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로부터 비판적으로 배우기
아렌트는 정치이론가로 머물기 원하지만 그녀의 철학적 면모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를 탁월한 방식으로 접합시키는 데서 볼 수 있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는 만나기가 어려운 지점에 서 있다. 그러나 이 두 사상가에 대한 고고학적인 해명에서 아렌트는 공동점을 발견하고 자신의 정치 사회학 즉 네러티브와 소통의 정치를 전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 (신중한 판단)와 칸트의 미학은 경험을 기초로 보편성을 획득한다. 그러나 아렌트는 그녀의 <인간의 조건>에서 이후 <칸트의 정치철학 강연>과는 달리 칸트의 미학과 자연의 고고학 그리고 코스모폴리탄 정치에 별 다른 주목을 하지 못했다.
아렌트의 관심이 정치사회학의 접합이론에 있고 여전히 어거스틴의 자유의 원리를 중요하게 고려한다면, 나는 역사 사회학의 관점 (막스베버, 발터 벤야민, 미셀 푸코)에서 보다 내재적 비판을 발전시킨다. 그리고 공공신학을 위해 시민사회국가론 그리고 밀려나간 자들을 위한 분배적 정의와 인정원리(헤겔)에 관심한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아렌트와 칸트의 사회학적 접합을 새로운 지평으로 재구성한다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와 영향사

가다머는 <진리와 방법>에서 칸트의 미학이론의 공동감각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를 해석학에 관련시켰다. 가다머에 의하면,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도덕적 기본개념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칸트는 영국철학의 도덕감정을 <실천이성비판>에서 배제했기 때문에 공동감각은 도덕적 중요성을 갖지 못한다(Gadamer, Truth and Method, 32). 가다머는 <실천이성 비판>에서 <판단력 비판>을 문제시하기 때문에, 후자의 저술에서 나타나는 상상력에 입각한 미학적 경험과 사심없음에 주목하지 못한다. 따라서 자연의 숭고미에서 도덕적 감정이 실천이성에 관련되는 것을 간과한다.
그러나 아렌트는 가다머의 한계를 넘어서서 해석학의 정치차원을 보여준다. 가다마의 철학적 해석학에서 전통과 역사는 선험적인 영향의 영역으로서 인간의 존재에 관여되며, 이해의 언어적 차원을 강조한다. 여기서 전통과 역사의 영향사는 언어적으로 개념화되고 이해의 보편적 지평이 확대된다. 이것은 가다머가 후설의 생활세계와 자평이론에서 받은 현상학적 유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다머의 생활세계는 역사와 전통 그리고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위해 먼저 존경과 전이해를 강조한다. 이후, 비판적 거리감을 통해 의미를 재구성하는 지평융합을 말한다.
이와는 달리 후설은 역사와 전통에서 드러나는 불명료함과 침천에 대해 책임적인 비판을 견지하고 해방의 기획을 제시한다. 후설은 기존의 것을 당연시 여기는 자연적인 순응적 태도를 비판하고 현상학의 태도변경을 취한다. 여기서 지평융합은 삶의 지향성과 상호신체의 공감능력을 가초로 비판과 윤리와 해방에 관련된다.
전통과 역사에 대해 하이데거-가다머와 같은 체제 순응적 태도에서, 예속되고 밀려나간 자들의 유효한 역사는 실종된다. 기존의 역사의 이념에는 폭 넓은 물질적 이해와 선택적인 친화력이 존재하며 (막스 베버), 이것은 권력관계 (계보학)와 담론의 정당성(고고학)에 엮어있다.
삶의 지향성과 신체의 공감윤리는 자평융합의 과정을 역사에 대한 문제틀, 윤곽보충과 확대, 책임적인 비판과 해방을 통해 종합과 재구성으로 나가는 머나먼 인식론적인 길이다.
이것은 생활세계의 사회학이며 하이데거나 가다머처럼 언어를 통해 존재론적인 지름길을 택하지 않는다. 언어는 보편적 현상이지만, 언어가 사회적 조건에서 담론화가 되고 정치관계에서 이데올로기 정당성을 가질 때, 지배언어에 권력과 특권이 주어진다. 이런 점에서 윤리와 해방의 차원이 없는 존재론적 해석학은 정치적 소통이론과 유효한 역사 그리고 반식민지적인 코스모폴리탄 원리(칸트)에 무력하다.
