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창세 박사
칼 바르트와 공공신학 센터 소장
독일 보쿰 대학에서 교리신학을 연구하고 과학신학으로 박사학위
개혁교회 전통에서 공공신학을 막스 베버 사회학과 더불어 발전시키고 있다.
현. 용산 제일교회 담임목사
개혁교회의 소명론과 막스 베버
들어가는 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와 함께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상실과 맞물려 예배참석인원이 극감하고 전도와 선교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지역사회와 연대와 소통을 지향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마을목회’이다. 마을목회는 지역공동체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목회를 말한다.
한국사회의 현실이 마을목회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한국 사회가 솔로 사피엔스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즉 독거세대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사회적 병리현상이 많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는 급격한 산업화로 마을공동체가 파괴 되었다. 아파트 문화의 확산으로 이웃간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심리적 거리는 더 멀어졌다. 이런 왜곡된 마을문화는 행복감과 안전감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세 번째는 새로운 경제 이데올로기인 신자유주의의 확산이다. 이는 협동보다는 경쟁문화가 확산되게 되고 빈익빈 부익부의 확대를 의미하며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증가하게 된다. 이는 상생과 공생을 강조하는 창조질서에 위배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인구감소로 인한 마을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과 소도시의 마을감소는 지역교회와 농촌교회의 감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지역선교를 위한 비전을 심어주고 훈련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지역사회의 리더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러한 선교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목회자의 도덕성과 사회과학적 훈련이다. 목회자가 지역의 신뢰받는 시민운동의 리더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면 마을목회는 힘들어진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마을목회" 개념을 시민사회와 공론장의 차원에서 새롭게 설정하고 지역사회의 민주주의와 공동체 구성를 지향하는 공공목회를 개혁교회의 소명론과 베버의 사회학을 통해 검토한다.
마을목회는 시민사회와 공론장과 분리되어 다루어질 필요가 없다. 목회의 공공성을 위해 목회자와 교회의 리더들이 공공 지성인으로 함양되고 자리매김될 필요가 있다. 공공신학은 목회자를 공공지성인으로 훈련시키고 사회학적 성서해석과 공론장의 문제를 분석하는 사회과학적인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필요한 신학적 실천적 훈련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공공신학과 마을목회를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개신교의 소명론이 올바로 정립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칼빈과 루터에게 있어서 소명은 그리스도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칼빈과 루터는 카톨릭이 옹호한 위계질서의 사회 시스템, 즉 신분제 사회와 계층체계를 비판하고 기독교인의 올바른 신앙과 사회적 삶을 위해서 소명론을 강조했다. 루터는 만인사제설과 함께 모든 직업이 신성하다는 직업소명론을 주장했고, 칼빈은 예정론에 근거로 사회적 소명론을 주장했다. 특히 칼빈의 소명론은 구원으로의 부름과 교회 내적인 소명을 넘어서서 세상에 대한 봉사와 사회개혁을 위한 소명을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교회와 신학은 이러한 소명의 사회적 차원을 상실하였다. 언젠가부터 한국교회에서 소명은 그저 구원을 위한 부름으로 축소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소명의 상실은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사회적 봉사와 사회개혁을 위한 헌신을 약화시켰고, 이것이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상실로 이어졌다. 그 원인은 칼빈의 소명론이 왜곡되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막스 베버는 현대사회과학의 모태이다. 마르크스 주의 사회과학이 쇠퇴한 이후, 베버는 강력한 대안적 사회과학으로 부상하고있다. 그리고 이러한 베버의 사회학에서 기독교적 소명론은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소명(Berufung)은 자본주의를 탄생한 시대적 윤리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모순인 쇠창살 우리(iron-cage)를 극복하는 윤리적 토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공신학에서 베버의 사회학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필자는 칼빈의 소명론과 베버의 사회학적 평가를 통해 공공신학이 마을목회나 또는 주민 공동체 목회에 줄 수 있는 통찰을 검토한다.
