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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신학과 사회철학

한나 아렌트와 제국주의 변종의 정치(3)

by 파레시아 2023. 6. 30.

 
자본축적과 제국주의 정치
 
아렌트가 인종주의와 제국주의 이론을 사회학적으로 접합시킬 때 그녀의 접근은 로자 룩셈부르크(18 71-1919)의 <자본축적>의 영향을 보인다.

J. A. Hobson

물론 아렌트는 J. A 홉즌의 <제국주의> 에서 경제적 축적과 동기를 추동력으로 보고, 여기에 결부된 정치적 중요성에 주목한다홉슨은 영국의 리버럴 경제학자이며 1902년 제국주의에 대한 선구자적인 연구를 출간했다. 홉슨에게서 잉여자본으로인해 자본집중은 카르텔과 독점으로 전화된다. 독점자본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제국주의 발전과 연결된다. 제국주의는 산업 자본가들이 국내에서 팔 수 없거나 사용할 수 없는 상품과 자본을 위해 해외시장을 찾고 투자한다. 이것은 잉여의 부의 유동을 원활하기 위해 공급채널을 넓혀가는 자본가들의 노력이다 (Hobson, Imperialism, 84).
 
아렌트에 의하면, 홉슨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기본적인 대립을 처음으로 분석한 정치 이론가이며, 민족주의가 제국주의로 발전하는 경향을 보았다. 제국주의는 경쟁하는 제국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투쟁으로서 민족주의의 변태적인 형식이다 (The Origins, 153).
 
또한 아렌트는 <자본1>에서 분석되는 마르크스의 본원적 축적이 19세기 제국주의에서 금융자본 (힐퍼딩)으로 전화하면서 첨예한 사회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고있다. 힐퍼딩은 은행의 역할에 주목하고, 은행은 독점을 촉진시키고 특별한 수익을 위해 공격적인 정책을 시행한다. 은행에 의해 산업 독점체가 지배한다.

레닌은 홉슨과 힐퍼딩의 이론을 기초로 자본주의는 발전의 가장 높은 단계에서 제국주의로 전화하고 금융과두와 독점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자본수출은 상품수출과는 달리 제국주의의 매우 중요한 특징이 된다. 자본가들의 국제적 독점은 세계를 영토분할한다 (Lenin,  Imperialism, 80 -1).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은 서구사회를 국가독점자본주의로 파악하는 토대가된다. 여기서 노조의 경제투쟁과 사민당정책은 노동귀족을 배태하고 수정주의로 나간다. 혁명의 가능성은 수탈당하는 낙후한 국가에서 연결고리가 부서진다. 홉슨-힐퍼딩-레닌의 이론에서 제국주의는 일차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질서와 금융자본을 통해 정의된다. 

그러나 힐퍼딩의 분석에서 중심부의 고도화된 자본주의는 단순히 노동귀족의 중산층 편입에 있지않다. 금융과두제와 정치권력의 연계로 인해 메니저와 기술 전문가들의 계급분화가 나타나며, 이러한 사회 계층화에서 히위 중산층은 노동자계급과 연대한다. 기술진보와 함께 경제질서는 호황과 위기와 불황의 주기를 거치면서 노동자 계급의 투쟁은 혁명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그런가하면 금융자본의 변종의 정치로서 파시즘은 불황이나 경제위기로 인해 중심부에서 삶의 조건이 악화되는 중산층과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선동하면서 출현한다. 히틀러는 의회민주주의 길을 통해 독일 공산당과 협력하고, 스탈린의 인민전선은 사민당을 "사회 파시스트"로 규정하고 노동자계급을 히틀러의 나치즘으로 예속시켰다.

아렌트와 로자 룩셈부르크

아렌트는 전체주의 관점에서 제국주의를 단순히 자본주의 마지막 단계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축적과 해외시장의 역할, 인종주의 그리고 변종의 식민지 정치가 제국주의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그녀는 로자의 테제 즉 비자본주의 영역의 해외시장으로 진출을 정치이론 차원에서 중요하게 고려했다 (“Rosa  
Luxemburg,”
148).
 