칸트의 미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아렌트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 중요한 통찰을 수용했다. 그녀에게서 판단 능력은 칸트처럼 미학적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영역에 관련되며, 개인들로 하여금 공론장에서 민주적인 토론과 승인의 과정에 참여하게 한다. 이러한 정치적 판단능력에서 칸트의 미학처럼 사심없음과 공정성이 전제된다. 칸트에게서 취미는 “확장된 멘탈리티”이며, 공동감각으로 파악되며, 정치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 그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정치적 사고를 의미한다.
칸트는 취미의 개별성에서부터 보편성을 추론하고 확대시켰다. 상상력은 인간의 감각에 나타나는 것을 지성과 관련하여 표상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아것은 미학의 영역에서 오성의 개념과는 독립적으로 미학적인 대상을 자유롭게 상상하며, 사심없는 판단을 한다.
그런가하면 공동감각 (sensus communis)은 개인의 미학적 경험과 판단을 타인과 더불어 나누게 한다. 이것은 주관적 경험을 넘어서서 상호주관적인 합리성이며 또한 동의를 구할 수 있는 감정의 소통구조를 말한다. 상상력과 공동감각은 소통능력에 있으며, 아렌트는 칸트의 반성적 판단을 의사소통적 판단으로 변형시킨다. 따라서 미학에서 확장된 멘탈리티는 정치적인 소통이론과 공공선에 연결된다. 정치 행위자와 관람자는 무대와 같은 공론장에서 정치현안을 다룰 때 공동의 세계에서 하나가 된다 (Lectures on Kant's Political Philosophy, LKPP 75, 221).
이러한 아렌트의 해석은 가다머의 입장을 분쇄한다. 거다머의 해석에서 칸트의 상상력과 공동감각은 오성을 통한 범주론과 개념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특수한 경험적인 것을 보편적 계기로 파악하는 칸트의 반성적 판단이 공동적이며 건전한 이해를 산출한다고 해도, 가다머는 수긍하지 않는다. (Truth and Method, 34)
다른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신중한 판단을 프로네시스로 부르고, 철학자의 지혜와는 다르게 정치가의 탁월한 덕목으로 간주했다. 프로네시스는 자연적 태도인 상식을 초월하며, 타인과의 공동세계를 지향한다. 이러한 신중한 덕목은 파이테인(peithein) 즉 확신적이며 설득적인 발화행위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것은 시민들의 정치언어이며 소통 행위를 지적한다 (Between Past and Future, 221-2).
가다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와 연극에서 개인의 합리성에 영향을 미치는 해석학의 통찰을 돌출한다면, 그것은 언어의 개임이 인간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비견된다. 연극이 인간의 이해에 먼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아렌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하는 드라마 용어에서 행위개념을 이끌어낸다. 이것은 행동의 모방이다. 이러한 모방요소는 행위자의 예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극을 만들거나 쓰는 행위에 있다. 적어도 드라마는 무대에서 상연될 때 비로소 온전하게 살아난다. 스토리의 플롯을 재연출하는 배우들은 행위자나 말하는 자들로서 충분한 의미를 전달하며, 스토리 자체보다는 여기서 드러나는 영웅들의 삶에 초점이 있다.
그리스의 비극에서 스토리의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의미는 합창에서, 그리고 이에대한 평은 시로 나타나지만 이것들은 모방적이 아니다. 드라마의 의미는 배우의 모방행동에 의해서만 전달되며, 이런 점에서 무대는 탁월한 방식에서 정치적 예술이며, 인간의 삶의 정치적 영역은 예술로 전이된다. 이러한 예술의 유일한 주제는 타인들과 관계에 있는 인간이다. (The Human Condition, 187-8).