중세 카톨릭의 직업관과 소명
종교개혁 이전 중세 스콜라시대의 가치관과 세계관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아리스톨레스는 노예제를 근거로 한 공동체적 국가관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직업을 단순하게 생계수단이나 부의 축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노예제 사회였던 고대 그리스에서 노예노동은 중요한 경제적 토대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노예제를 근간으로 하는 그리스 공동체(도시국가)의 덕목을 구현하고자 했다. 통치자이든 군인이든 혹은 제화공이든 다양한 신분과 직업 및 업종에 상관없이 탁월함과 덕(arete)를 배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탁월함과 덕은 선천적으로 혹은 본성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 그리고 실천을 통해서 습관화되고 완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직업관은 중세시대에도 그래도 반영되었다. 중세사회의 노동과 직업개념은 당시의 고정된 사회계급과 별도로 이해되기 어려웠다. 그 계급이란 성직자, 귀족과 기사, 농민과 장인 그리고 노예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사람은 자신의 계급과 조건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 즉 사회계급과 직업은 사회의 신성하고 불변하는 형식이며, 이것은 노동과 직업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노동은 개인과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자연의 이치(naturali ratione)일 뿐이지, 노동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카톨릭에서는 성직을 제외한 일반 직업에는 소명이라는 개념을 적용하지 않았다. 세속적인 노동은 아무리 하나님이 부여하신 것이라도 피조물에 속한 것이라고 보았고 마치 먹고 마시는 것처럼 도덕과는 무관한 신앙생활을 위한 자연적인 토대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카톨릭에서 노동하지 않고도 자신의 소유로 살 수 있는 사람은 굳이 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육체적인 노동을 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영적인 일을 하는 것, 즉 묵상과 영성훈련이 더 높은 수준의 노동으로 인식되었다.
어거스틴부터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 모두 농부와 기술자와 상인의 일을 칭송했지만 항상 관조적인 삶(vita contemplativa)을 활동적인 삶(via activa)보다 상위에 놓았다. 활동적인 삶은 필요 때문에 하는 이등급의 삶으로 묘사되었으며, 관조적인 삶은 자유로 결정되는 일등급의 삶으로 그려졌다. 아퀴나스는 관조의 삶이 한마디로 활동하는 삶보다 더 낫다고 썼다.
루터의 직업관과 소명
중세시대에 세상에 대한 경멸과 부정적인 태도는 종교개혁시대과 함께 획기적으로 변화되었다. 루터는 수도원적 소명사상을 비판하고 세상으로 나올 것을 주장했다. 각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름받았을 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 매우 분명한 활동영역에서 믿음으로 살도록 부름받았다. 루터는 이점을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을 주해하면서 간결하게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세속적인 일이라도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며 그를 크게 기쁘시게 하는 순종을 나타낸다.”
루터는 소명을 나타내는 Beruf라는 단어를 세속적인 직업에 적용했다. 베버에 따르면 루터 이전에는 Beruf라는 단어는 전혀 세속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 루터가 외경 중의 하나인 집회서 21장 20, 21절을 번역하면서, Beruf는 현대적인 직업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소명(Beruf)라는 말이 프로테스탄티즘에서 세속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상생활이 세속적인 일들을 포괄적인 의미 종교적 영향권 속으로 편입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루터가 고린도전서 7:20절을 번역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여기서 부르심을 의미하는 희랍어 κλῆσις를 루터는 라틴어 vocatio와 같은 의미로 번역하였다. Vocatio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다는 의미와 함께 우리 각자가 농부로서, 장인으로서 혹은 한 직업인으로 부름을 받는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베버의 사회학적 평가에 따르면, 루터는 세속적인 직업노동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인간노동과 직업윤리에 깊은 의의가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루터이게서 직업과 소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그 명령에 대해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조하고, 환경에 대한 무조건적으로 순응할 것을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루터는 경제적 전통주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베버는 루터가 세속적인 의무를 강조한 것을 높이 평가는 하지만, ‘오직 믿음만으로’ 인해, 신앙을 현실적인 삶과 멀어지게 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루터의 직업과 소명에 대한 생각은 카톨릭 전통주의에 머물러 있다. 루터에게서 그리스도인은 ‘직업을 통해서(per vocation)’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 안에서(in vocation)’ 봉사일 뿐이다.