아렌트는 J.P. 네틀의 자서전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한 서평에서 로자의 창조적 사유와 더불어 마르크스의 한계와 러시아 혁명을 비판하는 그녀의 담대함을 높게 평가했다.

1919년 베를린에서 로자를 살해한 자들은 비합법적인 자유군단에 속한 극우파들이었고, 이들은 훗날 히틀러 돌격대로 편입되었다. 당대 바이마르 초기혁명 정부는 자유군단의 손에서 실질적으로 움직였고, 이들은 바이마르 초대 국방상이었던 구스타브 노스케 장군에 의해 후원되었다.

 
로자의 제국주의에 관한 연구서 <자본축적, 1913>는 프란츠 메링에 의해 마르크스 사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탁월한 걸작으로 평가되었다. 로자는 <자본 1>에서 마르크스가 지나치게 헤겔로부터 받은 영향에 경악했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혁명보다는 마르크스가 다양한 측면들에서 파악한 현실문제였다. 그녀의 <러시아 혁명비판>에서 볼세비키스트들과 로자의 근본차이는 성공한 혁명에대한 찬양이 아니라 왜곡되고 변질된 혁명에 대한 비판에 있었다. 레닌 사후 스탈린은 독일 공산당을 볼세비즘화하면서 로자의 정치적 유산에 대해 맹공을 했고 그녀는 결국 매독균처럼 취급 당했다 (ibid., 435).
 
레닌과는 다른 로자의 비정통주의 입장은 그녀의 친구에게 마르크스를 추천할 때 잘 드러난다. 마르크스는 사고의 담대함을 가지고 있고 기존질서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거절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결론은 별다른 가치가 없고 오류가 드러난다.

이러한 태도는 로자로 하여금 마르크스에 대한 상세한 비판에 몰두하게 했다. 그녀는 헤겔-마르크스 변증법의 한계를 검토하고, 자본주의 사회가 프로렐타리아트를 창출한다는 것을 문제시했다 (ibid., 423). <자본축적>에서 로자가 남아공의 흑인들에 대한 고문을 기술할 때 이것은 비-마르크스적이며, 그러나 오늘날 아무도 이것이 제국주의 현실에 속한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다 (ibid., 424).

 
심지어 아렌트는 로자의 자발적 혁명론을 1956년 헝가리 혁명에서 본다. 이것은 1925년 스탈린이 동구권의 독재자들과 함께 집단 지도체제에 원인이 있으며, 헝가리 혁명은 이러한 전체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났다. 아렌트는 유엔 위원회에서 보고한 헝가리 교수의 증언을 인용한다. "헝가리 혁명에서 지도자가 없는 것은 역사에서 유니크하다. 이것은 조직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중앙정부에 의해 지도된 것도 아니다. 자유를 위한 의지가 모든 행동에서 작동된 힘이었다." (The Origins, 482)
 
헝가리 혁명은 아렌트에게 구 소련의 전체주의 지배형태와 더불어 제국주의적 성격을 드러내는 역사적 실례에 속한다. 이것은 로자의 자본축적과 제국주의론의 중요성을 확인한다. 로자의 자본축적론에서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생산에서 드러나는 부르주와와 프로렐타리아트의 이항의 대립 즉 두 적대계급이 아니라, 과잉생산이나 과소소비로 인해 해외시장의 중요성을 파악한 데 있다.
 
국가와 해외시장의 매개

자본주의 국가와 비자본주의 국가의 교환과정에서 자본축적은 지렛대처럼 작용한다. 이것이 식민지 쟁탈을 둘러싼 서구 열강들간의 제국주의 경쟁의 뿌리를 설명한다.

마르크스의 자본축적론이 국내의 자본과 노동의 대립에서 전개되는 것에 비해, 오히려 로자는 해외시장을 매개로 드러나는 제국주의의 정치적 성격에 주목한다. 이것은 콜럼부스 이후 중상주의 시대에 스페인의 남아메리카 식민지배 (본원적 축적)에서 부터 19세기에 보다 첨예한 방식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나타난다.

 
로자의 입장은 프랑스의 경제사회학자 페르낭 브로델에 의해 옹호된다. 세계체제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전자본주의 양식과 접합이 된다. 해외시장에서 드러나는 제국주의 성격에 기초해 서구의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세계시장과 식민지배와 관련되어 나타난다. 이점에서 로자는 자본주의 기본성격을 정확히 보았다 (Braudel, Civilization and Capitalism, III, 64-5).
 
