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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놀이하는 인간 (4) 자유의 왕국과 놀이하는 인간 아렌트는 엥겔스의 마르크스이해를 기초로 "역사의 다윈"에 주목했다. 이러한 표현은 엥겔스로 부터 온 것이며, 마르크스의 변증법이론은 다윈적인 의미에서 자연의 변증법으로 둔갑한다. 여기서 사회진화론적인 모티브 즉 생존투쟁과 적자생존이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이론에 부착된다. 노동하는 동물로서 인간은 역사발전에서 적자가 된다 (The Human Condition, 116) 그러나 마르크스의 역사 변증법은 적자생존이나 인종주의와는 상관이 없다. 그는 인간을 소외된 노동과 물신숭배 사회로부터 해방시키려고 했다. 마르크스는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의 왕국으로 이행을 말한다. 그래서 순진한 유토피아적으로 비판당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당대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자유의 왕국은 .. 2023. 6. 27.
마르크스와 비판적 민주주의 (3) 마르크스의 갈림길: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흔히 시민사회는 마르크스의 아킬레스 건으로 말해진다. 부르주아 사회 (bűrgerliche Gesellschaft)는 경제영역에서 사익을 추구하는 하지만, 시민사회는 시민이 정치주체로 등장 하는 데 프랑스 혁명에서 부각된다. 독일은 정치주체로 시민을 표현하는 말을 공민 (Stattsbűrger)으로 사용하지만, 프랑스 정치이론을 담아내기에 품이 좁은 표현이다. 프랑스 정치이론에서 시민은 하위계급과 연대하면서 나타난다. 정치사회 (사법에 의해 지배되는 의회 민주주의)와 경제사회(부르즈와지 사회) 그리고 시민사회 (정치적 주체로서 시민)가 분화된다. 시민사회에 공공선을 위한 통합적 이데올로기 기재들이 작동되고, 가정, 교육, 도덕, 종교, 문화가 두드 러지게 나타난다... 2023. 6. 27.
마르크스와 문제틀 (2) 무엇을 하려고 하나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는 무산자이며, 스스로 보호할 것도 없으며, 이들은 자본의 예속을 통해 민족적 성격이 빼앗겼다. 법률, 도덕, 종교, 철학, 교육, 이데올로기 등은 부르주아적 편견이나 이해나 권력관계에 의해 가려져 있다. 아동에 대한 사회적 무상교육과 아동의 공장 노동을 폐지한다—이러한 마르크스의 시대적 요구는 빅토리아 시기에 실현되고 영국의 민족 정체성과 개혁 그리고 도덕적 존중이 자리잡는다. 사회전반에 걸친 개혁과 해외시장으로부터의 수익과 식민지배가 마르크스의 생각을 빗나가게 한다. 무산자들이 사라지고 증산층으로 편입되고, 그들은 더 많은 소유와 특권을 가지려는 강한 모방욕구를 가지게 된다. 마르크스가 살았던 1848년은 광범위한 증산층에 의해 자유주의, 민족주의, 독립국가를.. 2023. 6. 26.
칼 마르크스: 시민사회와 ‘0 유로 (1) 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독일에서 ‘0 유로’ 짜리 지폐를 발행한 적이 있다. 흥미롭게도 판매액은 3유로다. 초도물량 5000장은 전부 판매되었고 2만장을 추가 판매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0유로’ 기념화폐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을 상징한다. 마르크스는 돈의 사용가치를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돈으로 상품을 만들고 시장에서 파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의를 비판했다. 상품의 물신숭배를 비난했던 그가 이제는 ‘0유로’ 화폐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3유로를 기꺼이주고 구입하는 사람들이 사회안에 존재한다. 마르크스에게 돈은 개인과 공공을 위해 중요하다. 그가 사유재산의 철폐를 주장했다고 해도, 그것은 산업혁명에서 노동자를 구조적으로 착취하는 부르주아와 시스템을 지적한다. 사람들이 정직하게 노력해서 돈.. 2023. 6. 26.
찰스 테일러와 바르트: 헤겔과 마르크스 찰스 테일러: 헤겔과 마르크스 찰스 테일러는 에서 칼 바르트의 헤겔비판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헤겔의 안셀름 해석은 바르트의 신학과 새로운 대화를 위해 열려있다. 그것은 헤겔을 만유 재신론자가 아니라 삼위일체론적인 유일신론자로 보게하는 가능성이다. 헤겔의 성령이해와 인격개념은 삼위일체론의 의미를 삼신론과는 달리, 보다 풍부하게 히브리적 하나님 이해와 더불어 발전시킬 수가 있다. 테일러는 의 결론에서 일체의 전제주의로부터 헤겔의 정치적 입장을 방어한다. 헤겔에게서 인간은 새로운 인륜성을 이성적인 국가안에서 발견하고 보다 큰 삶과의 연관성안에서 일치가 되어야한다. 이것은 프러시아 절대군주에 대한 충성이념도 아니며, 진영 논리에 기초한 여타의 파시즘으로 오해 될 수도 없다. 헤겔은 마르크스나 레닌과는 .. 2023. 6. 19.
