하며 현재에 대해 숨겨져 있지만, 동시대적으로는 흐릿하게 흔적으로 남아있다. 진정한 진보는 산적해있는 크로노스를 넘어서서 근원으로 되돌아가기를 시도하며, 현재에 대한 접근은 근원을 추구하는 고고학이 될 수가 있다.
이것은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에 공명한다. 수 많은 역사의 인덱스에는 과거의 이미지들이 포함되어있다.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에서 메시아의 지금시간이 나타나며 진보로 가장한 야만의 문서들에서 희생자들의 유효한 역사를 회복한다. 이러한 벤야민적인 역사철학의 틀에서 아감벤은 바울을 우리시대의 동시대인으로 살려낸다.
사회학적 성서비평에 의하면, 바울의 로마서에서 현재화된 종말론은 데살로니가에서 묵시적 메시야주의와 유리되지 않는다 (살전1:9 – 110; 4:13–18). 그리고 바울에게는 현재화된 종말론과 묵시적 메시아의 재림은 포개져 있다. 사도행전에서 부활의 예수는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나라를 회복할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을 때 (천년 왕국) 거절했다. 오히려 오순절 성령 임재를 통해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을 명령했다. 바울의 메시아 시간은 시간의 중심에 속하며, 이러한 남겨진 시간은 공동체와 더불어 부활하신 메시아의 예언자적인 활동의 시간을 말한다. 이러한 누가-바울 학파의 시간구조는 아감벤의 메시야 현재와 카테콘 정치에 가깝게 서 있다.
카테콘은 누구인가?
시민은 단순히 부르즈와 계급이 아니라 계보학적으로 볼 때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 에클레시아에서 정치와 역사의 주체로 등장했다. 초기 로마의 공화제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민중을 대변하고, 17세기 정치이론에서 루소에 의해 시민국가론으로 확립되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시민사회 (부르즈와 사회)를 수용하고 영국의 산업 혁명에서 자본가 (또는 금융귀족)와 프로렐타리아트로 개념화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여전히 차티스트의 의회민주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러면 마르크스는 부르즈와 운동에 속하는가?
마르크스는 자본가/프로렐타리아트 이념형을 프랑스 혁명에서 적용 시켰지만, 그는 여전히 로베스피에르와 상퀼로텐의 연대정치를 알고 있었고, 이들을 금융 귀족이나 부르즈와로 무차별하게 남용하지 않았다. 프랑스혁명의 다양한 역사적 전개에서 로베스피에르와 상퀼로텐의 연대는 내재적 비판의 원류로 남아 있고 심지어 레닌조차도 로베스피에르를 존경했다.
마르크스에게는 위로부터의 계급투쟁과 의회민주주의 중요성이 존재하고, 레닌에게는 헤겔의 <대논리학>에대한 깊은 연구가 있다. 이들은 카테콘적 사유를 변혁의 상황에서 종말론적으로 시도 했지만, 역사의 여신은 이들의 생각을 비켜갔다.
본회퍼에 의하면 카테콘의 개념은 파시즘에 저항하는 의로운 세력을 말한다. 이것은 교회와는 다른 세속의 힘이며 세계를 무질서와 종말로 끝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아를 말한다 (Bonhoeffer,
Ethics, 108).
로마의 시민이었던 바울은 40년 대 쓴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안디옥 공동체에서 번역된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파루시아에 대한 전승을 수용했다. 바울은 이러한 역사적 예수전통을 가장 먼저 묵시적 메시아의 빛에서 해석했다. 바울은 노예 (호모 사케르)가 갈라디아 공동체에서 차별없는 복음안에서 화해된 존재로 인정된 것을 보았다. 그는 화해의 복음에서 메시아의 인정정치를 시민국가의 공동 책임성과 더불어 보았다. 로마서 13: 1-10에서 나타나는 국가의 공권력에 대한 인정과 13: 11- 14의 묵시적 파루시아의 교차를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바울에게서 카테콘은 하나님의 정의가 실종된 비인격적 지배구조에 저항하는 의로운 자들이며, 공공선의 거버넌스를 지향하는 시민국가일 수 있으며, 또한 남겨진 자들의 공동체일 수도 있다.
본회퍼는 파시즘과의 투쟁에서 카테콘을 파시즘에 저항하는 의로운 세력으로 보았고 여기에 연대했다. 바르트는 <교회 교의학> III/4, §55 ”삶을 위한 자유”에서 본회퍼의 저항행위를 하나님 앞에 불려진 소명의 위임으로 정당화했다. 이것은 독재자의 출현에서 교회의 긴급상태에 속한다. 바르트는 공론장을 지배하는 하나님이없는 폭력구조를 국가 리비이어던 (전제국가와 파시즘; 계 13: 1-8), 맘몬경제주의, 선동 이데올로기, 자연에 대한 기술지배와 환경파괴와 관련지었다. 교회는 세상의 의로운 세력들과 더불어 이에 저항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수립해야한다 (Barth, The Christian Life, & 78. 2. The Lordless powers).
바르트와 본회퍼의 전통에서 폭력의 문제는 법과 정의에 관련되는 문제이며 신앙고백의 갱신(status confessionis)의 항목에 속한다. 의로운 전쟁이 아니라 의로운 혁명이 고려된다. 여기서 회복하게 하는 정의가 일차적으로 화해의 복음에서 설정된다 (정의는 법과 잡행력이 아니라 종교의 영역에 속한다.) 이것은 벤야민의 폭력에 대한 콘텍스트적 사고 (수단과 목적 또는 합리성과 비합리성에 기초된)와 대화를 요구한다. 이러한 대화는 폭력자체가 원리로 고양되지 않치민 의로운 목적을 위해 사용가치에 대한 논쟁을 말한다. 이것은 프랑스 혁명에서 폭력의 문제나 스피노자에게서 합리적인 사회 계약에 앞서 개인의 자연법적 권리에 속하는 논의에 속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성서에서 나타는 하나님의 심판과 폭력과도 관련된다 (Benjamin, "Zur Kritik der Gewalt").
아감벤이 던지는 화두
아감벤은 <왕국과 영광>에서 슈미트와 페터슨의 카테콘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오이코노미니아 신학을 제시한다. 그리고 바울의 메시야정치를 복권시키고 사회와 역사에서 밀려나간 호모 사케르의 생명과 권리를 위해 투쟁한다. 유럽연합의 정치제도를 둘러싼 가열찬 사법적 민주주의 논쟁에서 아감벤은 시민 국가와 인종 집단국가를 구분한다. 민주주의는 시민국가에 기초한다. 그리고 로마의 공화제 전통에 서 있는 어거스틴 (마키아벨리와 루소)의 국민주권을 근거로 아감벤은 하버마스의 코스모폴리탄 소통이론에서 거리를 취한다.
유럽민족이나 국가가 법적 그리고 정치적 주체로서 시민권리가 없이 의사소통적으로 만 규정될 수 있을까? 시민으로서의 국민개념을 통해 아감벤은 하버마스를 비판적으로 보충한다. 왜냐하면 참여 민주주의는 시민사회에서 방어되어야하고 전문가나 미디어 담론에 의해 지배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Agamben, The Kingdom
and the Glory, 257).
승인 민주주의와 국민적 사회소통의 변증법적 긴장과 관계는 아감벤이 던지는 화두이며, 이것을 그는 삼위일체론의 영광과 최종의 안식 그리고 호머 사케르에 주목 하면서 남겨 놓는다. 이런 점에서 아감벤은 공공신학에 시민사회와 비판적 민주주의를 위해 새로운 대화와 자극으로 남아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n1uv8pnw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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