해외 시장을 향한 진출에서 마르크스가 분석한 산업자본은 세계체제 안에서 독점자본으로 전화되고 해외로부터 유입되는 잉여율은 중심부의 사회를—마르크스와는 달리—붕괴가 아니라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합리화가되며 계급들은 다양하게 분화된다.

Rosa Luxemburg

자본축적과 해외시장을 통해 정치적인 영역에서 제국주의가 출현하고 여전히 열강들간의 경쟁은 심화된다. 그리고 해외시장에서 중심부와 주변부간의 교환은 금융자본으로 인해 불균등해질 수 밖에 없다. (Luxemburg,The Accumulation of Capital—Anti-Critique, 25)

이러한 독점을 통한 금융자본의 성격(카르텔, 트러스트, 콘제른)은 이미 로자의 관점안에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독점자본이 국내에서 급증하는 원인은 해외시장으로 부터 온다. 이러한 세계교환에서 정치권력이 경제과정과 자본축적에서 결정적이다 (Ruxemburg, The Accumulation of Capital, xiii).
 
여기서 우리는 이미 해외시장으로 유입되는 경제적 잉여로 인해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의 법칙과 자본주의 붕괴가 오류로 판명되는 것을 본다. 혁명은 착취당하는 비자본주의 영역의 국가들에서 일어날 수가 있다. 자본축적과 국가권력의 연계는 자본주의 팽창과 장기지속을 설명하며, 역사적 단계마다 나타나는 자본축적의 시스템적 사이클은 금융자본을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로 보지 않는다. 세계 무역의 상위층은 가장 큰 수익을 벌어들이는 영역인데, 이것은 국가권력의 역할로 볼 수 있다 (Arrighi, The Long Twentieth Centry, 24).
 
이러한 측면에서 로자-아렌트의 테제는 레닌이 제국주의론과는 달리 해외시장의 중요성에 착안한다. 인종문제와 식민지 관료지배방식 그리고 파시즘 분석이 중요하게 고려된다.
 
식민지 관료제와 살해정치학
 
제국주의는 초기단계에서 제국들간의 경쟁과 투쟁으로 파악되지만, 이것은 고대나 중세의 제국의 이념과는 구분된다. 근대의 제국주의 개념에서 열강들간의 경쟁과 정치적 헤게모니의 팽창은 서로 맞물려있었고, 식민지 정복을 위해 강한 군사력과 기술의 진보 그리고 정치적 지배방식을 요구한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생산에서 지배계급이 국민경제의 협소함을 넘어서서 경제적 팽창을 시도할 때 발생한다. 부르주아지들은 경제적인 필요성으로 인해 정치영역으로 눈을 돌린다. 이들은 해외시장으로 팽창해나갈 것을 요구한다. 해외 정책의 궁극적 정치목적은 “팽창을 위한 팽창” 이라는 정치 슬로건으로 드러난다.

 
경제구조와는 달리 정치구조는 무제한적인 노동의 생산성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대로 팽창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자본과 폭력적인 군중의 연계가 드러나는데, 국내와 해외정책이 결합되고 민족을 제국주의화 하면서 해외영토를 약탈하고 착취되는 백성들의 삶을 영구히 저하시킨다(The Origins, 155).
 
어째튼 연방국가는 무제한의 성장과 해외 식민지 지배와 팽창에 적합하지가 않다. 연방국가가 식민지 지배국가로 출현할 때 그것은 우월한 민족의식을 고취한다. 프랑스의 경우 알제리는 법적으로 프랑스의 변방으로 편입 되었지만, 프랑스의 법을 아랍민족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슬람의 법이 존중되었고, 아랍시민의 신분이 허용되었다.
 