아렌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드라마에서 모방행동을 정치적 예술로 고양시키며, 예술의 미학은 정치적인 삶의 영역으로 전이되고, 영웅들의 삶이 스토리를 통해 전달된다. 이것은 모방행동 안에서 나타나는 네러티브의 정치를 지적한다. 네러티브를 통해 위대한 그리스의 영웅들은 후세에 이어지고, 관람객은 이들의 영웅적 행위를 기억하고 자신들의 삶과 정체성에서 되살린다. 영향사는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며 네러티브를 통해 무대와 같은 공론장에서 민주적인 상호작용과 소통과 승인에서 구체화된다.
사회경제적 배경과 차이
아렌트의 분석에 의히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시국가에서 경제는 노예노동을 기초로 한 가계중심이고 소비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노예는 말하는 도구로 불렸으며 동물적인 노동 (animal laborans)과 소비의 차원에 제한되어있다. 노예는 생산의 도구가 아니라 가계의 소유사용 즉 소비를 위해 돕는 도구였다. 노예는 공작인 (homo faber)이 아니었다. 노동분업은 직접적으로 노동과정에서 출현하지만 일의 전문화는 정치적 삶의 영역과 관련된다. 정치조직에서만 분업과 전문화는 발생한다.
이것은 칸트 시대의 생산중심의 사회와는 다르다. 공작인은 수단과 목적에 기초한 기술 합리성을 발전시키고 노동의 동물적 차원을 전적으로 생산과 판매 그리고 소비 활동으로 해방시킨다. 상업사회는 자본주의 초기단계에서 격렬한 경쟁과 취득의 정신으로 특징되는데 공작인의 기준에 따라 지배되었다. 교환가치가 이전 소비에 기초된 사용가치와 생산자로서 공작인의 가치를 넘어설때 시장에서, 마르크스 분석한 것처럼, 상품교환과 노동의 소외가 출현한다. 인간의 노동력은 상품으로 전락한다. 사용가치가 수익을 얻기위한 교환가치로 전이되는데서 자본주의 원죄가 시작된다.(ibid.,165)
아렌트는 칸트의 철학에서 공작인의 사유 즉 목적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수단을 선택하는 태도에 주목했다. 공작인의 인간중심적 공리주의는 심지어 칸트의 도덕철학에 각인되는데 인간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인간은 목적 자체이다. ( ibid.,155)
물론 칸트 시대의 독일 경제나 정치제도는 프랑스 혁명에 직면했다. 계몽 군주제 사회에서 칸트는 인간의 성숙과 미성년적인 상태로부터 탈출하는 근대적 태도를 견지했다. 이러한 계몽의 근대성은 앎을 향한 담대한 의지로 특징되며, 공론장에서 비판적 이성과 소통을 요구한다.
이것은 시대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고대 그리스 국가의 정치적인 삶에 공명할 수 있지만, 노예노동과 소비중심사회와는 달랐다. 노예는 생물학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가계경제에서 나타나는 부담스러움이나 장애를 제거했지만, 사회전반을 위한 생산에 관여하지 않았다. 막스 베버가 언급한 것처럼, 고대의 도시국가는 소비중심이었고, 중세도시는 생산중심이었다. 이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를 생산도구로서 필요한 것으로 보편화하지 않았다. (ibid., 119)
아렌트의 접합의 한계
사회 경제적 배경과 정치지배방식의 차이로 인해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매개는 단순하지가 않다. 실천이성과 의무에 기초한 칸트의 도덕철학은 옳고 그름에 대한 정의와 정언명법이 부각되지만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보편법), 아리스토텔레의 도시국가를 기초로 한 윤리철학은 칸트처럼 보편적으로 인간에게 적용되지 않고 시민개인의 삶에서 덕과 중용 그리고 행복에 기초된다.