칼 바르트: 하이데거와 사르트르 바르트의 하이데거 비판 바르트는 에서 1929년 하이데거의 프라이부르크 대학 취임강연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나타나는 무의 문제를 다룬다. 하이데거에게서 무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부정이다. 이것은 헤겔처럼 합리적인 부정과 다르며, 오히려 무는 헤겔의 부정이나 긍정에 앞서있고, 오히려 자체상 본질적인 역동성과 활동성을 가지고 있다. 무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무화로 나타나며, 절대적 타자이다. 무는 존재의 본질이며, 무로부터 존재가 나온다. 존재는 무를 향해 기획된 존재를 의미한다. 무로인해 우리는 불안과 공포의 상태에서 살아간다. 현존재는 죽음을 향한 존재이며 스스로를 염려한다 (CD III/3: 334). 하이데거는 (§60)에서 불안을 다루면서, 인간은 세계로 던져져 있으며 삶과 죽음과 무.. 2023. 6. 19.
융엘의 반유대주의 혐의 융엘의 1975년 에필로그 융엘은 하이데거가 남김없는 존재론을 통해 형이상학을 폐지해버린 순진한 시도에서 맹목적인 굴복을 한다. 결국 이런 영향으로 인해 융엘은 내재적 삼위일체의 자유와 신비를 형이상학의 잔재로 간주하고, 경륜적 하나님과의 구분을 폐기해버린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존재는 되어감에 있다”는 융엘의 명제는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는 스스로 진리로 드러낸다”로 바꾸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위의 사진에서 융엘은 그의 핵심 테제를 말한다. 하나님은 필연성 이상이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일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사건을 이해할 수 없는 한 ㅡ융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다. 융엘을 향한 문제제기 이런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융엘의 하나님의 말씀 사건은 계시의 주권성을.. 2023. 6. 18.
후설과 하이데거: 비판적 검토 후설과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아리스토텔레의 실체와 범주를 불충분한 것으로 보았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데카르트와 칸트 이후 인간은 주체성으로 고양되며, 주객도식에 기초한 서구의 인식론은 형이상학임을 비판한다. 더 나아가 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을 플라톤주의나 선험적 유아론으로 폄하하지만, 사실, 후설에게서 형상은 수학에서 수나 삼각형같은 보편범주나, 또는 본질적인 타입을 말한다. 후설은 현상학을 의식의 본질을 다루는 엄밀한 학문 즉 제1철학으로 특징지었다. 현상학적 태도는 개별 나무에 대한 자연적 태도에 판단중지를 하고, 태도변경을 한다. 감각지각에 들어온 이상적 의미내용을 노에시스는 상상력과 자유로운 반경을 통해 본질직관을 위해 형상적 환원으로 나간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변경이 감정적 가치의 영역에서 일.. 2023. 6. 18.
헤겔과 화해의 하나님 헤겔: 본회퍼와 바르트 사이에서 헤겔의 하나님은 역사와 사회, 문화 그리고 교회 안에서 스스로 소통하시는 분이다. 빛은 스스로를 비춘다. 하나님의 진리는 종교 안에 담겨있지만, 교회 공동체에 국한되어있다. 그리스도는 교회 공동체로 존재하신다. 본회퍼는 에서 그의 종교철학을 다루고, 특히 종교와 철학이 공동으로 갖는 내용과 관심은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와 하나님의 자기해명에 있음에 주목했다. 철학은 실제로 하나님께 봉사하는 학문이다. 종교와 철학은 이 지점에서 일치한다. 하나님이 철학의 유일한 대상이 될 때 철학은 신학이 되며, 철학의 탐구는 하나님에 대한 봉사를 한다 (Bonhoeffers Hegel-Seminar 1933, ed. Tȍdt, 47). 이러한 본회퍼의 평가는 헤겔이 어떻게 신학과 철학의 관.. 2023. 6. 18.
헤겔과 바르트 헤겔과 바르트: 하나님의 존재의 되어감? 헤겔은 역사의 중요성을 신앙에 회복시켰다. 성육신은 헤겔철학에서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하나님의 자기운동과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창조와 역사에서 스스로 영으로 드러낸다. 그리스도의 계시와 화해에서 성령은 하나님을 세계와 인류를 포괄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계시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하나님과 세계의 화해는 성령을 통해 일어난다. 화해는 믿음의 공동체의 본질이며, 성령의 임재를 통해 공동체는 설립이 된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요한 4:24). 바르트 역시 자신의 신학의 출발을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에 기초하고 계시와 화해의 사건을 근거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를 해명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고, 그분의 계시는 그리스도의 인격 .. 2023.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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