이러한 식민주의 지배의 변종은 영국의 제국 형성에서도 지배방식으로 나타난다. 대영제국은 아일랜드를 파괴하고 편입시킨 적이 없다. 아일랜드는 지배 신분이 허용되고 대영제국의 시민으로 환영되었다. 식민지 지배방식에 나타나는 변종으로 이식된 정치구조는 모국으로서 대영제국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ibid., 127). 그러나 식민지 국가의 문화와 종교 그리고 법에 대한 침해는 자제한다
 
물론 20세기의 중엽에 프랑스의 제국주의 특징은 고대의 로마제국의 방식을 추종하기도 한다. 프랑스는 세계로 전진하며 프랑스 문명의 혜택을 유포한다. 이들은 해외 자산을 국가기구로 편입시키고 식민지 백성은 프랑스 문명을 나누는 형제와 또한 프랑스의 법과 지배를 추종하는 백성으로 취급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식민지 출신의 시민이 프랑스 의회에서 활동할 경우 나타나지만, 해외 식민지에대한 잔인한 착취에 기인한다. (ibid., 129) 이것은 전형적인 프랑스의 문명선교의 성격을 말힌다. 반면에, 영국이 지배방식은 보다 경제착취와 고갈이론에 있다.
 
그런가하면 아프리카 분할정책에서 자유콩고 국가는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에 의해 대학살로 막을 내리기도 했다. 이것은 제국주의와 관료지배가 어떻게 학살정치로 드러나는 지 여실히 보여주는 실례이기도 하다. 이것은 요셉 콘라드의 소설 <어둠의 마음>에서 폭로되기도 했다. 경제 고갈정책 이후 흑인들에대한 신체절단과 대학살이 자행되었다. 1890년 이천만에서 사천만의 콩고 원주민들은 1911년 팔백오십만으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레오폴드 2세의 식민지 관료지배와 신체학살 정치에 기인한다 (ibid.,185).
 
인종문제는 제국주의 지배방식에 깊숙히 관련되며, 이것은 아렌트의 접합이론—자본과 권력축적의 접합에서 드러나는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의 연계—의 정당성을 입증한다. 정착 식민지의 경우 본국에서 파견된 관리들에게 권력과 권위가 주어진다. 이들은 식민지에서 주인의 역할을 하지만 식민지 백성에게 새로운 사회 제도나 질서를 창조하지 못하게 한다.
 
아렌트와 다윈주의
 

아렌트에 의하면 다윈주의는 19세기에 영국에서 공리주의에 기초한 정치가들의 수중에 있었고 반식민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허버트 스펜서는 진화의 철학자로서 사회학을 생물학의 부분으로 다루었고, 자연선택은 인류의 진화에 혜택을 주며 영구평화로 귀결된다고 보았다.

정치적 영역에서 다윈주의는 두 가지 주요한 개념을 제공했는데, 그것은 생존투쟁과 적자생존이다. 
적자생존은 스펜서의 용어이며 다윈이 <종의 기원> 5판에서 수용했다. 동물적인 삶에서 진화된 인간은 새로운 우생학을 시작했다. 적자생존의 원리로는 사회의 상위층은 궁극적으로 적합한 자이지만 어제의 적자가 내일에도 적자가 될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우생학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넘어서게 하는 과학적 이론이 되었다. (ibid., 178 -9)
 
나치즘이 전체주의 정책의 과정에서 인간을 짐승으로변화시키기 전, 이미 독일에서 다윈주의자들은 유전자를 토대로 인간을 신으로 만들려고 시도했다. 초기 진화론주의자들이나 다윈주의자들은 인간의 천사적인 미래에 대한 강력한 신념이 있었다.

귀족제는 정치제도가 아니라 자연선택의 귀결로 간주되었고, 선택된 인종적 유산은 유전적인 천재성으로 귀결된다고 믿었다. (ibid., 179)

 영국에서 다윈주의와 우생학은 귀족이 아니라 중산층의 열망에 엘리트적인 인종사고를 불어 넣어주었다.

그러나 아렌트는 사회진화론을 다룰 때 이것이 존 슈트워트 밀의 개인주의적 공리주와 더불어 자유방임주의 자본주의가 출현하며, 인도의 식민지배에서 어떻게 유럽중심적인 인종적 사고와 관련되는 지 충분한 분석을 하지 않는다.