물론 아렌트는 칸트를 공리주의적 합리성과 일치 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칸트는 수단/목적 카테고리를 정치적 영역에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자연과 객관적 대상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사심없는 줄거움'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칸트가 인간을 지고한 목적으로 고양한다면 자연과 세계는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된다. 칸트는 이러한 당혹감을 해결하지 못했고, 역설적인 인간목적 자체로 인해 공작인의 맹목성을 의미를 통해 비판적으로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인간은 공작인으로서 자연과 모든 것의 가치를 단순한 수단으로 변질시킨다. (ibid.,155-6)
그러나 아렌트가 공작인으로서 인간유형을 칸트의 실천이성에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건 수긍하기가 어렵다. <실천이성 비판>에서 칸트는 하나님의 존재와 자유 그리고 영혼불멸의 의미를 전제하고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를 자율성과 도덕에 기초해 정치개혁과 혁명에 적용했다. 여기서 정치적 프로네시스가 고려되지만 아렌트는 이 사실을 간과한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를 칸트의 미학적 판단에 접합시키는 아렌트의 철학적 시도는 불충분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의 실현을 위해 도시국가의 정치적인 삶에서 목적론적으로 덕목을 고려하고 네 가지 원인 (형상, 질료, 작동, 목적)에 기초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중심적이지도 않고 세계와 자연 그리고 도시국가의 윤리적 삶을 하락 시키지 않았다. 제 일원인으로서 '부동의 동자'는 칸트처럼 실천이성이나 자연(창조)의 세계에서 숭고미나 경건한 종교적 감정으로 체험되지 않는다.
칸트는 실천이성에 기초하며 선험적이다. 만일 아렌트가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 미학적 개별경험을 귀납적으로 추구하고 보편성을 상상력과 공동감각에서 정치영역으로 이전시키길 원한다면, 칸트의 정치적 프로네시스와 함께 미학에서 자연의 역할, 그리고 역사 철학적 반성이 고려 되어야한다. 칸트는 공작인이 아니라 코스모폴리탄 시민에 적합하다.
코스모폴리탄 원리와 정치적 신중함
칸트는 <코스모폴리탄 의도와 보편사의 이념, 1784>에서 자연의 진화론적 과정과 역사이성을 접합시키고, 사회안에 있는 인간의 적대감(인간의 비사회적 사회성)이 사회의 법적 질서의 원인으로 파악한다. 칸트적인 의미에서 인간은 경쟁과 적대감정에 이끌리는 욕망과 지배와 소유의 존재이며, 이러한 삶의 욕구로 인해 악도 발생하지만, 또한 인간의 모든 자연적인 탁월한 능력들이 발전한다.
인간의 이기적인 경향으로 인해 타인을 해롭게 하는 잔인함은 점진적인 계몽을 통해 정의로운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일반의지(루소)에 복종하고 시민사회를 구성한다. 일반의지를 통해 대중은 정치주체로서 시민이 되고 사회계약론을 근거로 국가가 형성된다. 선험적으로 주어진 일반의지만이 연방국가나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정의를 결정한다. 사법적 원리는 행정권과 입법이 분리되며, 민주주의는 법과 권리에 기초된다.

<영구평화>에서 이러한 시민사회는 정의로운 사법체계를 가지며, 국제 관계에서 자연적인 갈등과 전쟁상태를 넘어서서 코스모폴리탄 시민의 조건으로 진입한다. 칸트는 국제법을 갖춘 자유국가들의 연맹을 주장하고 세계정부를 국가들간의 연합으로 대신한다. 모든 정치적 신중함은 이러한 국제연맹을 법과 권리에 기초해 가능한 방식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칸트는 정치를 법과 권리개념에 연결하고 정치에 비판적 한계설정을 한다. 도덕적 정치가는 정치적 신중함 즉 프로네시스를 통해 개인의 이기적인 이익을 넘어서서 사법개혁과 심지어 혁명을 위해 이성의 원리에 따라 수행한다 (“To Eternal Peace,” Basic Writings of Kant, 461).
칸트의 코스모폴리탄 권리는 환대의 윤리를 포함하며 더 나아가 유럽국가들의 비환대적인 식민지 정복과 노예제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세계시민의 법은 공화제 민주주의와 사법에 기초되며, 국민들은 모든 인류의 보편 국가의 시민으로 간주된다. (ibid., 441, 448) 칸트의 목적으로 인간개념은 여기에 공명하는 사회나 국가를 세우는 사회주의 정치지평에 서 있다. 칸트의 정언명법은 마르크스의 종교비판에서 인간을 소외시키고 억압하고 수치스럽게 하는 모든 사회질서를 전복하는 정언명법으로 이어진다.