칼빈의 직업 이해와 소명론
막스 베버는 칼빈의 신학이 서구 사회를 탈주술화시키고 사회적 합리성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와의 선택적 친화력을 갖고 있어서 자본주의 형성에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근현대의 사회철학에 기초를 놓은 장자크 루소는 신학자 칼빈로서 높에 평가할 뿐만 아니라 서구 사회의 입법과 민주주의의 터를 닦은 입법자 혹은 정치가로서의 칼빈에 대해서 높게 평가하였다. 루소는 제네바출신이다. 칼빈시대의 제네바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제네바 사회에 미친 칼빈의 영향력에 대해서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칼빈의 구원론과 소명론
칼빈에게 있어서 구원의 과정, 즉 믿음, 칭의 그리고 성화의 과정은 구분은 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칼빈은 그의 주저 <기독교 강요>에서 구원론을 서술할 때 칭의 보다 성화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예정에 관한 논의를 다음 순서에 놓는다.
<기독교 강요> 제 3권 제 3장의 제목을 “믿음에 의한 우리의 중생 : 회개”라고 표현했는 데, 이것을 개혁파 정통주의의 용어로 바꾸면 “믿음에 의한 우리의 성화(성결)”라는 의미이다. 칼빈이 칭의와 성화의 순서를 바꾼 첫 번째 이유는 루터의 구원론이 칭의에 초점을 맞춘 것에 대해서 성화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가톨릭의 구원론이 의화-성화-신화라는 단계를 비판한다.
칼빈에게서 구원은 성령의 신비한 연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구원은 의지의 작용이 아니라 전적인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따라서 칭와와 성화 또한 성령께서 이루시는 것이다. 예정과 칭의 그리고 성화의 과정이 통전적으로 이루어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신앙적 성숙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칼빈은 경건으로 표현한다.
칼빈은 이 경건이 단지 개인적인 신앙의 성숙이나 교회생활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칼빈은 이 경건의 능력과 힘이 제네바시를 하나님의 도성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칼빈에게 있어서 경건은 소명과 다른 말이 아니다. 경건이 개인적인 신앙적 성숙을 의미한다면 경건이 외적으로 표현된 신앙행태가 소명이다. 심지어 칼빈은 당시 농업이나 목축업에 비해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던 상업적 직업 조차도 경건한 행위라고 말한다.
루터는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와 창조에 참여한다고 생각했다. 칼빈도 이런 루터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칼빈에게 있어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노동하는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돌보고 가꾸는 일에 참여하도록 창조하셨다. 즉, 창조세계를 위해 일하고 노동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더 나아가 칼빈에게 있어서 노동은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계속 창조하시고 섭리하신다. 그 하나님은 인간을 부르시고 노동을 통해서 일하신다. 하나니은 세상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경작이나 제조, 건설등의 노동을 할용하신다.
칼빈 전문가인 비엘레는 칼빈에게 있어서 인간의 노동은 하나님의 노동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의 노동, 즉 한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노동력, 그것은 그의 피조물의 삶에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는 하나님의 노동과 똑같은 노동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노동이다. 한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 그것은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님의 행동을 따르는 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그것이 올바르게 완성된다면 그것은 피조물들의 삶을 유지시키는 하나님의 행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칼빈의 직업관
중세에는 사회적 계층에 따라서 직업이 귀천이 나누어졌고 농업같은 생산분야에 가까울수록 고귀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칼빈에게는 이런 직업적 선입관을 찾아볼 수 없다. 비엘레는 오직 칼빈만이 농업노동과 같은 존엄성을 공업에까지 부여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상업에까지 같은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였다. 이렇게 칼빈이 상업 혹은 공업을 생업의 근간이 되는 농업과 같은 가치로 평가한 이유는 바로 그의 주요무대인 제네바가 상공업 중심의 도시였기 떄문이다.
칼빈은 중세사회에 평판이 좋지 못했던 상업을 재평가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한가지 일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생산물을 필요로 하고 서로 의존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분업은 필연적으로 노동과 직업의 상호성과 연대성을 수반한다. 더우기 칼빈은 직업을 포함한 모든 직업을 자아실현의 도구나 혹은 단순한 생계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소명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였다. 즉, 직업은 무엇보다도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진 의무이자 하나님의 섭리를 이뤄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해하였다(고전 7:20). 칼빈의 소명에 대한 이해는 신앙과 세상의 삶, 교회와 사회를 이어주는 주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즉,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소명 자연스럽게 사회적 소명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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