 
다윈의 <종의 기원, 1859)이 출간된 후 스펜서의 사회 진화론은 미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백인우월주의에 토대를 제공했다. 물론 존 설리반이 1945년 텍사스 병합에서 “명백한 운명”을 유포했을 때 이것은 인종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이데올로기화된 것이었다. 스펜서는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옹호했고, 개인들은 생존을 위해 자유롭게 투쟁하며 오직 적자만이 생존하는 것이 자연의 사물의 질서로 주장했다.

연약한 자나 가난한 자를 보호하는 국가정책의 개입은 자연법을 위배하는 것이며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비적합자의 생존을 돕는 것은 오히려 인구의 변질을 가져온다. 진화와 진보는 서로 연관되며, 생존투쟁과 적자생존은 사회에서 축적되는 진보를 통해 합리성과 도덕성의 발전에 기여한다. 인간의 역사는 타자의 희생위에 세워지는 적자생존과 개발이다. 결국 진보의 역사는 야만의 문서를 담고있다.

 
스펜서의 미국인 제자 윌리엄 숨너 (1840-1910)는 역사에 대한 진화론적 견해를 수용하고 예일대학의 첫 번째 사회학 교수가 되었다. 19세기 말 사회 진화론은 숨너를 통해 학계에서 부동의 자리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인디언 원주민 차별과 흑인 인종분리 정책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이것은 희생자를 비난하는 문화 인종이론으로 발전되었다. 미국의 인종주의에서 희생자들과의 연대를 옹호하는 발터 벤야민의 아남네시스의 입장은 여전히 중요하다. (McCarthy, Race, Empire, and the Idea of Human Development, 76-7. 102)
 
인종적 사고와 부르주아 정치지배
 
어째튼 아렌트에게 인종적 사고는 계급적 사고와는 달리 아시아나 아프리카 또는 라틴 아메리카를 대하는 유럽중심적인 어두움을 드러낸다. 결국 이것은 인간성에 기초된 모든 민족들의 평등과 연대를 거절하고 비유럽인들의 파괴를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된다. (The Origins,  61)
 
본국에서 독점적인 집중과 자본 축적 그리고 폭력의 행사는 식민지 관리들에게 파괴의 대행인으로 지위를 부여하며, 전체주의 팽창은 식민지 백성과 국가를 결단내는 권력으로 드러난다. 권력은 여기서 정치적 행위의 본질이 되며 정치적 사고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이러한 권력은 봉사해야할 정치 공동체와는분리되며, 지배와 권력의 팽창이 유일한 목적이 된다. 부르주아지는 연방국가의 정치에서 오랫동안 배제되고 공적인 업무에 별다른 관심이 없지만, 이제 제국주의 정치로 인해 지배계급으로 등장한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마지막 최고의 단계 (레닌)가 아니라 부르주와지의 정치지배의 첫 번째 단계이다 (ibid., 138)
 
아렌트의 담론—제국주의는 부르주와지의 정치지배의 첫 번째 단계—는 포스트 콜로니얼의 조건에 대한 통찰을 함축한다. 자본축적이 국가권력에 의해 세계체제로 확산될 때, 시민사회는 신제국주의적 논리에 의해 침투되며 사회문화의 계층화와 더불어 신분과 계급은 분화가된다. 여기에 이민자들의 문제와 인종문제가 가세된다.

결국, 제국주의는 민족국가의 토대를 약화 시키고 국가간의 경쟁을 도입한다. 국가사업과 제국주의 경제에 관여한 자본가들로 인해 유대인의 재정과 부는 밀려나기 시작했고, 군주제에서 누리던 재정지원과 자문역할을 통한 영향력의 몰락은 이들을 보편적인 증오의 대상이 되게했다 (ibid., 15). 부르주아지 세계지배형식에서 국내의 사회문화계층에서 밀려나간 인종그룹이나 정치적으로 의심스러운 그룹에대한 차별이나 콘트롤은 파시즘적 속죄양 형태로 나타난다 (르네 지라르). 이것은 희생자를 비난하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준다.

이러한 제국주의는 오늘날 포스트콜로이얼 조건 (착취, 침투, 분할)에서 여전히 다국적 기업과 신체정치학과 더불어 인종주의와 국지전에서 서구중심의 지배방식을 구축해내간다. 이것은 오늘날 후기 자본주의 체제에서 드러나는 변종의 지배 정치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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