자연의 고고학과 역사철학
칸트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은 특별한 것이며 숭고미에서 종교적 감정이 드러난다. 신의 창조의 미학은 도덕적으로 선한 자에게 관심을 준다. 취미의 무사심과 공동감각은 상상력에서 즉 직관의 원천에서 지성의 규정판단과 개념없이 자유롭게 형식을 반성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의 광대함과 웅장함앞에서 상상력은 자기한계에 직면하여 무한성을 감지하고 정신을 확장시킨다. 이러한 확장된 멘탈리티는 도덕적 실천이성과 관련되지만 여전히 종교적 경험의 영역을 열어놓는다. 성의 현상학(루돌프 로토)이나 경건의 해석학(쉴라이에르마허)은 이런 측면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자연의 숭고미에서 종교적 감정과 도덕적 관심으로 인도되는 것은 들뢰즈가 말하는 것처럼 자연에서 단순히 상징주의나 천재적 예술가로 환원되지 않는다. (들뢰즈, <칸트의 비판철학>, 104)
오히려 자연의 합목적성은 창조의 궁극적 목적을 지향하며, 도덕의 영역으로 안내한다. 아름다움을 통합하는 관심은 정치적이며 사회적이다. <판단력 비판>의 부록에서 칸트가 자연의 궁극적 목적을 목적론적 시스템으로 고려할 때 (§83) 전쟁을 피하기 위해 여전히 법적지배와 도덕적인 근거로 코스모폴리턴 정치가 포함된다.
목적론적 판단력에서 우리는 자연이 인간의 삶에 호의를 베풀며 자연미가 여기에 속한다. 이것은 미학적 판단력에 의해 준비된다. 목적론적 공동감각은 반성적이며 칸트의 자연의 고고학에 속하며, 미학의 정치적 차원을 강조한다. 이것은 단지 미학적일뿐 만 아니라 역사의 과정에서 적대감정과 투쟁과 오류를 거치면서 계몽으로 나가는 도덕적 진보와 시민사회와 엮어진다. 자유개념은 자연과 역사 그리고 사회 안에서 실현되며 최고선의 실현이며 개인주의적 이성과는 상관없다.
그러나 아렌트는 <영구평화>에서 전개되는 칸트의 역사정치적 접근에서 자연의 상태의 적대감정 (인간의 비사회적 사회성)을 근거가 비약한 것으로 거절한다. 아렌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확장된 멘탈리트 즉 공동감각에 근거한 미학의 정치적 차원을 부각시켰다. 아렌트에 의하면 칸트는 <판단력 비판>이 정치철학에 속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했다. (LKPP, 9.19)
칸트는 홉즈처럼 자연의 상태에서 만인대 만인의 투쟁을 통해 발생하는 권력에 굶주린 인간의 모습에 주목하고 리비이어던과 같은 권력자동기계에서 문제해결을 보지 않았다. 오히려 루소의 낭만적 야만의 상태에서 자연의 섭리와 계몽의 이성의 발전을 역사철학화했다.
칸트의 이성철학은 역사 경험적으로 조건되고 반사회적 사회성 (적대감정과 투쟁)을 고려하면서, 여전히 식민주의 비판을 통해 코스모폴리탄의 정치적 중요성을 획득한다. 역사는 개인이성이 아니라 역사의 투쟁과 발전에서 보편적 도덕성과 정치활동을 통해 사회와 세계안에서 평화의 상태를 영구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시민사회와 더불어 우리는 모든 국가들의 시스템으로서 코스모폴리탄 총체성을 필요로 하는데, 이것은 국가들의 자유와 합목적성의 일치를 통해 도덕적으로 근거된 시스템을 말한다. 칸트는 루소의 사회 계약론과 공화제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자연의 고고학 또는 목적론을 통해 코스모폴리탄의 지평과 영구평화를 열어간다. 이러한 논의는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나 < 칸트의 정치철학 강연>에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정치미학과 반성적 판단
아렌트가 칸트의 미학에서 주목한 것은 경험에 기초된 반성적 판단이다. 칸트의 판단일반은 개별적인 것이 이미 보편성안에 포함된다. 만일 규칙이나 원리 그리고 법과 같은 보편성이 주어진 것이라면, 개별적인 것을 보편성에 포섭하는 것은 규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규정판단과는 달리, 개별적인 것이 주어진 것이고 보편성이 개별성을 위해 찾아져야 한다면, 이것은 반성적 판단이다. 이러한 반성적 판단은 경험적인 개별성에서부터 보편성을 향해 나가는 귀납적이며, 규정적인 판단일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보편성은 반성판단에 선험적으로 적용되고 개념이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개별적인 것 (취미)이 보편적인 것과의 관련에 서 있으며, 개인의 정치판단능력은 여기서 추론될 수 있다. 취미는 타인에 의해 공감될 수는 없다고 해도 논박의 여지는 없다. 취미에 대한 판단은 반성적이며 자유롭고 비규정된 것이다. 그것은 다원성의 차원에서 즉 공동감각에서 보편적 의미를 획득하며 도덕과 정치의 중요성을 포괄한다.
칸트의 미학적 판단에서 개인은 미의 보편성을 개별적인 대상을 경험하면서 이해한다. 꽃을 볼 때, 독특한 자연환경에 마주칠 때, 또는 화가의 그림에서 미의 실례를 보고 여기서 실례적인 (exemplary)정당성이 존재한다.
물론 가다머는 칸트의 역사적 실례의 정당성을 알고있고 반성적 판단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에 주목한다. 그러나 그는 공동감각의 보편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미학적 취미로 폄하한다. 오히려 칸트가 개인적인 특수사례를 보편성아래 포섭하는 규정적 판단에 미학적 요소가 포함된다고 말한다. (Truth and Method, 34-5)
그러나 아렌트는 가다머와 정반대의 길을 취하고 칸트의 미학안에 반성적 판단과 공동감각에서 오성의 개념에서 범주화되지 않는 경험적 차원에 주목한다. 아것을 정치적 중요성을 위해 재구성한다. 칸트의 역사의 실례적인 정당성은 아렌트에 의하면 미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판단에도 적용될 수가 있다.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 파리 코뮌(18 71), 러시아 소비에트, 독일 혁명(1918-19), 19 56년 헝가리 혁명 등에서 우리는 실례적인 정당성을 통해 이러한 혁명의 사건에 보편적 중요성을 부여할 수가 있다.
그렇다고해서 이러한 보편적 중요성은 니체적인 의미에서 영원회귀처럼 반복과 차이로 (들뢰즈)역사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러티브로 기억되고 비판적 해방의 역사로 전해지며 정치적 의미를 획득한다. 그러나 실례적인 정당성으로 인해 개별적인 혁명의 독특함과 차이가 제거되지 않는다. 이것은 영원회귀의 형이상학을 넘어서는 내러티브 정치학이다.
칸트의 미학적 판단에서 반성적인 판단은 정치적 사건과 역사적 영역으로 이전되며, 후대를 위해 과거의 사건은 실례로 보존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아렌트의 철학적 접합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는 칸트의 확장된 멘탈리티와 매개되며, 반성적 판단에서 보편성은 개별적인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귀납적 태도는 칸트의 정치적 신중함에서 나타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와 선택적 친화력를 갖는다. 둘 다 개별적인 것을 통해 보편을 추구한다. 물론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과 칸트의 미학이 코스모폴리탄과 도덕정치에서 확대되는 지평을 말한다.
아렌트에게서 정치적 판단의 정당성이 개인들이 민주주의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에 기초된다면, 이러한 다양한 관점들은 공론장에서 토론과 계몽을 통해 테스트가 되고, 여론형성과 절차에서 상호주관적인 소통과 합의를 통해 충분한 이해에 도달한다. 여기서 공정한 일반성이나 공공선을 찾을 수가 있다. 그녀의 정치적 사고는 관료적인 정당제도보다는 연방의 협의체를 기초로 한 시민들의 입장을 대표하는 민주주의에 기초한다(Arendt, Between Past and Future, 241-2).
진리는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여론 또한 자명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포럼에 참여 그리고 시민들의 다수성과 신중한 판단에 기초하며, 이것이 정치적 삶에서 진리가 된다. 이것은 상상력과 자유의 사용을 요구하며, 의견을 대표하는 사고를 통해 상호주관적 소통과 승인을 돌출한다. 이것은 단순한 여론과는 달리 논쟁절차와 민주적인 과정을 거친 자유롭게 합의된 대표된 견해를 말한다.
미학적 판단에서 상상력이 사심없음에 근거한다면, 이것은 사적인 이해 관계로부터 해방된 것이며, 나는 여론형성과정에서 상호의존성에 기초해 소통을 통해 자신을 타인의 관점을 대변하는 자로 만들 수가 있다. <칸트 정치철학 강연>의 마지막에서 아렌트의 정치 프로젝트는 공론장에서 공동감각의 확장된 멘탈리티를 인간의 사회성을 최상으로 표현하는것으로 부각시킨다. 이것은 시민사회안에 내재한 본래적인 계약일수 있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에게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소통하는 자유를 빼앗는 외적인 권력은 동시에 생각의 자유를 빼앗는 것과 같다. 우리는 타인과 더불어 공동체안에서 사고하고 상호주관적으로 소통하고 이해한다 (Between Past and Future, 234-5).
이런 점에서 아렌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개념을 공론장의 소통영역으로 수용하지만 여전히 칸트의 제자로 남는다. 그러나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는 코스모폴리탄 이성을 그녀의 내러티브와 상호주관적 소통 그리고 정치적 자유와 새로움을 통해 개념화하지 못했다.
<인간의 조건>과 코스모폴리탄 원리
<칸트 정치철학 강연>에서 아렌트는 칸트의 확장된 멘탈리티와 공동감각이 과연 코스모폴리턴 시민개념에 적합한지 의심을 했고, 칸트의 세계시민은 세계의 관람자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ibid., 44)
그러나 칸트는 프랑스혁명을 보면서 계몽의 비판적 차원을 옹호할때 그는 단지 팔짱 긴 관람의 철학자로 나타나지 않고 공공 철학자로 등장한다. 아렌트는 칸트의 급진적 악에 대한 반성과 인터네셔날 관계에서 드러나는 적대감정과 식민주의 비판을 체계적으로 보지 못했다. 칸트는 오히려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 철학자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
아렌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인간조건에 대한 철학적 반성은 칸트의 코스모폴리탄 원리와 더불어 전개될 수가 있다. 아렌트의 인 간조건에서 인간의 다수성과 정치적 행위 그리고 자유와 새로운 창조성에 기초한 출생성은 코스모폴리턴 원리에 공명한다—타인들의 삶에 대한 인정, 문화적 개방성에 대한 관여, 새로움에 대한 수용, 그리고 환대의 윤리.
생활세계의 차원이 아렌트와 칸트에게서 자리잡는다. 아렌트는 인간의 다수성에 대한 반성에서 이미 언어행위와 정치를 관련짖고, 동등성과 구별을 전제한다. 동등함이 없이 인간은 서로 이해하거나 민주적으로 소통하기가 어렵다. 인간이 서로 구별되지 않으면 언어나 행위는 소통이 불필요하다.
타자성은 인간의 다수성에서 중요한 측면을 갖는다. 타자성과 구별성은 인간의 독특함을 지적한다. 인간의 다원성은 독특한 존재의 역설적인 다원성을 지적하며, 언어와 행위는 이러한 독특한 구별을 의미한다. (The Human Condition, 175-6)
아렌트의 행위개념에는 어거스틴적인 정치철학이 담겨있다. 일반적으로 행위는 시작을 의미한다. 시작은 그리스적인 의미에서 기원을 지시하며, 시작과 주도적 행위 는 궁국적으로 지배를 말한다. 어원적인 의미에서 이것은 출생에 의한 시작을 지시하며 정치행위를 함축한다.
어거스틴의 정치철학(De civitate Dei xii. 20)에서 주요원리는 다음과 같다. 기원이 존재하며, 인간의 창조이전에 다른 인간은 없었다. 인간의 창조와 더불어 시작의 원리가 세상에 들어왔으며, 이러한 출생성은 자유의 원리를 지적한다. 인간이 창조될 때 자유가 창조된다. 여기서 전혀 예기치 않은 새로움이 출발한다 (ibid., 177)
이러한 예기치않은 놀라움은 모든 시작과 기원에 내재한다. 인간의 행위에서 예기치않음과 새로움이 출현한다며, 출생성과 다원성 그리고 행위는 코스모폴리탄의 원리에 소통과 자유 그리고 새로움을 제공한다. 이러한 삼중적 원리는 생활세계의 다양성 안에서 여전히 일반적 구조로서 작동되고 인간의 삶의 조건에서 영향을 미친다.
아렌트가 어거스틴의 인간학과 종교에 대한 개방성을 견지한다면, 생활세계는 화해의 빛에서 개념화될 수 가 있고, 이것은 철학적으로 십자가 신학과 인정원리(헤겔)에 공명한다. 그러나 아렌트는 헤겔에 별다른 주목을 하지 못했지만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접합을 통해 헤겔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출생성과 자유개념은 다수성과 더불어 역사의 전개관점에서 욕망과 충족의 체계변화를 통해 사회적으로 밀려나간 자들을 인정하며 이들과 연대하는 담론실천으로 재구성 될 수있다. <인간의 조건>은 부정과 매개를 통한 헤겔의 인정과 자유의 진보를 거절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차원은 아렌트의 용서의 힘에 대한 반성에서 잘 나타난다. 인간은 자신이 한 행동의 귀결로 인해 용서받지 못할 때, 인간은 회복할 수 없는 파탄 즉 행동귀결의 희생자로 영원히 머물게 된다. 인간은 방향을 찾지 못하고 무력해지며 외로운 마음의 어둠안에 갖혀버린다.
그러나 도덕의 코드는 용서로부터 오며 새로운 미래를 향한 약속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도덕적 코드는 타자의 현전에서만 경험된다. 용서는 처벌의 정의를 넘어서서 가해자(메타노이아)와 피해자(화해)의 삶을 새롭게 회복하는 정의를 지적한다. 아렌트에게 나사렛 예수는 인간의 삶에서 용서의 역할을 발견한 분이고 종교의 언어와 콘텍스트에서 부각시켰다. 이것은 서구 정치적 전통에 속한다. 예수의 용서의 실천은 로마제국의 강자의 원리(버질)--세상을 지배하고 정복된 자의 사면 (parcere subiectis)에서 오는-- 손상에 필요한 교정책이 된다. 용서는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에 기원을 갖는 사형선고에 알려지지 않는 지혜였다.(ibid., 237-8)
아렌트에게 사랑과 용서를 기초한 정치 철학적 입장은 예수의 용서의 복음에 기초되며 화해와 인정의 원리에 공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접합을 통해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 중요한 정치 철학적 반성을 남겼고, 그것은 생활세계와 코스모폴리탄 원리에 공명한다.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서 만나는 인간의 다원성과 정치적 소통과 내러티브 그리고 출생성은 코스모폴리탄 조건과 만나면서 화해와 인정을 향한 정치철학으로 전개될 수가 있다. 이 점에서 아렌트의 정치철학은 역사 사회학적이며 서로 다른 철학적 전통을 <인간의 조건> 즉 노동- 일- 행위를 통해 고고학적으로 해명하면서 새로운 자유와 창조성을 열어준다. 이러한 현상학적 틀에서 칸트의 코스모폴리탄 원리와 헤겔의 인정과 자유의 원리가 새롭게 만나는 접합이 사회학적으로 창출될 수 있다.
'공공신학과 사회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바이어던>: 한나 아렌트와 칼 슈미트(5) (1) | 2023.07.01 |
---|---|
한나 아렌트와 제국주의 변종의 정치(3) (0) | 2023.06.30 |
한나 아렌트와 반유대주의(2) (0) | 2023.06.30 |
마르크스와 놀이하는 인간 (4) (0) | 2023.06.27 |
마르크스와 비판적 민주주의 (3) (0) | 2023.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